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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역의 회귀식 생존법-42화 (42/185)

42화.

면회자 자격으로 특수 능력 수감 시설에 방문하는 건 처음이었다. 이전 회차에서 받았던 대접을 떠올리면, 그래도 지금은 형편이 훨씬 나아진 셈이었다. 수갑도 안 차고 카메라도 없이 웃으며 걸어 들어가다니.

“날씨 되게 좋네. 이젠 겨울도 아니고 그냥 봄이다. 봄. 항구라서 더 그런가?”

동민은 입고 있던 코트를 벗어 팔에 걸었다. 요 며칠 부쩍 춥던 날씨가 주말 새에 풀려 초봄의 기운이 만연했다.

“미래를 보는 사람이라니, 너무 떨린다. 어제 잠도 제대로 못 잤어.”

“너는 진짜 점을 보러 온 거냐?”

“너도 그런 거 아니야? 네 앞으로가 어떻게 될지 궁금해서 만나러 가는 거라며.”

“뭐, 그렇긴 한데…….”

의현은 복잡한 표정으로 말을 잘랐다. 김태원과 얽힌 모든 이야기를 낱낱이 동민에게 보고할 수가 없었다. 애초에 동민이 이 모든 이야기를 듣고도 의현의 조력자가 되어 주리라 확신할 수도 없거니와 애초에 그 허무맹랑한 일들을 믿어 줄 것 같지도 않았으니까.

“넌 뭐 물어볼 거야? 질문 개수에 제한이 있거나 한 건 아니겠지?”

짙은 파란색 바다 위로 평화롭게 파도가 철썩였다. 차를 타고 한참을 이동하면 수감 시설로 갈 수 있는 선착장이 나왔다. 1차 검문은 여기에서 진행됐다.

“아이고, 귀한 분들께서 이렇게 걸음을 해 주시니……! 이쪽으로 오시지요! 미리 말씀해 주셨으면 저희가 안쪽에 앉을 자리라도 마련해 놨을 텐데요!”

함께 면회하러 들어가는 사람들 틈에 섞여 줄을 서고 있는데, 선착장 옆에 지어진 건물에서 누군가가 헐레벌떡 뛰어나왔다.

“아뇨, 저희는 괜찮습니다. 어차피 검문도 받아야 하고요.”

“물론 검문은 받으셔야겠지만, 그래도 날씨가 추운데 안쪽에서 차라도 마시면서 기다리시는 게 어떠실지…….”

“해가 쨍쨍한데요, 뭐. 들어가서 업무 보세요. 정말 괜찮으니까요.”

동민은 이런 대접이 익숙하다는 듯 넉살 좋게 거절했다. 얼굴이 사색이 된 남자는 안절부절못하며 계속 주위를 맴돌았다.

“그나저나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한다는 게 정말 신기하다. 안이 뭐 어떻게 돼 있는 걸까?”

“아! 그건 담당자인 제가 설명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묻지도 않았는데, 남자는 드디어 제게 기회가 왔다는 듯 갑자기 끼어들었다.

“저희는 정문과 후문이 분리되어 있는데 말입니다. 정문은 대개 범죄자를 이송하거나 기자회견을 할 때, 그리고 오늘처럼 면회할 때 사용됩니다. 바깥에서 손님들이 오시는 거니까 아무래도 위생적으로 깨끗하고 보이는 걸 좀 신경 쓴 편이죠.”

“그렇군요.”

“하지만 후문은 말입니다! 저희 직원들이 사용하는 곳으로, 수도권과 지하도를 통해 직접 연결되어 있는데요! 그렇기에 무엇보다 보안에 큰 신경을 썼습니다! 제아무리 S급 능력자라고 하더라도 후문을 통해 바로 빠져나오는 건 세상이 모두 멸망하지 않는 한은 불가능할 겁니다! 하하하!”

의현은 그제야 제가 나왔던 그 통로가 후문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어쩐지 들어갈 땐 분명 배 타고 들어갔는데, 탈옥했을 땐 그냥 나와져서 뭔가 이상하다 했지. 이런 비밀이 있었군.

“정말 대단하네요. 여태까지 탈옥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나요?”

“물론이죠! 정문을 통해 나오는 범죄자들은 바로 수장되거나 살아남아도 사살당합니다! 후문은 역사상 한 번도 탈옥범이 없었죠!”

역사가 다시 시작됐다지만, 어쨌든 의현은 유일한 탈옥범인 셈이었다. 옛날 생각을 하니, 그때의 윤화 생각도 드문드문 났다. 그땐 어리긴 해도 애 같다는 생각은 별로 안 했는데, 요즘은 어릴 때부터 주워다 키웠더니 뭘 해도 애처럼 보여서 문제였다.

“검문 시작하겠습니다!”

누군가가 앞에서 소리쳤다. 전자물품과 날카로운 물건 등을 미리 선착장에 다 두고 가야 한다고 했다. 동민은 긴장한 표정으로 의현을 바라보았다.

떨리나? 떨리지 않나? 잘 모르겠다. 그냥 수확이 좀 있었으면 좋겠다는 막연한 생각뿐.

선박은 기분 좋게 바람을 가르고 앞으로 나갔다. 배에 탄 사람은 열 명이 안 됐는데, 대부분 표정이 좋지 않았다. 하긴 직접 면회 갈 정도면 가족 관계일 텐데, 수감 시설로 면회하러 가는 게 그리 달갑지는 않을 것이었다.

“질문 뭐 할지 생각해 봤어?”

“뭐, 대충은…….”

변호사를 끼지 않은 일반 면회는 주어진 시간이 고작 20분밖에 안 됐다. 김태원과 20분 대화를 나누기 위해 황금 같은 주말의 왕복 6시간 30분을 투자하게 된 의현은 뭐라도 얻어 가지 않으면 정말 안 됐다.

“능력자들이 자기 비범한 능력을 그렇지 못한 다른 사람들을 위해 쓰면 정말 좋을 텐데……. 뭔가 이렇게 수감 시설로 들어가려니까 나도 여러 생각이 든다.”

동민은 철썩거리는 바다를 쳐다보며 한탄했다. 세상 사람들이 다 차동민 같으면 살기 정말 좋을 거다. 법이고 뭐고 필요 없이 타인에게 친절하고 관대하면서 유들유들.

“그럴 수 없으니까, 문제가 생기는 거겠지. 비극이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환경 때문에 범죄를 저질렀다고 하더라도 어쨌든 그것마저 선택이었다. 권다원을 죽였다는 누명을 쓰고 들어간 수감 시설이었지만, 의현은 그게 완전한 누명이라고는 생각하지는 않았다. 권다원의 죽음에 권의현이 단 1퍼센트도 영향을 끼치지 않았나? 그건 아니었으니까.

“나 질문할 때 너 엿들으면 안 된다? 귀 막고 있어.”

“차동민 너 도대체 얼마나 이상한 걸 물으려고.”

“나도 네가 질문할 때 귀 막고 있을 테니까. 서로 프라이버시 지켜 주자고. 응?”

동민은 수상하게 눈을 빛냈다. 어차피 동민이 들어도 별로 상관없는 질문들로 만들어 오긴 했지만, 김태원이 이에 협조적으로 대답해 줄지는 알 수 없었다.

“그래, 좋아.”

의현은 짧게 대답했다. 저 멀리에 섬처럼 돋아난 건물 하나가 눈에 띄었다. 안개처럼 뿌옇던 과거가 새록새록 돋아났다.

돌아올 줄은 꿈에도 몰랐지.

2년이 넘도록 몸담고 있었던 이 개 같은 수감 시설에.

사실 김태원이 면회를 거절할 수도 있었다. 빽으로 들어오긴 했지만, 엄밀히 따지면 동민과 의현은 그의 가족도 뭣도 아니었으니 만나기 싫다는 수감자를 억지로 질질 끌고 나올 수는 없었다.

“왜 자꾸 입술을 깨물어. 긴장돼?”

“어? 어, 좀…….”

김태원은 승낙했다.

“너 이런 모습 처음 본다. 도대체 묻고 싶은 미래가 뭔데 그래?”

오히려 면회실 로비에 들어서니 동민은 평온을 되찾았다. 오히려 미친 듯이 긴장한 것은 의현이었다. 동민은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의현을 바라보았다. 무의식중에 잘근잘근 씹던 입술이 붉었다.

“별거 아니야. 내가 언제 죽냐, 뭐 그런 거니까.”

정확히는 이번 회차도 스물네 살에 죽냐는 건데…….

의현은 제 목에 걸린 면회증을 만지작거리며 불안한 마음을 조금이라도 해소하려 노력했다.

“아, 그런 거 궁금하지! 근데 나는 오히려 그런 걸 알고 나면 더 불안할 것 같아. 당장 내일 죽는다고 하면 어떻게 해. 그럼 그동안 못 했던 거 하느라 회사도 다 때려치울 거고……. 물론 이 사람이 아무리 용하다고 해도 틀릴 수 있는 거지만.”

동민은 의현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몇 번 토닥여 주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 큰일은 일어나지 않을 테니까.”

“……모르겠다. 그랬으면 좋겠는데…….”

이미 지겹게 과거를 보고 온 의현에게 마냥 꽃길인 동민의 위로는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벽에 걸린 전자시계에서 초가 아주 빠르게 넘어갔다. 의현은 다리를 덜덜 떨다가 곧 앞머리를 쓸어 넘겼다.

“91004 김태원 수감자, 면회 신청하신 분들 들어오세요.”

“가자, 의현아.”

중문이 열리더니 익숙한 교도관 옷을 입은 사람이 의현과 동민을 불렀다. 동민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설레는 표정으로 앞장섰다.

“……미치겠네.”

실패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 때문에, 자꾸 조바심이 났다. 다시 살고 싶진 않았다. 스물네 살에 죽는 건 조금도 상관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그만 살고 싶어. 좀 죽었으면 좋겠어. 그런데 못 죽으니까 문제였다. 불사가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런 지옥 속에서.

“여기서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교도관은 밀폐된 좁은 공간 안에 동민과 의현을 앉혀 놓았다. 수감 시설에 있는 동안 면회 온 사람이 아무도 없어, 면회실은 처음 와 봤다. 문득 의현은 마음이 복잡해졌다.

“약간 무섭다. 으, 심장 아파. 너무 긴장돼…….”

동민은 제 가슴께를 부여잡으며 앓는 소리를 냈다. 어차피 여기까지 온 이상 돌이킬 수는 없었다. 의현은 깊게 숨을 내쉬고 고개를 들었다. 복도 끝에서부터 짤랑짤랑 수갑 소리가 들려왔다.

“헉, 왔나 봐!”

동민은 호들갑 떨며 의현의 허벅지를 팍팍 내리쳤다. 평소 같으면 슬쩍 다리를 치웠겠지만, 그럴 여유도 없었다. 두꺼운 철문이 끼익 스산한 소리를 내며 밀려났다.

“면회 시간은 91004 김태원이 의자에 착석하는 순간부터 시작됩니다. 보안상의 이유로 대화가 모두 기록 및 녹취되는 점을 유의해 주시길 바랍니다.”

교도관은 딱딱한 목소리로 규칙을 읊었다.

“91004 김태원, 자리에 앉아.”

“예, 예. 앉아야지요. 감히 누구 말씀이라고.”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로 긴장했었지만, 이 모든 사소한 감정은 김태원의 얼굴을 마주하자마자 파도처럼 씻겨 내려갔다.

“……김태원?”

자리에 앉아 바닥을 내려다보고 있던 김태원이 의현의 부름에 고개를 쳐들었다. 깎지 않아 덥수룩한 머리카락, 몇 개 남지 않은 치아와 검게 그을린 피부, 그리고 다 죽어 버린 초점 없는 동공.

“지금부터 내가 묻는 말에 한 치의 거짓 없이 대답해.”

김태원이다. 정말, 살아 있는 김태원.

“그게 이 빌어먹을 저주를 끝낼 방법이라는 거, 당신도 잘 알고 있을 테니까.”

의현이 먼저 손에 쥐고 있던 패를 깠다. 동민은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는 눈으로 의현을 바라보았다.

“성격이 개판이군.”

“…….”

“네가 오길 기다리고 있었지. 권의현.”

김태원은 이를 드러내고 음흉하게 히죽댔다. 이름을 알려 주지 않았는데, 그는 친근한 친구라도 부르듯 의현의 이름을 입에 올렸다. 헉, 뭔가를 보기 시작됐나 봐! 동민이 호들갑 떨며 의현을 바라보았다.

“첫 번째, 질문이야. 나는 이번에도 또 죽나?”

의현은 언제 긴장했냐는 듯 여유롭게 웃었다.

나는 패를 하나 깠어.

그러니까 네 손에 들고 있는 패를 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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