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화.
의현의 질문에 동민은 황급히 귀를 틀어막았다. 좀 전에 서로의 프라이버시를 지켜 주자고 약속했던 게 생각났던 모양이었다. 교도관들은 쟤 도대체 뭐 하는 건가 싶은 표정으로 동민을 흘끔거렸다.
“초면에 훅 들어오는데. 역시 예의가 없어.”
“필요하다면 예의 차려 줄 수는 있어. 그렇게 행동하는 것 자체는 그다지 힘든 일이 아니거든.”
어른 공경 따위는 개나 줘 버린 듯한 의현의 말에 김태원은 어이없다는 듯 큰 소리로 웃었다. 으하하하! 옛날에 그랬던 것처럼 웃음소리는 경박하기 짝이 없었다.
“내가 미래를 본다는 사실을 알고 찾아온 모양인데, 너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구나.”
“그게 무슨 개소리야?”
“모든 미래를 전부 볼 수 있었다면, 나 역시 선택을 후회하는 일은 없었을 거다.”
“……그러니까 네 말은, 볼 수 있는 미래가 굉장히 단편적이다?”
하긴 그러지 않고서는 김태원이 이번에도 수감 시설에 들어와 있다는 사실이 설명이 안 됐다. 이 거지 같은 곳에서 죽을 때까지 살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이건 김태원에게 ‘피할 수 없는’ 기본값인 것이다.
“어떤 건 바꾸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바뀌지 않지. 마치 네 아버지가 권중섭인 것처럼.”
이건 옛날에도 한 번 들었던 말이었다. 면회실 안에 걸린 전자시계에서 시간이 아주 빠르게 지나갔다. 의현은 날카로운 표정으로 김태원에게 되물었다.
“그래서 내가 물은 질문에 대답은 알 수 없다?”
“사람은 모두 죽지. 그러니 너 역시 언젠가 이 불행에서 벗어나 영면할 수 있지 않겠나?”
“……전에 했던 말과 달라. 언젠 내가 뭘 선택해도 내 인생이 나락에 처박힌다고 했잖아. 이 불행한 삶을 영영 반복하게 될 거라면서?”
김태원은 제 어깨를 으쓱이며 별일이 아니라는 듯 대꾸했다.
“나는 내게 주어진 세상의 미래를 본다. 만약 네가 예전에 그런 말을 들은 적 있다면, 그게 그때 내가 본 미래겠지. 난 틀린 말은 하지 않아.”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어. 그러니까 네가 지금 과거를 기억하지 못한다는 거야?”
“물론. 나는 너를 오늘 처음 봤거든. 네 이름이 권의현이고 오늘 나에게 찾아올 거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이건 새로운 사실이었다. 그때 김태원이 했던 저주 때문에 지금까지도 악몽을 꿨는데, 정작 당사자는 그 과거를 기억하지도 못하고 있다니.
“그러니까 대충은 알겠어.”
“…….”
“김태원 네가 나한테 약을 팔았다는 거. 그리고 나는 네가 했던 그 장난질에 속아서 반평생을 악몽에 시달렸지. 진짜 어이가 없네…….”
의현은 제 머리를 흩트렸다. 그저 실체가 없는 공포였던 거다. 평생 죽지 못하고 같은 생을 반복하게 되리라는 김태원의 그때 그 저주는.
“그게 과연 장난질이었을지 잘 생각해 봐. 네가 신의 사랑을 받게 되기까지가 머지않았으니까.”
“미친, 제발 알아들을 수 있게 말해! 신, 신! 그놈의 종교 지겨워 죽겠으니까! 네가 시초교 성도였던 거랑 미래를 본다면서 불 지르고 여기 잡혀 온 거랑 다 어떻게 돼 먹은 건지 죄다 내가 알아듣게 설명하라고!”
의현이 크게 소리쳤다. 귀를 틀어막고 있던 동민이 놀란 표정으로 의현을 바라보았다.
“나는 내 손으로 신을 탄생시키는 미래를 봤다. 그건 오로지 시초교를 통해서만 이룰 수 있었어. 내가 시초교에 들어간 이유도 그것뿐이다. 전지전능한 신을 창조해 내기 위해서…….”
“그래서 신을 만들었어?”
“그건 네가 잘 알지 않나? 네가 신의 사랑을 받고 있잖아.”
김태원이 의현을 주시했다. 광기에 젖은 눈빛이었다. 초점 없는 눈에 급작스럽게 눈물이 가득 들어찼다.
“나는 신을 위해 내 가족을 버렸다! 이게 나의 원죄다! 어떻게 해도 벗어날 수 없는 잔인한 모순! 권의현! 이 모든 비극은 결국 너로부터 시작된 거야! 너로부터! 그러니까 네가 전부-!”
김태원은 갑자기 발작하기 시작했다. 당황한 교도관이 김태원에게 달려들었다. 격한 몸짓으로 몸부림치던 김태원은 면회실 유리에 얼굴을 처박으며 의현을 향해 소리쳤다.
“……아아, 실패다! 이번에도 실패야! 신이시여 부디 저희를 가엾게 여기시어 자비를 베푸소서-!”
“긴급 상황 발생! 91004번 김태원 수감자가 난동을 부리기 시작했다! 지원을 요청한다!”
“으아아악! 으아아아악-!”
김태원은 얼굴이 짓눌린 채 다 찢어지는 목소리로 악을 썼다. 정말 귀신이라도 씐 사람처럼.
“나가셔야 합니다! 이쪽으로 오세요!”
“의현아, 우리 나가야 돼!”
“…….”
“권의현!”
동민은 사색이 돼 의현의 팔을 붙잡았다. 의현은 건조한 시선으로 안정제를 맞고 바닥에 쓰러지는 김태원을 바라보았다.
“의현아, 정신 차려! 야! 권의현!”
“…….”
“젠장! 이게 갑자기 무슨 일이야!”
동민은 어울리지 않는 모습으로 화를 냈다.
“…….”
무슨 말이던지 해야 했는데, 정말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순간, 무언가를 봤다는 듯 순식간에 구겨지던 김태원의 얼굴이 너무나도 선명했다. 이번에도 실패다? 도대체 뭘 본 거지? 의현의 머릿속에서 수십 개의 물음표가 증식했다.
“의현아, 숨 쉬어. 놀랐어? 괜찮아?”
동민은 의현의 눈을 마주 보았다. 의현의 표정은 평소와 같았지만,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동민은 의현의 어깨를 끌어당겨 품에 안았다.
“숨 쉬어……. 저 사람이 뭐라고 했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아.”
동민은 의현을 안정시키기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말을 했지만, 이 모든 말은 의현에게 아무런 위로가 되어 주지 못했다.
네가 몰라서 그래. 나는 벌써 셀 수도 없이 많이 죽었어. 심지어 죽은 채로도 나는 또 죽어. 그럼 또 그 검은 곳에서 깨어나고 또 죽고, 또 죽고, 죽기 위해 눈을 뜨고 죽기 위해 산단 말이야.
“내가 여기에 너를 데리고 오는 게 아니었는데…….”
“…….”
“미안해. 잘못했어.”
“…….”
“내가 잘못했어…….”
동민은 끊임없이 사과했다. 머리가 어지럽고 속이 뒤집혔다. 이건 새로운 저주였다. 뭘 하든 이번 회차가 실패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으리라.
“……네가 미안해할 거 없어.”
의현은 동민을 밀어내고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이건 우리 같은 사람들이 어떻게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니까.”
“그게 무슨…….”
“얼른 돌아가서 쉬자.”
의현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좀 쉬고 싶어.”
주어진 시간을 다 쓰지도 못하고 밖으로 쫓겨났다. 이런 건 의현의 계획에 없었다. 의현은 적어도 그가 이성적으로 나올 줄 알았다. 어차피 세상이 멸망한다면 권의현뿐만 아니라 김태원도 함께 죽는 것이 아닌가? 협조적으로 나오면 양쪽에게 모두 이득일 텐데, 굳이 왜……?
“이거 마셔. 따뜻해.”
동민은 의현에게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차를 건네주었다.
“……고마워.”
바닷가의 찬 공기가 의현의 얼굴을 식혔다. 동민은 무언가 할 말이 있는 얼굴로 입을 달싹거렸다. 의현은 제가 먼저 입을 열었다. 어차피 동민은 눈치 보다가 결국 묻지 못할 성격이었다.
“아까 소란스럽게 해서 미안해. 그 사람이 미래를 보니까, 나도 모르게 얘기하다가 좀 흥분했던 것 같아.”
“……너에 관련돼서 뭐 안 좋은 걸 본 걸까?”
의현은 고개를 푹 숙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건 나도 잘 모르겠어…….”
동민은 아무런 말 없이 입을 꾹 다물고 있다가 의현이 앉은 쪽으로 몸을 돌렸다.
“네가 그 사람이랑 나누는 대화를 다 들은 게 아니라서 내가 뭐라고 말하는 게 좀 어려운 상황이라는 거 아는데…….”
“…….”
“그래도 의현아, 나는 네가 좀 더 마음의 여유를 가졌으면 좋겠어.”
매일매일 주어진 하루를 살아내면서 의현은 꼭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쫓기는 느낌을 받았다. 최후의 날이 오기 전에 모든 준비를 끝내야만 한다. 그렇게 생각하며 전투적으로 살아도 손에 잡히는 성과는 없었다. 도대체 뭘 준비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가끔은 사람들이 평범하게 사는 게 신기해 보일 때가 있거든.”
“…….”
“평범하게 사는 게 어떤 건지 잘 모르지만, 어쨌든 나는 평범하게 사는 것 같지가 않으니까.”
의현은 작게 탄식했다. 동민이 건네준 차에서는 달짝지근한 자몽 맛이 났다.
“한 번쯤 생각해 본 적 있어. 만약 모든 일이 다 정리되고 네 말대로 내가 여유를 찾는 날이 오게 된다면 나는 과연 평범하게 살 수 있을까…….”
“못 할 거 없지! 우리가 지금은 포탈 때문에 괴물을 잡고 이러느라 제대로 된 일상을 살 수 없지만, 혹시 알아? 포탈이 갑자기 생겨났던 것처럼 정말 갑자기 없어지게 될 수도 있어!”
동민은 큰소리로 외치며 의현의 손을 잡았다.
“그러니까 만약 그, 그, 그때도 내가 네 옆에 있다면……!”
“저기, 차 쏟아졌거든?”
갑작스럽게 손을 잡은 탓에, 의현이 들고 있던 자몽차가 바닥에 다 쏟아졌다. 흙바닥에서 모락모락 연기가 올라왔다.
“미안! 다시 사 올게!”
“아냐, 됐어. 어차피 이제 슬슬 돌아가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의현은 텅 비어 버린 컵을 들어 쓰레기통에 집어넣었다. 동민은 시무룩한 표정으로 의현의 뒤를 졸졸 따라왔다.
“밥이라도 먹고 갈래? 배 안 고파?”
“너는 항상 나 보면 밥 얘길 하더라.”
“그냥, 같이 먹으면 좋으니까…….”
좀 전에 있던 일로 가뜩이나 별로였던 의현의 기분이 더 나빠졌을까 봐 동민은 걱정하는 듯했다. 의현은 주차장에서 대기 중이던 제 차에 올라타 동민에게 손짓했다.
“여기 말고 다른 데로 가자. 이 항구는 이제 지긋지긋해.”
“정말?”
“빨리 타.”
정신적으로 무너지긴 했지만, 어쨌든 그와 별개로 동민에게 고마운 건 사실이었다. 밥이 입으로 잘 들어갈지는 확신할 수 없었지만.
‘형님! 여기 좀 보세요! 90428번 아저씨가 탈옥 계획을 세워 왔대요!’
‘머리가 왜 울릴까요. 속상하네요. 호- 하고 불면 덜 아플까요?’
혼자만 과거를 기억하는 게 억울하다고 생각해 본 적 없었는데, 오늘만큼은 과거의 윤화가 좀 그리웠다. 제일 마지막에 봤던 얼굴이 우는 얼굴이라서 그런 건지…….
“…….”
의현은 오랜만에 저택으로 윤화를 좀 보러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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