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화 (4/7)

  깨어났을 땐 넓은 들판의 한가운데였다.

  반쯤 벗겨진 바지춤을 황급히 추스르고 일어난 정우는 주변을 살펴보았다.

아무리 봐도 아까의 그 숲은 보이지 않았고 그 아랍인도 없었다. 넓은 초록색들판만이 눈  앞에 질리도록 펼쳐져 있었다.

방금 전의 끔찍한 기억을 잊으려는 듯 고개를 휘휘 저은 정우는 대충 발길이 닿는 대로 걸어갔다.

  "휴..."

한숨이 새어 나왔다.

어쩌다가 자신이 이런 곳에서 헤매는 건지, 과연 이것이 현실인지, 그리고 꿈이라면 왜 빨리 깨지 않는 건지 괴로워하며 걸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그러고 보면 침대 밑에서 사람이 튀어 나왔다는 것부터가 잘못된 일이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꿈속?

거기 까지 생각하던 정우는 문득 눈앞에 이상한 모양의 집이 가로막고 있다는 걸 눈치 챘다. 마치 버섯 같이 생긴 그 집은 어렸을 때 보았던 만화 스머프의 집과 어딘지 모르게 닮아 있었다.

정우는 이 허허벌판에서 대화 할 수 있는 상대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반가운 표정이 되었고 자신의 이 엉뚱한 상황에 대해 반드시 물어 보리라는 다짐을 하며 노크를 했다.

  "실례합니다. 아무도 안 계세요?"

잠시 후 안에서 우당탕탕 하는 소리가 나더니 "나가요!" 하는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 목소리에 설마했지만 형과 똑같은 얼굴의 집주인이 문을 열고 나왔을 땐 이제 될 대로 되라는 기분이 되어 버렸다.

  "오랜만의 손님이네요. 무슨 일이죠?"

형의 얼굴을 한 집주인은 편한 면 티셔츠에 청바지 차림으로 그 옷은 정우가 가끔 빌려 입기도 했던 옷이었다. 옷까지 형의 것과 똑같은걸 차려 입고 있는 집주인은 정우의 형과 조금도 틀린 점이 없었다. 얼굴, 체형, 옷 스타일...  하지만 이 사람도 역시 아까의 아랍인 처럼, 침대 속에서 나왔던 까만 정장의 남자처럼, 정우를 모른 채 하고 있었다.

  "길을 잃었어요."

정우는 체념하듯 말을 이었다. 집주인은 곤란한 표정을 짓더니 곧 들어오라는 손짓을 했다.

  "집안이 좀 지저분하거든요...하하..."

지저분하다...형과는 어울리지 않는 단어였다. 하지만 정우가 발을 디뎌 놓은 작은 집안은 빈말로라도 "괜찮아요..." 라고 하기 힘든 풍경이었다. 공사라도 하고 있는 건지 대량의 목재가 정리되지 않은 채 굴러 다녔고 한 구석엔 무슨 실험도구 같은 것들이 잔뜩 놓여 있어 정체불명의 액체와 거품들을 뿜어내고 있었다. 다른 쪽 벽엔 알 수 없는 기구들이 난잡하게 어질러져 있어서 한쪽 구석의 침대라든가 서랍이라든가 하는 것들이 없었더라면 사람 사는 집이라고 생각하기 힘든 그런 곳이었다.

집주인은 어디선가 간이 의자를 들고 와 대충 깨끗한 곳에 자리를 잡고 정우를 앉게했다. 그러나 그 의자도 고장이 났는지 정우가 앉자마자 바닥에 폭삭 주저 앉고 말았고 집주인은 땀을 뻘뻘 흘리며 연신 사과를 했다.

  "이를 어쩌나...의자는 그것 뿐인데....

  죄송해요. 저쪽 침대에라도 앉으시겠어요? 푸, 푹신할거예요......"

허둥대는 집주인의 바보 같은 모습에 정우는 피식하고 웃을 수밖에 없었다. "괜찮아요" 라고 말하곤 침대로 가서 앉은 정우의 눈에 집주인이 집안을 걷다가 바닥을 구르고 있는 비이커에 발이 걸려 넘어지는 모습이 들어왔다.

---쿠당탕..

집주인에겐 미안하지만 정우는 터져나오는 웃음을 막을 수 없었다. 단정하고 냉철하던 형의 모습으로 저런 허둥대는 꼴이라니, 정우는 '이런 광경을 또 어디서볼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며 배를 움켜쥐며 가까스로 웃음을 참으려고 노력했다.

  "이런... 손님한테 이런 꼴을..."

집주인이 멋쩍게 웃어 보였다.

부스스 흐트러진 머리카락에 흘러내린 안경이 집주인을 어벙하게 보이게 했다. 그렇다는 것은 즉 형의 얼굴이 어벙하게 보인다는 것인데 정우는 그런 형의 모습도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하며 내심 즐거워하고 있었다.

  "형은 우리 형하고 참 많이 닮았네요."

집주인의 어벙함에 마음을 놓은 정우는 뜬금없이 형의 이야기를 꺼냈다.

  "형이 있나요?"

  "네."

부드럽게 정우의 말을 받는 집주인의 목소리나 말투는 형과 똑같았다. 물론 형이 정우에게 존댓말을 할 리는 없지만.

  "무척 엄해서 학교에선 무서워하는 친구들도 있지만 실은 아주 착해요.

  후배들한테는 꽤나 무섭게 구는 것 같지만 나한텐 아주 잘해줘요."

  "형이 좋은가 보군요."

  "네."

쑥스러운 듯 말했지만 정우의 얼굴은 밝았다. 평소에도 친구들에게 형에 대한 자랑을 종종 하는지라 "팔불출" 따위의 얼토당토 않는 별명으로 불리기 일쑤였지만 친구들이 놀리거나 말거나 정우는 형의 이야기만 나오면 반색을 하며 형의 편을 들곤했다.

  "형이 피곤하겠어요."

  "예?"

집주인의 걱정 어린 눈길에 정우는 의아해 하며 빤히 바라보았다. 

여전히 머리는 부스스한 채로 흘러내린 안경을 치켜 올리며 말하는 집주인은 평소의 형보다 부드럽고 편한 이미지였다. 게다가 그 얼굴에 씁쓸한 미소를 띠며 말하는 모습은 왠지 얼굴뿐아니라 분위기도 형과 닮아 있었다.

  "동생이 이렇게도 형을 동경하면 형의 부담도 크겠지요?

  언제나 동생 앞에선 긴장해야 하고 틈 없는 모습으로 

  동생의 기대에 부응해야 하는 형의 마음은 편치 않을 거예요."

  "무슨 소리예요? 형은 집에선 늘 편하게 지내요.

  학교에선 좀 무리한다 싶을 정도로 애들한테 차갑게 대하지만 

  나 한테는 언제나 편하게 대하는 걸요."

  "당신은 당신 앞에서 보여주는 형의 모습이 진짜라고 생각해요?

  학교 앞에서 아이들에게 대하는 형의 모습이 진짜일거란 생각은 안해봤나요?"

추궁을 하듯 물어 오는 집주인의 말에 정우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러다가 문득오늘 처음 본 사람...물론 얼굴은 형과 똑같았지만, 암튼 그런 사람이 자신과 형에 대해 멋대로 떠드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형이 우리 형에 대해 뭘 알아요?

  17년간 같이 살아온 나 보다 더 잘 안다는 듯이 말하지 말아요."

  "이런 17년간이나?

  당신의 형은 그 긴 세월동안 참 피곤했겠어요."

정우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부드럽다고 생각했던 집주인의 얼굴이 문득 날카로워지는 걸 느끼는 순간 집주인의입이 열리며 말을 이었다.

  "생각해 봐요. 

  당신의 형은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 당신에게 다정했나요?" 

그렇게 말하며 집주인은 침대 한 쪽에 걸쳐져 있는 작업용 앞치마를 둘러매었다.

  "어렸을 때 일 같은 건...기억 안나요..."

퉁퉁 부은 얼굴로 째려보는 정우의 얼굴을 보곤 집주인은 싱긋 웃었다. 그리곤 곧 곤란하다는 듯한 표정이 되어 한 숨을 쉬곤 중얼거리듯 입을 열었다.

  "으음...이런 일은 체질에 안 맞는데...

  할 수 없군요. 이것도 내 일이니..."

그렇게 중얼거린 집주인이 침대 귀퉁이에 손을 댔다고 정우가 생각한 순간 침대가 심하게 출렁였다. 그 바람에 정우는 침대 위에서 튕겨졌고 잠시 얼떨떨한 기분이 되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수갑이 한 손에 하나씩 채워져 침대 기둥에 각각 고정되어 있었다. 순식간에 대자로 뻗은 정우는 당황하며 그나마 자유로운 두 다리를 허공에 휘저었다.

"뭐하는 거야?!!"

정우의 외침을 무시하며 집주인은 구석에 쌓인 알 수 없는 기구들을 몇 개 주워 올려 작업용 앞치마의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예의 그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발버둥 치고 있는 정우에게로 다가왔다.

--퍽

정우의 발바닥이 형의 얼굴......아니, 집주인의 얼굴을 강타했다. 아방한 표정의집주인은 곧 헛기침을 하곤 정우의 두 다리를 꽉 붙들었다. 의외로 그 힘은 셌다.

  "너무 그렇게 날뛰면 다리를 밧줄로 묶어 버릴 겁니다."

  

정우는 약간 겁을 먹으며 힘껏 집주인을 째려보았다.

  "대체...이게 뭐하려는 짓이예요..."

집주인은 정우의 두 다리를 놓아 주곤 빙그레 웃었다. 이어 정우가 누워 있는 침대 귀퉁이에 살짝 앉고선 정우의 이마에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손으로 쓰다듬으며 부드럽게 말했다.

  "당신의 처지를 이해시키려는 겁니다.

   당신이 동경하고 있는 형의 부담감도 덜어줄 겸."

말을 마치고 집주인은 정우의 바지에 손을 대었다. 섬뜩한 느낌에 정우는 얼굴이 달아 오르며 힘껏 발로 집주인을 찼다. 정통으로 배를 채인 집주인은 우당탕하는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나가 떨어졌다. 형과 똑같은 모습의 남자가 자신의 발에 채여 바닥을 구르는 모습에 약간의 미안함이 들었지만 어쩔 수없다고 스스로를 납득 시켰다.

  "이런...부드러운 방법으론 안 되나요?

  전 폭력은 싫어합니다만..."

  "사람을 묶어 놓고 부드러운 방법은 무슨! 이거나 풀어!!"

대번에 말투가 반말로 바뀌며 정우는 온 몸을 뒤틀어 수갑에서 빠져나오려고 기를 썼다. 그 때문에 발버둥치는 손목이 수갑에 긁혀 피가 나고 멍이 들었다.

  "아..아...안되겠군요."

집주인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곤 이상한 액체를 내뿜고 있는 실험 도구쪽으로 갔다. 그리고 주사기를 꺼내더니 투명한 액체를 주사기 안에 담곤 정우에게로 천천히 걸어왔다. 주사바늘에서 맑은 액체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악!!"

정우의 발차기를 한 팔로 슬쩍 막아낸 집주인은 그대로 정우의 팔에 주사바늘을 꽂았다. 반팔 차림이라 소매를 걷을 필요도 없었고 주사 바늘은 살갗을 깊이 파고 들어가 액체를 혈관 속에 토해내고 있었다.

  "약간의 마취 성분이 들어있는 약입니다. 

  과격한 동작만 못할 뿐 움직이는데 큰 불편은 없죠.

  쾌감을 느끼는데도 지장 없으니 안심하세요."

  "대체 뭘 안심하라는 거야? 그게 말이 돼?!!"

  "너무 그렇게 노려보지 마세요. 전 폭력은 싫답니다.

  당신이 너무 날뛰면 곤란하다구요."

그렇게 말하고 집주인은 정우의 바지에 손을 대었다. 다시 한번 킥을 날리려는 정우였지만 마취가 되는 중인지 다리의 움직임은 부자연스러웠고 날뛰던 몸의 움직임도 둔해졌다. 집주인은 이제 안심이라는 듯 한 숨을 쉬곤 정우의 면바지를 간단히 벗겨내었다.

  "그만둬..."

정우가 짓씹듯 말을 내뱉었다. 그러나 그의 말을 무시하고 집주인은 주머니에서 뭔가를 부시럭대며 꺼내더니 정우의 속옷을 벗겨내어 무언가를 끼우고 있었다. 콘돔이었다. 

  "전 시트가 더러워지는 건 사양이니까요."

그것도 모자랐는지 정우의 엉덩이와 침대 시트 사이에 뭔가를 깔아 침대가 더러워지는 걸 확실히 방지하고 있었다. 정우는 집주인의 행동에 분노를 느끼며 팔다리에 비해 자유로운 입을 움직였다.

  "장난하지마. 갑자기 이게 뭐하는 짓이야?

  너의 그 변태취향은 딴 데 가서 알아보라구!"

하반신 누드가 되어 침대에 뻗어 있는 자신의 모습이 너무 한심하고 쪽팔려서 얼굴이 빨개졌지만 정작 이 상황의 원흉인 집주인은 태연한 얼굴로 수술용 장갑을 자신의 손에 끼웠다.

  "궁금한 게 있는데요.

  당신은 이 상황자체가 부끄러운 겁니까?

  아니면 형과 똑같은 모습의 나에게서 이런 일을 당해 부끄러운 겁니까?"

  "둘 다 싫은 거야!!!"

정우의 외침에 집주인은 부드럽게 웃었다.

  "당신은 당신의 형이 둘도 없이 선하고 올바른 사람이라고 생각하겠죠?"

집주인이 마취로 둔해진 정우의 다리를 벌렸다. 타인에게 국부를 노출시킨 정우는 얼굴이 폭발할듯 새빨개지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다.

  "시꺼!! 무슨 짓이야. 이거 안 놔!!!!" 

집주인의 장갑 낀 차가운 손이 정우의 그것을 움켜쥐었다. 벌린 다리를 오무리려고 애써 보았지만 그 행동은 너무 둔했다. 차가운 손의 감촉이 콘돔을 낀 정우의 그것을 주무르고 있었다.

  "당신은 형에 대해 너무 몰라요."

  집주인의 손이 계속 정우의 것을 자극하고 있었다. 정우는 고개를 흔들며 온갖 욕을 하고 있었지만 하반신의 직접적인 자극에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몸에 열이 오르고 있었다.

  "그만해...그만해!!!"

  "날 봐요. 당신의 형과 똑같이 생긴 날 봐요.

  당신에게 이런 짓을 하는 형을 눈앞에 두고도 당신은 계속 형을 신뢰할 수 있습니까?"

  "넌 형이 아냐!!"

  "하지만 똑같이 생겼잖아요. 얼굴도, 몸도, 목소리도 ... 

  눈을 뜨고 내 얼굴을 봐요. 그리고 내가 당신의 형이라고 생각해 봐요.

  이런 형을 당신은 용서 할 수 있나요?"

정우는 두 눈을 부릅뜨고 집주인을 노려보았다. 분명 놀리고 있을 거라 생각한 집주인의 표정이 의외로 안타까운데 대해 약간 의아해 했지만 그런 의구심은 곧 집주인의 다음 행동에 의해 날아가버렸다.

  "치웟-!!!!!!!!"

수술용 장갑을 낀 손가락이 항문의 내부로 스물스물 기어 들어오고 있었다. 무언가를 발랐는지 차갑고 끈적끈적한 것이 손가락과 함께 기어들어오고 있었고 그 거북함과 혐오감에 정우는 잘 움직이지 않는 몸을 발버둥쳤다.

  "싫은가요? 하지만 어쩌면 당신은 내가 형의 모습이어서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그렇게나 좋아하는 형이니까, 생긴 것만은 형이랑 꼭 닮은 나이니까 차라리 낫다고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닌가요?"

"웃기는 소리!"  

집주인의 말은 알 수가 없었다. 방금 전까진 그럭저럭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는데 왜 갑자기 이렇게 된 걸까. 분위기가 바뀐 것은 정우가 형의 이야기를 꺼내면서 시작되었다. 정우는 상냥하게 웃고 있는 집주인의 얼굴을 보며 이를 갈았다.

  "하고 싶은 말이 뭐야. 왜 나한테 이런 짓을 하는 거지?"

  "단지 당신이 갖고 있는 형에 대한 기대감을 버리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겁니다.

  그리고 형을 너무 믿지 마세요. 

  또 하나, 

  형을 향한 자신의 마음을 믿지 마세요."

정중한 얼굴과 말투와는 달리 그의 손가락은 음란한 짓으로 정우를 괴롭혔다. 정우는 자신의 뒤에서 꾸물거리는 손가락이 매우 신경에 거슬렸지만 그 보다 자신과 형을 이간질 시키려는 주인의 태도가 매우 불쾌했다.

  "아, 알았어. 아까 그 아랍인도 그렇고...

  그렇게 말하니까 형이 뭔가 나에게 그 속마음을 숨기고 있다는 의미로 들리는군.

  너희들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잘 알았으니까 그 손 좀 치워."

그 말을 마치자 손가락이 빠져나가는 걸 느꼈다.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는 정우에게 집주인이 조용하게 말했다.

  "아니오...당신은 아직 제대로 납득하지 않고 있어요."

  "무슨 소리야?"

  "당신은 당신에게 이런 짓을 하는 당신의 형을 신뢰 할 수 있습니까?"

집주인은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냈다. 얇고 둥근 막대기 같은 것을 꺼내더니 그 위에 무언가를 바르고 있었다. 누워있는 정우의 위치상 그 물건은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원인모를 불안감이 정우를 덮쳐왔다.

압박감이 신체의 내부로 들어오고 있었다.

정우는 눈을 크게 뜨고 차마 말을 못 이은 채 어버버 거리며 뒤가 불편한 듯 엉덩이를 꿈틀대어 허리를 피하고 있었다. 낯선 이물감의 불쾌함에 인상을 찡그릴 생각도 못한채 당황하고 있었다.

  "어때요? 아프진 않죠?

  처음일 당신을 위해서 제일 작은 걸로 해보았습니다만 마음에 드실런지."

  "그, 그딴 거 마, 마음에 들 리가 없잖아!! 

  빼---------!!!!!!!!!!"

정우의 절규에 곤란하다는 듯한 표정을 한 집주인은 정우의 안에 그 물건을 더 깊게 넣었다. 그리곤 장난이라도 치듯 빙글빙글 돌려보았다.

  "무,무...뭐 하는 거야!!"

  "저는 혀와 손은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기왕이면 이런 도구로라도 즐겁게 해드리고 싶습니다만 

  당신이 적응할지 문제로군요."

  "지금 상황자체가 적응하기 힘든 거야! 더럽게 무슨 짓이야 빼!!

  형은 이딴 짓 안 해!!!"

집주인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그리곤 한동안 아무런 말없이 정우의 뒤에 꽂은 막대기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살짝 빼보기도 하고 더 깊게 넣어 보기도 하며 정우의 거부감을 더욱 불러 일으키고 있었다.

  "으..."

  "여깁니까?"

귓가에 낮게 울리는 형의 목소리에 정우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반라로 누워 있는 자신의 몸 위로 겹치듯 가까이 하는 형의 얼굴에 정우는 당황하며 뒤로 느껴지는 낯선 감각에 몸을 떨었다.

  "그럼 실례."

집주인의 목소리와 동시에 내장안의 그것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낯설고 황당한 느낌에 정우의 입에선 험한 욕설이 튀어나왔지만 그 소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 신음 소리로 바뀌었다. 내장을 휘젓는 짜릿짜릿한 느낌이 미치도록 괴로웠고 견디기 힘들었다. 정우는 눈을 꼭 감고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그만두라고 외치고 있었다.

  "눈을 떠요."

하지만 눈을 뜨면 형과 같은 얼굴이 있다. 그 얼굴로 자신에게 이런 짓을 한다는 것이 믿고 싶지 않아 더욱 눈을 꼭 감고 있었다.

  "내가 당신의 형이라고 생각해 봐요. 

  그래도 당신은 형을 예전처럼 대할 수 있나요? 

  뭐가 두려워서 내 얼굴을 보지 않으려는 거예요?"

도발하는 집주인의 말에 정우는 자신도 모르게 눈을 뜨고 힘껏 노려보았다. 형의 얼굴이 바로 코 앞에서 부드러운 표정을 하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만둬...우리 형은 이런 변태 짓 하지 않아."

집주인이 막대기를 천천히 돌리는 것을 느끼며 정우는 괴로운 듯 겨우 말을 꺼내었다.

  "정우야...이런 형이 싫어?"

정우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시...끄러...비겁하게 아까 그 자식 같은 수법 따윌..."

울상이 된 채 노려보는 정우의 표정은 자칫 우스워 보이기도 했다. 창피함과 원망스러움이 쾌감과 합쳐져 묘한 얼굴을 이끌어 내고 있었다.

  "앗.."

진동이 더욱 세졌다. 그 기이한 막대기를 넣고 빼는 집주인의 행동은 조심스러웠으며 부드러웠다. 그 안타까운 느낌에 온 몸이 달아 오른 정우는 몸을 비틀며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한 술 더 떠 집주인은 형의 목소리로, 형의 말투로 정우를 자극 하고 있었다.

  "이래도...나를 형이라고 불러 줄 수 있어?"

따뜻한 목소리가, 말씨가 원망스러웠다. 정우는 어떤 상황이 되든 형에겐 약했다. 그것이 이런 엉뚱한 상황에서도 적용되어 정우는 눈물이 글썽해져 버렸다. 원래 잘 웃고 잘 우는 성격이었지만 동경하는 형의 모습으로 괴롭힘 당하는 건 견디기 힘들었다.

  "정우는 정말 잘 우는 구나..."

머리를 쓰다듬는 손은 언제나 느끼던 형의 손이었다. 그러나 항문을 유린하는 감각을 이끌어 내는 것도 형과 닮은 손이다. 정우는 뒤로 느낀다는 수치감에 어쩔 줄 몰랐지만 이내 들려오는 형의 목소리에 완전히 항복해 버렸다.

  "정우야...좋아해..."

  "하윽..."

낮은 신음이 새어나왔다. 

집주인의 바람대로 정우의 정액은 흘러내리지 않은 채 콘돔 안에 내뿜어졌고 시트는 더러워지지 않았다. 집주인은 눈을 감고 쾌감과 괴로움에 떠는 정우의 몸에서 그 기구의 진동을 멈추었다.

어느새 장갑은 벗었는지 부드러운 손의 감촉이 정우의 얼굴위로 느껴졌다.

  "당신은 형을 좋아하죠? 그래서 형을 자신의 내면에서 우상화시키고 있었죠.

  똑똑하고 친절하고 자상한 형. 그것이 당신 머릿속의 형의 이미지.

  하지만 그 이미지에 부담감을 가지고 당신 앞에서 늘 긴장해야 했던 형이 안됐군요. 뭐 곧 그 가면도 벗겨지겠지만요.

  어때요. 언젠간 드러날 형의 모습에 충격받기 전에 형의 모습을 한 저에게서 

  한번 더 즐거움을 맞는 것은?"

  "...시끄러. 이거나 빼."

아직 뒤에 꽂혀있는 막대기를 지칭하며 정우는 갈라진 목소리를 내었다.

집주인은 한 숨을 쉬며 기구와 콘돔을 빼냈고 깨끗한 물수건으로 정우의 사타구니를 닦아 마무리를 했다. 덤으로 속옷과 바지까지 제대로 입혀줘 이제 정우는 양 손목의 수갑만 빼면 정상적인 모습이 되었다.

  "이건...안 풀어?"

정우가 수갑 을 턱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난 당신과 혈투를 벌일 생각은 없으니까요.

  안심하세요. 이제 아무 짓도 안해요."

정우는 그런 그가 못미덥다는 듯 노려보았다.

  "왜 내게 이런 짓을 하는 거야?

  어떻게 내가 가는 곳마다 마주치는 사람들은 다 형의 얼굴을 하고 있는 거지?"

집주인은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그리고 작업용 앞치마를 벗어 침대 맡에 두고 누워있는 정우의 곁에 앉아 정우의 볼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이건 꿈이니까요."

  "꿈?"

  "꿈이 아니라면 이런 일이 가능하겠어요?"

  "하긴...그런 게 아닐까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너무한걸 형의 얼굴들을 한 채 내게 이런 짓을 하다니 이상하잖아?"

  "하지만 이건 당신의 꿈이잖아요. 어쨌건 이건 당신이 만들어낸 환상.

  그런걸 우리들에게 책임을 묻는다는 건 오히려 억울한데요."

  "바보같이! 내가 이런 상황을 원했다는 거야?!!"

정우가 새빨개져서 소리쳤다. 하지만 그 말에 집주인은 잔잔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좋아. 일단 그렇다치고...꿈이라면 어째서 난 깨지 않는 거지?

  에...꿈속에서 꿈이란 걸 알 수도 있는 건가....

  잠깐,

  아까 말한 우리들이란 건...?"

  "예에...당신이 봤던 아랍인이라든가 침대 밑에서 나온 까만 정장의 사내... 

...그리고 앞으로 당신이 만나게 될 사람들.."

서슴없이 앞날의 일에 대해 내비치는 집주인의 말에 정우는 식은땀이 흘렀다. 그리고 그 눈에 두려움을 담은 채 물었다.

  "대체...난 앞으로 무슨 일을 당하는 거야..."

정우는 미간을 찡그리며 집주인을 바라보았다. 그 표정이 재밌다는듯 미소를 지우지 않고 바라보던 집주인은 방글거리며 입을 열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기억나나요?"

  

  "에?"

  "예전에...당신과 형이 초등학생이었던 시절에, 좀 더 글을 빨리 깨우친 

  당신의 형이 더듬거리며 읽어준 최초의 동화책이었죠."

정우의 머릿속에 오랜된 추억이 떠올랐다. 그때만해도 형과 별로 사이좋지 않아서 서로 아웅다웅했지만 가끔씩 형이 과자를 양보해 준다거나 동화책을 읽어준다거나 하면 언제 싸웠냐는 듯 형의 옆에 꼭 붙어 있었다. 동화책을 읽어 줄때는 형의 옆에 드러누워서 형이 읽어주던 이야기를 머릿속에서 상상하며 잠들곤 했던 기억이 난다. 

생각해 보면 형이 자신에게 살갑게 대했던 게 그리 오래전부터의 일은 아니었던 것 같다. 초등학교 땐 여느 형제들처럼 거칠게 싸우기도 했지만 형이 중1이 될 때 쯤 갑자기 자신에게 냉담해진 적이 있었다. 한동안은 마치 남을 대하는 듯한 형의 태도에 매우 불만이 많은 정우였지만 시간이 지나자 언제 그랬냐는 듯 따듯해지고 자상해진 형에게 금방 마음이 풀려버렸었다. 그 후 부터는 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친하게 지내왔었다.

  "생각나나요?"

정우의 추억을 깨듯 집주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무 말 못하고 멍하니 바라보는 정우에게 집주인은 조용히 웃어보였다.

  "당신이 헤매고 있는 이곳. 왠지 어디선가 본 이미지 아닌가요?"

멍하니 기억을 더듬던 정우는 예전에 앨리스 이야기를 들으며 상상하던 풍경이 떠올랐다. 등장인물과 내용 전개방식은 달랐지만 넓은 홀 이라든가 숲 속이라든가 커다란 버섯이라든가 하는 것들은 자신이 생각하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풍경과 매우 닮아 있었다. 

  "마, 말도 안돼...

  그럼 난 앞으로도 티타임을 갖고 있는 미친 모자장수라든가 체셔고양이, 트럼프 병정들, 이상한 여왕...들을 만난다는 거야?"

  "글쎄...당신의 꿈을 내게 물어보면 어떡해요?"

집주인이 웃어보였다.

  "내 꿈이라지만 앞으로의 일을 내가 어떻게 알아?!! 

  오히려 당신이 더 많은 걸 알고 있는 것 같은데."

정우의 화난 목소리에 집주인은 짐짓 무안한 듯 헛기침을 하며 부드럽게 말했다.

  "그럼...한가지만...알려드릴게요."

'역시 나보다 더 잘 알잖아!!'라는 마음의 외침을 꾹꾹 눌러 담고 정우는 집주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집주인은 상냥하고 잔잔한 목소리로 조용히 충고했다. 

  "앞으로 당신의 꿈이 어떻게 될 진 모르지만...

  이것만은 조심해요. 모자장수를 만나면 절대 그에게 반항하지 마요.

  그의 가학심을 부추기지 마요.

  그는 미쳤어요. 

  나에게 한 것처럼 발로 차고 욕설을 내뱉었다간 당신은 어떤 창피한 꼴을 당하게  될지 몰라요.

  그가 갖고 있는 도구들은 분명 당신에게 쾌감을 주겠지만 그것들을 사용한다면 당신은 분명 수치스러워서 울어버릴 거예요.

  당신에게 매저키스트적인 취향이 있다면 모르지만...아니, 있다해도 아직 그런데  익숙하지 않은 당신에게 모자장수의 놀이법은 쇼크일테니...

  그러니까 그를 만나면 둘 중 하나예요. 

  도망치던지, 그가 시키는대로 하던지."

꽤 많은 말들을 쏟아내는 집주인의 얼굴은 여전히 미소를 지우지 않고 있었다. 조금은 씁쓸한 느낌이 배어 있는 그 미소는 결코 놀린다거나 하는 의미는 없었지만 워낙 내용이 어이없던지라 정우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다가 이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말을 꺼냈다.

  "이게 내 꿈이라면...내가 원한다면 그를 만나지 않아도 되는 거 아냐?"

  "꿈속에서 이게 꿈이라는 걸 알아챘다고 해서 꿈의 방향을 본인의 의지대로 

  하는 경우는 드물잖아요. 하물며 지금 당신의 꿈은......"

무언가를 말하려다 말을 멈춘 집주인은 가만히 정우를 바라보았다. 그리곤 손을 뻗어 부드럽게 정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버릇까지도 형과 닮았다는 생각에 정우는 서글퍼지는 것을 억누를 수 없었다. 이렇게도 착한 형이, 형과 닮은 이 집주인이 아까 자신에게 그런 짓을 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난 혀는 사용하지 않는다는 주의지만..."

집주인의 눈이 부드럽게 휘어지며 낮게 중얼거렸다. 한 숨이 얼굴에 느껴진다고 생각한 순간 따뜻한 입술이 정우의 입에 닿았다.

정우는 눈을 동그랗게 떴지만 저항하지 않은채 그냥 가만히 있었다.

매끄럽고 물컹한 혀가 입안으로 들어왔을 때도 그냥 가만히 있었다.

정원 형이라면 분명 이런 식으로 키스할 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집주인의 키스는 형의 이미지와 닮아 있었다. 자상하고 따듯하고 상대를 배려하는 키스에 정우는 눈을 감아버렸다.

왜 자신이 아무런 저항을 하지 않았는지 자신도 몰랐다. 다만 여기는 꿈이니까...라는 말로 깊이 생각하는걸 포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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