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Z와의 첫 만남이 잘 기억나지 않았다. 걔가 어떻게 눈에 띄어 어떻게 우리 집까지 오게 됐는지 그 모든 과정이 불확실했다. 정확한 건, Z는 어느 순간부터 입양되어 자각하지 못하는 순간부터 그 집에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Z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권의현은 불쾌감을 느꼈다. 그것은 어쩌면 공포감과 닮아 있을지도 몰랐다.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강한 사람을 적으로 두었을 때 느껴지는 초조함과 긴장.
“…….”
Z는 이상한 발음을 웅얼거리며 의현의 옷자락을 잡아 쥐었다. 허여멀건 피부 아래로 보이는 핏줄이 지나치게 선명했다.
“이거 놔!”
발끝부터 소름이 쫙 돋았다.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는데, 상상할 수 없이 불쾌해서 더는 견딜 수가 없었다. 권의현은 Z를 밀어내고 복도를 뛰어갔다.
“허억…… 헉…… 헉…….”
손과 치아가 덜덜 떨렸다. 말 못 하는 병신이 이렇게까지 두려울 리가 없는데……. 의현은 나무에 등을 기대고 서서 제 목을 더듬거리며 만져 보았다.
“죽지 않았어. 죽지 않았어…….”
어쩌면 이 모든 게 꿈은 아닐까?
그런 생각을 안 해 본 것은 아니었다. 자신이 죽어 회귀했다는 사실보다는 오히려 죄다 꿈이었다는 게 더 현실적이었다.
하지만 만약 그렇다면, 이 미칠 것 같은 불쾌함은 도대체 어디에서 기인한 것이란 말인가?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고서야 절대적으로 불가능한 감정이었다.
“의현아! 권의현!”
권중섭이 자신을 찾고 있었다. 의현은 제 뺨을 세게 쳤다. 정신 똑바로 안 차리면 다시 한번 괴물한테 모가지 따이고 말 거라고. 죽든 살든 다 같이 망하는 꼴 보고 싶지 않으면 Z에게서 멀어지라고 본능이 경고하고 있었다.
“……저 여기 있어요.”
“도대체 어딜 갔던 거야! 화장실 문은 왜 부순 거고!”
권중섭은 무섭게 다가와 권의현의 어깨를 쥐었다.
“카메라에 다 찍히고 있다는 사실을 네가 몰라? 한 번도 이러지 않았던 놈이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
“아버지.”
권의현은 느리게 눈을 감았다 떴다.
“입양 안 하시면 안 돼요? 부탁드려요.”
살면서 처음으로 한 의현의 부탁에, 권중섭은 터무니없다는 듯 실소했다.
“헛소리할 거면, 차에 들어가 있어.”
“……입양은 무조건 하셔야겠다는 거죠?”
“그럼, 여기 와서 사진도 다 찍고 언론에 이미 말 맞춰 놨는데 갑자기 그걸 다 취소하란 말이냐? 너는 도대체 정치를 어떻게 보는 거야?”
원래부터 권중섭은 이런 인간이었다. 그러니 싫어했던 거고, 그래서 관심을 주지 않았던 거다. 권의현은 해탈한 얼굴로 생각했다. 어떤 것은 절대로 바꿀 수 없다. 적어도 죽기 전까진.
“……그럼 제가 고른 애로 해 주세요.”
“뭐? 마음에 드는 애가 있는 거냐?”
“……쟤요.”
권의현은 눈에 보이는 아무나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Z가 아니면 누가 됐든 상관없었다.
“쟤로 할래요.”
명색이 호적에 올라가는 동생이었는데, 너무나도 쉽게 선택되었다.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는 앞니 두 개 빠진 아이는, 그날 바로 권중섭의 차를 타고 그들이 사는 집으로 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영락없이 익숙한 기사가 터졌다.
[권중섭 헌터부 장관, 빈곤 지역 출신 여아 입양, “능력자가 아니더라도 사랑으로 키웁시다!” 캠페인 참여 독려. 누리꾼 “역시 차기 대통령감”, “보여 주기식 여론 플레이” 상반되는 반응…….]
* * *
“야, 너 동생 생겼다며?”
“그냥 데려온 거야.”
“입양한 거 아니야? 그럼 동생이지. 어때? 귀엽냐?”
“얼굴 안 봐서 몰라.”
여자애건 남자애건 관심이 없는 건 매한가지였다. 권중섭에게 성별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 듯, 머리채 잡고 끌고 가 때리는 것도 여전했다. 유모는 그때마다 더 안절부절못했다.
“같은 집에 사는데 어떻게 얼굴을 몰라?”
“집에서 잠만 자고 나와서 얼굴 볼 일이 없어.”
“너무 무심한 거 아니냐? 너 그러다가 진짜 천벌 받아.”
동급생이 한 말에 의현은 문제집 풀던 손을 멈추고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였다.
“천벌?”
“어?”
“내가 천벌을 받는다고?”
“야, 장난인데 왜 그래. 말이 그렇다는 거지. 말이.”
동급생은 의현이 이런 반응을 보일 줄 몰랐다는 듯 손을 휘저었다.
“못된 사람들은 원래 천벌 받는다고 하잖아. 근데 너희 집은 아버지도 장관님이시고, 어머니도 유공자셨고 너도 헌터가 될 거니까 그럴 일 없지. 안 그래?”
떼 지어 지옥으로 갈 악인의 이름들이 순서대로 나열됐다. 권의현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은 채 다시금 문제집에 얼굴을 처박았다.
“아아 나도 등급 평가 잘 받아서 헌터 되면 좋겠다! 내 능력 너무 쓸데없어. B급만 받아도 먹고사는 데엔 문제없는데!”
Z의 재난은 피했고, 이제 남은 건 권의현의 행복뿐이었다. 이 정도 능력이라면 S급을 받아 헌터가 되는 데에는 어떤 문제도 없었다. 헌터가 되어서 사람들을 살리면, 정말 천벌을 피해 갈 수 있는 걸까?
권의현은 처음으로 그런 이상한 생각을 한번 해 보았다.
귀신이라도 나올 것 같은 집구석에서 나와 의현은 고등 기숙사로 들어갔다. 졸업이 얼마 남지 않아 등급 평가에 신경을 써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의현은 1인실을 썼고, 친한 친구는 당연히 없었다.
“개같이 힘드네…….”
능력을 한계까지 뽑아내 보겠다고 난리 치는 선생들이 지긋지긋했다. 의현은 기숙사 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침대 위로 엎어져 누웠다. 옛날에도 이랬었나? 이제는 기억도 가물가물했다.
“…….”
핸드폰은 구석에 처박아 둔 채로 몇 분 잠들어 있는데, 누군가가 문에 노크했다. 똑똑똑. 작고 소박한 소음에 의현은 몹시 불쾌하게 잠에서 깼다.
똑똑똑. 상대는 한 번 더 노크했다. 의현은 몸을 길게 늘여 스트레칭을 하며 현관으로 걸어갔다.
“오빠.”
처음엔 누구인가 했다. 뺨이 잔뜩 터지고 산발을 한 여자가 의현의 앞에서 고개를 푹 숙였다.
의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이름이 생각 안 났다. 얼굴도 잘 몰랐다. 그냥 오빠라고 부르는 걸 보니, 얘가 동생인가 싶었다.
“……나 사람 죽였어.”
생각났다. 유모가 몇 번 부르던 이름이 분명 권다원인가 그랬다. 의현은 현관에 기대어 비스듬하게 서서 낯선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뭐?”
“죽이고 싶지 않았는데, 그 사람이 먼저 나를 괴롭혔어. 나 정말 안 그러려고 했는데, 그 사람이 자꾸 나 죽여 버리겠다고 협박해서 나 정말 안 그러려고 했는데…….”
다원은 혼란스러운 얼굴로 횡설수설 이야기를 내뱉다가 바닥에 풀썩 주저앉았다.
“이 사실을 알면, 아버지가 나를 죽일 거야. 권중섭이 나를 죽일 거야. 나를 죽일 거야. 나도 죽을 거야…….”
“네가 죽인 게 누군데?”
의현의 물음에 다원은 중얼거림을 뚝 멈추었다.
“……학교 선생님.”
“선생님?”
“……1학년 과학 선생님인데, 착하셨어! 나 잘 챙겨 주셨고 맛있는 것도 사 주셨고! 말도 잘 들어 주시고……! 그랬는데! 나도 왜 죽였는지 잘은 모르겠어. 맞아. 정말 안 죽이려고 했는데, 나 정말 왜 그랬을까?”
다원은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있는 듯했다. 큰 소음에 지나가던 애들이 의현이 있는 쪽을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의현은 한숨을 내쉬며 방에서 핸드폰을 챙겨 들었다.
“일단 나와.”
“집에 가면 안 돼. 알지? 권중섭이 나 죽이는 거 알지? 오빠도 알잖아. 권중섭이 나…….”
“알겠다고.”
Z를 선택하지 않은 대가라기에 이건 지나치게 저급했다. 의현은 다원이 미쳐서 헛소리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얘가 사람을 죽였다고? 다른 사람도 아니고 얘가?
의현은 기숙사를 빠져나왔다. 다원은 덜덜 몸을 떨며 의현의 뒤를 따랐다.
“어디야. 장소 말해.”
택시에 올라탄 의현이 다원을 재촉했다. 다원은 텅 빈 눈으로 가만히 앞을 쳐다보았다.
“야. 어딘지 말하라고.”
“……우리 학교.”
“그러니까 네 학교가 어딘데.”
의현의 말에 다원은 크게 웃었다. 으하하하!
웃다가 순식간에 침묵하는 이상한 모습에 택시 운전사가 심각한 표정으로 다원을 힐끗거렸다.
“한일 중학교. 오빠 몰라? 나 거기 다니잖아.”
택시는 부드럽게 출발했다. 의현은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얼른 택시가 목적지에 도착하기를 바랐다.
권중섭이 알면 권다원은 정말 죽을지도 몰랐다. 눈엣가시 같던 객식구 하나 치워 버린다며 어쩌면 즐겁게 생각할지도 몰랐다. 도대체 왜 일이 이 지경까지 오게 되었나. 의현이 한탄하는 사이, 택시는 둘을 스산한 학교에 내려 주었다.
“어디야.”
“저기 안쪽.”
다원은 학교 뒤편으로 걸어갔다.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공기는 차가웠다. 앞서가던 다원의 발걸음이 점점 빨라졌다. 아무래도 창고 쪽으로 가는 것 같았다.
전등 하나 없는 어두운 길을 팔랑팔랑 걷던 다원은 이내 한 자리에 멈추어 섰다.
“죽어-!”
의현의 뒤에서 누군가가 커다란 쇠톱을 휘둘렀다. 의현은 허리를 숙여 가볍게 공격을 피한 뒤 제 능력을 개방했다. 커다란 파동은 주변으로 뻗어 나가며 공격한 사람의 사지를 완전히 분질러 놓았다.
“헉……. 으으윽…….”
“넌 또 뭐야?”
의현이 무릎을 굽혀 바닥에 주저앉았다. 입에서 피를 줄줄 토하며 쓰러진 빡빡머리의 남자는 샐쭉 웃더니 의현의 얼굴에 퉤 침을 뱉었다.
“여기가 지옥이다. 이 새끼야.”
“뭔 개소릴 해. 똑바로 말해.”
짝, 짜악-.
의현이 남자의 뺨을 몇 대 갈겼다. 엄청난 악력에 이빨이 몇 개 나간 남자가 의현의 멱살을 잡으려 손을 바르작댔다.
“……하하. 구호 물품 챙겨서 보러 온다더니 안 오더라?”
“헛소릴.”
“나는 그렇다 쳐도, 키우겠다고 데려간 애는 잘 챙겼어야지.”
남자의 말에 의현은 눈썹을 들어 올렸다.
“그러니까, 네 말은 둘이 원래 아는 사이다?”
“사람 하나 없애는 거 너는 쉽지.”
“하…….”
의현이 몸을 일으켰다. 다원은 태연한 표정으로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여기요! 사, 사람이 죽었어요! 하, 한일 중학교예요! 권의현이 사람을 죽이고 이젠 저까지 죽이려고 해요! 아아악-!”
“뭐 하냐, 진짜.”
전화를 끊은 다원은 핸드폰을 집어 던지며 의현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곰곰이 생각을 좀 해 봤어. 곧 이 나라 수장이 될 권중섭이랑 앞으로 탄탄대로가 확정된 권의현 이 두 악마 새끼들을 어떻게 조져 버릴 수 있을까? 나 따위가 말이야. 맨날 처맞기나 할 줄 아는 내가 그 잘난 둘 인생에 과연 흠집이라도 낼 수 있을까?”
표정 하나 안 바꾸고 줄줄 말을 읊던 다원이 제 윗도리를 들어 올렸다. 권중섭 때문에 멍들고 찢어진 마른 몸이 여실히 드러났다.
“있잖아. 이건 내가 죽어야 끝나. 내가 죽어야 너희 인생도 좆 돼.”
“야.”
“도대체 나를 왜 선택했어? 네가 그날 나를 선택하지만 않았어도 나는 이렇게 살지 않았을 텐데! 왜 하필 나를 골랐어! 도대체 왜-!”
다원의 악에 받친 소리에 의현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이유? 그런 건 처음부터 없었어.
너는 Z를 피하기 위한 임시방편일 뿐이었으니까.
“권중섭이나 너나 똑같아. 너희 때문에, 너희 같은 악마 새끼들 때문에 나는 인간답게 살질 못했어. 병신같이 사는 동안 아무것도 못 했다고. 사는 동안…….”
내내 태연한 표정이던 권다원이 뚝뚝 눈물을 흘렸다.
“네 선택을 평생 후회하면서 살아. 그러다가 괴로워 죽을 것 같을 때 죽지 말고 나를 생각해. 내가 마지막에 어떻게 갔는지 떠올려.”
다원은 입을 벌려 총구를 제 목구멍 깊숙이 집어넣었다.
“부디, 오래 살아.”
탕!
총소리가 조용한 학교 안을 가득 채웠다. 의현이 가만히 눈을 감았다 떴다. 뭐지?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갑자기?
오로지 물음표들이 의현의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갑자기 왜 죽어? 지금까지 괜찮았잖아. 뭐가 잘못된 거지? 도대체 뭐가?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를 들으며 의현은 실소했다.
“씨발…….”
이건 완전히 망해 버린 선택지였다.
[유력 대선 후보 권중섭의 아들, 살인 사건 연루. 피해자는 세인트 해피 보육원 출신 청소년 A군과 화제의 입양 가족 B양. 인권단체의 강력한 항의로 대선 출마 무산되나…….]
[입양 가족 B양의 몸에는 폭행의 흔적도 있어. 전문가 “오랫동안 가정 폭행을 당한 것으로 추정” 땅에 떨어진 민심, 누리꾼 “저 악인들을 당장 감방에 처넣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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