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18지구에 갑작스럽게 등장한 포탈이 생중계되는 일은 없었다. 그저 지역 신문에 조그맣게 ‘사상자가 많았다’라는 식의 기사가 몇 줄 쓰였을 뿐이었다.
동굴 아래에 숨어 있던 택시 기사는 피 칠갑한 의현의 모습을 보고 경악을 했다. 처음엔 사람이 아니라 괴물인 줄 알았다면서 왁왁 소리치는 그를 한 대 쥐어 박고 싶었지만, 의현은 꾹 참았다.
비포장도로를 달리며 택시는 위아래로 덜컹거렸다. 의현은 창문에 머리를 기대며 축 늘어졌다.
“아니, 거 학생은 괜찮은 거요? 무척 빨리 뛰던데 혹시 뭐 육상 같은 거 하고 그러남?”
“아뇨.”
“하긴, 육상 한다고 해도 성인 남자를 번쩍번쩍 드는 게 예사롭지는 않지. 아니면 뭐 능력자인가 그런 거라도 되는 거요?”
“피곤하니까 말 좀 시키지 마세요.”
“떼잉, 까칠하긴…….”
쯧쯧 혀를 차는 기사를 보며 울화가 치밀었다. 애초에 저 택시 기사가 심심하다며 동네로 기어들어 가지만 않았어도 의현이 교주 무리와 대치하게 될 일은 없었을 것이 아닌가.
하지만 더는 아무것도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현재의 권의현은 휴식이 부족한 상태였다. 학교, 집, 저택 그 어디에서도 마음 놓고 쉴 공간이 없었다.
“……야.”
뒷좌석에 쪼그려 앉아 있던 윤화는 의현의 부름에 놀라 작게 움찔했다.
“놀라도 어쩔 수 없었어. 그게 최선이었으니까.”
“엄마 아빠는…….”
“몰라. 알 방법이 없지.”
의현이 차갑게 대꾸하자 윤화는 턱에 호두를 만들며 뚝뚝 눈물을 떨어트렸다.
“거 아기한테 쌀쌀맞게도 말하네! 저 나이 때는 원래 엄마 아빠가 하늘이고 세상인데, 어휴. 가엾어서 이걸 어쩌나…….”
기사는 의현이 들으라는 듯 큰 목소리로 외치며 윤화를 두둔했다.
왜 엄마 아빠를 구해 주지 않았느냐고 따져 물을 법도 했지만, 윤화는 그저 조용히 눈물이나 흘렸다. 아마 예전에도 그랬겠지. 자기가 낸 불에 온 동네가 다 타들어 갔을 때도 얜 어쩔 도리가 없어 울고만 있었겠지. 고작 중학생 정도의 나이였을 테니까.
“한숨 자.”
눈으로 보지 못했다고 해도 귀로는 들었을 것이다. 그 예배당에서 도대체 무슨 일들이 있었던 건지.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을 겪고서 태연하게 잠들 아이는 아마 없겠지만, 그래도 의현은 윤화의 눈 위에 손을 올려 주었다.
“복잡한 건 일단 자고 일어나서 생각해도 돼.”
“……자고 일어나면 괜찮아질까요?”
의현의 손바닥이 축축하게 젖었다. 평소 같으면 타인의 체액이 닿자마자 질겁했겠지만, 오늘은 이상하게 괜찮을 것 같았다.
“그건 자고 일어나 봐야 알겠지.”
“…….”
“잘 자라.”
몸살이라도 걸린 듯 온몸이 쑤셨다. 며칠간 하루에 두 시간 정도밖에 못 자다 보니, 드디어 몸도 맛이 간 모양이었다. 의현은 창문에 머리를 기대고 저도 모르게 무거운 잠에 빠져들었다.
며칠 걸릴 줄 알았던 일이 하루 만에 해결된 건 다행이었으나, 애석하게도 몸 상태가 별로 좋지 않았다.
“학생, 귀한 집 자식인 것 같은데 조심히 좀 다녀요. 겁 없이 그렇게 살다가는 언젠가 큰일 보는 수가 있어-.”
“이렇게 살다가 단명하겠죠, 뭐.”
어둑한 새벽녘이 되어서야 1지구에 도착한 의현은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저택 안으로 들어섰다. 보안은 철저했지만, 저택 주인의 아들인 의현에겐 해당 사항이 없었다.
“우와아-!”
윤화는 꼭 별세상에 왔다는 듯 주변을 계속 뛰어다녔다.
“쉿. 조용히 해.”
권의현은 명목상 수련회에 참석한 것으로 되어 있으니 여기 있는 걸 들켜서는 안 됐다. 사실 저택도 안전하진 않았지만, 이렇게 괴물 피가 뚝뚝 떨어지는 몰골로 호텔을 찾을 수는 없었다.
저택 2층은 정재이 혼자 썼다. 상당히 넓었으나, 2층 방을 지원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오후에 청소해 주시는 키퍼만 마주치지 않는다면 저택 2층이 현재로선 가장 무난한 장소임이 틀림없었다. 게다가 2층에 있는 욕탕엔 항상 물이 받아져 있어 핏물을 닦아 내기에도 적격이었다.
“하, 이게 도대체 뭔 개고생이야…….”
의현은 윤화의 몸을 달랑 집어 들고 숨죽이며 2층 계단을 올랐다.
계단은 고급스러운 양탄자로 덮여 있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피가 말라 바닥에 액체로 떨어질 일이 없다는 거였다. 누구 눈치 보고 산 적 없던 권의현이다. 잔뜩 몸을 굽히고 계단을 오르는 상황이라니 참으로 낯선 것이었다.
“으읍-! 읍!”
“야, 조용히 하라니까.”
입을 틀어막고 있었음에도 윤화는 자꾸만 웅얼거렸다.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듯했다. 조그맣게 으름장을 놓자, 윤화는 고개를 양옆으로 저으며 손가락으로 계단 위를 가리켰다.
“거기에 도대체 뭐가 있다는…….”
뒷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멍한 표정의 정재이가 거기 서 있었으니까.
의현의 머리가 아주 빠르게 굴러갔다. 피딱지가 눌어붙은 제 외관을 보면 어떻게 반응할까 궁금하다가도, 폭력적인 모습을 노출시키는 게 안 좋은 결과로 이어지게 될까 걱정되기도 했다.
정재이는 영양실조로 인해 성장이 느려 언뜻 보면 윤화 또래로 보였다. 실제로는 정재이가 세 살 정도 많았는데도.
“……쟨 뭐예요?”
정재이는 아무 말도 없이 윤화를 든 의현의 손끝만 가만히 바라보았다. 쭈뼛 소름이 끼쳐 의현은 윤화를 조용히 바닥에 내려놓았다.
“재이야. 잘 시간인데 왜 일어났어.”
최대한으로 꾸며낸 상냥한 목소리였다. 윤화는 정재이에게 관심이 가는 듯 주변을 맴돌았다. 윤화의 몸에도 피딱지가 한 뭉텅이였다.
“안녕! 재이야!”
윤화는 눈치도 없이 정재이에게 활짝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일순간 표정을 구기며 재이는 손을 들어 윤화를 밀쳐냈다. 어찌나 세게 밀었는지 복도에 쿵 소리가 날 정도였다.
“흐아아앙-!”
“안 돼!”
윤화가 소리치며 울기 시작했다. 의현이 빠르게 뛰어가 윤화의 입을 틀어막았지만, 이미 힘차게 눈물보가 터진 후였다.
곧바로 1층 주방에 빠르게 불이 들어왔다. 상주하고 있는 유모가 조명을 들고 2층으로 올라오려는 듯했다.
“재이야 아무 말도 하면 안 돼. 응?”
“…….”
“형 그러면 여기 다신 못 와.”
반협박 투의 말에도 정재이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머리 스타일이나 옷 입는 것까지 이젠 영락없는 부잣집 애였지만, 이렇게 가만히 의현을 응시할 땐 가끔 옛날 모습이 겹쳐 보였다. 의현은 윤화의 입을 틀어막은 채 재이의 방으로 숨어 들어갔다.
“큰 소리가 나서 올라와 봤는데, 재이 너였구나.”
유모가 2층으로 올라와 복도에 서 있던 정재이를 발견했다.
인자한 목소리의 그녀는 조명을 바닥에 내려놓고 무릎을 꿇은 채 정재이와 눈을 맞추었다.
“이런……. 눈가가 젖었네. 무서운 꿈을 꿨던 거야?”
의현은 문에 귀를 대고 둘의 대화를 유심히 들었다. 얘기하면 안 된다고 으름장을 놓긴 했으나, 정재이는 예상할 수 없는 존재였기에 제 마음대로 말해 버릴 가능성도 충분했다.
“……괜찮아요.”
“괜찮아? 다시 잘 수 있겠어?”
유모의 물음에 정재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방까지 같이 가 줄까? 다시 잠들 때까지 있어 줄게.”
유모는 정재이의 손을 잡고 방 가까이 걸어왔다. 방은 넓었지만 숨을 만한 적당한 곳이 없었다. 의현은 입술을 질끈 깨물고 일단 커튼 뒤로 들어갔다.
“아니, 아니요.”
“싫어?”
“네.”
문 앞에서 정재이는 유모의 손을 놓고 혼자서 슬쩍 방 안으로 들어왔다. 문은 거의 닫힌 채였다.
“혼자 잘게요.”
“그래, 재이 잘 자. 혹시 무서운 꿈을 꾸게 되면 선생님 있는 방 알지? 거기로 오면 돼.”
악몽을 꿔 무섭지만 그래도 씩씩하게 혼자 자려고 노력하는 착한 정재이. 유모는 완전히 상황을 오해하고 있는 것 같았다. 정재이는 고개를 끄덕이고 방에 들어와 문을 닫았다.
철컥.
문 닫히는 소리에 어쩐지 간담이 서늘했다.
유모가 다시금 계단을 내려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의현은 숨죽이고 있다가 그 소리가 완전히 사라진 다음에야 윤화의 입을 틀어막고 있던 손을 놓아주었다.
“형아……!”
“너 한 번만 더 큰 소리 내면 수찬이랑 평생 같이 살게 할 거야.”
수찬이는 이미 죽었겠지만, 의현이 뱉은 말의 파급력은 엄청났다. 윤화는 굉장히 충격받은 얼굴로 제 입을 틀어막았다. 평생, 수찬이랑 평생…….
“재이야,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해 줄게. 형이…….”
의현이 시선이 제게 닿자, 정재이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뛰어와 의현의 다리를 꽉 끌어안았다. 아까 유모가 했던 말처럼 정말로 얼굴이 전부 눈물로 젖어 있었다.
“형아, 아야 했어? 아야 했지?”
말을 배운 지 얼마 안 돼 애처럼 말하고 있었지만, 시사하는 바는 명확했다. 의현을 걱정하고 있었다.
“이거 다친 게 아니라, 밖에서 나쁜 걸 만나서 혼내 주고 오느라 이렇게 된 거야. 아, 물론 폭력적으로 모든 걸 해결하려고 하면 안 되지만 그래도…….”
의현은 진땀을 빼며 시선을 위아래로 굴렸다. 현재의 정재이가 폭력성을 습득하면 그건 그거대로 위험했으니, 되도록 온순하고 최대한 협조적으로 키워 보고 싶었다.
“형 안아 주세요-.”
“형도 안아 주고 싶은데, 몸이 지저분해서. 씻고 와서 안아 주면 안 될까?”
“아니야, 아니, 아니…….”
“대신 형 오늘 재이 방에서 자고 갈게.”
고개를 위아래로 내저으며 필사적으로 애정을 요구하던 정재이는 ‘자고 가겠다’는 의현의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연한 보라색 눈동자가 보석처럼 예쁘게 반짝였다.
“자고 가? 그럼 형아 안 가는 거야?”
“뭐……. 그렇지.”
이 저택에서 자고 간 적이 한 번도 없었던 걸 생각하면, 정재이의 이런 반응도 나름대로 이해가 됐다. 항상 의현이 집으로 돌아갈 때만 되면 울고불고 난리를 쳐서 혼을 쏙 빼놓았으니까.
“그런데 오늘은 얘도 같이 자야 해.”
“…….”
“얘 이름은 윤화. 재이보다 동생이야.”
“…….”
“서로 인사해.”
권의현의 업보 둘이 서로에게 인사를 하는 기이한 장면이 연출됐다.
“안녕!”
조금 전 밀쳐져 넘어져 놓고서 윤화는 다시금 헤헤 웃으며 정재이의 앞에 섰다.
“재이야. 인사해 줘야지.”
차라리 불편한 표정을 지었으면 좀 괜찮았을까. 정재이는 정말로 ‘전혀 관심 없음’이라는 표정을 지으며 윤화를 가만히 쳐다보고만 있었다. 의현이 말을 걸 때까지.
“누가 인사하면, 재이 너도 인사를 받아 줘야 해.”
“싫어도?”
“음…….”
정석대로라면 ‘싫어도 인사는 해야 돼!’라고 단호하게 말해야 했으나, 과거를 되짚어 보니 의현도 그렇게 썩 인사를 받아 주는 성격은 아니었기에 순간 말끝이 흐려졌다.
“싫어도 받아줘야지.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 수는 없으니까.”
의현은 대충 상황을 무마했다. 정재이는 여전히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윤화와 인사를 했고, 곧장 의현에게 와 달라붙었다.
“일단 좀 씻어야 할 것 같은데…….”
“재이도!”
“아니, 재이 너는 깨끗해서 안 씻어도 돼. 응? 형아는 지지해서 씻는 거야.”
“아니야, 재이도 같이. 응? 같이 하는 거야.”
“하…….”
의현은 한숨을 내쉬며 왼쪽 손에는 윤화를, 오른쪽 손에는 정재이를 들고 욕탕으로 향했다. 도대체 지금 이게 뭐 하는 짓인지 이젠 의현 본인도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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