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장
사무실처럼 넓은 차창으로 붉은색 빛이 들어왔다. 저물어가는 해는 사무실 저 끝에 닿을 정도로 머리를 숙이고 길게 들어와 소파의 가죽 결을 비추고, 광택이 도는 바닥을 매만졌다.
서류를 보고 행정 업무를 처리하느라 잠깐 외출한 때를 제외하고는 하루의 시간 대부분을 사무실에 박혀 있었던 박승혁은 그 빛이 닿지 않는 곳에 서 있었다.
사무실 한쪽 벽면 구석에 있는, 그늘진 곳에 나지막이 위치한 문 앞에 서서 가만히 있었다. 생각에 잠긴 얼굴은 무표정했지만 편안해 보이진 않았다.
박승혁은 점심 이후, 잠시 외출했을 때를 떠올렸다. 거래처나 지인과 차를 마시기 위해 그가 운영하는 회사에 도착한 즈음이었다. 회사 정문을 들어가기 전, 명준이 가까이 다가와 걸음을 멈추었었다. 두 사람을 안내하던 직원들도 덩달아 걸음을 멈췄다.
“저, 이사님.”
“왜.”
“실례지만 잠깐 자리를 좀 비울 수 있을까요.”
박승혁은 주변을 흘긋거리곤 손짓했다. 직원들이 알아서 뒷걸음질 쳐 물러났다.
“왜.”
“심부름을 좀······”
박승혁이 제 오른팔을 빤히 쳐다보다 툭 뱉었다.
“이지훈?”
세 음절에 명준이 입술을 희미하게 머뭇거리다 “네”라고 대답했다. 그 찰나의 순간을 박승혁은 놓치지 않았다. 명준도 그걸 알아채고 먼저 변명하듯 말했다.
“형님이 원하는 건 다 들어주라고 하셔서······”
“너답지 않게 왜 자꾸 말을 하다 말아. 끝까지 말을 해. 왜, 딸이라도 쳐달래?”
“아닙니다.”
늘 무던한 표정의 매끈한 얼굴. 오랫동안 자신을 모시며 오른팔로 있었다곤 하나 주눅 들지 않고 은근히 할 말 다 하는, 그래도 밉지 않은 놈. 그런 놈의 얼굴에 떠오른 희미한 당혹스러움에 박승혁이 헛웃음을 쳤다.
“이지훈이 대단하긴 해. 네가 나한테 말 못 할 비밀도 만들고.”
“곧 알게 되실 겁니다. ······미리 말씀드리자면, 형님이 생각하시는 그런 불손한 건 아닙니다. 오해 마십시오.”
“······”
박승혁은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뚫어지듯이 제 부하이자 오른팔인 명준을 쳐다봤다. 대놓고 감정을 드러내어 노려보는 게 아닌데도 절로 사람을 위축되게 만드는 눈빛이었다.
심상치 않은 기류에 멀찍이 물러난 직원들이 의아한 얼굴로 두 사람을 지켜봤다. 한 명이 상대방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그 눈빛을 받는 한 명은 눈을 내리깐 채 처분을 기다리듯이 두 손을 모으고 서 있는, 기묘한 모습이었다.
몇십 초인지 몇 초인지 길게 느껴지는 시간이 지나고, 박승혁이 입술은 열지 않은 채 고개만 작게 까딱, 했다. 명준은 고개를 꾸벅 숙이며 인사하고 뒤로 물러났다.
식사 약속도 아니고, 지인과 차 마시는 거야 일 얘기보다는 가볍게 만나 담소를 나누자는 의미다. 지인도 이 바닥에서 쟁쟁한 사람으로, 경쟁보다는 협력 업체에 가깝다. 구태여 오른팔까지 데리고 가진 않아도 되는 자리라는 걸 명준도 알고 조심스럽게 말을 꺼낸 것이리라.
그래도 기분이 더러운 건 매한가지다. 박승혁의 관자놀이에 핏줄이 잠시 돋다 사라졌다. 이지훈이 원하는 건 자살과 내보내 달라는 것 외엔 다 들어주라고 했다. 그리고 그 요구사항들은 일일이 보고 안 해도 되며, 보고 여부는 개인 판단에 맡기겠다고 했다. 직접 한 말인데도 좀 전에 있었던 일과 겹쳐 불쾌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다시 정문을 향해 움직이자 물러나 있던 직원들이 공손한 자세로 다가와 그를 안내했다. 박승혁의 얼굴에 그들 중 가장 높은 축에 속하는 직원이 긴장을 느끼고 어깨를 곧추세웠다.
기분이 좋지 않은 채로 차를 마셔서인지, 차 맛은 끔찍했다. 지인이 ‘박 이사, 왜 그래?’하고 물었을 정도니까. 영업소 일로 그런다고 얼버무리자 웃으며 ‘영업소가 너무 많아도 고민이야. 귀찮으면 나 하나 줘’라는 농담에도 대충 웃어넘겼었다.
원하는 건 대부분 다 들어주라는 명을 내렸다면, 자신에게 어떤 말을 전해달라는 이지훈의 부탁 정도야 쉽게 들어줬을 것이다. 그럼에도 명준은 아무런 말도 전해 주지 않았다. 김준영 형사의 시신이 부검에 들어가 어젯밤에 끝났고, 오늘 밤부터 빈소가 마련된다는 걸 분명히 전달했을 것인데도.
며칠 전처럼 직접 마주 보고 내보내 달라 부탁하려 할 것이고, 그럼 자신이 지금 코앞에 있는 별실 문을 열고 들어가 그를 만나야 한다. 하지만 이지훈은 명준에게 아무런 말도 전해달라 부탁하지 않았다.
오히려 명준이 오랫동안 모신 큰형님께 무언가를 숨기고 심부름할 정도로 비밀스러운 것을 만들기까지 했다. 그리고 낮에 있었던 일까지 더불어서, 이지훈은 말 한마디 없이 자신을 별실 앞까지 오도록 만들었다.
불여우 같은 놈.
저보다 한참 어린데도 보통 머리도, 보통 여우도 아니라는 건 작년에 있었던 일로 알고 있다. 그런데도, 이만하면 지훈에 대해 다 알게 됐다고 생각하는데도 여전히 자신을 놀라게 만든다.
명준이 모른 척 정보를 흘린 것도 제 명에 의한 연기였다는 것 또한 너는 바로 알아차렸겠지.
더 키우다가는 제 머리 꼭대기까지 올라갈 놈이다. 아니, 감금된 주제에 여기까지 한 걸 보면 이미 머리 위에 올라간 걸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 재밌는 놈.
박승혁이 소리 없이 비식댔다. 비식댐을 멈추는 것과 동시에 열쇠를 구멍에 꽂아 돌렸다. 달각거리는 소리 끝에 문이 열렸다.
문을 열고 들어간 박승혁 앞에 이질적인 광경이 보였다. 근 일주일쯤이 흐를 동안 이곳엔 단 한 번 들어왔지만, 눈앞의 광경은 이질적이라고 해도 좋았다.
다른 때였으면 힘없이 모로 누워 있었을 형체가 지금은 일어나 침대 끝에 등을 보인 채로 앉아있었다. 자세도 자세거니와, 입고 있는 옷도 달랐다. 몸의 라인을 드러낸 어두운색의 옷.
박승혁은 눈을 감고 고개를 들어 산소를 들이마셨다. 코끝에 담배 냄새가 들어왔다. 명준이 늘 피우는 담배 냄새다. 몇 시간 전 느꼈었던 불쾌감이 스멀스멀 몸을 타고 올라왔다. 눈을 뜨고 고개를 바로 했다.
“······”
등 뒤로 문을 닫았다. 문이 닫히는 소리와 동시에 등을 돌린 채로 앉아있던 형체가 움직였다.
시간에 맞춰 어둑해진 방안엔 협탁 위 스탠드만 켜져 있었다. 고개를 돌린 지훈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자기가 잘 보이지 않는다는 걸 안 건지, 지훈은 침대에서 일어나 박승혁을 향해 다가갔다. 거리가 좁혀지자 지훈의 모습이 더 또렷하게 들어왔다. 순간 박승혁이 명준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곧 알게 되실 겁니다.’
그래서 말하지 않은 건가. 말하기 뭐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하, 새끼 진짜. 입술을 실룩였다. 지훈이 그런 그를 보고 더 가까이 다가갔다.
넥타이까지 맨 청록색 경찰 정복이 수척한 얼굴에 더 잘 어울린다는 표현이 올바른 표현인지 모르겠다. 정복은 상대방에게 자신의 지위를 내보이고 위압적으로 보이기 위함이니까. 어쩌면 이지훈이라 그 한정으로 그렇게 보이는 게 맞을 것이다.
자신을 위아래로 훑는 걸 느낀 지훈이 와인색 넥타이를 만지작거렸다. 끝을 손가락으로 비비더니, 내려놓고는 몇 발자국을 더 다가갔다. 옷깃이 닿을 정도로 가까이 다가간 지훈의 손이 양복 재킷 안을 들어가 허리를 감을 때까지, 박승혁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허리를 쓰다듬는 지훈의 어깻죽지에 바디 워시 향이 맡아졌다. 낮에 별실에서 평소보다 한참 있다가 나왔던 명준에게서도 났던 향이었다. 늘 별실에서 지훈과 뒹군 후 서로의 몸에서 맡아졌던 바디 워시 냄새.
갑자기 손을 뻗어 제 어깨에 얼굴을 묻으려던 뒷머리를 움켜쥐었다. 귓가에 신음이 들렸다.
“윽-”
신음을 뱉어낸 지훈이 손짓에 따라 머리를 젖혔다.
“떡 안쳐주니까 이런 식으로 머리 굴려?”
조곤조곤 말하는 목소리에 희미한 분노가 느껴졌다. 지훈은 고통에 인상을 찡그리면서도 동요하지 않았다.
“머리 굴려서 네가 왔잖아.”
허리를 감은 손이 앞으로 이동했다. 앞섶을 문지르는 행동에 박승혁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갔다. 분노와 반대로, 아래에서 느껴지는 자극과 더불어 코앞의 정복을 입은 지훈의 모습에 눌러놨던 욕정이 올라오는 느낌이 모순적이었다.
“그럼 됐지.”
제 뒷머리를 잡은 손목을 잡았다. 손아귀가 풀리자, 지훈이 박승혁의 넥타이를 잡고 앞으로 당겼다. 살짝 당겼는데도 거짓말처럼 몸이 앞으로 기울었다. 입술이 포개어졌다.
입술이 입술을 두어 번 삼키며 시작된 키스는 빠르게 깊어졌다. 혀로 입안을 훑고 혀를 빨아당기는 움직임이 농밀하나 부드럽진 않았다. 다소 빠르고 거칠어 집중하며 속도를 따라가야 했다. 덩치와 힘에 밀려난 지훈이 뒷걸음질을 치다 잡고 있던 넥타이를 다시 잡아당겼다. 마치 뒷걸음질하는 것도 내 의지로 하는 거라는 양.
은근히 우위를 점하려는 움직임이었다. 박승혁은 속으로 비웃으며 그가 하려는 대로 움직여줬다. 뒷걸음질 치다 몸을 돌려 저를 먼저 침대에 앉힐 때도, 그런 자신 위에 올라탈 때도 앙칼진 강아지가 최선을 다해 유혹하려는 것처럼 느껴져 욕정을 느끼면서도 웃음이 새어 나올 것 같았다.
색다른 느낌에 일부러 따라주는 것도 사실이었다. 지금까진 늘 박승혁이 먼저 지훈에게 달려들고, 섹스에서도 그가 주도권을 쥐었으니까. 지훈이 더 적극적으로 나올 때는 섹스가 거의 끝나갈 때나 지나치게 놀려서 오기로 달려드는 게 전부였다.
고개를 젖히고 위에서 내려오는 키스를 받는 게 신선했다. 넓은 손으로 허리를 문지르자 느껴지는 정복 셔츠의 빳빳한 감촉에 몸이 빠르게 달아올랐다.
아랫도리의 저릿한 감각을 느끼며 자신도 적극적으로 키스에 응했다. 치열을 훑고 거칠게 혀를 빨아당기면서 되려 침을 삼키자 지훈이 어깨를 꽉 붙들었다. 자세로는 우위인데 말릴 것 같아 뒤로 물러났다.
“으, 음.”
손톱을 박아 어깨를 움켜쥐었다. 입술이 떨어진 틈에 침대 옆 협탁 위에 놓인 물병을 집어 들었다. 뚜껑을 열고 한 입 크게 입에 담는 모습까지 박승혁은 재미있다는 얼굴로 지켜봤다. 지훈은 아랑곳하지 않고 물을 입에 담은 채로 박승혁의 턱을 잡고 그대로 입을 맞췄다. 예상한 그도 놀라지 않고 입을 벌려 액체를 목구멍으로 넘겼다.
씁쓰레한 맛에 플라스틱병에 담긴 게 물이 아니라 소주라는 걸 알았다. 참았던 웃음이 새어 나왔다.
“술까지 먹여야 떡칠 거 같았어?”
지훈은 웃음기 없이 플라스틱병을 들어 입에 댔다. 다시 한 입 머금은 채로 키스하며 목구멍으로 넘기는 행위를 반복했다. 양주도 마시는데, 소주 정도야. 박승혁은 넘어오는 소주를 거의 흘리지 않고 깔끔하게 삼켰다.
넓은 손이 허리를 쓰다듬다 엉덩이를 문질렀다. 허벅지까지 눅진하게 이어 문지르며 지훈이 요사이 많이 마르긴 했다는 생각에 아쉬웠다. 본인이 직접 행한 일이고, 감금된 동안 식사도 제대로 못 했다면 당연한 건데도.
더 깊게 들어가기 위해 고개를 꺾었을 때였다. 희미한 어지럼증이 느껴졌다. 박승혁이 한쪽 눈을 찡그리곤 쓰다듬던 허리를 움켜쥐었다. 지훈의 치아가 박승혁의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놨다. 두 입술이 떨어져 각자 숨을 골랐다.
“하, 왜.”
왜, 라고 묻는 얼굴이 코앞인데도 희미하게 보이는 듯해 눈을 세게 감았다가 떴다. 눈앞이 깨끗해지긴커녕 더 흐릿해졌다. 이상한 감각에 허리를 움켜쥔 채 숨을 골랐다.
흐릿한 얼굴 속 입꼬리가 올라가 있는 것 같다. 웃고 있는 건가. 왜? 그토록 바라던 떡을 쳐서? 내보내 달라는 조건이 담긴 섹스를 내가 받아들여서? 나는 받아들인다고 표시 낸 적도 없다. 왜 저런 표정을······
순간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에 박승혁의 두 눈이 커졌다. 동시에 지훈의 뒷머리를 훔켜쥐었다. 지훈은 신음을 내뱉으면서도 의아해하지도, 욕설을 내뱉지도 않았다. 그 반응에 확신했다.
“뭐 먹였어.”
분노로 서늘한 목소리였다. 지훈은 노골적으로 소리 내어 킥킥댔다. 등을 누르고 넥타이로 손목을 묶어도 잃을 것 없다는 듯, 웃던 때처럼 정신 나간 웃음소리였다.
“이벤트 할 거라고 하니까 주던데. 근데 너한테 처먹일 줄은 몰랐겠지.”
등골에 소름이 돋으며 관자놀이에 핏줄이 섰다. 악문 턱에 근육이 불거지더니, 그대로 침대에서 일어났다. 중심을 못 잡은 몸이 앞으로 쏠리며 바닥에 지훈을 깔고 넘어졌다. 성인 남자 두 명이 바닥에 나동그라지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
자신을 내려다보는 얼굴이 비정상적인 욕정에 물들어가고 있었다. 몽롱하게 풀린 눈빛 속에 분노와 쾌락이 보였다. 금방이라도 이성을 잃고 달려들 것만 같은 짐승의 얼굴이다. 이곳에 박승혁이 들어온 이래로, 지훈은 처음으로 두려움을 느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곧 일어날 일을 받아들이기로 하고 두려움을 가라앉혔다. 각오했고, 바라던 일이다.
“미친 새끼.”
“몇 번을 말해.”
미친 새끼 맞아.
“나한테 먹였던 거 먹으니까 어때.”
술에 탄 약은 몸속을 빠르게 돌며 세포를 예민하게 만들었다. 예민해진 몸은 조그만 감각조차도 큰 쾌감으로 느껴지게 했다. 비정상적인 걸 아는데도, 몽롱해진 머릿속은 이성을 잡을 수 없었다.
흐릿한 시야에 지훈의 얼굴이 보였다. 청록색 정복을 갖춰 입은 얼굴. 앞으로의 일이 기대되는 듯 분명 미소를 머금고 있는데 한편으로는 두려워하고, 그러면서도 체념한 듯한 느낌이 이상했다. 왜 그런 이상한 표정을 짓고 있냐고 묻고 싶은데 제대로 입술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씨발.’
약을 얼마나 태운 거야 이 미친 새끼가.
예전에, 아주 예전에 사무실에서 지훈에게 먹였었던 차. 투명한 붉은색의 차 속에 태웠던 약과 결코 비슷한 양을 태우지 않았을 것이다. 약을 처음 사용해보는 이지훈은 내 덩치를 생각하고 무식하게 많이 태웠겠지. 조금이라도 정신을 놓으면 어떻게 달려들지 스스로 가늠되지 않았다. 무언가 끓어오르는 느낌에 속이 뜨거웠다.
“이거 입으면 뭐든지 들어준다면서.”
뜨거운 입김을 내뱉는 얼굴을 쓰다듬으며 지훈이 말했다.
“박고 싶은 만큼 박아봐.”
“······”
“나도 쌓였으니까.”
마지막 말에 생각이 끊어졌다.
* * *
피가 샐 정도로 깨문 입술이 너덜거렸다. 그래도 보지 못한 박승혁은 신음을 토해내며 성기를 쳐올렸다. 보지 못했는지, 봐도 모른 척하는 건지, 봐도 신경 쓰지 않는 건지는 알 수 없다. 박승혁의 넥타이에 의해 시야가 차단되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 악······”
퍽, 하고 내벽을 찌르는 성기에 지훈이 고개를 빳빳하게 젖혔다. 벌려진 입에서 쾌감과 고통이 섞인 신음이 나오다 말았다. 박승혁이 무게를 실어 그를 아래로 더 짓눌렀다. 완전히 엎드린 채로 그를 받아 내던 지훈이 헐떡거렸다.
“하윽, 악, 잇, 익, 응, 응, 으-”
빈틈없이 맞붙은 몸이 한 몸처럼 움직였다. 박승혁의 몸이 위아래로 들썩거릴 때마다 지훈의 몸도 제 의지와 상관없이 같이 들썩거렸다. 몇 번의 토정을 받아 낸 애널에선 정액이 질금거렸다.
하반신만 발가벗고 상체는 여전히 정복을 단정하게 입고 있어 온몸이 더웠다. 귓가에 닿는 뜨거운 입김이나 신음에 아직 한참 남았다는 생각만 들게 했다. 수척한 몸은 고작 두 끼 조금 챙겨 먹었다고 거구의 사내를 따라갈 수 없었다.
“큭, 흑······!”
박승혁이 지훈의 턱을 잡은 손에 힘을 주며 힘을 줬다. 내벽에 다시금 왈칵 정액이 뿌려졌다. 절로 발가락이 오므라들었다. 입술을 벌렸으나 신음조차 나오지 않았다. 턱 잡은 손을 제 쪽으로 돌려 공기만 뻐끔대는 입술에 부딪혔다.
게걸스러운 키스를 받아 내는 지훈의 머릿속은 안개 낀 것처럼 부옇다. 정신을 놓아버릴 것 같아도 엄청난 쾌감이 기절하지 않도록 자극을 주고, 허리가 아프도록 흔들리는 자세는 정신력으로 버티고 있었다.
키스가 끝나고 턱을 놓자 힘없이 침대에 얼굴을 박았다. 허리를 움찔거리며 멍하게 숨을 골랐다. 눈물에 푹 젖은 넥타이는 물기를 뱉어냈다.
허억, 허억. 귓가엔 여전히 뜨거운 입김을 내뱉는 숨소리가 들린다. 행위를 할 때나, 사정한 후나, 지금이나 똑같다. 제 안에 박혀 있는 성기도 똑같다. 몇 번이나 사정했는데도 굵고, 딱딱하고, 제 주인처럼 성감대를 짓누르고 있다.
“······으윽.”
숨을 몇 번이나 골랐을까. 갑자기 팔 밑으로 손을 넣어 양어깨를 틀어잡아 입술을 깨물었다. 양어깨를 틀어잡은 박승혁이 허리를 젖혔다. 지훈의 상체가 반쯤 들려 뒤로 젖혀졌다. 꺾인 허리가 고통을 자아냈다. 고개는 반쯤 꺾인 상체를 따라가지 못해 푹 숙였다.
“고개 들어.”
짤막한 말을 뱉자마자 뒤로 뺀 허리가 아래로 처박혔다. 성기가 성감대를 찔렀다 물러나기를 반복했다. 자극받을 대로 자극받은 성감대가 예민하게 온몸에 쾌감을 선사했다. 상체처럼 뒤로 젖혀진 고개와 벌려진 입에서 교성이 간헐적으로 튀어나왔다. 잔뜩 오므라든 발가락으로 발등이 이불 위를 의미 없이 긁었다.
“아, 아, 아으, 으, 응, 윽, 잇.”
찌걱대며 성기가 애널에 드나들고, 땀에 젖은 골반이 둔부를 철썩 때렸다. 둔부가 맞은 것처럼 붉었다. 그래도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보다 훨씬 강한 쾌감과 고통이 뒷골을 찔러대고 있다.
“허억, 헉, 윽, 지훈, 아.”
“응, 응, 으응······”
신음이 대답처럼 들려 제 말을 들은 줄로 알고 중얼거렸다.
“좋아? 어? 흐, 윽, 좋냐고.”
“아응, 아, 아, 아, 처, 천, 히.”
“씹, 좋냐고, 좋, 냐······”
떨리는 입술이 말을 채 못 뱉어냈다. 온몸을 삼킨 쾌감에 정신을 빼앗긴 박승혁의 입에서 흐른 타액이 지훈의 정복 셔츠에 떨어졌다.
넥타이에 시야가 가려진 지훈은 자신도 약에 취한 것처럼 이성 없이 허리를 따라 흔들었다. 오히려 더 하라는 듯 아래에 힘을 줬다. 박승혁이 저도 모르게 눈을 감고 움직임을 멈췄다. 사정한 허리가 부르르 떨렸다. 지훈도 더 세게 성기를 조였다. 두 사람 다 허리를 튕기며 숨을 토해냈다.
넥타이에 가려진 눈이 흐리멍덩했다. 자신은 약을 먹지 않았는데, 앞도 안 보이는 상태에서 계속 뇌를 자극한 쾌락에 제자리를 맴도는 실험실 쥐처럼 이성을 잃은 상태였다. 전희 없이 성기를 단번에 빼내고, 어깨를 틀어잡은 팔을 들어 뒤집는 몸짓에 힘없이 따라가 등을 침대에 눕혔다.
하반신은 땀과 제가 뱉어낸 정액이 잔뜩 묻어 더러워진 채로 위엔 단정하게 정복을 차려입은 모습이 모순적이었다. 넥타이에 눈을 가린 채로 가쁜 숨을 내쉬는 지훈에게 얼굴을 갖다 댔다. 짐승이 사냥감을 살피는 듯 얼굴을 대고 곳곳을 훑어 내려갔다.
목을 타고 내려가 가슴을 맴돌았다. 셔츠 위로 이를 세워 유두를 깨물자 가슴이 얕게 튕겼다. 뒷머리에 닿는 손은 맥없었다. 밀어내지 못하는 건지, 쓰다듬는 건지, 그냥 손을 얹은 건지 모를 정도로 힘이 없었다. 계속해서 유두를 깨물자 자극받은 유두가 단단해져 돌기처럼 기립했다.
“흐으, 거, 거기.”
반대쪽 유두를 깨물며 손을 내려 중심부를 잡고 자극했다. 뒷머리에 닿은 손아귀가 힘이라고 부를 만하게 머리카락을 쥐었다. 무시할 정신도, 이성도 없다. 조금도 신경 쓰지 않고 성기를 감싸 쥐어 위아래로 빠르게 움직였다. 굳은살 박인 손바닥과 손가락이 성기 전체를 자극했다.
쾌감을 받아 내는 온몸이 덜덜 떨렸다. 정신이 나갈 것만 같다. 온 힘을 다해 머리카락을 쥐고 그만하라는 표시를 내도 자극은 멎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내가 힘을 덜 준 걸까. 아니면 박승혁이 무시하는 걸까.
허억.
멍하게 생각하다 갑자기 성기를 쥐어 잡는 힘에 입술을 벌렸다. 절로 고개가 젖히고 입술이 벌려졌다. 눈을 크게 떠도 눈앞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여기가 어디더라.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 안······ 흐윽······”
박승혁은 지훈의 성기를 쥔 채로 제 성기를 잡아 애널 입구에 댔다. 긴 음경이 입구를 쓸고 지나갔다. 언제 들어올지 모르는 애널이 금방이라도 삼킬 수 있게 뻐끔댔다. 박승혁이 소리 내어 웃었다. 땀에 절어 완전히 발가벗은 몸은 김이 날 정도로 뜨거웠다.
“먹고 싶어? 넣어줘?”
“아니, 아- 악!”
애널을 뚫고 들어간 귀두가 단번에 애널 끝 성감대를 찔렀다. 갑자기 거대한 기둥을 삼킨 애널이 움찔거리며 경련했다. 올라간 허리가 공중에서 바들거렸다. 박승혁이 양쪽 허리를 잡고 더 위로 쳐들었다. 경련하는 내벽에 박승혁은 인상을 찡그리면서도 고개를 갸웃했다. 그 머릿속엔 온통 쾌감에 관한 생각밖에 없었다.
“왜 더 좁아졌지.”
“아윽······”
“잠깐 빼냈다고 그새 좁아졌나······”
“박승, 박승혁, 잠깐.”
“이젠 빼면 안 되겠네.”
“허리 조금만- 아!”
허리를 더 세게 움켜잡고 위로 쳐들었다. 침대에 닿아 있던 어깻죽지마저 떨어지고 허리는 완전한 아치를 그리며 위로 둥글게 솟았다.
“자, 허리 더 올려줬다.”
“아윽, 아, 니······”
박승혁은 허리 아래에 허벅지를 넣어 허리를 고쳐 잡은 다음 다시 빠르게 쳐올렸다. 땀범벅으로 축축한 몸이 서로 부딪히며 한참 전부터 달아오른 분위기에 맞게 척척한 소리를 냈다.
허리를 완전히 젖히고 성기를 받아들이는 일은 생각보다 적나라하고 체력적으로도 고됐다. 얼굴에 땀방울이 맺히고 쾌감에 교성을 질러댔다. 허리가 솟은 만큼 성기도 더 수월하게 내벽 끝을 찔러댔다.
“아, 악, 아아, 아!”
처음엔 휘어진 허리에 고통스러웠던 지훈도 이젠 쾌감을 더 느끼고 받아들였다. 솟은 허리가 더 아치를 그리며 높아졌다. 허리가 높아질수록 침대 끝에 닿은 머리도 뒤로 꺾였다. 격렬한 움직임에 조금 전부터 아슬아슬했던 넥타이가 점점 내려가 시야를 밝혀줬다.
“어, 억······”
내려간 넥타이 사이로 눈동자가 드러났다. 흐릿해진 시야로 벽이 보이며 정수리가 침대에 닿는 게 느껴졌다. 벌려진 입은 다물 생각조차 못 하고 앓는 소리를 그대로 뱉어냈다. 완전히 기립한 성기가 빠른 움직임에 맞추어 흔들렸다.
본능적으로 성기를 편하게 받아들이기 위해 두 손을 올려 바닥을 짚고 고정했다. 바닥을 짚은 손가락이 굽어지며 손톱을 세웠다.
박승혁도 움직임을 알아차리고 더 빠르고 강하게 피스톤질을 했다. 굽힌 허벅지가 펴지며 허리를 더 끌어 올렸다. 귀두가 전립선에 더 쉽고, 깊게 닿으며 엄청난 쾌감을 선물했다. 동시에 내벽이 꽉 조여져 박승혁도 입술을 떨었다.
“아으, 응, 아, 아, 아! 아! 아!”
“흑, 읏, 으-”
바닥을 짚던 손을 들어 제 머리를 움켜쥐었다. 고개를 옆으로 돌리자 관자놀이에 따뜻한 게 흘러내렸다. 벌린 입에서도 고였던 침이 한 줄기 새어 나왔다. 입에서 억, 억, 하고 짐승 같은 소리를 뱉어냈다. 새하얗게 변한 머릿속에 짐승처럼 소리를 지르는 자신이 낯설게 다가왔다가, 저처럼 짐승 같은 숨소리를 내뱉는 그에게 왠지 모르게 안심되어 내질렀다.
“억, 어, 으응, 읏, 아, 안에, 이상, 해.”
“왜, 허억, 헉, 아까 싼 거?”
“아니, 아, 니, 이상······ 아, 앙.”
속이 이상했다. 허리를 휜 채 굵은 성기가 박히는 대로 흔들리고 있는데, 정신이 나갈 것처럼 엄청난 쾌감 속에 이상한 울렁거림이 느껴졌다. 아랫배가 간질거리고 울렁대면서 뭔가 가득 찬 것 같고, 그게 금방이라도 흘러내릴 것 같은 이상한 느낌. 그게 요의라는 걸 알아차리고 나선 당황해 제 머리를 움켜쥔 손을 놓고 아래를 휘저었다.
“잠깐, 진짜 잠, 응, 깐만, 아, 아.”
귀찮았던 박승혁은 손을 밀어내고 다시 허리를 움켜잡았다. 성감대를 찔릴수록 올라오는 사정과 다른 느낌에, 지훈이 아연하여 다급하게 외쳤다.
“화, 화장, 실, 좀, 씹- 으, 응, 응-”
“여기서 싸.”
“개소리, 잇, 아, 아! 아! 아!”
휘어진 허리에 갈비뼈가 드러났다. 제대로 먹은 것 없어 뱃가죽만 남은 배에 성기가 드나들 때마다 불룩해졌다 꺼지기를 반복했다. 박승혁에겐 얼굴이 보이지 않고 턱만 보이는 자세였지만, 뱃가죽만 봐도 자극적이었다. 이를 악물고 더 빠르게 허리를 쳐올렸다. 성기가 뱃가죽을 뚫을 것처럼 처박아댔다.
퍽.
내장까지 찔렀나 느꼈을 때, 기립한 채로 흔들리던 성기 끝에서 멀건 액체가 튀어나왔다. 불투명한 정액은 아니었다. 박승혁이 움직임을 멈추었다.
액체가 몇 번을 더 울걱거리며 배를 더럽히더니, 마침내 멎었다. 머리가 하얗게 터질 정도로 강한 쾌감과 수치심에 지훈의 벌려진 턱이 덜덜거렸다. 제 머리를 쥔 손으로 눈을 반쯤 가리고 있던 넥타이를 밀어 올렸다. 흐릿하다 점점 밝아진 시야엔 별실이 보였다. 별실 내부가 보이자 기분이 더 더러워 욕설을 내뱉었다.
“씨발······”
“다 쌌어?”
고작 세 음절에 더 달아오른 욕정이 담겨 있었다. 여기서 더 달아오를 게 있나 하는 생각이 스치자마자 쾌감이 등골을 타고 올라왔다. 갑자기 쳐올리는 움직임에 온몸이 어지럽게 흔들렸다.
“-아, 아, 왜, 씹, 그만, 아, 아.”
“아직, 안 갔으면서, 큭······”
“갔어, 갔, 다고, 씨발, 악! 아아! 아!”
공격적으로 온몸을 관통하는 성기에 목에 핏줄이 설 정도로 소리를 질렀다. 교성 섞인 욕설이 색스러웠다. 박승혁의 입꼬리가 높이 솟았다. 스스로 쏟아낸 정액과 멀건 액체로 범벅이 된 단정한 청록색 정복이 소름 끼치게 자극적이었다. 약과 상관없이 욕정이 끓어오르게 하는 광경이었다.
액체를 뿜어낸 성기가 여전히 기립해 허리 짓에 맞추어 꺼떡댔다. 박승혁이 미친 듯이 박아 댈수록 점점 더 부풀어 올랐다. 침을 흘리며 교성을 지르는 지훈의 얼굴이 이마까지 붉었다.
“어억, 어······”
나중엔 소리조차 나오지 않았다. 지훈은 입을 벌린 채로 소리 없이 쾌감을 온몸으로 느꼈고, 박승혁도 더 속도를 높여 절정으로 달려갔다. 쭉 뻗은 다리가 하릴없이 흔들렸다. 다리 끝 발가락은 잔뜩 오므라져 있었다.
“흐윽······”
박승혁이 한숨 쉬듯 신음을 냈다. 동작을 멈추며 좁은 내부에 정액을 사출하자, 아치로 휜 허리가 파르르 경련했다. 꼿꼿하게 선 성기에서도 정액이 분출했다.
물러서지 않고 내부 끝까지 성기를 박은 채로 정액을 모두 애널 안에 쏟아냈다. 격렬한 행위를 하며 밖으로 흘러나온 정액이 무색하게 다시 애널 안을 제 것으로 가득 채웠다. 채 못 채워진 정액이 바깥으로 밀려 나와 엉덩이골을 타고 이불에 떨어졌다.
“허억, 허억······”
안 그래도 좁은 애널에 가득 들어찬 성기 탓에, 정액이 내장을 뚫을 것처럼 깊게 들어왔다. 지훈은 정신 나간 사람처럼 멍한 얼굴로 침대에 얼굴을 돌려 누운 채로 쌕쌕거리며 산소를 들이마셨다.
“콜록, 콜록.”
급작스럽게 다량의 산소가 들어간 목구멍이 기침을 토해냈다. 그제야 흐릿한 시야가 맑아지며 머릿속도 점차 돌아왔다. 박승혁이 뒤로 물러나며 지훈의 허리를 펴줬다. 몸이 딸려 내려가며 허리와 뒤통수에 푹신한 이불이 닿았다.
뒤로 더 물러난 박승혁은 손을 뻗어 협탁에 놓인 플라스틱병을 쥐었다. 한참 전 지훈이 자신에게 먹였던, 약을 탄 소주였다. 한 모금 입에 물곤 내려놨다. 그리곤 눈을 감고 콜록대는 지훈의 얼굴에 대고 입을 맞췄다. 반은 바깥으로 흐르고, 반은 입안으로 들어가 목구멍을 타고 내려갔다. 쓴 알코올에 눈썹을 찌푸렸다. 알코올이 타고 내려가는 식도가 홧홧했다.
“지훈아.”
이미 넥타이는 벗겨졌어도, 손등으로 눈을 가리고 있어 서로 볼 수 없었다. 이름을 부른 건 할 말이 있어서라기보단 워낙 감도가 강했기 때문에 기절한 줄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깨어나라고 목을 축여준 거고. 그게 술이든, 약을 탄 액체이든 상관없다. 지금 박승혁에겐 지훈을 기절하지 않게 하는 게 가장 큰 목표였다.
지훈은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입술을 훑으며 응, 하고 기척을 냈다.
“허리 아파?”
대꾸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박승혁이 눈을 가린 손목을 잡고 옆으로 치우자, 붉게 달아오른 눈가와 눈물범벅이 된 눈이 드러났다. 약에 취한 와중에도 셀 수 없이 정액을 쏟아내서인지, 허리를 흔들어서인지 이젠 약 기운은 제법 가신 듯하다. 몸은 아직 가라앉을 생각이 없지만.
지훈의 눈에서 애잔함을 느낀 박승혁이 손바닥으로 볼을 쓰다듬었다. 완전히 지친 얼굴이 천장을 보며 색색거렸다.
볼을 쓰다듬은 손은 달라붙은 머리카락을 떼어냈다. 붉은 눈가를 손가락으로 부드럽게 쓸었다. 고개를 숙여 목덜미에 입술을 대 빨아들였다. 살냄새에 땀 냄새가 섞여 달큰했다. 키스 마크를 새기며 더 깊게 빨아들이자, 익숙한 냄새도 희미하게 맡아졌다. 바디 워시 향이었다.
겨우 가라앉던 약 기운이 다시금 올라오는 것 같다. 부드러웠던 눈매가 서늘해졌다.
낮에, 별실에 들어가더니 한참 뒤에 나온 명준은 예의 그렇듯 박승혁에게 걸어와 그 옆에 섰다. 드디어 밥을 먹었나 싶었던 박승혁은 고개만 까딱했다. 익숙하지만 지금 상황에선 어울리지 않는 듯한 냄새를 맡은 건 조금 뒤였다.
인상을 찌푸리며 옆을 흘깃거렸다. 명준이 작게 동요하는 게 느껴졌다. 군데군데 작게 얼룩져 젖어 있는 옷 하며 그 태도까지, 그냥 넘어갔던 것도 생각났다.
그의 빈손. 분명 식사가 든 비닐봉지를 들고 들어갔었는데, 빈손으로 나와 제 옆에 섰다. 평소라면 비닐봉지를 그대로 들고나와 먹었냐고, 먹었다면 얼마나 먹었는지를 물어보고 확인했었는데 빈손이라 미처 생각을 못 했다.
거기다 명준에게서 나는 향은 희미하지만 분명 바디 워시 향이었다. 별실 욕실에서 쓰는 바디 워시. 정확히는 지훈의 집에서 쓰는 제품이었다.
몇 개월 전 박승혁의 복층 오피스텔에서 같이 살 때 대화하며 우연히 알게 되었고, 박승혁은 같은 제품을 구매해 오피스텔과 별실에 두게 했다. 자기 자택엔 두지 않았다. 지훈이 발을 들여놓은 곳에서만 그 향이 돌게 하고 싶었다. 자택은 명준을 비롯한 부하들이 불규칙하게 드나들기도 해 경찰인 지훈에게는 하등 좋은 점이라곤 없었다. 지훈과는 개인적인 공간에서만 만나도 충분했다.
그런 별실에서, 혹은 오피스텔에서만 쓰이는 바디 워시 향을 제삼자가, 그것도 저를 오래 모신 부하가 풍기니 기분이 이상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뭐냐고 묻기보다 강한 궁금증이 들었다.
별실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늘 들어갈 때나 나올 때나 들고 있던 식사가 든 비닐봉지는 없다. 평소와 달리 한참 있다가 나오더니, 빈손인데다 조금 젖은 몸에서는 저와 지훈에게서만 풍기던 바디 워시 향까지 희미하게 풍긴다.
순간 다른 의미의 ‘허튼짓’이 생각났으나 명준의 성적 취향을 분명히 알고 있고, 그가 자신을 얼마나 충성스럽게 오랫동안 모시고 있는지 아는 박승혁은 추궁하기보다 질문을 택했다. 서류에 시선을 고정한 채 물었다.
“…목욕이라도 시켰냐? 냄새나서?”
“경위님이 찝찝하다고 먼저 씻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넘어지셔서······”
삶에 대한 의욕 없이 인형처럼 늘어져 있다가 왜 씻고 싶다고 했겠나. 당연히 명준의 입에서 부검했다는 말이 나와서겠지. 나를 만나서 어떻게 해보려고 했겠지. 씻으려고 한 의도는 이해한다. 거기까진 자신도 예상했다.
그런 같잖은 수를 쓴 게 짜증이 나는 거다. 그리고 그 같잖은 수에 질투심을 느끼고 있다는 것 또한.
펜을 쥔 손등에 핏줄이 불거졌다 사라졌다. 알아본 명준이 먼저 이실직고했다.
“먼저 헹궈달라고 하셔서 샤워기만 들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부축 잠깐 해드렸고요. 형님이 생각하시는······”
“나도 알아. 이지훈이 먼저 머리 쓴 거지.”
고개를 젖히며 본 명준의 얼굴은 의아한 표정이었다. 박승혁도 구태여 더 설명을 붙이지 않았다. 그리고 한 시간 후, 지인과의 약속 자리를 앞두고 명준은 또 저를 놀라게 했다. 지훈이 어떻게 나올지 은근히 기대하긴 했으나 명준을 이렇게 움직이게 만들 줄은 몰랐던 박승혁은 더러우면서 어이없어 웃음이 나오는 걸 참아야 했다.
* * *
바디 워시 향을 맡자마자 그때를 떠올리던 두 눈에 안광이 사라졌다.
불여우 새끼. 애널 안에 꼬리 아홉 개 숨겨 놓은 거 아니냐.
별안간 보기 좋기만 했던 목 끝까지 단추를 채우고, 넥타이를 맨 정복 셔츠가 보기 싫었다. 목에서 입술을 떼어 상체를 폈다. 혀를 내밀어 입술을 훑었다. 살이 빠져 마른 허벅지를 훑다 틀어잡고 위로 올렸다. 성기는 여전히 애널 안에 자리하고 있다.
지훈이 신음을 내어 불편함을 호소했다. 박승혁은 아랑곳하지 않고 다리를 계속 잡아 반으로 접듯이 올려붙였다. 허리가 안으로 휘어지며 반으로 접혔다.
“윽, 아읏, 아······”
허리가 아파 비틀대다 내벽을 밀어 찌르는 야릇함에 입을 벌려 헐떡댔다. 허리가 반으로 접힌 것도 아픈데, 위에서 무게를 실어 누르니 엄청난 압박감이 느껴졌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생각에 지치면서도 몸속을 도는 약 기운이 기대감을 품게 했다. 발목을 잡아 얼굴에 곧 닿을 거 같이 위에서 누르는 얼굴이 사냥개처럼 보였다.
두려워하는 얼굴에 대고 박승혁이 말했다.
“조금만 참아. 이것만 하고 화장실 데려가 줄게.”
“아니, 됐어. 그건 아까······”
“덜 싼 거 같던데.”
“아니라고, 씹······”
발목을 잡은 손을 풀어 얼굴 양옆에 놓았다. 위에서 내리꽂듯이 성기가 수직으로 애널에 들어갔다 나왔다. 느린 움직임에도 지훈의 얼굴이 금세 붉어졌다. 입술을 깨물어도 내장을 밀어내듯이 성감대를 찌르고 빠져나가는 움직임에 신음을 참을 순 없었다.
“으, 음, 자, 잠깐만.”
천천히 들어갔다 나가니 오히려 기분이 이상하다. 침을 꿀꺽 삼켰다. 느리게 내벽을 쓸고 들어와 성감대를 건드리고 다시 내벽을 쓸고 나가는 기둥이 이상야릇하면서 아쉬워 입술을 앙다물고 고개를 돌렸다. 입을 열면 더 빠르게 해달라고 할 것만 같았다.
아래는 본능에 충실하다. 혼란스러워하는 제 주인과 달리 애널은 오물거리며 성기를 삼켰다. 서서히 조여드는 느낌에 박승혁이 씩 웃으며 속도를 올렸다. 안으로 훅 들어갔다 미끄러지듯 나오는 움직임이 리드미컬했다. 찌걱대는 소리가 빨라졌다.
“읏, 흐, 으, 응.”
“자, 빨리하니까, 좋지?”
“아, 으, 으, 응, 허리 아파, 씹.”
“아파? 어?”
입술을 씹었다 놓는 표정이 어쩐지 짜증 나 보인다.
“같잖은 수작 부려서, 약까지 먹였는데, 헉, 각오했어야지.”
아. 그것 때문에 심술부리는 건가. 어쩐지 약발은 서서히 가시고 있는 거 같은데, 왜인가 했네. 분명 꽤 처넣었는데 괴물 같은 새끼. 계속 드나드는 성기가 힘들면서 오싹하게 좋았다. 비웃듯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잘 씻기더라.”
“······”
“너보다 잘, 윽, 씻겨주던데.”
귓가에 찌걱대는 소리가 문득 멀리서 들리는 것처럼 현실감 없었다. 성기는 같은 속도로 들어오고 나가는데, 눈앞의 얼굴은 차갑게 굳어가서인지도 모른다.
“다음부턴 떡 치고 명준이한테 씻겨달라고 해야, 엑, 응.”
갑자기 입에 들어오는 이물질에 말이 이상하게 끊겼다. 박승혁이 지훈의 와인색 넥타이를 잡고 입안에 구겨 넣은 것이다. 입안 가득 천을 물게 된 지훈이 그를 노려봤다.
순간 박승혁의 한쪽 뺨이 떨려 보였다. 귀두 끝이 애널 입구에 걸리도록 빠져나갔다 한 번에 무게를 실어 끝까지 들어오기 직전에 스치듯 떠오른 생각이었다.
“-으응!”
턱이 아프도록 넥타이를 깨물었다. 저절로 오므라든 발가락이 공중에서 빳빳하게 굳었다. 튕겨 올라간 다리를 박승혁이 발목을 잡아 눌렀다. 아무것도 안 해도 힘든 자세에 엄청난 무게와 성기까지 받아 내어 금방 피로감이 물들었다. 이마에 땀방울이 맺혔다.
발목을 잡아 누른 박승혁은 마음껏 성기를 아래로 박았다. 무게를 실어 빠르게 들어갔다 나갈 때마다 오싹한 쾌감이 두 사람의 머리를 찧었다. 골반이 둔부를 철썩거리며 때렸다.
찌걱거리는 소리 외에도 땀에 젖은 살이 부딪히는 축축한 소리가 별실을 가득 메웠다. 거친 숨소리와 웅얼대는 소리가 불규칙하게 뒤섞였다. 굵은 기둥이 아래로 처박힐 때마다 내벽이 뚫려버리는 끔찍한 상상이 들었다.
“으, 응, 잇, 익, 잇, 아흐(아프), 흐, 힉.”
스스로 뭐라 중얼거리는지도 몰랐다. 입에 구겨 넣어진 넥타이를 깨물고 앓는 신음을 마구 내뱉는 입술 아래 목덜미가 벌겋게 핏발이 섰다. 숨을 참는 것처럼 빨갛다 못해 익어버릴 것 같은 목.
그걸 보는데 이상하게 그때가 떠올랐다. 여기서, 같은 침대 위에서 폭력적인 정사를 행했던 때가.
내리꽂듯 성기를 아래로 처박는 움직임에 눈을 질끈 감고 입술을 강하게 씹은 채로 신음도, 숨도 참았던 얼굴이 눈앞의 모습과 겹쳤다.
순간 짐승 같은 소리를 내뱉으며 발목을 붙들었던 손을 놓아 목을 잡았다. 눈물 맺힌 채 감겨 있던 눈이 갑작스러운 행동에 흠칫거리더니, 가늘게 떠졌다. 이유 모를 안심이 들었다.
넓은 손바닥이 목을 감싸 힘을 주었다. 어윽, 이상한 소리를 내며 넥타이 문 입술이 벌려졌다. 고인 침이 볼을 타고 내려갔다. 눈에서도 눈물이 관자놀이로 흘러내려 갔다. 한쪽 볼이 경련하며 더 세게 피스톤질을 했다.
분명 약 기운은 가시고 있는데, 다른 욕정이 그 자리를 메우며 올라왔다.
“허윽, 흐, 윽······”
“으응, 으, 으, 읏.”
행위가 계속될수록, 목을 졸린 시간이 길어질수록 지훈은 스스로 이상해지는 것 같은 착각이 일었다. 숨은 막히는데 속을 뚫을 듯이 찌르는 성기가 소름 끼치도록 좋았다. 더 자신을 후벼파고, 내벽을 헤집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스스로가 낯설었다. 이게 약발 탓인지, 그냥 자신이 변태라서 그런 건지 모르겠다.
위험해. 위험하다. 너무 힘들다. 하지만 아직 부족해. 더, 더 해줘.
목을 조르느라 자유로워진 두 다리가 양옆으로 벌려졌다. 창부처럼 두 다리로 허리를 감싸 안고 비빈 다음 힘껏 조였다. 내벽처럼 허리를 조이자 박승혁이 입술을 떨었다. 짐승처럼 변한 얼굴이 좋다면 미친 걸까.
지훈의 눈이 점차 풀려갔다. 어딜 보는지 모르게 멍해지는 눈빛에 박승혁이 허억, 하며 손을 풀었다.
“커흑, 응, 앗.”
지훈의 목구멍에서 소리가 터져 나왔다. 박승혁이 이를 악물고 절정을 향해 달려갔다. 풀린 목구멍에서 뇌를 거치지 않은 소리가 마구 튀어나왔다.
“아, 앙, 좋, 아, 아윽, 미치겠, 어.”
“좋아? 어? 더 쑤셔줘? 헉.”
“응, 더, 컥, 더, 해줘, 세게, 아, 악.”
“씨발······”
눈물과 침과 땀범벅이 된 얼굴이 온통 욕정에 사로잡혀 내뱉는 게 최음제처럼 달았다. 한껏 벌려져 가학성을 자극하는 말을 내뱉는 저 입을 제 것으로 가득 채우고 싶었다. 물기 서린 교성과 신음이 허리 짓을 더 빠르게 만들었다.
성기 움직임에 따라 들썩대는 허리가 아파도 그것조차 쾌감으로 느껴졌다. 지훈은 스스로 뭐라 말하는지도 모른 채 음탕한 말을 계속해서 지껄였다.
“이, 지훈, 씨발.”
“빨리, 응, 빨, 리, 쑤셔, 잇, 익, 힉.”
“흐읏······!”
사정하기 직전, 박승혁이 성기를 확 빼냈다. 딸려 올라간 허리가 공중에서 경련하며 떨렸다. 성기를 빼낸 박승혁이 제 것을 쥐고 한 발짝 다가갔다. 지훈의 얼굴에 대자마자 참았던 정액이 터지듯 전부 쏟아져 나왔다. 소리 없이 절정에 달한 얼굴에 뿌연 정액이 흩뿌려졌다.
“아으, 으, 읏······”
허리를 움찔움찔 튕기며 입술에 묻힌 정액을 혀로 훑는 모습이 정신 나갈 정도로 색정적이었다. 사정하자마자 아래가 다시 저릿하며 딱딱해져 갔다.
“흐윽?”
멱살을 잡고 끌어올리는 손짓에 놀란 지훈이 감탄사를 뱉었다. 눈을 뜨려고 해도 정액이 묻어 실눈만 뜨고 말았다. 자신을 잡고 침대 아래로 끌어 내리는 대로 따랐다.
박승혁은 지훈을 서게 한 다음 그를 뒤에서 끌어안았다. 허리를 끌어안은 다음, 넥타이부터 풀어 바닥에 던졌다. 좀 전부터 거슬렸던 정복 셔츠를 풀기 시작했다. 처음엔 단추를 풀어보더니 귀찮았는지 잡고 뜯듯이 당겼다.
단추 하나가 투둑 떨어져 바닥에 소리를 내며 굴렀다. 이게 훨씬 더 빠르다. 아예 단추와 단추 사이에 손가락을 집어넣어 양옆으로 벌렸다. 단추 여러 개가 바닥에 떨어져 굴렀다.
다 풀었다, 라고 생각하자마자 어깨를 잡아당겼다. 맨 아래 단추 두 개가 아직 잠긴 채인 것도 몰라 팔 부분이 벗겨지다 말았다. 짜증이 나 욕설을 뱉었다.
“씨발.”
감금되는 동안 더 말라진 몸이 정복 셔츠 안에 공간을 남겼다. 박승혁이 남은 공간만큼 셔츠를 잡아 아래로 당겼다. 투두둑, 어깨선이 터지며 분리되었다. 계속 눈을 감고 있어 그가 하는 대로 서 있던 지훈이 아연실색해 소리쳤다.
“씹, 미쳤어!”
약 기운이 돌아도 한 번 절정에 달했고, 반 모금만 마셔서 이게 뜯어지면 안 되는 정복 셔츠라는 생각 정도는 할 수 있었다. 벌써 골치가 아파 팔을 뜯어내는 손을 붙잡았다.
“하나 사줄게.”
“뭘 사, 이걸 어떻게······ 으윽······”
발기한 성기를 잡고 애널 입구에 눌렀다. 젖을 대로 젖은 애널이 성기를 수월하게 삼켜 먹었다.
“알겠으니까 물고 있어.”
“뭔 개소리, 야······”
약으로 달구어진 몸이 기쁘게 성기를 받아들였다. 애널이 성기에 들러붙는 것처럼 딱 맞게 조여들었다. 박승혁이 한숨을 내쉬며 지훈의 등을 숙이게 하고, 마저 옷을 벗겨냈다. 옷‘이었던’ 천이 엉망이 된 채 바닥에 엎어졌다.
완전히 발가벗은 두 나신이 틈새 없이 달라붙었다. 박승혁이 지훈의 등에 상체를 꼭 붙인 채로 나른한 한숨을 내쉬었다. 이거지. 이게 내가 원하던 느낌이다.
몇 번이나 정액을 담아낸 내부는 더 부드럽고 따뜻했다. 상체를 숙여 어깨에 입술을 묻고 이곳저곳에 입을 맞추다 한 곳에 멈추어 깊게 빨아올렸다.
셔츠에 가려져 못했던 걸 다 풀어내듯이 여러 개의 키스 마크를 새기며 손을 앞으로 해 유두를 만지고 배를 쓸자, 성기를 가득 담고 있는 내부가 움찔거리는 게 느껴졌다. 배를 쓸던 손이 성기를 쥐었다. 성기가 반쯤 기립해 있었다.
“음.”
“하아······”
지훈이 입술을 안으로 깨물었다. 단전에 열이 올라 애널에 힘을 주었다. 박승혁이 작게 신음하며 오므린 다리 사이에 발을 넣고 벌리게 했다.
성기를 쥐고 몇 번 쓸어올리고 내리다 끝을 눅진하게 비볐다. 좁은 내부가 더 조여졌다. 더는 못 참을 것 같아 성기를 쥔 손을 놓음과 동시에 두 팔을 틀어잡았다. 팔을 잡고 뒤로 당김과 동시에 다시 행위가 시작되었다. 끊어졌던 신음도 다시금 별실에 울렸다.
“아, 하으, 응, 으, 아, 조, 좀, 아, 앙.”
머리에 피가 쏠렸다. 안 그래도 붉어진 얼굴이 더 새빨개진 것 같다. 허리가 완전히 구십 도로 꺾여 아래만 보는 머리가 덜컹덜컹 흔들리는 듯했다. 열기 때문인지, 머리에 피가 쏠려서인지, 쾌감 때문인지 어지러웠다.
시야 끝에 욕실 문턱이 흐릿하게 보였다. 철떡대며 둔부에 살이 리드미컬하게 달라붙다 떨어졌다.
“하아, 흣, 윽.”
박승혁이 허리 짓에 따라 흔들리는 뒤통수를 보다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둔부가 제 것을 차지게 잡아먹다 내뱉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씹······”
강한 움직임에 삐져나온 정액이 찐득한 윤활제 역할을 해주고 있었다. 둔부가 골반에 부딪혔다가 멀어질 때마다, 얇은 실선이 이어지다 떨어졌다.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다, 헉, 흘러나오고, 있어.”
“으, 응?”
말을 하고 나서야 입술을 얕게 떨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다 흘, 리고, 있다고······”
“어, 응, 흐, 으.”
이미 눈물과 침을 바닥에 뿌리며 쾌감을 받아 내던 지훈이 멍하게 대꾸했다. 박승혁이 뭐라 말하는지도 몰랐고, 쉬어버린 목에서는 쇳소리가 나왔다.
사정감이 가까워져 왔다. 딱히 대답을 바란 것도 아니었던 건지, 박승혁은 이를 악물고 피가 안 통할 정도로 손목을 움켜쥐고 더 빠르게 성기를 쳐올렸다. 지훈이 애타게 말했다.
“아, 아, 앗, 빠, 빠르- 아, 아아! 아!”
“흐윽······”
찡그린 미간 사이로 땀방울이 내려갔다. 마지막 스퍼트를 올리다 한계까지 갔을 때, 박승혁이 신음을 토해내며 허리를 뒤로 갑자기 빼냈다. 성기가 단번에 빠져나가며 참았던 정액을 전부 분출했다. 동시에 지훈도 내내 아래를 보던 고개를 꺾으며 교성 같은 비명을 질렀다.
“-아악!”
젖혀진 고개가 바들바들 떨렸다. 자기 성기에서도 정액이 사출된 걸 모를 정도로 엄청난 쾌감이었다. 고개를 꺾고 꺽꺽댔다.
박승혁도 그제야 손목을 놓고 허리를 부드럽게 잡았다. 이제 그의 몸에 약 기운이라곤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지훈은 손에 희미한 감전이 흐르는 것처럼 찌르르 울리는 걸 느꼈다. 펼쳐보자 피가 안 통했던 손이 온통 노랬다. 손목에는 손자국이 붉게 남아 있었다.
“하아······”
한숨이 나왔다. 경련하듯 떨리는 손을 뻗어도 욕실 문고리는 아슬아슬하게 닿지 않았다.
박승혁은 지훈의 허리를 잡은 채로 몇 걸음 물러나 머리를 숙였다. 애널에 담겨 있던 정액이 강한 피스톤질로 거의 나와 애널 입구를 더럽히고 있었고, 박승혁이 절정에 달하는 순간 성기를 단번에 빼내느라 분출된 정액이 둔부와 허벅지를 적셔 있었다.
은밀한 부위가 자신이 뱉은 불투명한 정액으로 점철된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다시 가학성이 들끓었다. 속으로 욕을 하며 입술을 깨물었다. 날카롭게 뻗은 두 눈이 더 가늘게 좁혀졌다.
지훈이 눈을 반쯤 감고 길게 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침대에서 셀 수 없이 뒹굴어 놓고, 기어이 서서도 해버렸다. 사실 이 바닥에서도 처음 박승혁이 이성을 잃고 같이 나동그라졌을 때 두 번 했지만.
한 시간만이라도 자고 싶다. 지훈도 완전히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약 기운이 가시고 있었다. 조금만 몸을 가라앉히고 화장실에 들어가고 싶었다. 아래에 힘을 주는 건 이미 포기했다. 하반신이 축축한 느낌이었다.
약 기운이 가신 만큼 잠이 쏟아져 몽롱했다. 서서 반쯤 졸던 지훈이 의문 섞인 신음을 냈다. 애널 입구에 무언가 지분거리는 감각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게 무엇인지 알기도 전에 굵은 손가락이 애널 입구를 벌리며 다시 단단한 기둥이 침입했다. 순간 이게 뭔가, 싶어 고개를 갸웃했다.
“으, 으음-?”
갑자기 뒤에서 팔이 틀어 잡혔다. 정신 차릴 새도 없이 양팔이 뒤로 꺾이며 넘어갔다. 박승혁이 양팔 밑에 손을 넣고 뒤로 돌려 어깨를 잡은 것이다. 완전히 뒤로 꺾인 손이 힘없이 축 처져 덜렁거렸다. 팔은 어깨를 틀어잡은 손에 의해 받쳐져 옴짝달싹할 수 없게 됐다.
“헉, 왜, 응, 으, 으-”
“아직 약발 남았잖아.”
“아니, 아니, 야, 으응.”
또다시 행위가 시작되었다. 이젠 끝날 때가 된 거 같은데, 또 자신을 움직이지 못하게 구속한 자세에서 성감대를 찔러대는 통에 지훈은 하릴없이 그가 움직이는 대로 몸을 흔들었다.
귀두가 성감대와 성감대가 아닌 곳을 번갈아 가며 불규칙하게 찔러댔다. 허리를 조금씩 움찔거리며 눈을 찡그렸다. 쾌감보다 너무 힘들어서 신음이 절로 나왔다. 애원 조로 중얼거렸다.
“하, 아, 진짜, 진짜 그마, 안······ 헉, 으.”
농담이 아니라 정말 힘들다. 그런데 약 기운이 아직 남은 몸은 반대로 동해 같이 허리를 움직였다. 몽롱한 머릿속은 그만하라고 소리치거나 화낼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두 팔이 완전히 뒤로 꺾여 구속된 상태에서 내벽이 찔릴 때마다 달뜬 숨을 쉬었다. 조금 전과 다른 점은 손목을 잡지 않고 팔 밑으로 손을 넣어 어깨를 잡고 끌어당겨 상체가 더 세워졌다는 점이었다.
졸음과 쾌감에 야릇해진 얼굴이 묘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고개를 돌려 지훈의 얼굴을 힐긋거린 박승혁이 작게 웃었다.
세 번째 행위가 끝난 건 한참의 시간이 흐르고, 박승혁이 계속 엉뚱한 곳을 찌르다 정확히 성감대를 찔렀을 때였다. 순간 허리가 크게 튕겼다. 비스듬한 대각선 자세로 흔들리던 허리가 순간적으로 튕기며 수직으로 세워졌다. 입에서도 명백한 교성이 단말마로 튀어나왔다.
“-아응!”
다시 내부에 정액이 가득 차올랐다. 성기로 가득 찬 내벽 사이사이에 정액이 물드는 듯했다. 이러다 내장까지 차오르는 건 아닐까, 아, 이미 차올랐나. 입 밖으로 나오려나······ 지훈이 몸을 곧추세우며 같이 젖혔던 머리를 푹 숙였다. 완전히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금방이라도 기절할 것만 같았지만 정신력으로 버텼다. 기절하면 안 된다. 정신을 놓으면 절대 안 된다. 그럼 창부처럼 그를 유혹하고, 약을 탄 술을 먹인 수고가 물거품이 되고 만다.
“하아, 하아······”
박승혁은 피곤과 졸음에 찌든 숨소리를 듣고 어깨를 잡은 자세를 유지한 채 가만히 있었다. 시간이 흐르고 피곤과 졸음에 찌든 숨소리가 느려지고 일정해졌다.
박승혁은 어깨를 잡은 손을 풀었다. 지훈의 몸이 앞으로 넘어지기 전에 얼른 허리를 감아 끌어당겼다. 인형처럼 축 처진 몸을 끌어안은 그가 아래를 살폈다. 지훈의 성기는 주인처럼 축 처져 있었다. 마지막 정사 땐 채 세워지다 만 듯했다.
박승혁이 눈썹을 찡그리며 짧게 혀를 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