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화(2권) (4/14)

사채업자의 사무실은 일반적인 ‘대표님’의 사무실과 다름없이 깔끔하고 정갈했다. 책상 위에는 서류들이 가득하고, 소파는 고급스러워 보였다. 커다란 통창을 가리는 블라인드가 내려져 있었고, 강 대표가 자주 쓰는 향수 냄새가 은은하게 배어 있었다. 누가 봐도 강 대표의 공간이었다.

“별거 없지?”

“네.”

나는 순순히 대답했다. 검은 정장을 입은 덩치 큰 아저씨들을 제외한다면 별거 없기는 했다. 나는 곁눈질로 그들을 훔쳐보았다.

스포츠머리를 한 아저씨들은 양손을 앞으로 모으고 있거나, 뒷짐을 지고 정자세로 서 있었다. 그중에는 가오리 눈을 한 아저씨도 있었는데, 묘하게 얼굴이 낯익었다.

저 인상 깊은 얼굴을 어디서 봤더라….

가오리 아저씨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한참 동안 고민하는데, 강 대표의 넓은 등이 시야를 가렸다. 그는 내 앞에 선 채로 손을 휙휙 내저었다.

“진용아.”

“네. 대표님.”

“아무도 들어오지 말라 했던 것 같은데….”

강 대표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우렁찬 목소리들이 제각각 울려 퍼진다.

“알겠습니다.”

“네! 대표님.”

“알겠습니다. 대표님!”

문을 열고 차례대로 덩치 큰 아저씨들이 사라지는데, 제일 마지막에 서 있던 가오리같이 생긴 아저씨가 반가운 표정으로 눈인사를 했다.

나는 순간 움찔했다. 몸을 반쯤 돌린 강 대표가 마음에 들지 않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상한 사람들 바글바글한 곳에 왜 오고 싶다고 해.”

나는 소심하게 대답했다.

“궁금하니까 그렇죠.”

“그래. 실컷 구경해라.”

강 대표가 건성으로 대답했다. 그러더니 내가 바깥 풍경 또한 잘 볼 수 있게 통창을 가리고 있던 블라인드도 위로 올린다.

안 데려올 것처럼 굴더니, 따라가고 싶다는 한마디에 넙죽 데려오고. 귀찮은 것처럼 굴면서, 궁금하다는 말에 직접 블라인드도 올려 주고. 이러니까 강 대표가 내 버릇을 다 버려 놓는다는 생각이 자꾸만 드는 거다.

나는 괜히 비쭉비쭉 올라가는 입꼬리를 잡아 내리면서, 사무실 안을 둘러보았다. 책상 위에 산처럼 쌓인 결재 서류들, 만년필 그리고 케이스에 고정된 사인 야구공….

나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

“아저씨 야구 좋아해요?”

“좋아했지.”

“어디 팬인데요? 누가 사인해 준 건데요?”

“말하면 아냐? 비밀이야, 인마.”

강 대표가 능글맞게 대꾸했다. 나는 발끈했다.

“저 야구 잘 알아요.”

“진짜?”

“…….”

“야구 몇 명이서 하는데.”

11명인가…? 아닌데. 그건 축구인데. 내가 잠시 망설이자, 강 대표가 “아가야. 네가 거짓말하는 거 아저씨는 다 보인다 했지.” 하며 웃음을 터트렸다. 곧이어 “아홉 명. 아홉 명, 새끼야.” 했다. 사인되어 있는 야구공을 가볍게 툭 건드린 강 대표가 말을 이어 나갔다.

“이거 선물 받은 거야. 아저씨가 예전에 야구 했었거든.”

“언제요?”

“고등학교 때.”

나는 쇠 방망이를 들고 있는 강 대표의 고등학교 시절을 떠올린다. 야구 잠바에 야구 모자를 쓴 강 대표를. 놀랍게도, 엄청나게 잘 어울렸다. 사채업자가 되기 전, 평범하게 학교를 다니는 강 대표의 어린 시절은 어땠을까?

의외로 보수적인 강 대표는 학교를 열심히 다녔을 것 같기도 하고, 수업 시간에 자다가 선생님한테 혼났을 것 같기도 하다. 강 대표의 열아홉이 궁금해졌다.

나는 넌지시 물었다.

“그때, 야구 잘했어요?”

“응.”

“그럼 지금은 안 해요?”

“안 해.”

“왜요?”

“살다 보면 좋아하던 게 싫어지는 때가 있고, 죽도록 싫어하던 게 좋아지는 때가 있거든.”

아저씨는 야구 방망이만 봐도 지겨워요. 강 대표가 능글맞은 어투로 덧붙인다. 거짓말.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야구를 정말 지겨워하는 사람은 야구공을 책상 위에 소중하게 진열해 놓지 않는다.

나는 강 대표가 나에게 거짓말을 하는 게 싫다. 강 대표가 늘 진실을 말해 줬으면 좋겠다. 내가 강 대표의 뒤에서 박 변호사에게 연락하지 않은 것처럼, 내가 강 대표의 뒤에서 아빠의 행방을 찾지 않는 것처럼. 강 대표도 내게 진실만을 이야기해 줬으면 좋겠다.

나는 딴지를 걸었다.

“아저씨. 야구 못하죠?”

“뭐?”

“못하니까 거짓말하는 거죠?”

“이게 사람 말을 못 믿네, 또.”

“이제 야구 안 한다면서요. 그럼 아저씨가 야구 잘하는지, 못하는지 어떻게 알아요.”

“아저씨가 몸 쓰는 건 끝내주게 잘해요, 뭐든.”

야구도 마찬가지고. 강 대표가 입꼬리를 올리며 씩 웃었다.

“원래 많이 맞아 본 놈이 휘두르기도 잘하는 법이거든.”

맞았다고? 누구한테? 나는 두 눈을 느리게 깜빡였다. 강 대표도 혹시 나처럼… 아버지한테 맞았을까? 만약 그런 거라면 우리는 서로의 아픔에 대해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가야.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내가 생각에 잠긴 사이, 강 대표가 다가와 내 어깨를 탁탁 쳤다. 원래 비슷한 경험을 했던 사람들끼리는 감정이 쉽게 통한다던데. 나는 슬쩍 입을 열었다.

“아저씨. 저도….”

“응?”

“저도 야구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일순, 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눈앞에 존재하지 않는 누군가를 향한 표정이었다. 멀쩡한 사람도 반으로 찢어발길 것 같은 흉흉한 기세에, 공감대 형성에 실패한 나는 은근슬쩍 시선을 피했다. 그러자 강 대표가 언제 그랬냐는 듯, 능청스럽게 어깨를 으쓱해 보인다.

“아가야, 이 팔로 뭘 한다고?”

말랑말랑해가지고. 그는 내 어깨에서 이어지는 팔을 한 손으로 부드럽게 주물렀다. 물론 강 대표에 비해서는 근육이라곤 눈 씻고 찾아보려도 찾아볼 수도 없는 팔뚝이겠지만… 그래도 나름 근육이 있는 팔인데.

조금 짜증이 나면서도, 강 대표의 손길이 닿는 어깨에 온 신경이 쏠려 곤란했다.

“아이고… 무섭다.”

내가 부러 도끼눈을 뜨고 강 대표를 노려보자, 그가 손을 떼어 내며 양손을 공중에 들고 뒤로 물러났다.

“그래. 한번 해 봐. 여기 치이고, 저기 치이다 보면 알게 되겠지.”

“…….”

“어떤 일이 너한테 맞는지, 안 맞는지.”

“놀리지 마세요.”

“놀리는 거 아니야.”

강 대표가 말을 이었다.

“하고 싶은 거 이것저것 해 보라는 거지. 하다가 아니면 포기해도 좋고.”

“그럼… 공부 포기해도 돼요?”

“다른 거 잘하는 거 있으면.”

잘하는 거? 내가 잘하는 건 없다. 아… 짝사랑밖에 없는 것 같다. 강 대표의 한마디, 한마디에 마음 졸이고, 행동 하나하나에 혼자서 의미 부여하는 것밖에는.

다른 사람이 나타나면 과연 이 마음을 포기할 수 있을까?

상상이 되지 않는다. 강 대표를 만나기 전의 삶에서 지금의 삶을 상상하지 못했던 것처럼.

물론 강 대표의 삶은 내가 없어도 잘 돌아가겠지만….

내 사고의 흐름에 손톱 옆 거스러미가 거슬린다. 나는 삐죽삐죽 올라오는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엄지손가락을 굽혀 검지손가락을 툭툭 건드렸다. 지켜보던 강 대표가 작게 혀를 차며 “버릇하고는.” 하며 내 손을 저지했다. 내가 손을 빼내려 하자….

“아가야.”

강 대표가 불쑥 얼굴을 들이민다.

“살면서 꼭 뭐가 되어야 하는 건 아니야.”

“…….”

“물론 뭐가 되면 편하긴 하겠지만….”

나는 강 대표를 바라보았다. 강 대표의 짙은 눈썹 밑으로 이어지는 시원한 눈매와 높은 콧대를, 입 맞추고 싶은 반듯한 입술을, 툭 튀어나와 느리게 움직이는 목울대를, 하나도 빠짐없이 눈에 담았다.

“실패해도 괜찮으니까 하고 싶은 걸 해. 기회는 내가 준다 했잖아.”

내가 무엇에 대해 고민하는지도 모르면서, 강 대표는 또 ‘기회’ 타령이다. 내가 진짜 얻고 싶은 기회는….

“아저씨가 네 방패막이야. 알았어?”

강 대표 곁에 머무를 수 있는 기회다. 나는 용기를 쥐어짜 내 질문했다.

“성인이 되기 전까지요?”

“…그래.”

“그 후에는요?”

“그 후에는….”

강 대표가 잠시 말을 멈추었다.

“그 후에는 봐야 알겠지.”

…성인이 되면 계약서를 다시 쓸 생각인 걸까? 그러면 강 대표의 집에서 나가야 되는 걸까? 계속 같이 살고 싶으면 어떡해야 하지? 졸업하고도 계속 곁에 있고 싶다는 한마디에 불같이 화를 냈던 강 대표가 떠오른다.

나는 강 대표가 싫어할 짓을 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졸업 이후 강 대표와 같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기회가 없다면… 나를 좋아하게 만들 기회도 없는 거다. 나는 그렇게 쉽게 강 대표의 삶에서 지워질 거다. 영영 잊혀 버리고 말 거다. 내게 기회가 없다면, 차라리….

“아저씨.”

“왜.”

“제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요.”

일순, 강 대표가 눈에 띄게 긴장한 기색으로 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틈 없이 좁혀 오는 진지한 눈빛에 나는 고개를 살짝 숙였다, 들었다.

“별 건 아니고요.”

나는 중얼거렸다.

“제가요. 아저씨를….”

기어코, 숨기지 못한 마음이 터져 나오려는 순간이었다.

띠, 띠, 띠.

바지 주머니에서 절대 울리지 말아야 할 핸드폰 벨 소리가 울렸다. 기계적인 벨 소리를 제외하곤 사무실 안에 숨 막히는 정적이 흘렀다. 나는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받지 마.”

강 대표가 잔뜩 굳은 얼굴로 경고했다.

“받지 말라고 했어. 백지오.”

아빠의 핸드폰이었다.

나는 왠지 모를 불안함과 긴장감에 뻣뻣하게 굳은 팔을 움직여 핸드폰을 주머니에서 꺼냈다.

“…….”

“…….”

공중에서 시선이 얽혔다. 강 대표는 마치 내가 아빠의 핸드폰을 들고 다니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은 눈치였다. 나한테 아빠의 핸드폰을 줄 때는 그런 것까지 계산했어야지. 어디선가 전화가 오면 내가 당연히 전화를 받을 것도 예상했어야지, 상식적으로.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나는 검지손가락으로 액정 위 초록 버튼을 밀어냈다.

“…여보세요?”

—거 백철웅 씨 핸드폰 아입니꺼?

“맞는데요.”

—씨벌, 이제야 처받네. 돈 언제 갚을끼고?

손이 절로 떨렸다. 나는 더듬더듬 되물었다.

“돈… 돈 빌려갔어요?”

—이 씨벌 새끼가, 으디서 발뺌….

수화기 저편에서 엄청난 욕설이 쏟아지려는 무렵이었다. 강 대표가 내 손에 들린 핸드폰을 낚아채 갔다. 듣기 싫은 가래 끓는 음성이 멀어진다. 본인의 귀에 핸드폰을 가져다 댄 강 대표가 살벌한 음성으로 받아쳤다.

“혓바닥에 걸레짝을 처박았나, 개새끼가.”

그대로 통화를 종료한 강 대표가 핸드폰 전원을 꺼 버리고 휙 던졌다. 낡은 핸드폰이 그대로 소파 위에 처박혔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머릿속으로 정리가 되지 않았다.

“아저씨가 받지 말랬지.”

얼굴 하얗게 질린 것 좀 봐라. 안 그래도 하얀 애가. 잔뜩 눈살을 찌푸린 강 대표가 책상 위에 놓인 전화기 앞에 서서 호출 버튼을 눌렀다.

“박 변호사 들어오라 그래.”

얼마 지나지 않아, 무테안경의 박 변호사가 들어왔다. 여전히 깔끔한 정장 차림이었다.

“부르셨습니까. 대표님.”

“전화가 들어왔습니다.”

“…….”

“연락이 올 리가 없는데….”

강 대표의 새까만 눈동자가 날카롭게 빛났다. 박 변호사가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중간에서 새어 나간 모양입니다.”

“그게 어떻게 가능한지, 난 잘 모르겠는데. 박 변은 압니까?”

“알아보겠습니다.”

“알아보지 말고 해결을 해야지.”

이죽거리는 강 대표의 음성에 박 변호사가 “해결하겠습니다.” 하며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 둘만 남은 공간에 또다시 정적이 흘렀다.

지금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아직 잘 모르겠다. 하지만 단 한 가지 확실한 건 이 핸드폰은 울려서는 안 됐던 거다. 강 대표가 내게 건네줄 때부터.

내가… 속은 거다.

나는 대일밴드가 가득한 손가락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들어 강 대표를 응시했다.

“아저씨. 저한테 기다리지 말라고 핸드폰 주는 거라 했잖아요.”

“…….”

“연락 안 올 거 알고 있었어요?”

“그래. 알고 있었어.”

강 대표가 순순히 시인했다.

“일부러 회선을 돌려놨거든.”

“왜요?”

“…….”

“기다리지 말라고요?”

목소리 끝이 조금 꺾였다. 나는 목 안으로 소리를 가다듬었다. 강 대표가 낭패라는 표정으로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왔다. 내가 ‘또’ 울고 있는지 확인해 보려는 눈치였다. 나는 울고 싶은 게 아니다. 화가 난 거다. 내 시야 안으로 커다란 손이 가득 찼다. 나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공중에 뜬 강 대표의 손이 딱딱하게 굳어 아래로 향했다.

강 대표가 작은 한숨과 함께 입을 열었다.

“아니. 괜히 기대하지 말라고.”

“…….”

“너한테 잘해 준 적 없는 사람이잖아. 뭐가 좋다고 연락을 기다려. 뭐가 좋다고 혼자 기대해.”

강 대표가 눈을 가늘게 떴다.

“지오야. 내 말이 틀려?”

강 대표가 다시 한번 내 이름을 불러 줬다. 강 대표는 화가 났을 때만 내 이름을 불러 주는 것 같다. 아니면 내게 동정심이 들 때라든지. 정말이지, 야비하기 짝이 없다.

“기대하지 마. 기대를 버리면 편해.”

“…….”

“네가 끝까지 기다린다고 해서 보상 받는 거 아니야. 너만 손해지.”

아빠를 지구 끝까지 쫓아가 바득바득 돈을 받아내야 할 강 대표가 저런 말을 하니까… 기분이 이상하다. 뭔가 놓치고 있는 것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나는 대일밴드가 덕지덕지 휘감긴 손가락들을 주먹 속에 감추었다.

“아저씨가 말하는 건… 차라리 아빠가 죽었다 생각하라는 거랑 뭐가 달라요.”

“글쎄. 그편이 더 낫지 않나.”

네 마음도 편하고, 나도 편하고. 뒤졌다고 생각하는 게 여러 사람한테 여러모로 편하지. 강 대표가 나지막이 읊조렸다.

…아빠가 죽었다고 여기라고?

나는 아빠가 돌아오길 빈다. 아빠는 무슨 일이 있어도, 무사히 돌아와야만 한다. 그래야만 한다. 아빠가 좋아서가 아니다. 내가 착해서가 아니다. 아빠가 털끝 하나 다치지 않고 돌아와야만, 그래야만 내가… 아빠를 죽이지 않은 것이 되니까.

내가 이기적인 사람이라는 건 나도 안다. 누가 나를 욕해도 할 말은 없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다. 나는 강 대표의 말처럼 아빠가 ‘뒤졌길’ 바라지 않는다. 나는 그를 똑바로 노려보았다.

“저 아저씨 진짜… 좋아하는 편인데요.”

“…….”

“지금은 진짜 밉네요. 아저씨 말 좀 예쁘게 하세요. 듣는 사람 짜증 나니까.”

“뭐?”

강 대표의 무표정이 일순간에 허물어졌다. 그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나를 붙잡으려 했다. 나는 몸을 뒤로 물렀다.

“아가야, 너….”

“저 먼저 가 볼게요.”

나는 그대로 강 대표의 곁을 스쳐 지나갔다. 문을 열고 나와서 밖으로 향하는데, 사무실 구석에 서 있던 박 변호사가 내 뒤를 따라 엘리베이터 앞까지 따라왔다. 나는 괜히 표정을 들키고 싶지 않아 고개를 푹 숙였다. 그냥, 가 줬으면 좋겠다. 말 걸지 말았으면 좋겠는데. 내 바람과 달리 박 변호사가 입을 뗐다.

“연락을 안 하셨더군요.”

“…….”

“아버지를 찾는 데 관심이 없으신가 봅니다.”

“그런 건 아닌데요.”

나는 짧게 대답했다.

“변호사님이 왜 저한테 그런 호의를 베푸는지 모르겠어서요.”

“그렇게 치면 대표님의 호의도 못 믿을 호의 아닙니까?”

“그건….”

나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박 변호사는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합니다. 백지오 학생은 대표님과 보내는 시간이 더 많으니, 신뢰가 향하는 방향이 대표님 쪽인 것은 당연한 결과죠.”

대표님은 언뜻 보기에는 굉장히 호감을 부르는 외모를 가지고 계시니까요. 물론 직접 대화를 나눠 보면 바로 그게 아니라는 걸 아시겠지만. 변호사라 그런지, 말 한마디 한마디가 핵심을 깊숙이 파고들었다. 박 변호사는 사무적인 얼굴로 말을 계속 이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저는 돈 되는 일만 합니다. 돈이 되면 움직이고, 되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습니다.”

“…….”

“따라서 제가 백지오 학생에게 제안했던 건 호의가 아니었습니다. 돈 되는 일이었지.”

“그럼 지금은 왜… 제안 안 하시는데요?”

내 물음에 박 변호사가 처음으로 인간적인 얼굴을 했다. 권태로운 표정이 한순간에 무너지고 훨씬 생동감 있는 표정을 지은 그가 대답했다.

“보너스 받았습니다.”

보너스? 무슨 보너스. 강 대표에게? 물어볼 틈도 없이, 타이밍 좋게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박 변호사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며 눈짓했다. 나는 질문들을 삼키며 엘리베이터 위에 올라탔다. 문이 반쯤 닫혀 갈 때, 박 변호사가 입을 열었다.

“백지오 학생 케이스에서 손 떼는 조건으로 말입니다.”

강 대표님이 백지오 학생을 무척이나 아끼시는 것 같더군요. 박 변호사가 덧붙였다. 그게 무슨 말이냐 되묻기도 전에, 회청빛 엘리베이터 문이 굳게 닫혔다.

* * *

강 대표가 나를 아끼고 있다.

박 변호사가 왜 그런 좋은 말을 해 줬는지 모르겠다. 사무실에서 강 대표에게 일방적으로 깨지던 모습을 떠올리면 욕을 해도 모자랄 판이었는데. 나는 속으로 투덜거렸다. 차라리 욕을 하든가. 자기가 강 대표 대변인이야 뭐야. 물론 변호사니까… 강 대표의 대변인은 맞겠지만. 그래도 기분이 이상했다. 둘이 친한가? 안 친했으면 좋겠는데.

이 와중에도 그런 생각을 하는 나도 답이 없었다.

나는 소파에 널브러져 천장을 바라보았다. 이제는 익숙해진 높고 하얀 천장이 눈에 가득 들어찼다. 시야에 전부 담기지도 않는 천장을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어둠이 내려앉은 정원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강 대표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들이 한가득이다.

처음부터 내게 접근하려는 박 변호사를 경계하던 강 대표의 알 수 없는 말들과 보너스까지 줘 가면서 박 변호사를 바득바득 떼어 놓으려는 이유가 뭔지.

왜 회선을 돌려가면서까지 아빠의 낡은 핸드폰을 내게 돌려줬는지.

남들이 보기에도 나를 아끼는 듯한 강 대표의 행동은 대체 어디로부터 비롯된 건지.

…혹시 내가 짜증 난다고 한 말에 화가 났는지.

사람이 잘못을 했으면 사과를 해야 한다. 그게 예의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만약 강 대표가 내 말에 화가 났다면, 나는 열 번이고 백 번이고 사과할 마음이 있다. 그러니까 강 대표도 내게 잘못한 게 있다면 사과를 해야 한다. 나를 속이고, 회선을 돌린 이유에 대해 명확히 설명해 줘야 하는 건 물론이고.

기대하지 말라고, 기다리지 말라고.

단순히 그 이유만으로는 설명이 턱없이 부족하니까. 나는 시간이 흐를수록 늘어 가는 질문들을 마음속 깊은 곳에 차곡차곡 쌓아 놨다. 달이 뜨고, 새벽이 찾아오고, 아침이 밀려오는 시간까지.

띠띠띠띠.

기계음과 함께 문이 열렸다. 나는 소파에서 번쩍 일어났다. 푸른 어둠 속에서 강 대표의 윤곽이 보인다. 인기척을 듣고 멈칫하는 게 들린다.

“…아저씨.”

“얘가 거실에서 또 이러고 있네.”

방을 내줬지, 거실을 내준 게 아닌데. 거실이 지 방인 줄 알아. 그가 중얼거렸다. 

“너 안 자면 또 지각해요. 아저씨 술 마셔서 운전 못 한다.”

강 대표가 평소처럼 툭툭 말을 던졌다. 마치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은 것처럼. 강 대표가 등을 돌린다. 방 안에 들어가려는 모양이었다.

나는 강 대표를 힘껏 불렀다.

“아저씨!”

“아저씨 귀 안 먹었다.”

“…아저씨.”

이번에는 목소리를 줄여 불렀다. 거의 속삭임 수준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 대표가 “부르지 마라.” 하고 고개를 저었다. 하라는 대로 다 했는데, 치사하게. 나는 단숨에 강 대표의 앞으로 뛰어갔다. 술을 마셨다는 것은 거짓말이 아닌 듯, 진한 알코올 냄새가 훅 끼쳐 올랐다.

“저랑 얘기 좀 해요.”

“뭔 얘기.”

“오늘 있었던 일이요.”

강 대표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아가야. 그만해.”

피로감이 짙게 묻어나오는 음성에 나는 움찔했다. 강 대표는 더 이상 말을 뱉지 않고, 등을 돌려 방으로 향했다. 나는 그의 뒤를 쫓았다. 방문을 열고, 문고리를 잡은 강 대표가 몸을 반쯤 돌렸다.

“저리 가.”

훠이, 훠이. 거리의 비둘기도 못 쫓아낼 것 같은 조잡한 효과음을 뱉은 강 대표가 건성으로 손을 휘젓는다. 나는 문턱에 한 발을 올렸다.

“잠시면 돼요.”

“아저씨 할 말 없어.”

“저는 할 말 있어요.”

이대로 말을 꺼내지 않으면, 영영 꺼내지 못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대로 강 대표와 진지한 이야기는 평생 한마디도 못 나눌지도 모른다. 내가 한 발자국 더 앞으로 나아가자, 강 대표의 짙은 눈썹이 휘어졌다. 숨소리가 짙어지는 것 같았다.

“따라 들어오기만 해 봐. 어떻게 될지.”

살벌한 경고를 남긴 강 대표가 등을 돌렸다. 와이셔츠를 벗으려는 듯 단추 하나하나 푸는 모습이 보인다.

“문 닫아.”

한번 방에 들어가면 나오지 않는 강 대표의 습관을 잘 아는 나는 강 대표를 이대로 방문을 닫게 만들 수 없었다.

“따라 들어가면 어떻게 되는데요? 저… 저 계속 외출 금지라도 시키게요?”

“알고 싶으면 해 봐.”

강 대표가 경고했다.

“까불지 말고 공부나 해라, 아가야.”

상의를 탈의한 그가 비스듬히 서서 나를 쳐다보았다. 거친 호흡에 따라, 푸른 새벽빛이 떨어진 근육이 꿈틀거린다. 문신 대신 선명한 복근 위로 길게 뻗은 칼자국이 보였다. 나는 모르는 강 대표의 과거를 대면한 기분에, 문고리를 붙든 내 손에서 힘이 스르륵 빠져나간다.

“진짜 나랑 말 안 할 거예요?”

“아가야. 어른들은 원래 그런 거 얘기 잘 안 해. 때로는 묻고 가는 게 서로를 위해 더 좋을 때가 많은 법이거든.”

“…….”

“사사건건 다 짚고 넘어가면 한도 끝도 없어.”

“그런 게 어딨어요.”

작게 한숨을 쉰 강 대표가 성큼성큼 앞으로 다가온다. 방문 안쪽 문고리를 잡은 강 대표가 고개를 살짝 숙여 나와 시선을 맞추었다. 푸른 빛을 머금은 새까만 눈동자가 빛을 발했다.

“아저씨가… 앞으로 말 예쁘게 할게.”

“…….”

“네가 싫다는 거 절대 안 할게.”

강 대표가 작게 속삭였다.

“그러니까 너도 아저씨 미워하지 마. 됐지?”

이제 들어가서 자라, 아가야. 혼자서 대화를 마무리한 강 대표가 문을 닫으려 했다. 나는 강 대표가 문을 닫지 못하도록 문고리를 잡아 반대 방향으로 돌렸다.

“백지오.”

강 대표가 낮은 음성으로 내 이름을 읊조렸다. 내 이름에도 형태가 있다면, 흔적도 없이 바스라졌을 정도의 짙은 경고였다. 나는 굴하지 않고 강 대표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시선과 시선이 공중에서 맞부딪혔다. 새까만 눈동자가 나를 담는다. 새벽의 시간에만 엿볼 수 있는 강 대표의 날 것 같은 시선이 나를 숨 막히게 한다. 나는 입술을 달싹였다.

“저… 아저씨 미워한 적 없어요.”

“…….”

“밉다고 한 건 아저씨가 자꾸 저한테 거짓말하니까 화나서 그런 거고요. 사실은 미워한 적 단 한 번도 없어요.”

일순, 여백 없이 흐르던 긴장감에 틈이 생겼다. 틈을 읽은 나는 강 대표가 문을 닫지 못하도록 문틈 사이에 손을 끼워 넣었다. 강 대표가 “야! 너…!” 하며 문고리에서 손을 뗐다. 굳게 닫힐 것 같은 방문이 스르륵 열렸다. 그가 커다란 손바닥 위에 내 손을 얹었다. 어울리지 않게 부드러운 손길이 내 손을 샅샅이 훑는다. 손가락을 타고 내려와 손바닥 위를 쓸어내리던 그가 내 손을 뒤집었다. 붉어진 내 손등을 본 강 대표의 미간이 좁혀졌다.

“움직여 봐.”

“…….”

“아파?”

“아니요.”

“여기는.”

강 대표가 손등과 이어지는 뼈를 손가락으로 살살 눌렀다. 약간의 통증이 느껴졌지만, 나는 티 내지 않고 고개를 느리게 저었다. 이 와중에도, 온기가 느껴지는 강 대표의 단단한 손으로 내 맥박이 전해질까 마음을 졸였다. 내 마음을 읽은 것처럼, 강 대표의 손은 금방 떨어져 나갔다. 나는 괜히 내 손등을 슥슥 매만졌다.

“저 괜찮아요.”

내 손에 큰 이상이 없다는 걸 확인한 강 대표가 그제야 평소처럼 나를 다그쳤다.

“애새끼가, 씹, 정신이 나가가지고. 문 닫히는데 무식하게 손부터 들이미는 새끼가 어디 있어?”

“문이 닫혀서 얘기 못 하는 것보단 몸이 다치는 게 훨씬 낫죠. 그건 낫는 기회라도 있으니까. 아저씨랑 지금 얘기 못 하면 나한텐… 평생 기회 없을 거 아니에요.”

“하…!”

이 새끼가 진짜. 강 대표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기가 차서 웃는 듯한 일촉즉발의 표정에, 나는 강 대표가 나를 쉽게 끌어낼 수 없도록 방 제일 안쪽에 있는 침대 옆으로 가 섰다.

“그러니까 제 얘기도 들어주세요.”

나는 강 대표의 반응을 확인하기 위해 곁눈질로 그를 힐끔 바라보았다. 강 대표가 마른세수를 하며 입가를 쓸어내렸다.

“우리 아가가 나만 보면 달달 떨면서 말은 또 잘해서 아저씨가 아주 열 받아요. 알아?”

성큼성큼 침대 앞으로 걸어온 강 대표가 나를 삐딱하게 내려다보았다. 그의 따가운 시선에 밤새 쌓아 올려 한데 뭉친 질문들이 한순간에 흩어진다. 나는 애써 주먹을 폈다, 쥐었다 하며 강 대표의 시선을 받아냈다. 한참 동안 말없이 내 표정을 살피던 강 대표가 입을 열었다.

“근데 아가야.”

낮은 음성이었다.

“누가 들어오래.”

눈을 가늘게 뜬 강 대표가 고개를 비스듬히 들었다. 날렵한 턱선 위로 새벽 특유의 푸르스름한 빛이 쏟아진다.

“아저씨가 들어오지 말랬지.”

“…….”

“이게 사람 무서운 줄을 모르고.”

그렇게 당해 놓고선 정신을 못 차려요, 애새끼가. 내가 뭘 할 줄 알고. 강 대표가 질 나쁘게 웃었다. 길쭉한 검지손가락이 내 뺨을 느리게 훑는다. 간지럽고… 묘하게 심장이 쿵쾅거렸다.

“아저씨랑 무슨 얘길 하려고 기를 쓰고 들어와.”

“…….”

“나는 너랑 입 아프게 대화할 생각이 없는데….”

그가 말꼬리를 늘어트린다.

“내가 나쁜 마음 먹으면 어떡하려고 그래. 지오야.”

지오야, 하고 사뭇 다정하게 이름을 부른 강 대표가 눈을 내리깔았다. 응축된 시선이 쏟아진다. 점점 좁혀져 오는 시선이 나를 집어삼키는 것만 같다.

“…아저씨.”

나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등 뒤로 딱딱한 벽이 느껴지는 순간, 강 대표가 바람 빠진 웃음을 터트린다.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분위기가 한순간에 늘어진다.

“아저씨도 양심이라는 게 있어요.”

아무것도 모르는 애새끼한테 나쁜 마음을 먹겠냐. 강 대표가 내 뺨을 가볍게 툭툭 쳤다. 그러더니 나를 옆으로 옮겨 놓고 침대맡에 걸터앉아 나를 삐딱하게 올려다보았다. 나가라는 뜻이었다.

나는… 바보가 아니다. 곧 있으면 성인이고, 알 거 다 아는 열아홉이다. 강 대표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나는 잘 알고 있다. 마치 강 대표의 집에 처음 들어왔던 그 날처럼. 강 대표가 뭘 믿고 따라오냐고 했던 그 날처럼.

“아저씨.”

“왜.”

“아저씨가 뭔가 착각하고 계신 것 같은데요.”

나는 잠시 숨을 참았다.

“저 아저씨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어리진 않아요.”

아무것도 모르는 아홉 살도 아니고, 늘 징징거리기만 하는 애새끼도 아니고요. 알 거 다 알거든요. 나는 덧붙였다. 침대를 짚고 있던 강 대표의 손등 위로 핏줄이 툭툭 불거지는 것이 보였다. 덩달아 상반신의 근육이 거친 호흡의 결을 따라 꿈틀거린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그 씹새끼가….” 하고 작게 읊조린 그가 다짜고짜 내 ‘형’의 이름을 물었다. 나는 강 대표의 페이스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무시하고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리고 저는… 저한테 나쁜 마음 먹는 사람은 구분할 수 있는데요. 아저씨는 확실히 아니에요.”

“네가 어떻게 알아.”

“보면 알아요.”

눈을 보면 다 안다. 알고 싶지 않아도 알게 된다. 강 대표는 나를 동정하지도, 연민하지도, ‘그 애’처럼 보지도 않지만… 좋아해 주지도 않는다.

나는 강 대표가 나를 좋아해 줬으면 좋겠다. 그런… 그런 ‘눈’으로 보지 않아도, 인간적인 감정으로라도 나를 좋아해 줬으면 좋겠다. 사람 대 사람으로서 나를 좋아해 줬으면 좋겠다. 그럼 진짜 좋을 것만 같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해 주는 그런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으면 좋겠다.

아쉽게도, 지금까지 내 삶에서 그런 기적은 없었지만.

나는 숨을 크게 들이켰다.

“저도 아저씨가 거짓말하면 눈에 다 보이거든요. 그러니까 저한테 거짓말하지 마세요.”

“…….”

“어른들은 그냥 넘어간다고 말한 거… 아저씨가 오늘 있었던 일, 더 이상 말하기 싫다고 한 건 알겠는데요. 나는 우리가 한 약속 엄청 잘 지키고 있으니까 아저씨도 약속 지켜요. 아빠 찾으면 알려 주기로 한 거. 멀쩡히… 보내 주기로 한 거.”

나는 떨리는 목소리를 애써 태연하게 가라앉히며 끝까지 말을 마쳤다.

“저 아저씨 믿어요.”

술 때문인지 얼굴 전체가 벌게진 강 대표가 시선을 회피했다. 그는 무언가 깨달은 사람처럼, 허탈한 표정으로 연신 조각 같은 얼굴을 커다란 손으로 쓸어내리는 중이었다. 내 이야기를 듣기 싫은 것 같기도 하고, 듣지 않는 것 같기도 했다. 나는 민망함에 고개를 살짝 숙였다.

“저도 더 이상 질척대고 싶진 않으니까 여기까지만 할게요.”

“…….”

“그냥, 약속 잘 지켜 달라고요.”

자꾸 말 시킨다고 귀찮아하지도 마세요. 이건 아저씨가 먼저 잘못한 거잖아요. 나는 소심하게 덧붙였다. 조금은 울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사실 내가 진짜 물어보고 싶었던 건 이게 아니었다. 내가 묻고 싶었던 건 단 한 가지였다. 강 대표가 회선을 돌린 이유, 박 변호사를 나에게서 떼어 낸 이유, 강 대표가 필요 이상으로 나를 아끼는 이유. 그 모든 이유의 근원에 숨어 있는 질문이었다.

아저씨… 혹시 우리 아빠 어디 있는지 알아요?

하지만 나는 그 질문을 할 용기가 없다. 악몽에서 깨어나 악몽으로 들어가고 싶지 않다. 아빠가 돌아왔으면 좋겠지만, 다른 한편으론 강 대표의 곁을 떠나고 싶지 않다. 강 대표가 말한 ‘어른들은 원래 이런 거 넘어가는 거야.’라는 말이 뭔지 알 것만 같다. 변명 아닌 변명을 덧붙이자면, 나야말로 괜한 말 때문에 강 대표에게 미움을 사고 싶지 않으니까.

“이제 나갈게요.”

“…….”

“잘 자요. 아저씨.”

나는 강 대표에게 눈인사를 하고 뒤를 돌았다. 그의 방에서 빠져나와, 활짝 열린 방문을 닫아 주려는 순간이었다. 침대맡에 앉아 있던 강 대표가 어느새 내 뒤에 서 있었다. 내가 잠시 주춤거리자, 커다란 손바닥이 그대로 내 오른쪽 뺨을 감쌌다. 엄지손가락이 내 눈 밑을 느리게 문지른다.

“지오야.”

그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속삭였다.

“아저씨 너무 믿지 마.”

* * *

눈이 뻑뻑하다. 며칠째,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 눈꺼풀에 덕지덕지 붙은 피로가 무게를 더한다. 나는 눈을 비비며 시선을 교탁에 고정했다.

“고3한테 방학은 없다. 다들 방학 특강 신청했으리라 믿고. 학원 다니는 애들 빼고 나머지 애들은 신청 안 했으면 다 신청해. 오늘까지다.”

담임 대신 들어온 부담임이 손을 까딱였다. 반장이 교탁 위에 있는 가정통신문을 1분단에 앉은 애한테 넘겼다. 애들이 자기 몫 한 장씩 가지고 뒤로 가정통신문을 죄다 넘겼다. 1분단 제일 끝에 앉아 있던 김국현이 뭉텅이로 남은 가정통신문을 2분단에 주지 않고 폐지함에 곧장 버렸다. 지켜본 애들은 키득거리고, 아직 상황을 모르는 부담임은 공지 사항을 전달했다.

“특강비도 다 적혀 있으니까 확인하고. 오늘은 담임 선생님 못 오셔서 내가 수업 대신 들어갈 거다.”

분명 방학식인데 수업을 하겠다는 부담임의 공표에 반 애들이 작게 야유했다. 우리 학교가 좋은 대학교 많이 보내는 곳도 아니고, 꼴통고로 유명하면서 괜히 바람 잡는다는 분위기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책상 위에 얼굴을 묻었다.

“후….”

눈을 감자 피로감이 덜했다.

‘아저씨 너무 믿지 마.’

낮은 음성이 귓가에 울린다. 강 대표는 그 말을 끝으로 문을 닫아 버렸다. 그 후, 일주일이 넘도록 집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가끔 용기를 내어 문자를 하면 [아저씨. 일한다] 혹은 [배고파? 또 뭐 보내줄까]와 같은 기운 빠지는 답장을 했다. 강 대표가 대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문자 내용으로만 보면 나는 식충이도 이런 식충이가 따로 없었다. 적어도 답장은 꼬박꼬박 해 줘서 다행이었다.

게다가 너무 믿지 말라니. 왜 그런 소리를 한 거지. 강 대표의 속을 도저히 모르겠다. 그건 예전에 바닷가에서 내게 했던 말과 비슷한 결이었다. 아무한테나 손 내밀지 말고, 아저씨 너무 믿지 말고. 마치 가까워지는 걸 꺼리는 사람처럼. 집에도 안 들어오는 주제에 요구 사항이 많다. 싫은데. 믿을 건데. 내 마음인데. 나는 입술을 말아 물었다. 내가 들어도 유치한 말들은 속으로만 삼켰다.

“조용히 좀 해라! 야! 뒤에서 두 번째, 너 고개 안 들어?”

짜증을 낸 부담임이 교탁 옆을 두꺼운 반죽 밀대로 탁탁 쳤다. 둔탁한 소리에 반 애들의 웅성거림이 한순간에 멎었다. 뒤에서 두 번째. 나다. 나는 고개를 살짝 들었다. 부담임이 “반항하냐? 눈 똑바로 안 떠?” 하면서 내 곁으로 다가왔다. 반항하는 게 아니라 잠을 못 자서 그런 건데….

나는 침묵하며 고개를 숙였다. 부담임이 반죽 밀대로 내 턱을 치켜올렸다.

“밤에 대체 뭐하길래 맨날 엎드려 있어?”

너 교무실에서 유명하다. 모르는 것 같아도 선생님들이 다 지켜보고 있어. 부담임이 비아냥거렸다. 학기 초에 경찰서 다녀온 걸 얘기하는 것 같았다. 술집 알바한 건 그때가 진짜 처음인데. 이상한 짓 안 하고 엄청 무거운 술병들만 하루 종일 날랐는데.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하지만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나는 애써 억울함을 감추고 시선을 내리깔았다.

“대답 안 해?”

내 턱 밑에서 두꺼운 반죽 밀대가 왔다 갔다 움직였다. 살갗에 닿는 까칠한 원목의 느낌에 오랜만에 숨이 점점 막힌다. 체벌 금지인데 이런 ‘무기’를 학교에 들고 오는 건 금지 아닌가? 교육청에 신고 먹을 텐데. 정작 아무도 신경을 안 쓰는 것 같지만.

나는 달리 할 말이 없어 “아니요.” 했다. 부담임의 표정이 급속도로 일그러진다. 이러다 진짜 한 대 맞을 것만 같다. 반 애들의 집중된 시선이 느껴진다. 숨이 꽉 막혀 온다. 나는 턱에 힘을 빼고 눈을 내리깔았다. 그때였다.

“선생님. 여기 가정통신문 더 주세요. 없어요.”

창가 자리에 앉은 김국현이 폐지함을 가리키며 키득댔다.

반 애들의 시선이 나에게서 김국현 쪽으로 옮겨 갔다. 부담임은 열 받은 표정으로 반죽 밀대를 공중에 홱홱 휘두르더니 “어휴. 지겨워.” 하면서 나가 버렸다. 김국현과 패거리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교실 밖으로 나가 버린다. 김국현이 아무리 사고를 쳐도, 밉상으로 굴어도 선생님들에게 혼나지 않는 이유가 있다더니 그게 사실인가 보다.

“부담임 왜 저래?”

“1교시부터 수업해야 해서 빡치나 보지.”

“지랄이야. 우리도 듣기 싫어.”

“…야. 근데 쟤 또 뭐 유명한 거 있어?”

옆 분단 애들이 떠들다가 속삭이며 나를 슬쩍 본다. 다 들린다. 나는 반사적으로 가방을 들고 일어섰다가 내려놓고, 핸드폰만 챙겨 뒷문으로 나갔다. 마음 같아서는 집에 가고 싶었지만, 강 대표가 늘 입버릇처럼 얘기하는 ‘땡땡이치지 말고. 삥 뜯지 말고. 수업 열심히 듣고.’에 어긋나는 일이다. 가 봤자 강 대표도 없을 테고….

나는 복도 끝 계단으로 한 층, 한 층 걸어 내려갔다. 본관 1층에서 뒷문으로 나와 소각장을 향해 걸었다. 고요한 정적이 내려앉은 길을 걸으며 점점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 들었다. 막 코너를 돌려고 할 때였다.

“김국현 이 새끼 개웃겨. 거기서 갑자기 가정통신문 얘기는 왜 꺼내냐?”

“뭐. 없는 걸 어쩌라고.”

“국현아. 네가 버렸잖아.”

“아씨, 존나 구경 갔어야 했는데. 괜히 여기서 기다렸네. 씨발. 그 새끼 처맞는 거 봤어야 하는데. 야. 네가 언제부터 가정통신문 챙겼다고. 좋은 구경 다 놓쳤잖아.”

나는 발걸음을 멈추었다. 시야의 사각지대에서 바라본 김국현은 버려진 책상 위에 걸터앉아 있고, 그 주위로 공재민과 박건수 그리고 패거리들이 빙 둘러서 서 있었다.

“그냥 시끄러워서.”

대수롭지 않게 받아친 김국현의 말을 끝으로 대화가 끊겼다. 그들은 간간이 침을 뱉고, 핸드폰 영상을 보며 각자 낄낄거리기 바빴다. 지정석을 뺏긴 나는 본관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양호실에 갈 참이었다. 그때, 누군가의 한마디가 내 발목을 옭아맸다.

“근데 유명할 만하지 않냐? 그 새끼 요즘 장난 아니던데.”

“뭐. 왜?”

“백지오, 걔 우리 동네였어서 아는데 요즘은 맨날 반대 방향으로 가더라? 그 존나 비싼 동네로.”

“아… 국현이네 근처? 거기 국회의원들만 몰려 사는 데 아니었어?”

“어. 걔 요즘 맨날 택시 타고 다니고, 신발은 무슨 씨발, 천만 원 넘는 거 신고 다니고. 걔 데리러 오는 외제 차도 자주 보이던데. 혹시 같이 사는 거 아니냐?”

핏기가 가시는 기분이 들었다. 소문이 돌지 않은 적은 없지만, 헛소문이 아닌 진짜 사실이 돈 적은 없었다. 나는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그럴지도 모르지. 유명하잖아. 그런 쪽으로.”

“와. 진짜 호모 새끼였어? 씨발, 더러워. 그런 주제에 무슨 호텔 안 갔다고 시비 존나 걸긴.”

“그 아저씨는 같은 거 달고 있는 새끼 보고 그게 서나?”

박건수가 인위적으로 토하는 소리를 냈다. 아무 말 없이 핸드폰을 바라보던 김국현이 그제야 고개를 드는 게 얼핏 보인다.

“왜. 걔 얼굴은 예쁘잖아.”

“우웩. 김국현, 니도 게이냐?”

“뭐래. 이 씨발놈이.”

“아, 왜 정색하고 그래. 말이 그렇다는 거지.”

김국현이 박건수를 매섭게 노려보자, 함께 주절거리던 주변 놈들이 꼬리를 내린다. 박건수가 어깨를 으쓱하며 “아무튼 백지오 소문 틀린 거 하나 없다. 소문이 괜히 나냐? 뒤가 구리니까 나지.” 했다. 아무 말 없던 김국현이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더니 “그러게. 아저씨 다 늙어서 좆 흐물흐물할 텐데 받아 주는 것도 고역이겠다.” 했다.

박건수가 길길이 날뛰었다.

“아, 씨발! 더러운 소리 좀 하지 마. 새끼야.”

“왜? 사실일 텐데.”

사실이 아니다.

멈추지 않는 김국현의 입꼬리가 비틀린다.

“아저씨가 씨발, 좋다고 미성년자 좆 빨아 주고 나라 꼴 참 잘 돌아간다.”

그런 적 없다.

강 대표는 단 한 번도… 나를 ‘그 애’ 취급한 적이 없다.

오히려 돈 안 갚고 도망간 채무자 아들을 거둬 준 사람이다. 애새끼 취급을 하면서도 눈치 보지 않도록 배려해 주는 사람이다. 선택권을 쥐여 주고, 내게 선택지가 있다고 말해 주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다.

그 사람을 좋아하는 건 바로 나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학교에 데려다 달라고 억지를 부려 악취 나는 소문에 휩싸이게 만든 것도 바로 나다.

누구를 탓할 것도 없다. 전부… 내 탓이다.

눈앞에 붉은 물감이 터지는 착시가 보인다. 누군가 “김국현, 이 새끼 누가 국회의원 아들 아니랄까 봐 존나 말하는 꼬라지 봐라.” 하며 따라 웃는 소리가 끊기며 들린다. 나는 구석에 버려진 다리 하나 없는 의자를 들어 올렸다.

“어? 어, 뭐야, 이 새끼!”

“야! 의자 뺏어!”

나는 그대로 김국현의 머리를 의자로 내리쳤다. 나무 등받침에서 뻑, 소리가 나며 김국현이 깨진 콘크리트 바닥에 엎어졌다. 나는 그대로 김국현의 배에 올라타 주먹을 치켜들어 김국현의 얼굴에 내리꽂았다.

“씨발… 백지오!”

얼굴을 잔뜩 찡그린 김국현이 벗어나려 버둥거렸다. 나는 언젠가 아빠가 내게 했던 것처럼, 왼쪽 팔뚝으로 김국현의 목을 누르며 고정시키고 쉬지 않고 주먹을 휘둘렀다. 마치 괴물처럼.

이를 악물고 주먹으로 얼굴을 내리찍는 순간, 김국현이 내 옆구리를 때렸다. 연이어 퍽, 퍽 소리가 날 정도로 거세게.

“윽….”

옆구리 통증과 함께 잘못 휘두른 오른쪽 주먹에서 엄청난 통증이 일었다. 누구의 것인지 모를 붉은 피가 번져 엉망이었다. 잠시 틈이 생기자, 박건수와 공재민이 내 어깨를 양쪽에서 잡아 떼어 냈다. 나는 뒤로 질질 끌려갔다. 김국현이 비틀거리며 일어서는 게 보였다. 점점 거리가 가까워진다. 나는 김국현의 눈을 똑바로 노려보았다.

“…그런 적 없어.”

“…….”

“단 한 번도 그런 적 없다고.”

“근데 씨발, 너 표정은….”

말을 멈춘 김국현이 피 섞인 침을 퉤 뱉는다.

“내가 그 아저씨 신고할 거야. 좆 되게.”

나는 다시 악을 쓰며 김국현에게 달려들었다. 몇 대 맞은 김국현이 내 교복 와이셔츠 깃을 붙잡고 주먹을 위에서 내리꽂았다. 나보다 체격이 큰 김국현이 위에서 휘두르는 주먹은 매서웠다. 뻑뻑한 눈이 뜨거워졌다. 눈 핏줄이 터진 모양이었다. 익숙한 비린내가 난다. 온몸을 지탱하던 신경줄이 끊어지는 기분이 드는 순간이었다.

박건수가 “야, 씨발. 말려야 하는 거 아니냐?” 하는 소리와 공재민이 “저기 누구 오는데?” 하고 막으러 뛰어가는 소리가 저 멀리서 들린다. 어느새, 내 몸은 기울어져 있었다. 거친 숨결이 쏟아지는 게 느껴졌다. 김국현의 얼굴 윤곽이 흐릿하게 보인다. 나는 이물감이 느껴지는 눈을 깜빡였다.

“…그런, 거 아니라고. 이 개새끼야….”

입 안도 터진 모양이었다. 한마디, 한마디 뱉는데 얼얼했다. 나는 눈을 감았다, 떴다. 눈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 김국현의 표정이 잘 보이지 않는다. 대신에 어둠 속에서 강 대표의 얼굴이 선명하게 보인다.

나는 결국 눈을 감았다.

흐릿한 시야가 가물가물하다. 익숙한 천장이 보였다, 사라진다. 내 몸을 양쪽에서 지탱하는 느낌이 든다. 소독약 냄새가 난다. 이럴 게 아니라 병원을 가야 할 것 같다는 걱정 어린 음성이 들리다 사라진다. 애들이 일을 키우기 싫어 양호실로 데려온 모양이었다. 문이 닫히고, 열리고, 시끌벅적한 소리가 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누군가 호통을 치는 소리도 간간이 섞여 들린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간신히 정신이 든 나는 움직이지 않는 몸을 일으켰다. 시야를 가리고 있는 커튼을 쳐내자, 반대편 침대에는 덩치 큰 덩어리가 누워 있는 것이 보인다. 김국현이었다.

“…….”

“…….”

김국현이 먼저 고개를 돌렸다. 나는 끙끙거리며 옆구리를 감싸고 일어섰다. 거울을 확인해야 할 것 같았다. 몸을 질질 끌다시피 거울 앞으로 갔다.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은 참혹했다. 오른쪽 눈은 실핏줄이 터지고, 입술 끝이 찢어져 있었다. 왼쪽 뺨은 파랗게 멍이 들어 있었다. 누가 봐도 신나게 얻어터진 얼굴이었다.

불행 중 다행인 건 그나마 강 대표가 일이 바빠 집에 자주 들어오지 않는다는 거다. 어쩌면 방학 내내 팔자에도 없는 ‘방학 특강’을 들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이제 강 대표 곁에 ‘합법적으로’ 머무를 수 있는 날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이게 다 김국현 때문이다. 내가 옆구리를 부여 쥔 채로, 양호실 문을 열려는 순간이었다. 드르륵, 문이 저절로 열렸다.

“…아.”

나는 멍청하게 입을 벌렸다. 찢어진 입술 끝이 쓰렸다.

지금 이 순간, 가장 보고 싶은데… 보고 싶지 않아야 하는 사람이 눈앞에 서 있었다. 거짓말처럼.

“너, 씹….”

강 대표였다.

급하게 뛰어온 사람처럼 셔츠가 잔뜩 구겨져 있었다. 내 얼굴을 확인한 강 대표가 놀란 듯 “내가 들은 거랑 다른데….” 하며 작게 욕설을 읊조렸다. 나는 죄인처럼 고개를 푹 숙였다. 엄청 바쁘면서 여기는 어떻게 왔는지 모르겠다.

“고개 들어. 백지오.”

내 어깨를 가볍게 잡은 강 대표가 내 뒤를 빤히 응시했다.

“볼 때마다 손버릇이 더럽네, 학생.”

침착하지만 평소보다 더 낮은 음성, 강 대표는 화가 나 있었다. 김국현을 찢어발길 듯이 주시하던 그가 나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일단 가자.”

“…….”

“못 움직여?”

서슬 퍼런 음성에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내딛는데 복도가 소란스러웠다.

“어머님.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이거 봐요, 선생님! 내가 내 아들 구급차 부르겠다는데, 왜 자꾸 말려요? 비켜 보세요. 우리 애 얼굴 좀 확인하게.”

“어머님. 일이 커지면 학교 측도, 학생 측도 매우 곤란하니 구급차는 좀….”

“하! 지금 협박하시는 건가요, 선생님? 경찰에 신고하려다 겨우 참았는데?”

“아닙니다. 어머님. 아닙니다.”

중년의 여성 앞에서 손사래를 치는 부담임이 보였다. 누가 봐도 김국현의 엄마로 보이는 아줌마가 나를 발견하고 삿대질을 했다.

“얘, 너니? 우리 애 때린 애가?”

“…….”

“너 잠깐 멈춰 봐, 얘!”

“무슨 일이십니까.”

강 대표가 얼핏 들으면 정중한 톤으로 물었다. 아줌마가 기가 찬 듯 “무슨 일이십니까? 내가 내 아들 의자로 때렸다는 애랑 대화도 못 해요? 얘, 너 정신 나갔니? 부모도 없어? 가정 교육을 못 받아도 유분수지. 너 내가 콩밥 먹일 거야.” 했다. 구구절절 틀린 말이 없어, 내 고개가 점점 아래로 내려갔다. 강 대표가 고개 들라는 듯, 내 어깨를 가볍게 두어 번 두드렸다.

“죄송하지만 우리 애도 병원에 데려가야 해서 먼저 가 보겠습니다. 애들 싸움이니 여기로 연락 주시거나… 원하시면 변호사 통해서 얘기하시죠.”

‘우리 애’에 힘을 준 강 대표가 명함 두 장을 내밀었다. 아줌마가 대꾸 없이 명함을 낚아채듯 가져가자, 강 대표가 입꼬리만 말아 올려 형식적으로 웃었다.

“아드님은 어머님을 닮아 튼튼한 것 같으니 걱정 안 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보시다시피, 우리 애는 예쁜 낯짝이 심각하게 갈려서요. 저도 이번 건은 개인적으로 연락 주시는 것보단 변호사 통해서 법적으로 대화하는 게 더 마음이 편할 것 같군요.”

명함을 보고 꿀 먹은 벙어리가 된 부담임과 아줌마를 뒤로하고 강 대표가 나를 데리고 계단을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내려갔다. 느리다고 핀잔을 줄 법한데도, 그는 말없이 내 곁에 서서 내 몸을 지탱했다. 나는 강 대표를 올려다보았다.

“…아저씨.”

“조용히 해.”

무거운 침묵 속에서 우리는 운동장을 가로질러 정문으로 나갔다. 정문 옆 골목길에는 처음 보는 차가 정차되어 있었다. 강 대표가 뒷문을 열었다.

“타.”

“아저씨, 저….”

“좋은 말로 할 때 타.”

강 대표가 내 몸을 밀어 넣고 함께 뒷좌석에 올라탔다. 운전석에는 검은 선글라스를 낀 덩치 큰 아저씨가 백미러를 조정하고 있었다.

“출발해.”

“네. 대표님.”

어색한 서울말을 쓴 아저씨가 골목길을 빠르게 질주했다. 또다시 침묵이 흘렀다. 간간이 들리는 엔진음을 제외하곤 숨 막히는 침묵이 흘렀다.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던 강 대표가 긴 한숨을 쉬었다.

“백지오.”

“…….”

“대답해. 백지오.”

“네.”

“너 의자로 사람 머리 내리치는 건 어디서 배웠어.”

나는 입을 다물었다.

“네 애비랑 똑같이 살 거야?”

“…….”

“보고 배운 대로 살 거냐고. 애새끼들 싸움에 어른이 끼게 만들어, 왜.”

강 대표가 짓이기는 음성으로 추궁했다. 내가 대답을 하지 않자, 그가 손가락으로 가볍게 내 고개를 들어 올렸다. 오른쪽, 왼쪽으로 돌려가며 꼼꼼히 살핀 강 대표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싹 갈린 거 봐라.”

“…….”

“씨팔… 열 받게.”

강 대표가 창문을 내리고 담배를 입에 물었다가, 나를 힐끔 보더니 두 동강 내 부러트렸다. 분이 안 풀린 듯 씩씩거리던 강 대표가 “얼마나 더 걸려.” 하고 물었다. 운전석에서 “곧입니다. 행님. 아, 대표님.” 하는 소리가 넘어왔다. 차창 밖으로 병원 건물들이 보인다.

“…아저씨, 제가….”

“말하지 마. 조용히 해.”

“왜, 제 말 안 들어 줘요….”

나는 조금 억울했다.

“한마디는… 들어 줄 수 있는 거잖아요.”

“발음은 다 새가지고. 무슨 말을 한다고.”

강 대표가 잔뜩 굳은 표정으로 턱짓했다. 어디 한번 해 보라는 표정이었다. 나는 내내 강 대표에게 하고 싶었던 말들을 천천히 또박또박 뱉었다.

“아저씨 바쁜데 학교 오게 만들어서 죄송해요. 싸우면… 집에 바로 연락 가는 줄 몰랐어요.”

“…….”

“아까 아줌마 앞에서 감싸 줘서… 감사합니다. 근데 이제 병원은 저 혼자 가도 돼요. 아저씨 바쁘잖아요.”

이게 진짜, 장난하나. 강 대표가 거친 숨을 몰아 내쉬었다. 화를 꾹 눌러 내리는 듯한 얼굴로 연신 입가를 쓸어내린 그가 담뱃갑을 꽉 움켜쥔다. 백미러로 힐끔힐끔 상황을 지켜보던 덩치 큰 아저씨가 타이밍 좋게 입을 열었다.

“병원으로 들어갈라면 주차장으로 들어가야 해서 여기서 먼저 내리시는 게 편하실 겁니다, 대표님.”

덩치 큰 아저씨의 말에 강 대표가 내게 내리라고 눈짓했다. 나는 통증이 이는 옆구리를 티 나지 않게 움켜쥐고 차에서 내렸다. 8차선 도로의 횡단보도 신호등이 이미 초록 불로 바뀌어 사람들이 바쁘게 오가고 있었다. 다음 신호를 건너야 할 것 같았다.

횡단보도를 건너온 사람들이 강 대표와 나를 빤히 응시하며 지나간다. 슈트를 입은 잡지 모델 같은 남자와 교복 차림의 잔뜩 얻어터진 애의 조합이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한 모양이었다.

나는 얼굴이 보이지 않도록 고개를 살짝 숙였다. 강 대표가 정면을 응시하며 작은 목소리로 묻는다.

“왜 싸웠어.”

“…….”

“뭐 때문에 의자 들고 설쳤어.”

나는 침묵을 고수했다. 여전히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강 대표가 분노를 잔뜩 억누른 음성으로 침착하게 나를 달랜다.

“아가야. 아저씨가 이유를 알아야 막아 주지.”

“…….”

“박 변호사 불러?”

그럼 말할래? 강 대표가 덧붙인다. 박 변호사를 불러 준다는 말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강 대표의 귀에 흘러갈 이야기라면….

박 변호사에게 자초지종을 얘기하는 것보다, 강 대표에게 직접 ‘잘’ 말하는 게 더 낫다. 강 대표도 ‘원조교제’라는 단어를 직접적으로 들으면 기분이 더러울 테니까.

나는 입을 열었다.

“그 새끼들이 먼저 했어요.”

“먼저 뭐.”

“먼저….”

나는 못생긴 운동화 앞 코를 바라본다.

“아저씨한테….”

“…….”

“아저씨한테 나쁜 말 했어요.”

“뭐?”

강 대표가 잘못 들었다는 듯이 되물었다. 나는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저씨한테 나쁜 말 했다고요. 아저씨가 저랑… 나쁜 짓 한다고 떠들었어요. 아저씨는 그런 사람 아닌데. 좋은 사람인데. 그래도 처음부터 의자 들려고 한 건 아닌데요. 참았는데 점점 심해지고… 마지막엔 아저씨 신고, 신고한다고 해서….”

나는 더듬거리며 두서없이 사실을 늘어놓았다. 악취가 나는 소문에서 악취가 빠진 이야기는 강 대표에게 퍽 와닿지 않은 모양이었다.

“너 바보야?”

억지로 분노를 억누르고 있던 강 대표가 불같이 화를 냈다. 내가 상황에 대해 재차 에둘러 설명하려고 하자, 강 대표의 눈이 날카롭게 번뜩였다.

“그래서 뭐. 애새끼들이 원조교제로 신고라도 한대? 나만 아니면 되지. 그게 뭐가 중요해. 씨팔, 겨우 그깟 거 때문에… 아가야. 사람 잘못 때리면 골로 가는 거야. 알아?”

“…….”

“인생 조지는 거라고. 별 시답잖은 이유로 네 인생 조질 거야?”

강 대표는 내 인생에서 별로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 아니다. 강 대표는 내 인생에서 별 시답잖은 이유가 될 수가 없다. 나는 제대로 힘이 들어가는 왼쪽 주먹을 꽉 쥐었다.

“아니요. 저한텐 중요해요.”

나는 작게 숨을 들이마셨다.

“저… 아저씨 좋아해요.”

“…….”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 좋아하는 거예요.”

일순, 강 대표의 눈이 커졌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 때문에 욕먹는 거 싫어요. 그래서 그랬어요.”

나는 강 대표를 올려다보았다. 그 순간, 8차선 도로의 횡단보도 신호등이 적색으로 바뀌었다. 빵빵거리는 클랙슨 소리와 쌩쌩 지나가는 차들의 엔진 소음이 고막을 찔렀다. 고개를 살짝 숙인 강 대표가 내 손목을 잡고 인적이 없는 골목으로 끌고 들어갔다. 한순간에 귀가 먹먹할 정도의 소음이 사라졌다.

강 대표가 손을 거뒀다.

“아가야. 그건 변명이지.”

“…….”

“이유가 아니야.”

좁은 골목길에서 강 대표의 목소리만이 뚜렷하게 울린다.

“그건 네 인생을 조질 만한 이유가 못 된다고.”

이를 악문 음성이었다.

“누구 좋아할 때마다 네 귀에 거슬리는 소리 들리면 쪼르르 달려가서 주먹부터 날릴 거야? 아니면 의자부터 던질 거야? 똑바로 생각해. 앞으로 네 인생에서 좋아할 사람은 많으니까.”

좋아할 사람이 많다고…?

강 대표는 꼭 집주인 할머니도, 슈퍼 아저씨도, 우리 반 반장도 모두 내가 ‘좋아하는 사람’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는 것처럼 말했다. 나는 강 대표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저 그런 뜻으로 얘기한 거 아니에요.”

강 대표의 새까만 눈동자가 깜빡깜빡 사라졌다 다시 나타난다. 새까만 눈동자 안에 내가 담겼다, 사라졌다, 다시 담긴다. 나는 이제 그 새까만 눈동자에 어린 당황과 황당을 구분할 수 있다. 당황한 강 대표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나를 바라본다.

“아저씨. 내가… 아저씨 많이 좋아해요.”

꼭꼭 숨겨 놓았던 마음이 한순간에 터져 나간다.

“아저씨가 맨날 말은 툭툭 던져도 항상 다정하고 따뜻해서 좋고요, 눈치 보지 말라고 배려해 줘서 좋고, 같이 있는 시간을 행복하게 만들어 줘서 좋아요. 그냥… 그냥 아저씨가 좋아요.”

나를 판단하지 않아서, 있는 그대로의 나를 봐 줘서, 곁에 있어 줘서. 그냥… 그냥 강 대표라서 좋다.

“좋아해요.”

나는 작게 속삭였다.

“…좋아해요.”

좋아한다는 말로 채워도 채워도 모자란 공백에 한 번 더 채워 넣었다. 대답은 곧장 돌아오지 않았다. 내가 아무리 기를 쓰고 공백을 채워 넣어도, 상대방이 마저 채워 넣지 않으면 공백은 그저 공백이다. 이런 꼴로, 이런 식으로 고백할 생각은 없었는데. 나조차도 예상하지 못한 갑작스러운 고백에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 갈 때 즈음, 한참 동안이나 침묵하던 강 대표가 입을 열었다.

“너 착각하는 거다.”

새까만 눈동자가 흔들림 없이 마주해 온다.

“너 누가 잘해 준 적 없지.”

“…….”

“이렇게 해 준 적 없지.”

그는 단정 짓는 말투로 나를 끊어냈다. 단호한 음성으로 비수를 꽂았다.

“원래 어른들은 아이한테 대가를 바라지 않아. 그게 당연한 거고. 넌….”

“…….”

“넌… 단 한 번도 겪어 본 적 없어서 이게 사랑이라고 착각하는 거야.”

단순한 호의를 착각하면 안 되지, 아가야. 강 대표는 마치 예전부터 이 순간을 대비해 온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대답했다.

…마치 내 마음을 알고 있던 사람처럼.

“아저씨. 알고 있었어요?”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다. 나는 재차 묻는다.

“…언제부터요?”

새까만 눈동자가 말없이 나를 직시한다. 등골을 오싹하게 만드는 눈빛이다. 나는 그제야 깨닫는다.

그의 알 수 없는 말들, 알 수 없는 행동들… 강 대표는 전부 알고 있었다.

대체 언제부터 알고 있었을까? 언제 시작한지도 모르는 내 첫사랑의 시작점을 강 대표는 알고 있을까? 나는 초조함에 입술을 말아 물었다. 강 대표가 손을 뻗어 멍이 든 내 얼굴을 곧 깨질 유리처럼 살살 어루만진다.

“사랑 못 받고 자란 애들은 다 티가 나.”

다정한 손길과 상반되는 잔인한 음성이었다.

“그 눈에서부터 사랑받고 싶은 욕심이 철철 흘러넘치는데.”

“…….”

“티를 안 내려 해도 안 낼 수가 없지.”

그가 천천히 손을 거둔다.

“그래서 아저씨가 아무한테나 손 내밀지 말라 했지.”

“…….”

“선물도, 신발도, 식사도… 너한텐 크겠지만 나한텐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야.”

강 대표가 쐐기를 박는다.

“괜히 고마움에 착각하지 말라는 소리야.”

착각? 이게 착각이라고? 나는 가쁘게 숨을 헐떡였다. 고작 한 단어에 온 숨통이 틀어막힌다. 강 대표의 작은 관심 하나, 시선 하나에 휘둘리고, 갈구하고, 뒤쫓던 지난 나날들이 스친다. 말 한마디만 섞어도 온몸이 쿵쿵 울리던 순간순간들이. 그 순간들이, 그 감정들이, 모두 내 착각이라고?

내 인생에서 온전히 내 것이라고 부를 수 있는 건 내 감정뿐이다. 그 감정마저 외면당한 기분은…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는 기분이다. 익숙한 기분인데… 분명 익숙해야 하는데 자꾸만 화가 치밀어 오른다.

나는 강 대표의 새까만 눈동자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착각하는 거 아닌데요.”

“…….”

“내가 아저씨 좋아하는 거 맞아요.”

“백지오.”

그가 경고했다. 나는 결국 울컥한다.

“왜요. 나는 누구 좋아하면 안 돼요? 나 같은 건 누구 좋아하지도 못해요? 그게 그렇게 잘못됐어요?”

“…너, 말 그따위로 할래.”

“아저씨도 맨날 말 막 하잖아요. 왜 아저씨는 되고 나는 안 되는데요? 나는 왜 안 돼요? 나는 왜… 아저씨 좋아하면 안 되는데요. 좋아하는 것도 내 마음대로 못 하면, 그럼 제가 할 수 있는 게 뭔데요.”

나는 점점 떨리는 음성을 애써 억누르며 물었다.

“나 같은 게 좋다고 해서, 같은 남자끼리 좋다고 해서 소름 끼쳐요? 아저씨도 내가… 더러워요?”

“뭐?”

기가 찬 듯 짧은 숨을 토해 낸 강 대표가 마른세수를 했다. 어디서부터 꼬인 건지, 전혀 알 수 없다는 얼굴이었다. 익숙한 표정이다. 곤란해하는 표정, 벗어나고 싶은 표정, 그리고… 버리고 싶은 표정, 나를 스쳐 지나간 사람들의 얼굴에서 종종 보이던 그 표정.

눈앞에 겹쳐지는 얼굴들을 애써 지우며, 나는 메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붉어지다 못해 퍼레졌을 뺨이 쓰렸다. 억겁 같은 찰나의 시간이 흐르고, 강 대표가 입을 열었다.

“너 하나도 안 더러워.”

“…….”

“남자 좋아하는 거? 똥통에 빠져 있는 나 같은 사람한텐 그딴 건 더러운 것도 아니야.”

그 새끼가 무슨 헛소리를 지껄였는지는 몰라도 그건 더러운 축에 속하지도 못한다고. 평생 더러운 꼴이 뭔지도 모르고 살아온 속 편한 새끼들이나 하는 개소리지. 강 대표가 이를 갈며 덧붙였다.

그럼 적어도 내가 강 대표를 좋아한다는 것에 대해 거부감은 없다는 소리 아닌가? 어쩌면… 받아 줄 수도 있다는 소리 아닌가? 갑작스럽게 비치는 한 줄기 희망의 빛에 쿵, 쿵, 쿵 심장이 거세게 뛰었다. 나는 차오르는 기대감에 젖어, 그의 입술에서 나올 긍정적인 대답을 기다렸다. 그것도 잠시….

“근데, 지오야.”

내 이름을 다시 한번 ‘그런 식으로’ 다정하게 부른 강 대표가 속삭였다.

“아저씨 좋아하지 마라. 너만 손해다, 아가야.”

역시나. 예상을 비켜 나가지 않는다. 강 대표의 한마디, 한마디에 천국과 지옥을 한순간에 오간 나는 억눌린 음성으로 되물었다.

“…그게 왜, 내 손해인데요.”

“나이 먹어 봐라, 손해인지, 아닌지.”

“그게 왜 손해냐고요. 내 마음이 그렇다는데.”

“말했지. 아가야, 너 나 그런 마음으로 좋아하는 거 아니라고. 기댈 곳 없으니까, 기대고 싶으니까 좋아한다고 착각하는 거다. 조금만 지나봐. 그게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될 테니까.”

‘착각’에 다시 힘을 주어 뱉은 강 대표가 “애새끼가, 씨팔, 어디서 두드려 맞고 와선. 겁도 없이 대놓고 좋아한다고….” 하며 말꼬리를 흐렸다.

덜떨어진 애새끼 취급에 잘 숨겨 놓았던 감정의 덩어리가 뾰족뾰족하게 변해 온몸을 이리저리 찔러댄다. 시야가 다시 붉은 물감으로 물드는 착각이 인다. 마치 괴물이라도 된 듯이.

그 누구도 내 감정이 틀렸다고, 아니라고 말할 수 없다. 그게 강 대표라면 더더욱.

나는 새까만 눈동자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쏘아붙였다.

“누가 아저씨더러 평생 같이 살자고 했어요? 그냥… 내가 아저씨 좋아한다는데 왜 자꾸 아니라고 하는데요? 왜 자꾸 착각이라 하는데요? 아저씨가 뭔데요. 아저씨가 내 마음 알아요? 그냥 흘러갈 마음인지, 아닌지 어떻게 아는데요.”

잔뜩 굳어 있던 강 대표의 얼굴 위로 당황스러운 기색이 다시 한번 스쳐 지나갔다. 오른쪽 관자놀이를 꾹꾹 누른 강 대표가 입을 연다.

“그래. 백번 양보해서 네가 말하는 그 마음이 착각이 아니더라도….”

“…….”

“어른이 좋아하는 거랑 애들이 좋아하는 건 달라. 어른이 좋아하는 눈으로 애들을 좋아하면 그 새끼가… 씹새끼지. 그래서 안 된다는 거야.”

정신 똑바로 박힌 새끼는 어린애 안 건드려. 잘 기억해. 그런 새끼들 상종도 하지 말고. 강 대표가 짓씹듯이 속삭였다. 끝까지 애새끼 취급이다. 평소 같았으면 나를 걱정해 주는 모습에 애새끼 취급을 해도 바보처럼 실실 웃었을 거다. 더 이상은 아니다.

나는 강 대표에게 더 이상 애새끼 취급을 받고 싶지 않다. 더 이상 당연해지고 싶지도 않다.

나는… 특별해지고 싶다.

“아저씨. 저 열아홉이에요. 조금 있으면 성인이고. 몇 달만 지나면 술 마시고, 담배 피우고 다 할 수 있어요. 지금도 편의점 가면 콘돔도 살 수 있고, 호텔도 교복만 벗으면 갈 수 있어요.”

“야.”

“제가 말했잖아요. 저 아저씨가 생각하는 것만큼 어리지 않다고.”

“자꾸 헛소리하지.”

정신 좀 차려라, 아가야. 강 대표가 한숨처럼 읊조렸다. 내가 고르고 고른 답을 한순간에 빨간 줄을 그어 버린 강 대표는 더 이상의 오답을 받아 주지 않겠다는 얼굴을 했다. 한순간에 온몸이 뜨거워진다. 얻어맞은 뺨이, 턱이 그리고… 마음이 타들어 가는 것만 같다.

“아저씨 눈에는 그렇게 애새끼 같아요, 내가?”

나는 충동적으로 강 대표의 손을 덥썩 잡았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지, 강 대표의 손이 움찔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지금껏 누구나 괴물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 노름판을 전전하다 전 재산을 탕진하고 사채에 손을 댄 아빠도, 끝도 없는 빚 독촉에 길 한복판에 나를 버리고 사라진 엄마도, 교복을 벗을 나이가 다가오자 서로 깔고, 깔아뭉개는 또래들도 모두 그 속에 저마다의 괴물을 품고 있다고.

괴물이 되는 법은 실로 간단하다. 괴물에게 먹이를 주면 누구나 괴물이 되는 것이다. 누구에게는 돈이었고, 현실이었고, 힘이었고, 누구에게는 늘어놓기도 민망한 구구절절한 감정 따위였다.

그리고 내 괴물은….

“아저씨. 그럼 나랑 해요.”

“…….”

“해 보면 알 거 아니에요. 내가 애새끼인지, 아닌지.”

나는 잔뜩 굳어 올라가지 않는 입꼬리를 비쭉 올렸다.

“내가 아저씨 생각보다 잘할걸?”

내 괴물은 수치심을 먹고 자랐다. 나는 결국 수치심을 모르는 뻔뻔한 인간이 되었다. 그 누구도 아닌 강 대표에게.

잠자코 듣고 있던 강 대표의 얼굴이 일순간에 일그러졌다. 나를 노려보는 눈이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날카로운 시선이 내게 쏟아진다.

“씨팔, 뚫린 입이라고 진짜 못 하는 말이 없네.”

“…….”

“예쁘다, 예쁘다 해 주니까 정신 못 차리지. 잘 대해 주니까 지가 어디에 뛰어드는지도 모르고 겁도 없이 대가리 들이밀지. 어디까지 기어오르려고, 아가야. 응?”

됐다. 그만해. 그는 화를 꾹꾹 눌러 참는 얼굴로 내 손을 거칠게 떼어 냈다. 그 힘에 내 몸은 종잇장처럼 흔들렸다. 내가 비틀거리자, 그가 반사적으로 손을 뻗으려다가 말고 주먹을 쥔다. 그러더니 품속에서 지갑을 꺼내 5만 원권 여러 장을 꺼내 들곤 내 손에 돈을 억지로 쥐여 줬다.

“병원 가.”

“…….”

“가.”

나는 작게 그를 불렀다.

“…아저씨.”

그는 끝끝내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등을 돌린다. 대답할 가치도 없다는 표정으로. 점점 멀어지는 강 대표의 뒷모습에 숨통이 옥죄이고 눈앞이 어지럽다. 나를 버리고 간 내 ‘변명들’이 그 위로 겹쳐진다.

“아저씨!”

나는 고함을 지르다시피 강 대표를 불렀다. 옆구리를 움켜쥐고 절뚝이며 강 대표의 뒤를 따랐다. 하지만 그에게 닿을 수 없었다. 강 대표는 이미 골목길 밖으로, 북적거리는 인파 사이로 사라진 후였다.

아저씨.

나는 속으로 웅얼거렸다.

…가지 마요.

내 말에 답해 줄 사람은 이미 떠나고 없었다. 나는 내 손에 들린 지폐를 구겨 쥐었다. 그 자리에 서서, 나는 한참을 기다렸다. 스쳐 지나가는 행인들의 시선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쏟아지고, 훑고, 할퀴어지고 나서야 나는 깨닫는다.

강 대표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걸.

이게 현실이다. 아무리 멋진 말로 정성스레 포장해도, 값싼 말로 뻔뻔하게 툭 내보여도… 내 마음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강 대표는 나를 받아 줄 생각이 전혀 없으니까. 내게 다시 돌아오지 않는 것처럼.

결국 나만 포기하면 되는 일이었는데, 포기가 쉽게 되지 않아 괜히 오기를 부렸다.

‘아저씨. 그럼 나랑 해요.’

속이 메스껍다. 나는 황급히 발걸음을 돌려 다시 인적이 드문 골목길로 향했다. 차가운 빨간 벽돌을 손으로 짚은 나는 고개를 숙여 구역질을 했다. 허겁지겁 집어삼킨 수치심을 죄 토해 냈다. 감정보다 가벼웠던 부끄러움이 한순간에 몰려와 나를 침몰시킨다. 신맛이 나는 침을 퉤 뱉었다. 입술 끝이 쓰렸다.

“흐으….”

바보같이 눈물이 나왔다. 나 스스로 병신같이 굴었으면서, 뭘 잘했다고 우는지 모르겠다. 나는 교복 와이셔츠 소매 끝으로 눈가를 짓눌렀다.

어둠 속에서 자꾸만 강 대표가 떠오른다. 강 대표의 마지막 그 눈빛이, 그 날카로운 시선이, 끝까지 나를 ‘그 애’로 재단하지 않는 그 눈이.

나는 강 대표가 차라리 나를 그런 눈으로 봐 줬으면 좋겠다. 차라리 나를 이용해 줬으면 좋겠다. 차라리 나를 불쌍하게 여겨 줬으면 좋겠다.

강 대표가 나를… 좀 사랑해 줬으면 좋겠다.

* * *

정처 없이 걷다 보니 어느새, 어둠이 하늘 위에 짙게 깔려 있었다. 나는 언덕길을 힘겹게 올랐다. 병원에는 따로 가지 않았다. 강 대표가 먼저 가 버린 그 순간, 병원에 가야겠다는 마음이 사라져 버렸다. 그냥… 어디론가 숨고 싶어졌다. 아무도 나를 발견하지 못할 곳으로.

나는 두리번거리며 주위를 훑었다. 익숙한 골목길이다. ‘우리’ 집이 아닌, 내가 살던 동네의 골목길. 습관이 무섭다. 저 깊숙한 골목 끝에 흡사 50년 전에 지어진 것 같은 불이 들어오지 않는 간판이 희미하게 보인다. 그것마저 기억 속 그대로다.

장미 여인숙. 아주 어렸을 때, 내 곁에 변명들이 모두 머무르고 있었을 때, 술 취한 아빠를 피해 엄마와 종종 숨던 곳.

나는 손에 들린 지폐를 꽉 쥐고 그 건물을 향해 걸었다. 빛바랜 회색에 가까운 문을 열자 작은 유리창 안에 보이는 할머니가 고개를 든다. 눈이 침침한지 돋보기에 가까운 안경을 고쳐 쓴 할머니가 주름살이 가득한 눈을 찌푸린다.

“혼자여?”

“…네.”

“4만 원. 교복은 벗고.”

나는 할머니에게 5만 원 지폐 두 장을 내밀었다. 할머니는 낡은 노트 위에 두꺼운 펜으로 숫자 2.5를 휘갈겨 썼다가, 내 얼굴을 보더니 지우고 3으로 고쳐 쓴다.

“3일. 103호.”

작은 구멍으로 열쇠를 내민 할머니가 돋보기안경을 빼낸다. 나는 103호가 새겨진 손때 묻은 나무패를 들고 발걸음을 옮겼다. 열쇠를 넣고 돌렸더니 끼긱, 하는 소음이 고막을 찔러댔다. 문을 열자 화장실보다 작은 방이 나왔다.

“…작네.”

기억 속 방보다 더 작다. 내가 더 커진 건지도 모른다. 아니면 강 대표의 집에 너무 익숙해졌는지도 모른다. 강 대표가 옳았다. 역시 습관이 무서운 법이었다. 나는 천천히 쭈그려 앉아 교복 와이셔츠를 벗었다. 흰색 반팔을 살짝 들어 올리니 옆구리 쪽에 새파란 멍이 들어 있었다.

“김국현, 개새끼….”

어쩐지 아프더라. 나는 작게 중얼거렸다. 실내에 들어오자 수마가 급격하게 몰려왔다. 손가락 하나도 꿈쩍 못 할 것 같은 기분에 나는 그대로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이불 위에 몸을 눕혔다. 온몸을 울리는 통증에 새우등 자세로 잔뜩 등을 굽히자, 옅은 한숨이 절로 흘러나왔다.

정말이지, 하루가… 길다.

나는 무거운 눈꺼풀을 깜빡이자 암흑이 찾아온다. 오늘도 어김없이 악몽이 찾아올까 겁이 난다. 악몽도 어둠 속에서 나를 발견하지 못하고, 그냥 스쳐 지나가 줬으면 좋겠는데… 탈력감 속에서 나는 죽은 듯이 눈을 감았다.

하루, 이틀,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르겠다. 지금 이 순간이 반복되는 악몽 속인지, 현실인지도 모르겠다. 흠칫 놀란 아빠의 표정과 내 손끝에서 느껴지는 차가운 느낌, 부스럭거리는 서류 봉투의 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대체 뭘 하냐는 거냐고 묻고 싶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붉은 물감이 시야를 덮는 것만 같다. 벌건 시야 사이로 보이는 아빠는 커다란 괴물이 되기도 하고, 구덩이에 빠지기도 하고, 다시 돌아와 내 손을 덥썩 잡기도 한다.

“으….”

나는 그렇게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에서 한참을 끙끙거렸다.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을 정도로 온몸이 뜨겁다. 내가 뱉는 숨결이 뜨거운 것이 다 느껴질 정도다.

그래도 아직 할머니가 문을 두드리지 않은 걸 보니 3일은 지나지 않은 모양이었다. 다행이다. 나는 원래 몸이 아파도 웬만한 건 3일이면 다 낫는 편이니까. 적어도 하루는 확실히 지난 것 같으니, 앞으로 하루만 더 아프면 된다. 오랜만에 아파서 그런지 조금 서럽기는 하지만… 괜찮다. 이 정도는 괜찮다. 흐릿한 시야에 눈을 떴다, 감았다 반복하던 나는 다시 눈을 감았다. 새까만 어둠 속에 어느새 몸은 사라지고, 정신은 묻힌다.

차라리 그냥 이대로 사라졌으면 좋겠다. 눈을 뜨지 않았으면 좋겠다. 굳이… 눈을 뜨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다시 생각해 보니 강 대표도 어이가 없을 거다. 도망간 채무자 아들에게 잘해 줬더니… 이렇게 뒤통수를 쳐서.

강 대표가 나를 찾고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아닌 것 같다. 나 같아도 이상한 말 하는 새끼는 굳이 찾지 않을 테니까. ‘애새끼’가 하는 행동에 완전히 질려 버린 강 대표는 내가 성인이 된 후에, 박 변호사에게 채무 서류만 달랑 딸려 보낼 것 같다. 눈에 선하다. 나는 헛웃음을 터트렸다. 귀가 먹먹한 탓에, 내 웃음 소리는 웃음소리 같기도 하고, 울음소리 같기도 했다. 사실 뭐든 상관없다.

그냥, 강 대표가 내 이름을 한 번만 더 불러 줬으면 좋겠다.

그러면 다 지우고… 다 까맣게 잊고 돌아갔으면 좋겠다.

원래대로.

강 대표와 둘이 평화롭게 지내던 그때로.

혼자서 몰래 좋아하던 때로.

아니, 좋아하던 줄도 모르던 그때로.

그럼 적어도 곁에는 머물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언제나 늦는다. 그걸 늘 알면서도 나는 매번 후회할 선택을 한다. 이 정도 즈음 되면, 나에게 무슨 문제가 있나 싶다. 사람이 제 분수에 맞게 살아야 한다는데, 나는 매번 욕심을 부려서 이 모양 이 꼴인 것 같다. 다시 돌아갈 수만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과한 욕심은 부리지 않을 텐데.

그때였다.

달칵, 달칵.

상념을 뚫고 잠긴 문고리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린다. 그러더니 무언가가 부서지는 소리가 이어졌다. 벌써 3일이 지났나…? 아니면 이번에는 그 꿈일지도 모른다. 아빠가 엄마와 나를 찾아 쥐 잡듯이 여인숙을 뒤지는 꿈. 엄마와 함께 이불 속에서 덜덜 떨며 숨어 있던 그 날의 꿈.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 사이에서 반복되는 환상에 속이 울렁거려 헛구역질이 절로 나왔다. 몸을 옆으로 웅크리는 순간 익숙한 목소리가 고막을 울린다.

“하… 백지오.”

“…….”

“너 뭐 하는 새끼야?”

이번에는 강 대표의 음성이다. 꿈이구나. 나는 확신했다. 힘을 주어 눈꺼풀을 들어 올리니, 흐릿한 시야 사이로 익숙한 형체가 보인다. 짙은 눈썹이 보이고, 아래로 찡그려진 눈이 보인다. 높은 콧대와 다부진 턱선이 노란 전구 밑에 음영지게 드러난다. 꿈에 그리던 강 대표가 이제야 꿈에 나타났다.

“아….”

나는 손을 뻗었다. 마음처럼 강 대표는 잡히지 않고, 손이 힘없이 아래로 떨어진다. 인상을 잔뜩 쓴 강 대표가 한쪽 무릎을 꿇어 내 앞에 앉는다. 거리가 가까워지자, 턱선 아래로 땀이 송골송골 맺혀있는 것이 보였다. 다시 손을 뻗었다. 땀을 닦아 주려고 한 건데, 강 대표가 내 손을 꽉 잡아 막는다. 그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이게 욕도 못 하게 영악하게 구네, 또.”

“…….”

“너 도망가면 내가 끝까지 쫓아간다 했지.”

강 대표가 꽉 잡은 내 손을 끌어 내린다.

“우리 아가가 나랑 한 계약을 소꿉놀이 장난으로 아나 본데….”

“…….”

“아저씨는 남한테 등 처먹히는 걸 제일 싫어하는 사람이에요. 기껏 데려왔더니 눈치 슬슬 보는 것도 모자라서 도망을 쳐?”

혼자 병원 가랬더니 아예 집을 나가 버리네. 강 대표가 음산한 음성으로 나지막이 읊조린다. 도망간 게 아니라 괴물 같았던 내 모습이 부끄러워서 피한 건데… 혹시 강 대표가 진짜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까 꿈에라도 무섭다.

“…아, 저씨.”

나는 변명을 하기 위해 한 호흡, 호흡마다 힘을 주어 그를 불렀다. 갈라지고 잠긴 내 목소리는 여전히 괴물 같았다. 나는 왠지 모르게 온기가 느껴지는 손을 고쳐잡았다. 다시 놓치지 않도록. 고개를 비스듬히 젖혀 천장을 응시한 강 대표가 다시 고개를 숙인다. 표정이 보이지 않는다.

“백지오.”

“…….”

“너. 내가 얼마나 미친 새끼처럼….”

잠시 말을 멈춘 강 대표가 고개를 들고 속삭이듯 내뱉는다.

“내가 진짜… 널 어쩌면 좋냐.”

음울한 여인숙 단칸방의 노란 조명 아래에서 새까만 눈동자가 잘게 빛난다. 집요한 시선이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는다. 땀으로 흠뻑 젖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집어삼켜지는 기분이다. 이게 현실이라면, 강 대표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을 텐데… 괜히 드는 비참한 마음에 두 눈을 감았다. 다급한 음성이 넘어온다.

“…백지오?”

“…….”

“지오야!”

나는 두 눈을 살며시 떴다. 시야에 들어오는 강 대표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일순, 얼굴이 시뻘게진 강 대표가 언성을 높이기 시작했다.

“너… 진짜 애새끼도 아니고, 네 마음대로 안 흘러간다고 몸을 혹사시켜? 앞으로 무슨 일 있을 때마다 이딴 식으로 안 보이는 데 숨어서 골골거릴 거야?”

손목 긋는 것만 자해가 아니야. 네 몸뚱어리, 함부로 한계까지 몰아붙여서 굴리는 거. 그것도 일종의 자해야. 알아들어? 병원 가라고 했더니, 씹, 이딴 곳은 또 어떻게 찾아서 처박혀 있어. 아저씨가 너 카드는 폼으로 줬냐? 카드를 왜 안 써. 쓸 줄 몰라?

강 대표는 꿈에서도 잔소리를 한다. 나는 그 잔소리가 좋다. 이상하게도, 목이 꽉 막힌 것처럼 불편하고 코끝이 매웠다. 마치 현실처럼. 꿈에서까지 울고 싶지 않아, 나는 부러 두 눈을 크게 뜨려 노력했다.

“…아저씨.”

“그래.”

드디어 답이 돌아온다. 나는 내내 입 안에 맴돌던 말을 내뱉었다.

“가, 가지 마세요….”

강 대표의 얼굴이 선명하게 보였다, 흐리게 보이기를 반복한다. 나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꾹 눌러 왔던 울음이 잇새로 터져 나왔다.

“죄송, 죄송해요.”

“…….”

“불편하, 게 해서 죄송해요. 저 같은 게 좋아, 한다고 해서 죄송해요. 가만히 있으, 면 되는데, 자꾸… 자꾸 욕심이 나서 그랬어요.”

나는 숨을 크게 헐떡였다.

“이제 좋아, 해 달라고 절대, 절, 대 안 할게요. 욕심, 안 부릴게요. 이제 안 좋아, 할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오른쪽 가슴이 찌르르 하고 아프다. 누군가 구둣발로 짓밟는 것처럼.

“그러니까, 가지 마, 요. 아저씨, 가지 마요.”

“…….”

“제발요….”

옆에만 있게 해 주세요. 이제 진짜 안 좋아할게요. 불편하게도 안 하고, 티도 안 낼게요.

나는 한참 동안이나 그 말들을 주문처럼 읊었다. 정신이 완전히 어둠 속에 파묻힐 때 즈음, 꿈의 마지막 조각은 처음 보는 낯선 표정을 한 강 대표가 황급히 나를 번쩍 들어 올리는 모습이었다. 안도감이 밀려왔다. 사라지는 뒷모습이 아니라 다행이었다.

* * *

소독약 냄새가 코끝에 일렁인다. 나는 부스스하게 눈을 떴다. 가물가물한 시야에 하얀 타일 천장이 보였다. 손등이 뻐근해 슬쩍 들어 보니 커다란 주삿바늘에 얇은 호스가 이어져 있었다.

병원…?

“깼나.”

낯선 아저씨의 얼굴이 시야 안으로 불쑥 들어온다.

“일어나 봐라. 니 하나 찾으려고 이틀 동안 온 동네를 싹 다 뒤졌다.”

“…….”

“와 눈을 안 뜨노.”

이틀 잔 걸로는 부족하나. 부담스럽게 가까이 다가오는 험악한 얼굴을 피해 시선을 돌린 나는 몸을 반쯤 일으켜 세웠다.

“…으.”

두통에 두개골이 으깨지는 것만 같다. 오른손으로 관자놀이를 짚자, 꿈의 조각들이 밀려온다. 세월의 흔적에 닳아 허옇게 일어난 붉은 벽지, 먼지가 낀 노란 전구, 그 작은 방 안에서 위험하게 번뜩이던 새까만 눈동자. 단단한 팔을 붙들고 울고불고 애원하던 나.

나는 다시 낯선 이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가오리를 닮은 눈매, 우락부락한 근육, 산만 한 덩치. 분명 강 대표의 사람이다.

그럼 그건 꿈이 아니라….

사색이 되어 질려 가는 내 낯빛을 본 가오리 아저씨가 다 이해한다는 듯 아아, 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니 내 모르나? 우리 동기잖아, 동기.”

“…예?”

“금천서 동기.”

내 얼빠진 되물음에 검지로 스스로를 가리킨 가오리 아저씨가 낄낄댔다.

“…제가 왜 아저씨 동기예요. 전 그냥 학생인데요.”

나는 허공에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슬리퍼를 찾았다. 화장실을 핑계로 강 대표가 오기 전에, 병실 문 밖으로 나갈 요량이었다. 아직 강 대표를 만날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 내가 하는 꼴을 지켜보던 가오리 아저씨가 내 팔에 연결된 링거 선을 정리해 주며 덧붙인다.

“같은 형사한테 같이 조사 받았으니까 동기지. 한번 동기는 영원히 동기인 거 모르나?”

억양이 거센 사투리에 멈춰 있던 뇌가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다. 어쩐지 익숙하다 했더니, 강 대표가 경찰서에 나를 데리러 왔을 때 그에게 아는 척하던 아저씨였다. 그때 분명 강 대표는 모르는 사람 취급했었는데… 뭐, 물론 그게 지금 중요한 건 아니지만.

“근데 아저씨, 아니 그 강 대표…님은요.”

“행님? 잠깐 의사 선생 보러….”

“그럼 저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화장실 여 있다.”

“…….”

나는 대답 없이 슬리퍼를 꿰어 신었다. 가오리 아저씨는 다시 한번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아아, 하면서 히야, 역시 어린 게 좋다. 한 발 빼고 온나, 하며 너스레를 떨었다. 미친 사람이었다.

나는 가오리 아저씨를 뒤로한 채, 1인실 병실을 빠져나와 엘리베이터를 향해 걸었다. 요란한 소리를 내며 끌려오는 링거 폴대에 잠시 걸음을 멈추고 손목에 연결되어 있는 링거 주삿바늘을 뽑아냈다. 따끔한 감각이 현실을 일깨웠다. 거추장스러운 링거 폴대를 한쪽 복도에 밀어 넣고 발걸음을 옮겼다.

돈.

채무.

강 대표.

도망간 아빠.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머릿속이 차갑게 가라앉는다. 악몽 같은 현실 속에서, 우선순위들이 차곡차곡 쌓였다. 그래, 일단 돈을 갚는 게 먼저다. 감정은… 내가 누굴 좋아한다고 해서, 다시 내게 돌아오는 것이 아니므로.

‘기대하지 마. 기대를 버리면 편해.’

“…….”

‘네가 끝까지 기다린다고 해서 보상 받는 거 아니야. 너만 손해지.’

강 대표가 옳았다. 아빠가 나를 버리고 돌아오지 않는 것처럼, 강 대표에 대한 내 감정도 돌려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선물도, 신발도, 식사도… 너한텐 크겠지만 나한텐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야.’

도망간 채무자 아들 주제에 차고 넘치게 받아먹었으면 감지덕지해야 할 판에, 제 분수도 모르고.

‘괜히 고마움에 착각하지 말라는 소리야.’

강 대표에 대한 마음을 표현하면 돌려받을 수 있다고 착각했다. 고백하면 이뤄질 수 있다고 착각했다. 어쩌면… 사랑 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모두 착각이었다.

“…짜증 나게.”

지끈거리는 편두통에 나는 엘리베이터 철문 옆에 이마를 기대었다. 정신이 번뜩 드는 차가운 감각에 적당한 온도를 맞추지 못하고 펄펄 끓는 마음이 조금은 사그라드는 기분이 들었다.

띵.

문이 열리자마자, 나는 헛숨을 들이켰다. 꿈속, 아니 여인숙에서 모습과 별반 다를 것 없이 잔뜩 구겨진 셔츠를 입은 강 대표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렸기 때문이었다. 강 대표의 왼손에는 못 보던 새하얀 붕대가 칭칭 감겨 있었다. 나를 발견하고 조금 놀란 얼굴을 했던 강 대표는 상황을 파악한 듯 삽시간에 눈을 가늘게 떴다.

탁, 탁.

구둣발이 복도를 딛는 소리가 유독 크게 울린다.

“안녕.”

형식적인 인사를 마친 강 대표가 비뚜름하게 웃었다.

“아가야, 또 어디 가려고.”

“…….”

“계산은 똑바로 하고 가야지.”

건조한 웃음이 섞인 음성이었다.

“아직 계산할 게 많이 남았는데.”

‘계산’에 힘을 준 강 대표가 나를 위아래로 훑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돈이 될 만한 모든 것에 값을 쳐서 뜯어갈 기세였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일순, 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골목길에서 봤던 그 얼굴이다.

“…윽.”

속이 울렁인다. 나는 입술을 앙다문 채, 반대편을 향해 뛰었다. 실상은 절뚝이며 한 걸음, 한 걸음 빠르게 내딛는 수준이었지만.

“잘도 뛴다.”

뒤에서 심드렁한 반응이 넘어왔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강 대표 앞에서 구역질을 할 수는 없으므로. 타이밍이 거지 같아도 늘 이럴 수는 없는 거다. 왜 맨날 간절하게 강 대표를 피하고 싶은 순간마다, 눈앞에 나타나는지 모르겠다.

“꼴뚜기냐? 그만 뛰어라. 아저씨 귀찮다.”

더욱 속도를 높이자, 일순 혀를 차는 소리가 아주 가까이서 들렸다. 부드러운 힘에 의해 몸이 반대편으로 돌아가는 것은 그다음이었다. 강 대표가 고개를 비스듬히 숙여, 나와 눈높이를 맞추었다.

“생각보다 팔팔하네.”

“…….”

“죄지었어? 보자마자 도망가게.”

“도망쳐야 할 정도로… 잘못한 건 없는데요.”

아저씨가 겁주니까 그런 건데요. 나는 소심하게 반박했다. 사실 겁먹은 게 아니라 안 좋은 모습을 보여 주고 싶지 않아서지만, 내 속마음을 전부 말할 필요는 없는 거다. 구역질을 참아내기 위해 주먹을 꽉 쥐자, 강 대표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래? 그럼 이제부터 변명을 좀 들어볼까 하는데….”

“…….”

“누가 마음대로 집 나가래.”

거긴 아저씨 집이잖아요. 아저씨가 나한테 질려서 꼴도 보기 싫어할까 봐… 아저씨 불편할까 봐 피해 준 건데요.

하지만 나는 대답 대신 침묵을 고수했다. 객관적인 시각에서 보자면, 나는 강 대표에게 고백했다 대차게 차여서 병원에 가지 않고 숨어 있다 꼴사나운 모습을 들키고 잡혀 온 거다. 그런 주제에 변명 아닌 변명을 하자니 구차했다.

마음 하나 제대로 조절 못 하는, 감정을 질질 흘리고 다니는 곤란한 애새끼.

강 대표에게 적어도 그런 ‘애새끼’로 남고 싶지는 않다.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고민하는 사이, 이어지는 침묵에 강 대표가 눈썹을 들어 올렸다.

“대답 안 하지.”

“…….”

“아가야.”

마지막 경고처럼 울리는 음성에, 그제야 나는 강 대표를 똑바로 올려다보았다.

“아저씨… 지금까지 감사했습니다.”

“뭐?”

“아니, 돈 안 갚겠다는 소리가 아니라… 앞으로 돈은 차근차근 갚아 나갈 건데요. 나가서 따로 살면서 갚으려고요.”

“하… 이게, 진짜.”

씨발. 미치겠네, 작게 욕설을 읊조린 강 대표가 거칠게 머리를 쓸어올렸다.

“내가 언제 나가라 했어.”

“…….”

“아가야. 넌 내가 고작 열아홉짜리한테 내 뜻에 거슬린다고 나가서 살라고 협박하는 양아치 새끼처럼 보이냐?”

“그건 아닌데요. 그게….”

내가 우물쭈물하자, 강 대표가 이를 악물고 열을 삭이는 얼굴을 했다.

“계약했잖아.”

“…….”

“그거 네 방이고, 네 집이야.”

무슨 일이 있으면 집으로 돌아와야지, 왜 밖으로 나돌아다녀. 네 집 놔두고. 강 대표가 덧붙였다.

…그 집이 왜 내 집이지? 단 한 번도 ‘내 집’이 있어 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 솔직히 좀 얼떨떨했다. 그게 왜 내 집이에요, 아저씨 집이지. 아니, 강 대표 말대로 계약 기간까지는 내 방이고, 내 집인가? 아닌 것 같은데. 내가 정답을 찾아 헤매는 사이, 강 대표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저씨는 계약서에 써 있는 대로만 움직이는 사람이에요. 기억하지?”

“네.”

“계약을 이딴 식으로 중간에 파기하면 위약금 물려야지, 뭐. 별 수 있나.”

“…네? 뭐요?”

“위약금. 투자금도 회수하고, 소요된 시간과 비용까지 이것저것 쳐서 받아내야지. 안 그래?”

위약금? 위약금 같은 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지금까지 받기만 받았지, 실시간으로 쌓이는 이자도, 강 대표가 나에게 쏟아붓는 투자금이 얼마인지도 정확하게 모른다. 알려 달라고 하면 매번 얼버무리고 넘어갔기 때문이다. 이것저것 쳐서 받아 낸다니… 분명 자기는 양아치가 아니라 대표라고 했으면서, 양아치가 따로 없었다.

근데… 진짜 어떡하지?

나는 덜컥 겁이 났다. 강 대표가 높낮이 없는 음성으로 묻는다.

“감당할 수 있겠어?”

이미 원금에, 이자까지. 모두 감당 못 할 정도인데 거기에 위약금까지 붙는다면….

“…아니요.”

불안한 시선으로 강 대표를 올려다보자, 그의 입매가 느슨하게 풀어진다. 그러더니 한층 부드러워진 음성으로 묻는다.

“우리 계약 기간이 언제까지야.”

“졸업할 때까지요.”

내 즉답에, 강 대표가 고개를 까딱였다.

“거봐. 그때까지 계약했잖아.”

“…네.”

“그럼 계약서대로 해.”

나는 어색하게 눈알을 굴렸다.

“지오야.”

“…….”

“뭘 고민해. 기회 있을 때 잡아야지.”

강 대표가 오른손을 내민다. 크고 길쭉한 손가락들이 곧게 모여 있었다. 나는 물끄러미 그의 손을 내려다보다가 조심스레 잡았다. 굳은살이 박여 거친 감각과 함께 뜨거운 체온이 전해졌다. 강 대표가 단단하게 힘을 주어 위아래로 두어 번 흔들었다.

“나랑 악수한 거야. 지켜.”

허튼 생각 하지 말고. 강 대표가 말했다. 이 와중에도, 온몸의 신경이 맞잡은 손으로 쏠렸다. 애써 세워 놓은 우선순위가 한순간에 휘청거린다. 쿵, 쿵, 쿵. 손끝에서 울리는 심장 고동 소리를 들킬 것만 같다. 땀이 배어 나오는 기분에, 나는 서둘러 손을 빼내 환자복 바지에 슥슥 문질렀다.

“계약서대로 할게요.”

“…….”

“걱정하지 마세요. 아저씨… 저 진짜 약속 잘 지켜요.”

나는 진심을 담아 대답했다.

“앞으로 절대 귀찮게 안 할게요. 있는지도 모르게, 없는지도 모르게 살게요.”

“…….”

“감사합니다.”

나는 고개를 꾸벅 숙였다, 들었다.

“…….”

“…….”

흡족한 표정을 지을 줄 알았던 강 대표의 표정이 묘하게 뒤틀려 있었다.

또… 왜 그러지?

나는 습관처럼 고개를 푹 숙이려다 말고, 또 한 소리 들을까 봐 고개를 빳빳하게 들었다. 차마 정면을 바라볼 용기는 없어, 시선을 사선으로 틀어서. 시야각 사이로 강 대표가 공중에 멈춰 있던 오른손을 천천히 내려 주먹을 말아 쥐는 것이 보인다.

“후… 그래. 알았으니까….”

사뭇 거친 숨을 몰아 내쉰 강 대표가 빠져나갈 틈 없이 나를 앞장세웠다.

“일단 가자. 집으로.”

놓치지 않을 기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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