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화.
사실 의현은 영화 보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액션이나 SF 장르의 영화는 현실성이 없어야 재미가 있을 텐데, 뭘 봐도 의현의 현실보다 잔잔해서 솔직히 말하면 지루하기만 했으니.
“이거 엄청 재밌대. 한 달 내내 1위 했어.”
동민은 설레 죽겠다는 얼굴로 팝콘을 챙겨와 소파에 앉았다. 리모컨 버튼 하나 누를 때마다 의자가 뒤로 젖혀지더니 스크린이 내려오고 방 불이 꺼졌다.
“영화보다 이게 더 신기한데.”
“집에 이런 거 없어?”
“응.”
“하긴, 장관님이랑 좀 이미지가 안 맞긴 하다.”
동민은 장난스럽게 웃었다. 비단 영화뿐만이 아니었다. 권중섭은 그냥 집 자체를 잘 들어오지 않았다. 집이나 가족이라는 것에 일말의 애정도 없는 사람처럼 굴 때마다 의현은 생각하곤 했다. 보통 다 이런 건가?
“와인 잘 마시길래, 와인 창고에서 하나 꺼내 왔어. 아버지가 아껴 두시던 건데, 샤로 마그리또 70년산!”
“……다시 넣어 둬. 화목한 가정에 분란 일으킬 생각 없으니까.”
“그 정도는 아니야. 가족끼리 지난번에 한 번 따서 마셨던 거거든.”
동민은 확인시켜 주려는 듯 반쯤 남은 와인을 흔들었다.
영화는 배급사 정보를 띄우며 본격적인 시작을 알렸다. 의현은 알겠다며 대충 손을 휘적거렸다. 지금 동민은 의현이 거절하면 다른 와인이라도 가지고 나올 태세였다.
“무슨 내용이냐면, 시간 여행자가 나오는데 말이야…….”
동민은 와인을 따르며 종알거렸다. 시간 여행자라는 말에 의현은 깜짝 놀라 동민을 쳐다보았다. 혹시 얘가 뭘 알고 고른 건 아니겠지?
“……어, 왜? 왜 쳐다봐?”
멍하던 시선이 갑자기 닿자 동민은 순식간에 당황했다. 감정을 숨길 줄을 몰랐다.
“아니야. 그냥 재밌을 것 같아서.”
의현은 제가 괜한 걱정을 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하긴 자신을 떠보기 위해 동민이 일부러 이런 영화를 보여 준다니, 말이 잘 안 됐다.
“그래? 이거 보면 생각할 거리도 되게 많대. 내가 후기도 다 찾아봤잖아.”
영화는 초반부터 화려한 효과와 액션을 쏟아부었다. 어두운 방 안, 스크린 위로 퍼지는 조명에 따라 얼굴색이 시시각각 바뀌었다. 의현은 홀짝홀짝 와인을 마시며 영화에서 혹시 배울 점이 있나 모색했다. 여기 주인공은 어떤 선택을 할까 공부한답시고 스크린을 쳐다보고 있자, 나름대로 이입이 잘 됐다.
주인공은 주인공이기에 온갖 수모를 다 겪는다. 연쇄 살인마에 의해 온가족이 몰살당하지만, 시간을 되돌려도 거대한 운명을 거스를 수는 없다. 타임 패러독스. 모든 사건은 결국 하나의 유기체이므로 똑 떼어 놓고 어느 부분만 선택할 수는 없다.
“이렇게 슬픈 영화인 줄은 몰랐어…….”
“네가 고른 거잖아.”
“흑……. 명작이라는 얘기만 있었단 말이야…….”
영화가 중후반을 지나자 동민은 오열하기 시작했다. 주인공이 불쌍해서 가슴이 찢어진다는 말에, 의현은 할 말이 없었다. 슬픈 건 모르겠고, 공감은 좀 되네. 이렇게 말하면 순식간에 냉혈한이 될 것 같았다.
의현은 잔에 가득 담긴 와인을 꿀꺽꿀꺽 삼켰다. 비싼 거라고 하더니 확실히 레스토랑에서 마셨던 것보다 뒷맛이 깔끔했다.
‘나는 미래를 바꾸려고 했던 게 아니야, 그저…….’
주인공의 얼굴이 클로즈업됐다. 동민은 바닥에 엎어져 통곡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가족들이 행복하게 웃으며 주인공을 쳐다보았다.
‘그저 너희를 만나고 싶었어. 살아 있는 너희를…….’
그렇게 말하는 순간 주인공은 순식간에 과거에서 현재로 끌려온다. 정리되지 않은 방, 소음 하나 없이 진득하게 내려앉은 침묵과 어둠. 그리고 허망한 표정으로 허공을 바라보는 주인공.
“……와.”
개식상해. 의현은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어중간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뭔가 특별한 게 있을 줄 알았는데, 이 영화 역시 그저 비슷한 패턴을 보여 줄 뿐이었다.
“너, 너 어떻게 그런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을 수 있어? 너는 감정이라는 게 없냐고……. 흐윽…….”
동민은 억울한 표정으로 의현을 향해 손가락질했다. 바닥엔 동민의 눈물을 닦은 휴지가 수십 개 버려져 있었다. 분위기를 잡긴커녕 추한 모습만 보여 주게 된 동민이었지만, 멋을 신경 쓸 만큼 감정 상태가 멀쩡하지 못했다.
“이건 그냥 없는 이야기겠지……? 실제로 이런 일은 없는 거겠지? 너무 슬퍼…….”
동민은 훌쩍거리며 빨개진 눈가를 문질러 닦았다. 의현은 소파에 늘어진 채로 시큰둥하게 대꾸했다.
“우리 같은 사람도 있는데, 설마 시간 갖고 장난치는 사람 하나 없을까.”
“설마……. 정말 있는 걸까? 어떡하지? 나 그러면 정말 마음이 찢어질 것 같은데?!”
동민은 제대로 과몰입해 의현의 소파 아래에 고개를 처박고 또 쭐쭐 울기 시작했다.
“네 마음이 왜 찢어지는데?”
“불쌍하잖아! 얼마나 힘들겠어!”
물론 힘들긴 했다. 심지어 저 주인공은 자의로 시간을 왔다 갔다 하는 거였지만, 의현은 타의로 일정 시간 안에 갇힌 셈이었다. 어떤 측면으로 봐도 의현의 상황이 더 최악이었다. 심지어 의현은 만나고 싶은 사람도 없고 그리운 사람도 없는데…….
“……넌 어떨 것 같은데?”
의현은 시스템의 회귀하겠냐는 질문에 단 한 번도 YES를 고른 적 없었다. 다시 살고 싶었던 적이 없었으니까. 이 지긋지긋한 인생 아프지 않게 끝내 준다는데 당연히 죽고 말지.
“뭐가?”
“저런 사람이 네 옆에 있다면?”
하지만 의현은 죽을 수가 없었다. 정확히는 죽음이 허락되지 않았다. 목적 없는 삶이라도 눈 감으면 밤이 오고 눈을 뜨면 아침이 왔다. 그러니 비워진 시간선을 채워 간다는 것이 사실은 얼마나 쉽고 허망한 짓인지.
“음……. 일단은 수고했다고 말해 줄 거야. 그동안 혼자서 정말 많이 힘들었을 테니까.”
동민은 붕어처럼 퉁퉁 부은 눈을 숨기며 속삭였다.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는 퍽 다정해 듣기 좋았다. 의현은 슬슬 술기운이 올라온다는 사실을 자각했다.
“그리고?”
“음, 그리고…….”
화면에선 이제 엔딩 크레딧이 천천히 올라가고 있었다. 의현의 얼굴에 검은 그림자가 졌다. 동민은 바닥에 떨어진 휴지들을 모아 휴지통에 집어넣으며 곰곰이 생각했다.
“그리고 그냥 끝이 아닐까?”
“끝이라고?”
“글쎄, 내가 해 줄 수 있는 게 있을까? 응원해 주는 거 말고는 내가 현실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게 없을 것 같아…….”
동민의 말에 의현은 푸핫 소리 내어 웃었다. 영화 보는 내내 불쾌하게 일렁거리던 마음이 찬물 끼얹은 듯 가라앉았다.
“맞아. 네가 해 줄 수 있는 건 없겠지.”
“내가 뭐 웃긴 말을 한 거야? 엄청 비웃네? 너였다면 어떻게 할 건데? 저런 사람이 옆에 있으면 뭘 해 줄 수 있을 것 같아?”
동민은 얼른 고개를 치켜들었다. 의현은 소파 위에 늘어져 온몸에 힘을 뺐다. 눈가가 꽤 무거웠다. 생각 회로가 아주 느리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러게……. 나도 뭘 해 줄 수는 없겠지.”
“…….”
“……그냥 둬.”
의현은 마치 자기 자신에게 말하듯 그렇게 대답했다.
“그렇게 발악하다가, 언젠간 죽을 테니까…….”
크레딧이 모두 올라간 스크린은 온통 검기만 했다. 불 꺼진 방에 멀거니 앉아 동민은 잠시간 숨 쉬는 방법도 잊어 버렸다. 분명 의현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으나, 왜인지 모르게 그 말을 내뱉는 의현의 표정이야말로. 꼭 울고 싶은 것처럼 보였다.
“…….”
동민은 가만히 눈만 깜빡였다. 뭐지? 분명 눈앞에 있는 건 산 사람인데 도무지 산 사람 같지가 않았다. 잡힐까? 손을 뻗어도 안 닿을 것 같은데…….
순간의 충동이 일었다. 동민은 갖고 싶었던 걸 못 가져 본 적 없는 사람이었다. 도대체 뭔데, 의현이 앞에선 여기 들어오지 말라고 바닥에 선 그어진 애처럼 앞으로 나아가질 못했다. 이게 뭔데. 도대체 왜.
“……의현아.”
의현은 눈을 감고 색색 숨을 내쉬고 있었다. 진한 와인의 냄새가 부드러웠다. 동민은 허리를 일으켜 의현이 옆으로 누운 소파로 다가갔다.
잠든 의현의 얼굴은 너무나도 다채로웠다. 술기운이 오른 볼은 발그스레했고 눈 아래쪽은 축적된 피곤으로 인해 피폐한 듯 보였다. 햇빛 못 보고 자란 사람처럼 창백한 피부와 말린 장미색의 입술까지. 권의현이라는 인물을 이루는 모든 것들은 차동민과 너무나도 동떨어져 있었다.
“너는…….”
너는 나한테 너무 멀어.
동민은 손을 들어 의현의 앞머리를 쓸어 넘겼다. 결 좋은 검은 머리카락이 동민의 손을 타고 무방비하게 뒤로 넘어갔다.
‘도저히 가질 수가 없으니까, 더 갖고 싶은 거라고. 소유욕. 알아?’
오만한 사교계의 친구들은 항상 떠들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동민의 역할은 그 친구들의 옆에 멀거니 서서 대충 고개를 주억거리는 것이었다.
‘소유욕? 그런 거 나는 잘 몰라.’
겉으로는 친절한 척 대답하면서 속으로는 항상 그 철없는 애들을 비웃었다. 나는 아니야. 나는 너희와 달라. 너희의 노력으로 온전히 일군 것도 아니면서 당당하게 남의 손에 있는 것까지 빼앗진 않을 거야.
‘네가 진품을 못 봐서 그래. 원래 진짜에는 다 달려들어.’
‘뭐가 진짠데?’
‘그건 나도 모르지. 근데 정말 신기하다니까?’
친구들은 두 눈을 반짝였다. 뭐에 홀린 사람처럼 그 얘길 하면서 자꾸 히죽대고 웃었다.
‘보면 바로 알아. 그럼 타죽어도 걍 눈 돌아서 달려드는 거야. 내가 못 가지면 열 받으니까. 그걸 남 손에 어떻게 줘? 그게 바로 소유욕이지.’
나 자신은 그러지 않을 거라고 단언했던 수많은 순간이 얼마나 큰 오만으로 점철돼 있었는지.
“의현아, 자……?”
동민은 작게 물었다. 심장이 곧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 얕은 숨을 뱉는 의현의 얼굴이 바로 코앞에 있었다. 이러면 안 돼. 차동민, 너 이러면 안 되는 거 알잖아……. 의현의 머리카락을 넘기던 동민의 손이 허공에서 뚝 멈추었다.
“……자는 거 맞지?”
어딘가에서 경고음이 울렸다. 동민이 힘겹게 쌓아 올린 모래성은 파도 한 번에 아주 쉽게 허물어졌다. 동민은 허리를 굽히고 의현의 입술을 내려다보았다.
조금도 뒤척이지 않고 잠든 권의현. 오늘이 아니면 다신 이런 날은 없어. 동민은 주먹을 꽉 쥐고 얼굴을 틀어 의현에게 다가갔다.
―♪♬♪
그리고 그런 동민의 어긋난 도덕심을 탓하기라도 하듯, 의현의 핸드폰이 아주 큰 소리를 내며 울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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