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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역의 회귀식 생존법-6화 (6/185)

6화.

윤화가 장악한 수감 시설 안에서의 삶은 바깥보다 조금 더 활기찼다. 이 안에선 적어도 권중섭이 사람 패는 꼴 안 봐도 됐으니까. 질질 짜며 한 번만 말려 달라고 애원하는 유모도, 머리를 거지처럼 풀어헤치고 땅바닥을 설설 기는 입양아들도 모두 없었다.

그러니 이 안에서 사는 게 차라리 더 낫겠다,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권의현은 날짜를 셌다. Z의 등장까지 남은 하루하루를 세고 있으면 어느 순간 갑자기 윤화가 나타나 재미없는 농담을 해 댔다.

“형님! 90428번 아저씨가 여기서 나가면 같이 한탕 하재요. 자기한테 다 계획이 있다는데 들어보니까 꽤 쓸 만하더라고요!”

“또 잡혀 들어오고 싶냐?”

“그건 아니지만요. 제가 은행을 털면 백 퍼센트의 확률로 걸리고 말까요? 저는 돈도 없고 배운 것도 없어서 뭐라도 몸으로 해야 하는데 말이죠!”

윤화는 김태원의 말을 진심으로 믿는 듯하면서도 인류의 절멸이라는 상황 자체는 장난으로 여기고 있었다. 그러니 허구한 날 수감 시설 밖의 삶을 상상하겠지.

“공부나 해. 너 정도면 특수 능력자 학교 들어갈 수 있잖아.”

“아, 제가 말씀 안 드렸나요?”

윤화는 머쓱한 표정으로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것도 절차가 나름 복잡하더라고요. 근데 뭐 형님도 아시다시피 제 고향엔 글 읽을 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어서 입학은커녕 쪽만 당했죠.”

“글 못 읽는다는 이유로 자연계 능력자를 그냥 버려뒀다는 말이야?”

“그땐 라이터 없이 담뱃불 붙이는 거 정도밖에 못하던 때라 완벽하게 자연계 능력자로 클 줄은 몰랐겠죠. 저도 폭주하기 전에는 몰랐는걸요.”

“그러니까 그게 말이 안 된다는 거라고.”

“그런가요? 뭐……. 그래도 결과적으론 형님이랑 같이 여기에 있으니까요! 그것만으로도 저는 만족했다는 마음입니다!”

헤헤.

헤벌쭉 웃는 윤화의 뒤통수를 내리치며 의현은 얼굴을 찡그렸다. 특수 능력자 학교는 관리가 잘 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꼭 그렇진 않은 모양이었다.

중간에 돈만 빼먹는 새끼가 있으니까, 자연계 능력자를 버려두는 일도 생기지. 사람들은 특수 능력자 학교를 뭐라도 되는 양 생각하고 있는데, 여기도 체제 개편이 필요하다 이건가?

의현은 입술을 짓씹으며 잠시간 생각에 빠졌다.

“형님! 그래도 제가 열심히 은행 털어서 밥 굶기진 않겠습니다!”

“헛소리 말고 네 추종자한테 가서 입이나 털어.”

“넵! 오늘도 형님의 미담을 널리 퍼트리고 오겠습니다!”

윤화를 보며 웅성거리고 있던 우락부락한 근육 무리들은 윤화가 다가오자 수줍게 환호했다. 우와악! 윤화 님 오늘도 멋지십니다!

“……진짜 지랄들을 한다.”

의현은 어이없어 죽겠다는 얼굴로 그 꼴을 쳐다보다가 금세 시선을 돌렸다.

만약 회귀 시점이 정해져 있는 거라면 재회귀의 시작점도 세인트 해피 보육원일 것이다. 하지만 권중섭이 자신의 정치적 기반을 다지기 위해 입양을 하는 이상, 그 입양은 무조건 학대로 이어지겠지.

의현은 김태원이 했다던 말을 떠올렸다.

‘신을 죽이려면, 신이 나를 사랑하게 만들어라.’

그딴 게 가능하겠냐고.

“형님! 여기 좀 보세요! 90428번 아저씨가 탈옥 계획을 세워 왔대요!”

“야 그걸 그렇게 크게 말하면……!”

“뭐? 이 자식들이!”

교도관이 잔뜩 성난 얼굴로 무리로 다가섰다. 윤화는 해맑은 얼굴로 웃으며 의현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의현은 한숨을 내쉬며 테이블 위로 이마를 대고 엎드렸다.

이렇게 한가로운 순간에도 여전히 시간은 흐르고 있었고, 아무리 발버둥 쳐도 이 흐름 속에서 빠져나갈 수 없다는 무력감이 의현을 무겁게 짓눌렀다.

* * *

책 속에 나오는, 죽을 날을 아는 위인들은 항상 초연했다. 자신의 죽음을 자연의 순리로 받아들이고 안온한 마음으로 눈을 감았다. 고전 명작 소설은 늘 그랬고, 토론 수업에서는 항상 그들의 숭고한 마지막을 예찬했다.

권의현은 느리게 눈을 감았다. 눈을 감으면 온갖 검은 것들이 기어와 의현의 시야에 덕지덕지 달라붙었다. 검은 것은 권의현이라는 인간을 조금씩 갉아먹었다. 발끝부터 머리까지 아주 조금씩.

‘네 선택을 평생 후회하면서 살아. 그러다가 괴로워 죽을 것 같을 때 죽지 말고 나를 생각해. 내가 마지막에 어떻게 갔는지 떠올려.’

‘국민 여러분, 권중섭입니다! 아비인 제가 아들을 잘못 키운 죄 물론 달게 받겠습니다! 하지만 이번 일은 저와는 일절 관계가 없는, 제 아들 권의현의 단독 폭행이자 살인입니다!’

‘너는 이 불행한 삶을 영영 반복하게 될 것이다.’

‘부디, 오래 살아.’

의현은 제가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누군가의 저주로 빚어진 괴물이라도 된 듯했다. 살아진 대로 살았을 뿐인데, 도대체 왜 이 지경까지 오게 된 거지? 의현은 절망했고 검은 것들은 깔깔 소리 내며 의현의 인생을 비웃었다.

세상도 온통 검게 물들었다.

오로지 Z라는 인간 하나만 유독 빛났다. 사람들은 Z를 숭배했으며 동시에 권의현을 악마라고 칭했다. 세상을 망친 건 내가 아니라……! 의현이 큰 소리로 이야기했지만 아무도 들어 주지 않았다. Z는 날개를 달고 하늘 높이 떠올랐다. 그리고 권의현은 철저히 배제된 채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사라졌다.

“……허억!”

의현은 깨어났다. 식은땀을 잔뜩 흘린 몸을 윤화가 흔들었다.

“형님! 일어나셔야 해요! 수감 시설이 붕괴됐대요!”

어울리지 않는 단어의 조합이었다. 수감 시설과 붕괴.

시끄럽게 비상 경보음이 울렸다. 교도관들은 일찍이 도망가 시설 내부엔 아무도 없었다. 아무래도 바깥 상황을 전달받고 미리 도망친 모양이었다.

“김태원 영감이 한 말이 정말 맞았나 봐요! 포탈에서 괴물들이 떼로 쏟아지고 있대요! 지상에 있는 사람들은 거의 죽었다고…….”

항상 생글거리고 웃던 윤화는 꼭 울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정말로 이런 날이 올 줄은 몰랐다는 듯이. 악몽에서 덜 깬 의현은 고개를 저으며 시야를 바로잡았다.

“이봐! 아무도 없는 거야?! 벽에서 물이 새고 있다고! 우리를 다 수장시키려고 작정한 거야?! 우리도 살고 싶단 말이야!”

험악한 목소리로 누군가 소리쳤다. 교도관들이 떼 지어 도망친 걸 보니 이 안에서 아무것도 못 하고 죽으리라 생각한 모양이었다.

“형님! 저희 정말로 죽는 거예요? 여기서 이렇게요?”

윤화가 의현의 어깨를 붙잡았다. 로비에 항상 틀어 놓는 뉴스에서 앵커가 큰 소리로 익숙한 패턴의 대사를 읊었다. 시초 능력의 후계자가 나타나 포탈을 강제로 개방했다. 거대한 하늘의 포탈에서 괴물들이 비 오듯 쏟아진다. 인간의 절멸이 다가오고 있다.

“……어떻게 얻은 기회인데, 이렇게는 못 죽지.”

수감 시설은 그 자체로 능력을 제한하는 기능을 하고 있었다. 그 말인즉슨 시설이 무너졌으니 시설 안에 있는 특수 능력자들이 제 능력을 사용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의현은 두꺼운 철재 문 위로 파장을 내뿜었다. 콰쾅! 엄청난 소리를 내며 문 위로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죽상을 하고 있던 윤화가 딸꾹질하며 의현을 바라보았다.

“오늘 세상 끝나는 거 맞아. 김태원이 한 말 사실이야.”

“……네?”

“그러니까 다시 태어나면, 너 은행 털 생각하지 말고 공부나 열심히 해.”

말의 앞뒤가 맞지 않았다. 오늘 세상이 끝난다더니 갑자기 다시 태어나면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윤화는 당황스러운 얼굴로 의현을 붙잡았다.

“형님! 나가시면 안 돼요! 밖에 괴물이 우글거린다니까요!”

이 안에서 수장되나 밖에서 괴물 밥이 되나 어차피 그게 그거였다. 윤화는 제가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의현을 붙잡았음을 자각했다.

“아……. 그러니까 형님 제 말은, 밖에 나가 봐야 어차피 죽을 텐데. 아니 물론 죽지 않을 수도 있지만…….”

정리되지 못한 말을 주절거리며 윤화는 횡설수설했다.

“야.”

“네?!”

“네가 있어서 심심하진 않았어.”

“…….”

“고향에 같이 가자는 약속 못 지켜서 미안하다.”

어쩐지 담담한 표정이었다. 의현은 윤화의 뺨을 가볍게 툭툭 두드리곤 바깥으로 뛰어나갔다.

“…….”

윤화는 얼굴이 새빨개진 채 뚝뚝 눈물을 흘렸다. 수감 시설의 벽은 쩍쩍 금이 가 거센 물길이 쏟아졌다. 수감자들은 지옥 속에서 허우적거렸고 윤화는 의현의 뒷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이 지겨운 삶이 오로지 Z의 마지막 순간을 위한 들러리였다고 생각하면 살다가도 문득 울화가 치밀었다. 차라리 무지에 눈이 멀어 버리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어떤 사람들은 아무것도 모르는데, 왜 어떤 사람은 모든 걸 알고도 같은 삶을 반복해서 살아야 하는가.

이미 수감 시설엔 괴물이 우글거리고 있었다. 의현은 제 능력을 이용해 괴물의 머리를 부수며 단숨에 지상까지 올라갔다. 차마 괴물을 피하지 못해 죽은 것들이 시설 여기저기 장식처럼 즐비해 있었다.

“……하.”

몇 년 만에 보는 ‘진짜’ 햇빛이었다. 얼굴에 피 칠갑을 한 의현은 실소하며 제게 아가리를 벌리는 괴물의 몸체를 찢었다.

살아남은 사람은 거의 없는 듯했다. 하늘은 불쾌한 무지갯빛으로 일렁거렸다. 아주 오랜만에 마주하는 4차 포탈이었다.

살아 있는 인간을 발견한 괴물들이 미친 듯이 의현에게 몰려들었다. 의현은 땀을 닦을 새도 없이 괴물 사이에 들어가 맨손으로 미친 듯이 숨통을 끊어 냈다.

[시초 능력의 후계자, 시공간을 찢어 포탈 강제 개방!]

익숙한 스크린 뉴스였다. Z를 다시 마주한다는 생각에 머리가 차게 식었다. 리셋은 기회가 아니라 저주였다. 어차피 권의현은 뭘 선택해도 자유와 행복을 되찾을 수 없을 테니까.

빌딩 위에 높게 선 Z의 모습이 보였다. 그때 그 보육원에서 너를 선택해 애지중지 길렀다면 지금쯤 모두 웃고 있었을까?

그것조차 확신할 수 없었다.

“……개 같은 Z.”

의현은 순간마다 최선의 선택을 했다. 하지만 그 최선은 망했고 차선은 더 망했으며, 이제는 3회 차 인생을 앞두고 있었다. 의현은 빠득 이를 갈며 엄청난 속도로 Z를 향해 뛰어 올라갔다.

“죽어. 죽어! 죽어!”

의현의 첫 감정 폭주였다. Z의 목을 조르기 위해서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능력을 모두 끌어다 허공에 내던졌다. 시뻘건 색의 공기층이 Z를 향해 엄청난 속도로 날아갔다.

“…….”

Z는 눈을 반쯤 감은 채로 제게 날아오는 의현의 공격을 그저 바라보았다. 핏기 없는 하얀 얼굴엔 조금의 표정도 없었다.

의현의 공격은 Z에게 아무런 흠집도 내지 못했다. 얼굴이 조금 긁혀 피가 떨어지는 정도였다. 이미 발아래의 세상은 전부 괴물에게 먹힌 상황에서, 의현은 힘 빠진 손으로 Z의 목을 움켜쥐었다.

“제발, 좀, 뒤져. 제발, 좀…….”

윤화는 죽었을까?

권중섭은?

수십 개의 해결되지 못한 물음표와 Z가 없었으면 겪지 않았을 순간들이 지저분하게 섞여 의현의 속 안에서 검게 터졌다.

Z는 아무런 말도 없이 의현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힘 빠진 손에선 아무런 악력도 느껴지지 않았다. 의현은 손을 덜덜 떨었다. 이미 끝나 버린 세상에서 이성을 가진 생명체가 자신뿐이라는 사실이 너무나도 징그럽게 다가왔다.

“…….”

Z는 의현의 손 위에 다정하게 제 손을 올려 꽉 힘을 주었다. 안 그래도 핏기 없던 Z의 얼굴이 백지장처럼 질려 갔다. 툭툭 목 위로 핏줄이 도드라져 올라오고, 의현은 허억 숨을 몰아쉬었다.

“으아악!”

Z가 죽는다. 그것도 제 손안에서.

의현은 소리치며 뒤로 물러섰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너무나도 무서워 그를 죽일 수가 없었다. 구역질을 뱉으며 고개를 아래로 처박는 의현을 보며 Z가 웬일로 환하게 웃었다.

그리고 처음 그랬던 것처럼, 수백 마리의 괴물들이 다가와 의현의 목을 따 버렸다.

두 번째 죽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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