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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역의 회귀식 생존법-70화 (70/185)

70화.

주변을 탐색하고 돌아온다던 조사단 사람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냈다. 피곤한 기색이 만연한 얼굴이었다. 서 팀장만 유독 기분이 좋아 보였는데, 딱 보니 상황이 얼추 그려졌다.

“밖에서 뭐 하고 오셨어요?”

“그냥 저녁 먹을 재료 좀 사고, 동네 사람들이랑 수다도 떨고 그랬지. 별거 없었어.”

별거 없었다는 사람치곤 너무 즐거운 표정이었다.

“그런데 방에 가스레인지가 없던데, 요리를 어떻게 하시려고요?”

의현은 이미 조립식 건물 조사를 마친 후였다. 오래전에 사람이 살다 나갔다는 이 집은 가스레인지는커녕 온수도 안 나왔다. 이걸 돈 받고 빌려준다는 사상 자체가 못돼 먹은 거였다.

“……가, 가, 가, 가스! 가스 빌려드릴게요!”

어디선가 헐레벌떡 수찬이 뛰어나왔다. 아는 척하지 말랬더니, 멀리서 여길 지켜본 모양이었다.

“어머, 누구셔?”

“저도 모르는데요.”

“저, 저, 여기에서 이, 일하는데요! 시, 시키는 일 다 합니다!”

의현이 모른 척하자, 수찬은 도리어 소리쳤다. 목청이 하도 커서 귀가 떨어져 나갈 정도였다.

“다리는 어쩌다 그렇게 됐어요? 너무 아프겠다.”

“다, 다리는 덥에 걸려서! 잘랐습니다! 그, 그때 너무 아, 아팠어요!”

“덥이 뭐야?”

“덫이요, 덫.”

아까 틀려 놓고 그새 또 틀린 단어를 의현은 요령 좋게 교정해 주었다. 덫, 덫……. 수찬은 중얼중얼 입에 붙지 않는 단어를 읊조렸다.

“식사 안 하셨으면 저희랑 같이 하실래요? 재료를 많이 사서요.”

“그, 그래도 되, 될까요?”

“저를 왜 보시죠? 본인 마음대로 하세요.”

수찬은 의현의 눈치를 보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제, 제 집에 버너가 있거든요! 그거 가지고 올게요! 수찬은 절룩거리며 어디론가 뛰어갔다.

“몸도 편찮으신 것 같은데, 참 친절한 분이시네?”

“그러게요.”

“그래도 덕분에 요리 걱정은 덜었다! 서 교수가 의현 학생에게 맛있는 걸 만들어 주겠다 이거야!”

별로 기대는 안 됐는데, 종일 먹은 게 없어서 배가 고팠다. 해가 다 저물기 전에 얼른 요리를 시작해야 한다며 조사단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식사 시간은 짧았다. 요리라고 해도 제대로 된 주방이 없어 한계가 있었다. 껍질을 벗긴 채소를 넣어 끓이고 고기를 구우며 서 팀장은 꼭 놀러 온 것 같다고 흥얼댔다.

“과, 과일 드실래요? 수, 수박이 있는데.”

“어우, 저희가 수찬 씨 살림 거덜 내려고 온 게 아닌데, 자꾸 얻어먹기만 해서 어쩌죠?”

“괘, 괜찮아요! 잠깐 계세요!”

고기 몇 점 집어 먹던 수찬은 금세 자리에서 일어나 허둥댔다. 의현은 낮게 한숨을 내쉬며 애써 수찬을 무시했다.

“……수찬 씨 말이야. 아무래도 종교의 피해자겠지?”

서 팀장은 작게 속삭였다.

“옳고 그름을 판별할 줄 알아야 종교에 대한 신념도 생기는 건데, 수찬 씨는 그런 걸 모르고 믿는 것 같아.”

“…….”

“나는 저런 걸 보면 되게 마음이 쓰인다?”

“…….”

“어떤 사람은 자기 이름 하나 글로 쓸 줄 모르고 눈을 감잖아. 이게 얼마나 슬픈 일이야.”

이런 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 없는 의현에게 서 팀장의 말은 새로운 관점이 돼 주었다. 의현은 제가 수찬을 볼 때마다 느끼는 미묘한 불쾌감의 이유를 알았다.

그가 불쌍했기 때문이다.

“모르면 편했을 내용이네요.”

“모르고 살고 싶었어?”

“네.”

“난 자기가 솔직해서 좋더라.”

서 팀장은 작게 웃었다. 이런 내용을 알아 봤자 해결되는 게 없었다. 수찬은 의현에게 자신을 구원해 달라고 애원했지만, 의현이 수찬에게 막대한 돈을 퍼붓더라도 그가 행복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어떻게든 수찬을 살리면 그다음은? 이렇게 구질구질하게 사는 사람이 세상에 얘 하나뿐인가?

“그래도 한번 알고 나면 몰랐던 때로 다시 돌아갈 수 없어.”

낮은 목소리는 의현의 가슴속에 무게를 얹었다.

“수, 수, 수박이 잘 익었어요! 맛있을 거예요!”

“어머, 그러네요? 모두 수박 먹으러 오세요!”

서 팀장이 밥 먹고 있던 다른 조사단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커다란 수박을 들고 걸어오는 수찬의 다리에 걸린 싸구려 목재가 안타깝게 느껴지는 순간, 의현은 제가 함정에 빠졌음을 직감했다.

‘다시 돌아갈 수 없어.’

그래, 아무것도 몰랐던 그때로 다시 돌아갈 수는 없으리라.

* * *

본격적인 활동은 자고 일어나서 시작하기로 했다. 계획은 살벌할 정도로 없었다. 내일 아침부터 시초교 예배를 같이 드리는 게 계획의 전부였다. 그사이에 누군가는 신도 인터뷰를 할 테고, 누군 예배당을 털겠지. 의현은 제가 도대체 뭘 해야 시초교가 숨기고 있는 비밀에 다가갈 수 있을지 골몰했다.

먼지 쌓인 방을 대충 쓸고 닦은 사람들은 잘 곳을 분배했다. 방이 하나밖에 없어, 여자들에게 양보하고 남자들은 거실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자기로 했다.

욕실이 마땅치 않아 농작물에 물을 주는 호스를 뽑아 그걸로 몸에 물을 끼얹었다. 장소는 당연히 바깥이었고. 서 팀장이 시내에서 구했다며 비누를 건네줬다. 의현은 그걸로 세수하고 머리도 감았다. 싸구려 비누 때문에 머리카락이 빠질 것처럼 뻣뻣하게 느껴졌다.

“여름이라 다행이지, 겨울이었으면 진짜 얼어 죽었을 수도 있어요.”

“그러게, 원래 계획대로 됐으면 겨울에 오는 거였는데. 하늘이 우릴 살렸네. 의현 학생, 고마워-.”

“예에…….”

천장엔 곰팡이가 가득했다. 허술하게 만들어져 비가 오면 물이 새는 듯했다. 열어 놓은 창문에서 벌레나 개구리 우는 소리가 들렸다.

“……의현 씨 몸은 괜찮으세요?”

신입 사원 급은 해수와 의현밖에 없었다. 둘은 집의 가장 구석, 창문 앞자리에 붙어 누웠다. 바닥이 딱딱해 몸을 어떻게 틀어도 계속 허리가 배겼다. 베개도 없어 가져온 옷을 머리 뒤에 대고 의현은 모로 누웠다.

“이젠 좀 괜찮아요.”

“다행이네요…….”

침묵이 이어졌다. 의현은 긴장해서 땀에 젖은 손바닥을 옷에 대충 문질러 닦았다.

“아까 재수 없게 군 거 사과할게요.”

“…….”

“전에 갑자기 몰아붙인 것도요.”

의현이 원하는 답을 해수가 무조건 줘야 할 이유는 없었다. 만약 해수가 단서를 쥐고 있다고 해도 그걸 풀고 말고는 순전히 해수의 재량이었으니까.

“괜찮아요. 제가 자처한 부분도 있으니까요…….”

커어어-. 어디선가 코 고는 소리가 들렸다. 이 사람들은 항상 피곤에 절어 있어 베개에 머리만 대면 잠이 쏟아지는 모양이었다.

“동민 씨는 잘 있죠? 궁금했거든요.”

“차동민은…….”

의현은 동민과의 마지막 기억을 떠올렸다. 그답지 않게 단호한 어투로 친구 관계를 깨던 그 모습을, 의현이 잊을 리 없었다.

친구가 아니면 뭔데? 나는 너랑 다른 거 할 생각 없어. 그 자리에서 그렇게 말했어야 했는데. 차마 그러질 못했다.

“차동민은 연수 때랑 똑같아요.”

“연수 재밌었는데, 저는 종종 그때 생각이 나요. 꿈에도 자주 나오고요…….”

“연수 싫어한 거 아니었어요?”

“싫었죠, 처음에는.”

곧바로 말이 이어질 줄 알았는데, 해수는 한참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의현은 빨리 말하라고 해수를 닦달하지 않았다. 그다지 궁금하지 않았던 이유도 있었다. 의현이 궁금한 것은 오직 해수가 한 말의 정체와 해수가 여기 들어온 이유뿐이었으니.

“저는 처음 하는 건 다 무서워요. 근데 세상엔 제가 경험하지 못한 것이 아주 많죠. 그래서 솔직히 저는 다 무서워요. 모든 게…….”

“그런 것치곤 겁 없이 여기 지원했네요.”

“지원한 건 아니에요.”

“…….”

“다 말할 순 없지만, 저는 여기에 오고 싶지 않았어요.”

해수의 목소리는 아주 작았다. 창밖에서 앵앵 우는 모기보다 작은 목소리였다. 의현은 조그마한 해수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해수가 누운 쪽으로 살짝 몸을 붙였다.

“……아무튼, 연수 때 나를 도와줘서 진심으로 고마웠어요. 그때 이겨서 제게 좋은 기억으로 남았던 것 같아요. 팀원들도 전부 좋아했고. 전 그걸 보는 게 행복했거든요.”

해수는 천장을 보고 누운 채로 움직이지 않았다. 아주 소중하게 박제된 인형 같았다. 햇빛 한 번 못 보고 자란 듯 창백한 피부 위로 달빛이 내려앉았다. 피죽도 못 얻어먹고 다녔을 것같이 마른 목은 툭 건들면 부러질 것 같았다. 1지구 출신이라더니, 이렇게 마를 이유가 있나? 해수는 항상 의문스러웠다.

“여기서 얻어 가고 싶은 게 뭐예요?”

의현은 물었다.

“오고 싶지 않았는데, 왔으면 이유가 있을 거 아니에요”

“…….”

“이것도 말 못 해요?”

해수는 입술을 꽉 물었다.

이번엔 화내지 말아야지. 친절하게 대화로 풀어야지. 의현은 계속해서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한 번 더 실패하면, 해수는 의현에게 다신 기회를 주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해수는 감고 있던 눈을 떴다. 옅은 갈색의 눈동자에는 슬픔이 드리워 있었다.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이었다. 의현은 당황해 허둥지둥했다. 또 울렸다. 망했어. 이제 끝인가?

“내가 또 실수했어요? 말하기 싫으면 안 해도 돼요. 강요한 거 아니에요. 나는 원래 말투가…….”

의현이 작은 목소리로 변명하는 걸 가만히 듣던 해수가 손을 들어 의현의 팔을 잡았다. 근육이 모두 빠진 손가락은 꼭 성장을 멈춘 어린애의 것처럼 보였다.

“조용, 다 깨겠어요…….”

의현은 슬쩍 주변을 살폈다. 사실 개구리가 워낙 크게 울어 이런 속삭임 정도는 가볍게 묻히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알겠어요. 조용히 하고 잘게요.”

“…….”

“해수 씨도 잘 자요.”

의현은 모로 누웠던 자세를 바로잡았다. 이 쿰쿰한 돼지 냄새도 계속 맡다 보니 적응이 되는 게 웃겼다. 의현은 눈을 감고 잠들기 위해 애썼다. 피곤은 늘 주변에 도사리고 있었기에, 잠드는 건 아주 쉬웠다.

“……나는.”

어느 순간, 해수가 의현의 귓가에 작게 속삭였다.

“……나는 의현 씨를 감시하러 왔어요.”

문제는 그게 꿈결인지 현실인지 알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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