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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장 (16/16)

16장

어둠이 완전히 가라앉은 시각이다. 이 시간엔 낮이었으면 들리지도 않을 희미한 소음까지 낯설게 다가온다.

얕게 눈을 뜬 지훈은 눈동자만 돌려 창문을 쳐다봤다. 달빛이 창문으로 어스름히 들어와 병실 내부를 일부 비추었다. 빛이라는 단어를 붙여봤자 달빛이다. 병실 내부를 비추어도 어둠에서 덜 어두운 부분을 만들 뿐이다. 밝으나 어두우나 같은 어둠이라는 건 변함없다.

창가에 놓인 가습기는 잔잔히 돌아가고 있었다. 희뿌연 수증기가 나와 공중에서 사라지는 걸 멍하게 보고 있노라니 담배 연기가 연상됐다.

“······담배······”

조그맣게 중얼거려봤다. 잠결인데다 목 상태 탓에 잔뜩 쉰 쇳소리가 나와 더 말하기를 그만뒀다. 사흘 전 의식을 회복했고, 죽기 직전까지 졸린 목 상태 때문에 미음만 겨우 넘길 수 있었다. 그조차도 한 입을 다 못 삼키고 물렸다. 정확히는 안 삼키고 거부했다. 넘겨도 속이 받아 내지 못할 것 같았다.

그래도 사흘이 흐르는 동안 목은 제법 나았다. 졸렸던 목은 시간이 지나면 완치되겠지만, 쑤셔진 마음은 완치되지 못할 거다.

눈을 길게 감았다 떴다. 계속 누워만 있어서 그런지, 의식을 회복하고 몇 밤 보내지도 않았건만 자꾸만 눈이 떠졌다. 낮에 수면유도제를 사용해보겠냐는 간호사의 제안을 승낙할 걸 그랬다. 이 몸뚱이에 넣어봤자 뭐하겠냐는 자조적인 생각이 불면증을 낳았다.

“잠이 안 와?”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조금 돌렸다. 벽 끝, 병실 문 옆에 있는 작은 소파에 한 남자가 앉아있었다. 달빛이 맥없이 그의 구두와 바짓단만 비추고 말았다. 저거 봐라, 빛이라도 달빛일 뿐이라니까. 지훈이 생각했다.

내가 깬 걸 언제 알았을까. 담배라고 중얼거렸을 때부터? 하지만 그건 제대로 된 소리로 나오지 못했다. 잔뜩 쉰 쇳소리로 새어 나오다 말아 말을 뱉은 저조차 거의 들리지 않았다.

계속 지켜보고 있었던 건가. 이 밤에, 불도 안 켜고.

저도 모르게 웃음기를 머금었다. 대부업체 대표이사라는 놈이 밤에 잠도 안 자고 이러면 낮에는 어떻게 하려고. 영업소도 잔뜩 둔 놈이 팔자도 좋다.

“미친, 일은 언제 하려고.”

웃으며 한 말은 당연히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목 상태도 상태지만 막 잠이 깬 후라 쇳소리로 속삭이듯이 나왔다. 들으라고 한 말도 아니고, 혼잣말로 중얼거린 건데 박승혁은 갑자기 벌떡 일어나 다가갔다. 지훈이 깜짝 놀라 카테터 꽂은 손을 저었다.

“아니, 아니······”

“뭐라고 했어.”

침대에 닿을 듯이 가까이 다가와 내려다보는 몸이 새삼 거대해 보인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봐서 그럴 것이다.

“응?”

정말 별말이 아니라 가만히 있으니 볼을 쓰다듬는다. 넓은 손이 볼과 머리카락을 한 번에 쓸었다. 붕대를 감고 군데군데 굳은살 박인 손바닥이라 볼에 도드라진 감각이 전해지는데, 잠이 올 것처럼 부드러운 손길이었다. 붕대 감은 거야 사흘 전, 막 깨어났을 때 박승혁이 병실에 와서 알고 있다. 그때는 붕대를 더 두껍게 감고 있었다. 

감은 이유는 명준에게 들었다. 듣고도 경찰로서 사람을 폭행하면 어떡하느냐는 책망 대신 모른 척하는 자신이 치졸하게 여겨졌다. 분명 그 안에는 대신 응징해줘서 나쁘진 않다는 솔직한 심정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방금 내뱉은 말이 별말 아니라는 건 박승혁도 알고 있다. 그냥 목소리가 듣고 싶은 거다. 저를 쳐다보는 눈빛을 보고 싶은 거다. 가라앉은 분위기에서 그걸 느낀 지훈은 얼굴을 붉혔다. 불이 꺼져 있어 다행이다.

“언제······”

“응?”

“언제, 왔어.”

얼굴에 닿도록 숙여 댄 귀에 또박또박 말하자 박승혁이 알아들은 티를 냈다. 고개를 들며 침대 옆 간이의자에 앉았다.

“열한 시쯤 도착했어. 일 다 끝내고.”

늦게 퇴근했다. 아마 일이 많거나, 일이 밀렸거나, 영업소를 도느라 늦었겠지. 양복을 입은 걸로 보아 집에 들렀다 온 건 아닌 듯하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무슨 요일이지.

어둠에 익숙한 눈이 서로의 이목구비를 읽어냈다. 입을 뻐끔거리자 박승혁이 바로 얼굴을 숙였다. 한 번 목을 가다듬고 말했다. 조금 더 또렷한 쇳소리가 나왔다.

“무슨 요일.”

“오늘? 수요일.”

수요일이면 특별한 일정이 없는 한 영업소를 도는 날이다. 같이 지내며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입을 벌려 ‘아’하자 박승혁이 소리 없이 미소 지었다. 길게 올라가는 입꼬리가 어둠 속에서도 보였다.

“어. 영업소 돌고 왔지.”

지훈도 피식 웃었다. 대화가 이어지고 있는 게 신기했다. 그만큼 꽤 같이 지냈다는 게 실감 났다. 호수까지 같은 이 병실에서 박승혁과 몸을 부딪치고 손깍지를 끼고 겨우 정의 내린 감정을 속삭였었다. 그게 벌써 작년이다.

그러고 보니 또 이 망할 병원에 입원했네. 하아, 한숨이 나왔다.

“왜 한숨 쉬어.”

“그냥.”

또 입을 뻐끔거리자 고개를 숙인다. 지훈은 구태여 ‘그냥’ 두 음절을 다시 말하지 않고 대신 노는 손을 들었다. 저를 향해 한껏 숙인 머리 위를 쓰다듬자, 그대로 가슴팍에 옆얼굴을 붙였다. 가슴에 무게가 느껴졌다.

“아직 말하긴 힘든가 보네.”

“말이라고.”

이번엔 한 번에 알아들은 듯하다. 웃는 걸 보면. 작게 웃을 때마다 가슴팍에 닿은 머리가 일렁이는 게 느껴졌다. 몸집이 커서 그런지 머리도 무게가 꽤 나간다.

가슴팍에 옆얼굴을 대고 누운 박승혁의 귓가에 일정한 속도로 뛰는 심장 소리가 들렸다. 살아 있다. 살아서 심장이 뛰고, 숨을 들이마시고 내쉴 때마다 얕게 오르내린다. 온종일 일하느라 쌓였던 여독이 풀어지고 나른해졌다. 심장 소리에 맞추어 숨을 천천히 내쉬었다.

박승혁은 머리를 비볐다. 개가 자기 몸집 모르고 어리광부리는 것 같아 무거우면서도 싫진 않았다. 머리카락 사이에 손가락을 넣어 만지작거렸다.

맞다. 오해해서 미안하다고 말해야 하는데.

“맞······”

“아.”

동시에 입을 벌린 두 사람이 말을 멈췄다. 지훈이 말했다.

“먼저 해.”

“목 아프니까 그냥 듣고만 있어.”

잠이 좀 더 깨니 목에서 느껴지던 칼칼함도 줄어들었다. 하지만 아닌 척 고개를 끄덕였다.

“이지균은 회복되는 대로 정신병동에 처넣을지, 아니면 네가 명예훼손죄랑 허위사실유포죄로 고소하고 죗값 치르게 한 다음에 처넣을지 고민 중이야. 네가 원하는 대로 해. 어느 쪽이든 정신병동에 처넣어서 죽을 때까지 못 나오게 할 거다. 죽이는 건 네가 원하지 않을 거니까.”

“······입원비는.”

“신경 쓰지 마. 내가 처넣겠다고 결정한 거니까.”

“······”

“연 끊었다고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으니까 여기까지 왔어. 난 솔직히 네가 뭐라도 했으면 좋겠다.”

사흘 전, 깨어났을 때 그동안 정리되고 진행된 사항에 대해서는 명준에게 들어 어느 정도 알고 있다. 자신과 함께 이 병원에 입원하고, 수술받은 지균은 ‘최대한 빠른 회복을 할 시’를 기준으로 전치 6주가 나왔다. 경찰에는 호기심에 폐건물에 들어갔다가 묻지 마 폭행을 당했다, 누가 자신을 때렸는지 모르겠다고 진술했다 한다.

어떻게 그를 구워삶은 지 정확히는 모르나 짐작은 간다. 무료 치료에 백가연 측으로부터 보호해주는 대신 이렇게 진술하라고 했을 거고, 언제 끌려가 응징당할지 모르는 지균은 연신 감사하다고 숙이지 못하는 머리를 조아렸겠지. 정신병동에 처넣어질 미래는 당연히 모르고 있을 거고.

지훈이 입원한 사유는 이미 그가 감금된 시점부터 제출된 병가 사유를 연장하는 것으로 했다. 지균에게 살인 미수를 물어도 됐으나 그랬다가는 언론만 시끄러워진다. 서에 제출된 서류로는 병원에 입원해 있어야 할 양반이 폐건물까지 가서 지균과 단둘이 만났다는 것부터가 의심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사실상 완전히 끊은 건 아니었잖아. 그딴 연락을 왜 받고 있냐.”

“무슨 연락.”

“네 어머니.”

“······”

별실에서 빠져나갈 때, 핸드폰은 명패가 세워진 박승혁 자리의 서랍에서 발견했다. 자기 핸드폰이야 진작에 뒤질 수 있는 건 다 뒤졌을 거라고 짐작해 놀라지 않았다. 당연히 어머니가 보낸 저주 카톡도 봤을 거다. 할 말이 없어 입술만 오므렸다.

“동생도 어제부로 미행 풀었다. 해코지 안 했으니까 의심하지 말고.”

응? 지훈이 눈을 깜박였다.

동생을 미행한 건 자신더러 허튼짓하지 말라는 협박의 의미도 있었지만, 백가연이 혹여나 타깃으로 삼을까 봐 보호한 명목도 없지 않다. 지균이 예전부터 백가연에게 붙어 그쪽 끄나풀들과 어울렸다는 걸 알아챈 후엔 막냇동생 걱정도 있었다.

하지만 명준이 허튼짓하지 말라며 보여줬던 사진. 지안을 미행하며 찍은 사진이 생각나 안심할 수 있었다. 그 사진 때문에 허튼짓하지 못했으면서, 반대로 백가연이 혹여나 타깃으로 삼더라도 안심하는 장치로 여겨졌다는 게 아이러니다.

그런데 왜 벌써 보호 명목으로 하고 있던 미행을 풀었을까. 지금 백가연은 지균 때문에 더 열이 올라 타깃으로 삼을 확률이 높은데. 지훈이 고개를 들썩이며 입을 열었다.

“백······”

“백가연은 살인 교사죄로 내일 기소될 거다. 네가 전에 있던 강력팀에서. 내 부하가 서에 직접 찾아가서 진술했거든. 그년 부하가 김준영을 자살한 거로 위장하고 살해했다고.”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얼굴에 대고 박승혁이 속삭였다. 여전히 가슴팍에 옆얼굴을 댄 채로.

“······내가 죽인 거 아니다. 믿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알아. 네가 안 죽인 거.”

예상외의 말에, 생각보다 또렷하게 들리는 쇳소리에 박승혁이 눈썹을 으쓱거렸다.

“죽이려고 벼르다 백가연이 선수 친 거겠지. 콜록, 그래서 그날 정신 놓고 온 거잖아. 줄담배에 양주 처마시고.”

“······큭.”

박승혁이 소리 내어 웃었다. 웃음소리에서 안도감을 느낀 건 착각이 아니겠지.

“똑똑한 새끼.”

뭐야. 왜 새끼래. 지훈이 한쪽 눈썹을 찌푸렸다. 그걸 알아챈 박승혁이 구겨진 눈썹을 매만졌다.

“인상 펴. 안 예쁘다.”

구겨진 눈썹을 편 손가락이 떨어졌다.

자신이 죽인 게 아니든, 어쨌거나 김준영을 죽이려고 했던 건 사실이다. 언제라도 계획만 시행했다면 진작 죽였겠지. 백가연이 선수 쳤을 뿐이지, 아니었다면 언젠가는 자신이 죽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만큼 지훈을 생각해 계획을 시행하지 않고 미룬 것도 사실이다. 그것까지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에 박승혁은 말없이 입술을 훑었다. 

지훈이 먼저 입을 열었다.

“백가연이 살인 교사했다는 증거는 경찰에서도, 큼.”

“그래. 경찰에서도 현장에서 아무런 정황도 발견하지 못했고, 친필 유서까지 발견돼서 자살로 마무리했던 거잖아. 나는 이렇게 본다. 백가연 부하 중에 가장 솜씨 좋은 놈이 김준영이 자살하도록 압박했다고. 경찰이 바보도 아니고, 살해해서 자살한 걸로 보이게 꾸몄다면 분명 티가 났을 거야. 압박해서 스스로 유서 쓰고 목숨 끊도록 한 거지. 너를 빌미로 삼기도 했겠지만 가장 큰 건 가족으로 협박했을 거고, 그게 가장 결정적이었을 거다. 네가 가좆같은 것들한테 당하면서도 끝까지 매달렸듯이, 김준영은 너보다 더했겠지.”

“······”

“백가연은 예전부터 김준영을 장기 말로 보고 있었고, 언제 죽일지는 선택만 내리면 되는 상황이었어. 그러니까 언제라도 그걸 실행에 옮길 수 있도록 가까이서 감시해왔던 거지. 어디서 감시했겠어.”

“······같은 건물.”

박승혁이 조그맣게 “그렇지”라고 중얼거렸다.

“같은 건물 안에서 왔다 갔다 하는데 카메라에 찍히겠어? 그 정도 붙어서 감시하니까 내가 움직이려는 거 읽자마자 바로 선수 칠 수 있었던 거야. 그년한테 김준영은 너한테 접근하기 위한 다리나, 나 엿 먹이기 위한 도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어. 다 걔가 자초한 거니까 동정하지 마라.”

알고 있다. 준영이 그 바닥 치들을 형사로서 검거할 수는 있어도, 제 주변에 두고 어울릴 수 있는 성격도 깜냥도 안 된다는 거. 저처럼 더 더럽고 저열하게 뻗대며 이것저것 요구하는 성격도 아니거니와,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 약점이 잡힌 채로 시작된 관계이니 여기까지 오는 건 시간문제였다. 

그걸 아는데도 마음은 편치 않다. 그래서 카페에서 준영에게 뽑아먹을 수 있는 데까지 뽑아먹으라며, 형사로서의 쓸모를 부려 조금이라도 자기 위치를 높이기를 바랐던 거다. 같은 건물까지 들어와 감시했다면 이 조언도 애초에 쓸모없었던 거지만.

어두워도 코앞의 이목구비가 착잡해 하는 건 보인다. 박승혁이 볼을 톡 건드렸다.

“그만 생각해.”

“······봤어.”

“뭘.”

“네가 보낸 근조 화환. 봤다고.”

봤구나. 박승혁이 씩 웃었다.

“너 생각해서 한 거야.”

“고마워.”

“그럼 칭찬해줘. 잘했다고.”

“······납골당은.”

“응?”

“골분. 놔뒀냐고.”

“그건 너 허튼짓 안 하게 하려고 센 척한 거지.”

구라 치네······ 그때 수틀리면 정말 할 기세로 지랄해놓고서는. 지훈이 그를 가늘게 노려봤다. 박승혁은 괜히 붕대 감은 손가락으로 가슴팍을 두드리며 딴청을 피웠다.

“같은 아파트에, 최근에 이사 온 사람 있는지 조사했겠네.”

“사 개월 전에 한 층 아래에 이사 온 사람이 있었는데, 백가연 끄나풀이었어. 그년도 멍청한 게 안전하게 하려면 몇 층 간격을 두고 이사하도록 해야 했는데, 바로 아래층에 하니 눈에 뜨이지. 조금만 늦게 이사했으면 분명 심층 조사받았을 거다.”

“바로 아래층에 자리 잡아야 협박하기도 쉽고, 자살했는지 바로 알아채지.”

아무 말 없는 그에게 지훈이 읊조렸다.

“······계속 생각했었어. 준영이가 나 때문에 죽은 게 아닐까 하는.”

“······”

“유서에도 죄송하다고 쓰여, 콜록, 콜록.”

쇳소리가 기침으로 끊어졌다. 머리를 만지작거리던 손을 들어 입을 가리고 연거푸 기침했다. 목 상태에 비해 너무 길게 말했다. 박승혁이 일어나 몸을 일으키도록 도와줬다. 침대 헤드를 조절해 반쯤 세웠다. 물을 마시고 기침이 멎은 지훈이 반쯤 세워진 헤드에 상체를 기대었다. 기댄 몸에 힘을 푸는 것까지 확인한 박승혁이 말했다.

“유서에 쓴 글은 가족한테 하는 말이었겠지. 먼저 가서 죄송하다고. 하지만 자기가 이렇게 하지 않으면 가족이 죽으니, 별수 있나. ······너한테는 이미 사과해서 풀었어. 카페에서 울고 지랄했잖냐. 오히려 그거 생각하면 가면서 후련했을 거다.”

당사자가 아니면 모르는 카페에서의 일을 정확히 알고 있다. 지훈이 놀란 티를 냈다.

“뭐야, 어떻······”

“아무튼, 너 때문에 죽은 거 아니야. 다 자기가 한 선택 때문에 죽은 거지. 너도 알고 있잖아. 걔가 잘못된 선택 해서 여기까지 온 거.”

“그 대가가 너무 크다고 생각했어. 나는······”

아픈 목을 핑계로 말을 잇는 대신 침을 삼켰다. 

가족을 부양해야 한답시고 불법 유흥업소를 돌며 상납금을 받았다. 거기에 자기 처지를 비관하며 공허함을 채우겠다는 핑계로 육체적 상납도 받았었다. 틈만 나면 여자를 끼고 술을 마시고, 마사지도 받고, 룸살롱 여자와 2차까지 간 적도 있다.

모두 합리적인 이유가 아니며 면죄부도 아니다. 준영이 잘못된 선택으로 대가를 치렀다고 하기엔 자신은 더 더럽게 놀며 살았었다. 

공허함을 채우려고 한 행동은 가족과 연을 끊고 나서 더 강한 공허함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공허하다고 더럽게 놀진 않았다. 공허함은 핑계일 뿐이다. 중요한 건 거기에 대처하는 행동이다.

준영은 그 선택 하나로 목숨을 끊었는데, 나는. 나는 얼마나 더 큰 대가를 치러야 하는 걸까. 애초에 지균에게 그때 죽었어야 했던 거 아닐까. 그 생각까지 이어졌다. 우울해진 낯빛에 박승혁이 헛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이 개고생한 거잖아. 무슨 아무것도 안 겪었다는 듯이······ 칼에 찔리고 목 졸려서 죽을 뻔하고. 이게 개고생이 아니면 뭔데.”

“그래······ 맞네.”

일부러 소리 높여서 하는 말에 지훈이 중얼거렸다. 박승혁이 그런 그를 못마땅하게 쳐다봤다. 깨어나고 죽도 제대로 안 먹어 불만이 쌓여 있다.

“네 부하.”

“응?”

“진술했다면서. 증거는 있고?”

“내가 손 써서 그런 게 아니라, 눈에 보이는 증거 없이 정황만으로도 가능해. 백가연 부하인 건 조금만 조사하면 나올 거고, 사 개월 전에 바로 아래층에 이사한 거. 그리고 내 부하나 그놈이나 비슷한 바닥이니까 전부터 이 바닥에서 소문이 돌았던 걸 알고 있다, ‘백가연이 김준영을 노리고 있다’라고 들었다, 진술하면 끝이지. 네 전 팀장이 정황만 보고 바로 기소하겠다 했어. 같은 팀 동료가 그렇게 간 건데, 늦출 리가 없지.

······물론 백가연과 김준영이 어떤 관계인지 조사하다 보면 나올 수 있겠지. 백가연 똘마니들이랑 짜고 쳐서 잡범 잡고 그걸로 약점 잡힌 거.”

입술을 깨물었다. 거기까지 드러난다면 자칫 자신이 납치당했었고, ‘약점’으로 인해 거기에 일조한 적이 있다는 것까지도 들추어질 수 있다. 자기 이름이 올려질까 두려운 게 아니라 죽은 사람 명예가 실추될까 우려스럽다.

“전에 백가연 클럽에서 났던 살인 사건, 그거 조사하다 꼬였다고 해줘. 그 정도는 할 수 있잖아.”

“······”

“부탁할게.”

박승혁은 대꾸 없이 입맛을 다셨다. 마음에 들진 않지만, 해주겠다는 거다. 김준영을 위해서라지만 결국 지훈을 위해서니까.

마음에 들지 않아도 자기 말대로 해주는 그가 고마웠다. 새벽이라 그런가. 죽을 뻔하다 살아나서 그런가. 평소보다 더 어리광을 부리는 듯한 그의 태도에 더불어 자신도 평소보다 더 표현하고 싶었다.

“고마워.”

말하며 손을 내밀자 박승혁이 얼굴을 내민다. 내어준 얼굴을 쓰다듬었다. 한동안 손길을 느끼던 박승혁은 저를 쓰다듬는 손을 맞잡았다.

“네가 죽었다고 생각했을 때.”

아마 지균이 목을 졸랐을 때를 이르는 듯하다. 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 그대로 죽는 줄 알았다.”

“······”

“네가 나한테 그런 존재라고.”

쓰다듬느라 가까워진 얼굴로 낮게 내뱉는 고백이 적나라하고도 원색적이다. 조금의 숨김도 없는 감정이 전해져와 부끄러우면서도 지훈은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맞잡은 손이 뜨거웠다. 꼬물거려도 끄덕하지 않았다. 힘을 줘도 빠지지 않아 잡히는 대로 가만히 있었다. 침이 꼴깍 소리를 내며 넘어갔다. 박승혁이 기대감 가득한 표정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팀장님이.”

어둠에 익숙해진 눈이 대놓고 실망스럽다는 표시를 냈다. 시무룩한 얼굴에도 지훈은 꿋꿋하게 말을 이었다.

“퇴원하고 휴가 내도 된다고 하더라.”

깜박거리는 눈에 대고 말했다.

“네가 하루 이틀 감금했어야지. 처음부터 병가 길게 냈더니 진작 지원요청 보내서 한 명 새로 왔나 봐. 연가 쓰고 며칠 더 쉬려고. 퇴원하고 짧게 여행이나 가든지. 같이.”

드륵. 바퀴 달린 간이의자가 움직였다. 지훈의 입에서 처음으로 나온 제안인 만큼, 기분이 좋은 거다. 안 그래도 가까운 거리가 더 좁혀졌다.

“어디 가고 싶은데.”

“아무 데나.”

“지금 생각나는 거 아무거나 말해봐.”

“······”

“응?”

“수족관······”

나라나 지역명도 아니고 수족관. 박승혁이 작게 소리 내어 웃었다. 귀여워하는 느낌이 역력했다. 어렸을 때 저만 빼놓고 가족들이 아쿠아리움에 다녀왔던 게 기억나 말했는데 괜히 말했나 싶었다.

“그래.”

“그리고 다음 인사이동 때 다시 형사과로 돌아갈 거야.”

“······”

“강력팀이든 형사팀이든, 거기가 내가 원래 있어야 할 곳이라고 생각해.”

“······네가 원하는 대로 해.”

뜬금없이 통보하듯 던졌는데도 생각보다 별 반응 없다. 지훈이 의아해 물었다.

“괜찮냐? 만날 시간 부족해질 건데.”

“뭘 물어봐. 똥고집 부려서 네가 원하는 대로 할 거면서. 찾아가지 뭐.”

“어디에.”

“현장 출동하면 거기 가 있지 뭐.”

“농담으로도 하지 마.”

박승혁이라면 정말 그럴 거 같았다. 진저리치며 고개를 저으니 또 웃었다. 

“나도 하나만 말하자.”

“뭔데.”

“퇴원하고 바로 오피스텔로 들어와.”

“그건 생각 좀 해보고······”

“이미 짐 다 빼서 옮겨놨어.”

“뭐?”

지훈이 깜짝 놀라 침대 헤드에서 등을 뗐다. 잠잠하던 목이 다시 따가워지는 것 같다.

“그럼 집은, 큼.”

“······”

“설마 중도 해지했냐?”

침묵이 대답을 대신했다. 어이가 없어 숨을 들이켰다.

“야이, 씹······ 콜록, 콜록.”

“열 내봤자 목만 아프다.”

“지랄, 네가 아프게 하지를 말던가. 아 보증금 시발······”

그 보증금 처음으로 모은 돈으로 낸 건데. 아까워 진심에서 우러나온 탄식이 나왔다. 박승혁에겐 푼돈이라도 자신에겐 푼돈이 아니다.

“보증금 내가 줄게.”

“아니, 그 얘기가 아니잖아.”

“나도 똥고집 좀 부려보자.”

“네가 지금까지 한 게 똥고집 아니면 뭔데. 하여튼, 너나 나나 비슷하다.”

박승혁 머릿속에 명준이 했던 말이 생각났다. 두 분은 닮으셨다고. 성격도 비슷하다고. 

‘어떤 점이?’라고 물어도 그냥요, 라며 말을 돌렸었는데, 이젠 어떤 게 닮았는지 알 것 같다. 지훈도 알았듯이.

삐친 듯 고개를 돌린 지훈의 볼을 톡톡 건드렸다. 살이 빠져 홀쭉한 느낌에 불만이 하나 더 쌓였다.

“결국엔 네가 원하는 대로 다 해줬잖아. 인상 좀 풀어.”

“뭘 원하는 대로 해. 조문 간 것도 내가······”

“네가 이지균 만나러 가면서 흔적 남긴 거, 모른 척하고 그대로 따라가 줬잖아. 왜 이래.”

역시 알고 있었다. 별실을 나가도록 얌전히 놔둘 성격이 아니라는 걸 알았기에 당연히 미행을 붙이리라 생각했고, 더 따라올 수 있도록 빵조각을 흘려줬다. 

폐건물이 있는 골목길로 들어가기 전 근처 편의점에서 박승혁의 카드로 담배와 라이터를 계산하고, 그 담배를 피우며 골목길로 들어가고, 폐건물 입구에 보란 듯이 버린 것으로도 모자라 친절하게 계단에 재킷까지 걸쳐줬다. 모르는 게 이상하다.

예상 못 했던 건 생각보다 많은 인원을 데리고 온 거였다. 혼자 오거나 명준만 데리고 올 줄 알았는데. 이지균을 만나러 갈 거라고 유추한 박승혁이 폐건물에 백가연 똘마니들도 있을까 봐 부하들도 부른 게 가장 예상외였다. 그리고 지균이 설마 목숨을 끊을 정도로 목을 조른 것 또한.

가만히 있는 지훈에게 박승혁이 다시 물었다.

“맞지? 할 말 없지?”

“······”

“너는 나를 믿지 않았지만, 나는 너를 믿고 풀어줬어. 너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라고.”

“네가 백날 말해봤자 내가 안 믿는 거 아니까 그랬겠지. 그리고 내가 직접 풀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서잖아.”

“하여튼, 한마디도 안 져요.”

박승혁이 잡고 있던 손을 꼼지락거렸다. 푸는 줄 알고 손가락을 풀자, 박승혁은 손을 움직여 제대로 손깍지를 끼웠다. 손깍지 낀 걸로도 모자라 손등에 입을 맞추는 그를 지훈이 아연한 표정으로 쳐다봤다. 

제대로 만나자고 한 날부터 느끼해지긴 했지만, 더 느끼해졌다. 싫진 않은데 앞으로도 이러면 좀 곤란하다.

아연한 표정을 보고 박승혁이 씩 웃으며 말했다.

“그 힘으로 빨리 낫기나 해. 같이 여행 가게.”

“조폭이 팔자 좋다.”

“너만 하겠냐.”

지훈이 그를 흘겨보다 아, 했다.

“맞다. 사과.”

“응?”

“할 말 있는데.”

“뭐.”

“······오해해서 미안하다고.”

“미안하면 앞으로 똥고집 좀 그만 부려라.”

“좆 까.”

박승혁이 입을 벌려 웃었다. 이 대화를 시작하고 나서부터 가장 큰 웃음소리였다. 그렇게 내가 욕하는 게 좋을까. 좋으니까 지금까지 만나고 있겠지.

할 만한 대화는 다 끝내고 나니 잠이 몰려왔다. 지훈이 눈을 느리게 깜박였다.

“졸려.”

“자. 그럼.”

“너는.”

“소파에서 자지 뭐. 아니면 간이침대에서 자든가.”

“소파는 좁아 타졌고, 간이침대는 네가 누우면 부러질걸. 옆에 눕든가. ······이상한 짓 안 한다는 전제하에.”

“이상한 짓? 이상한 짓이 뭔데.”

“뭐겠냐. 떡 치는······”

입에 닿는 말캉한 느낌에 말을 멈췄다. 말하느라 벌려진 입에 혀가 들어왔다. 지훈도 혀를 내밀어 훑었다. 서로의 혀를 감으며 쓸어올리고, 입안을 부드럽게 헤집은 다음 떨어졌다. 짧고도 부드러운 키스가 순식간에 병실 분위기를 바꾸었다.

박승혁이 속삭였다.

“떡 치고 싶어?”

“미······”

쳤냐, 라고 말하려다 말을 멈췄다. 그러고 보니 언제 마지막으로 병실에서 떡 쳤더라. 벌써 작년이다.

병원에서 떡 치는 게 당연히 일반적이진 않다. 그런데도 저도 모르게 ‘한동안 안 했네’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새벽이라서 그런지, 한동안 박승혁과 섹스하지 않아서인지 모른다.

뭔 상관이야. 지금 하고 싶은데.

생각한 지훈이 먼저 박승혁에게 입술을 맞췄다. 그가 기다렸다는 듯 혀를 감아왔다. 손깍지 끼지 않은 손이 이불을 걷어 내렸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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