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햇살이 창문을 넘어와 침대 위에 쏟아지고 있었다.
침대에서 벽에 등을 기댄 채 편안히 앉아 있는 소년은 이따금 흘러내리는 안경을 치켜 올리며 책을 읽는데 열중하고 있었다. 책을 읽는 소년의 발치엔 그 두 다리를 베개 삼아 드러 누워 졸린 듯 하품을 하는 또 다른 소년이 있었다.
토요일의 오후는 한가로웠고 침대는 푹신했다.
형의 다리를 베고 누워 있던 정우는 두 눈을 꿈벅 거리다가 툭-하는 소리에 깜짝 놀라 소리의 근원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책을 읽는데 열중하느라 조용하던 형의 두 눈은 감겨 있었고 침대위로 늘어뜨린 오른손엔 읽다만 책이 들려 있었다. 아까의 '툭' 하는 소리는 형이 졸다가 책을 떨어뜨린 소리였나 보다. 살짝 입까지 벌린 한가한 모습에 정우는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 언제나 빈틈없던 형이 이런 무방비한 상태로, 그것도 책을 읽다가 잠들어 버린다니 이것도 재미있는 광경이다. 왠지 즐거워진 정우는 형의 두 다리를 베고 잠들어 있는 형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형제인데도 자신과 전혀 닮지 않은 깔끔한 얼굴이 왠지 분하다.
턱 선이 갸름해서 샤프한 인상을 주는 것도, 안경이 무지하게 잘 어울린다는 점도 정우에겐 질투와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얼굴뿐이면 그러려니 하겠지만 우등생으로 보이는 외모에 걸맞게 실제로도 우등생인 형이 자랑스러우면서도 동시에 얄미웠다. 정우 본인도 매우 얌전하게 생긴 외모라서 가만히만 있으면 모범생으로 보이겠지만 분하게도 성적은 바닥이라 형과 비교되기 일쑤. 형제가 얌전하게 생겼다는 점은 닮아 있지만 형이 우등생 타입으로 생겼다면 동생은 왕따 타입으로 생겼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다.
이래저래 불만인 정우였지만 형을 미워할 순 없었다.
형은 자신에게 가족이었고, 정우의 부모님도 그런 둘을 비교하며 차별하시지 않으신다. 언제나 자신에게만은 관대하고 자상한 형은 질투의 대상이라기 보단 우상에 가까웠다.
따뜻한 날씨는 졸음을 부추기고 있었다.
만날 보는 얼굴이 이제와 새삼 특이할 점은 없으므로 정우는 곧 형의 얼굴에서 관심을 끊고 편안히 팔 다리를 늘어뜨린 채 잠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아니, 빠져 들어가려 했다. 침대 밑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나기 전까지는.
침대 밑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날 리 없으므로 정우는 당황했다. 더구나 침대 밑에서 불쑥 사람의 그림자가 기어 나왔을 땐 비명이라도 지를 뻔 했다.
침대 속에서 나온 사람은 천천히 몸을 일으키더니 몸에 뭍은 먼지를 툭툭 털어내었다. 정우를 향해 등을 지고 있는 그 자는 새카만 정장을 입고 있었는데 그 뒷모습이 왠지 낯설지 않았다.
남자는 먼지를 털어내고 손목시계를 보더니 낮게 중얼 거렸다.
"늦었군."
매우 귀에 익은 목소리였다.
차마 말을 걸어보진 못하고 대신 사내의 얼굴을 보기 위해 조심스럽게 몸을 움직였다. 그러자 정우의 기척을 눈치 챈 사내가 홱-하니 고개를 돌렸고 둘은 눈이 마주쳤다.
정우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입을 벌린 채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곤 앉아서 자고 있는 형과 사내의 얼굴을 번갈아 보더니 경악스러움을 한껏 담은 얼굴로 그 자리에 굳어 있었다. 반면 사내는 그런 정우가 우습다는 듯 내려다보더니 다시 손목시계를 보며 화가 난 듯 인상을 찌푸렸다. 또 한번 늦었다고 중얼거리며 사내는 방문을 열고 나갔다.
사내의 얼굴은 형의 얼굴과 닮아 있었다.
아니, 목소리도 체형도 똑같았다.
정우는 다시 한번 자고 있는 형을 확인한 후 형을 닮은 사내를 쫓아 황급히 문을 열고 현관까지 달려 나갔다. 막 현관문을 나서는 사내의 뒷모습이 눈에 잡혔다. 현관문이 닫히려던 찰나 정우는 문을 박차고 뛰어나가며 소리 질렀다.
"잠깐만요--!!"
이내 그 외침은 비명으로 바뀌었다.
현관문 밖은 암흑으로 뒤덮인 허공이었고 자신은 그 허공의 아래로, 아래로, 떨어지고 있는 중이었다. 떨어지는 속도는 매우 느렸지만 이 기묘한 경험에 정우는 당황하며 발밑에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새카만 구멍을 보지 않기 위해 겁에 질린 얼굴로 눈과 귀를 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