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종종 그런 생각을 하곤 한다. 만약 강 대표가 내게 ‘대표님’이 아니라, 그의 말마따나 ‘깡패 새끼’였다면 지금 우리는 어떤 위치에 있었을까? 아마 지금 같은 일상은 꿈도 꾸지 못했을 거다.
강 대표의 집에 돌아온 지 일주일째, 강 대표는 나를 한시도 곁에서 떼어 놓지 않았다. 우리는 같이 밥을 먹고, 영화를 보고, 여행을 하고, 같이 잠에 들었다. 꿈결 같은 나날이었다. 단, 한 가지 문제만 제외한다면.
그건 강 대표가 지나치게 ‘대표님’처럼 군다는 거다.
‘아가. 이리 와.’
‘우리 자요?’
‘응. 눈 감아.’
‘…….’
‘자.’
그날, 우리는 정말 잠만 잤다. 그건 여행을 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아저씨. 제 선물이에요.’
‘…뭐야?’
대답하는 대신 그의 손바닥 위에 콘돔 박스를 얹자, 강 대표는 곤란한 웃음을 지었다.
‘아가.’
‘네.’
‘정성은 고마운데… 못 쓴다.’
‘…왜요?’
‘작아.’
‘네?’
‘작아서 못 쓴다고.’
나는 망연하게 콘돔 박스를 내려다보았다. 표면에는 L이라고 쓰여 있었다. 분명 편의점에서 팔던 콘돔 중에 제일 큰 거였는데….
‘아… 그럼 이건 제가 다시….’
뭐라고 말할 틈도 없이, 강 대표가 내 콘돔을 낚아채 갔다.
‘이건 네가 평생 쓸 일 없을 테니까 아저씨가 가져갈게.’
‘…….’
‘이리 와. 코 자자.’
내가 무슨 짓을 해도 결과는 같았다.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강 대표는 ‘강 대표’처럼 굴었다.
…아니. 그냥 좀, 하면 안 되나? 내가 이렇게 안달 나야 할 일인가? 이 정도 참았으면 이제 된 거 아닌가? 왜… 침대도 같이 쓰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수가 있지?
물론 나를 귀하게 여겨 주는 게 싫다는 건 아니지만… 과하다. 역시 강 대표는 중간이 없다.
‘이제 다 키웠으니 잡아먹을 일만 남았네.’
다시 집에 돌아온 날, 그렇게 말해 놓고선. 금방 할 것처럼, 다 할 것처럼 말해 놓고선 건드리지도 않았다.
그런 주제에, 맨날 혼이 빠져나갈 것 같은 키스만 했다. 아니, 그럴 거면 키스는 왜 하는지 모르겠다. 내 손에 자빠져 줄 것도 아니면서. 진짜 어이가 없었다.
혹시 강 대표… 진짜 고자인가?
아닌데. 예전에 호텔에서… 그게 내 볼에 닿았을 때는 엄청 딱딱했었는데. 고자 아닌데. 나는 말자지… 같았던 강 대표의 ‘그거’를 떠올리며 고심했다.
“아가.”
어느새, 내 곁에 다가온 강 대표가 슬쩍 물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해.”
“아무 생각도 안 하는데요.”
“그래?”
강 대표가 심드렁한 말투로 받아친다. 마치 네 머릿속은 내가 다 파악하고 있다는 듯한 얼굴이다. 나는 강 대표를 상대로 ‘그런’ 생각을 한 걸 들킬까 부러 다른 생각을 했다. 그때였다.
지잉.
타이밍 좋게 핸드폰이 울렸다. 밝아진 액정 위로 빼곡한 글자들이 나타났다.
연희대 경제학과 신입생 OT 안내. 이번 연도 입학한 신입생들은 필참입니다.
일시: 2월 24일 - 2월 26일
장소: 강화도 엘리 리조트
집합 장소: 상경대 본관 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