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윤화가 628번지에 없다는 사실을 알았으니, 이제 걜 찾으러 다녀야 했다. 가장 유력한 건 역시 종교 시설 내부. 의현은 집에서 나와 언덕 위에 벽돌로 지어진 예배당을 쳐다보았다. 찬양 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역시나 좀 전에 들렸던 종소리로 예배 시간을 알리는 모양이었다.
“사이비라고 해도 종교랑 얽히는 건 피곤한데…….”
인권 단체들이 들고 일어나서 한 번 수감 시설에 들어갔다 나와 보니, 의현은 웬만하면 모든 일을 조용히 해결하고 싶었다.
윤화도 그랬다. 2회 차 때 수감 시설에 안 들어갔다면 윤화를 만나는 일도 없었을 텐데, 그때 괜히 업보를 쌓아 지금 이 난리를 치고 있는 게 아닌가. 그러니 새로운 인연은 그만. 제발 있는 거나 해결하자.
의현은 누군가의 빨랫줄에 걸려 있던 검은 모자를 훔쳐 쓰고 예배당으로 걸음을 옮겼다.
“으하하! 너 잡히면 진짜 가만 안 둬!”
“잡아 봐라! 잡아 봐-.”
부모님 예배가 끝나길 기다리는 건지 애들 무리가 언덕에서 뛰어놀다가 의현이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으악! 형 뭐예요!”
“앞 안 보고 다닐래?”
“뭐야! 형이나 잘 보고 다녀요!”
기껏해야 초등학교 저학년 즈음으로 보이는 애들은 자기 멋대로 와 부딪쳐 놓고 의현에게 성질을 부렸다. 의현은 실소하며 허리를 굽혀 꼬맹이들을 마주 보았다.
“너네 혹시 불붙이는 남자애 알아? 몸에서 막 불이 나는데.”
“윤화요? 알죠! 근데 왜요?”
“아, 형이 겁이 너무 많아서 말이야. 몸에서 불이 난다니 너무 무섭잖아. 어디 있는지 알아야 피할 수 있을 텐데-.”
표정 하나 안 바꾸고 술술 거짓말을 하는 걸 보고 애들은 으하하 웃으며 의현을 향해 손가락질했다.
“무섭다고요? 걔가요? 으하하! 걘 저한테 맨날 지는데요?!”
“그래?”
“그럼요! 어른들은 걜 무서워하는데 안 그래도 돼요! 제가 항상 이긴다니깐요!”
“와, 믿음직스럽다. 그러면 윤화가 갑자기 튀어나와도 너희들이 형을 지켜 줄 수 있겠네?”
“뭐 그렇죠. 근데 튀어나오지는 못할걸요? 왜냐면 걔가…….”
걔가, 왜? 의현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데 뒤에 서 있던 여자 꼬맹이가 남자 꼬맹이의 옷을 슬쩍 잡아챘다.
“야. 엄마가 모르는 사람이랑 말하지 말랬잖아.”
“아! 맞다!”
남자 꼬맹이는 제 입을 틀어막으며 슬금슬금 뒤로 물러났다.
애들에게 단서를 얻지 못하면 영락없이 집을 털어야만 했는데, 상황 복잡해지는 건 딱 질색이었다. 의현은 한숨을 푹 내쉬며 어색하게 슬픈 표정을 지어 보였다.
“너무 무서워……. 윤화가 아무리 약하다고 해도 갑자기 불을 막 내뿜으면서 달려들면 혹시 내가 죽을 수도 있잖아. 정말 무섭다. 어떡하지?”
말투는 로봇 같았지만, 애들한테는 잘 먹혔다. 지켜 주겠다고 씩씩거리던 남자 꼬맹이는, 불쌍한 어른을 참지 못하겠다는 듯 큰소리로 외쳤다.
“너무 걱정 마요! 걘 시초님이 꽉 붙잡고 있으니까! 시초님은 엄청 쎈 힘을 갖고 있는데, 그걸로 윤화 그 자식을 가둬 놔서 앞으로 만날 일 없을 거라고 엄마가 그랬어요!”
“시초님?”
“응! 형은 그것도 몰라요? 시초님이 세상을 구했잖아요! 티브이에도 나왔는데!”
의현은 남자 꼬맹이가 얘기하는 ‘시초님’이 시초 능력으로 3차 포탈을 막고 죽었던 아이를 지칭하는 것임을 알았다. 하지만 그는 죽었고 현재 시초 능력은 정재이의 소유였다. 그랬으니 세상이 그의 손에 멸망했고, 의현이 지금 이 짓거릴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어디에 가둬 놨는데? 형이 거긴 피해서 다녀야겠다.”
“당연히 예배당이죠! 그것도 모르나, 형 진짜 바보 아니에요?”
“야. 이제 그만하고 가자. 엄마가 모르는 사람이랑 얘기하면 안 된다고 했다니까…….”
“그래. 알겠어. 알려 줘서 고맙다.”
의현이 사람 좋은 얼굴로 손을 흔들자, 애들은 뒤도 안 돌아보고 멀어졌다.
“……그렇다면 일단 예배당에 들어가야 한단 말이지.”
어쩌면 시초 능력이라는 게 정재이 한 명의 소유가 아닐 수도 있다. 능력이라는 건 재화처럼 한정된 게 아니라서 누가 쓴다고 다른 사람이 못 쓰고 그러는 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사이비 교주가 만약 시초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게 사실이라면, 그는 왜 진즉 헌터부에 들어가지 않았을까? 왜 매번 세상의 멸망을 막지 않았지?
묻고 싶은 게 아주 많았다. 윤화 때문에 내려온 18지구였지만, 의외의 수확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라앉았던 기분이 조금 환기되었다.
의현은 빠르게 예배당이 있는 꼭대기까지 뛰었다. 기도 중인 건지 안에서 웅성거리는 말소리가 들렸다. 바깥엔 여전히 지나다니는 사람 하나 없었다.
의현은 건물의 외관을 먼저 훑었다. 엉성하게 지어진 다른 집들과는 다르게, 예배당은 몇 번이고 보수한 듯 깔끔하게 페인트칠이 되어 있었다.
“아무래도 정면 돌파는 좀 어려울 것 같은데…….”
만약 지금 1층에 교주가 상주하고 있다면 들어가자마자 괜히 난감해지는 수가 있었다. 의현은 훌쩍 뛰어 예배당 옥상으로 가볍게 착지했다. 농산물을 말리고 있던 바닥은 몹시 지저분했다.
누군가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의현은 농산물이 쌓인 비닐 뒤로 숨어 고개를 슬쩍 내밀었다. 땡땡땡! 뚱뚱한 남자 하나가 뒤뚱거리며 올라와 중앙에 있는 종을 몇 차례 울렸다. 귀를 얼얼하게 만드는 타종 소리에 의현은 저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그럼 모두 집으로 돌아가 오늘도 각자의 역할에 충실합시다.”
“감사합니다! 시초님!”
예배가 끝난 건지 1층에서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뚱보는 한숨을 푹푹 내쉬며 옥상 문을 잠그고 아래로 내려갔다. 허리춤에 열쇠 꾸러미를 매달고 있던 걸 보니 잠긴 문은 여기뿐만이 아닌 듯했다.
“가지가지 하네…….”
의현은 잠긴 문의 손잡이를 가볍게 잡아 뜯고 안으로 들어섰다. 빼곡한 계단 아래는 온통 어둠뿐이었다. 의현은 조용히 계단을 내려갔다. 뚱보가 가지고 있던 열쇠 꾸러미를 손에 넣게 되면 더할 나위 없었지만, 그건 위험 부담이 컸다.
1층은 각종 물품과 성가대 가운이 있는 창고였다. 혹시 돌아다니다 걸리더라도 변명의 여지가 있도록 의현은 성가대 가운 하나를 슬쩍 빼입었다.
“나 참! 귀신 씐 애를 나한테 도대체 어떻게 감시하라는 거야!”
뚱보는 불만 섞인 목소리를 내뱉으며 어디론가 향했다. 의현은 그가 얘기하는 ‘귀신 씐 애’가 누굴 말하는지 알아차렸다. 윤화 얘기겠지. 하지만 그러면 말이 좀 안 맞지 않나? 같은 특수 능력인데 누구는 교주를 하고 있고, 누구는 갇혀 있다고?
“열받네, 으휴! 정말 열받아!”
뚱보는 양손에 인스턴트 음식을 챙기며 계속해서 투덜거렸다. 말투가 꽤 특이했다.
“귀신 옮겨붙으면 어쩌려고 정말 짜증 나! 열받아!”
예배당의 맨 왼쪽에 피아노가 하나 있었다. 뚱보는 들고 있던 음식을 바닥에 내려놓으며 힘을 주어 피아노를 옆으로 밀었다. 그러자 그 속에서 작은 문 하나가 나타났다.
“으휴! 으휴!”
뚱보는 열쇠 꾸러미에서 열쇠를 하나 꺼내 작은 문을 열고 그 안으로 기어들어 갔다. 틈이 좁아 허리를 펴고 걸어 들어가는 건 무리가 있었다.
의현은 안으로 들어간 뚱보가 나오길 기다리며 이 상황에 대해 생각했다. 만약 안쪽에도 감시인을 붙여 놓았다면? 그럼 뚱보가 밖으로 나온다고 해도 위험 요소가 완전히 제거되는 건 아닐 텐데…….
“아, 이거 난감하네.”
어느 쪽이든 쉽지 않았다.
한참을 기다리자, 뚱보가 불만을 토하며 문을 열고 나왔다.
“귀신 붙었어! 으휴, 짜증 나! 기도해야 해!”
어차피 사이비를 믿는 주제에 독실한 척하는 게 제법 웃겼다. 뚱보는 다시금 피아노를 원래 위치로 되돌린 뒤 빠르게 예배당을 빠져나갔다. 곧 완전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창고에 숨어 있던 의현은 슬슬 분위기를 살폈다.
오전 예배가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당분간 예배당에 들어올 사람이 없는 거겠지?
언제까지나 창고에서 기회만 엿보고 있을 수는 없었다. 의현은 나풀거리는 성가대 옷을 펄럭이며 예배당으로 나왔다. 검은색의 오래된 피아노를 가볍게 밀자, 아까 슬쩍 보았던 그 작은 문이 모습을 드러냈다.
“뭐야! 누구야!!”
좀 전의 그 뚱보였다. 의현은 욕을 짓씹다가 금세 표정을 바꾸어 상냥하게 뒤를 돌아보았다.
“아, 죄송합니다. 제 동전이 피아노 아래에 들어가서 말이죠.”
“동전? 그런 건 없어!”
“있다니까요. 동전.”
의현이 생글거리며 웃자, 뚱보 남자는 미심쩍은 표정으로 가까이 다가왔다. 대걸레를 들고 있는 걸 보니 청소하기 위해 잠깐 화장실에 다녀온 듯했다.
“동전이 도대체 어디 있다는 거야?! 아깐 분명히 없었다니까!”
“아래 좀 봐 보세요. 정말이에요.”
“예배가 끝난 지가 언젠데 성가대 옷을 입고 말이야. 으휴, 짜증 나게 진짜!”
뚱보는 순순히 의현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대로 몸을 잔뜩 굽혀 피아노 아래를 살피기 시작했다.
“야! 없잖아! 아무리 봐도 억-!!”
“응. 당연히 없어.”
의현은 뚱보의 목덜미를 정확히 가격했다. 큰 소리도 내지 못하고 뚱보는 곧장 의식을 잃었다. 이미 헌터 시험을 보고 등급까지 배정받은 과거가 있는 의현에게 이건 그다지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문제는 숨기는 건데…….”
오래 생각할 시간 따위 없었다. 의현은 뚱보가 가지고 있던 열쇠 꾸러미에서 열쇠를 꺼내어 작은 문을 열었다. 그 안으로 뚱보를 먼저 밀어 넣고 피아노를 약간 당긴 후 문을 닫고 안으로 들어갔다. 피아노를 완벽히 옮기지 못한 게 눈에 거슬렸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안은 몹시 비좁았고 쿰쿰한 냄새가 났다. 뚱보를 밀며 끝으로 기어가는데, 쿵 소리가 나며 뚱보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삼십 센티미터 정도의 단차가 있었던 탓이다.
“읍읍……!”
쓰러진 뚱보를 보고 놀란 건지 안쪽에서 무슨 소리가 들렸다. 의현은 차분히 바닥으로 내려왔다.
통로는 좁고 길어서 기어야 했지만, 안쪽 방은 생각보다 넓었다. 높이만 이 미터가 넘어 보였다. 의현은 차분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으으읍!”
입에 청테이프가 붙여진 채 누군가 끄트머리에서 버둥거리고 있었다. 얼굴이 온통 피로 젖어 식별이 조금 어려웠다.
“읍, 으읍!”
의현의 허리만큼도 안 올 듯한 작은 몸은, 겁을 먹어 자꾸만 위아래로 떨리고 있었다. 의현은 제가 입고 있던 성가대 옷을 벗어 꼬마의 얼굴을 닦았다.
조금 어린 낯이었지만 틀림없이 윤화였다. 의현은 열 받은 얼굴로 윤화의 얼굴에 붙어 있던 테이프를 뜯었다.
“……야.”
“죄송해요! 살려 주세요! 죄송해요!”
“이러고 살았는데, 고향에 같이 가 달라고?”
어이가 없었다. 글을 못 배웠다고 했을 땐 가난했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이건 단순히 그런 차원의 문제가 아니었다. 어린애를 빛 하나 안 드는 이런 곳에 가둬 놓고 귀신 들렸다는 얘기를 하고 있다니, 이게 미친 게 아니면 뭔데.
“나 나쁜 사람 아니야.”
의현은 잔뜩 겁먹은 윤화와 눈을 똑바로 맞추었다.
“너 도와주러 온 거야.”
“…….”
“그러니까 잘 들어. 난 너 데리고 여기서 나갈 거거든?”
“…….”
“나가면 네 인생 살아. 은행을 터니 마니 헛소리하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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