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화.
알 수 없는 음식이었다. 정확히 얘기하자면 먹을 수 있는지 없는지도 확신할 수 없는 어떤 것.
“…….”
에그 스크램블 비슷한 건 새까맣게 타서 언뜻 보면 개똥같이 보였다. 괜히 장식해 놓는다고 케첩을 뿌려 놨더니 이번엔 또 피 칠갑한 개똥이 되어 버렸는데, 미관상 정말 좋지 않았다.
“……이런 건 아이가 보면 안 됩니다.”
의현이 선보인 요리를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쳐다보던 윤 기사는 곧 윤화의 눈을 가리며 제법 어른스러운 면모를 뽐냈다.
“……오므라이스인데요.”
“도련님도 아시지 않습니까. 이게 오므라이스로 보이지 않는다는 건…….”
“저는 노력한 겁니다.”
무언가 이루기 위해 이렇게 이 악물고 노력한 건 몇 개 없었다. 윤화는 윤 기사의 손 위로 살짝 얼굴을 내밀고 의현의 오므라이스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할 말이 많은 것 같은 얼굴이었다. 이어지는 잠시간의 침묵.
“……와! 맛있겠다!”
윤화는 포크를 들고 아일랜드형 식탁에 앉아 방긋방긋 웃었다. 오히려 이런 반응을 보니 정말 망한 요리라는 게 실감이 났다. 윤화는 포크로 개똥 모양을 한 오므라이스를 쿡 찍었다. 찔꺽-. 뭔가 음식에서 나선 안 되는 질척한 소리가 났다.
“이런 건 아이가 먹으면 안 됩니다!”
“오므라이스라니까요. 제가 간도 다 봤습니다.”
“하지만…….”
“제가 먹어 볼게요! 형이 만든 거니까!”
윤화가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포크를 제 입 앞으로 가져다 댔다.
“안 돼!”
윤 기사는 윤화가 이런 막돼먹은 음식을 먹는 걸 두고 보지 못하겠다는 듯 제가 먼저 앞으로 튀어나와 포크 끄트머리에 달린 오므라이스를 한입에 집어삼켰다.
우욱, 콜록, 콜록-!
윤 기사는 요란하게 기침하며 의현이 한 음식을 죄다 자기 입에 집어넣었다. 그 숭고한 희생에 의현은 손뼉이라도 쳐 줄 뻔했다.
“……다 먹었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오므라이스를 새로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입에 그거 피 아니죠?”
“이, 이건 케, 케첩입니다……!”
어쩌면 정말 피일 수도 있겠다고 의현은 생각했다.
“앉아 계세요! 이래 봬도 제가 자취 경력이 십 년이 넘었습니다!”
윤 기사는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윤화의 표정이 갑자기 밝아졌다. 와, 윤 기사 아저씨 파이팅! 언젠 의현이 해 준 요리가 먹고 싶다고 땡깡을 부리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기사 쪽에 붙은 걸 보니 어이가 없었다.
“……다음엔 더 잘할 수 있어.”
“맞아. 형은 다음에 더 잘할 거야.”
처참한 실패에도 썩 민망한 마음이 들지 않았던 건, 이 안에 모인 사람 중 누구 하나 타박하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의현은 가만히 턱을 괴고 앉아 윤 기사가 능숙하게 채소를 썰고 손목 스냅을 이용해 밥을 볶는 모습을 구경했다.
“와-.”
무슨 식당의 주방장처럼 재료들이 허공에 솟았다가 촤악 소리를 내며 프라이팬 위로 떨어졌다. 아무리 자취를 오래 했다고 해도 이건 이미 재능의 영역이었다.
“윤 기사 아저씨 짱!”
윤화는 발을 달랑달랑 흔들며 기사를 향해 엄지를 치켜들었다. 뿌듯한 표정의 윤 기사는 금세 둘의 앞에 오므라이스를 대령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오므라이스는, 나이프로 위를 살짝 가르자 꽃잎처럼 옆으로 사르르 펼쳐졌다.
“요리는 배운 겁니까?”
“퇴근하고 나면 혼자서 좀 해 보는 편입니다! 요리하는 걸 좋아하니까요! 하하하!”
퇴근하고 나면 기절해서 바로 잠들기 바쁜 의현인지라, 그는 새삼스럽게 윤 기사의 열정에 감탄했다. 확실히 뭘 하든 허투루 하는 법 없이 뼈를 갈아 넣는 모습이 대단하긴 했다.
“여기서 이러지 말고 이직을 하는 건 어때요? 데려가겠다는 곳 많을 것 같은데.”
“저는 권중섭 장관님을 존경해서요! 어떻게든 곁에서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입니다!”
“아…….”
목적이 그거라면 말이 안 통할 거다. 의현은 썩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윤 기사가 만든 오므라이스를 숟가락으로 떠서 조용히 씹었다.
“형! 짱 맛있어-!”
윤화가 행복한 얼굴로 책상을 쾅쾅 두드렸다.
“……입에는 좀 맞으세요?”
윤 기사는 잔뜩 긴장한 얼굴로 의현에게 물었다. 의현은 입에 넣은 한입을 오물오물 씹어 삼키고 윤 기사를 향해 말했다.
“……역시 이직하세요.”
이건 의현이 태어나 먹어본 어떤 오므라이스보다도 맛있었다.
과일까지 야무지게 깎아 먹고 이동한 곳은 키즈 카페였다. 의현은 윤화를 키즈 카페에 넣어 두고 음료수나 좀 마시며 쉴 생각이었다.
하지만 애들이 가득 있는 곳은 지나치게 시끄러워, 아무것도 안 해도 전혀 휴식을 취한다는 기분이 들지 않았다.
의현은 조그마한 식탁에 몸을 구부리고 앉아 제 몫으로 나온 아메리카노를 쭉 빨았다.
“형! 얘가 형이랑 인사하고 싶대! 방금 사귄 친구!”
“형, 안녕하세요!”
“그래, 안녕. 저기 딴 데 가서 놀아. 알겠지?”
사교성이 좋은 윤화는 들어온 지 30분 만에 주변에 있는 애들을 우르르 몰고 다녔다. 심지어는 친구를 사귈 때마다 의현에게 꼬박꼬박 인사를 시키러 왔는데, 세상 다 죽어 가는 표정으로 빨대를 씹다가도 표정 관리를 해야 해서 불편한 점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시터인가 봐요?”
“네?”
“본인 말이에요. 저기, 빨간 머리 남자애의.”
학부모 모임으로 보이는 한 무리가 의현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실내인데도 선글라스를 쓰고 있어 얼굴을 알아보기가 쉽지 않았다.
“……시터, 뭐 그 비슷한 거긴 한데.”
“어머나, 가엾어라. 이렇게 젊은데…….”
자신이 윤화를 돌봐주는 상황이 맞아서 시터라는 단어에 긍정했건만, 상대방은 완전히 오해한 듯했다.
“요즘은 시터도 외모를 많이 보는 모양이에요.”
“아, 뭔가 오해가 있으신 것 같은데, 저는…….”
“그만, 쉿! 부끄러워하는 마음도 이해할 수 있어요. 빈부 격차가 어디 그대의 잘못인가요? 어린 나이에도 열심히 일하는 모습이 아름다운걸요. 그렇죠?”
우두머리 학부모의 말에 무리의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했다. 그러고 보니 이 안에 젊은 사람이라곤 의현 한 명밖에 없었다. 윤화를 동생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도 무리가 아닌 게, 생각해 보니 부잣집 자제가 직접 자기 동생을 데리고 이런 델 올 이유가 없었다.
“학생이에요?”
“아뇨. 일하고 있는데요.”
“어머, 대학을 못 갔군요……. 하긴, 학비를 대기가 쉽지 않겠죠. 가엾어라.”
“…….”
“실례가 안 된다면 무슨 일을 하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그냥, 몸 쓰는 일인데요.”
의현의 말에 학부모들의 표정은 금세 동정으로 가득 찼다. 도대체 이 사람들이 제게 왜 이러는지 알 수가 없었다. 심심해서 그러는 건가? 뭔가 깔아뭉갤 사람이 필요해서? 사교계에 제대로 나가본 적이 없던 의현인지라 상류층 사람들의 의중을 파악하기가 힘들었다.
“구체적으로 공장 쪽 일을 하는 건가요? 아니면 뭐, 건설이라든지…….”
“용역인데요.”
“설마 용역 깡패……?”
헌터라고 말했다가 괜히 주목받기 싫어 두루뭉술하게 말했더니 상황이 점점 이상해지고 있었다.
“사람 때리고 그런 건 아닙니다.”
“그러면 노상 전문……? 막 철거하고 부수고 없애는……?”
이쯤 하면 그만 떨어져 나갈 줄 알고 의현은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네. 노상 전문 용역이고요. 신고 들어오면 부수러 나갑니다.”
“어머나, 젊은 나이에 그런 잔인한 일까지 서슴지 않다니. 정말 세상이 어떻게 되려고…….”
학부모들은 눈가가 촉촉해져서 의현의 손을 부여잡았다. 의현은 인상을 팍 구기며 잡힌 손을 비틀어 뺐다.
“제발 저한테 신경 좀 쓰지 마세요. 전 괜찮으니까, 본인들 일 보시라고요.”
“먹고 싶은 게 있다면 돈 걱정하지 말고 시켜요. 이런 거 먹어 본 적 있나요? 이건 마카롱이라는 건데, 내가 사 줄게요.”
“됐습니다.”
“저녁은 먹었나요? 시터 일이 힘들진 않나요? 걱정은 말고 마음의 근심을 우리에게 털어놔 봐요. 우리는 사회 운동을 긍정하는 학부모 모임이니까요.”
“별 모임이 다 있네. 진짜.”
의현이 이상한 사람들 틈에 모여 괴로워하고 있을 때, 윤화는 제 친구들 서른 명 즈음을 이끌고 의현이 있는 곳으로 뛰어왔다. 무슨 동화책 속에 나오는 용사처럼 말이다.
“형아!”
윤화를 데리고 다니면 이상할 정도로 사람들이 많이 붙었다. 이것도 무슨 효과인 건가? 햇살 같은 사람이 하나 붙었다고 갑자기 주변이 밝아지는 효과? 말이 되나?
“다들 우리 형한테 뭐 하시는 거예요!”
윤화는 무리의 중간에 서서 사람들과 의현의 중간을 틀어막았다. 그래 봐야 아직 몸이 작아 위협적이기보단 귀여운 수준이었다.
“윤화 너 친구들이랑 저기 가서 놀라고 했지?”
“나 이제 다 놀았어! 형이랑 집으로 갈 거야.”
“벌써?”
의현은 흘끔 시계를 보았다. 윤화가 지쳐서 나가떨어지기엔 아직 너무 이른 시간이었다.
“나중에 더 놀고 싶었다고 칭얼거리지 말고, 시간 줄 때 가서 더 놀아.”
“아니야, 나 형이랑 집에 갈 거야. 애들이랑 노는 거 별로 재미없어!”
“아까까진 실컷 잘 놀다가 그런 말 하면 설득력이 있겠어?”
“그런 건 몰라! 그냥 집으로 가자!”
윤화는 의현의 손을 잡고 쿵쿵거리는 걸음으로 먼저 앞장서서 걸었다. 얘가 또 잘 놀다가 왜 이래……. 의현은 절반 정도 마신 아메리카노를 선반 위에 올려놓고 구두를 꺼내 신었다.
“나는 정말 너를 알다가도 모르겠어.”
원래 이맘때의 애들이 다 이런 건가, 감정의 중간이 없었다. 이거 하고 싶다고 했다가 금세 마음을 바꿔서 저거 하고 싶다고 우기고. 의현이 어렸을 땐 분명히 이러지 않았을 텐데.
“다음에 또 봐요, 잘생긴 시터 청년! 힘든 삶도 항상 파이팅!”
윤화의 손에 질질 끌려 나가는 걸 보며 학부모 모임은 다시금 의현의 삶을 응원해 주었다.
영양가도 없고 진실도 왜곡된 저런 응원 따위는 받고 싶지도 않았다.
윤화는 야무지게 제 운동화를 눌러 신고 의현의 등에 매달렸다. 무겁진 않았지만, 갑자기 닿아오는 무게가 영 낯설었다.
“우리 차에 가서 재밌게 놀자.”
“차에서 뭘 하고 놀 건데? 차에는 놀 거 없어. 여기가 더 재밌을걸?”
“아니야. 차에서 형이랑 창밖 구경하는 게 더 재밌어.”
윤화의 평소 성격을 아는 의현으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말이었다.
“얼른 가서 놀자, 형!”
윤화는 의현의 목을 꽉 끌어안으며 발을 앞뒤로 붕붕 굴렀다.
“하…….”
윤화 너랑 같이 있으면, 너무 많은 일이 한꺼번에 생겨.
의현은 한숨을 푹 내쉬며 그렇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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