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이미 죽은 권다원의 몸에서는 수십 개의 상해 흔적이 발견됐다고 했다. 이 사건이 알려지자 국제 인권 단체들은 피켓을 들고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묵비권을 행사할 줄 알았던 권중섭은 의외로 대형 로펌을 끼고 당당하게 언론에 나와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다. ‘이 모든 것은 제 아들인 권의현의 단독 폭행이자 살인이었다!’라면서.
증거 대부분이 범인으로 권의현을 가리키고 있는 건 사실이었다. 반증할 새도 없이 권의현은 곧 특수 능력자 수감 시설에 갇혔다.
일련의 사건이 있은 지 4년.
미래가 창창한 헌터 유망주의 폭행과 살인. 그 엽기적인 소식은 모두의 머릿속에서 서서히 잊혀 갔다. 권중섭은 자식을 잘못 키웠다는 의미로 머리를 깎고 종교 시설에 들어갔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금 정치판에 복귀했다.
결국은 아무것도 바뀌지 않은 것이다.
“좆같네…….”
13일 뉴스에서는 위기를 딛고 재기한 권중섭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는 사실을 알렸다. 몸 주변에 기계를 주렁주렁 단 권의현은 자조적으로 웃었다.
“뭐가 웃겨? 네 피 뽑고 있는데.”
“권중섭이 대통령 됐다잖아요. 난 되게 웃긴데.”
“너 같은 새끼 때문에 대통령님이 억울하게 핍박당한 것만 생각하면 당장 시설에 쳐들어오겠다는 추종자들이 한 트럭이야. 이 자식이 아직도 반성을 못 하고?”
“그건 뭐. 좋을 대로 생각하시고.”
자연계 능력자이자, 특수 능력 고등학교 수석. 수감 시설 안에 이 정도 되는 사람은 권의현밖에 없었다.
정부는 대의를 위한 연구 목적이라면서 틈만 나면 권의현의 피를 한 드럼씩 빼 갔다. 위험하다는 이유로 운동도 못 하게 해, 24시간 내내 감시 카메라가 달라붙어, 피 뽑아 가……. 어쩌면 권의현이 멀쩡히 살아 있는 게 기적이었다.
“자유 시간이다. 앞으로 두 시간.”
담당 교도관은 정신 못 차리는 권의현을 양쪽에서 붙잡아 로비 테이블에 앉혀 놓았다.
특수 능력 수감 시설은 지하 깊은 바닷속에 있었다. 누군가 탈옥을 시도하려고 벽을 부숴도 불가능하도록. Z 정도로 미친 인간이 아니고서야 중력을 조종할 수는 없을 테니, 어차피 권의현은 여기서 평생 썩어야 할 운명이었다.
“형님! 형님!”
누군가 해맑은 목소리로 의현을 부르며 옆자리로 와 앉았다.
“제가 아주 빅뉴스를 하나 알아 왔다 아닙니까?”
“머리 울려. 조용히 해.”
“넵! 오늘도 피를 갈취당하셨나 보군요! 저 미친놈들 제가 출소하고 나면 싹 다 화형시켜 버리겠습니다!”
동네 하나를 싹 태워 버린 죄로 수감된 윤화였다. 얜 너무 가난한 구역에서 태어나 글 읽을 줄도 몰랐다. 부모님도 양쪽 모두 까막눈이었다고 했다. ‘머리가 불처럼 붉으니, 너는 화(火)야.’ 이름도 생각보다 싱거운 이유로 지어졌단다.
“야. 머리 울린다고.”
의현은 테이블에 머리를 대고 옆으로 엎드렸다. 사람으로서 누려야 할 최소한의 것들을 아무것도 못 누리고 있으려니, 제아무리 권의현이라고 해도 문득문득 정신이 혼미해졌다.
“머리가 왜 울릴까요. 속상하네요. 호- 하고 불면 덜 아플까요?”
윤화는 똑같이 테이블에 뺨을 대고 의현과 눈을 맞추었다. 아직 젖살도 안 빠진 얼굴이었는데 상당한 걱정이 비쳤다. 어이가 없는 일이었다. 평생 가족이란 이름 아래 있던 권중섭은 저 혼자 살겠다고 아무렇지도 않게 아들을 팽개쳤는데, 생판 남인 놈이 걱정해 주고 있다는 게.
“덜 아프겠냐? 생각을 좀 하라고.”
“생각이 잘 안 돼요. 평생 머리를 안 쓰고 살아 가지고. 헤헤.”
윤화는 헤죽 눈을 접으며 웃었다. 의현은 한숨을 내쉬며 몸을 일으켰다.
“그래서 빅뉴스가 뭔데?”
“아! 독방 쓰는 김태원 영감이 알려 준 건데요. 두 달 뒤에 세상이 멸망한대요!”
“……뭐?”
권의현은 인상을 찌푸렸다. 제 기억상 Z가 나타나 세상을 끝내는 시점도 딱 이즈음이었다.
“신이 내려와 우매한 인간들을 벌한대요! 한 놈도 남기지 않고 싹 털어서 죽음의 세계로 끌고 간다는데요?”
“신?”
“김태원 영감 말로는 그렇더라고요.”
“신이 왜 인간 세상에 난입하는데.”
“그거는 신 마음이 아닐까요? 뭐든 지 마음대로 하니까 인간도 만들고 그랬겠죠?”
대화가 안 됐다. 아흔 살 넘게 먹고도 아직 살아 있는 김태원은 툭 하면 헛소리를 해대서, 제 방보다 독방에서 먹고 자고 한 날이 더 긴 사람이었다.
“정확히 두 달이래?”
“네. 그렇다니까요? 내년 1월 13일이 세상의 끝이래요! 형님! 저는 어쩌면 좋죠?”
권의현은 머릿속으로 달력을 그려 보았다. 이제는 너무 오래된 기억이라 확실하지 않지만, 그 날짜가 맞을 수도 있다. 헛소릴 밥 먹듯이 하는 노친네라도 날짜를 정확히 집는 건 뭔가 이유가 있어서 그런 게 아닐까?
‘아무래도 한번 만나 보는 게 좋겠어.’
의현이 깔끔하게 결론 내리는 동안, 윤화는 손으로 의현의 입꼬리를 잡아 올렸다.
“형님 웃는 얼굴도 못 보고 죽긴 싫은데……. 너무 슬프잖아요!”
“손대지 마.”
의현은 불쾌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윤화의 손을 내리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계속해서 이쪽을 감시하고 있던 교도관이 다시금 따라붙으려고 몸을 움찔거렸다.
“너 김태원한테 하나만 더 물어봐 줄 수 있어?”
“뭔데요?”
제게 관심을 준 것이 기쁜 건지 윤화가 두 눈을 반짝였다. 의현은 뻐근한 어깨를 뱅뱅 돌리며 속삭였다.
“신 죽이는 법.”
신도 과연 죽을까?
김태원을 만나게 된 것은 며칠 후였다. 무슨 로비를 했는지 독방에서 나온 김태원이 수감자들을 모아놓고 뭐라 뭐라 떠들고 있었다. 그 관객 중에는 윤화도 껴 있었다. 얼마나 재밌는 얘기를 하는지 교도관들이 다가가 머리카락을 잡아당길 때까지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잘들 논다.”
의현은 떼로 붙잡혀 가는 무리를 쳐다보며 눈썹을 찡그렸다. 구레나룻이 잡힌 채 질질 끌려가던 윤화가 의현을 발견하곤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형님! 좋은 아침임다!”
“좋은 아침은 무슨, 모여서 작당하지 말라고 했어, 안 했어?! 너네 다 독방 들어가고 싶어?!”
당장 죽어도 이상할 것 없는 김태원은 태연한 표정으로 아수라장 사이를 슬그머니 빠져나갔다. 멀찌감치 떨어져 그 꼴을 보던 의현이 눈을 날카롭게 떴다. 김태원에겐 어차피 궁금한 것도 있었다.
“이봐, 노인네.”
어떻게 반입했는지 모를 사탕을 입에 와구와구 집어넣은 김태원은 쓰레기통 앞에 쭈그리고 앉아 괜히 히죽거리고 있었다.
“대답 좀 하지?”
사탕으로 가득 찬 듯한 볼이 볼록했다. 의현은 다리를 굽히고 앉아 김태원과 눈높이를 맞추었다.
“그쪽이 13일에 세상이 멸망한다는 헛소릴 지껄이고 다닌다며?”
“……오오! 세상! 바야흐로 세상이 멸망하고 나면! 신께서 우리를 판별하기 위해 친히 강림하시고! 선택받은 사람만이 이 세상에 남아! 영생을 얻을 것이다! 신이시여! 저를 선택하여 주소서-!”
“귀 떨어질 뻔했잖아, 미친 영감아!”
김태원은 갑자기 무슨 신내림이라도 받은 듯 막무가내로 악을 썼다. 덕분에 무리를 해체하고 있던 교도관들의 시선이 이쪽으로 집중됐다.
“거기! 뭐 하는 거야? 서로 떨어져!”
“하…….”
의현의 일거수일투족은 언제든 눈에 띄게 되어 있었다. 결국, 아무런 결과도 내지 못하고 의현은 허리를 펴고 일어났다.
“……열받네.”
“뭐야?”
작게 중얼거린 걸 들었는지 교도관 하나가 언성을 높였다. 밖에서 만났으면 한주먹거리도 안 될 것 같은 놈이 꼭 이 안에선 이렇게 예민하게 굴었다.
“이 새끼들이 요새 봐준다 봐준다 하니까 자꾸 기어오르네? 다들 단체로 물에 수장되고 싶어?!”
“아니, 상식적으로 되고 싶겠습니까? 교도관님! 말이 되는 질문을 하십쇼! 저는 오래 살고 싶습니다! 그죠? 형님!”
또박또박 반박하는 윤화의 말에 수감자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으하학!
“미친 새끼들 아냐, 이거?”
“…….”
“11116번 권의현, 너는 독방이다.”
“내가 왜요?”
“이 새끼가 또?!”
가만히 있었음에도 권의현에게 온갖 불똥이 다 튀었다. 순식간에 분란의 주동자가 된 의현은 양손을 들며 제게 아무런 반항 의지가 없다고 어필했지만, 애석하게도 먹히지 않았다.
정말 아무것도 안 했는데, 권의현의 인생은 자꾸만 꼬였다.
“안 돼! 형님을 가두지 말고 차라리 나를 가둬라 이 자식들아! 악의 무리! 나쁜 자식들! 이 사악한 놈들!”
“윤화 넌 제발 좀 닥쳐.”
교도관을 향해 손가락질하며 구슬프게 한을 쏟아 내던 윤화는 의현의 말에 억울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독방이든 뭐든 상관없으니까 차라리 조용한 방에 좀 혼자 있게 해 주세요.”
의현의 가련한 마음을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교도관은 미간에 골이 깊게 파인 채로 의현을 끌고 독방이 있는 지하실로 내려갔다.
“형님! 안 됩니다! 이 자식들아-! 나를 가둬라, 나를……!”
윤화를 말리려고 교도관 몇이 달라붙었다. 자연계 능력은 제한 장치를 걸어 놓았다고 해도 완전히 제한하기엔 아직 역부족이었다. 으아악! 윤화의 팔다리를 붙잡은 교도관들이 고통을 호소하며 떨어져 나왔다.
“20248 저 자식이!”
불 능력을 직접 쓸 수는 없었지만, 온몸에 뜨겁게 열이 올라 교도관들이 화상을 입은 듯했다.
여기서 수감자들을 제어하지 못하면 전세가 뒤집힌다고 생각한 건지 교도관은 주머니에서 총을 꺼내 들었다.
“양손 들고 벽으로 붙어 서! 안 그러면 다 대가리를 쏴 버릴 테니까!”
교도관이 악에 받쳐 왁왁 소리치는 동안, 의현은 지루한 표정으로 제 옆에 선 교도관에게 말했다.
“빨리 독방 가죠?”
“무, 뭐?!”
“난리 났는데 뭐 하러 여기 있어요. 빨리 독방 가지.”
듣고 보니 의현의 말도 틀린 게 없었다. 애초에 권의현의 능력 수치가 이 중에서 가장 높았으니, 대장급 되는 인물을 떨어트려 놓을 필요가 있었다.
“수, 순순히 따라오는 게 좋을 거야!”
저쪽에서 난리가 난 걸 의식했는지, 이쪽 교도관도 총을 꺼내 의현의 머리 쪽에 겨누었다.
“이쪽으로 와!”
“참 나…….”
총을 쥔 손이 달달 떨리고 있었다. 의현은 픽 웃으며 남자를 따라 독방으로 내려갔다. 로비에서 윤화가 악을 쓰며 소리를 질렀다. 형님! 가지 마세요! 형님!
“들어가!”
독방이라고 해서 정말 누우면 끝일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방이 넓었다. 물론 예상보다 넓었다는 거지 사실은 3평도 안 됐다. 의현이 제 발로 순순히 독방에 들어가자, 교도관은 문을 닫고 주섬주섬 자물쇠를 걸어 잠갔다.
“자물쇠? 독방치곤 약간 보안이 허술한 편이네요.”
“최, 최첨단 과학 잠금장치가 있고, 자물쇠는 그냥 보이게만 해 놓는 거야! 그, 그리고 허술하면 뭐! 무, 문이라도 따고 나오겠다 이거냐?!”
“그런 건 아니고.”
교도관이 너무 겁에 질려 보여서 의현은 더 이상 시비 안 걸기로 했다.
―추가 인력 요청! 추가 인력 요청! 로비에서 20248 불 능력자 폭주 상황 발생!
얼마나 큰 소동이 났는지 교도관의 무전기가 터질 듯했다. 윤화 하나 제어 못 할 정도라면 언젠가 의현도 탈옥을 노려볼 만도 했다. 물론 하지 않을 거지만.
의현은 차가운 바닥에 드러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조금 졸린 것 같기도 했다.
“너! 도대체 20248번을 어떻게 세뇌한 거야? 도대체 어떻게 했길래 널 독방 가뒀다고 이 난리냔 말이야!”
난장판이 된 위층과는 다르게 세상 평화로운 의현에게 분노한 교도관이 독방 문을 두드리며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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