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화.
카드 키를 찍고 503호로 들어서며 동민은 진땀을 뻘뻘 흘렸다. 소란의 주인공과 2박 3일을 같이 보내야 한다는 게 제법 신경 쓰였다.
방은 차를 마실 수 있는 거실 공간과 침대가 있는 침실 공간이 분리되어 있었다. 동민이 침실 미닫이 묻을 열자, 누워 있던 의현이 고개를 돌려 동민을 바라보았다.
“……어, 안 자고 있었어?”
“신고했어.”
“그게 너였어?”
신고받고 왔다며 타이밍 좋게 나타난 담당자의 얼굴을 떠올리며 동민은 푸핫 소리 내어 웃었다.
“아무튼 진짜 웃겨.”
동민이 도대체 왜 웃는지 이해 못 하겠다는 얼굴로 의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처음 보는 얼굴의 사람이 동민 옆에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아! 밖에서 만났는데 503호 같이 쓰게 된 사람이야. 김해수 씨.”
“…….”
“해수 씨, 인사…….”
“…….”
“아하하, 낯을 좀 가리시는 것 같아. 해수 씨 이쪽은-.”
“권의현입니다.”
의현은 짧게 제 소개를 끝냈다. 김해수는 눈을 크게 뜨며 의현을 향해 손가락질했다.
“……권중섭 장관 아들?!”
“해수 씨, 초면에 사람한테 손가락질은 좀…….”
손가락질당한 건 의현인데 동민이 안절부절못했다. 의현은 어깨를 으쓱이며 대충 답했다.
“예, 뭐.”
“대박…….”
김해수는 신기하다는 듯 혼자 중얼거렸다. 키가 160센티미터 정도인 해수는 뼈마디도 가늘고 머리도 길어 어떻게 보면 여자로 오해할 것 같기도 했다. 동민도 목소리를 듣기 전엔 여자라고 생각했으니.
“나 진짜로 좀 잘게. 방송 나오면 깨워 줘.”
“그래. 잘 자.”
의현은 꾸물꾸물 이불 속으로 파고 들어갔다. 테스트를 치면 기초 체력 같은 건 나쁘지 않았는데, 예민해서 잠을 깊이 못 자 항상 피곤한 것 같았다.
“해수 씨도 주무실래요?”
동민의 물음에 해수는 고개를 저었다.
“그럼 저희는 나가 있죠. 의현이 자니까요.”
동민이 미닫이 밖에서 손짓했다. 해수는 고개를 푹 땅에 처박은 채 동민의 뒤를 따라 침실에서 나왔다.
의현이 잘 수 있는 건 두 시간 남짓, 동민은 그동안 미치도록 낯을 가리는 해수와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야 할지 벌써 난감하기만 했다.
밥은 평범했다. 호화로운 식단이라고 해도 맨날 그런 거 먹고사는 애들 눈에는 특별할 게 없었다. 잠에서 깬 의현은 얼굴이 퉁퉁 부은 채 브로콜리를 포크로 쿡 찍었다.
“저 혼자 먹을게요, 해수 씨.”
“드세요.”
“괜찮은데……. 하하…….”
동민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주변 눈치를 보았다. 해수는 친절히 과일 껍질을 까 동민의 그릇에 올려 주었다.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핑크빛 분위기에 의현 주변에 앉은 동기들이 호들갑을 떨었다.
“차동민 쟤 뭐냐……?”
“성격이 저렇게 좋은데 이상한 애가 안 꼬이는 게 더 이상하지. 초등학교 때부터 쟤 주변엔 항상 이상한 애가 하나씩은 있었어.”
“어쩔 수 없다. 이것도 업보다.”
어디선가 스피커 켜 놓은 것처럼 말소리가 아주 잘 들렸다. 의현은 빵에 잼을 발라 와삭 씹으며 동기들의 말에 공감했다. 확실히 박혜영 사건을 생각하면, 매사 착한 차동민은 자기 인생을 알아서 꼬는 게 맞았다.
“의현아, 너 커플 사이에 껴서 어떡하냐?”
동기 중 한 명이 키득키득 웃으며 속삭였다.
“뭘 어떡해, 그냥 있는 거지.”
“재미없는 놈.”
“나도 자야 하는데 방을 옮길 수는 없잖아.”
설령 동민과 해수가 정말 그런 관계로 발전한다고 해도, 고작 며칠 못 참아 사고 칠 정도로 개념이 없으리라 믿고 싶진 않았다.
“얘들아 그런 거 아니야!”
동민이 강하게 부정했다. 동기들은 이미 가늘게 눈을 뜨고 열정적으로 호응했다. 그 모습이 어이없게 웃겨 의현이 작게 웃었다.
“진짜 아닌데……!”
동민은 계속해서 억울해했지만, 해수는 식사 시간이 끝날 때까지 아무런 부정도 하지 않았다.
―연수생들은 모두 1층 대강당으로 모여 주세요.
여유롭게 식사를 마치고 연수생들은 방송에 맞춰 강당으로 향했다. 헌터들의 일반 연수에도 사용되는 장소이니만큼 강당의 크기가 어마어마했다.
의현은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고 휘적휘적 걸었다. 동민에게서 자꾸만 도와 달라는 시선이 느껴졌지만, 의현이 해 줄 수 있는 건 없었다.
“안녕하세요, 신입 사원 여러분. 연수원장 김학천입니다. 이렇게 여러분들을 만나 뵙게 되어 참으로 즐거운 마음입니다!”
연수원장은 단상에 서서 마이크를 잡고 인사했다. 연수원장 주변으로 다부져 보이는 헌터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꼭 무슨 군대라도 된 듯이.
“무섭다…….”
해수가 작게 중얼거렸다.
“짧은 연수지만, 이 기회를 발판 삼아 여러분들이 크게 성장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연수원장은 우렁찬 목소리로 짧게 연설을 마무리했다.
축하의 말이 이후로도 삼십 분간 이어졌다. 저녁을 먹은 후라 가뜩이나 잠이 쏟아졌는데, 하필이면 식사 후에 연설을 듣게 일정표를 짜 놓은 게 기가 막혔다.
연수생들의 절반 정도가 고개를 꾸벅거리며 얕은 잠에 빠져들 무렵, 설명회를 진행했던 여자 담당자가 마이크를 옮겨 받았다.
“자! 모두 피곤하시죠? 아침 일찍 출발해서 반나절을 이동만 했으니 피곤하신 거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여러분들도 알다시피, 오늘은 특별한 마지막 일정이 준비되어 있거든요.”
상냥한 말투였지만, 졸지 말라는 명확한 뉘앙스였다. 꾸벅꾸벅 졸던 연수생들이 깜짝 놀라 눈을 번쩍 떴다.
“그것은 이름 하야, 실물 포탈 관람!”
펑! 어디선가 작게 폭죽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담당자는 작은 소리로 웃다가 금세 말을 이었다.
“포탈의 경우, 일정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곤 하잖아요. 모두 이론 시간에 배웠죠? 하지만 몇몇 포탈은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는 경우가 있거든요. 연수원이 이곳에 위치하게 된 이유도, 현존하는 포탈이 근처에 있기 때문이랍니다!”
담당자는 무척이나 설레어 보였다.
일정표에는 단순히 ‘포탈 관람’이라고 적혀 있었기에, 실제가 아닌 모형이나 미디어 관람을 생각했지, 실제 포탈일 줄은 몰랐다.
“자자! 그럼 버스 타고 왔던 대형으로 모여서, 포탈로 이동하기로 할까요? 다들 담당자 따라 모이세요!”
기억은 잘 안 났지만, 뭐 이런 체험이 있었던 것 같기도 했다. 사실 대부분을 무료하게 살아서 의현의 인생에서 명확하게 기억에 남는 건 별로 없었다. 굳이 따지자면 Z 정도일까.
“말도 안 돼! 포탈이라니, 정말 말도 안 돼!”
동민이 여러 차례 경악했다. 연수생들이라고 해서 모두 현장에 나가는 헌터는 아니었고, 누구는 행정팀에, 누구는 지원팀에 배정되는 등 각자 역할이 분담되어 있었다. 그러니 현장팀이나 마주할 포탈을 직접 보게 되는 건 어쩌면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도 몰랐다.
“무서워요…….”
해수는 동민의 팔을 붙잡고 그 뒤로 숨었다.
포탈은 오묘한 색으로 빛났다. 어떻게 보면 오로라같이 아름다웠으나 어떻게 보면 물에 떨어진 기름처럼 기이하고 지저분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혼자 떠 있는 포탈로 한 사람씩 줄지어 사라졌다.
“다들 손에 손전등 들고 있죠? 안전 바 처리된 곳은 자유롭게 관람할 수 있습니다. 저희 헌터부에서 이 포탈은 철저하게 관리하고 있어 괴물을 만날 위험은 전혀 없으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아악! 여기 뼈, 뼈가……!”
“그건 괴물의 뼈네요. 전시하려고 둔 거니까 만지면 안 되고 눈으로만 봐 주세요.”
어떤 포탈은 불구덩이 같기도 했는데, 여긴 그냥 일반 동굴같이 생겨 비교적 걸어 다닐 만했다. 이미 여러 차례 포탈 청소 업무를 수행한 전적이 있던 의현에게 이 모든 건 신기하기보단 그저 피곤함의 연장선이었다.
“여기는 길이 좁으니까, 한 팀씩 이동하겠습니다. 무단이탈하면 벌점 부과할 테니까 순서 지켜서 앞으로만 이동하세요.”
포탈은 깊은 곳으로 갈수록 점점 더 어둡고 추웠다. 가만히 있어도 입김이 나와 해수는 몸을 벌벌 떨었다.
“다음, 503호!”
동민, 해수, 의현은 손전등을 들고 좁은 길목 앞에 섰다.
“실제로 들어오니까 진짜 좁고 축축하다. 불쾌해. 그치 의현아?”
“동민 씨, 저것 좀 봐요. 천장에 말라붙은 괴물 모형이!”
동민이 의현에게 말을 걸 때마다 해수는 예리하게 끼어들었다.
도대체 뭐 하는 거지? 하늘 다리 위에서 혜영이 동민에게 고백하던 장면을 볼 때랑 비슷한 기분이 들었다. 이도 저도 아니고 어중간하게 끼어 있는…….
“아! 동민 씨, 저 다리를 접질린 것 같아요!”
의현이 앞만 쳐다보고 가는 사이, 해수는 앓는 소리를 내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괜찮아요? 의현이한테도 얘기해야 하는데…….”
“이미 멀리 갔는데 굳이 부를 필요가 뭐가 있겠어요. 피곤해하는 것 같던데 먼저 도착해서 쉬게 두고, 저희는 좀 천천히 가요.”
해수는 말끝을 길에 늘이며 동민의 팔을 잡아끌었다.
“아…….”
난감한 상황에 동민은 거절하지 못하고 진땀만 뻘뻘 흘렸다. 하긴, 같이 가자고 불러 봤자 의현은 달갑지 않아 할 것이 분명했다.
“알겠어요. 해수 씨, 걸을 수 있겠어요?”
동민은 해수의 어깨를 단단히 붙잡고 지탱해 주었다. 아무튼 여기서 빨리 나가는 편이 좋을 테니까.
* * *
포탈의 끝은 처음 들어왔던 곳이었다. 손전등으로 제 앞만 비추며 걷던 의현은 불이 훤히 켜진 마지막 라인에 도착하고 나서야 동민과 해수가 곁에 없다는 사실을 자각했다.
“……아까까진 있었는데.”
그 아까가 도대체 언제 적 아까인지 확신할 수 없다는 게 문제였다. 이후에도 504호, 505호 팀이 차례대로 도착했지만, 동민과 해수는 없었다.
“저희 팀원이 사라졌는데요.”
의현의 말을 들은 담당자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당장 통제실 CCTV를 확인했다. 포탈은 교육적 차원에서 관리 중이라 거의 모든 곳에 CCTV가 설치되어 있다고 했다. 담당자는 화면을 쭉 돌리며 동민과 해수의 모습을 찾았다.
“쟤들이 지금 뭐 하는 거야?”
담당자가 스산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뭐지? 의현은 미간을 찌푸리며 분할된 화면에 집중했다.
안전선 안쪽에서 해수는 바닥에 쓰러져 있었고, 동민은 그 앞에서 엎드린 채 머리를 감싸 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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