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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역의 회귀식 생존법-35화 (35/185)

35화.

김태원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다. 미래를 본다는 사람이 자기가 수감 시설에 갇힐 걸 모르고 범죄를 저지를 수가 있나? 그렇게 해야만 했던 이유가 있는 건 아니고?

“……역시 이상해.”

이런 일이 있을 줄 알았다면 그때 김태원이랑 얘기를 좀 하는 거였는데. 그땐 상황이 급박해서 아무 얘기도 못 했다.

의현은 헌터부 정보망이 뜬 화면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의현의 기억 속 김태원은 이가 다 빠진 노인네였는데, 정보망 속 사진은 그래도 꽤 정정하게 보였다.

이름 : 김태원

죄목 : 현주 건조물 방화 치사상

특수 법원 1심 : 무기 선고

특수 법원 최종심 : 무기 선고

현재 특수 능력 수감 시설 복역 중

굳이 따지자면 교란이나 선동 같은 죄명으로 붙잡혔을 줄 알았는데, 예상외로 죄명은 방화였다. 의현은 최종심 판례와 함께 수사일지를 꼼꼼히 읽어보았다.

“……얘도 시초교였어?!”

수감 시설에서 신이 재림하고 어쩌고저쩌고 떠들었을 땐 그냥 종교에 미친 사람인 줄 알았는데, 그게 시초교와 연결되어 있을 줄은 몰랐다. 의현은 스크롤을 내렸다. 아주 상세하진 않았지만, 시초교 예배당에 불을 지른 김태원 때문에 상당수의 시초교 성도들이 죽었다고 적혀 있었다.

도대체 알 수가 없었다. 윤화를 빼내기 위해 갔던 18지구에도 시초교 사람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사람이라면 분명 지성이 있을 텐데, 거기 사람들은 주관을 잃어 버린 듯 멍청하게 굴었다. 아직도 그런 곳이 많다는 사실이 믿기 힘들었다. 그러니까 누군가는 학문을 공부하고 취미에 돈을 쓸 때, 누구는 시초교라는 말도 안 되는 종교에 빠져 인간임을 잊고 허우적거리고 있다는 사실이.

추가 정보를 얻기 위해 김태원의 과거로 기간을 잡고 검색을 해 보려 했으나, 보안 코드가 필요하다는 문구가 떠올랐다. 여기서 더 파고들면 정보망에 의현의 이름이 기록으로 남을 것이다.

“일이 꼬였군.”

의현은 제 입술을 씹으며, 제 생각보다 좀 더 지저분한 것들이 김태원의 과거에 얽혀 있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주말에 뭐 해? 큰아버지 생신 파티 있는데, 너도 올래? -차동민-]

핸드폰이 몇 번 울려 의현은 화면을 뒤집었다. 동민에게서 온 문자였다. 미쳤어? 내가 거길 왜 가.

……잠깐만.

평소처럼 무시하고 넘기려던 의현의 눈에 단어 하나가 눈에 띄었다. 누구 생일 파티? 큰아버지?

‘큰아버지가 법 관련 부처에서 일하시는데, 직위가 꽤 높으셔. 말씀드리면 면회 정도는 가능할 수도 있어.’

이게 맞는 건지 확신할 수 없었다. 의현은 누구와 어울리는 건 딱 질색이었으며, 엘리트 사교 모임이든 뭐든 권중섭의 강요가 아니고서는 자의로 뭘 참여한 적이 없었다.

[주말 언제, 몇 시?]

그래도 할 수 있는 거라면 이젠 뭐든 해야만 했다.

* * *

기어 나온 조그마한 괴물의 머리통을 콱 지르밟으며 의현은 흐물거리는 포탈을 쳐다보았다. 지원팀 직원들이 웅성거리며 안전선 안으로 들어오려고 혈안이 된 사람들을 내보냈다.

“물러서세요! 안으로 들어오시면 안 됩니다! 나가세요!”

이렇게 조그마한 포탈은 그 안에 있는 괴물의 수도 적을 것이다. 의현은 지원팀이 준 무전기를 건네받으며 포탈 청소 작업을 준비했다.

“춥다. 안 그래?”

“더럽게 추워. 몸도 굳고.”

“그래도 생각보다 포탈이 작아서 다행이야. 걱정했던 것보다 빨리 끝날 것 같아서.”

포탈 내부로 들어갈 준비를 끝냈다. 사람들은 난생처음 보는 포탈에 두려움과 호기심을 동시에 느꼈다. 뒤로 물러나라는 지원팀의 말을 귓등으로 안 들어 처먹는 행태를 가만히 보고 있으면, 없던 인류애도 떨어지기 일쑤였다.

―작업 시작하겠습니다.

귀에 차고 있던 무전으로 지원팀 직원 목소리가 들렸다. 안에서 괴물이 새끼를 쳤는지 조그마한 새끼 괴물들이 계속해서 포탈 밖으로 기어 나오고 있었다.

“으아악! 이게 뭐야!”

오지 말라고 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새끼 괴물은 구경하는 사람 다리에 붙어 피를 쭉쭉 빨아 댔다. 바람 빠진 풍선 같던 몸통이 순식간에 피로 가득 찼다.

“도와드려야겠다.”

동민은 고민도 없이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의현은 차가운 표정으로 스멀거리는 포탈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눈송이 떨어지듯 하늘에서 떨어지는 수십 마리의 새끼 괴물들은 거머리 같아서 혐오스럽기 그지없었다.

“뭉쳐 놓으니까 더 징그럽네요…….”

의현이 허공에 공기층을 오목하게 만들자, 괴물들은 그릇에 감기듯 그 위로 차곡차곡 쌓였다.

“연구팀 실험을 위해 다섯 마리 정도는 생포하라고 했으니, 나머지만 죽이죠.”

의현이 허공에 대고 손가락을 몇 번 까딱이자, 쌓여 있던 수십 마리의 새끼 괴물 중 일부가 똑 떼어졌다.

“이쪽이에요. 바로 얼릴게요.”

자연계 빙결 능력을 가지고 있는 팀원이 손을 들었다. 의현은 그녀의 앞에 새끼 괴물을 떨어트려 주었다. 그녀는 순식간에 표본을 얼려 미리 제공된 가방에 깔끔하게 집어넣었다.

“나머지는 처분해도 됩니까?”

―네. 처분하셔도 됩니다.

답변은 명쾌했다. 의현이 주먹을 꽉 쥐자, 허공에 쌓여 있던 괴물들이 순식간에 꽉 짓눌려 죽었다. 마치 과일 주스라도 짜는 것 같았다. 찐득찐득한 초록색 핏물이 고여 바닥에 떨어졌다.

“으으……. 속이 너무 안 좋아요. 토할 것 같아.”

“확실히 보기 좋은 장면이 아니긴 하죠.”

의현은 짧은 문장으로 주변 사람들이 느끼는 메스꺼움을 한 번에 포장했다. 현장에 처음 나오는 신입들이 많았다. 새끼 괴물들은 확실히 크기에 비하면 그리 큰 공포를 주진 않았지만, 역겨움만은 뒤지지 않았다.

“안쪽으로 더 들어가죠. 이것들을 계속 뱉어 내는 모체가 분명히 안에 있을 겁니다.”

축축한 초록색 핏물을 밟으며 의현이 더 깊은 곳으로 향했다. 한 마리도 남김없이 싹 처리해야 했다. 영양분을 흡수하지 못한 포탈이 결국 자멸할 수 있도록.

“저기 안쪽에 뭔가 있어요!”

누군가 소리쳤다. 분홍색의 덩어리 같은 것이 포탈의 벽에 들러붙어 있었다. 후욱, 후욱-. 간헐적으로 숨을 내뿜는 그것의 근처에서는 음식물 썩는 냄새가 났다.

“우, 우웩-!”

누군가 바닥에 얼굴을 처박고 헛구역질했다. 가뜩이나 좁은 포탈에 온갖 곳에서 이상한 냄새가 퍼지니, 정말 죽을 맛이었다.

“의현아!”

멀리서 동민이 뛰어왔다. 바깥에서 또 무슨 소동에 휩싸였는지 얼굴에 상처가 난 채였다. 귀하게 키웠을 텐데, 쟤네 집에선 아들이 헌터 일을 한다는 것에 아무런 거부감이 없었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으, 이게 다 뭐야? 징그러워 죽겠다. 진짜.”

“너 능력 발현했을 때 집안 분위기 어땠어?”

“갑자기?”

의현이 제게 질문하는 게 반가운 건지 동민은 상처가 난 제 뺨을 소매로 대충 문질러 닦았다.

“어머니는 우셨는데, 아버지는 덤덤하셨어. 누군가는 할 수밖에 없는 일이라면서 결국 응원해 주시더라. 그래서 나도 뭐 그냥 하게 된 거지.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 맞으니까.”

동민은 친절했다. 그를 볼 때면 윤화가 같이 떠오르곤 했다. 윤화는 다정했으니. 친절은 다정과 몹시 닮아 있었는데, 근본적으로 그 둘은 결이 달랐다. 의현은 그들이 가진 다정과 친절을 좋아했고, 그들이 계속 그렇게 존재하기를 바랐다.

“……좋네.”

의현은 실소했다.

“뭐가?”

구역질하는 신입의 등을 탁탁 두드려 주며 동민이 물었다.

“그냥. 잘 모르겠어.”

의현도 제가 무슨 소릴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이 개체가 포탈 겉면에 너무 딱 달라붙어 있어서, 해체 작업을 진행해야 할 것 같습니다!”

팀원 중 누군가가 말했다. 동민의 능력은 신체 강화였다. 동민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기다려 봐 내가 잘라 볼게.

“그럼 우리는 남은 새끼 괴물들이 있나 더 둘러보고 올게요. 가죠, 의현 씨.”

“네.”

아직도 몇 마리의 살아 있는 개체들이 있었다. 인간만 보면 달라붙어 피를 뽑아 먹으려고 하는 그 조그만 녀석들을 풍선 터뜨리듯이 팍팍 짓밟는 의현의 표정은 무섭도록 차분했다.

‘내가 처음 능력을 발현했을 때 권중섭이 어떤 반응을 보였더라…….’

아무리 생각을 해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이런 일을 마치고 나면 헌터가 각광받는 직업이라는 사실이 더 이해되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이건 말이 좋아 영웅이지 청소부와 다를 바가 없었다. 물론 치우는 건 처리팀에서 주로 맡아서 했지만, 어쨌든 살아 있는 괴물들을 싹 박멸하는 건 비슷했으니까.

간단한 외근이었다. 정말 간단해서 사실 힘도 별로 들이지 않았다.

“죽을 것 같아요. 저는 다음부터 외근이 있으면 밥을 굶고 와야 할 것 같아요. 이 더러운……. 더러운…….”

같은 팀에 있던 신입 남자애가 선배에게 칭얼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의현은 귀에 끼고 있던 무전기를 벗어 다시 지원팀에게 제출했다.

“지원팀에서 경과를 확인한 후, 포탈이 72시간 안에 사라지면 공지를 띄우겠습니다. 오늘 다들 수고하셨어요.”

청소를 끝내고 나오니 안전선 주변에 사람은 없었다. 아마 초반에 새끼 괴물에게 사람이 물린 걸 보고 혼비백산해서 도망갔으리라 추측됐다. 그러니까 가라고 할 때 갔으면 좋았잖아.

“자자, 해산합시다! 오늘 수고 많이 했어요!”

외근 나갈 땐 샤워 시설이 딸린 퇴근 차량이 항상 준비되어 있었다. 현장팀 근무자를 위한 헌터부의 배려였다. 리무진처럼 길고 뚱뚱한 차에는 샤워 시설뿐만 아니라 침대와 주방까지 있었다.

포탈 벽에서 강제로 떼어 낸 모체가 괴상한 소리로 울었다. 동결 능력을 가진 헌터가 모체의 몸을 통째로 얼려 아이스박스에 집어넣었다.

“샤워 먼저 할 거지? 찝찝하다.”

동민의 말에 의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온몸이 초록색 핏물로 젖어 끈적였다. 얼른 샤워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 김태원에 대해 더 알아봐야 했다.

“아! 큰아버지 파티 말이야…….”

동민이 뭔가 생각났다는 듯 말을 꺼냈지만, 의현이 이미 샤워실로 들어간 후였다.

“음…….”

아무 의미 없었다. 샤워는 오물이 묻으면 당연히 해야만 하는 거니까. 동민은 머쓱한 얼굴로 뒷머리를 긁적거리다가 이내 입고 있던 유니폼을 벗으며 같은 샤워실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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