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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역의 회귀식 생존법-30화 (30/185)

30화.

사회 부적응자는 호기롭게 의현에게 달려들었다. 흐아압! 입 밖으로 낯부끄러운 기합 소리를 내면서.

“떨지 말고, 손을 쭉 뻗어야지.”

멱살을 잡기 위해 뻗어진 손은 가녀린 게 무슨 나뭇가지 같았다. 의현은 부적응자의 달달 떨리는 손을 붙잡아 자세를 교정해 주었다.

“너도 다른 애들처럼 나를 우습게 보는 거냐?! 무시하지 말라고!”

부적응자는 의현에게 붙잡힌 손을 거칠게 빼냈다. 의현은 어깨를 으쓱였다.

“미안한데, 나는 네가 누군지도 몰라.”

“그게 나를 무시하는 거잖아!”

부적응자는 악에 받친 듯 의현을 향해 주먹을 마구잡이로 휘둘렀다. 어떻게든 옷자락을 잡아 보겠다는 속셈인 듯했다. 이제 막 헌터부로 발령받은 신입은 어떻게 해야 제 몸을 적재적소에 잘 사용할 수 있는지 잘 알지 못했다.

휘적거리는 손을 가볍게 피하며 의현은 가볍게 남자의 목을 확인했다. 순식간이었다. 동작엔 군더더기가 없었고 행동은 재빨랐다.

“네가 아닌 건 아주 잘 알겠어.”

목이 늘어난 폴라를 붙잡고 남자가 씩씩댔다. 제 마음대로 안 되면 화부터 내는 어린애 같았다. 의현은 제 손목에 걸린 시계로 시간을 확인했다. 남은 시간은 한 시간 반. 이 넓은 산을 뒤지고 다니기엔 한참 부족한 시간이었다.

“잠깐 놀아줬으니까 가라.”

“뭐? 노, 놀아줘?!”

남자는 분노하며 다시금 의현에게 달려들었다. 한주먹거리도 안 되는 상대였지만, 상해를 입히면 안 된다는 조건이 있었다. 하지만 남자는 의현의 옷자락을 붙잡기 위해 발길질도 서슴지 않았다. 흙먼지가 달라붙은 운동화는 허접하게 허공에 처박혔다.

“목을 보여 주라고! 네가 정말 꼬리가 아니라면 목을 보여 주란 말이야!”

“우기지 말고 네 실력으로 까라고.”

“실력이 안 되니까……!”

“그럼 아쉽게도 못 보겠네.”

“뭐?!”

“그냥 기절해 있어, 차라리.”

어차피 썩 도움도 안 될 것 같은데.

의현은 무표정으로 남자의 급소를 내리쳤다. 남자는 소리 한 번 내지르지 못하고 꽥 기절했다.

“……기절시켜도 되는 거냐고.”

“시끄럽잖아.”

“그렇긴 한데……. 일단 우리 쪽 진영으로 데려갈게. 여기 누워 있으면 얼어 죽을 수도 있으니까.”

의현과 같은 팀인 동기는 끙끙거리며 남자를 등에 업었다. 팀원이 이렇게 독단적으로 굴고 있는 걸 알면 2팀 애들도 썩 기분이 좋진 않으리라.

“데려다 놓고 다시 올게. 이 근처에서 너무 벗어나지 마.”

“알겠어.”

“희민이한테 우리 쪽도 어떻게 됐는지 좀 듣고 와야겠다.”

동기는 남자를 등에 업은 채로 빠르게 뛰어 멀어졌다. 나무 위에 걸린 CCTV에선 빨간 불빛이 간헐적으로 깜빡였다. 의현은 먼지 묻은 제 옷을 탈탈 털고 걸음을 옮겼다.

눈이 녹지 않은 바닥은 걸을 때마다 사각사각 눈이 밟혔다.

혹시 이런 데에 숨어 있는 건 아니겠지? 의현은 낙엽과 눈이 뭉친 곳을 발로 콱 지르밟으며 생각했다.

“아악!”

“……?”

의현은 발을 슬그머니 떼어냈다. 낙엽이 꿈틀거리더니 그 안에서 사람 하나가 튀어나왔다.

“……너네 진짜 가지가지 한다.”

난생처음 보는 괴상한 전략에 할 말을 잃은 의현이 작게 실소했다. 낙엽 사이에서 튀어나온 여자는 머리카락에 붙은 낙엽을 떼어 내며 뒤로 물러섰다.

“내가 여기 있다는 걸 어떻게 알았지?!”

“…….”

“우리 쪽 작전은 철저했어!”

여자가 소리치자마자 갑자기 허공에서 2팀 애들이 떼로 몰려들었다. 거의 스무 명은 됐다. 뜬금없는 상황에 오히려 당황한 것은 의현이었다.

어이가 없었다. 물론 숨어 있을 수 있지. 그럴 수도 있는데. 이 여자 하나 찾았다고 2팀이 이렇게 단체로 튀어나오면…….

“……꼬리가, 너일 수밖에 없잖아.”

의현은 목표를 확인했다. 여자는 우글거리는 팀원들을 뒤로하고 재빨리 멀어졌다. 쓸데없는 움직임을 줄이고 최대한 빨리 꼬리잡기를 끝내기 위해선 여자의 목걸이를 반드시 뜯어야 했다.

“춥다. 빨리 끝내자.”

“우린 여기서 시간이라도 끌어야겠거든.”

“와, 진짜 별로네.”

10시 50분. 몸이 굳기 딱 좋은 시간이다. 의현은 슬쩍 눈을 들었다. 동민은 여기 없었다. 차동민을 꼬리로 했을 가능성도 생각했었는데, 그건 아닌 모양이었다.

단체로 의현을 잡아 두는 사이 여자는 이미 멀리 달아났다. 빨리 여자의 뒤를 쫓아야 했다. 의현은 입술을 씹으며 조금 돌아 여자가 사라진 방향으로 갈 계획을 세웠다. 체력 소모가 좀 있겠지만, 스무 명이나 되는 인간들을 능력도 없이 상대하는 것보다는 나았다.

“야! 거기 서!!”

의현은 빠르게 뒤를 돌아 달렸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당황한 2팀 애들이 우르르 의현의 뒤를 쫓아왔다.

“위에서 나올 줄은 몰랐지?!”

“하…….”

무슨 나무에서 열매 떨어지듯이 사람이 뚝뚝 떨어졌다. 미리 나무 위에 올라가 대기라도 하고 있던 모양이었다. 이쯤 되니 조금 전 혼자서 의현의 목을 본다고 난리 치던 부적응자도 계획적으로 접근할 걸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지금 이 개허접한 모든 것이 작전이라면, 또 제법 그럴듯했으니까.

“……머리 좀 썼구나?”

의현은 자리에 멈추어 섰다. 사방에서 동그랗게 의현을 둘러싸기 시작했다. 이젠 거의 서른 명쯤 됐다. 이렇게 무식하게 나올 줄 몰랐는데……. 의현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왜 굳이 나한테 시간 낭비를 하는지 모르겠는데.”

“시간 낭비라니. 이건 투자야.”

“투자?”

“네가 우리 쪽 목을 확인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어. 그래서 네가 머리일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긴 한데 말이야.”

2팀의 임시 리더가 나지막이 말을 이었다.

“그래도 확신할 수가 있어야지. 너라면 꼬리인데 머리인 척할 수도 있잖아?”

이게 2팀이 내린 결론인 듯했다. 누군지도 모르는 꼬리를 찾아 나서느니, 일단 머리든 꼬리든 확실한 권의현을 먼저 잡아 확인하자.

“나쁘지 않은 가설이야. 솔직히 말하면 좀 놀랐어.”

어디서부터 함정이었던 걸까? 알 수 없었다. 의현은 양손을 들고 제자리에 섰다.

“내 목 하나 확인하려고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였다는 게 흥미롭네.”

“추우니까 빨리 끝내자고 했지? 그렇게 해 줄게.”

임시 리더는 확신이 가득한 표정으로 의현에게 다가왔다. 앞뒤로 우르르 몰려든 사람들이 의현의 앞뒤를 가로막았다. 완전히 포위당한 의현이 픽 웃었다.

“네가 볼래, 아니면 내 손으로 직접 보여 줄까?”

“당연히 내가 직접 확인해야지.”

“그래, 그럼.”

다들 구르고 넘어져 흰 폴라가 얼룩져 있었는데, 의현의 검은 폴라는 말끔했다. 의현의 목을 향해 손을 뻗는 임시 리더의 표정이 어쩐지 긴장돼 보였다. 같이 쭉 학교를 다녔지만, 의현과 이렇게 길게 대화를 나눠본 것도 처음이었다. 권의현이라니. 그 권의현이라니…….

의현은 속으로 도망칠 타이밍을 쟀다.

“……!”

그때 군중 속에서 튀어나온 손 하나가 의현의 목 폴라를 부드럽게 잡아 내렸다.

“……네가 아닐 줄 알았어.”

동민이었다.

“…….”

의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쭙잖게 의현의 목 주변에 손을 대고 있던 임시 리더가 당황스러운 얼굴을 했다. 누가 봐도 제가 폴라를 내렸어야 했는데, 누군가가 개입할 줄 몰랐던 모양이었다.

이 타이밍이다. 바로 지금.

의현은 제 앞에 멍청히 있는 남자의 머리를 훌쩍 뛰어넘어 최고 속도로 뛰었다. 여자를 찾아야 했다. 그래야 지겨운 이 꼬리잡기를 끝낼 수 있어.

“권의현이 꼬리가 아니야…….”

게다가 순식간에 놓쳤다.

이건 완전히 자신들의 실수였다. 의현의 하얀 목이 드러나는 그 순간, 2팀 팀원들은 목걸이를 확인하기 위해 정신이 팔렸고 그 틈을 타 의현은 순식간에 멀어졌다.

“이럴 수가 없는데, 이럴 수가 없는데…….”

몇 개의 날카로운 시선이 동민에게 날아왔다. 동민은 고개를 푹 숙였다. 갑자기 네가 난입해서 모든 상황을 망쳐버렸다고 말해도 솔직히 할 말이 없었으니까.

고분고분하게 서 있던 권의현.

다른 사람 손을 타기 위해 얌전히 기다리는 권의현.

그 지루해 죽겠는 표정.

그걸 보는 순간 속이 확 뒤집혀 충동적으로 제가 먼저 손을 댈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우리가 친구로는 지낼 수 있겠지?’

기억하고 있었다. 그날 의현이 했던 말.

‘네가 다신 고백 안 한다면.’

이건 명백한 동민의 실수였다.

하지만 동민은 이 감정까지 실수라고 말하고 싶지 않았다.

해수는 잔뜩 주눅 들어 팀원들의 뒤를 따랐다. 3인 1조라고 해서 제멋대로 팀을 짜 준 희민은 해수가 뒤에서 쫓아오건 말건 신경 쓰지 않고 동기들과 떠들었다.

“…….”

낯선 것은 항상 해수를 두렵게 했다. 낯선 공간, 낯선 사람, 낯선 환경. 해수는 얼른 안정을 되찾고 싶었다. 친절하게 굴어 주는 사람들 틈에서 적당히 웃으며 그냥 그렇게.

“희민아!”

반대편에서 검은 폴라를 입은 남자애가 뛰어왔다. 등에 무언가를 업고서.

“무슨 일이야?”

앞서 걷던 희민이 걸음을 멈추었다. 같은 팀 남자는 숨을 헉헉거리며 저쪽에서 의현이 있었던 일에 대해 떠들었다. 제대로 다 이해할 순 없었지만, 의현이 꽤 난감한 상황인 듯했다.

“뭐, 뭐야……!”

몇 차례의 큰 소음이 들렸다. 바로 이 근처였다. 2팀 애들이 떼로 몰려 왔다는 얘기를 들은 희민은 해수를 향해 소리쳤다.

“뛰어!”

해수는 당황한 얼굴로 어디론가 뛰어갔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아무 일도 없었는데, 순식간에 상황이 뒤집힌 게 너무 비현실적이었다. 뭐가 어떻게 된 거지? 아무도 해수에겐 이 상황에 대해 알려 주지 않았다.

‘아무도 너를 모르니까, 네가 꼬리를 맡아야 해.’

‘나……나는 그런 거 못 해…….’

‘못한다고 하지 말고 현실적으로 따져 보라고. 네가 무슨 능력을 갖고 있는지 무슨 등급을 받았는지 같은 팀인 우리도 모르는데, 상대편이 알 수 있겠냐고.’

팀원들은 해수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어떻게 생각해도 그게 이득이니까 너는 그렇게 해야 해!’ 당사자를 빼놓은 채 진행된 회의에서 김해수는 결국 꼬리가 되었다.

“으, 으으…….”

숨이 목 끝까지 차올랐다. 해수는 바닥에 토악질을 뱉어 내며 수풀 속으로 기어들어 갔다. 뛰느라 신발이 벗겨진 건지 양말만 간신히 발에 걸려있었다.

“무서워. 무서워. 무서워…….”

공황 장애 증상이었다. 해수는 사지를 덜덜 떨며 스스로를 두려움 속에 몰아넣었다. 밖은 어둡고 차가웠다. 언젠가 분명히 이런 상황을 겪어 본 적 있던 해수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몸을 둥글게 말았다.

파삭-.

어디선가 나뭇가지 밟는 소리가 났다.

“헉, 허억…….”

해수는 제 입을 양손으로 틀어막은 채 눈을 크게 떴다. 어두운 가운데 사람 인영 하나가 해수를 향해 똑바로 걸어오고 있었다.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해수가 도리질 치며 뒤로 기어갔다. 터벅터벅 걷던 인영은 걸음을 멈추는 듯하다가 입을 열었다.

“나예요.”

무뚝뚝한 목소리는 낮고 무심했다.

“……지게 안 한다고 내가 말했죠.”

해수는 숨을 몰아쉬었다. 의현은 어둠 속에서 제 모습을 드러냈다. 입고 있던 검은 폴라는 처음보다 꽤 얼룩져 있었지만, 얼굴은 늘 그렇듯 오만했다.

“나와요. 이겼으니까.”

의현은 주먹 쥐고 있던 손을 내보였다.

그 손끝에서 아름답게 빛나는 것은 분명, 2팀의 목걸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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