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장 (5/16)

5장

경찰서를 나서는 발걸음이 느렸다. 지훈은 하늘에 대고 시원하게 하품했다. 능청스럽게 하품한 얼굴이 좌우로 꺾이며 짧은 스트레칭을 했다.

해가 질락 말락 하는 시간대다. 보통이라면 이 시간대에 퇴근할 수 없으나 기분이 좋진 않았다. 그도 그럴 듯이, 원래대로라면 오늘 출근하는 날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오늘은 비번이다. 하지만 일이 생겨 오후에 잠깐 출근했다. 이유는 자신이 검거한 수배범 때문이었다.

이틀 전 수배범을 강력팀에 넘기고 상황설명을 짧게 한 다음 박승혁과 식당에서 늦은 저녁 식사를 했었다. 식사하며 왜 내일 못 만나는지 - 지훈에게는 별것도 아닌 - 이유를 듣고, 오늘도 늦은 저녁이 되어서야 만날 수 있다고 들었다. 

그때는 내심 아쉬웠어도, 오늘 어차피 서에 출근해야 하니 상관없구나 싶었다. 박승혁과 아침부터 붙어있었다면 제시간에 못 나왔을 것이다. 

강력팀에 인계된 수배범은 다시 다른 서, 그러니까 지훈이 작년까지 근무했던 서의 강력팀으로 인계될 예정이다. 그곳에서 중단됐었던 수사를 이어 나갈 거고, 마무리되면 도주 혐의까지 포함해 검찰로 넘길 거다. 새삼 자신이 이제 더는 강력팀 형사가 아니라는 게 느껴졌다. 본인이 직접 검거했는데도, 이렇게 멀리서 지켜보는 게 어색했다.

이틀 전 폐건물에서 땀을 흘린 게 도움이 됐던 건지, 감기는 완전히 나았다. 이젠 기침조차 나오지 않았다.

오늘 오전, 강력팀에서 연락이 왔다. 수배범을 직접 검거한 경찰로서 검거 과정을 진술해달라는 요청이었다. 해당 서까지 가야 하는 줄 알고 좀 귀찮았는데, 다행히 아직 수배범을 인계하진 않아 이곳 서의 강력팀 사무실에서 해도 된다고 배려해줘 오후부터 지금까지 검거 과정을 진술하고 나오는 길이었다. 덕분에 발걸음은 여유롭고 느긋했다. 

수배범의 얼굴에 난 상처는 혼자 뛰어가다 벽에 부딪혔다고 했다. 수배범도 눈앞을 헤아리기 전에 후려 맞은 거라 자신이 왜 갑자기 기절한 건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고 한다.

해당 서까지 가야 했다면 난감했을 거다. 어쨌거나 지금 자신은 교통과의 교통 범죄 조사팀 소속이었으니까. 

강력팀 형사였다가 지금은 아닌 사람이 이전에 일하던 곳에 방문하는 것만큼 어색한 건 없었다. 아무리 서 내에서 동정여론이 불었다 해도, 저를 꺼리는 분위기가 팽배했던 곳이기도 하고. 별로 가고 싶지 않았다. 지금 교통과 사무실이 훨씬 편했다.

그래도 해당 서 강력팀에서 옛 동료들 몇은 오랜만에 연락을 하기도 했다. 소식을 들었고 덕분에 수사가 다시 진행된다고, 지금 잘 지내냐는 짧은 메시지도 반가웠다. 정보를 전해 줬던 막내 형사, 김준영에게서는 의외로 아무런 연락도 없었다. 바쁜가 보다 하고 넘겼다.

손목시계로 시간을 확인했다. 저녁 식사 시간이라고 하기엔 좀 이른 애매한 시간이었다.

‘박승혁한테 연락해볼까?’

오늘은 끝까지 자리를 지켜야 한다면서 늦을 거라고 했지. 조폭들이 이런 건 더 신경 쓴다니까. 전날 중요한 거래처랑 늦게까지 대작했다고 다음 날 더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한다니. 어이없으면서도 무슨 뜻인지는 알았다.

그래도 연락해서 괜찮으면 별실에서 쉬면서 기다리고 있을까. 저녁 먹기 전에 침대에서 한숨 자면 딱 맞을 거 같은데. 거기 침대도 넓고 편해서 좋은데······ 뒷덜미를 쓸며 경찰서 건물 앞마당에서 잠깐 서 있었다.

별실은 박승혁이 운영하는 대부업체 회사 건물의 사무실 옆에 자리한 곳이었다. 이사인 박승혁이 일하다 잠시 쉬기도 하고, 정사를 치르기도 하는 금단의 구역. 

지훈도 박승혁과 처음 사무실에서 만나 별실까지 들어갔다. 사무실에서 강압적으로 시작된 정사는 별실까지 이어졌었고, 그 끝은 지훈이 스스로 그 위에 올라가 허리를 흔들며 끝이 났다. 거기서 벌써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서로 연인이라는 단어로 묶이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경위님! 오늘 비번 아니세요?”

지나가던 동료가 지훈을 보고 아는 체를 해왔다. 잠깐 기억에 잠겨 있던 지훈이 놀라며 일이 있어 잠시 들렀다고 답하곤 인사하며 경찰서 출구로 걸음을 옮겼다.

아니다. 명준에게 연락해보고 지금 박승혁이 많이 바쁘냐고 물어볼까. 혹여나 지금도 다른 거래처랑 있다면 경찰하고 조폭이 연락을 주고받는다고 들킬 염려가 있었다. 

박승혁과 연인이 된 이후로 명준과는 더 연락할 이유가 없었다. 박승혁이 바쁠 때 명준이 대신 전달해줄 일이 있거나, 이렇게 애매한 경우일 때만 연락이 오고 갔다.

‘아, 철성······’

주변을 힐긋 쳐다봤다. 분명 이철성이란 자가, 박승혁이 저더러 수족처럼 부려도 된다고 일러준 자가 어디선가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말이 수족처럼 부려도 된다는 거지, 명준이 있는데 구태여 그럴 필요는 없다. 사람 붙여놨다는 말에 드는 반발심을 달래고자 붙인 말일 것이다. 그를 수족처럼 부릴 때가 온다면 정말 급한 상황이겠지. 그게 안 오기를 바랐다.

뒷덜미를 긁는 걸 끝으로 핸드폰 액정을 눌렀다. 명준에게 연락해보기로 고민을 끝냈다.

출구를 몇 미터 앞에 뒀을 때, 명준의 핸드폰 번호를 누르기 직전이었다. 지훈의 얼굴이 굳어갔다. 출구 옆에 익숙한 사람이 보였다. 앳된 남자가 지훈을 보고 화색이 돌았다. 

출구를 향해 걷던 발걸음이 절로 느려졌다. 지훈이 당혹감을 숨기지 못하고 속도를 늦췄다. 운동화 굽이 바닥을 소리 나게 긁었다.

“선배님. 안녕하십니까.”

김준영이 지훈에게 걸어오며 깍듯이 인사했다. 강력팀 막내 형사. 지훈에겐 준영이라는 이름보다 막내라는 이름이 더 편했다. 푹 숙였다 들린 얼굴이 초조해 보였다.

“오랜만입니다.”

“······어. 오랜만이다.”

결국 출구를 구분 짓는 선을 코앞에 두고 다시 멈췄다. 지훈이 넘기도 전에 먼저 성큼 다가와 선을 넘은 준영이 지훈에게 손을 내밀었다. 지훈도 손을 내밀어 짧게 악수했다. 원래 악수하는 사이도 아닌데, 워낙 오랜만에 만나 악수로 인사를 시작해야 할 것 같았다. 어색한 분위기가 전 애인과 재회하는 듯했다.

“잘 지내셨습니까?”

“어어, 그래. 웬일이야.”

“선배님께서 저희 팀에서 조사하던 수배범 검거해주시지 않으셨습니까. 인계 절차 밟으려고 잠깐 들렀습니다.”

“그래. 나도 진술하고 나오는 길이다. 그럼······”

“아, 근데 저, 일찍 와서 아직 여유 있습니다. 온 김에 잠깐 선배님 뵙고 싶어서요. 같이 차 한잔하시죠.”

“······”

“잠깐만 시간 내주십쇼.”

여기서 이러고 있으면 눈에 뜨였다. 여기서 나가 어디로든 이동하는 게 나았다. 지훈이 손짓하며 출구를 넘어갔다. 준영도 따라갔다.

예상치 못한 만남에, 멀리서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던 철성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어디론가 연락했다.

* * *

경찰서에서 긴 횡단보도를 사이에 두고 맞은편에 자리한 대형 프렌차이즈 카페에 들어간 두 사람은 따로 가림막이 쳐진 구석 자리로 들어가 앉았다. 평일 퇴근 시간 전이라 사람은 많지 않았다.

김준영이 내려놓은 커피 두 잔을 사이에 두고 두 사람은 한동안 말없이 앉아있었다. 지훈은 테이블 위 커피만 보며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몸은 많이 괜찮으십니까?”

“몸?”

지훈이 재킷 단추를 매만지다 놓았다.

“다친 적이 언젠데. 다 낫고도 남았어.”

“아······ 네. 다행입니다.”

또 침묵이 이어졌다. 치료를 끝내고 복직했을 당시에도 김준영은 모두가 다가가길 꺼리는 지훈에게 먼저 다가갔지만, 지훈이 의식적으로 그를 피했었다. 

박승혁의 눈에 띄게 하지 않기 위해서도 있었으나 꼭 그런 도의적 이유만은 아니었다. 친동생처럼 아껴 준 선배를 배신하고 납치되는 데 일조한 그를 아무렇지 않게 대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설사 그게 백가연에게 협박당해서 저지른 행동이었든.

준영은 한참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다 힘겹게 말을 꺼냈다.

“······저기, 예전에 그 일은-”

“완전히 그쪽으로 넘어간 거냐?”

“네?”

당황한 얼굴에 대고 지훈이 이어 말했다.

“그쪽으로 넘어가서 그랬던 거 아니야? 지금도 그래?”

“······”

“이왕 그렇게 된 거, 뽑아먹을 수 있는 건 최대한 뽑아먹어라. 나도 그랬으니까.”

“······선배님······”

“뒤 봐주는 대신에 상납금 바치라고 하면 돈 줄 거다. 돈은 양심에 찔리면 다른 거로 접대받아도 돼. 네가 받고 싶은 거, 영화에서 보던 거 다 말해봐. 최대한 맞춰줄 거니까.”

“······”

“그 여자 아직 건재하잖아. 예전만큼은 안 되더라도, 그 정도는 충분히 해줄 수 있을 거다.”

백가연 조직은 와해 되지 않았다. 그녀가 운영하던 ‘B 클럽’은 클럽 난동 사건 후에 다른 이에게 팔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박승혁 산하의 ‘A 클럽’에 몇 달간 일방적으로 시비를 걸고, 알력을 조장해오다 집단 싸움까지 이어지게 된 것에 관한 결과는 아직 재판 중이었다.

일전에 박승혁은 지훈에게 혐의 자체만 놓고 보면 무겁진 않고, 백가연도 상납하는 치들이 있기에 자기가 손을 써도 최대 집행유예 결과가 나올 거라 했었다. 중요한 건 백가연이란 이름 세 글자가 부정적인 의미로 세상에 알려진 것과 그녀의 숨기고 싶던 과거가 파헤쳐진 것, 그로 인해 엄청난 명예 실추까지 이어져 조직이 크게 흔들렸다는 점이었다.

현재는 모든 게 까발려진 만큼 뒤로 물러나 조용히 호스트바만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아예 물장사만 하며 살기로 한 듯하다. 그렇게 ‘물장사하는 여자’라는 타이틀을 벗어나려고 대부업까지 손대려고 한 게 무색하게도, 그녀가 완전히 무너지지 않게 해준 건 물장사였다는 점이 아이러니하다.

그만큼 상납하는 규모나 조직의 영향력도 크게 줄었을 것이다. 박승혁은커녕, 중소 규모의 조직도 그녀를 우습게 보고 있다는 설이 돌았다. 

상납 규모를 넓히려고 남자 손님을 대상으로 하는 룸살롱 등 유흥업소를 오픈할 수도 있지만, 그러기까진 시간이 꽤 걸릴 거다. 이미 한바탕 시끄러웠던 사람이기에 검경에서도 그녀를 주시하고 있을 것이고. 어쩌면 호스트바만 운영하며 살아야 할 수 있다. 그거라도 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하며 붙들어야 하겠지만.

김준영은 다르다. 백가연에게 상납을 ‘받는 윗선’은 아니다. 한때 유흥업소를 돌며 여러 종류의 상납을 받으며 살았던 지훈은 이쪽으로는 훤해 그의 처지를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준영은 상납받는 위치가 아니라 약점 잡힌 장기 말에 불과할 것이다. 발 빼고 싶어도 절대 자기 의지로 뺄 수 없는 위치. 얽히게 된 첫 시작부터가 그들의 꾐에 넘어가 수배된 잡범을 잡은 것부터다. 뒤에서 욕을 처먹든 저열하게 뻗대며 먼저 상납금을 받아 내며 살았던 자신과는 비슷해 보여도 분명히 달랐다.

그래도 그가 머리를 잘 굴려 형사라는 직업의 장점을 발휘하길 바랐다. 뒷배를 봐줘 단속을 피하게 해주는 등의 쓸모를 부려 본인 위치를 조금이라도 높이는 게 자신을 위한 길이었다.

담담하게 말하는 자학적이고도 적나라한 말에, 준영의 고개가 점점 내려갔다. 거친 숨소리가 들리나 싶더니, 울먹거리는 소리가 나왔다.

“······죄송합니다.”

“뭐가 죄송해.”

“······흐윽······”

푹 숙여 정수리만 보이는 얼굴 아래로 눈물방울이 떨어졌다. 고개를 들면 분명 잔뜩 일그러져서 못난 얼굴이 있을 거다. 이전에도, 이런 찬 숨을 토해내는 듯이 흐느끼며 사과했던 때가 있었으니까.

그것도 이젠 과거가 되었다. 그렇게 오래된 건 아닌데, 몇 년 전의 일처럼 여겨졌다. 그만큼 지금 자신이 그때와 비교해 많이 달라졌기 때문이리라. 바뀐 근무처를 비롯하여 모든 상황이.

‘못났다.’

차라리 완전히 악하기라도 하지. 선배 뒤통수치고 아무런 죄의식 따위 느끼지 못하는 뿌리까지 못된 놈이기라도 하지. 형사나 돼서 이렇게 찔찔 짜지나 말 것이지. 차라리 입바른 소리를 늘어놓으며 자기 행동을 정당화하기라도 할 것이지.

친동생보다 더 친동생 같아 붙인 정이나 떨어지게 만들지. 마음껏 욕하고 미워하게. 이렇게 우니까 마음만 불편했다. 하필 저처럼 숫자 많은 가족의 가장 노릇까지 하는 놈이라 더. 

잠시 입술 안쪽을 깨물었다. 일부러 눈을 피해 서로 손도 안 댄 커피만 쳐다봤다. 지훈이 담담하게 말했다.

“가족 부양한다고 힘들잖아. 기회 왔을 때 최대한 이용해 먹어. 추하게라도 나가서 받을 수 있는 거 다 받아먹어야 해. 동생들 사주고 싶은 거 이참에 다 사줘.”

“정말, 정말 죄송합니다. 괜히 저 때문에······”

“너 때문에 뭐. 칼 맞은 거는 너랑 상관없어. 납치된 거는······ 아무 일 없었으니 됐다.”

‘납치’라는 단어에 숨소리가 더 거칠어졌다. 코를 훌쩍이는 소리까지, 정말 직업과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더 있으면 통곡이라도 할 기세다. 이래서 상납과 어울리지 않는 놈이라고 생각한 건데.

지훈은 이만 일어나기로 했다. 이 말을 하고 싶어서, 저에게 괜찮다는 말을 듣고 싶어서 이렇게 찾아온 것일 테다.

“할 말 다 했냐? ······다 했으면 됐다. 먼저 일어날게.”

“선배님!”

준영이 갑자기 얼굴을 들며 토해내듯 말했다. 눈물범벅에 일그러진 얼굴과 제대로 마주쳤다. 지훈의 머릿속에 ‘그거 봐라, 진짜 못났네’라는 생각이 스치듯 지나갔다.

“저기, 저기······ 감사받으실 때 얘기 다 들었습니다. 집에서 고생 많이 하셨다고······ 지금은 많이 괜찮으신 거죠? 가족분들이랑 연은 다 정리하셨다고 들었는데.”

“자기도 똑같으면서 위하는 척은······ 알아서 해. 왜, 지금도 사무실에 민원 들어오냐?”

“아뇨. 지, 징계받으시고 대기발령 상태 되신 이후로는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 지금은 아예 안 온 지 좀 됐고요.”

“됐다 그럼.”

지훈이 다시 일어나려는 기색을 보였다. 준영은 그런 그와 조금이라도 더 대화하고 싶었다. 사과 한마디와 괜찮다는 한마디만 듣고 끝내기엔 너무 아쉬웠다. 아무 말이나 내뱉고 선배를 붙잡고 싶었다. 팔로 얼굴을 아무렇게나 훔치며 생각나는 대로 내뱉었다.

“정리하셨다니 다행입니다. 그래도 정이 많으셔서 아직도 신경 많이 쓰고 계실 거 같더라고요. 너무 마음 상해하실 것 없습니다. 가족분들도 여유 있으니까 너무 마음 쓰실 필요······”

“뭐?”

의자 팔걸이를 잡고 금방이라도 일어나려던 지훈이 행동을 멈췄다. 굳은 얼굴과 몸짓에 준영이 말이 잘린 것도 모르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아무 말이나 내뱉다가 말실수했나, 하는 얼굴이었다.

“여유 있다니. 뭐 따로 들은 거라도 있어?”

“아 그냥······ 저도 다른 팀 친구한테 들었는데, 지금 가족분들이 사는 집 외에도 한 채가 따로 더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요즘 집값이야 워낙 비싸니까, 서울에 집 한 채 따로 더 있으면 사는 데 충분할 거 같아서······”

팔걸이를 잡은 손이 힘없이 미끄러졌다. 지훈이 중얼거리듯 말했다.

“집이 한 채 더 있다고?”

“네.”

“확실해? 지금 사는 집 말고 한 채 더 있다는 거.”

“친구 말로는, 왜, 저랑 임용 동기인 정 형사 있지 않습니까. 형사팀에. 선배님이랑도 같이 밥 먹은 적 있는데.”

“어, 알지.”

“몇 달 전에 형사팀에 신고가 들어왔었답니다. 알고 보니 선배님 가족분이 신고한 거였고요. 세입자랑 폭행 시비가 붙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래서······”

준영이 지훈의 얼굴을 살피다 말을 멈췄다. 커피잔을 바라보는 눈에 초점이 어긋나있었다.

“선배님?”

“큼.”

지훈이 헛기침을 하곤 준영을 쳐다봤다.

“그래서, 그건 잘 해결됐고?”

“네. 듣기로는 남동생분이 세입자를 때려서 합의금을 물어줬다고 합니다. 적당한 선에서 마무리됐고요. 그래서 제 친구랑 거기 형사들이 선배님이 고생 많이 하셨을 거 같다고 말했다고······”

“자기들이 때려놓고 자기들이 신고해? 신고 정확히 누가 한 건지 알아?”

“저희 팀에서 맡은 게 아니라······ 근데 선배님 어머니는 아닌 거 같았습니다. 하도 민원을 넣으셔서 서에서 목소리 모르는 사람은 없었거든요. 친구도 말하면서 ‘그 아가씨가’라고 하던데.”

“아가씨라면 여동생?”

“아, 동생이 두 명이라고 하셨었죠. 네. 여동생분 맞을 겁니다.”

여동생은 경기도의 기숙학교에 있을 텐데 언제 서울로 온 걸까. 아, 올해로 스무 살이지. 남동생에 비해선 철이 좀 든 성격에다 공부 머리도 제법 있어 성적이 나쁘지 않다고 알고 있다. 재수하지 않았다면 현재 대학생일 거다.

서울 소재의 대학교에 입학한 걸까. 그래서 집에서 다니고 있나? 하지만 여동생은 성격이 그리 고분고분하진 않아서 집과 안 맞는다며 스스로 자처해서 기숙학교를 갔었다. 

설사 다시 서울로 올라왔어도 집에 들어가기보단 대학교 기숙사나 근처에서 자취방을 구했을 확률이 높다. 한참 터울 나는 막내인데도 저에게 대놓고 ‘오빠는 보고 있으면 참 답답해’라고 말했던 적이 있으니까.

언제 마지막으로 본 건지 가물가물했다. 방학 때도 학교 근처 기숙학원까지 알아서 찾아내 공부한다고 올라오지 않았었다. 그 돈도 지훈이 전부 대줬었다. 그래도 여동생은 가끔이나마 고맙다는 인사가 담긴 안부 메시지를 보내줬었다.

어떻게 살고 있든, 성질 있어서 알아서 잘할 것이다. 문제는······

‘집이 한 채 더 있다고?’

지훈이 알기로 자가는 현재 가족이 사는 집 한 채가 끝이었다. 경찰대에 입학하면서 가세가 점점 기울었고, 졸업하고 경위로 임용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완전히 꺾였으니까. 다 팔고 남은 마지막 재산이 현재 사는 집이라고 알고 있었다.

집은 당시 지훈이 팔지 말라고 했었다. 파는 순간 전세살이든 월세살이든 거주지 걱정하며 전전긍긍 살아야 할 게 뻔했으니까. 

잘 나가던 사업가 시절만 그리며 방안에서만 칩거 중인 아버지도 옛 영화를 더듬을 수 있는 유일한 재산을 팔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평수는 그리 넓지 않아도 서울 중심부에 잘 지어진 아파트라, 파는 순간 당신의 유일한 도피처가 사라져 무너져버릴 것만 같았다. 

결국 지훈이 생활비를 대줄 테니까 집은 최대한 팔지 말자고 하고, 그게 연을 끊기 전까지 지속되었다.

그렇게 알고 있었다. 이제 재산은 이 집 하나밖에 없어. 너밖에 믿을 사람이 없다. 너 없으면 우리 가족 다 길거리에 나앉아야 해. 그 말을 철석같이 믿었었는데. 재산세고 의료 보험료고 뭐고 확인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는데.

한참 말없이 생각에 잠긴 그를 준영이 살폈다. 가족 생각이 나서 저러신가. 나야 이런 일상대화 나누면 좋지만. 죄스러웠던 마음도 조금 편해져 내내 테이블 아래 두었던 손을 올려 커피잔을 만졌다.

“여동생은, 서에 왔었어?”

“네, 봤었습니다. 형사팀이랑 같은 사무실이잖습니까. 가족분들이랑 따로 와서 사이는 별로 안 좋은 거 같더라고요. 진술도 자기 오빠가 먼저 욕하고 때렸으니까 모욕죄랑 폭행죄 적용하라고 진술하고요. 워낙 똑 부러지게 말해서, 저도 그렇고 사무실에 있던 사람들 다 신기하게 봤었습니다.”

지훈이 헛웃음을 쳤다.

“걔랑도 연락 안 한 지 한참 돼서, 얼굴도 잘 기억 안 난다. 올해 스무 살일 건데.”

“대학생이신 거 같더라고요. 선배님이랑 많이 닮았던데요.”

준영은 서에서 봤던 지훈의 여동생을 떠올리며 예쁘다는 말을 많이 닮았다며 에둘러 표현했다. 여동생 예쁘더라는 말은 친구 사이에도 금기시되는 말이다. 

지훈은 외모도 외모거니와, 그만의 늦은 사춘기가 온 듯한 독특한 분위기에 서에서 ‘성격은 더러워도 똑똑하고 잘생긴 놈’이었으니까. 솔직히 유흥업소에 들락날락한다더라는 소문만 아니었다면 추파 꽤 받았을 거다.

사람이 까칠하긴 해도, 대충하는 듯하면서 막상 일 처리는 꼼꼼하고 보기보다 잔정이 많아 저를 동생처럼 잘 대해줬다. 동경 안 할래야 동경하지 않을 수 없는 선배였다. 그래서 더 죄스러웠다.

준영은 세입자 폭행 사건으로 지훈의 남동생과 어머니까지 봤었다. 사무실 사람들은 ‘저 사람들이 그 악명 높은’이라는 눈빛으로 아닌 척 흘겨봤었다. 

남동생도 지훈의 동생이라고 하면 닮았다고 말할 테지만 전체적으론 애매하게 닮은 느낌이었다. 마른 몸에 계속 이곳저곳을 불안하게 흘깃거리는 눈 하며, 분위기도 전혀 달랐다. 여동생은 그렇게 예뻤는데. 신기하다. 물론 스무 살의 풋풋함까지 더해져 더 예뻐 보였을 것이지만. 

선배 눈치 보느라 찔려서 폭행 신고도 여동생이 한 걸 이미 들어 아는데도, 괜히 모른 척 에둘러 말했다. 준영이 서에 왔었던 지훈의 여동생을 떠올리며 자연스럽게 커피 한 모금을 마셨다. 드디어 커피가 조금이나마 줄어들었다.

에둘러 건넨 칭찬에도 지훈은 반응 없이 팔짱을 꼈다. 생각이 많아 보였다.

“너도 여동생 있잖아. 둘이나.”

“네.”

“너도 가장 노릇 하고 있으면 고생하겠네. 집에 남자도 너 하나고.”

“아닙니다. 둘 다 아르바이트하고 있어서요. 둘째는 과외 알바 시작하면서 생활비 반만 달라고 하더라고요. 셋째도 아직 고등학생인데 용돈 안 받고 고깃집 알바 하고 있고요. 어머니도 몸이 많이 좋아지셔서 일도 새로 시작하시고······ 괜찮습니다.”

비슷한데 비슷하지 않은 형편이다. 괜히 비교만 되는 듯해 착잡한 마음이 더 가라앉았다. 머리는 새로 생긴 의문으로 복잡했다. 새로 알게 된 사실을 확인하고 싶은데, 어디서 확인해야 하나. 가족과는 연을 끊어 모르겠다.

폭행 사건도 적당한 선에서 합의금을 주고 끝난 걸 보면 돈이 그리 없지는 않은 듯하다. 다쳐 병원에 입원한 이후부터 생활비는 주지 못했는데. 어쩌면 내 생각보다 돈이 그렇게 없는 건 아니었던 걸까. 나한테는 허구한 날 돈 없다는 소리밖에 안 했었는데. 씁쓸하다.

“그래······ 잘됐네.”

손도 안 댄 커피만 뚫어지게 보던 지훈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준영도 얼결에 따라 일어났다.

“아무튼, 잘살고 있는 거 같네. 커피는······ 마시진 않았지만, 고맙다.”

“가끔 이렇게 찾아뵈러 오겠습니다. 다음엔 술 한잔하시죠.”

“됐다. 형사가 얼마나 바쁜데.”

빈말로도 다음에 또 보자는 말은 하지 않았다. 이렇게 만난 것도 예상치 못하게 찾아와 거절하지 못 하게 해서 온 거였지, 아니었다면 만나지도 않았을 거다. 박승혁 눈에 띄어 괜히 그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게 좋으니까.

맞다. 박승혁.

지훈의 얼굴이 굳어갔다. 트레이를 들던 준영이 가만히 서 있는 그에게 물었다.

“아, 서에 돌아가셔야 합니까? 그럼 같이······”

“아니, 아니.”

지훈이 주변을 둘러봤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하늘은 어두워져 있었다. 카페보다는 식당이 어울리는 시간이었다. 3층이라 사람들도 많이 없고, 있어도 한 명 내지, 두 명끼리 온 손님들이 각자 떨어져 테이블 몇 개를 차지하고 있었다.

미행하는 자는 없는 듯하다. 이철성이란 자를 가까이서 본 적은 없으나 퇴근길에 멀리서 본 적은 있다. 멀리서도 자신을 주시하는 눈빛에 저 자구나, 싶었다. 교통과로 인사 이동된 이후로는 과감하게 그의 시야에 들어오는 일이 가끔 있었다. 박승혁이 미행의 존재를 알려준 걸 그도 알고 있을 거고, 그래서 일부러 보란 듯이 나타났을 거다.

‘분명히 같이 서를 나가는 걸 봤을 텐데. 여기까지 들어오진 않았나? 아니면 다른 층에 있나?’

2층부터 1층까지 차례로 훑으면 준영이 보기에 이상해 보일 거다. 일단 근처에 없으니 그걸로 됐다. 나중에 박승혁에게 물어보고, 못마땅해하면 그냥 오랜만에 찾아와서 잠깐 얘기하고 돌려보냈다고 설명할 생각이었다.

“그냥 약속이 생각나서. 이만 나가자. 너도 서로 가야지.”

“급하시면 먼저 가셔도 됩니다. 저도 이거 정리하고 바로 나가겠습니다.”

“······그럴래?”

“네. 정말 괜찮습니다. 신경 안 쓰셔도 됩니다.”

“그래, 그럼. 커피 고맙다.”

“네. 다음엔 정말 술 한잔 사겠습니다.”

“됐다. 어떻게 얻어먹냐. 내가······”

내가 사야지, 하려다 말꼬리를 흐렸다. 지훈은 준영의 어깨를 툭 치며 인사하고 계단을 내려갔다. 초조한 얼굴이었다.

뒤에 남겨진 준영은 3층에 머무른 채로 트레이를 정리했다. 정리하는 곳에서 커피를 음료 쓰레기통에 버리고, 잔을 한쪽에 올려둔 다음 빈 트레이마저 알맞은 곳에 올렸다.

‘급한 약속이 있으신가 보네.’

하긴, 갑자기 찾아가 지금까지 붙들어 놨으니. 그래도 예전처럼 편하게 얘기해 마음이 좋았다. 자책감도 많이 덜어졌다.

준영은 계단을 통해 내려갔다. 2층을 지나 1층으로 내려갈 때, 누군가 뒤에서 툭, 하고 부딪혔다.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급했던지 부딪힌 남자는 준영을 지나쳐 빠른 속도로 내려갔다. 준영이 금세 사라진 뒷모습을 보고 곱씹다 생각했다.

‘아까 커피 받을 때도 부딪혔는데. 왜 이러지.’

대충 머리를 헝클어 정리한 그가 1층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서둘러 서로 가서 검거된 수배범을 인계해야 했다. 카페 문을 열고 나간 준영이 서를 향해 걸어갔다.

2층 창문 옆에 앉은 철성이 그를 촬영했다. 사진을 누군가에게 전송하고 난 후, 바로 전화를 걸었다. 손에 들린 물건이 그에 의해 계속 제자리를 돌았다. 조금 전에 부딪히며 준영의 주머니에서 도로 꺼낸, 볼펜 형태의 녹음기였다.

“예, 형님.”

가만히 목소리를 듣던 철성이 말했다.

“네, 다 됐습니다. 오늘은 이만 돌아갈까요. ······네. 알겠습니다. 이따 뵙겠습니다.”

전화를 끊자마자 일어났다. 볼펜을 주머니에 넣고, 커피잔이 든 트레이를 들다 시야에 들어온 창밖 모습에 잠시 멈칫거렸다.

한 남자가 긴 횡단보도를 건너다가 갑자기 방향을 틀어 되돌아가고 있었다. 별거 아닐 수도 있다. 그냥 가다가 이 길이 아니네, 하고 되돌아가는 걸 수도 있는 광경이지만, 유독 그의 눈에 밟혔다. 

검은색 옷차림의 남자가 걸어가던 방향은 좀 전 김준영 형사가 걸어가던 방향이었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횡단보도 너머, 맞은편에 자리한 경찰서를 넘겨다 봤다. 김준영은 이미 서에 들어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설마 서에 들어가는 걸 확인하고 돌아가는 건가, 철성은 잠깐 생각하다 트레이를 들고 일어났다. 명준에게 보고해야 할 사항이 하나 더 늘었다. 어딘가 께름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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