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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역의 회귀식 생존법-71화 (71/185)

71화.

발작하며 눈을 떴다. 누군가가 맞춰 놓은 알람이 폭격기처럼 의현의 귓전을 때렸다. 가벼운 진동에도 쉽게 잠을 깨는 의현은, 사람이 이렇게까지 크게 알람을 맞춰야 할 필요가 있나 진심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 미칠 듯한 알람을 듣고 놀라 일어난 건 오직 의현과 해수 둘뿐이었다. 팀장급의 사람들은 백색소음 틀어놨다는 듯 아주 편하게 자고 있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요?”

1분 간격을 두고 알람이 계속 울렸다. 정말 귀가 떨어져 나갈 것 같았다. 해수가 귀를 틀어막으며 속삭였다. 그거야말로 의현이 하고 싶던 말이었다.

“일단 깨워 봅시다.”

“이, 일어나세요…….”

해수가 같은 팀인 한 팀장의 몸을 흔들었다. 아기 재우는 듯한 아늑한 몸짓에 한 팀장은 입을 우물거리며 더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저기요, 교수님.”

의현이 세게 몸을 흔들자, 지원팀 팀장은 몸을 꿈틀거리며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 갔다. 의현은 이불을 확 들춰냈다.

“교수님, 예배 안 가세요?”

“으으, 오 분만…….”

“그럼 핸드폰 잠금 풀고 알람 좀 꺼 주세요. 방 혼자 쓰세요?”

“어우, 진짜 싸가지…….”

지원팀까지 의현의 싸가지가 널리 퍼졌다니 참 다행인 일이었다. 지원팀 팀장은 눈을 비비고 일어나 핸드폰 알람을 껐다. 그는 마흔이 넘은 나이였는데, 관리를 잘해 얼굴만 보면 삼십 대 중반 즈음으로 보였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저것도 어떻게 좀 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

아직도 일어나지 못한 사람들 핸드폰에서 알람이 끊임없이 울렸다. 의현은 지겨운 표정으로 지원팀 팀장을 향해 눈짓했다.

“이럴 때 아주 좋은 방법이 하나 있지. 그건 바로…….”

지원팀 팀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서 팀장이 자는 방 문을 노크했다.

“서 조교, 혹시 아직 자나? 이 친구들이 오랜만에 서 조교가 좀 깨워 줬으면 좋겠다는데…….”

말이 끝나기도 전에 문이 벌컥 열렸다. 그 안에서 머리를 산발한 서 팀장이 급작스럽게 튀어나왔다.

“어머! 안 그래도 내가 깨워 주려고 준비도 다 해 놨지 뭐예요!”

뭘 하는데 준비까지……?

사실 그게 뭐든 서 팀장이 하는 거라면 일반 상식과는 거리가 멀 것이 분명했다. 의현은 한 걸음 떨어져 고개를 내저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기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어휴, 잘 잤네. 딱 이 정도 자고 싶었는데 말이야.”

“한 교수님도 잘 주무셨어요? 저도요. 딱 잘 자고 일어났지 뭐예요.”

“다들 좋은 아침이에요!”

서 팀장이 뭔가를 하기도 전에 기절한 듯 자고 있던 사람들이 스프링처럼 튀어 올라왔다. 말도 안 되는 상황이었지만, 서 팀장이라는 인물 하나를 끼워 넣자 강하게 설득력이 생겼다.

“뭐야……. 나 다 준비하고 나왔는데, 다들 어쩜 이렇게 나를 실망시킬 수가 있어! 나는 오늘만 기다렸는데!”

서 팀장은 손에 들고 있던 마이크를 바닥으로 집어 던졌다.

“도대체 마이크가 어디서…….”

“저 사람을 이해하려고 하지 마세요.”

해수가 당황스러운 얼굴로 마이크를 주워 서 팀장에게 건네주었다. 서 팀장은 마이크를 돌려받고 이번엔 또 해수에게 수작을 걸기 시작했다.

“어머, 그대는 마치 한 송이의 은방울꽃 같군요. 혹시 과를 옮길 마음이 있다면 꼭 우리 사회학과로…….”

“서 조교님.”

“왜, 나를 그렇게 애타게 부를까, 우리 의현 학생이? 이러니까 무슨 플레이 하는 것 같아서 기분 째진다. 자기.”

의현은 익숙하게 무시했다. 다른 사람들도 죄다 그랬다. 팀장급에 있는 사람들은 대개 서 팀장과 동기거나 혹은 한 번이라도 굵직한 외근을 같이 나간 적 있는 사람들이어서, 이런 나사 빠진 행동도 아무렇지 않게 넘길 수 있었다.

“프, 플레이……?”

오로지 서 팀장을 겪어 본 적 없는 해수만 어버버하며 당황했다. 의현은 처음으로 해수가 안쓰럽다고 생각했다. 서 팀장은 원래 저렇게 괴롭히는 맛이 있는 애를 더 좋아했다.

“아침 예배 30분 남은 거 다들 알죠? 시간 지체됐으니, 얼른 준비하고 움직입시다.”

행정팀 한 팀장이 이상한 기류를 애써 잘라 냈다. 의현은 세수하기 위해 집 밖으로 나왔다. 여름의 아침은 눈길 닿는 모든 곳이 푸르렀다.

하지만, 화사하고 생기 넘치는 이곳이 꼭 보이는 것만큼 아름답지 않다는 사실을 의현은 이미 알고 있었다.

돼지 농장 주인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조사단은 단체로 시초교 예배당으로 향했다. 운전석에는 아저씨가, 조수석에는 아픈 새끼 돼지가, 그리고 돼지 놔두는 화물칸에는 사람들이 탔다. 새끼 돼지가 어제부터 너무 아파해서 아저씨는 아침 예배를 끝내고 곧장 읍내에 있는 동물 병원에 갔다 와야 한다고 했다. 돼지보다 못한 취급 받는 건 이제 익숙해서 화도 안 났다.

“수찬 씨가 있어서 저희가 얼마나 든든한지 몰라요.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이 공간에서 수찬 씨는 저희의 빛과 희망!”

“제, 제가 뭘요……. 헤헤…….”

“의족은 안 아파요? 너무 대충 만든 것 같은데.”

“아파요……. 거, 건들면 눈물 나, 나와요.”

“가엾어라……. 하긴 여기서 전문적으로 치료받는 게 쉽진 않겠죠.”

“그, 그래도 아저씨가 이, 이, 이거 만들어 줘서……. 거, 걸을 수는 있어요.”

감시하기 위해 붙였는지는 몰라도 수찬은 우리와 함께했다. 이 덜컹거리는 화물칸이 익숙한 건지 평온해 보이는 표정에 의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수찬 씨는 뭐 때문에 예배에 가는 거예요?”

“저, 저는……. 그냥, 그 신님…….”

수찬은 흘끔 의현을 바라보았다. 트럭 외곽 부분을 손으로 꽉 붙잡고 있던 의현이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대꾸했다.

“아니 왜 나를 보지? 나한테 뭐 하고 싶은 말 있어요?”

“아, 아, 아니요!”

“어머, 왜 이렇게 수찬 씨한테 무안을 줄까? 좀 볼 수도 있지. 의현 학생 얼굴은 뭐 금으로 빚어졌나? 물론 생긴 걸 보면 충분히 그럴 수도 있겠지만.”

의현은 아무 말 없이 눈을 피했다. 괜히 아무 말이나 뱉었다가 덜미 잡히느니 입 다물고 있는 편이 훨씬 나았다.

“그래서 수찬 씨도 신님 만나 뵈러?”

“네, 네…….”

“시초교 믿은 지는 얼마나 됐어요? 여기 와서 믿게 된 거예요?”

“아, 아뇨. 여기 오기 전부터 미, 믿었는데. 그때는 가짜 신이었어요.”

“가짜 신?”

서 팀장이 흥미롭다는 듯 단어 하나를 포획했다. 먹잇감을 입에 문 포식자 같았다. 의현은 이 이야기가 길어지면 수찬의 입에서 제 과거까지 줄줄 새어 나오리라는 사실을 알았다. 의현은 적당히 분위기를 봐 한마디 거들었다.

“사이비겠죠. 밑에 지구로 내려오면 종교랍시고 사이비 전파하는 사람들 얼마나 많은데요. 그죠? 사이비였죠?”

“……네, 네! 맞아요, 사이비!”

“수찬 씨 사이비가 뭔 줄 알아요?”

“모, 몰라요…….”

“모르면서 왜 사이비가 맞대?”

“어, 그…….”

수찬은 쓸데없이 거짓말을 못했다. 의현과 서 팀장 사이에 불꽃이 튀었다.

“서 조교님, 수찬 씨 피곤해 보이는데 말 그만 걸고 좀 쉬면서 가죠.”

“어머, 의현 학생. 너무 걱정하지 마. 내가 또 눈치가 빨라서 상대가 불편해하고 이러는 거 빠르게 캐치하거든. 수찬 씨는 지금 너무 즐거운 상태야. 그죠?”

“아, 그…….”

수찬은 어디에도 끼지 못하고 괜히 눈치만 봤다. 그사이, 차가 한 번 크게 덜컹거렸다. 돼지들 꽥꽥대듯 뒷좌석에 타고 있던 모든 사람이 앓는 소리를 냈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시골 바닥이 원래 이래 험하다니까요-!”

트럭 아저씨는 창문을 열고 손을 대충 휘적거렸다. 엉덩이가 반으로 조각난 것 같았다. 의현은 눈썹을 찡그리며 척추뼈를 문질렀다.

“곧 예배당 도착하니까 좀만 참으셔요-!”

번화가에 있을 줄 알았던 예배당은 의외로 숲 깊은 곳에 있었다. 트럭은 나무 사이를 헤치고 안쪽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어디선가 물이 튀어서 쳐다보니, 트럭의 오른편으로 커다란 폭포가 떨어지고 있었다. 우와! 서 팀장이 오른쪽으로 뛰어가 달라붙었다. 절경이잖아! 너무 멋져!

“허, 허리 아프시죠?”

다들 환호하는 사이, 수찬이 슬쩍 의현에게 다가왔다.

“응, 죽을 것 같아.”

“여, 여기가 원래 이래요. 그런데 예, 예배당은 왜 가시는 거예요?”

“신도들이 나를 제대로 잘 믿나 안 믿나 검사하러 가는 거야.”

“지, 직접 검사도 다니시다니, 서, 성실하셔요!”

“피곤해 죽겠다. 그러니까 수찬이 너 항상 조심해. 내 얘기 안 하게 말이야. 특히 저 여자 앞에서는.”

의현이 눈짓했다. 수찬은 얼른 예배 끝내고 계곡 가서 놀자고 칭얼대는 여자를 흘끔 쳐다보았다. 목소리가 크고, 수상한 표정을 자주 짓고, 항상 웃고 있다. 그다지 비범한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왜요? 뭐 하시는 부, 분인데요?”

“나를 신이라고 의심하고 있는 사람이야. 그러니까 조심해야지.”

“헉! 정말요? 그럼 안 되는데…….”

“구원은 너만 받아야 해. 알지?”

“그럼요! 저만 받을 수 있어요!”

수찬은 다시 한번 의현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그 모습에 의현이라도 양심이 찔렸다. 의현은 제가 올라가면서 어떻게든 수찬 역시 데리고 올라가 제대로 치료받게 할 생각이었다. 지능이 좀 떨어지긴 했지만, 교육만 좀 잘 받으면 직장을 갖는 데에는 큰 문제가 없을 거야. 괜찮은 곳으로 잘만 알아봐 준다면…….

“내가 태우고 왔지만, 거 다들 예배 시간에 시끄럽게 떠들고 그러면 안 되는 거 알죠? 난리 피우면 사람들 불러서 쫓아낼 테니까 그렇게들 알고. 괜히 나 욕보이고 그러지 말아요-.”

“그럼요! 저희 정말 시초님에 대해 알고 싶어서 온 거예요. 그분의 교리가 널리 퍼지면 좋은 일이죠.”

트럭 아저씨는 사람을 떼로 몰고 온 게 마음에 걸리는 듯 연신 경고했다. 서 팀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스스럼없이 아저씨의 손을 붙잡았다.

“만약 저희 쪽 사람들이 여기 분들 번거롭게 하거나 사고 치는 일이 생기면, 제가 그놈 죽이고 감방 들어갈게요! 저 믿으셔도 돼요!”

“허허, 뭐 그럴 것까지야…….”

조사단 사람들이 하나둘씩 트럭 아래로 뛰어내렸다. 우물쭈물하는 수찬을 부축해(사실은 거의 들어) 트럭에서 함께 내리는 동안, 사람들은 줄지어 예배당으로 들어갔다.

“여기야?”

“예, 여기 맞아요. 가, 감사합니다. 그…….”

“의현이라고 불러.”

“제, 제가요?”

“응. 의현 씨라고 하든가, 의현 학생이라고 하든가. 편할 대로 해.”

의현은 툭 말을 뱉고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고작 한 지구 차이였을 뿐인데, 건물 크기는 어마어마하게 차이 났다. 5층짜리 건물은 화려했고 완전히 새것 같았다. 여길 쥐 잡듯 돌아다닐 생각에 의현은 벌써 오금이 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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