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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역의 회귀식 생존법-59화 (59/185)

59화.

불평할 줄 알았는데, 예상외로 김철춘은 순조롭게 1구역에 합류했다. 지원팀 직원은 현장팀 배치 목록을 보고, 1구역에 배치된 헌터가 김철춘과 친한 동기라는 사실을 알아챘다. 정말 목적 따라서 행동하는 사람이구나. 비아냥거리는 마음이 솟았지만, 어쨌든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문제만 일어나지 않으면 될 일이다.

―2구역, 1구역과 합류 후 생존자를 전달받았습니다. 바깥으로 이송하겠습니다.

“네. 확인했습니다.”

밖에서 쉬다가 다시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은 2구역 김철춘과 내내 포탈 안에서 땀 흘리며 일하던 1구역 헌터. 상황만 놓고 본다면 1구역 헌터가 생존자를 데리고 바깥으로 나와야 했다.

―이송자는 2구역 김철춘입니다.

아, 제발. 그만 좀…….

방금 들어가 놓고 또 나올 생각을 한다는 게 어이가 없었다. 지원팀 직원이 뭐라고 한소리 하려는 걸 선배가 막았다.

‘그냥, 둬. 원래 저래.’

입을 벙긋거리며 말했지만, 정확히 보였다. 제가 포탈에 들어가 있는 것도 아닌데 열이 받았다. 직원은 테이블을 주먹으로 한 번 쾅 내리치고 업무적으로 말했다.

“확인했습니다. 빠른 이송 부탁드립니다.”

다쳤다는 사람이 없으니 나름 선방한 것이라 동민은 생각했다. 무전기를 통한 내용은 대개 공유되고 있었기에, 다른 구역 사람들의 상황도 파악 가능했다. 동민은 제게 맡겨진 구역을 모두 확인 후 옆으로 이동 중이었다.

포탈 주제에 사람이 사는 곳을 흉내라도 내듯 나무가 무성한 게 웃겼다. 이 포탈의 괴물은 사실 동민과 상성이 맞지 않았다. 동민의 능력은 신체 강화였는데, 괴물이 너무 뜨거워 직접 때릴 수가 없던 것이다. 주변에 있는 나무나 미리 준비해 온 무기를 던져 괴물을 죽이긴 했으나, 이것도 언제까지 가능할지 알 수 없었다.

너무 더워 입고 있던 목 폴라를 벗고 싶었지만, 특수 소재로 만들어진 옷이라 신체 보호를 위해선 이걸 꼭 착용해야 했다.

“…….”

동민이 3구역에서 김철춘이 있는 2구역으로 이동하는 사이, 바닥이 크게 한 번 울렸다. 지진이라도 난 것 같았다. 동민은 흔들거리는 나무를 붙잡고 흔들림이 멎기를 기다렸다.

―알 수 없는 지진이 발생했습니다. 현재 확인 중.

지원팀은 빠르게 소식을 알려 주었다. 동민은 안도하고 걸음을 옮겼다. 하늘 역시 불에 타고 있는 듯 빨갛기만 해 눈이 아팠다. 이 짓을 며칠 더 해야 한다는 사실이 문득 힘들게 느껴졌다. 그래도 동민은 해야 했다.

파삭-.

가시가 툭툭 튀어나온 덤불 속에서 무언가가 움직였다. 동민은 인상을 찌푸리며 움직임이 보인 쪽으로 다가갔다. 덤불은 계속해서 흠칫흠칫 움직이다가.

“살려 줘!”

그 속에서 김철춘을 뱉어 냈다.

“……뭐죠?”

소문으로 김철춘의 성격을 이미 알고 있던 동민은 제법 싸늘하게 대꾸했다. 힘들고 지쳐 평소처럼 친절한 반응이 나오지 않았다.

“새, 생존자가 아니야! 그, 그건 인두겁을 쓴 괴물이었어-!”

“그게 무슨…….”

김철춘은 겁에 질려 보였다. 자세히 보니 팔 하나가 잘려 피가 철철 흐르고 있었다. 아까 분명 생존자를 이송한다고 하지 않았나? 갑자기 어떻게 된 거지? 더위에 잡아먹힌 머리는 느리게 돌아갔다.

“3구역, 2구역으로 이송 중 김철춘 헌터와 합류했습니다. 현재 김철춘 헌터 오른손 관절이 완전히 절단된 상태입니다. 치료계 헌터의 합류가 시급합니다.”

―자, 잠시만요, 절단이요?

“네. 출혈이 심각한 상황입니다. 그리고 김철춘 헌터가 이송하겠다던 생존자는 현재 보이지 않습니다.”

―갑자기 이게 무슨 상황입니까?

“상황 파악을 위해 김철춘 헌터와 대화 후 다시 무전 드리겠습니다.”

눈이 반쯤 돌아간 김철춘은 자길 혼자 두지 말라며 동민의 다리를 붙잡고 매달렸다. 참혹한 모습을 보니, 동민의 마음에 다시금 동정이 싹텄다. 그래, 아픈 사람인데 매몰차게 굴면 안 되지…….

“김철춘 헌터님,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말씀을 해 주셔야 합니다.”

“괴, 괴물이 기생해 있어……! 그건 사람이 아니야. 내, 내 팔을 뜯어먹고 나까지 삼키려는 걸 내가 도망쳐서…….”

횡설수설 말하고 있었지만, 요지는 명확했다. 김철춘이 이송하던 생존자에게 괴물이 기생하고 있었고, 거기에 습격을 당했다. 상황 파악을 끝낸 동민은 다시금 무전기를 켰다.

“3구역, 상황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동민이 지원팀과 무전을 나누는 동안에도 김철춘은 불안한 듯 주변을 둘러보았다. 부상자 한 명과 포탈과 상성이 맞지 않는 헌터 한 명. 어쩐지 불안한 조합이었다.

“일단 간단하게 지혈부터 하고 움직이죠. 치료계 헌터가 이쪽으로 오는 데 시간이 좀 걸릴 겁니다.”

동민은 제 바짓단을 쭉 찢어 김철춘의 어깨를 단단히 묶었다. 김철춘은 다 죽어 가는 목소리로 끙끙 앓았다. 큰 충격을 받은 것처럼 침을 뚝뚝 흘리는 그의 모습을 보며, 동민은 모순적이게도 마음이 차가워졌다.

“괴물은 어디로 사라졌습니까?”

“몰라! 지금 그딴 게 문제야! 내가 죽게 생겼다고!”

“다른 사람들도 같은 상황이잖아요. 위치를 알려야 괴물을 생포하든 피하든 할 거 아니에요.”

“그걸 어떻게 생포한다는 거야? 불가능한 일이라고!”

“하……. 김철춘 헌터, 제발 제가 당신을 돕는 걸 후회하게 하지 마세요.”

“말을 왜 그렇게 싸가지 없이해! 지금 나를 버리겠다고 말하는 거야?”

“그런 말이 아니잖습니까.”

포탈 출구가 있는 곳으로 부축해 주며 이동하는 내내 말싸움이 일었다. 친절하게 굴고 싶었지만, 김철춘은 사람이 아니라 꼭 개처럼 굴었다. 동민의 인내심도 점점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지원팀입니다. 상부 회의 결과 김철춘 헌터를 공격한 괴물을 모체로 인식 중. 타 구역 수색 중인 헌터 분들은 모두 모체 제거 작업에 참여해 주세요.

“그걸 잡으려고?! 떼죽음 당할 수도 있다니까!”

무전을 확인하고 김철춘은 발을 구르며 소리쳤다. 그의 어깨를 붙잡고 있던 동민에게도 그 충격이 전해졌다.

“모체를 잡아야 포탈을 닫을 거 아닙니까? 그럼 그걸 가만히 둬요?”

“뭐야? 새파랗게 어린놈이 따박따박 말대꾸나 하고! 그렇게 잘났으면 네가 혼자 잡아! 나는 죽어도 싫으니까!”

포탈마다 모체가 하나씩 있기 마련이었다. 모든 괴물은 모체로부터 영양분을 공급받고 있어, 모체가 죽으면 곧 괴물들이 죽고 포탈이 닫힌다. 특수 능력 학교에서 배우는 아주 기본적인 상식이었다.

“나는 여기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고, 치료계 헌터를 기다릴 거다! 그리고 너는 부상자를 책임져야 할 의무가 있으니 여기서 자리를 지키다가, 내가 이송되는 걸 확인하고 나서 움직여야 할 거야!”

언제는 차동민이 자길 구하러 왔다는 듯 달라붙던 김철춘은, 그가 모체 제거 작업에 참여할 마음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자마자 무섭도록 돌변했다.

꺼지랬다가 말랬다가. 도대체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동민이 한숨을 내쉬고 김철춘을 진정시키려고 노력하는 사이 지원팀에서 다시금 무전이 왔다.

―현재 현장팀 헌터 분들 모두 3구역으로 이동 중입니다. 차동민 헌터는 부상자 보호를 최우선으로 해 주세요.

“봐! 너는 어차피 나를 지키게 되어 있다니까!”

김철춘은 비열하게 히죽거렸다. 그 광기에 젖은 눈을 마주하는 순간, 동민은 자신에게 이상한 놈들 자주 꼬이는 것 같다던 의현의 말을 기억해 냈다. 그러고 보니 정말 그런 것 같기도 했다.

온도가 뜨겁고 환경이 습해 김철춘의 상처 부위가 빠르게 곪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김철춘은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드러누웠다. 상황이 정말 좋지 않았다. 오도 가도 못 하고 자리를 지키는 동민의 근처로 피 냄새를 맡은 괴물들이 달려들었다.

“상황이 너무 안 좋은데…….”

신체 강화로 주먹을 단단하게 만들어 내리쳐도 손에 입는 화상은 피할 수 없었다. 돌기가 툭툭 튀어나온 괴물들은 김철춘의 몸을 집어삼키기 위해 계속해서 이빨을 드러냈다.

도대체 언제 오는 거야…….

손가락 살이 너덜거렸다. 차라리 혼자였으면 이동이든 뭐든 쉬울 텐데, 부상자가 있어 뭐든 쉽지 않았다. 동민은 이를 꽉 깨물고 괴물들을 때려눕혔다.

가끔 이런 순간마다 제 능력이 가진 한계를 절실히 깨닫곤 했다. S급이나 A급 능력자들과 비교하면 내가 가진 힘이 얼마나 작고 보잘것없는지.

하지만 그래도 동민은 포기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 * *

의현이 시체를 챙겨 3구역으로 넘어갔을 땐 이미 시간이 많이 흐른 후였다. 출혈이 너무 심해 기절한 김철춘은 그 자리에서 바로 응급 처치를 받았다고 했다. 차동민 얘기는 따로 없었다. 이 포탈 안쪽이 이렇게 돼 먹은 줄 알았다면 행정팀에서도 상성이 맞지 않는 동민을 배치하진 않았을 텐데, 애석하게도 포탈 조사가 미흡했다. 포탈 안에 들어갔다 나오는 게 자유로운 사람은 능력이 탄탄한 A급 이상이나 가능했는데, 애초에 그 정도 되는 인력은 너무 바빠 고작 포탈 조사나 하고 다닐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머리를 흔들자 땀이 후드득 떨어졌다. 의현은 헤어밴드를 벗어 물기를 짜냈다. 흰 피부는 벌겋게 익어 무슨 삶은 고기가 된 기분이었다.

분명히 이 근처에 있다는 무전을 받았는데…….

의현은 주변을 돌아보았다. 주변은 어떤 소음도 없이 조용했다. 오히려 이런 정적은 사람의 신경을 깨우기 딱 좋았다. 아무 소리가 없다니, 수상하잖아.

“…….”

의현은 낮게 숨을 내쉬었다.

그 순간, 뒤에서 무언가가 빠르게 날아왔다. 의현은 고개를 틀어 날아온 것을 피했다. 괴물인가? 지원팀의 무전을 듣자 하니, 이번 괴물은 죽은 인간에 기생한다고 하던데.

의현이 자세를 낮추며 뒤를 돌았다. 한쪽 팔이 없는 남자가 눈이 벌게진 채 의현을 향해 이를 드러내고 있었다. 가만 보니, 익숙한 얼굴이었다.

“김철춘 헌터.”

“…….”

“지금 저에게 한 행위, 헌터부 법령 3조 위반 사항인 거 아시죠?”

의현은 딱딱한 목소리로 읊조렸다. 김철춘은 사람이 아닌 것처럼 으르렁댔다. 가만 보니 잘린 팔 주변으로 오돌토돌한 돌기 같은 게 툭툭 튀어나와 있었다. 그걸 가만히 쳐다보다가.

“……아.”

의현은 짧게 한탄했다.

“세 번 말하겠습니다. 김철춘 헌터.”

“…….”

“내 말 알아듣겠으면 왼쪽 손 올리세요.”

말을 알아듣긴커녕 김철춘은 침을 뚝뚝 흘리며 의현을 향해 무자비하게 달려들었다.

“김철춘 헌터, 왼쪽 손 올리세요.”

치료계 헌터가 김철춘을 데려가 응급 치료를 끝냈다고 했는데, 도대체 왜 여기서 이러고 있는 건지. 치료계 헌터는 그럼 어떻게 된 건지. 차동민은 뭘 하고 있는지. 지원팀은 이 상황을 알고 있는지. 묻고 싶은 말이 참 많았다.

“마지막입니다. 김철춘 헌터, 왼쪽 손 올려요.”

의현은 다시 헤어밴드로 머리칼을 올리며 차게 식은 눈으로 김철춘을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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