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화.
김해수의 반응은 매서웠다. 눈이 가늘게 찢어지며 의현을 세게 밀어냈다. 자신이 의심받고 있다는 걸 알아챈 모양이었다.
“이상한 말 하실 거면, 나가 보겠습니다.”
“묻는 말에 대답해 준 게 하나도 없잖아요, 지금.”
“내가 대답을 해 줘야 하는데요?”
“그럴 거면 왜 말했는데!”
언성이 조금 높아졌다. 아마 팀장들이 회의실과 가까운 복도에 있다면 충분히 소리가 들릴 정도였다.
“……내가 사람을 잘못 본 것 같아요.”
“…….”
“권의현 씨, 당신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
“똑같아.”
김해수는 상처받은 얼굴로 문을 열고 복도로 뛰어나갔다. 붙잡겠다고 마음먹으면 다시 제 앞에 데려다 놓는 것도 가능했으나, 의현은 그냥 가만히 있었다.
“하…….”
눌러 놨던 감정이 튀어나와 일을 망쳤다. 우려했던 결과였다.
의현은 머리카락을 흩트리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상황이 너무나 비관적이니 자꾸만 이번엔 실패 없이 정말 잘 해 보겠다는 마음이 앞섰다. 예전처럼 무감정하게 모든 일을 해결하기가 쉽지 않았다.
“……자기, 차였구나?”
서 팀장은 회의실 안으로 고개만 빼꼼 내밀었다.
“제가 도리어 다 망치고 있는 기분이에요.”
“뭘?”
“뭐든.”
의현은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서 더 망가질 수는 없겠다 싶어도, 더 망가져요. 손쓸 수도 없이.”
“…….”
“미치겠어요, 진짜.”
검은색의 껍데기를 깨고 나온 의현은 희었다. 그가 가라앉으면 가라앉을수록 바다 깊은 곳에 사는 괴물들은 기뻐할 것이다.
“자기야.”
“…….”
“난 이상한 걸 좋아해. 그리고 원래 많이 망가져 있어.”
하지만 서 팀장은 권의현이라는 인간을 괴물의 먹잇감으로 내던져 줄 마음이 없었다.
“내가 도와준다고 했지?”
“…….”
“바닥 쳤으면 다시 올라가. 밑에서 놀지 마.”
“…….”
“자기랑 안 어울려.”
서 팀장은 그 어느 때보다 환하게 웃었다.
감히 누가 골랐는데, 여기서 무너져?
그 꼴은 절대 못 봐.
* * *
깔끔하게 정리된 문서는 행정팀 팀장을 통해 메일로 날아왔다. 17지구 시초교 탐사 계획서에는 팀원 개개인의 역할과 전공, 나이 등이 제법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상황은 흘러가는 대로 두더라도 설정은 제법 촘촘히 짜는 모양이라고, 의현은 생각했다.
권의현 (22살)
―H 대학교 3학년.
―사회학과 장학생으로 대학원 지망 중.
―학구열이 뛰어나 논문 대회에서 여러 번 수상한 경력.
―조교와 교수의 눈에 들어 이번 프로젝트 참가.
―사회성 떨어지고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은둔형 외톨이 컨셉.
“뭔 시나리오를 써 놨네…….”
설정만으로도 A4 한 장이 꽉 찼다. 바빠 죽겠는데 이런 걸 쓸 시간은 있었나 보다.
점심시간, 영양을 보충해야 한다며 팀원들이 사 온 보양식을 씹으며 의현은 제 설정을 읽었다. 워낙 탄탄해서, 이쯤 되니 다른 사람들의 것도 궁금해질 정도였다.
“커피 마실 사람?”
“아, 제가 사 오겠습니다.”
의현은 카드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차피 밥도 거의 다 먹은 차였다.
“의현 씨 바쁜 거 아니에요?”
“바쁘긴 한데, 괜찮습니다. 전에 며칠 쉰 것도 그렇고, 좀 죄송해서요.”
“그거 뭐 의현 씨가 쉬고 싶어서 쉰 것도 아니었는데…….”
“그래도요.”
회사에서 퇴근 못 하고 내내 구부리고 잤을 팀원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즈음, 의현은 아무것도 모르고 호텔방 안에서 TV 드라마나 보고 있었으니까.
“비싼 거 드셔도 됩니다. 메뉴 말씀해 주시면 사 올게요.”
“잘생겼는데 서글서글하기까지……. 현장 1팀의 빛과 희망! 권의현! 제발 현장 1팀에서 영원히 함께해!”
“영원히 함께하자는 건 저주 같은데…….”
팀원들은 환호하며 외쳤다. 의현은 어색하게 웃으며 팀원들이 부르는 메뉴를 받아 적었다. 이런 식으로 팀원들과 관계를 튼 것도 사실 이번 회차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는데, 생각보다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다양한 메뉴가 적힌 종이를 들고 1층 카페에 내려가는 동안 마주친 직원들은 귀가 따갑도록 의현을 보며 수군댔다. 잊히기엔 아직 시간이 좀 부족했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어차피 의현은 남의 눈을 그다지 신경 쓰는 타입이 아니었다. 욕하든 말든 무슨 상관? 지들이 그때 그 상황 되어 보라지, 같은 선택 안 하고 배기나.
힐끔거리는 시선을 무시하며 카페에 가 종이에 적힌 메뉴를 읊었다. 점심시간이라 그런지 카페에는 사람이 바글거렸다.
“메뉴 준비되면 불러 드릴게요.”
직원은 친절하게 웃었다. 의현은 창가 쪽 빈자리에 앉아 바깥을 쳐다보았다. 헌터부 본사 건물 바깥은 공원이 조성되어 있었는데, 상당히 넓고 관리가 잘되어 있어 평소 가족 단위의 외출이 잦았다. 오늘도 그랬다. 날씨가 좋으니, 떼로 몰려나와 돗자리를 펴고 앉아 한가롭게 피크닉이나 즐기고 있었다.
저런 사람들은 뭐, 선택받은 건가? 어떻게 저렇게 평범하게 살 수가 있는 거지? 머릿속에 자꾸만 의문이 들어찼다.
“권의현 님, 주문하신 메뉴 나왔습니다!”
픽업대에서 직원이 의현의 이름을 불렀다. 목청이 커서 멀리까지 아주 잘 들렸다. 사람들의 시선이 다시금 한데 모이는 것을 느끼며, 의현은 의자에서 일어섰다.
“……의현아!”
주문한 음료를 픽업하는데, 누군가가 옆에서 손을 잡아챘다. 그 탓에, 음료 캐리어가 바닥에 떨어져 음료가 완전히 다 쏟아졌다.
“…….”
의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표정을 굳혔다. 아주 개 같은 상황이었다. 이 바쁜 시간에 이걸 치워야 하는 직원을 비롯해 1층 로비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시선이 온통 여기로 집중됐다.
“헉, 미안해! 음료 들고 있는 줄 몰랐어!”
동민은 손에 붕대를 감은 채 허우적댔다. 꽤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었다.
“내가 치울게! 미안해…….”
“비켜. 손 그렇게 돼서 뭘 치운다는 거야.”
바닥에 주저앉아 궁상떠는 동민을 밀어내고 의현은 떨어진 컵을 먼저 주웠다.
“저 죄송한데, 바닥에 음료를 쏟아서요. 치워 주실 수 있나요?”
“네, 잠시만요-.”
직원은 생글생글 웃고 있었지만, 열받았을 게 분명했다. 의현은 한숨을 푹 내쉬며 카운터로 가 쏟은 음료를 다시 샀다. 제 것이었으면 그냥 안 마시면 됐는데, 팀원의 것이었기에 안 사고 지나갈 수도 없었다.
“오랜만이다. 그……. 아, 너 몸은 좀 괜찮아?”
“그건 내가 물어봐야 할 말 같은데.”
“응?”
“너 팔은 어떻게 된 거야?”
의현은 다친 데 없이 멀쩡했다. 심지어 강제로 쉬는 동안에도 잘 먹고 잘살았다. 하지만 동민은 부쩍 수척해 보였다. 약간 마른 듯한 모습에 의현은 그날 포탈 속에서의 동민을 떠올렸다.
‘의현아, 왜 그래…….’
신념이 강제로 어그러지고, 동민의 얼굴에 절망이 드리워지는 순간을 의현은 명확히 기억했다.
‘너 나한테 왜 그래…….’
‘…….’
‘내가 너 못 버리는 거, 너도 알잖아…….’
의현도 알고 있었다. 동민이 자신을 버리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던진 패였음에도 불구하고 동민은 끝내 의현을 저버리지 못했다. 모두의 동의하에 김철춘은 그 자리에서 바로 사살됐다.
“손가락 다 쓸 수 있는데, 그냥 붕대만 대충 감아 놓은 거야. 이상 없대. 움직이는 거 볼래?”
동민은 붕대 사이로 손가락을 꿈틀거렸다. 확실히 부상이 심각해 보이지는 않았다.
“다행이네.”
“안 그래도 너한테 연락 한 번 하려고 했는데, 바쁠 것 같아서 못 했어. 좀 어때……?”
동민은 어색한 얼굴로 웃었다. 뭐가 좀 어떠냐는 건지 확실히 알 수 없었지만, 의현의 삶은 대체로 비슷했다. 바쁘고 정신없고,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 않았으며 지루하고 불안한…….
“……똑같아.”
“재이는?”
“아직 안 돌아왔어.”
“아직도? 진짜 신고해야 하는 거 아니야?”
“안 그래도 생각이 많아. 그 일 때문에.”
단순하게 ‘사람 하나가 사라졌다’ 하고 넘길 문제가 아니었기에 의현은 신중해야 했다. 솔직히 감당하기 두려운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권중섭 앞에서 정재이가 사라졌고, 심지어는 사라진 지 꽤 됐다는 사실을 태연하게 실토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권의현 님, 주문하신 메뉴 나왔습니다.”
생각이 깊어진 사이, 쏟았던 음료가 다시 나왔다. 의현은 음료 네 잔짜리 캐리어를 양손에 쥐고 동민에게 눈으로 인사했다.
“나, 간다. 다음에 연락할게.”
“내가 하나 들어 줄게!”
“됐어, 무슨…….”
의현은 동민의 선의를 받으려 하지 않았지만, 애석하게도 엘리베이터 버튼 누를 손이 없었다. 동민은 얼른 다가와 의현의 손에서 음료 캐리어 하나를 가져갔다.
“우리 사이에 이거 하나 못 들어 주냐?”
“차동민, 너는 아무렇지도 않아?”
“뭐가?”
알면서도 묻는 얼굴이 생소했다.
“그날 내가 너 협박한 거잖아.”
“…….”
“네가 하기 싫었던 선택, 내가 하게 만든 거잖아. 강제로.”
“…….”
“근데 왜 화를 안 내?”
동민은 ‘소중한’ 친구였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선 쉽게 손을 놓을 수 있는’ 소중한 친구였다. 차동민이 없다고 해서 의현의 삶이 부정적으로 바뀌는 것은 아니었으며, 반대로 차동민이 있다고 의현의 삶이 긍정적으로 바뀌는 것도 아니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현실이 그랬다.
“…….”
“…….”
동민이 아무 대답도 하지 않는 사이, 둘을 태운 엘리베이터는 느리게 위로 올라갔다. 의현은 손끝에 느껴지는 캐리어의 무게를 느끼며 느리게 눈을 깜빡였다.
“……한 번 안아 봐도 돼?”
“뭐?”
“나 지금 너 안고 싶은데.”
뭘 잘못 들었다고 생각했다. 대화의 맥락도 맞지 않았거니와 갑자기 동민이 이런 말을 할 이유도 없었다.
“……내가 뭘 잘못 들었나?”
의현은 황당하단 표정으로 동민을 쳐다보았다. 붕대 안에 감긴 동민의 손가락이 작게 움찔했다.
“의현아, 나 아직 너 좋아해.”
동민의 고백은 순수했고, 동시에 아주 썼다.
“그래서 너한테 화 못 냈어. 화낼 수가 없어서.”
의현은 음료를 두 번 쏟지 않기 위해 손끝에 바짝 힘을 주었다.
“내가 고백하면 우리 친구 못 한다고 했지?”
동민은 낮게 읊조렸다.
“친구 하지 마. 나도 안 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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