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화.
“오늘 오전 회의 10시 정각에 시작해요. 참, 그 전에 의현 씨는 팀장실 좀 들르고.”
출근 카드를 찍고 자리에 앉기 무섭게 들리는 목소리에 의현이 고개를 돌렸다. 테이크아웃 커피를 손에 쥔 서 팀장이 변태 같은 얼굴로 히죽 웃고 있었다.
“아직 출근 시간 안 됐는데요.”
“미리 말해 주는 거지. 상사로서 신입 사원에게 미리 업무를 좀 알려 줄 수 있는 거 아닌가?”
지난번에 잡은 상사 컨셉이 꽤 마음에 든 건지, 서 팀장은 이번에도 직위를 들먹였다. 물론 상사는 맞았다. 그것도 이직 및 사고가 잦은 이 업계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굴지의 대선배.
“그럼 출근하고 팀장실로 가겠습니다.”
현재 시각 여덟 시 반, 아직 삼십 분 정도 시간이 남았다. 의현은 피곤함을 이기기 위해 카페인이라도 좀 빨 생각이었다.
“……근데 자기, 어제랑 옷이 똑같네?”
서 팀장은 수상한 얼굴로 의현에게 몸을 가까이 붙였다. 장미꽃 향이 훅 끼쳤다. 향수를 들이부은 듯 역한 냄새에 의현이 인상을 찌푸리며 벽 쪽으로 붙었다.
“세탁하고 입은 겁니다.”
“어머나, 위생 상태를 짚은 게 아닌데, 어쩜 좋아…….”
“그럼 뭐가 문제죠?”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애인 사귄 적 없지?”
확신에 가득 찬 목소리였다. 뜬금없이 애인 얘기를 왜 꺼내나 싶었지만, 의현은 착실하게 대답했다.
“업무 외의 사적인 질문에는 대답할 이유가 없습니다.”
“나도 자기의 종교 취향을 알고 싶지 않았는데? 그건 누가 혼자서 나불댔더라?”
“이유를 대라고 해서 말씀드린 것뿐인데요.”
“그 이후로 잠을 편하게 못 잤어. 자기가 요즘 내 악몽의 근원이라는 사실을 도대체 자각하고 있는 거야?!”
서 팀장은 목소리를 높였다. 지나가던 직원들이 무슨 일인가 싶어 이쪽을 흘끔거리다가, 당사자가 서 팀장이라는 걸 깨닫고 곧장 눈을 돌렸다.
“저한테 정말 관심 있으세요?”
“어우, 미치겠네…….”
서 팀장은 세팅된 제 머리카락을 헤집으며 답답함을 해소했다.
“이봐 권의현 씨, 나는 그쪽한테 원래 관심 많았어. 이성에 한정된 게 아니라 그거보다 더 포괄적인 의미로. 내가 줄곧 장난치는 줄 알았나 본데, 내가 생각보다 진지하거든?”
“왜요? 서 팀장님이 그 종교에 악감정이 있어서요? 제가 그 종교 믿는다니까 갑자기 열이 뻗치세요?”
“그것도 있지. 어머나, 의현 씨는 잘생겼는데 묘하게 사람을 빡치게 하는 구석이 있네? 여자는 원래 잘생긴 남자한테는 화가 잘 안 나는 법이거든? 잘생긴 남자 드물잖아. 귀하다고. 그래서 얼굴 보면 화가 막 나다가도 금세 풀리고 그런단 말이야. 근데 자기가 그 법칙을 깨네? 이럴 수가 있나? 정말 대단해.”
“대단하게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야!”
서 팀장은 왁 소리치더니 자기도 놀랐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내가 화를 내다니…….”
상사를 빡치게 한 주범인 의현은 가만히 서서 서 팀장을 내려다보았다. 누구나 다 화를 내고 사는데, 이게 뭐 그렇게 놀랄 일인가 싶었다.
“됐어, 이따 얘기해…….”
“예.”
혼이 나간 서 팀장은 손을 휘적거렸다. 제 눈앞에서 썩 사라지라는 손짓에 의현은 얌전히 수긍했다. 가방을 내려놓은 지 십 분이 넘어서야 겨우 의자를 빼고 앉게 된 의현은 오늘 하루도 결코 평온하지 못하리라 직감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피로감이 가득한 얼굴의 직원들이 하나둘씩 출근하기 시작했다. 월급을 그렇게 받아 봐야 쓸 시간이 없다는 게 애석한 일이었다.
밤늦게 퇴근하고 다음 날 아침에 칼같이 출근하면서 몸이 줄줄 갈린다는 사실을 초등학생들에게도 미리 알려 줘야 했다. 그래야 장래희망으로 헌터를 적어서 제출하는 불상사를 막지.
시계는 똑딱거리다가 정확히 아홉 시를 알렸다. 의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문 열린 팀장실 앞에 섰다. 똑똑-. 문 앞에서 노크를 두 번 하자 서 팀장은 지친 기색이 만연한 목소리로 들어오라고 말했다.
“칼같이 출근 시간 맞춰서 오는 것 좀 봐.”
“앉아도 될까요?”
“거기 소파에 앉아.”
서 팀장은 손으로 앞에 소파를 가리켰다. 소파 위에 깔린 천의 패턴이 꽤 요란했다. 이름표가 없어도 서 팀장의 자리라는 걸 알 정도로 주인과 닮아 있었다.
“내가 오늘 자기를 부른 이유는 대충 눈치챘을 거야.”
책상 서랍에서 종이 몇 장을 꺼내든 서 팀장은 의자를 밀면서 의현의 옆으로 다가왔다.
“혹시 시초교 얘긴가요?”
“그래, 맞아.”
사실 서 팀장과 의현이 둘이서만 얘기를 나눌 사안은 이거 하나밖에 없었다.
“우리 현장 1팀도 시초교 조사에 참여하기로 했어.”
“……아.”
“반응이 별론데? 내가 예상했던 반응이 아니잖아.”
이건 의현이 시초교 신자라는 거짓 정보를 날리면서 애초에 예상했던 시나리오였다. 하지만 막상 현실로 다가오니 약간의 불안이 엄습했다. 김태원에 대한 정보도 알아낼 수 있을까? 그 사람은 내가 이번에도 실패했다고 했는데…….
“다른 팀들도 다 참여하는 건가요? 윗선은 저희가 종교 단체 들쑤시고 이러는 거 별로 좋아하지 않을 텐데요.”
“맞아. 우리가 이러는 거 알면 죽이려 들지도 몰라.”
서 팀장은 어깨를 으쓱였다.
“하지만 이럴 때마다 우리가 대체 불가능한 인재라는 사실이 피부에 와닿곤 하지.”
“그게 무슨…….”
“헌터부는 정부 산하의 기관이지만, 업무 특정성 때문에 독립적으로 작용하고 있어. 그 말인즉슨 직접 우리를 감시하거나 손볼 수 없다는 거야. 명확한 증거가 있기 전까진.”
“설마 지금 공문서를 위조하겠다는 말씀이세요? 단체로?”
“어머, 자기 그렇게 무서운 말을 하면 어떻게 해! 공문서 위조라니!”
의현이 툭 내뱉은 말에 서 팀장은 호들갑 떨며 반응했다. 그래 봐야 조금도 무서워 보이지 않았지만.
“위조를 하겠다는 게 아니야. 그냥 범위를 좀 넓혀서 얘기하겠다는 거지. 예를 들면, ‘시초교 교단 들쑤시기’가 아니라 ‘하층 지구 파견 조사’ 정도로 말이야.”
서 팀장의 말은 제법 그럴듯했다. 사실 윗선을 상대로 가장 잘 먹히는 방법이기도 했다. 거짓말은 아니지만, 범위를 구체화하지 않고 최대한 두루뭉술하게 언급하기. 이런 건 감사를 받게 돼도 빠져나갈 구석이 충분했다. 저는 하겠다고 분명 보고서를 올렸는데요? 알면서도 허가를 내려 준 건 상부인데요, 라고 말하면 될 일이니까.
하지만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다.
“……저는 그렇다 쳐도, 다른 팀 사람들은 왜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 여기에 참여하는 건데요?”
백 퍼센트는 없다. 설령 선한 마음을 가지고 있더라도 실현하는 것은 다른 문제니까. 그래서 명확하게 선과 악이 나뉜 선택지에서도 누군가는 분명 악을 고른다.
“변혁을 위한 불씨를 비웃은 적 있지, 내가?”
“……네.”
“아직도 그래. 난 되게 웃기거든 그런 정의로운 거.”
서 팀장은 앞으로 길게 뻗어 있던 다리를 꼬았다. 굽이 낮은 슬리퍼가 발끝에 아슬아슬하게 걸려 있다가 바닥으로 톡 떨어졌다.
“웃기지 않아? 우리 같은 사람들은 성공이 보장되어 있잖아. 근데 왜 굳이 나서서 험한 일을 하려고 하겠어, 도무지 이해가 안 되지.”
“…….”
“근데 참 신기해. 그래도 누군가는 시작을 한단 말이야.”
“…….”
“그게 옳은 일이라면 분명히 누군가는 하게 된다고.”
“…….”
“그럼 나도 그냥 하는 거야. 뭐 특별한 이유 없어. 그냥 빛나는 정의에 얹혀 가는 거지. 사는 게 다 이렇지 않을까? 사실 나도 잘 몰라.”
뭔가 있을 줄 알았는데, 서 팀장의 입에서 나온 말은 지나치게 허무했다. 탁 맥이 풀려 버린 의현을 보며 서 팀장은 오전에 있었던 일에 복수를 했다는 듯 키득키득 웃었다.
“이런, 아무래도 내가 의현 씨 한 방 먹였나 본데?”
“어이가 없어서요. 고작 그런 이유라는 게.”
“신념이 뭐 그렇게 중요한가? 어영부영 살다가 선을 따르는 것도 결과적으론 선한 거 아니겠어?”
맞는 말이긴 했다. 성격이 글러 먹은 권의현이 업보 청산을 위해 착한 척하고 있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었으니.
“그럼 이제 어떻게 되는 건가요?”
“각 1팀 팀장이랑 정예 요원 몇이 꾸려져서 특별팀이 파견되겠지. 상부에 올릴 명목은 이후에 어떻게든 만들어야겠지만? 아마 그거 때문에 시간이 좀 걸릴지도 몰라. 허가 떨어지는 게 연말이 될 수도 있고.”
“저 팜섬 여행권 못 쓰게 하려고 거짓말하시는 거 아니죠?”
“자기야, 이 일에 발 들인 거 반은 자기 때문이야. 날 봐서라도 팜섬 여행권은 내년으로 미뤄.”
분명 올해 사용하려고 했었다. 정재이와의 애매한 관계를 좀 확정시킬 필요가 있었으니까. 하지만…….
어떤 일을 먼저 처리해야 좋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여태까지 했던 수많은 선택은 실패로 끝났지만, 이번에도 그러리라는 법은 없었다. 김태원의 말? 불안하지. 근데 꼭 그러라는 법도 없잖아.
의현은 한숨을 내쉬며 제 앞머리를 흩트렸다. 선택에 따른 결과를 무던하게 책임지기엔 권의현이라는 사람은 아직 너무 두려움이 컸다.
“저는 거기에 무조건 포함되는 거죠?”
“그럼. 자기는 신도잖아. 교단 구경 한 번 가야 하지 않겠어?”
“……상부에서 허가 떨어지면 말씀해 주세요. 그때까지 팜섬 여행권은 미뤄 둘 테니까.”
“현명한 선택이야. 부디 후회하지 않길 바라.”
서 팀장은 어른스러운 얼굴로 웃으며 손에 쥐고 있던 종이를 의현에게 건네주었다.
“그건 이번에 참여하기로 예상되는 조사단 목록. 확정은 아니니까 참고만 해.”
“기밀인가요?”
“뭘 기밀씩이야. 다 허가받고 내려가는 건데. 신경 안 써도 돼.”
“네.”
“그래도 너무 공개하고 다니지는 말아.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의현은 종이를 받아들고 빠르게 눈으로 이름을 훑어보았다. 아는 이름이 있나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이제 나가 봐. 오늘 오전 회의 열 시에 있는 거 알지? 미치겠네, 도대체 나는 일이 왜 이렇게 많은 거야? 오늘도 정시 퇴근은 글렀어! 제발 나를 퇴사시켜 줘-!”
“나가 보겠습니다.”
서 팀장은 책상에 엎드리며 악 소리쳤다. 이런 때일수록 더 엮이고 싶지 않았으므로 의현은 얼른 팀장실을 빠져나왔다.
타닥타닥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가 안정적으로 들려왔다. 의현은 제자리로 돌아와 손에 들린 종이를 정독하기 시작했다. 이상윤, 서윤아, 강찬수, 김해…….
“……김해수?”
낯선 이름 가운데, 익숙한 이름 하나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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