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 리셋하시겠습니까? Y/N 〉
마치 게임처럼 죽음 후에는 항상 같은 문장이 떠올랐다. 의현은 누군가가 이 상황을 관전하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했다. 바닥에 축 늘어져 대답 없이 천장만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자니, 빨리 대답하라는 듯 글씨는 붉은색으로 번쩍거렸다.
“어차피 강제 리셋할 거 아니야?”
의현은 절망적인 얼굴로 실소했다.
“다 네 마음대로 할 거잖아. 내 선택이 의미가 있어?”
의현은 아무 선택도 하지 않는 선택을 했다.
죽어서 온 곳에서도 시간은 철저히 흘러갔다. 선택을 미룬 몇 주간, 의현은 아무것도 먹지도 마시지도 못해 시체처럼 바싹 말라 갔다.
〈 리셋하시겠습니까? Y/N 〉
살아 있는 것과 다름없으니 몸으로 느낄 수 있는 모든 고통이 생생하게 다 느껴졌다. 의현은 마른 나뭇가지처럼 버석해진 손으로 바닥을 짚었다. 허억, 허억……. 이제는 숨조차 쉽게 쉬지 못했다.
선택을 하지 않는 선택의 결과는, 결국 죽음이었다.
죽으면?
죽으면 다시 이 검은 세상 속에 떨어졌다. 눈앞에 번쩍이는 글씨는 똑같았다. 리셋을 할 거냐, 말 거냐.
“도대체 내가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건데, 내가 뭘…….”
마음대로 죽을 수도 살 수도 없는 인생이라니 최악이었다. 의현은 바닥에 얼굴을 처박고 울었다. 이 개 같은 굴레에서 나갈 방법을 알 수가 없으니 정말 미쳐 버릴 것만 같았다.
〈 리셋하시겠습니까? Y/N 〉
글씨는 아주 커다랗게 확대되어 의현의 앞에서 번쩍거렸다. 징그러운 글씨, 징그러운 죽음, 징그러운 Z.
의현은 글씨를 똑바로 바라보며 대답했다.
“리셋 안 해.”
〈 리셋하세요. 〉
“……뭐?”
〈 리셋하세요. 〉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은 많았다. 따지고 들자면, 이 모든 상황이 전부 현실성 없긴 했으나 이보다는 나았다.
의현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고 딱딱하게 몸을 굳혔다. 신의 놀음 혹은 프로그래밍이라고 생각했던 글씨가 자아를 가지고 움직이는 것만 같았다.
“……야. 너 뭐야.”
의현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 리셋해! 〉
〈 리셋해! 〉
〈 리셋해! 〉
〈 리셋해! 〉
〈 리셋해! 〉
마치 컴퓨터 오류처럼 연속해서 나타난 빨간 글자들이 핏자국처럼 계속해서 허공에 찍혔다. 당황한 의현이 뒷걸음질 쳤다.
〈 강제 리셋됩니다! 3, 2, 1……. 〉
글씨로 검은 공간이 가득 찼다. 피처럼 새빨간 글씨들은 연속해서 반짝이다가 금세 팍하고 사라졌다.
뒤통수에 얼얼한 통증이 느껴졌다. 의현은 익숙한 감각에 두 눈을 번쩍 떴다.
내가 어떻게 잊을 수 있겠어.
이 개 같은 감각.
“의현아, 오늘 여기서 네 동생을 데려갈 거야.”
―세인트 해피 보육원
처음부터 다시 시작이었다.
의현은 권중섭의 손을 놓고 화장실로 뛰어갔다. Z가 갇혀 있던 곳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으니까. 만약 그날 Z가 두려워 도망치지 않았다면, 충동적으로 권다원을 선택하지 않았다면 아무도 죽지 않았을까?
“의현아!”
권중섭의 뒤에서 카메라들이 찰칵찰칵 사진을 찍어 댔다. 의현은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보육원 문을 열고 들어가 화장실 맨 끝 칸으로 직행했다.
불은 여전히 깜빡였고 안에선 간헐적으로 으으 앓는 소리만 들렸다. 여전히 무서웠다. 여전히 징그럽고 여전히 혐오스러웠다. 사는 것도 아닌데 죽지도 못하고.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건지도 알 수 없었다.
“너 뭐야.”
의현은 닫혀 있는 문을 뜯어 그 안에 숨죽이고 있던 Z를 끄집어냈다. 무자비하게 머리카락이 잡혀 끌려 나온 Z는 바닥에 아무렇게나 처박혔다.
“씨발 너 뭔데, 도대체?”
제 반절도 안 되는 작은 몸.
의현은 깔끔하게 닦인 갈색 구두로 Z의 얼굴을 사정없이 짓밟았다. 피가 터지고 뼈가 부러졌다.
“말해! 이 새끼야! 너 도대체 나한테 왜 이래! 네가 뭔데! 네가 뭔데-!”
“으, 으아…….”
이맘때의 Z가 말을 못 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의현은 어떻게 해서라도 이 미친 상황에 대한 해답을 들어야만 했다.
화장실 벽과 창문이 모조리 핏자국으로 가득 찼다. 의현은 지금이라면 Z를 죽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Z는 무방비하게 바닥에 축 늘어졌다. 피떡이 된 Z의 위에 올라탄 의현은 무표정으로 Z의 가녀린 목 위로 손을 올렸다. 할 수 있어. 이번엔 죽일 수 있어. 이번엔 실패하지 않아. 절대로.
의현은 그렇게 되뇌며 Z의 목을 조른 손에 꽉 힘을 주었다. 바로 그때였다.
〈 에러! 강제 회귀됩니다! 〉
“……뭐?”
이번엔 죽지도 않았는데 글씨가 생겼다. 의현이 눈을 부릅뜨는 사이, 시야가 한번 어지럽게 뱅 돌았다.
* * *
“의현아, 오늘 여기서 네 동생을 데려갈 거야.”
미치지 않고 버틸 수 있을까?
제 손으로 Z를 죽일 수도 없고, 각성한 Z의 손에 죽어야만 하는 삶이라니. 의현은 텅 빈 눈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제 편인 게 하나도 없었다. 정말 단 하나도.
“……아버지.”
카메라에 대고 인자한 웃음을 짓고 있던 권중섭은 그 표정 그대로 의현을 내려다보았다.
“왜 그러니?”
‘국민 여러분, 권중섭입니다! 아비인 제가 아들을 잘못 키운 죄 물론 달게 받겠습니다! 하지만 이번 일은 저와는 일절 관계가 없는, 제 아들 권의현의 단독 폭행이자 살인입니다!’
의현은 메스꺼운 속을 달래며 권중섭에게 손짓했다.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어요.”
“뭔데 그래?”
권중섭은 아무런 의심 없이 의현에게 귀를 내주었다.
“……한 명을 양자로 거두는 것보다 여러 명의 아이를 후원하는 쪽이 더 좋을 것 같아요.”
“그게 무슨 소리야?”
권중섭은 탐욕적이고 표독스러웠다. 그런 그의 최종 목표는 오직 대통령뿐이었으니, 어쩌면 처음부터 이 방향으로 가야 했을지도 몰랐다.
“양자는 입양하면 끝이잖아요. 언론에선 보여 주기식 입양이라고 할 거예요. 아버지도 아시잖아요. 캠페인은 한 번 참여하고 나면 더 해 먹을 소재가 고갈된다는 거.”
의현은 차분히 말을 이었다.
“후원은 단순한 캠페인 참여가 아니에요. 아버지가 새로 시작하는 거죠. 후원회를 세우고 빈민촌 애들 위주로 도와주세요. 주거, 교육, 건강 모든 면에서요. 그리고 걔들이 자랄 때마다 성과를 기사로 내세요. 일회성 입양이 아닌 꾸준한 후원을 사람들은 더 좋게 볼 거예요.”
“음…….”
“그리고 혹시 모르잖아요. 후원하던 아이 중에서 이능력자가 있으면, 그때 양자로 입양하면 돼요. 아무도 모르게요.”
의현은 뱀처럼 속살거렸다. 벌써 몇 번이고 본 권중섭 따위 제대로 못 구워삶을 리가 없었다.
“듣고 보니 일리가 있는 말이구나.”
권중섭은 꽤나 만족스러운 얼굴로 굽히고 있던 허리를 폈다.
“역시, 의현이 너는 내 아들이야.”
권중섭은 그렇게 말하며 의현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태어나서 처음 듣는 말이라서 도대체 어떤 표정을 지으면 좋을지 알 수 없었다. 하하……. 의현은 어색하게 웃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래, 후원 재단을 만드는 것도 좋겠어. 건물을 하나 사서 시설을 설비해 놓은 다음, 후원 대상 아이들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게 하는 거야.”
권중섭은 혼자서 중얼거렸다.
선의라고는 하나도 없었지만, 어쨌든 위선도 선이었다. 지지 기반을 공고히 하기 위한 후원회라고 해도 이를 필요로 하는 사람은 많을 것이다.
“세인트 해피 보육원과도 이야기를 좀 해 봐야겠군. 그럼 들어가자꾸나.”
“……네.”
몇 분 전 뛰어 들어갔던 운동장, 중앙 문, 복도를 똑같이 밟으며 의현은 최대한 냉철하게 생각하려 애썼다.
이 빌어먹을 회귀를 끝내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건 뭘까?
우선 첫 번째, 누구도 권중섭의 양자가 되지 않게 한다.
―만약 양자가 되면, 개 버릇 남 못 주고 또 학대해서 Z나 권다원 같은 최악의 상황이 초래될 수 있음.
두 번째, 능력 폭주를 막을 수 있을 정도로 철저히 Z를 교육한다.
―하지만, 말도 제대로 못하는 Z가 가능할지는 모르겠음.
세 번째, Z가 나를 사랑하게 만든다.
―기분은 엿 같겠지만, 현재로서는 유일한 Z의 자멸 방법임.
의현이 의자에 앉아 계속해서 골몰하는 사이, 강당에서 연설을 끝낸 권중섭은 박수를 받았다. 원장은 쪼르르 달려가 같이 식사나 하고 가자며 익숙한 패턴으로 말을 건넸다.
“하하. 안 그래도 따로 드릴 말씀이 있어서 말입니다.”
“어머, 그러세요? 그럼 차도 준비하라고 언질을 줘야겠네요. 호호.”
“의현아, 너도 같이 식사하러 가자꾸나.”
권중섭의 손짓에 의현은 그의 뒤를 따랐다. 식당에 들어서자, 이전에 그랬듯 바글거리는 애들 눈길이 와닿았다.
“이걸 또 먹다니…….”
나름 신경 쓴 티가 나서 더 기분이 나쁜 싸구려 수프를 떠먹으며 의현은 헛구역질을 참아 냈다. 이런 걸 평생 먹고 사니까 Z 키가 그렇게 쪼그라들 수밖에.
“안녕!”
“…….”
“안녕-!”
한 무리의 애들이 또 인사를 하고 멀리 도망갔다. 꾀죄죄한 얼굴에 어쩐지 설렘이 담겨 있는 것 같아, 의현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 지가 뭐라도 된다고 뻗대는 것 좀 봐! 얼굴은 허옇게 질려 가지고, 저딴 자식 뭐가 좋다고 꺅꺅대는 거냐!”
“…….”
“저딴 건 한주먹거리도 안 돼! 사람을 무시하기나 하고 말이야.”
덩치 큰 남자애가 애들을 밀어내고 앞으로 나왔다. 의현은 과거의 소동을 모두 기억하고 있었다.
이 애의 주도하에 Z는 현재 화장실 마지막 칸에 갇혀 있고 곧 권의현도 그 안에 갇힐 것이다.
“무시한 거 아니야.”
“뭐?”
“무시한 건 아니라고.”
의현은 그답지 않게 대답하며, 남자애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마음속에서 아주 조금의 죄책감이 스멀거렸다. 권다원이 죽던 그날, 함께 있던 남자였다.
“뭐 이런 놈이 다 있어?!”
남자애는 혼자서 씩씩거리다가 원장의 눈치를 보며 입을 다물었다. 의현은 토할 것 같아서 못 먹겠는 수프와 퍽퍽한 빵을 밀어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버지 저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그래. 혼자 가도 괜찮겠어?”
“혼자 아니에요. 저 친구가 소개해 주고 싶다네요.”
“야! 내가 언제!”
“홍삭 너, 장관님 아드님께 그게 무슨 말버릇이야! 선생님이 그렇게 가르쳤니?!”
이름이 홍삭이 뭐냐, 하여간 촌스러운 이름.
“괜찮아요. 그럴 수도 있죠.”
의현은 태연하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홍삭은 입을 삐죽거리며 눈을 굴렸다. 화장실에 가기 위해 복도로 나서자 스무 명쯤 되는 애들이 의현의 뒤를 졸졸 따라왔다.
“……저, 저기 안녕!”
“화장실에 있는 앤 이름이 뭐야?”
“화장실?”
“있잖아. 맨 마지막 칸에 있는 애.”
또다시 ‘안녕 놀이’에 빠진 여자애한테 Z에 관해 물었다. 대답해 줄 줄 몰랐다는 듯 여자애는 얼굴을 붉히며 작게 웅얼댔다.
“걔? 원장 선생님은 정재이라고 부르던데, 우린 잘 안 불러서…….”
“귀머거리?! 귀머거리 얘길 왜 해!”
안 올 것 같이 굴더니 홍삭은 의현의 뒤를 쭐쭐 따라오고 있었다.
“말을 아예 못 듣는 건 아니던데.”
“걔랑 말해 본 적 있어? 뭘 아는 척이야!”
홍삭은 말끝마다 성질을 냈다. 여자애는 의현의 관심을 뺏긴 게 퍽 억울했는지 다급히 서두를 꺼냈다.
“맞아! 재이 들을 줄 알아! 대화는 안 해 봤지만, 우리가 큰 소리 내면 엄청 놀라면서 도망치던데?”
“그렇구나.”
곧 화장실 앞이었다. 중문은 열려 있었으나 여전히 마지막 칸은 굳게 닫혀 있었다.
“그런데 쟨 왜 저기에 가둬 둔 거야?”
“그건…….”
“당연히 재수 없어서지! 저 자식 눈 봤어? 불길하다고!”
다시금 여자애의 답을 가로채며 홍삭이 튀어나왔다. 애초에 정보를 얻기 위해 끌고 온 아이들이었으니, 이런 식으로 분위기가 흘러가는 것은 의현에게 이득이었다.
“눈이 왜?”
“뭔갈 계속 쳐다보잖아.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혼자서 계속 중얼거리고! 바퀴벌레 같아!”
“그거 말고는?”
의현에게 겁을 주기 위해서 몸을 부풀려 얘기했건만, 그럴수록 의현의 눈은 더 반짝였다.
“아는 거 있으면 좀 얘기해 봐. 들어 줄게.”
정보를 구하는 주제에 의현은 제법 오만하게 나왔다. 홍삭은 뭔가 부당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정신 차리니 입을 털고 있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저 ‘불길한 자식’에 대한 이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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