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권의현은 붙잡힌 제 손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도저히 성인 남자의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작고 살찐 손가락이었다. 고개를 조금 들자 거기엔 꽤나 젊어 보이는 얼굴의 아버지, 권중섭이 있었다.
“NO라니까 짜증나게…….”
정말 인생이 리셋됐다.
할 말이 없었다. 이능력을 각성하면서부터 별별 상황을 다 경험해 봤지만, 이전 기억을 모두 가지고 과거로 이동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여겼다. 권의현은 신이 있다고 믿었고, 인간과 신을 나눌 수 있는 기준이 몇 가지 있다고 확신했다.
첫째, 신은 생사에 관여할 수 있다.
둘째, 신은 시간을 돌린다.
셋째, 신은 운명을 바꾼다.
이 모든 개인적 기준이 한꺼번에 허물어지는 아주 값진 순간이었다. 이미 목이 반으로 잘려 죽은 권의현은 과거로 돌아옴으로써 살아나게 됐고, 운명은 제 선택에 따라 바뀌게 된 것이다.
“의현아, 방금 너 뭐라고 했니?”
“……아무 말도요.”
권의현은 인상을 살짝 찌푸리며 권중섭이 잡고 있던 제 손을 슬쩍 빼냈다. 원래 이런 살가운 사이는 아니었다.
“허허, 녀석. 동생이 생긴다니까 벌써 떨리는 거야?”
‘동생은 무슨, 키우는 개 정도 대접이나 해 줬으면.’
권의현은 표정을 구기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회귀했으나 이건 어차피 신이 ‘자신이’ 불쌍해서 시간을 돌려 준 거였으므로, 결론적으로는 ‘나만’ 행복하면 될 것이었다. 그러니까 이번에는 나를 위해서 좀 살아 보리라 다짐했다.
“우리 보육원에서도 헌터를 희망하는 친구들이 많아요. 권중섭 장관님께서 그 아이들을 위해 연설을 해 준다면 정말 많은 도움이 될 겁니다.”
빈곤 지역 아이들을 전담하고 있는 세인트 해피 보육원은 거의 무너져 가고 있었다. 촌스러운 색깔로 입술을 칠한 원장은 입이 귀에 걸린 채로 권중섭의 뒤에 졸졸 따라붙었다.
“물론입니다. 자라나는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당연히 해야죠. 헌터부는 항상 인재를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어머나, 역시……! 아이들은 강당에 모여 있어요. 강당으로 바로 가실까요?”
“그렇게 하죠.”
권중섭은 나라와 아이를 위해 헌신하는 친절한 중년 남자 역할에 완전히 몰입한 것 같았다. 구라 치네. 권의현은 작게 헛웃음 치며 조용히 그들을 쫓았다.
“이쪽이 강당이에요. 동네 재난 상황에서 임시 숙소로 쓰이던 걸 개조해서 사용하고 있죠. 재정적으로 지원이 좀 나온다면 여기도 수리할 수 있을 텐데……. 호호호.”
“이거 돌아가면 얘기를 좀 해 봐야겠군요.”
“어머나, 부담을 드리려고 한 말은 아니지만, 너무 감사드려요!”
원장은 월척을 잡았다는 듯 요란 법석을 떨었다.
낡은 복도는 걸을 때마다 삐그덕거리는 소리가 났다. 재난 상황에서 임시 숙소로 쓰이긴커녕, 이 공간 자체가 재난인 것 같았다.
“이 안쪽이에요. 그럼 그, 아드님은 어떻게 강당 위로…….”
원장은 슬쩍 눈치를 보았다. 권중섭이 강당 위로 올라가는 건 당연했으나, 그의 아들 권의현은 어떻게 할 건지 의사를 묻는 것이었다. 주목받는 삶을 살긴 했지만, 원해서 그렇게 된 건 아니었다. 그러니 평소의 권의현이었다면, 절대로 강당에 올라가지 않았을 것이다.
“의현아 너는 어떻게 할래?”
권중섭이 물었다.
“……올라갈게요. 강당.”
처음으로 제 호기심을 위해 사람들의 앞에 서기로 마음먹은 순간이었다. 의현은 Z를 봐야만 했다. Z에 관한 것들이 너무나도 궁금해 견딜 수가 없었다. 걔도 회귀 전의 세계를 기억하고 있을까? 나와 아버지도?
만약 과거를 기억한다면, 그 애의 첫 번째 표적은 우리 가족일 것이다. 제 인생을 송두리째 망가트린 미치광이 악인들.
“오. 네가 이런 걸 싫어하는 줄 알았는데.”
“꼭 그렇진 않아요.”
“하하. 그렇구나.”
비공식적으로 동행한 카메라가 권중섭의 사진을 찍어 댔다. 권중섭은 상냥한 표정으로 괜히 권의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정말 친절한 아버지이시네요. 제가 다 감동할 정도로…….”
“애 엄마가 일찍 세상을 떠났죠. 아이를 부족하게 키우고 싶진 않았습니다. 그래서 바깥일도 집안일도 모두 제대로 해내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죠.”
‘도대체 누가?’
집에선 얼굴 한 번 보기도 힘들었다. 권의현은 대부분 시간을 혼자 보내거나 유모와 함께했다.
바깥일을 하다 보면, 아버지가 바쁠 수도 있지. 이해해 주자. 감히 누가 완벽할 수 있겠어. 누군가는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권의현도 그렇게 생각한 적이 한 번쯤은 있었으니.
강당 문을 열자, 애들 소리가 들렸다. 앙앙 우는 소리, 투덜거리는 소리, 까르륵 웃는 소리. 원장은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먼저 강당 위로 올라갔다.
“자자! 모두 조용! 오늘은 여러분들이 정말로 만나고 싶어 하던 헌터 선생님을 모셨어요! 다들 박수-!”
원장이 눈짓하자, 권중섭은 인자한 얼굴로 웃으며 강당 위로 올라갔다. 권의현의 손을 잡고서. 몇 번 잡아 보지도 못한 손을 오늘만 해도 두 번이나 잡았으니, 이것도 참 기념할 만한 날이었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헌터부 장관 권중섭입니다. 이 중에서 제 이름을 들어 본 친구들이 있나요?”
헌터라는 이름에 잔뜩 신이 난 아이들이 큰 소리로 대답했다. 네에!
권중섭이 무슨 말을 하든지 다 개소리일 것이 분명했다. 권의현은 원장의 옆에 꼿꼿하게 서서 강당에 모인 아이들을 내려다보았다. Z와 자신은 네 살 차이가 났으니, 아마 열한 살 즈음일 게 분명했다. 그렇다면 초등부에…….
권의현의 눈은 아주 빠르게 굴러갔다. 맨 앞자리에서 눈을 반짝반짝 빛내고 있는 여자애부터, 중간에서 하품을 크게 하는 남자애까지.
‘없잖아?’
꼬질꼬질한 초등부 사이에 Z는 보이지 않았다. 그 앤 항상 비쩍 마른 몸과 더러운 머리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제가 못 알아볼 리 없었다.
의현은 표준 집단을 바꿔서 한 번 더 찾아보기로 했다.
‘그래, 걘 몸집이 작아서 유아부에 있을 수도 있어. 이런 보육원에서 똑바로 관리했을 리가 없고.’
결과는 같았다. 무릎이 툭툭 튀어나온 내복을 입은 유아부 애들은 헌터가 뭔지, 그래서 지금 하는 얘기가 뭔지도 모르고 콧물이나 질질 흘려 댔다.
중등부, 고등부를 전부 훑었다. 의현은 믿을 수가 없었다. Z가 어디에도 없던 것이다. 기억이 잘 나지 않았지만, Z를 이 보육원에서 데려온 것만은 확실했는데.
“그럼 인사말은 이 정도로 하겠습니다.”
“와아-!”
혼란스럽던 사이, 권중섭은 고개를 숙였다. 강당에 모인 애들은 죄다 환호했고 카메라는 계속해서 사진을 찍었다.
“저희 쪽에서 식사도 준비해 놓았는데, 시간 괜찮으시다면 같이 하시겠어요? 입에 맞을지는 모르겠지만…….”
“아, 물론 괜찮죠. 이거 기대되는걸요?”
권중섭은 하하 웃으며 앞장섰다.
식당은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제법 신경 쓴 티가 났지만, 음식에선 죄다 가난의 냄새가 났으며 수프에 들어간 고기는 질기기 짝이 없었다.
“안녕!”
“…….”
“안녕-!”
의현이 밥을 먹는 동안, 보육원 애들은 계속 인사를 하고 멀리 도망가길 반복했다. 이게 무슨 놀이라도 되듯이.
의현이 아무런 반응도 해 주지 않자, 금세 어디선가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하! 지가 뭐라도 된다고 뻗대는 것 좀 봐! 얼굴은 허옇게 질려 가지고, 저딴 자식 뭐가 좋다고 꺅꺅대는 거냐!”
“…….”
“저딴 건 한주먹거리도 안 돼! 사람을 무시하기나 하고 말이야.”
덩치가 커다란 남자애가 큰소리로 호통을 쳤다. 몇몇 애들이 눈치 보며 은근히 동조했다. 마, 맞아. 인사 정도는 받아 줄 수 있는 건데, 우릴 무시했어.
의현은 한숨을 푹 내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권중섭은 애들끼리 장난친다고 생각하는 모양인지 대수롭지 않게 반응했다.
“그래. 애들이랑 좀 어울리면서 네가 마음이 가는 아이도 찾아보렴. 여기에 온 건 네 동생을 찾기 위함이니까.”
음식 하나 비우지 않은 식판을 내고 의현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수십 명이 뒤를 따랐다. 무슨 피리 부는 사나이처럼 뒤에 애들을 줄줄 달고 의현은 화장실로 가 손을 닦았다.
“말하는 거 안 들리냐? 너 귀머거리야?!”
“…….”
“딱 보니까 귀머거리네! 말더듬이랑 둘이 화장실에서 인사나 하고 놀아라! 딱 어울리는 한 쌍이네! 으하하-!”
애들은 의현을 이미 귀머거리라고 확신한 듯했다. 권의현은 손을 문질러 닦으며 그 말을 무시했다.
“뻐큐나 먹어라, 왕재수야!”
맨 앞에 서 있던 덩치 큰 남자애는 의현을 향해 가운뎃손가락을 올리며 화장실 중문을 확 닫아 버렸다.
쾅!
덜컹-.
큰 소리를 내며 문이 닫히자, 좌변기가 있는 칸에서 덜컹거리는 소리가 났다. 뭐지? 누가 있나? 의현은 손에 물기를 탈탈 털고 화장실 칸을 하나하나 발로 찼다.
쾅!
쾅!
쾅!
쾅!
문이 열릴 때마다 구역질 나올 수준의 오물밖에 보이질 않았다.
“…….”
제일 끄트머리의 칸은 잠겨 있는 건지 발에 쉽게 밀리지 않았다. 전구가 망가졌는지 간헐적으로 불이 깜빡였다.
쾅!
권의현은 주머니에 손을 꽂아 넣은 채로 화장실 문을 발로 차 부숴 버렸다. 아주 가벼운 발길질에도 문은 쉽사리 너덜거렸다.
“야, 나와.”
자신에게 다가오는 큰 소리가 무서웠던 건지 조그마한 몸집을 가진 성별을 알 수 없는 아이가 벽에 거의 들러붙다시피 있었다.
“나오라고.”
아이의 옷에서는 물이 뚝뚝 떨어졌다. 권의현은 인상을 팍 찌푸렸다. 말귀를 못 알아먹는 조그마한 아이를 어르고 달랠 생각 같은 건 추호도 없었다.
“그럼, 여기 살아. 평생 나오지 마.”
무심하게 뒤돌아서자마자, 아이는 의현의 등을 꽉 끌어안았다.
“씨, 더럽게……!”
권의현은 아이의 손을 빠르게 쳐 냈다. 바닥에 엎어진 아이는 알 수 없는 소리를 내며 울었다.
“우…… 우어…… 으…….”
“미치겠네.”
물에 젖은 미역 같은 머리가 화장실 바닥에 아무렇게나 늘어졌다. 고상한 도련님으로 자란 의현은 입을 틀어막고 고개를 돌렸다. 화장실 바깥에선 연신 까르르 웃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의현은 제 흰 셔츠에 물든 수상한 검은 액체를 만지지도 못하고 그저 표정을 구겼다.
“만지지 마.”
“…….”
“만지는 거 끔찍하니까.”
바닥에 늘어진 아이는 아무런 대답 없이 바닥에 고개를 푹 처박았다. 무기력한 모습에 왠지 모르게 기분이 나빠졌다.
권의현은 뚜벅뚜벅 걸어가 화장실 중문 앞에 섰다.
“우리가 안 열어 주면 쟨 저기서 평생 못 나와! 그러니까 내가 저런 녀석보다 훨씬 대단하다고! 으하하! 애초에 저 녀석은 그저 부모를 잘 만나서 저렇게 행복한 거야!”
목에 기름 낀 목소리만 들어도 그 살찐 놈이 분명했다. 의현은 문 위에 손을 얹고 제 능력 중 극히 일부만 퍼트렸다.
콰쾅-!
문은 순식간에 손톱만큼 작은 가루로 갈려 허공에 날렸다.
권의현은 기본적으로 인간에게 큰 관심이 없었다. 싫어하는 것보다 무관심이 더하다는데, 관심이 없으니 싫어할 턱도 없었다.
“야. 그럼 권중섭 너 가져.”
하지만 권의현이 싫어하는 것 딱 두 가지.
권중섭.
그리고 천박함.
“너는 네가 엄청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머리가 있으면 부모가 너를 여기에 왜 버렸나 생각을 좀 해 봐.”
“……뭐?!”
“하긴, 네가 보육원에 있으니 이런 경험을 하지. 그게 아니면 살면서 언제 나를 볼 수 있겠어.”
권의현은 뚱뚱한 남자애 멱살을 끌어당겨 속삭였다.
“평생 여기 살아. 이 지옥에서 부모도 미래도 없이 기생충처럼. 그럼 다음에 내가 시간 내서 한번 보러 올게. 네가 좋아하는 구호 물품 잔뜩 챙겨서 말이야.”
잡고 있던 손을 놓자 남자애는 기우뚱거리며 바닥에 넘어졌다. 이 모든 걸 보고 있던 다른 애들이 큰 소리를 내며 울기 시작했다. 으아앙!
“……더러워.”
권의현은 소름 끼친다는 어투로 중얼거렸다.
“으, 으아…….”
갑자기 화장실 마지막 칸에 있던 그 애가 의현이 있는 곳으로 달려왔다. 머리카락이 흩날리는 탓에 턱관절이나 입술 모양 같은 게 선명히 보였다.
“…….”
권의현의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저건 분명히 Z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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