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쾅!
“야, 일단 나와.”
화장실 마지막 칸에 갇혀 있던 Z는 뜻밖의 방문에 놀란 듯했다. 물론 당연했다. 문을 부수며 나타난 것이 권의현과 스무 명의 아이들이었기 때문이다.
“미치겠네…….”
조금 전까지만 해도 Z의 목을 조르다가 시스템 에러로 강제 회귀당한 의현은 이제 Z의 얼굴만 봐도 지긋지긋했다.
“아니, 그러니까 내 말은 이쪽으로 오라는 거였어.”
최대한 친절하게 굴고 싶었는데 말이 예쁘게 안 나왔다. 태어난 이래로 한 번도 친절하게 말해 본 적 없었으니까.
“저 귀머거리 자식은 남의 말 안 들어! 아까 말했잖아, 쟤 때문에 되는 일이 없다니까? 얽히면 네 인생만 피곤해.”
“나도 그만 얽히고 싶다. 좀.”
“뭐?”
“……아냐, 됐어.”
홍삭은 제가 무슨 의현의 오른팔이라도 되는 양 굴었다. 바글바글한 아이들 무리에 둘러싸여 있자니 슬슬 머리가 아팠다. 마음대로 되는 게 하나 없었다.
“으아, 으…….”
“그냥 저 자식 끌고 나와, 꼭 제 발로 나와야 할 필요 없잖아?”
나오라는 Z는 나오지 않고 계속해서 이상한 짐승 소리를 내며 벽에 가 붙었다. 홍삭의 말대로 무력을 이용할 수도 있었지만, 그럼 시작부터 미운털 박힐 게 뻔했다.
이번 생에 목표는 Z가 자신을 사랑해서 결국 자멸하는 것이었다. 그러니 최대한 Z를 어르고 달랠 필요가 있었다.
“재이야.”
Z와 한 지붕 아래 산 적도 있었는데, 처음으로 불러 보는 이름이었다.
“재이야, 좀 나와 볼래? 할 얘기가 있어.”
가식적인 말투에 헛웃음이 저절로 나왔다. 의현은 주먹을 꽉 쥐며 부글부글 끓는 속을 참아 냈다.
“우웩! 재이래! 진짜 개웃긴다! 푸핫!”
홍삭이 잔뜩 오버하며 비웃었다. 과거 사건도 있고 했으니 문제없이 잘 지내보려고 했는데, 저 자식이 틈만 나면 깝죽거렸다.
“이름 부른 건데 뭐가 그렇게 웃길까? 삭아, 나는 네 이름이 제일 웃긴데.”
“이 자식이……!”
방금 한 손으로 문을 부숴 버린 걸 봐서 그런지, 홍삭은 씩씩거릴 뿐 어떠한 액션도 취하지 않았다. 역시 애들은 알기 쉽네. 의현은 픽 웃으며 홍삭에게서 시선을 거두었다.
“아, 아…….”
“응. 그래. 이쪽으로 오는 거야.”
예상외였다. 요란하게 굴수록 더 벽에 처박힐 줄 알았건만, Z는 비척거리며 칸 밖으로 나왔다.
“저 귀머거리 자식 말도 제대로 못하잖아! 왜 꺼내 주는 거야?!”
“좀 닥쳐 줄래, 삭아?”
“그래! 귀머거리랑 싹바가지랑 아주 잘 어울리는 한 쌍이다! 흥!”
제게 관심을 주지 않는 게 열 받았는지 홍삭은 쿵쿵거리며 화장실 밖으로 나갔다. 모여 있던 애들 중 몇은 눈치 보며 홍삭을 따라갔다.
“으…… 아…….”
Z는 의현의 옷자락을 붙잡고 늘어졌다. 삽살개처럼 지저분하게 자란 머리카락과 오물 묻은 흰색 티셔츠에 저도 모르게 미간이 찌푸려졌지만, 의현은 필사적으로 웃었다.
“얘들아, 혹시 조용한 곳 좀 알려 줄래? 재이랑 하고 싶은 얘기가 있어서.”
“걘 말해도 못 알아들을 텐데?”
“아냐. 알아들어.”
애들은 의현에게 몹시 호의적이었다. 어마어마한 헌터 집안의 엘리트 아들. 그 타이틀은 생각보다 꽤나 쓸모가 있었다. 의현은 항상 벗어 버리고 싶어 안달 냈지만.
“여긴 음악실이라 수업할 때 말곤 아무도 안 올 거야.”
“아, 고마워.”
다른 장소를 알려 준 여자애는 얼굴이 빨개진 채 몸을 배배 꼬았다. 의현은 성의 없이 대답하면서 얼른 문을 닫고 안으로 들어갔다.
“일단 앉아.”
“…….”
“아니지. 앉아 볼래?”
말이 습관적으로 자꾸 튀어나왔다. 의현은 앞에 했던 말을 정정하며 아주 약하게 고개를 저었다.
비쩍 말라 제대로 걷지도 못하던 Z는 의현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머리카락 때문에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었다. 일순간 표정 관리가 안 될 뻔했으니까.
“일단 하나 묻고 싶은 게 있어서.”
“…….”
“……너 혹시 나 알아?”
의현은 Z를 한번 떠보았다. 어쩌면 Z도 함께 회귀한 것이 아닐까 하는 궁금증 때문이었다. Z 역시 이 빌어먹을 시스템의 피해자라면 합심해서 해결 방법을 찾는 게 차라리 효율적이리라.
“으이이.”
Z는 의현의 얼굴을 향해 손을 뻗었다. 의현은 저도 모르게 몸을 뒤로 빼며 움찔했다. 여러 차례 Z에게 죽고 나니, 무의식적으로 겁을 먹은 모양이었다.
“우, 으아.”
Z의 손은 의현의 뺨을 스쳐 앞머리 위로 올라갔다. 이렇게 오랫동안 서로를 마주 본 적도, 피부가 스친 적도 없어 너무나도 생경한 순간이었다.
“……왜?”
의현이 물었다. 몸은 뻣뻣하게 굳은 채였다. 이렇게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다가 또 목을 따 버리는 건 아니겠지? 침을 꿀꺽 삼키며 의현은 Z의 행동을 관찰했다.
“…….”
Z는 아무런 대답 없이 의현의 앞머리를 넘겨 주었다. 긴장해서 땀에 젖은 검은 머리카락이 아주 부드럽게 흩어졌다.
하.
의현은 작게 숨을 뱉으며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나 아냐고 물었잖아.”
“…….”
“하긴, 모르니까 이러고 있겠지.”
과거를 기억하고 있다면 분명 이런 식으로 유한 태도를 보이진 않았을 테다. 의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
앞머리를 넘긴 Z의 손은 의현의 왼쪽 눈 아래에 난 점을 한번 쓰다듬고 나서야 떨어져 나왔다. 도대체 뭘 하는 건지 이해가 안 됐다. 얜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 왜 하필 얘가 시초 능력을 갖게 된 거지? 왜 하필…….
체한 듯 속이 답답했지만, 의현은 티 내지 않으려고 일부러 다정한 표정을 했다.
“……나는 앞으로 너한테 도움을 주려고 해.”
의현은 입에 침도 안 바르고 거짓말을 했다.
“이렇게 사는 거 너도 싫잖아. 안 그래?”
“아, 으…….”
“앞으로 말하고 쓰는 법도 배우게 될 거야. 내가 그렇게 만들 거니까.”
Z와 가장 대화를 나누고 싶은 사람이 의현이었다. 제발 Z가 이 빌어먹을 환경에서 벗어나 자신에게 뭐라고 언질이라도 좀 줬으면 했다.
Z는 구부정한 자세를 하고 앉아 의현의 얼굴만 바라보았다. 의현은 시간을 확인한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권중섭이 식사를 끝낼 시간이 거의 다 됐으니 먼저 가 있어야 했다. 피곤한 꼴 보기 싫으면.
“아아…….”
Z는 의현의 팔을 붙잡고 아래로 잡아당겼다. 다시 앉으라는 식으로.
“나가야 해. 일어나.”
“으으…….”
“정재이. 안 일어나면 능력 쓸 거야.”
Z는 악쓰는 애처럼 의현을 잡고 늘어졌다. 하, 이래서 말 안 통하는 애들이 싫었는데……. 호감을 쌓아야 했으니 막무가내로 짜증 낼 수도 없는 상황이 정말 답답했다.
“으아아!”
의현이 손가락을 움직이자 Z의 몸이 허공으로 둥실 떠올랐다. Z는 낯선 느낌에 허우적거렸지만, 빠져나올 순 없었다. 의현은 Z를 풍선처럼 허공에 띄운 채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으악! 무슨 재미있는 얘기를 하는지 엿듣기 위해 창문에 얼굴을 처박고 있던 애들이 소리치며 달아났다. 화장실 문을 부수는 거로도 모자라서 사람을 허공에 띄우다니!
“재이 방으로 좀 안내해 줄래?”
“걘 방이 없는데?! 초등부 애들은 다 같이 자!”
개인 공간도 없이 쭉 늘어져서 자는 게 짐승 사육장과 다를 바 없었다.
“그럼 거기라도 알려 줘.”
“그래.”
Z는 계속 이상한 소리를 내며 발악했다. 의현은 초등부 애들이 잔다는 방으로 들어갔다. 일렬로 놓인 침대는 끝도 없었다. 이불은 낡고 해져 있었으며 어딘가에서 악취가 났다.
의현은 Z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Z는 마치 짐승처럼 무슨 소리를 내뱉으며 의현에게 돌진했다.
“재이야, 사람 말을 해야지.”
의현이 허공에 손바닥을 올리자, Z의 몸이 딱 멈추었다.
“이상한 소릴 하면 사람들이 무서워할 거야.”
“…….”
“뭐 그건 차차 배우면 될 일이니까.”
의현은 손짓 한 번에 Z의 행동을 모두 저지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현재로서는.
제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게 억울한 건지 Z는 계속 몸을 바르작댔다.
“갈게. 다음에 보면 인사해 줘. 정재이.”
Z는 바닥에 주저앉아 의현을 가만히 올려다보았다. 결 좋은 검은 머리카락, 새까만 눈, 오뚝한 코와 하얀 피부, 그리고 눈 아래의 점. 누가 봐도 차갑고 예뻐 시선을 끌 얼굴이었다.
“…….”
Z가 대답하지 않아도 의현은 아무렇지 않게 밖으로 나갔다. 때마침 원장과 함께 권중섭이 복도를 걷고 있었다.
“아버지.”
“의현아, 화장실 다녀온다고 한 녀석이 도통 오질 않아서 걱정했잖니.”
“아. 잠깐 애들이랑 놀고 있었어요.”
권의현을 잘 아는 사람이라면 그가 처음 보는 애들과 논다는 게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일인지 단숨에 알아차릴 수 있었겠지만, 다행스럽게도 권중섭은 권의현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그랬구나. 이제 집에 돌아갈 시간이란다.”
“네.”
의현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세인트 해피 보육원을 빠져나왔다.
처음이었다. 누군가를 입양하지 않고 둘이서 집으로 돌아간 것은.
* * *
권중섭의 후원회 사업은 아주 빠르게 진행됐다. 단순히 입양하는 게 아니라 여러 아이의 독자적인 인생을 뒤에서 응원해 준다는 뜻의 재단 설립은 사회적으로 아주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다. 덕분에 요새 권중섭을 더 보기 힘들어졌다.
“요즘 얼굴 보기 바쁘네?”
“어. 봉사해.”
“봉사? 무슨?”
“교육 봉사.”
수업이 끝나자마자 가방을 싸는 의현을 같은 반 친구가 의아하게 바라보았다. 항상 무표정으로 문제집만 쳐다보고 있던 얼굴도 어쩐지 조금 생기가 있었다.
“좋은 일 하네. 나도 나중에 한 번 데려가 주라.”
“그래.”
성의 없는 대답이었지만, 친구는 제법 감명받은 듯했다. 대대로 나라에 헌신하고 있는 엘리트 헌터 집안의 외동아들이 교육 봉사까지 하고 있다니!
사실 죄다 틀린 말이었지만, 의현은 애써 수정해 주지 않았다. 좋게 봐 주겠다는데 노선을 굳이 틀 필요는 없었으니까.
교문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차에 올라타자, 운전기사는 혼자서 신이 나 떠들어 댔다.
“장관님께서 저택 하나를 통째로 사실 줄은 몰랐습니다. 오갈 데 없는 아이들을 위해서 거금을 턱턱 내놓으시니 국민들이 좋아할 수밖에 없지요. 좋은 아버지를 두셔서 영광스러우시겠어요.”
“썩 그렇진 않네요. 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기사는 의현의 반응에 제법 당황한 듯했다. 의현은 가방을 내려놓고 의자를 길게 늘이며 누웠다. 미래를 짊어지게 될 인재라며 선생들은 의현의 교육에 목숨을 걸었다.
미래는 무슨, 그딴 건 Z의 손에 달려 있었다.
차는 부드럽게 도로 위를 달렸다. 살짝 열린 창문 사이로 한겨울의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참, 도련님. 알아보라고 하신 정보 말입니다.”
“아, 연락 왔어요?”
“예. 그런 이름 가진 애가 있긴 한데, 그 동네에서 애를 잡고 안 놔준다고 합니다. 정확한 건 여기…….”
기사는 얇은 파일 하나를 의현에게 건네주었다. 정보상에게 거금을 주고 알아낸 정보였다. 기사는 의현이 불쌍한 후원 아동을 찾고 있다고만 알고 있었다.
“무슨 사이비 신도인 것 같아요. 동네 사람들 죄다 문맹이라고 하더라고요. 때 되면 예배드리고 헌금도 갖다 바치는데 그 금액이 어마어마하답니다.”
“……사이비?”
“이름이 윤화 맞지요?”
기사는 제법 뿌듯한 표정을 했다. 의현은 손에 잡히는 종이를 빠르게 읽어 내려갔다. 종이 위에 선명히 박힌 얼굴은 어린 윤화가 맞았으나, 그 동네 사람들이 사이비 신도라는 얘긴 처음 듣는 거였다.
“참, 도련님! 오늘 저택에 첫 친구가 들어왔다고 합니다. 도련님이 특별히 부탁했던 그 친구요. 오늘부터 담당 선생님들이 쫙 붙어서 교육한다고 하는데, 아주 잘된 일이죠?!”
“……정재이요?”
“예. 그 친구요!”
“하하. 정재이…….”
의현은 창문에 머리를 기대며 입에 영 붙지 않는 낯선 Z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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