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화(1권) (1/14)

나는 누구나 괴물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 노름판을 전전하다 전 재산을 탕진하고 사채에 손을 댄 아빠도, 끝도 없는 빚 독촉에 길 한복판에 나를 버리고 사라진 엄마도, 교복을 벗을 나이가 다가오자 서로 깔고, 깔아뭉개는 또래들도 모두 그 속에 저마다의 괴물을 품고 있다고.

괴물이 되는 법은 실로 간단했다. 괴물에게 먹이를 주면 누구나 괴물이 되는 것이다. 누구에게는 돈이었고, 현실이었고, 힘이었고, 누구에게는 늘어놓기도 민망한 구구절절한 감정 따위였다.

“아저씨. 그럼 나랑 해요.”

내 괴물은 수치심을 먹고 자랐다.

“내가 아저씨 생각보다 잘할걸?”

결국 나는 수치심을 모르는 뻔뻔한 인간이 되었다.

* * *

나는 종종 양호실에 숨어들거나, 소각장 한편에 버려진 책상 위에 앉아 있곤 했다. 녹음된 종소리가 고철 스피커를 타고 기계적으로 울릴 때, 왁자지껄한 목소리들이 한 번에 사라질 때, 이명이 울릴 정도로 고요한 정적이 내려앉을 때, 나는 비로소 숨을 쉴 수 있었다.

학교에서 나는 ‘그 애’였다. 소년원에서 나온 형들이 자꾸 찾아오는 애, 선생님들이 포기한 애, 집에서도 내놓은 애, 조폭들이 자꾸 학교로 찾아오는 무서운 애.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그렇다 하더라도, 굳이 정정할 생각은 없었다. 그러자 이상한 소문들이 꼬리처럼 따라붙었다.

돈 많은 부자 아줌마들이 매일같이 찾는, 험상궂은 아저씨들이 종종 별식처럼 찾는, 돈만 주면 다 해 주는 그 애.

나는 가끔 헛소리하는 인중을 주먹으로 갈겼고, 종종 의자를 들어 올렸다. 소위 노는 애들은 그런 행동을 높게 쳐 줬다. 물론 무시했다. 모르는 얼굴들이 살가운 척, 아는 척하는 것도 우스웠다. 그럴수록 헛소문은 비탈길을 내려가는 눈덩이처럼 점점 커지기만 했다.

마침내 나는 포기했다. 이상한 소문을 떼 내는 것을 포기했고, 기대와 걸맞지 않게 잘 해내 보려는 것을 포기했다. 그저, 숨만 쉬기로 정했다.

숨만 쉬는 건 이상할 정도로, 쉬웠다.

“야. 조용히 안 해?”

“국, 국현아… 제발. 종, 종 쳤어….”

“뒤져서 나오면 몇 대 맞을래.”

못생긴 복숭아뼈가 훤히 드러날 정도로 교복 바지 밑단을 한껏 짧고, 좁게 줄인 김국현이 킬킬댔다. 멱살이 잡힌 스포츠머리를 한 옆 반 애가 버둥대는 만큼, 버려진 책상 위에 앉아 공중에 떠 있는 내 다리가 흔들렸다. 같은 반인 김국현은 곁눈질로 나를 자꾸 힐끔거렸다. 그러고는 보란 듯이 목소리를 키웠다.

“야. 내가 오늘까지 가져오라 했잖아.”

단번에 아래에서 훅 올라오는 주먹에 자라처럼 목을 움츠린 애가 무의식적으로 머리를 감쌌다. 김국현이 손으로 이마를 툭툭 밀었다.

“오바 하지 마. 내가 언제 때렸냐, 어? 때렸어?”

김국현이 손을 높게 쳐들었다. 진짜 후려칠 것 같았다. 나도 모르게 숨이 가빠졌다. 정신 사납게 다리를 떨다가 뛰쳐나가듯 땅에 발을 디뎠다.

“악!”

어디선가 나타난 커다란 손이 김국현의 주먹을 제지했다. 어른이다. 볕이 들어오지 않는 소각장에 우두커니 서 있는 남자는 새까만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다. 소리를 질러 당황한 김국현이 “뭐야, 아저씨. 이거 안 놔?” 하며 손목을 틀었다.

“아이고… 무섭다.”

중저음의 목소리가 놀리듯 깔렸다. 남자의 눈짓에 옆 반 애가 고개를 꾸벅 숙이고 별관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나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서 있다가, 다시 책상 위에 엉덩이를 깔고 앉았다. 남자는 김국현의 손목을 놓아준 대신에 잔뜩 힘줘 세운 머리를 꾹꾹 눌렀다.

“들어가서 공부해라. 지금 안 하면 나중엔 하고 싶어도 못 한다.”

힘의 차이에 귓불부터 목덜미까지 벌게진 김국현은 씩씩거리며 침을 뱉고 등을 돌렸다. 마지막까지 곁눈질로 나를 쳐다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지랄이야. 나는 작게 욕설을 뱉었다. 소각장은 평소처럼, 다시 고요해졌다. 하지만 속은 시끄러웠다.

남자가 무슨 생각으로, 어떤 눈으로 보고 있을지 뻔했다. 모르는 어른에게 괜한 말을 듣고 싶지 않아 시선을 내리깔았다. 선글라스는 점점 가까워졌다. 각도가 틀어지자, 희미하게 선글라스 너머 눈동자가 언뜻 보였다. 남자의 눈은 무심할 정도로 차가웠다.

“안녕.”

나는 대꾸하지 않았다.

“아저씨는 이상한 사람 아니에요. 교무실에 볼일이 있어서 방문증도 끊고 왔거든.”

남자가 휘갈겨 쓴 글씨가 가득한 종이를 보여 줬다. 날짜 스탬프와 이름, 숫자. 제대로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악필이었다. 눈살을 찌푸려 가며 해독했지만 쉽지 않았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근데요. 우리 학교엔 경비실 없는데요.”

“…….”

“이거 방문증 아니죠. 교무실에 볼일 없죠?”

“똑똑하네.”

남자는 능청스럽게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맞아, 난 너 보러 왔어.”

“누구신데요.”

“아저씨는 너랑 동종업계 사람이지.”

“전 학생인데요?”

“아니야. 지금 보니까 동종업계인데 뭐.”

“네?”

이상한 사람이다. 나는 책상에서 엉덩이를 떼고 똑바로 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자는 꽤 키가 큰 축에 속해 고개를 들어 올려 봐야 했다. 새까만 선글라스가 반사하는 희미한 빛에 눈이 시렸다.

“아저씨도 너처럼 돈 받으러 다니는 사람이거든.”

남자가 내 뺨을 가볍게 두어 번 쳤다. 한쪽 뺨이 금세 벌겋게 물드는 게 느껴졌다. 내 머릿속도 붉게 물들어 갔다.

또다. 또 돈 때문이다. 남자는 사채업을 하는 조폭이란 소리다. 적어도 헛소문 중 하나는 진실이 됐다. 조폭이 학교까지 찾아왔다.

“전 삥 뜯은 적 없는데요.”

“그래.”

남자는 전혀 믿지 않는 얼굴로 말을 이었다.

“연락처가 바뀌면 바로바로 업데이트를 해 줘야지, 백지오 학생. 진짜 교무실 갈 뻔했잖아.”

아저씨는 교무실이 무섭거든. 맨날 뒤지게 혼날 때만 가 봐서. 남자가 덧붙였다. 가벼운 농담조였지만, 왠지 사실인 것 같았다.

남자는 그것에 그치지 않고, 종이를 내 가슴팍에 밀어 넘겼다. 얼떨결에 받아들자, 지렁이 같은 글씨 속에서 낯익은 이름들이 보였다.

백철웅.

박덕기.

증오하는 이름들이.

“…지난달에 박 사장한테 잔금 다 치렀는데요.”

박 사장은 아버지에게 노름 판돈 값을 빌려준 악독 사채업자였다. 지난달, 아버지는 10년에 걸친 원금과 이자를 모두 갚았다 했다. 증거가 없으면 믿지 않는 내게 영수증도 보여 줬다. 다시는 박 사장이 집에 찾아오는 일은 없을 거라 했다.

“이제 빚 없는데요.”

남자는 뭐가 그렇게 우스운지 한참을 웃었다. 선글라스를 벗어 길게 찢어진 큰 눈을 비벼 가며.

선글라스 안에 감춰진 얼굴은 사채업자치고 지나치게 눈길을 끌었다. 사진을 찍어서 아무 데나 팔아도 잘 팔릴 상이다. 저런 얼굴로 왜 사채업을 하지?

“박 사장이라 불러? 난 놈이네, 이거.”

“…….”

“그래, 박 사장이지. 나는 강 대표. 사장 말고 대표.”

남자는 ‘대표’에 힘을 주어 말했다.

“어른들은 이런 거에 예민하거든.”

나는 질문으로 답했다.

“그래서 왜 찾아오셨는데요.”

“박 사장 물량 내가 다 넘겨받아서.”

강 대표가 가볍게 대꾸했다.

“돈 받으러 다니는 사람이 돈 받으러 왔겠지. 뭐 하러 왔겠냐. 일단 번호부터.”

툭 던져진 핸드폰을 간신히 잡았다. 검은 액정 위로 멍청한 얼굴이 흐릿하게 비추어졌다. 지난달에 겨우, 간신히, 다 갚았는데 노름에 미친 아버지는 그새를 못 참고 또 빌린 모양이다. 나는 번호를 입력하는 대신 삐딱하게 물었다.

“이번엔 얼만데요.”

“뭐?”

“이번엔 얼마 빌려 갔냐고요.”

강 대표는 이것 좀 봐라, 하는 표정이었다.

“알면 뭐. 당장 대신 갚아 주려고?”

“어차피 아버지가 못 갚으면 나한테 오는 거잖아요. 그때 되면 이자도 엄청 불어 있을 거고. 원금이 얼마인지라도 알아야죠.”

머리 위로 바람 빠진 웃음소리가 들렸다.

“학생이 무슨 일을 해서 갚으려고. 깽값이라도 받아 낼 기세네.”

숨이 점점 막혀 온다.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뭘 원하시는데요? 교복 입고 자전거 타면서 달리는 차 앞에서 일부러 넘어지는 거요? 아님 오해 받을 법한 상황 만들어서 사진 찍는 거요? 저 동복은 이거 하나밖에 없어요. 찢어지면 안 되니까 진짜 시키실 거면 다른 학교 거 하나 구해다 주세요.”

“와. 영악하다, 영악해. 하여간 요즘 애새끼들은.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들이 나쁜 것만 배워가지고.”

강 대표가 혀를 내둘렀다. 나는 부러 뻔뻔한 표정을 지었다. 착하고 만만한 학생보다는 쉽게 건드릴 수 없는 영악한 애새끼가 낫다. 그간의 경험으로 체득한 삶의 지혜다.

꽉 쥔 주먹이 파들거렸다. 땀이 송골송골 배어 나왔다. 호기롭게 말했지만, 깽값 사기 같은 건 더더욱 쳐 본 적이 없어 조금 무서웠다. 강 대표는 내 마음을 읽은 듯이 말했다.

“나도 양심이 있지. 푼돈 벌자고 그딴 걸 시키겠어? 번호나 찍어.”

양심 없어 보인다. 나는 슬쩍 덧붙였다.

“저 아직 미자라 술집이나 클럽에서도 일 못 해요. 따로 관리하는 곳으로 보낸다 해도, 경찰한테 들키면 업소 영업 정지….”

“야.”

입을 다물지 않으면 강제로 다물게 해 주겠다는 듯한 따가운 시선에 나는 서둘러 핸드폰 번호를 입력했다.

[백지오]

잠시 고민하다 이름을 지우고 다시 입력했다.

[백철웅 아들]

됐죠? 여기요. 나는 강 대표에게 핸드폰을 넘겼다. 강 대표는 고개를 삐딱하게 숙여 시선을 맞춰 왔다.

“뭐해. 안 들어가고.”

“…정말 번호만 받으러 왔어요?”

“이게 속고만 살았나. 그럼 교복 입은 애 끌고 장기 떼러 갈까.”

평온한 어조로 뱉는 말은 썩 평온하지는 않았다. 음이 살짝 올라간 걸로 보아 질문에 불과했지만, 이것 또한 왠지 진심인 것 같았다. 나는 고개를 잘게 저었다. 강 대표는 눈꼬리가 휘도록 웃었다.

“그래. 전화 꼭 받고.”

멀리 나가지 말고. 학교 꼬박꼬박 출석하고. 종 쳤으니까 수업 들어가라.

아버지도 안 하는 잔소리를 줄줄 늘어놓은 강 대표가 다시 선글라스를 꼈다. 다시 희미한 빛이 반사되어 시야를 괴롭혔다. 내가 한쪽 눈을 찡그리자, 강 대표는 “새끼, 엄살은. 간다.” 하고 손을 흔들었다.

나는 우두커니 서서 멀어지는 강 대표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뛰어도 간신히 잡을 수 있을까 말까 한 거리까지 멀어진 강 대표가 우뚝 멈춰 섰다. 곧이어 교복 바지 주머니가 웅웅 울렸다.

액정 위로 낯선 번호가 떴다. 나는 전화를 받았다. 강 대표다. 그의 숨소리가 들렸다. 규칙적인, 고른 숨이었다.

—아. 이걸 말해 준다는 게 깜빡해서.

강 대표가 고개만 돌려 내가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고저 없는 목소리가 고막에 꽂혔다.

—네 애비 도망갔다.

* * *

아버지는 가족이 함께 있을 때만 보일러를 켜는 거라고 했다. 그래서 집은 늘 추웠다. 나는 집에서 보내는 사계절이 싫었다. 봄은 춥고, 여름은 덥고, 가을은 싸늘하고, 겨울은 감각이 없었다. 새 학년이 되는 봄이 오면 으레 그렇듯, 가장 낡은 패딩을 덮고 잤다. 나는 텅 빈 장롱을 노려보았다.

“…춥잖아.”

나보고 어쩌라고, 시발. 욕지거리가 절로 치밀어 올랐다. 다리에 힘이 풀렸다. 나는 텅 빈 방 한가운데에 대자로 뻗어 누웠다. 누렇게 뜬 천장이 꼴도 보기 싫었다. 두 눈을 꼭 감자, 소각장에서처럼 고요한 적막감이 내려앉았다. 맥없이 긴장이 풀려 눈시울이 삽시간에 뜨거워졌다.

‘그러니까 앞으로 잘 부탁해? 학생.’

학생.

그 호칭이 꼭 나를 놀리는 것만 같다. 내가 언제까지 학생으로 남을 수 있을까. 빨리 어른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3학년 1학기는 이제 갓 시작했고, 스무 살이 되려면 아직 9개월이나 더 남았다. 그런 얼굴로 태어나서 고작 사채업밖에 못 해 먹는 남자가 피가 바짝바짝 마르도록 쫓아온다면….

‘그럼 교복 입은 애 끌고 장기 떼러 갈까.’

성인이 되면 끌고 장기 떼러 간다는 소리일까?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매로 눈가를 거칠게 훔쳤다. 대학은 꿈도 안 꾸니, 고등학교 졸업장만이라도 따고 싶었는데 졸업장이 문제가 아니었다. 이러다 인생을 졸업하게 생겼다.

강 대표는 매우 젊다. 많이 쳐 줘 봐야 30대 초반이다. 그런 놈한테 덜미를 잡히면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숨통을 조여 올 게 뻔했다. 벌써 학교에도 찾아오지 않았는가. 실실 웃으면서 채무자에게 인생 조언을 날리는 놈이니, 50대 박 사장보다 독한 놈이다. 적어도 옛날 사람인 박 사장은 학교까지는 안 왔다.

돈을 갚아야 한다.

졸업하기 전에.

나는 핸드폰을 뒤져 가장 최근에 온 문자를 찾았다.

목요일, 지난주

백죠. 사거리에 V 술집. 관심 있으면 와. 나 아는 형 있는덴데. 세화여고 애들도 온다 했어. 너도 오면 좋을 것 같아서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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