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화 (2/7)

한 없이 떨어질것만 같던 정우는 떨어지는 속도가 줄어들며 자신이 어딘가에 착지했다는 것을 알았다. 아까만 해도 새까맣던 어둠은 온데간데없고 어느 호텔 복도인 듯한 화려한 홀 안에 자신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붉은 카펫이 넓은 복도에 길게 깔려 있었고 복도의 양 옆엔 수많은 문들이 있었다. 정우는 이 엉뚱한 상황에 아리송해 하며 무심코 벽에 붙어 있는 문들 중 하나를 열어 보았다.

  "앙~~아아~~~아앙~~~"

느닷없이 교성이 들려왔다.

채 문을 닫을 생각도 못한 채 굳어버린 정우는 자신의 눈을 의심해야 했다.

근육질의 한 사내가 자기또래의 소년의 등 뒤로 올라타 마치 짐승의 교미를 하는 듯한 자세로 허리를 움직이고 있었다. 그 움직임에 맞춰 소년은 교성을 내질렀고 간간히 근육질 사내의 거친 숨소리도 들려오고 있었다. 방금 전만해도 고요했던 홀 안이 정우가 방문을 여는 순간 교태스런 신음소리로 가득 차고 있었다.

정우는 새빨개진 얼굴로 두 눈을 감은 채 조용히 그 문을 닫았다.

  "후아아....."

그리곤 바닥에 주저 앉아버렸다.

생전 처음 보는 광경에 두 다리가 풀려버렸다.

정신적 쇼크를 견디며 정우는 비틀비틀 다시 일어나 걷기 시작했다. 비틀거리는 손을 지탱하기 위해 기댄 벽엔 또 문이 있었고 정우는 호기심 반 두려움 반으로 그 문을 열어보았다.

---짝

매서운 채찍소리가 섬뜩했다.

가죽재질의 야한 옷을 입은 미녀 세 명이 한 남자를 유린하고 있었다. 

뜻하잖은 미녀의 등장에 정우는 호기심을 보이며 좀 더 문을 열어 보았으나 이내 방 안의 험악한 분위기에 질려 버렸다. 미녀 세 명의 야한 옷차림이 눈요기가 될 법도 했지만 주위에 널려 있는 처음 보는 도구들이 스산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정우가 보기엔 고문도구 같았고 가운데 묶여 있는 남자는 매우 고통스러워 보였다. 채찍이 휘둘러 질 때마다 살갗이 찢어지는 파열음이 날카로웠고 찢어진 살 위로 피가 튀었다. 벌거벗은 남자는 제대로 된 저항 한 번 하지 않고 그 채찍질을 고스란히 받아들이고 있었다. 정우는 무서워져서 얼른 그 문을 닫았다.

더 이상 이 홀 안에 있기가 싫었다. 이런데서 서성이다가 자신도 저 방 안으로 들어가게 되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되자 정우의 걸음이 빨라졌다. 그러나 홀의 끝은 막다른 곳이었고 그 곳에도 역시 문이 있었다. 

넓은 홀 안에는 정우뿐이었다. 

혹시 밖으로 나가는 문은 없는 것이 아닐까 불안한 마음을 겨우 억누르며 정우는 울상이 된 채로 막다른 벽에 붙어 있는 문을 살그머니 열어보았다. 이 문이 밖으로 나가는 문이기를 바라면서.

  "힉.."

정우는 낮은 신음성을 질렀다.

문 안의 방은 마치 유치원이라도 온 듯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었지만 방안에서 벌어지는 괴이한 행각은 정우의 도덕관념으로 이해, 아니 용서가 되지 않는 것들이었다. 대여섯 명의 유치원 남자아이들이 서로의 몸을 마치 어른들의 섹스처럼 탐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재빨리 문을 닫고 긴장으로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정우는 호흡을 골랐다. 그리고 울상을 하며 자신이 걸어온 홀의 반대편 길을 향해 걸어갔다.

어찌됐든 빨리 이 곳에서 빠져나가는 게 급했다. 저 수많은 문들 중에 밖으로 통하는 길이 반드시 있을 거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정우는 길디 긴 홀을 서성이며 맘 내키는대로 방문을 열었다, 닫았다 하고 있었다.

어느 방이든 정우의 비위에는 맞지 않는 것들이었다. 죄다 포르노 비디오를 연상할만한 장면에 정상적인 모습은 하나도 없었다. 차라리 남자끼리의 1:1섹스가 그나마 나은 편이다. 3P나 수간, 쇼타, 로리, 감금, SM등으로 정우의 머리 속은 터져버릴 지경이었다. 울고 싶어진 기분이 된 정우는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더 이상 문을 열어보기도 지쳤을 뿐더러 이젠 호기심이고 뭐고 두려움부터 앞선다.

괴로운 기분으로 한숨을 쉬던 정우에게 이상한 문이 눈에 띄었다.

그 문은 다른 문보다 크기도 폭도 절반이나 작아서 문을 연다 해도 겨우 한 사람이 드나들만한 크기였다. 정우정도의 몸집이라면 허리를 구부려서라도 들어가겠지만 뚱뚱하거나 덩치 큰 사람이라면 아예 들락거리는 게 불가능해 보였다.

혹시나 하는 기대감에 문을 살짝 밀어 보았다.

작은 문틈으로 초록빛 풀밭이 보였고 이따금 지저귀는 새소리와 향긋한 풀내음이 홀 안으로 새어 들어왔다. 정우는 감동의 눈물을 뿌리며 그 좁은 문을 비집고 끔찍했던 홀에서 빠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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