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온몸이 땀에 흥건히 젖은 권의현은 체육복을 벗어 던졌다. 교내 랭킹권에 있는 애들과 대련을 붙은 날은 항상 이런 식이었다. 의현의 몸은 아직 미성숙했기에 성인이었을 때만큼의 성과를 내긴 힘들었다.
“너 수련회 안 간다며?”
의현의 몇 안 되는 친구 중 하나인 동민이었다. 교내 성적은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어 최소 B급 이상을 받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었다.
“사정이 있어.”
“장관님도 아셔? 노발대발하실 텐데.”
“요새 바빠서 얼굴도 못 봐. 관심 없을 거야.”
“그건 네가 수석 자리 유지했을 때고.”
“아직은 괜찮아. 그거 잠깐 빠진다고 나 밀어낼 사람 없으니까.”
“어우, 진짜 짜증 난다. 사실이긴 하지만 그래서 더 짜증 나.”
동민은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의현의 어깨를 툭 쳤다. 지나가던 애들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의현과 동민을 쳐다보았다.
“아무튼 간 김에 실력 좀 늘려 와.”
“이 자식이!”
둘은 어쭙잖은 이야기를 하며 하교했다. 주말엔 특수 능력 중학교 랭킹권 애들의 수련회가 있었다. 1년마다 있는 이 수련회는 헌터부가 주최하고 있었는데, 학생들에겐 몹시 중요한 행사였다. 미리 눈도장도 찍고 실력도 단기간에 올릴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의현은 이번 수련회에 참가할 수가 없었다. 윤화가 있는 빈곤 지역에 내려가야 했기 때문이다. 윤화의 폭주가 정확히 언제 진행되는지 알 수 없어, 최대한 빨리 손을 써야만 했다. 그래도 수감 시설에서 쌓아 온 정이 있는데, 걜 다시 그 안에 처넣을 수는 없었다.
집에 돌아오면 바로 미리 싸 둔 짐을 가지고 나올 생각이었다. 주말 내에 일을 끝내고 돌아오려면 아무래도 시간이 촉박했다.
“도련님 오셨어요?”
문을 열자 유모가 인자한 얼굴로 의현의 가방을 받아 주었다.
“장관님 와 계세요.”
“……네?”
몇 주간 얼굴도 못 보던 권중섭이었다.
하필 오늘……. 의현은 입술을 살짝 깨물며 표정을 굳혔다.
“왔니.”
권중섭은 옷을 다 차려입은 채였다. 매무새를 확인하는 그의 옆에는 수행 비서 몇이 달라붙어 있었다.
“네.”
“안 그래도 한번 이야기하려고 했는데, 잘 됐구나. 네가 낸 후원회 아이디어가 아주 잘 먹혀들어 가고 있어. 덕분에 정계에서 내 입지가 아주 탄탄해졌단다. 이대로 분위기를 타서 대선까지 가는 거다.”
“다행이네요.”
“이번에 데리고 온 애들도 아주 총명해서 마음에 들고 말이야. 이러다가 능력이라도 개방되는 날엔 완전히 수지맞은 거지. 하하하!”
웬일로 권중섭의 기분이 좋아 보였다. 의현은 입고 있던 교복을 벗으며 분위기를 맞춰 주었다.
“……그런데 아버지 혹시 저택에 한 명만 더 들일 수 있을까요?”
정재이를 저택에 가장 먼저 들이기 위해 의현이 한 개고생을 생각하면, 권중섭의 반응은 뻔했다. 권중섭은 이득 없는 것을 싫어했으니까.
“그게 무슨 소리냐?”
“학교에 봉사 동아리가 있는데, 얼마 전 고아인 애를 구조했대요. 그런데 걔를 맡아 줄 곳이 없어서…….”
“보육원에 넣으면 되지, 그걸 우리 재단에서 굳이 왜 받아 줘야 해. 너는 지금 후원회가 애들 장난인 줄 아는 거야?”
이야기는 또 이런 식으로 흘러갔다.
그래, 사실 무시했으면 될 일이었다. 어린 윤화가 사이비 마을에서 어떤 대우를 받으며 어떻게 살다가 폭주하든 그건 어차피 윤화의 운명이었다. 개입하지 말자. 개입하면 권다원 꼴 나는 수가 있어.
그렇게 되뇌어 봐도 기억 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모든 걸 해탈한 표정으로 ‘편하게 자고 싶다’고 말하던 윤화의 모습이.
“아직 어려요. 아버지도 아시겠지만, 보육원은 어린애가 잘 자랄 수 있는 환경이 못 되잖아요. 그러니까…….”
“권의현.”
권중섭은 인상을 팍 찌푸리며 의현의 앞으로 다가왔다. 이능력자도 아닌데 헌터부 장관까지 올라간 사람이었다. 그가 얼마나 악독하게 살아왔는지 가장 잘 아는 사람이 의현이었다.
“요즘 왜 이렇게 허튼 생각을 많이 하지?”
“…….”
“너는 학교 졸업해서 등급 잘 받아서 헌터부 들어오면 돼. 그럼 이 아버지가 네 앞길 탄탄하게 해 준다니까? 그때 가서 애를 키우든 봉사를 하든 네 마음대로 하면 되잖아.”
“…….”
“우선순위를 확실히 해 둬. 지금 네가 해야 할 일이 뭔지.”
제 아들을 생각해 주는 제법 강압적인 아버지 역할에 심취한 권중섭은 뭐든 제 말이 맞는다는 듯 굴었다. 하지만 의현은 알고 있었다. 상황이 나락에 빠져들면 권중섭은 자기가 가진 것 중에서 권의현을 가장 먼저 놓아 버린다는 사실을.
“……자연계 능력자예요.”
“뭐?”
“특수 능력자 중에서도 자연계가 희귀한 건 아버지도 아시죠? 불을 다룰 수 있어요. 어려서 발전 가능성도 높고요. 정규 과정만 잘 따라간다면 B급, 아니 A급도 가능할 거예요.”
의현은 윤화를 데려오기 위해 제 패를 하나 깠다. 눈에 불을 켜고 특수 능력자를 찾아다니는 권중섭이라면, 절대로 이 패가 버려지게 그냥 내버려 두진 않으리라 확신했다.
“음…….”
권중섭은 제 턱을 쓸며 고민하는 척하다가 의현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 주었다.
“그렇다면야 말이 다르지. 이 아버지는 또 네가 정재이인가 뭔가 하는 쓰레기 같은 애를 또 저택에 데려오려는 줄 알았지 뭐니. 하하.”
“…….”
“그래. 너 좋을 대로 하도록 해라. 봉사라……. 오랜만에 그것도 나쁘지 않지.”
권중섭은 제 수행 비서들을 이끌고 현관으로 나갔다. 업무에 복귀하는 듯 보였다.
“주말엔 수련회에 다녀오느라 집에 없을 거예요.”
“알았다. 용돈 필요하면 이거, 가져다가 써.”
권중섭은 제 지갑에서 카드 하나를 꺼내 의현의 손에 들려 주었다. 어차피 차고 넘치게 많은 돈이면서 우쭐거리는 게 보기 싫었지만, 의현은 꽤 순종적인 표정으로 감사를 표했다.
“감사합니다. 잘 다녀오세요.”
“그래.”
권중섭을 태운 차는 금세 집에서 멀어졌다. 차가 완전히 떠난 걸 확인하고 의현은 제 방에 숨겨 놓았던 짐 가방을 들쳐 멨다. 수련회는 무슨, 의현은 오늘 저녁 택시를 타고 윤화가 있는 빈곤 구역으로 갈 계획이었다.
“도련님, 바로 나가세요?”
“네. 주말 동안 안 들어올 거예요.”
의현은 인사하고 집에서 나오자마자 택시를 잡았다. 18지구에 가 달라고 얘기하자 택시 기사는 난감한 표정을 했다.
“거긴 나올 때 사람을 못 받아서 안 가요.”
“사람을 못 받다뇨?”
“그 지역 사람들은 택시 안 타고 다니니까 나올 땐 빈손으로 나와야 하잖아요.”
20지구가 끝인 세상에서 18지구는 불편한 취급을 받았다. 사람이 살고는 있었지만 대개 문맹자거나 저학력자라 투표도 잘 하지 않았고, 그래서 정치인들도 18지구는 논외로 두기 일쑤였다. 아파도 병원비 낼 돈이 없어 그냥 죽는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었다.
“올라오는 값까지 같이 드릴게요.”
“네?”
“아. 혹시 택시를 이틀 정도 빌릴 수 있나요? 금액은 다 계산해서 드릴게요.”
택시 기사는 땡잡았다는 얼굴로 웃으며 의현의 제안을 수락했다. 택시는 빠르게 18지구로 출발했다. 고층 건물은 대개 5지구 바깥에나 있지, 상층 지구에는 낮고 한가롭고 예쁜 건물만 가득했다. 의현은 1지구 출신이었다.
피곤해서 창문에 가만히 기대어 있다가 잠들었다. 며칠을 내내 쉬지 않았기에 마음 놓고 잠든 날도 몇 없었다. 몸을 웅크리고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는 동안, 새벽이 다 지나갔다.
“이봐요, 학생! 도착했어!”
택시 기사는 까랑까랑한 목소리로 의현을 깨웠다. 비몽사몽한 채로 잠시 앞을 바라보고 있자, 택시 기사는 대뜸 손을 내밀었다.
“일단 오늘 치 몫만 먼저 결제할게요. 주겠다고 하고 도망칠 수도 있으니까. 험한 세상 보험 하나 들어 둬서 나쁠 거 없고.”
“그러세요.”
의현은 권중섭의 카드 대신 제가 미리 뽑아 두었던 현금을 꺼냈다. 카드 내역을 뜯어볼 정도로 심심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괜히 책잡혀서 좋을 게 없었다.
“그럼 여기에 있을 테니까, 일 끝나고 이쪽으로 와요! 나도 밥은 먹으면서 기다려야 하니까.”
“네.”
수감 시설의 독방 정도 크기의 슈퍼마켓 옆이었다. 근처에 버스 정류장도 있는 걸 보니 여기가 마을로 들어가는 초입인 듯했다. 의현은 지도를 쳐다보며 걸음을 옮겼다.
안개가 낀 논밭 분위기가 을씨년스러웠다. 사이비 마을인 걸 알고도 혼자 덜렁 내려오다니 무모한 일이었지만, 이럴 땐 제가 능력자인 게 다행스러웠다. 포탈 속에서 괴물을 잡아 죽일 때 비하면 일반인들이 떼로 몰려드는 건 애들 장난 수준이었다.
“이렇게 높은 산이 동네에 아무렇게나 있다니…….”
개발이 전혀 되지 않은 18지구의 땅은 아스팔트가 전혀 없었다. 달리기만 해도 흙모래가 튀길 테니 택시 기사가 여기에 오는 것을 거부한 것도 나름대로 이해는 됐다.
지도에 적힌 좌표대로 정확히 왔으니, 얼마 지나지 않아 마을이 보이리라.
어떤 방법으로 윤화를 데리고 나오는 게 좋을지 스스로도 확신이 서지 않았다. 결혼 허락받으러 가는 것도 아닌데, 대뜸 윤화의 부모님께 아들을 달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다고, 미래를 보고 왔으니 떼죽음 당하기 싫으면 애를 넘기라고 말하는 것도 너무 나간 듯싶고. 도대체 뭐라고 설득해야 좋을까…….
삼십 분 정도 걷자, 꽤 큰 마을이 나타났다. 벽돌로 지어진 집은 그냥 봐도 오래된 티가 났다. 다들 어딜 갔는지 마을에 지나다니는 사람 하나 없었다.
“……628번지.”
얼룩이 많이 묻은 빨간 기와집이었다. 의현은 종이에 적힌 사진과 눈앞에 선 집 모양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그 흔한 TV 소리마저 들리지 않는 고요한 집엔 초인종도 안 달려 있었다.
여기서 문을 두드리는 게 잘하는 짓일까? 누가 나올지도 모르는데……. 의현이 고민하는 사이, 어디선가 종소리가 났다.
땡! 땡! 땡!
요란하게 울린 종소리에 628번지 문을 두드리려던 의현은 몸을 숨겼다. 쿰쿰한 냄새가 나는 장독대 뒤에는 먼지가 두게 쌓여 있었다.
“예배를 알리는 종인가.”
윤화의 부모님으로 보이는 성인 두 명이 집에서 나와 빠르게 어딘가로 걸어갔다. 손에는 종교 서적으로 보이는 무언가를 들고서.
마침 잘된 일이었다. 부모님 허락도 안 받고 애를 납치할 생각은 없었지만, 윤화와 둘만 만나게 되면 어떻게든 애를 구워삶을 자신이 있었다. 1지구로 함께 가자는 말에 현혹되지 않을 어린애가 있을까? 거긴 이 촌구석에 비하면 별세상인데.
의현은 슬쩍 바깥을 훔쳐보았다. 서른 명쯤 되는 인구가 일제히 한 줄로 서서 동네 꼭대기에 있는 종교 시설에 들어가고 있었다.
“과연 사이비.”
의현은 쯧 혀를 차고 현관문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새 지저귀는 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동네는 한적하다 못해 소름 돋을 정도로 조용했다. 그 시끄러운 윤화가 이런 동네에서 자랐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계세요?”
다 나간 걸 봤지만, 혹시나 해서 말이나 꺼내 봤다.
집 전체가 의현의 방 크기와 비등비등했다. 뒤지고 할 것도 없이 주변이 훤히 보여 의현은 건방지게 선 채로 주변을 탐색했다. 성인 두 명만 나가는 걸 봤으니, 윤화는 이 집에 있어야만 했다.
“……없네.”
하지만 어린애를 양육했던 흔적은 분명히 존재했는데, 애가 없었다.
의현은 벽에 걸린 그림 하나를 집어 들었다.
몸에 불이 붙은 채 울고 있는 꼬마와 웃으며 그걸 지켜보는 어른들…….
땡! 땡! 땡!
다시금 종이 울렸다. 의현은 그림을 떼어 내 제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아무래도 일이 빨리 끝나기는 틀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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