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화.
허가가 떨어졌으나, 의현은 정확히 이 시초교 조사가 어디로 어떻게 가서 도대체 뭘 한다는 건지 아무것도 몰랐다. 서 팀장에게 물었더니 본인도 모른다고 했다. 허가가 이렇게 빨리 떨어질 줄 아무도 예상 못 했다는 말에 의현은 혀를 내둘렀다. 그래도 이렇게 큰 조직인데 제대로 된 체계도 없이 어영부영 굴러간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애초에 전부 거짓말로 올린 보고서인데, 뭐 어쩌겠어.”
“그래도 새벽 두 시에 회의는 좀 아닌 것 같아요…….”
“며칠 전에 포탈 난리 나서 지원팀 요새 야근하잖아. 나도 어제 자정 넘어서 퇴근했어.”
오랜만에 보는 얼굴들이었다. 일전에 샐러드 씹으며 회의했을 땐 분위기가 좀 생기 있었던 것 같은데, 오늘은 다들 살이 쭉 빠지고 다크서클이 내려와 상태가 영 안 좋아 보였다.
“자기들, 제발 얼른 끝내고 가자. 나 퇴근 못 한 지 일주일 넘었어.”
소회의실에 모인 사람들은 여덟 명쯤 됐다. 의현은 서 팀장이 일전에 건네준 명단을 확인하며, 사람들을 하나하나 살폈다.
“지구 자체를 바꾸는 건 보고서 올린 거랑 너무 달라서 안 될 것 같아요. 상부에 올렸던 대로 17지구 유지하시죠. 더 아래로 내려가면 말도 안 통할 수 있어요. 시간도 너무 오래 걸리고.”
행정팀 팀장이 입을 열었다. 그 옆에 잔뜩 움츠러들어 있는 직원은 김해수였다. 회의 전, 해수를 만나 뭐라도 얘기를 해 보고 싶었으나 애석하게도 행정팀이 지각하는 바람에 서로를 마주할 시간이 없었다.
“그래. 그럼 지구는 17지구 유지하자. 거기에 대형 예배당이 있기도 하고 말이야. 뭐든 큰 게 좋지.”
“그나저나 시간이 넉넉할지 모르겠네요. 며칠 전 포탈 사태도 있고, 무슨 일 터지면 금방 올라오라고 무전 떨어질 텐데, 그거 알고 일부러 지금 보내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해요.”
“허가했다가 금방 다시 올라오게 하려고?”
“네…….”
헌터부에 소속돼 일하고 있었지만, 다들 딱히 위쪽을 맹신하는 건 아닌 듯했다. 이런 부분은 좀 의외였다. 의현은 본인만 헌터부를 엿같이 생각하는 줄 알았는데, 가만히 얘길 듣고 있자니 대부분이 그런 것 같아서.
“그래도 하기로 한 거니까 내려가야지 뭐. 똥개 훈련이라고 해도 여기서 뼈 갈리면서 일하는 것보다야 낫지 않겠어? 뭐하면 그냥 휴가라고 생각해.”
“그건 그렇죠…….”
“그리고 우리 팀엔 의현 씨 있어서 괜찮아. 사고 쳐서 당분간 상부에서 안 부를 거거든. 지금 철저히 잊히는 중이니까 말이야!”
“서 팀장님.”
“괜찮아. 어차피 그 일 여기 있는 사람들은 다 알아-.”
낮게 제 이름을 부르는 의현의 목소리에 서 팀장은 눈가를 찡긋거렸다. 다들 한 자리 차지한 분들인데, 내부 사정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를 리가 없다는 뜻이었다. 그게 문제가 아니라, 의현은 가만히 있는 제 이름을 굳이 회의에서 언급해서 마음에 걸린 거였는데.
“그럼 17지구 대형 예배당 조사하는 거로 확정하고, 이제 컨셉 잡자.”
“컨셉이요?”
“그럼 헌터부에서 조사 나왔다고 해? 그 사람들 그럼 협조 안 해. 기본적으로 시초교 사람들은 헌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고. 뭐……. 물론 예외도 있지만.”
서 팀장은 그렇게 말하며 슬쩍 의현을 쳐다보았다. 지난번에 시초교 신자라고 고백했던 장면이 꽤 감명 깊은 모양이었다.
“인턴십 프로그램 참여하러 온 대학생은 어때요?”
“석 팀장, 우리 나이를 생각해. 아무도 안 믿어…….”
“그럼 대학생들 데리고 답사 나온 교수.”
“음…….”
이런 걸 진심으로 고민하고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아무리 대충 되는 대로 흘러가는 조사라고 해도 팀장들이 움직이는 건데, 이렇게까지 계획이 없어도 되는 거야? 당연히 말도 안 되는…….
“좋네! 그 컨셉으로 가자!”
“진심이세요?”
“섬세한 계획은 어차피 도움이 안 돼. 생각해 봐. 우리가 하는 일은 계획대로 술술 흘러가지 않잖아? 큰 틀만 정해 두고 그 안에서 자유롭게 움직이는 편이 훨씬 좋아.”
오래 일한 사람들은 다 이런 건지, 다들 서 팀장의 말에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이거 이상하다고 느끼는 거 나 혼자예요?”
의현이 목소리를 높였다. 이번 일은 의현에게 정말 중요했다. 의뭉스러운 김태원과 서 팀장을 한꺼번에 조사할 수 있는 아주 값진 기회였으니. 그런 둘도 없는 기회를 이렇게 어영부영 말아먹을 수는 없었다.
“그럼 세상에서 제일 공평한 방법으로 결정하자.”
“그게 뭐죠?”
“다수결의 원칙이지. 자, 대학생들 데리고 답사 나온 교수 컨셉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손을 들어 주세요-.”
의현은 번쩍 손을 들었다. 다들 우르르 반대할 줄 알았으나, 손을 치켜든 건 의현 하나였다.
“봤지? 다들 동의한대.”
“허…….”
할 말이 없었다.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 망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 팀장이 회의를 주도해 단체로 세뇌당한 건 아닐까 하는 의심마저 들었다.
“자 그럼, 미안하지만 노안은 교수로 빠져 줘야겠어. 과는 두어 개 정도 통합했다고 하자. 어떻게 할까?”
“사회학과랑 통계학과 정도가 어떨까요? 원래 사회랑 통계라는 단어 들어가면 대충 그럴듯하거든요.”
“어머, 멋져-. 좋은 생각이야!”
이 정신머리 없는 회의에서 의현이 낼 수 있는 의견은 없었다. 모든 것은 깨진 물컵에 물을 채우는 것처럼 말도 안 되게 흘러갔다.
회의에 들어오기 전까지 모든 게 불명확했는데, 단 삼십 분 만에 모든 의문이 해결됐다. 하다못해, 컨셉에 이용될 교수와 대학생의 성향과 성적까지도.
“자! 그럼 회의는 여기까지 하고, 다음 주에 만나자고!”
“회의가 잘 풀려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마음을 얼마나 졸였는지…….”
“퇴근해도 되는 거죠? 오늘도 세 시간을 못 자겠네요. 이놈의 회사.”
저마다 한마디씩 뱉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어이없는 상황에 넋을 놓고 있던 의현은 해수와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김해수 씨.”
행정팀 팀장의 뒤를 졸졸 따르던 해수는 제 이름이 불려 놀랐다는 듯 의현을 바라보았다. 의현은 얼른 해수의 앞에 가 섰다.
“잠깐 얘기 좀 하면 안 돼요?”
“아…….”
해수는 흘끔 팀장 눈치를 봤다. 깐깐하게 생긴 행정팀 팀장은 피곤해 죽겠다는 얼굴로 날카롭게 대꾸했다.
“저기, 지금이 새벽 세 시인 건 알죠?”
자기 팀 직원 힘들게 한다고 눈치 주는 건가 싶었다. 그게 아니고서야 의현이 부른 사람은 해수인데, 팀장이 막아서야 할 이유가 없었으니까.
“잠깐이면 되는데요.”
“…….”
“오 분 안에 끝내겠습니다.”
모두 빠져나간 회의실은 조용했다. 남아 있는 사람은 총 넷, 행정팀 팀장과 김해수 그리고 서 팀장과 권의현.
“어우, 뭐야-. 한 팀장이 직원 데려다주기로 했어? 아님, 둘이 만나고 뭐 그래? 꼭 같이 움직여야 해? 우리 팀 권의현 씨가 오 분만 얘기하겠다는데 그것도 안 돼?”
서 팀장은 나사 빠진 사람처럼 히죽거리며 다가와 행정팀 한 팀장의 앞을 가로막았다. 이 사람 제정신 아닌 건 익히 알고 있었지만, 역시 적으로 둘 때나 위험하지 같은 편이 되니 든든하기 짝이 없었다.
“……김해수 씨, 밖에서 기다릴 테니까 얘기 끝나면 나오세요.”
“어머, 친절해라. 한 팀장 심심하면 나랑 얘기하는 건 어때? 나 진짜 재밌는 얘기 알아. 자길 웃게 해 줄 수 있어-.”
서 팀장은 자연스럽게 한 팀장을 데리고 복도로 나갔다.
회의실 문이 닫히고 김해수와 권의현 둘이 덜렁 회의실에 남았다. 에어컨 돌아가는 소음 외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적막했다.
“오, 오랜만이네요…….”
말 한마디 못하던 예전과는 다르게, 해수는 바들바들 떨면서도 의현에게 먼저 말을 붙여왔다.
“그, 의현 씨 최근에 안 좋은 일……. 안 좋은 일에 연루됐다는 얘긴 들었어요. 그 일은 정말로 유감이에요…….”
의현은 해수를 내려다보았다. 여전히 작고 마른 체구에, 머리는 길게 늘어진 채였다. 얼굴엔 못 보던 상처가 있었다. 포탈 때문에 며칠 전 난리가 났었다고 하더니, 행정팀 직원까지 차출돼 외근을 뛴 모양이라고 의현은 생각했다.
“전에 연수 끝나고 나한테 했던 말 기억해요?”
의현의 말에, 해수는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주변을 살폈다. 아무도 없는데 혼자 떨고, 혼자 눈치 보고. 이런 방어적인 태도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일관됐다.
“기억 안 나요? 나한테, 조작이 어디서든 가능하니까 상황을 너무 믿지 말라고 했잖아요.”
“기, 기억하고 있어요…….”
“내가 곰곰이 생각을 해 봤거든요.”
해수는 손을 앞으로 모으고 손톱을 계속 뜯었다. 원래 딱지가 많은 손끝에서 다시금 피가 흘러나왔다.
“나한테 그렇게 말했다는 건, 지금 내 상황이 뭐 조작됐다는 거 같은데, 알 수가 없어서 말이죠.”
“…….”
“도대체 뭘까요?”
의현은 해수에게 가까이 다가섰다. 해수는 필사적으로 뒤로 물러났다.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뭐 무섭게 굴었어요? 왜 겁을 먹는지 모르겠는데…….”
의현은 제가 꽤 친절하게 말했다고 생각했다. 솔직히 겁먹을 만한 구석은 조금도 없지 않나?
“그때 그 얘긴 내가 실수한 거예요.”
“실수?”
“그냥 한 말이에요. 조작이 어디서든 일어나는 건 맞잖아요. 나는…….”
“김해수 씨, 떨지 말고 말해요. 나 아무것도 안 하잖아요.”
의현은 양손을 들고 자신이 결백한 사람이라는 걸 강조했다.
“그, 그때 했던 말은 잊어 주셨으면 좋겠어요…….”
김해수는 덜덜 떨었다. 이런 분위기라면 김해수를 거꾸로 뒤집어 흔든다고 해도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얻지 못할 것이다.
“그럼 하나만 더 물어볼게요. 해수 씨 부모님은 직업이 뭐예요?”
“네?”
“이런 거 묻는 거 실례니까 공평하게 저도 말할게요. 제 아버지는 권중섭이고요. 헌터부 장관입니다.”
“그걸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제가 생각보다 사교계에 관심이 많아서요. 어디서 해수 씨 이름을 들어 본 것 같은데. 언제 나랑 만난 적 있지 않아요?”
사교계는 무슨, 밖도 잘 안 나가는 의현은 입에 침도 안 바르고 거짓말을 했다.
“만난 적 없어요. 자꾸 이런 이상한 얘기 하실 거면 저는…….”
“그럼, 이상하잖아요.”
복도로 나가려고 몸을 돌린 해수를 쳐다보며 의현은 고개를 기울였다.
“여기가, 해수 씨가 낄 곳이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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