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화 (6/7)

눈을 뜬 건 추위를 느꼈기 때문이다. 

해는 완전히 지고 어두컴컴해진 주위는 겨우 사물을 분간할 수 있는 정도의 빛만을 남기고 있었다. 당황한 정우는 벌떡 일어나서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모자장수도, 테이블도 보이지 않은 채 낯선 숲 속에 방치 되어 있었다. 

무서운 기분이 든 정우는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사람의 그림자를 찾으려 해지만 어둑어둑해지는 숲 속엔 아무도 없었다.

  "누구 없어요? 아무도 없나요?"

자신이 생각해도 소용없는 짓이라고 생각했지만 제멋대로 굴러가는 정우의 꿈은 어두운 숲 속에 한 무리의 인간들을 출현 시키고 있었다.

  "누구냐? 정체를 밝혀라!"

난데없는 한 무리의 투구와 갑옷으로 무장한 병사.

겁을 집어 먹은 정우는 그 후 자신이 어떻게 끌려가는지도 모르고 어느새 왕성 안에 발을 들여 놓아 황제의 앞에 결박당한 채 무릎 꿇려져 있었다.

역시 꿈...

겁나 빠른 전개다...

라고 생각하며 정우는 얌전히 묶여 있었다.

  "네가 숲 속에서 서성이던 수상한 인간이냐?"

어디선가 많이 들어 본 목소리다. 

정우는 이젠 그러려니 하며, '형...이제는 왕이야? 바쁘겠어...'따위의 시답잖은 농담을 속으로 읊고 있었다.

  "고개를 들라."

'젠장, 사극을 너무 봤군.'

자포자기하며 고개를 든 정우의 눈앞에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유럽식 왕의 복장을 한 형이 위엄있는 얼굴을 지어내며 왕좌에 앉아 있었다. 그 모습이 왠지 우스꽝스러워서, 마치 무슨 연극 할 때나 입는 복장으로 자신이 진짜 왕인 양 앉아 있는 형의 모습이 우스워서, 저도 모르게 실소가 튀어나올 뻔 했다. 그러나 곧 주위의 상황이 파악 되자 웃음을 터뜨리기도 전에 하얗게 질려버렸다.

넓고 높은 왕궁의 홀. 

위압감이 가득 느껴지는 홀의 붉게 깔린 카펫위엔 정우가 묶인 채 무릎 꿇려져 있었고 그 정우의 앞으로 몇 계단 올라가면 그 위엔 왕좌다. 화려한 왕좌위에 앉은 왕과 그 옆에 가로로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신하들의 수만 해도 십수 명. 

그리고 왕을 호위하는 병사들이 붉은 카펫의 양옆으로 정렬한 채 늘어서 있었다. 

적어도 수백여 명. 그 많은 인간들이 전부 형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쯤 되면 엽기라고!!!!!'

하얗게 질린 정우의 표정을 두려움 때문으로 판단했는지 왕의 옆에 서있던 신하가 크게 헛기침을 했다.

  "너무 걱정 말도록.

  자비롭고 우아하시며 너그럽고 품위 있고 아름다우신 우리의 황제 폐하께선 

  너 따위 하찮은 인간을 상대하실 정도로 시간이 많은 분은 아니지만 

  특별히 너를 불쌍히 여겨 게임에 참여할 자격을 줄테니 

  영광으로 알고 감사해라."

주절주절 자신에 대해 자랑을 늘어놓는 형의 모습이 가관이다. 또한 그 자랑이 마치 당연하다는 듯 거만한 표정을 하고 있는 형의 얼굴의 왕도 우스꽝스러웠다.

똑 같은 수백 개의 얼굴에 질린 것도 잠시, 정우는 배를 움켜잡고 웃음을 참기위해 혼신의 힘을 쏟아 부어야 했다. 덕분에 "끄윽..끅..."이란 이상한 소리를 내어야 했지만 주위의 누구도 그 행동이 웃음을 참기위한 행동이라고는 생각지 않은 듯 했다.

  "흠...결박당한 것이 불편한가? 풀어주도록."

  "자비로우신 그대에게 영광을!"

형의 목소리로, 형의 얼굴로, 자화자찬하며 그걸 또 뽐내는 모습이라니 정우에게 있어 그 이상의 코메디는 없었다. 너무 웃겨서, 그리고 너무 황당해서 배를 부여잡으며 끅끅대는 모습은 웃는다기 보단 차라리 괴로움에 몸부림치는 쪽이 가까웠다. 병사들은 친절하게도 정우를 부축해 왕의 앞까지 데려다 주었고 왕과 그의 신하들은 정우를 데리고 자리를 이동해 어느 방안으로 들어갔다. 

방안으로 이동하기 까지 사람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정우는 겨우 진정할 수 있었다.

  "그럼 게임은 이 방에서 하도록 하지요."

그다지 넓지 않은 방은 수십 명이 들어서자 꽉 찼다.

베이지톤의 느낌을 주는 은은한 분위기. 아늑하고 은근히 고풍스러운 방의 한 가운데에는 푹신한 느낌의 의자가 테이블을 가운데 두고 마주 보고 있었다. 테이블의 옆엔 테이블과 같은 높이의 작은 탁자가 있었고 화려한 문양으로 꾸며진 그 탁자위엔 투명한 유리병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 투명한 유리병 안엔 마치 투표용지를 접어놓은 듯한 종이더미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게임의 방법은 간단합니다."

정우를 의자에 앉히고 왕도 정우의 맞은편 의자에 거만하게 앉았다. 그리고 몇 명의 신하들이 왕의 뒤에 자리를 잡았고 병사들은 문이 달려 있는 벽에 일렬로 늘어서 있었다.

  "이 병 안의 쪽지를 꺼내어 거기에 써 있는데로 실행하면 됩니다.

  한사람이 쪽지를 뽑아 그대로 실행 하면 다른 한 사람이 또 쪽지를 뽑아 실행하는 방식으로, 백지가 나오면 통과. 다음 사람이 쪽지를 뽑습니다.

  참고로 이 병 안에는 백지가 훨씬 많습니다. 만일 행하기 힘든 벌칙이 걸린다 해도  그것을 실행 못한다면 지는 겁니다."

방금 전 왕에게 아부하던 신하가 유리병을 가리키며 말했다.

느닷없이 게임에 참여하게 된 정우는 조금 어리둥절하며 입을 열었다.

  "진 사람은 어떻게 되요?"

  "벌을 받습니다."

  "무슨 벌요?"

정우의 질문에 신하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리고 곧 주위의 신하들도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정우는 자신이 해선 안 될 질문을 한 것 같아 마음이 조마조마 해졌다. 그러나 에헴-하는 기침소리와 함께 말을 잇는 신하의 대답에 어이가 없어졌다.

  "큰일이군요. 그러고 보니 벌칙이 없었어!"

이어서 신하들은 열렬한 토론을 벌였다. 

처음엔 '어떻게 벌칙도 정하지 않고 게임을 만들었는가' 부터 시작해 나중엔 갖가지 벌칙에 대한 의견들로 중구난방하며 시끄럽게 떠들어 대고 있었다. 정우는 이 바보같은 상황에 머리를 긁적이며 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만!"

왕의 목소리...그래봤자 다른 신하들과 구별도 되지 않지만... 왕이랍시고 앉아 있는 자가 한손을 번쩍들어 토론을 중지 시켰다.

  "목을 자른다. 쪽지에 적혀 있는대로 하지 못한 자에겐 죽음뿐."

  "오옷! 그런 과감한 결단을 내리시다니!!!"

신하들이 일제히 박수를 쳤다. 덩달아 벽에 정렬해 있던 병사들도 박수를 쳤다. 정우는 그들의 행동이 너무 바보 같아서 이젠 웃을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다만...

  '형의 얼굴로 그런 멍청이 같은 짓은 하지말란 말야!!!'

라는 절규가 마음속에서 메아리칠 뿐이다.

  "그런데...그 벌칙은 폐하께도 적용되는 겁니까?"

일순 좌중이 조용해졌다. 흘깃 바라본 왕의 얼굴 표정도 창백했다. 마치, '차마 거기까진 생각 못했다!'라는 느낌이 역력한 표정이었다. 정우는 괴로움의 눈물을 흘리며 형의 이미지를 산산조각내는 이 바보들의 행진이 어서 중단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한마디 툭 내뱉었다.

  "목은 너무 살벌하니까. 머리카락 같은 걸 자르는 건 어때요?" 

순식간에 시선집중이 되는 것을 느꼈다. 똑같은 얼굴 수십 개가 노려보니 등에서 식을 땀이 났다.

  "왕의 결정에...반박하는 거냐?"

분노한 음성이 울렸다. 정우는 잔뜩 겁에 질려 변명하려 애썼다.

  "그, 그게 아니라...게임의 룰은 공평해야 하잖아요. 

  벌칙이 사형이면 당연 왕도 사형....그런데 그건 너무 살벌하니까..."

어쩐지 무례한 말을 한 것 같다고 생각한 정우는 등으로 식은땀이 흘렀다. 왕은 잠시 뭔가를 생각하는 듯 하더니 크게 선심 쓴다는 듯한 표정을 했다.

  "좋아. 네 말대로 룰은 공평해야지. 하지만 왕의 말을 번복할 순 없다.

  벌칙은 사형이다. 물론 그 벌칙은 내게도 적용된다."

주위에서 우와~하는 감탄사가 터졌다. 어떤 신하는 눈물까지 흘리며 "역시 정의로우신..." 어쩌고 하며 왕에 대한 찬사를 연발했다. 정우는 주위의 멍청이 군단들이 죄다 형의 얼굴이라는 게 참을 수 없어서 고개를 떨군 채 이마에 핏줄을 세우고 있었다.

  "자, 이제 게임을 시작하자."

왕이 거드름을 피우며 말했다. 

얼떨결에 게임을 하게 되었지만 왜 자신이 이 게임을 해야하는지 정우는 이해 할 수 없었다. 어찌됐든 게임에서 이기면 정우를 풀어준다는 조건이긴 한데 곤란하게도 게임이 끝났을 땐 왕과 정우, 둘 중 하나는 사형이다. 자신들의 왕을 죽일 리 없기에 아마도 죽는 쪽은 자신이 되는 게 아닌가 불안해하며 정우는 게임에 응하고 있었다.

  "백지로군."

왕이 꺼내놓은 쪽지엔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았다. 정우는 두근거리며 종이 한 장을 꺼냈고 그것도 역시 백지였다.

한 동안 서로 백지만 꺼내다가 명령이 적힌 쪽지를 집은 것은 정우쪽이 먼저였다.

  [노래 부르기]

--휘청.

잔뜩 긴장하던 정우는 이마에 땀이 흐르는걸 느꼈다. 정우의 쪽지가 테이블위에 놓여지고 쪽지의 내용을 본 신하들은 급히 부하들을 시켜 방안으로 이상한 기계를 날라왔다. 그리고 어느새 정우에겐 마이크가 쥐어져 있었다.

기계는 노래방 기계였다.

  "말도 안돼----!!!"

정우는 이 바보 같은 상황에 자신도 얼간이가 된 느낌이었다. 그러나 너무도 진지하게 "게임을 포기하겠습니까?"라고 묻는 신하들의 표정을 보곤 결국 자신의 18번 노래를 2절까지 부르고 말았다. 기계에서 팡파레가 울리고 신하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바, 바보 같아...'

부들부들 떨면서 정우는 게임을 이어갔다.

왕과 정우는 서로 백지도 뽑고, 무언가 적힌 쪽지들도 뽑았지만 종이에 써진 내용들이란게 [노래부르기] [춤추기] [성대모사] [한 발 들고 10번 뜀뛰기] [입에 양말물고 물구나무서기] 따위의 유치찬란한 것들 뿐이라 정우는 이 왕과 신하들이 실은 자신을 데리고 장난하는건 아닐까라고 진지하게 고민하게 시작했다. 게다가 양말을 입에 물고 물구나무를 선 형의 모습을 보는 건 차라리 고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지하게 이 유치한 놀이에 임하는 왕을 보며 정우는 한 숨을 내쉬곤 하는 것이다.

[탈의]

왕이 뽑은 쪽지에 적힌 내용이었다.

  "흠...탈의라면...겉옷만 벗어도 되겠지."

왕은 별것 아니라는 듯 거추장스러운 외투를 벗었다. 호화로운 보석이 반짝거리다가 곱게 접혀져 옆에 서있던 신하의 손에 넘겨졌다.

[탈의]

백지를 뽑은 정우의 다음차례인 왕의 쪽지에 적힌 내용이었다. 왕은 코웃음을 치더니 겉옷을 하나 벗었다. 장신구와 훈장으로 묵직하던 겉옷을 벗으니 왕의 차림은 좀더 편해 보였다.

[탈의]

정우가 뽑은 것은 또 백지. 세 번 연속 [탈의]쪽지를 뽑은 왕은 불쾌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조끼를 벗었다. 얇고 부드러운 블라우스 차림으로 완전히 평상복이 된 왕은 두툼한 겉옷을 입었을 때 보다 그 체구가 더 슬림해 보였다. 단지 그 슬림한 체구와 복장에 어울리지 않게 크고 화려한 왕관이 우스꽝스러웠다.

정우는 연속해서 백지를 뽑았고 왕은 연속해서 [탈의]라고 쓰여진 쪽지를 뽑았다.

당황한 것은 왕도 신하도 정우도 마찬가지였다. 왕과 신하들은 탈의를 해야 한다는 사실에 당황하고 정우는 연속해서 [탈의]명령이 적힌 쪽지가 나온다는 데에 당황했다. 

'이거 잘못해서 내가 걸리는 거 아냐?'

라는 불안한 생각에 빠져있는 동안 왕은 신발이며 양말, 왕관, 팔찌 등을 벗으며 참으로 째째하게 나신이 되는 것만은 막고 있었다. 그리고 바지와 셔츠만이 남았을 때 왕은 인상을 잔뜩 구기며 쪽지를 집어 들었다.

  "휴우..."

왕의 한숨이 낮게 깔렸다. 종이는 백지. 

정우는 불안해하며 유리병 속에 손을 넣었다.

[상대를 벗긴다.]

방안에 이상한 침묵이 흘렀다. 신하들은 서로 눈치를 보며 힐끔거렸고 간간히 "누가 저런 명령의 쪽지를 써 넣은 거요!"라는 목소리도 들려왔다. 왕은 잔뜩 불쾌한 표정을 짓더니 옆의 신하를 향해 입을 열었다.

  "이럴 경우 내가 저 아이에게 벗겨지는 걸 거부하면 어떻게 되는 거지?"

  "게임의 방해는 반칙에 해당하므로 패배하게 됩니다."

신하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왕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정우를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자아...어떡할텐가? 게임을 포기 하겠는가?"

  "그럴리가!"

게임을 포기하면 사형이다. 옷을 벗기는 것쯤 별 문제도 아니기 때문에 정우는 자리에서 일어나 왕의 앞에 무릎 꿇었다. 정우는 공손히 블라우스의 단추를 하나씩 풀기 시작했다.

마치 왕의 시중을 드는 아이가 옷을 갈아입히는 듯한 모습에 왕도 신하도 별 거부감은 들지 않았다. 거만하게 앉은 왕, 그 웃옷을 벗기는 시동. 특별한 위화감은 들지 않았기에 정우는 무사히 왕의 웃옷을 벗길 수 있었고 생각 외로 하얀 형의 신체에 자신도 모르게 침이 삼켜지는 걸 느꼈다. 

  "그럼 이제 내 차례군."

상반신 누드가 된 왕이 뽑은 종이는 백지였다. 

그리고 다음 차례인 정우가 뽑은 건 또 [상대를 벗긴다]는 명령이었다. 정우는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왕의 앞에 무릎 꿇었다. 가능한 공손히 하려고 노력하며 왕의 바지에 손을 댔지만 손끝이 조금씩 떨렸다. 왕도 바지까지 남에게 벗겨지는 게 불쾌했는지 줄곧 인상을  쓰고 있었다.

하얗고 가는 허리가 눈앞에 드러났다. 

그리고 부드럽게 뻗은 허벅지, 다리, 발목..

정우는 심장이 두근거리는걸 느끼며 가능한 왕의 하체...아니, 형의 하체를 보지 않으려고 애썼다.

  "흠...게임을 속행합니다."

속옷하나만 달랑 입은 왕의 모습은 더 이상 위엄이고 뭐고 없었다. 그런 차림으로 거드름을 피우는 것은 오히려 꼴같잖다는걸 아는지 왕도 침묵한 채 묵묵히 종이를 뽑아들었다.

다행히도 백지.

그리고 정우는 연속 세 번째 [상대를 벗긴다]의 뽑지를 뽑았다.

왕의 얼굴이 시뻘개졌다. 누드인 상태와 다름없는 지금도 불만인데 자신의 신하와 병사가 보는 앞에서 전신 누드가 되는 건 사양하고 싶었다.

  "폐...폐하..."

붉으락푸르락해지는 왕의 얼굴을 보며 신하들이 어쩔 줄 몰라 했다. 왕은 묵묵히 있었다. 정우는 머리를 조아리며 그 앞에 다가가 눈을 감고 왕의 한 장뿐인 속옷을 벗겨내었다. 벗겨지는 쪽도 벗기는 쪽도, 또 그걸 보고 있는 쪽도 민망했다. 물을 끼얹은 듯 조용한 방안은 왕이 쪽지를 뽑아 들면서 그 고요가 산산이 깨졌다.

  "이런 건 못해!!!"

왕이 분노하며 포효했다.

완전히 새빨개진 왕은 종이를 테이블위로 집어던지며 신하들을 잔뜩 째려보았고 신하들은 당황하며 쪽지의 내용을 읽어보았다.  

[엉덩이로 이름쓰기]

사실 유치원 수준의, 한 번 웃고 넘길 내용이었지만 전신 탈의한 상태에서의 엉덩이로 이름쓰기는 왕의 프라이드가 용서치 못했다. 그것은 단순히 옷을 죄다 벗고 있는 것과는 다르다. 왕 스스로가 그 체면을 바닥으로 떨어뜨려야 하는 황당한 요구였다. 옷을 입은 상태와 안 입은 상태에서의 엉덩이로 이름쓰기는 확실히 다른 것이다.

  "하, 하지만 폐하...그러면 사형..." 

신하가 울상을 지으며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왕은 입술을 지긋이 깨물며 멍청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정우를 노려보았다. 형에게 째림을 당한 정우는 가슴이 덜컹 내려앉은 느낌을 받았지만 이내 왕이 자리에서 일어나 나신의 뒷모습을 자신에게 보이자 당황하고 말았다. 

무엇하나 걸치지 않은 형의 몸은 새하얬다. 공부도 잘하지만 운동도 잘하는 정우의 형치고 너무 고운 나신이었다. 하얗고 가느다란 선의 형의 뒷모습을 망연히 주시하던 정우는 자신도 모르게 그 뽀얀 엉덩이에 시선이 갔다. 

왕은 뒷모습을 정우에게 보인 채 고개를 푹 숙이고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아직 아무 행동도 하지 않고 한동안 서 있던 왕은 낮게 중얼거렸다.

  "게임포기다. 내 목을 잘라라."

  "폐하-----!!!!"

순식간에 주위가 울음바다가 되었다. 어떤 신하는 폐하를 붙들고 눈물로 호소하고 있었고 어떤 신하는 소매로 눈물을 훔치며 한껏 정우를 노려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 얼굴들은 모두 정원형의 모습. 정우로선 익숙지 않은, 아니 평소로선 상상할 수없는 형의 얼굴을 보니 뭐라 말할 수 없는 기분이 되었다.

기운이 쭉 빠졌다.

정우로서도 목이 잘리는 형따윈 보고 싶지 않았다. 지금 통곡하고 있는 형의 얼굴을 보는 것만도 심장에 무리가 오는데 형의 머리가 떨어지는 걸 본다면 분명 정신이 어떻게 되어버릴 것 같다.

  "취소하면...안될까요?"

겁에 질린 정우의 목소리가 신하들의 시선을 집중 시켰다.

  "게임의 상대는 저잖아요. 

  이기든 지든 게임의 승패는 폐하와 저 사이의 문제니까...음...

  제가 인정만 한다면 폐하께 쪽지의 내용을 무효로 돌리고 

  다시 다른 쪽지를 뽑으실 수 있는 기회를 드리는 건......"

그 말에 왕의 얼굴이 환해지며 신하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신하들은 무언가 곰곰이 생각하더니 곧 한 신하가 입을 열었다.

  "한 번 꺼낸 쪽지의 명령은 반드시 지켜져야 합니다.

  실행하지 못 한자는 패배...만일 왕께서 이번 명령을 실행하지 않은 채 

  패배하지 않으시려면 게임 상대인 당신이 실행해야 합니다.

  그 대신 종이를 뽑는 순서는 바뀌는 거죠. 

  그러니까 [엉덩이로 이름쓰기]라는 쪽지는 당신이 뽑은 셈이 되는 겁니다."

신하가 어두운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럼 뭐...내가 대신하죠. 

  그런 장난 같은 거 어릴 적에 종종 했으니까..."

정우는 가볍게 말하며 벌떡 일어났다. 왕과 신하들의 얼굴에 환한 빛이 스쳐지나는 걸 놓치지 않고 본 정우는 씨익 웃으며 뒤돌았다.

실룩 실룩...

정우의 엉덩이가 익살스럽게 움직였다. 

어두워진 방안의 분위기를 바꿔 보고자 일부러 과장해서 엉덩이를 내밀며 장난치듯 실룩거렸다. 이름 석자를 공중에 써내려 가고서 정우는 "이제 됐죠?" 라는 말과 함께 다시 자리에 앉았다.

키득거리며 자신의 우스운 꼴에 다들 웃고 있을 거라는 정우의 예상과는 달리 신하도 왕도 조용했다. 그 얼굴들이 붉어져 있다고 생각 되는 건 분명 자신의 착각이라고 생각하며 정우는 왕에게 다음 차례를 재촉했다.

왕은 정우의 얼굴을 물끄러미 보더니 조금 얼굴을 붉혔다. 그리고 에헴-- 하고 헛기침을 한 후 조심스레 종이를 골랐다.

백지였다.

왠지 정우도 안도감을 느끼며 유리병에 손을 넣었다.

[상대가 원하는 곳에 키스한다.]

정우는 딱딱하게 굳은 채로 손에 들고 있던 걸 떨어뜨렸다. 과연 저 왕이 이런 걸 받아줄까...라는 불안감을 품으며 조심스레 형과 닮은 그 얼굴을 훔쳐보았지만 왕의 얼굴은 담담했다.

  "게임의 방해는 반칙. 반칙은 패배. 할 수 있다면 해보도록."

'하지만...원하는 곳이라니 어디?'

  

나체의 왕은 거만한 몸동작으로 자신의 오른 손을 들어 보였다. 나체인 상태에서 피우는 거드름도 그 효력이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정우는 정중하게 무릎을 꿇어 기사가 공주의 손등에 하듯 입을 맞췄다. 그 모습이 신하들의 맘에 들었는지 정우를 보는 눈들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상대가 원하는 곳에 키스한다.]

어찌 된 건지 왕도 같은 내용의 쪽지를 뽑았다.

정우는 멋쩍어 하며 자신의 이마를 가리켰다. 

중학교 2학년때부턴가 형은 정우에게 잘 자라고 이마에 입을 맞춰주었다. 그것도 고등학생이 되선 쪽팔린다고 안 해 주었지만 정우는 형이 이마에 해주던 뽀뽀가 매우 안심이 된다고 생각했었다.

왕의 표정이 우울해졌다.

그러나 곧 정우에게 다가와 머리를 몇 번 쓰다듬더니 이마에 쪽-하고 입을 맞추었다. 형이 아니라는 건 알지만 형과 똑 닮은 얼굴...게다가 나체의 차림으로 이마에 키스당하니까 예전과는 좀 다른 느낌이었다.

[상대의 몸에서 내가 원하는 곳에 키스한다.]

정우는 물끄러미 왕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언제부터였더라...저 턱 선이 부럽다고 느낀 것은...

가늘고 고운 선. 별로 여자처럼 생기지 않은 형이었지만 그 턱선 때문에 기생오라비 같다는 말을 듣는 것이 불만이라고 말하던 형이 생각났다.  

자신이 어느새 그 턱을 쓰다듬고 있다는 걸 깨달은 건 형의 까만 눈이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왕에게 무례한 행동을 한건 아닌가 놀라며 황급히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신하들의 표정에 변화는 없었다. 왠지 아까부터 신하들이 조용해졌다는 느낌이다.

정우는 왕의 왼쪽 뺨 아래 있는, 턱이라고 불리는 딱딱한 뼈에 지그시 입술을 눌렀다. 뭔가 그걸로는 성이 차지 않아 입술로 쓸듯이 턱을 더듬었고 나중엔 혀를 내밀어 할짝하고 핥아 보았다. 

흠칫하고 왕의 몸이 떨렸다.

정우는 후다다닥 소리를 내며 왕에게서 물러나 얼빠진 표정으로 왕의 얼굴과 신하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나...크게 잘못한거 아니지?'라고 속으로 되뇌이며 부산하게 주위의 눈치를 살피느라 정신없었다. 신하들은 고개를 숙인 채 아무 표정 없었고 나체의 왕만이 약간 얼떨떨한 표정으로 정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하...하...게임...계속하죠..."

엉성한 웃음으로 얼버무리며 정우는 자리에 앉았다.

왕은 말없이 쪽지를 뽑아들었다. 왠지 이 게임이 즐거워진 정우는 두근두근 기대를 하며 왕이 어서 종이를 테이블위에 올려놓기만을 기다렸다.

종이를 집어 올린 왕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또 뭔가 곤란한 것이 걸린 건가?'라고 생각한 정우는 왕이 아까와는 달리 난리도 치지 않고 심각한 얼굴로 신하들과 상의하자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왕이 건내준 쪽지를 본 신하들의 표정은 각양각색이었고 이번에야 말로 왕이 패배라는 얼굴로 울먹이는 자도 있었다. 그러나 의외로 왕의 얼굴은 침착했다.

하얀 종이쪽지가 테이블위에 올려졌다.

[자위]

  "에에에엑---!!!"

정우는 희한한 비명소리를 내질렀다. 왕은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었고 신하들은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안절부절 못하는 형이라니 중학교 이후 한번도 보지 못한 모습이지만 자위 하는 형은 더욱 상상이 안된다.

아니...어쩌면 은근히 기대하는지도...

하지만 아까 [엉덩이로 이름 쓰기]를 거부하던 왕의 모습을 생각해 볼때 여기서 왕은 게임을 포기할게 분명했다. 그렇다고 아까처럼 자신이 대신 들어줄만한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이 많은 사람 앞에서 자위라니? 생각만으로도 끔찍해 진다.

  "마, 말해두지만...이번 건 나...대신 못해줘요..."

굳은 의지를 보이려는 듯 얼굴에 인상을 쓰고 있는 정우를 보며 왕은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나도 네게서 거기까진 기대 안 해."

그렇게 말하던 왕은 주위의 신하들에게 뭔가 지시를 내렸다.

신하들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하나둘씩 자리를 빠져나갔고 뒤이어 벽을 지키고 있던 병사들도 방에서 빠져 나갔다.

방안엔 정우와 왕, 둘만 남게 되었다.

왕은 가만히 무언가를 생각하더니 힐끔 정우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 시선에 움찔해진 정우는 시선을 어디다 둬야 할지 모르다가 왕...아니 형이 취한 행동에 놀라 눈을 크게 떴다.

길고 새하얀 팔이 테이블 밑에서 꾸물럭거리고 있었다. 평온하던 형의 얼굴이 점점 일그러지고 낮은 한숨 소리도 들리는 듯했다.

'맙소사 정말 하는 거야?!!'

하반신은 테이블에 가려 굳이 보려고 하지 않는 한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아무리봐도 자신의 다리사이에 두 손을 넣고 있는 저 포즈라던가 묘하게 뒤틀리는 얼굴이라던가 하는 것은 형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뻔했다.

움찔거리는 형의 상체가, 그 표정이, 점점 색기를 머금어가는 것을 정우는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일정한 리듬으로 움직이는 육체, 이빨로 깨물고 있는 입술. 쾌락을 탐하는 눈. 게다가 방안을 꽉 채우는 형의 신음소리가 정우를 자극하고 있었다. 

남이 하는 건 처음 본다. 하물며 형이 하는 것은 더더욱 쇼크다. 

그래도 눈앞의 유혹적인 광경에 시선을 떼지 못하고 마음은 인정하기 싫지만 솔직하게 반응해 오는 자신의 육체에 놀라며 형의 행위를 끝까지 지켜보고 있었다.

  "......"

부들부들 떠는 몸이 왜 그리 자극적인지. 

정우는 자신의 몸이 달아오르는걸 애써 참으며, 일을 끝내고 피곤하다는 표정을 한 채 의자에 뻗어 있는 형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유약해 보이는 몸이다. 정우가 알기로 형은 절대 저렇게 나긋나긋한 몸매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 때문에 형의 모습을 한 왕은 마치 중성의 존재처럼 느껴졌다. 형의 모습이되 남자도 아닌, 무언가 신비한 생물체를 가까이에서 보는 느낌이 들었다.

감겨있던 왕의 눈이 가만히 떠졌다. 그리곤 잠시 도발하는 듯한 눈빛을 짓더니 이내 특유의 거드름을 피우며 정우에게 종이를 뽑을 것을 재촉했다.

불안함을 느끼며 정우가 뽑은 종이는 백지였다. 

그러나 이어서 왕이 뽑은 쪽지엔 [상대의 몸에서 내가 원하는 곳에 키스한다.]라고 쓰여 있었다. 

정우는 분명 왕의 그 거만함으로 보아 별것 아니 곳에 키스하리라고 생각했지만 왠지 요염하게 보이는 나신으로 자신에게 천천히 걸어오는 모습에 알 수 없는 위화감이 들었다.

왕이 무릎을 꿇었다.

정우는 당황했지만 개의치 않고 왕은 정우의 바지에 손을 댔다.

  "저, 저기..."

  "쪽지의 명령은 '내가 원하는 곳..'이라했어.

  게임의 방해는 반칙이다."

서늘한 음성이 귀를 때렸다. 가늘고 긴 손가락이 정우의 바지 지퍼를 내리고 속옷 속에서 기다란 물건을 꺼내었다.

  "아앗!!"

형의 입안에 자신의 것이 물려 있었다. 따듯하고 부드러운, 내부가 달아오른 그것을 자극하려고 혀를 굴렸다. 형은 정우가 바둥대며 자신의 머리를 치우려고 하자 입안에 힘을 주어 빨아 당겼고, 정우는 기묘한 감각에 깜짝 놀랐다.

  

  "히이이이이이~~~~~"

상상도 못한 자극에 의자에서 허리가 튕겼다. 왕은 키득대었고 정우는 어쩔 줄 몰라 양 손과 발을 허공에 휘젓고 있었다.

  "그냥...가만히 있어..이건 게임이니까...

  단순한 장난이라고 생각해. 어차피 네게 나쁠 거 없잖아?"

왕은 정우의 것을 입에 머금은 채 중얼거렸다. 그 목소리의 울림도 자극이 되어 경련을 일으킨 정우는 울상을 지으며 외쳤다.

  "하지만...하지만...하지만!!!

  형이...형이..."

형의 입술이 그런 더러운 것을 머금고 있다는 생각이 괴로운 거다. 동시에 형의 입이라서 더 자극이 되는 것도 사실.  

  "아아...아..."

머리끝까지 저려오는 쾌락을 느끼던 정우의 얼굴을 바라보며 왕은 씨익 웃었다. 입에 문 그 것의 끝을 살짝 자극하며 거칠게 주무르기를 반복하면 정우의 신체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절정을 향한다.

상스런 신음소리가 정우의 입에서 터져나왔다.

왕은 그 더러운 액체를 죄다 삼키 것 같았다.

  "왜 울어?"

아직 입가에 흰 액체를 묻힌 채 짓궂게 물어왔다. 정우는 두 팔로 얼굴을 가리며 형의 입속에 내버린 자신을 저주하고 있었다. 

왕은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지도 않은 채 테이블위에 걸터 앉았다.

사정후의 여운으로 잠시 몸에 힘이 빠진 정우는 가만히 왕을 올려보았다. 테이블위에 걸터앉아 한쪽다리를 흔들거리는 모습은 나체만 아니라면 굉장히 태평스러워 보였다. 왠지 분한 기분이 든 정우는 얼른 눈물을 훔치고 종이를 뽑았다.

[상대를 마음대로 한다.]

정우는 쪽지를 읽곤 고민에 빠졌다.

마음대로? 뭘? 어떻게?

정우는 가만히 테이블 위에 앉아 있는 왕을, 아니 형을 바라보았다.

전신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소년은 더 이상 깐깐하고 정확하고 실수하나 하지 않는 완벽한 자신의 형이 아니었다. 울기도 하고 흥분도 하며 바보 같은 면도 있는 평범한 소년이었다.  

  "맘대로라....대체 뭘 하라는 뜻인지..."

정우가 작게 중얼거렸다.

  "맘대로...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거야."

거만한 왕의 목소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풀죽은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왕은 테이블위에 앉아 한쪽다리를 끌어 모은 채 바닥만 바라보고 있었다. 정우는 가만히 왕에게로 다가가더니 툭 튀어나온 어깨에 손을 올렸다.

  "나는...어떻게 해야 되는지 모르겠어."

정우의 얼굴을 올려다보는 왕의 얼굴은 담담했다. 

형과 똑같은 그에게 뭘 어떻게 맘대로 하라는 건지 정우로선 알 수 없었다. 다만 아까부터 벌거벗고 있는 왕이 꽤 추워보였다.

왕의 등 뒤로 손을 뻗어 가만히 끌어안아 보았다.

부드러운 피부의 감촉이 옷 위로 느껴졌다. 추위에 단단해진 형의 유두가 얇은 반팔티 위로 느껴져 정우의 가슴을 간질이고 있었다. 그렇게 한동안 있었다고 생각했다.

--할짝.

혓바닥이 정우의 목을 간질였다.

왕은...아니, 형은 정우의 몸을 더 꼭 끌어안고 정우의 셔츠 안으로 손을 넣어 그 몸을 더듬고 있었다. 등을 쓸어내리고 가슴을 간질이며 자신의 뺨을 정우에게 부비고 있었다. 정우는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다.

  "거부하지 않는군."

형이 정우의 목덜미를 자근자근 깨물며 말했다.

  "으응..왠지 이렇게 될 것을 알고 있었던 것 같아."

가느다란 팔이 정우의 허리에 감겨왔다. 차가운 손바닥이 정우의 유두를 훑고 지나가 배를 어루만지며 허리를 지나 대퇴부로 뻗어 갔다. 정우는 테이블위로 눕혀졌고 그 위로 나신의 형이 올라왔다.

부드러운 입술이 포개져왔다. 어딘가 집 주인의 키스와 닮았다고 생각하며 정우는 자신도 그 키스에 응했다. 두 팔로 형의 머리를 끌어안고 그 혀를 더 깊숙이 받아들였다. 입술이 떨어지고 놀란 표정을 한건 형 쪽이었다.

  "싫지 않아?"

놀란 눈으로 정우를 바라보았다.

  "싫다고 해도 그만두지 않을 거잖아."

정우가 허공을 응시하며 말했다. 그리곤 작게 체념하듯 중얼거렸다.

  "모자장수 말대로...난...형하고라면 뭘 하든 괜찮으니까."

정우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그는 천천히 고개를 숙여 정우의 가슴팍에 묻었다. 까슬거리는 혀의 감각이 연한 살갗 위를 미끄러져 나갔다. 

정우는 여전히 허공을 응시하며 형이 주는 애무를 가만히 받고 있었다. 이젠 형이 이런 일을 할 리 없다는 생각은 뒤로 미뤄두기로 했다. 무엇보다 자신이 원하고 있었다.

형과 키스하고 싶다...그 몸을 만지고 싶다...

그러게 생각하니 뭐가 어찌되든 상관없었다. 그래서 지금은 왕이지만 형의 모습을 하고 있는 그의 팔을 낚아채 반대로 테이블 위에 뉘였다. 조금 거친 동작에 형은 낮은 신음을 내질렀지만 정우는 상관하지 않았다. 바지는 지퍼가 풀린 채 발목까지 흘러내렸지만 개의치 않았다. 

그리고 아까 맛봤던 형의 턱을 혀로 핥아 내려갔다.

왼쪽 귓불부터 시작해 천천히, 씹기도 하고 핥기도 하고, 쪽 소리가 나게 입을 부딪히기도 하며 언제나 부러워했던... 아니, 이제 와 생각해 보면 이렇게 하고 싶었는지도 모르지만...예쁜 턱 선을 맘껏 탐했다. 

쿡쿡하는 소리가 아래에서 들렸다.

  "이제야 본성을 드러내는군."

왕이 말했다. 그 말에 기분이 상한 정우가 인상을 찌푸렸다.

  "너희들이 이렇게 되게 만들었잖아."

볼멘 듯한 목소리에 형은 여전히 키득거리며 상체를 일으켰다. 그리고 혀로 정우의 몸을 핥았다. 정우도 형의 목덜미를 핥았다. 둘은 서로 끌어안으며 상대의 몸을 만지고 핥고 키스하며 질척한 신음을 흘렸다.

  "응...형...."

  "형이 아니라 폐하야..."

  "킥킥...그래 폐하...

  아니, 아랍인이라고 해야 하나? 아님 모자장수? 집주인? 대체 어느 쪽이야?"

  "지금은 폐하야."

  "그래, 폐하라고 해두지."

왕의 손이 정우의 노출된 엉덩이를 쓸어내렸다. 정우는 왕의 다른 쪽 팔을 입으로 더듬고 있었고 그 가슴을 문지르며 손바닥의 부드러운 감촉을 즐겼다.

  "근데 형...아니 폐하...원랜 나보다 더 크지 않았어?

  근육도 꽤 있었던 걸로 아는데 이건 완전 가슴만 없다 뿐이지 여자몸이잖아."

  "꿈이니까..."

  "아아...그래..."

그 한마디로 모든 의아함을 묻어버리며 정우는 더 이상 다른 생각하기를 포기했다. 서로를 더듬으며 한껏 열에 올랐다. 그러다가 정우는 왕의 손가락이 뒤의 구멍에 들어오자 심하게 경련했다. 모자장수에게 찢긴 고통의 감각이 다시 되살아나고 있었다.

  "모자장수녀석 심하게도 했군."

왕은 혀를 차며 미간을 찡그렸다. 

정우는 열에 들뜬 얼굴로 고통의 신음을 흘렸다. 가능한 다시 건드리지 말았으면 하는 부위다. 하지만 왕은 그곳이 맘에 든 듯 자꾸만 손가락으로 장난질을 친다.

결국 왕에게 넘어 갈 거라는 걸 정우 본인도 잘 알고 있다. 

어쨌든 형에게라면 어떤 상황에서든 약했으니까. 더욱이 지금 형의 몸을 탐하는 상황에서 끝까지 가는 건 오히려 정우가 원하는 바, 단지 아픈 게 싫을 뿐이다.

  "뭐 나는 모자장수가 아니니까."

형은 작게 중얼거리며 정우의 눈을 빤히 바라보았다.

  "정우야."

  "응?"

  "좋아해."

"뭐?"라고 되물을 틈도 주지 않고 형은 정우의 것을 입에 물었다. 이미 경험한 적이 있는 그 감각에 몸을 떨며 정우는 기대와 창피함으로 형을 내려다 보았다.

긴 속눈썹이 하얀 얼굴에 명암을 이루고 있었다.

  "으윽.."

입에 넣고 우물거리는 기묘한 감각에 정우는 허리를 비틀며 괴로워했다. 혀로 주위를 핥는 것까진 어떻게든 견딘다 해도 혀끝을 세워 요도를 긁듯이 갉작거리면 도저히 가만히 누워 있을 수가 없다. 허리가 경련을 일으키며 엉덩이가 들렸다. 길다란 손가락이 항문으로 들어오는 게 느껴졌지만 앞이 유린 되는 감각에 그런 거에 신경쓸 정신이 없었다.

항문을 타고 척추를 가로지르는 기묘한 느낌이 들었다.

형의 손가락의 움직임에 따라 흔들리는 자신의 엉덩이가 매우 우습다고 생각했지만 생각과는 달리 몸은 쾌락에 들떠 있었다. 형은 정우의 것을 입에 문채 살짝 웃더니 입을 움직이는 것을 쉬지 않으며 정우에게 들어가 있는 손가락을 움직이는 것도 멈추지 않았다. 

어느새 손가락이 두개.

내벽을 간지럽히듯 긁는 검지와 중지는 정우가 느끼는 곳을 찾아 쉼 없이 자극하고 있었다. 내벽을 건드리는가 싶더니 살짝 빠져 나가고, 나간다 싶으면 깊게 찔러 들어온다. 정우는 손가락이 출입하면서 손가락과 직장이 마찰하는 자극에 허리를 비틀며 신음을 흘렸고 형은 쉼 없이 혀와 손가락을 놀리고 있었다. 

앞과 뒤의 감각이 절정을 향해 간다.

머리속이 새하얘져서 아랫도리를 농락하는 입과 손길 밖에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다. 전신의 감각이 곤두서고  하체에 뻐근할 정도로 피가 몰린다.

  "하아앗...!!"

정우는 낯익은 감각에 온 몸을 떨며 상당량의 액체를 배출했다. 쾌감에 떨고 있는 그 몸을 형은 꼭 끌어안으며 절정의 여운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다시 정우의 어깨를 핥고 있었다.

정우는 온 몸에 힘을 뺀 채 형의 행동에 몸을 내맡겼다.

주위는 어느새 새하얀 공간이 되어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 공간 속에서 정우와 그의 형이 엉켜 있었다.

  "?"

전라로 누워 있는 정우의 눈에 까만 구두가 보였다.

구두위로 길게 뻗은 검은 바지가 보였고 시선을 좀더 위로 올린 정우는 검은 정장차림을 한 형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까만 옷의 사내는 물끄러미 정우와, 정우를 탐하고 있는 왕을 보고 있었다.

  "어어?"

당황한 정우는 자신을 핥고 있는 왕을 밀어 내려 했으나 그의 움직임이 너무 부드럽고 조심스러워 차마 거칠게 대하지는 못한 채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저기...형...아니, 폐하...누, 누가 있어..."

그 말에 힐끗하고 고개를 들어 까만 정장의 사내를 바라본 왕은 곧 무시하고 다시 정우의 몸에 열중했다.

  "저, 저기..."

어찌해야 될지 몰라 왕과 사내를 번갈아 가며 쳐다보는 정우에게 메마르고 지친 듯한 형의 목소리가 들렸다.

  "늦었어."

까만 옷의 사내는 왕을 바라보며 무언가 '늦었다'고 낮게 되뇌었다.

  "이제 되돌릴 수 없어."

왕이 대꾸했다. 

  "하지만... 조금 더 여유를 가졌어도 되잖아."

사내가 인상을 쓰며 왕을 노려보았다.

  "이미 벌어진 일이야."

그렇게 말한 왕 역시 사내를 노려보았다.

정우는 어리둥절했고 동시에 왕이 사라졌다. 

전라였을 자신은 어느새 옷이 제대로 입혀진 채 새하얀 공간에 망연히 주저 앉아있었다. 이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해 하며 정우는 눈 앞의 사내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까만 옷의 남자는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정우를 응시 하고 있었다. 그의 새까만 옷은 마치 상복처럼 보였다.

  "이래도 넌 괜찮은 건가?"

사내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뭐가요?"

  "형하고...이런 짓 하는 거..."

순간 정우는 얼굴을 붉히며 화를 냈다.

  "꾸, 꿈이잖아! 그리고 형이 아니야. 

  형 모습을 했을 뿐이지. 형은 저렇지 않아!"

  "어떤 게 네 형인데."

  "그야 똑똑하고 자상한..."

  "바보 같고 실수도 하고 잘 울기도 하는 사람이면 네 형이 아니라는 거야?"

  "그런건 아니지만 이제까지 형은 나한테 그런 모습 보인적 없는걸."

  "그건 네가 그런 모습을 보고 싶어하지 않았기 때문이잖아."

사내의 책망하는 듯한 말투에 정우는 발끈했다.

  "무슨 소리를 하고 싶은 거야?"

  "형에게 너무 기대 하지 마."

  "뭘?"

  "네 이상을 강요하지 마."

  "그런 적 없어."

  "이후에라도...형이 네 이상에 어긋나더라도 실망하고 그에게 등 돌리지마."

  "안 그래."

정우는 인상을 찌푸리며 강하게 말했다. 

까만 정장의 사내는 아랍인이, 집주인이, 모자장수가 정우에게 했던 질문들을 또 한번 되풀이하며 결국 그들이 하고 싶었던 말을 대신했다. 그러나 정우는 사내의 말의 의미를 모른채 괜한 신경질만 내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무슨 생각이 떠올랐는지 씨익 웃으며 사내에게로 다가갔다.

그리고 두 팔을 사내의 어깨위로 올려 목을 휘감았다.

형과 같은 얼굴이 놀라고 있었다.

  "너도 어차피 아까 그들처럼 이런걸 노리는 거지?

  맘대로 해봐. 대신 쓸데없는 소리로 형을 욕하면서 난 놀리려는 생각은 하지 마"

정우의 입술이 사내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당황한 사내는 탁-하고 강하게 정우의 손을 뿌리쳤다.

  "어?"

의외의 행동에 정우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정우의 손을 뿌리친 사내는 매서운 눈으로 정우를 노려보았지만 왠지 서글퍼 보였다.

  "어라?"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정우는 망연히 사내를 바라보았다. 사내는 그 까만 옷을 툭툭 털더니 옷매무새를 가다듬곤 메마른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이제 꿈에서 깨어날 시간이다."

어리둥절해 있는 정우를 뒤로 하고 사내는 앞으로 걸어 나갔다. 겨우 정신을 차린 정우는 당황하며 허겁지겁 사내를 따라 갔고 그 새하얗기만 하던 공간을 뛰어가던 정우는 눈 앞에 웬 문이 하나 있는걸 보았다.

하얀 공간위에 문이 둥둥 더 있는 느낌이라 왠지 현실감이 없었지만 그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는 정장의 사내의 행동에 정우는 얼떨결에 그 문안으로 뛰어들고 말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