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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2/16)

2장

이젠 더는 매달 생활비를 보내지 않아도 된다. 잘 나가던 사업가 아내 시절을 못 버리고 여전히 소비 패턴을 유지하는 어머니의 카드값을 갚지 않아도 된다. 틈만 나면 돈이 없다며 용돈 좀 달라는 남동생에게 생활비를 아껴 주지 않아도 된다. 카드는 어머니 당신 카드를 주로 사용했고, 지훈도 경위로 임용된 직후 카드를 만들어 드렸으나 연을 끊었던 날 정지했다.

어머니에게선 지금도 가끔 연락이 오고 있었다. 우스운 건 연을 끊은 날 이후로 이전보다 더 자주 연락한다는 점이었다. 물론 모든 연락은 단 한 번도 사과하거나 안부를 묻는 내용이 아니었다. 방금 지훈이 받은 그런 내용이 주를 이루었다. 

처음엔 장문으로 더 격한 감정을 드러냈었다. 요약하면 이만큼 열심히 키워놨는데, 다친 게 뭐라고 그 이후로 다른 사람이 되어버려 이 불쌍한 엄마와 가족을 배신하느냐는 말이었다. 지훈은 어머니에게 이런 절절한 면이 있는지도 몰랐다.

새 번호로 가끔 저주 내용이 담긴 카톡을 보내는 것까지는 박승혁도 몰랐다. 지훈은 당연한 말투로 차단했냐고 묻는 그에게 고개만 대충 끄덕여 넘어갔다. 미련보다는 차단까지 해버리면 세상에 가족 없이 혼자서만 남겨진 것 같았다. 수십 년 이어온 인연을 칼로 자르듯 잘라 버리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다. 이렇게라도 떠들어서 마음이 편해져 저를 건들지 않는다면 그걸로 만족하는 심정이었다.

단 남동생은 전화도 문자도 카톡도 전부 차단했다. 아버지야 방에 틀어박혀 있은 지 몇 년 됐으니 핸드폰도 없앤 지 오래되었고, 올해 대학에 갔을 것으로 추정되는 여동생은 자기 사정을 조금이나마 알아주는 성격이라선지 딱히 차단을 안 해도 연락 한 번 오지 않고 있었다.

작년, 지훈은 병원에서 퇴원하는 날 집과 연을 끊었다. 더 이상 생활비도 주지 않을 거고, 지원도 하지 않을 것이며 연락도 하지 않을 것이니 앞으로는 없는 사람인 셈 치고 살라고 통보했다.

처음엔 조금이라도 참회하지 않을까, 저를 붙잡지 않을까 생각했던 게 무색하게 생각보다 가족에게서 별다른 반응은 없었다. 놀라거나 당황하지도 않았다. 아마 입원해 있던 내내 한 번도 면회를 허락하지 않고 -박승혁의 입김이었지만- 개인적으로도 연락하지 않고 생활비 보내는 날짜도 넘어간 지훈에게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던 듯했다. 

그걸 느꼈을 땐 지훈은 안심보단 등골이 서늘했다. 일반적으론 가족이 연을 끊겠다고 했을 때 당황하고 놀라거나 왜 그러냐고 붙잡는 게 ‘보통 가족’의 반응이니까.

병원에서 퇴원하고도 후유증 탓에 얼마간 재활 기간도 가진 후 출근했을 땐, 이미 사무실과 서 전체가 시끄러웠다. 저의 이름이 유쾌하지 않게 오르내리고 있었고, 그 모든 상황이 현재진행형이었다. 

지훈의 어머니와 그의 남동생인 지균은 통보 이후 기다렸다는 듯이 서에 지속적으로 민원을 넣었다. 주 내용은 특정 경찰의 사생활을 폭로하는 민원이었다. 시민을 지킬 책임감이 있는 경찰이 사생활이 엉망이다, 유흥업소 경력이 있다, 유흥업소에서 상납금을 받아왔다더라, 뒤에 재벌녀 스폰서까지 있다더라, 열심히 뒷바라지해 온 가족을 등한시한다, 등의 내용이었다.

클럽 난동 때 변을 당한 것도 사실은 개인적인 조사차 그곳에 있었던 게 아니라, 개인적인 유흥을 즐기러 가서 변을 당한 건데 언론에는 좋게 포장해서 내준 것이라는 내용까지. 

내용이 그럴싸해서 서 내에 동요가 일었었다. 그리고 상납금 관련 내용도 틀린 건 아니라 나머지 소문에 신빙성을 주었다. 지훈의 유흥업소 출입이나 상납금 경력을 아는 팀장은 지훈을 걱정해주면서도 소문을 믿는 듯 질책하는 눈빛을 보냈다. 그러니까 누가 그렇게 더럽게 놀라고 했느냐, 는 눈빛. 

지훈은 박승혁 산하 주점에 살다시피 하는 당신이 보낼 법한 눈빛은 아니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오랫동안 사무실을 비워 입지가 그만큼 좁아져 있었고,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소문이 커져 있었는 데다 몸이 예전 같지 않아 지쳐 있었다.

게다가 자신이 없는 동안 사무실 전화로도 한바탕 민원이랍시고 악의적인 전화를 한 모양이었다. 정상적인 신고 외에 악의적인 민원을 견뎌야 했던 팀원들, 사무실 동료들은 지훈에게 썩 좋은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 

지훈이 친동생처럼 아끼던 막내는 쭈뼛거리며 다가왔으나 그가 피했다. 더 이상 전처럼 그를 보진 못하겠다는 알량한 마음도 마음이거니와, 괜히 막내도 자기 같은 취급을 받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박승혁 눈에도 더는 띄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병원에서 당시 막내 형사는 건드리지 않겠다는 말을 받아 냈으나 조금의 거슬리는 것도 잡아내고 가만두지 않는 그에게 불안함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서 전체에서도 그를 대하는 태도는 비슷했다. 다른 부서 사람들이 자신을 흘깃거리거나 피하는 게 느껴졌다. 칼에 맞는 것보다 정신적으로 공격당하고 갉아지는 게 더 아플 수도 있다는 걸 느꼈다. 인터넷에도 ‘A 형사를 폭로합니다’라는 제목의 카더라 식의 게시물이 올라와 결국 감사를 받았다. 악성 민원이라도 민원인 이상, 공공기관은 답변을 내놔야 한다.

지훈이 유흥업소 출입과 상납금을 끊은 지 꽤 되었고, 괜히 과거를 들추어내면 지금도 꾸준히 상납받고 있는 윗선들이 더 불리했다. 

박승혁은 감사 전 미리 지훈과 자신의 연결고리를 유추할 만한 모든 것을 정리했고 -애초에 돈을 줄 때부터 걸릴 만한 건 만들지 않았다- 나서지 않아도 알아서들 적당한 선에서 조사를 끝낸다고 생각했다.

그 생각대로 정말 ‘적당한 선’에서 끝나 징계 결과, 품위유지 의무 위반으로 감봉 처분을 받았다. 징계처분 수위에서 끝에서 세 번째로 경징계에 속했다. 경징계 중에선 가장 높은 수위였지만.

감사받은 게 완전히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감사 과정에서 왜 유흥업소 출입을 하고 상납금을 받았느냐에 대해서는 집안 사정을 설명해야 했고, 그마저도 끊은 지는 오래되어 증거는 없었다. 

최근에는 친구나 지인에게 돈을 빌려 생활비를 대고 있었고, 그래서 스폰서 루머가 돈 것 같다고 진술했다. 복잡한 집안 사정이 까발려져 서 내에는 동정여론이 불었다. 그리고 직접적으로 ‘돈’과 관련된 징계 조치에 남동생과 어머니는 퍽 만족스러웠던 듯 악성 민원을 점차 줄이다 조용해졌다. 그것 봐라, 천벌을 받은 거라는 둥 시끄러운 문자는 받았다.

어쨌거나 감사가 좋은 건 결코 아니고, 징계 조치도 유쾌한 건 아니다. 집안사까지 들추어졌다. 서에서의 위치에 감사까지 받고, 2개월 감봉이라는 징계를 받았을 즈음에 지훈은 눈에 띄게 수척해져 있었다. 입맛도 없어 살이 빠졌다. 

재활치료와 정기검진 차 병원 갈 때 외에는 집 밖에 나가지 않았다. 어차피 감사받고 바로 대기발령 상태로 집으로 돌려보내어져 나갈 데도 없었다. 

서에서는 내심 지훈이 알아서 사직서를 제출해줬으면 하는 느낌이었다. 박승혁도 침대에서 지훈의 뒷머리를 쓰다듬으며 넌지시 물었었다.

“이참에 그만둘래?”

“좆 까.”

“동생은, 죽여줘?”

“······”

다른 곳을 보는 지친 눈빛에도 꾸역꾸역 받아치던 뒤통수가 잠잠했다. 박승혁은 웃었다. 그렇게 당하고도 죽이는 건 원치 않는 태도가 어이없어서. 그런 지훈이 좋은 자신이 어이없어서. 

뒷머리를 쓰다듬던 손은 목덜미를 훑다 옷깃 안으로 들어갔다. 지훈은 힘없이 그 손길을 받아들였다.

감사를 받고, 대기발령 상태로 돌려진 직후로는 기댈 곳도 없어 극심하게 지친 그를 반강제로 자기 집에 들인 상태였다. 이전에 지훈이 백가연에 관해 물어본답시고 처음으로 먼저 만나자고 하여 갔었던 복층 오피스텔. 그날 찝찝하게 마무리됐던 정사도 매일 그곳에 있으며 먹고, 자고, 생활하며 다른 정사로 덮어지니 신경도 쓰지 않게 된 지 오래됐다. 

박승혁의 보살핌 속에 지내니 오히려 편안하기까지 했다. 지훈은 그런 자신이 약해졌다고 스스로 느끼면서도 보살핌을 거절하지 못했다. 그마저도 없었다면 분명 지쳐서 꺾어졌을 거니까.

여러 명이 마치 합심해서 공격하는 듯한 악의적인 민원은 남동생과 어머니가 사람을 고용해서 하는 거였을 테다. 분위기만 만들어지면 거기에 동조되어 시키지 않아도 같이 달려드는 사람들도 적지 않으니까. 아마 물어뜯을 사람 없나, 하고 코를 세우던 사람들은 좋다고 합심했을 것이고. 

유흥업소 출입 여부와 상납금 내용은 백가연 측 누군가가 지균에게 접근해 알려줬다. 이건 박승혁이 알아낸 사실이었다. 그도 생각보다 이물질들이 쉽게 떨어지지 않고 지저분하게 군다고 생각하여 부하를 시켜 알아냈다.

벌레만도 못한 새끼들. 박승혁이 그 사태를 지켜보며 느낀 결론이었다. 명준도 그 말에 침묵하지 않고 ‘맞습니다’라고 소리 내어 동조할 정도로, 대부업체 탈을 쓴 조폭인 자신들이 보기에도 지훈의 가족들은 영악하고 끈질긴 기생충이었다.

검경에 자기 산하 영업소에서 접대받는 사람들이야 많다. 힘만 조금 쓰면 사태를 어느 정도 정리할 수는 있다. 그래도 박승혁은 사태를 알아보기만 할 뿐, 관망하며 지켜봤다. 

백가연 측 똘마니들이 섞여 있다면 섣불리 나섰다가 자기 소매만 더러워질 수 있었다. 무서워서가 아니라 더러운 똥물에 들어갈 우려가 있었다. 가만히 지켜보다가 필요할 때만 나서서 살짝 입김을 주는 것, 그게 박승혁이 그쪽 세계에 몸담고 있으며 깨달은 가장 확실하고도 깔끔한 방법이었다. 깔끔하게 일을 정리하기 위해서라면 일단 기다려야 했다.

그리고 사실, 심적으로 지친 지훈이 자신에게 기대어 오는 게 나쁘지 않았다. 내심 좋기까지 해 박승혁은 매일 자택이 아니라 오피스텔에 출퇴근하며 지훈을 끼고 생활했다. 

날 선 말투에 욕을 툭툭 던지며 신랄하게 말하던 사람이 심신이 지친 모습으로 있는 걸 보면 안타까우면서도 마음이 간질거렸다. 잘생긴 얼굴이 처연한 얼굴로 집에만 틀어박혀 있다가 자신이 오면 은근히 반가워하는 표정까지, 마침내 길들인 여우를 키우는 것 같아 충족감이 들었다.

사춘기가 늦게 온 청년이 방황하고 갈피를 못 잡는 듯한 묘한 느낌은 성욕이 들게 했다. 그즈음에 한 섹스는 자신이 지금까지 한 어떤 섹스보다 부드러웠다. 지훈도 박승혁과 계약 관계 때처럼 강하게 반응하지 않았고, 그럴 기운도 없었다. 박승혁도 저절로 부드럽게 정사를 이어갔다.

시간이 지나며 시끄러웠던 상황도 점차 조용해졌고, 관심이 약해지며 악의적인 민원도 줄어갔다. 그때까지 지훈은 내내 대기발령 상태였고, 기운을 차려 운동도 시작한 즈음이었다. 

연말에 사건 사고로 바빴을 땐 서에서 잠깐 대기발령을 풀고 투입 시킬까, 했으나 박승혁이 처음으로 나서서 막았다. 이제 기운을 차리기 시작한 연인과 무엇을 하며 연말을 보낼지 생각하고 있었기에 지금이 나설 적기라 본 것이다.

“굳이 소란 거리 데려와서 다시 시끄럽게 만들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안 그래도 좀 많이, 시끄러웠다가 이제야 좀 조용해졌는데.

저는 서가 조용했으면 좋겠습니다. 사적인 일로 시끄러워서 국민한테 신뢰 떨어지고, 그럼 제대로 일하고 있다는 거 대외적으로 보여준답시고 제 영업소 건드는 걸 하도 당해봐서요. 조용한 게 최고라고 생각되네요. 최근에 일도 있었고.”

연거푸 차만 마시는 서장에게 마지막 쐐기를 박았다.

“어차피 곧 인사이동이겠다, 다른 데로 보내버리죠.”

교묘하게 지훈이 아니라 자신에게 초점이 가게 한 말에 서장은 박승혁이 정말 자기 영업소에까지 피해가 오는 걸 싫어해서 그러는 것으로 이해했다. 마침 몇 달 전 백가연 클럽과 엮여 고초를 겪었었다. 안 그래도 시끄러웠는데 또 시끄럽게 만들지 말아 달라는 투에 서장은 과장에게 지시해 대기발령을 풀지 말고 다른 부서에 지원요청을 하도록 했다. 

며칠 후 서장은 연말과 새해를 핑계로 VVIP 룸에서 제대로 대접받았다.

연말이 지나가고 새해 초, 위에서는 인사이동 시기에 지훈을 다른 서로 보내어 상황을 완전히 정리하기로 했다. 인사이동을 예상한 지훈은 마음 편하게 자신이 옮겨질 부서를 기다렸다. 위에서 교통과로 옮길 것 같다는 말에 지훈은 어디든 좋으니 아예 다른 서로 옮겨달라고만 했다.

다만 인사이동 과정에서도 교통과로 옮기되, 교통조사팀으로 옮기느냐, 교통 범죄 조사팀으로 옮겨야 하느냐로 잡음이 있었다. 경찰대를 졸업하고 강력팀 형사로 일했던 재인을 넣을 곳은 많았다. 

처음엔 교통조사팀 팀장이 형사과 못지않은 업무량에 지훈을 데려가려고 했다가 막판에 뒤집혀 교통 범죄 조사팀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 위를 거슬러 올라가면 맨 위에 박승혁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있었다는 건 소수만이 아는 사실이다.

현재는 교통 범죄 조사팀에서 두 달 동안 지내며 나쁘지 않게 적응하고 있었다. 박승혁이 드나드는 걸 고려해 서에서 가깝진 않은 거리지만 이사도 가고, 새로운 업무도 이전 업무와 비슷하고, 외근도 잦게 나갔다. 

팀 동료들도 처음에만 그를 신기하게 쳐다봤다가 팀장이 대놓고 재인이 왔다며 뿌듯해해 얼마 안 가 경계를 풀었다. 지훈이 모난 성격도 아니었고, 업무도 빠르게 적응한 덕분이었다.

이사할 집을 고를 때 박승혁은 이렇게 된 거 지금까지 그랬던 대로 계속 자기 오피스텔에서 살기를 바랐다. 지훈은 그렇게 사회 부적응자처럼 지내는 건 몇 달이면 충분하다고 받아쳐 박승혁의 심기를 건드렸다. 

그의 성격상 승낙할 거라곤 기대하지 않았으나 앞으로 같이 사는 건 꿈도 꾸지 말라는 말처럼 들려 며칠을 부루퉁하게 지냈다. 지훈은 확실히 같은 말도 거슬리게 말하는 재주가 있다. 

앞으론 돈을 받지 않겠다고 말했어도, 몇 달간 한집에 지내면서 크게 와닿지 않았는데 따로 살면서 직장인으로 돌아가니 와닿았다. 이전엔 돈을 주지 않아도 자기 소유의 집에서 지훈을 돌보듯이 지내어 꼭 ‘돈’이 아니더라도 자신이 의식주를 제공하는 위치였기 때문이다. 

이젠 지훈이 자기 힘으로 얻은 자택에서 살게 되었고, 당연히 그에게 무언가를 요구하지도 않았다. 임용된 이래 처음으로 적금도 들었다.

직장에 복직하여 새로운 부서와 업무에 적응하랴, 새집에 적응하랴, 연락도 자주 하지 못했다. 당연히 만나는 횟수도 현저히 줄었다. 꼭 박승혁이 지훈에게 집착해서가 아니라, 보통 연인이라면 불만이 안 생길 수 없었던 거다. 마치 한집에 살며 애지중지 키우던 반려견이 갑자기 독립하겠다며 뛰쳐나가더니, 정말 잘 적응하여 제 주인도 잊어버린 것 같았다. 

회복력이 빠르고 적응력도 좋은 게 좋긴 좋은데 한편으론 아쉬웠다. 조금만 더 기운 없이 저에게 기댔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인사이동하고 이 주일 후, ‘잘 적응하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라는 명준의 보고가 왜 은근히 서운하던지. 그때를 떠올리며 박승혁은 지훈을 흘긋거렸다. 핸드폰을 확인하더니 단말마의 소리를 뱉고는 냅다 눈을 감고 자버린 뒤통수만 보였다. 불만 섞인 얼굴로 운전대를 쥐었다.

이사하더니 짐 싸고 나가버리고, 직장 복직했다고 연락도 뜸하다. 이렇게 퇴근할 때 직접 차를 끌고 와 근처를 어슬렁거리지 않으면 만날 기회라곤 더더욱 없었다. 계약 관계 때는 의무적으로 만나기라도 했지, 연인 사이가 되니 비번 날 외엔 무조건 바쁘다고만 했다. 

지훈은 비번에 온종일 그와 지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여겼다. 오히려 비번 날에 너무 엉겨 붙고, 몇 번이고 몰아치듯이 하여 일을 핑계로 반납한 적도 있었다.

지훈도 처음엔 박승혁의 차로 퇴근하고 아침에 택시로 출근했다가, 최근엔 아예 대중교통이나 택시로 출퇴근하고 있었다. 형사일 땐 잠입수사나 긴급출동으로 자차를 끌고 갈 일이 있었으나 교통 범죄 조사팀에서는 그럴 일도 적었고, 사건 조사로 나가도 유 경장 차를 주로 이용했다. 

외근 나가는 날엔 연락도 없이 박승혁이 차를 몰고 -그것도 눈에 엄청나게 띄는- 근처를 어슬렁거리니, 차라리 자차를 놔두고 출근하게 되었다.

외근 나가는 날을 귀신같이 아는 것에 의문은 없었다. 계약 관계일 때부터 있었던 미행이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점이라면 감시보다 보호의 느낌이 강해졌다는 것이고, 인원이 두 명에서 한 명으로 줄어들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박승혁이 자기 입으로 지훈에게 말했다는 점 또한 달랐다.

인사 이동된 부서로 처음 출근하는 전날이었다.

“전에처럼 사람 붙여놨다.”

같이 저녁을 먹고 나가며 던지는 말에, 지훈이 뒤를 홱 돌아봤다.

“뭐?”

“출퇴근 시에만 따라붙을 거야. 원하면 불러서 심부름시키든지. 눈에 띄지만 않으면 돼.”

지훈의 얼굴에 대고 박승혁이 명함을 내밀었다. 엉겁결에 받은 명함에 ‘이철성’이라는 이름과 번호가 적혀 있었다.

“내 연락망이라고 생각해. 네 수족처럼 부려도 되니까 도끼눈 뜨지 말고.”

박승혁은 불만스러운 얼굴을 쓰다듬으며 달래었다. 이젠 낯빛이나 표정, 건강한 몸짓에서 건강하던 이지훈으로 거의 돌아와 있었다. 그게 좋으면서, 서운했다. 늘 지훈에겐 모순적인 감정이 떠올랐다.

“······알겠어.”

생각보다 반항하지 않고 명함을 만지작거리다 얌전히 주머니에 넣는 모습에 기분 좋은 감정이 서운한 감정을 앞섰다. 넓은 손이 볼을 문지르다 떨어졌다. 

‘그때까진 좋았는데.’

그때를 떠올리던 박승혁이 아, 하곤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두 번도 가기 전에 연결음이 멎었다.

“네, 이사님.”

“철성아-”

“이 경위님은 외근 나가시고 아직 안 들어오셨습니다.”

“나랑 같이 퇴근하고 있다. 이만 들어가 봐. 수고했다.”

“네, 알겠습니다.”

“그래.”

전화를 끊었다. 핸즈프리로 통화해 차내에 대화가 울렸는데도, 지훈의 뒤통수는 미동이 없었다. 조수석 차창에 눈을 감은 지훈의 얼굴이 언뜻 비쳤다. 느리게 얕게 오르내리는 가슴팍을 흘긋거린 박승혁이 다시 정면을 쳐다봤다.

얼마 전 철성을 불러 이것저것 물어봤을 때, 철성은 이렇게 대답했다.

“제 존재를 분명히 알고 계시는 게 느껴집니다. 그래도 한 번도 아는 척하신 적 없습니다. 좀 불편해 보이실 때 제가 먼저 뭐 필요하신 건 없나 다가가려고 해도, 바로 알아채고 다른 곳으로 가버리십니다.”

서로 알고 있는 상태에서 하는 미행은 제법 편했다. 거리만 떨어져서 다니는 경호원 같았다. 철성도 그걸 알고 전보다는 긴장을 풀고 미행했다. 이제는 잘려 짧아진 철성의 왼손 새끼손가락을 보며 보고를 들은 박승혁은 질문 몇 개를 더하고 대답을 들었다.

네가 보기엔 지훈이 지금 부서에서 어떻게 지내는 것 같냐, 는 질문엔 철성이 별 어려움 없이 ‘경위님은 인사 이동된 곳에서 잘 적응하고 계십니다’고 말했었다. 명준에게 들었던 말처럼 서운했으나 기분 좋은 말도 있었다.

“지금 팀에서도 막내가 한 명 있습니다. 강력팀 근무하실 때 있었던 막내랑 비슷한 나이대에 비슷한 인상인데, 그래서인지 경위님이 일부러 거리를 두시는 게 느껴졌습니다.”

스스로 어린아이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기분 좋은 건 어쩔 수 없었다. 한편으론 씁쓸했다. 한 번 배신당했던 경험으로 그만큼 마음 주지 않으려는 마음과 더불어 저에게 보란 듯이 그러는 것일 테다. 친하지 않으니까 처음부터 주시하지 말라는 것이다.

아직 나를 믿지 못하는구나.

거짓말이긴 하다. 속인 건 사실이나 분명히 병실에서 눈을 마주치며 흔들림 없이 진심이라고 말했었는데. 막내 형사한테서는 손을 떼겠다는 말도 아니고, 내 소관을 벗어난 놈이라며 아예 관심도 주지 않는다고 말해줬었는데. 지나치게 똑똑해서 감이 좋은 건지, 지나치게 막내 형사를 생각해서인 건지. 후자라고 생각하면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지훈이 한창 약해져서 오피스텔에서 지낼 때, 몇 번이고 계획을 실행해 처리하려 했었다. 명준도 이젠 슬슬 할까요, 라고 먼저 물어보기까지 했는데, 고개 한 번 끄덕이는 게 망설여져 미루다 미루다 지금까지 놔두게 되었다. 몸도 마음도 약해진 지훈이 소식을 듣고 충격으로 더 몸이 상할 게 두려워서였다. 

인정하긴 싫어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막내 형사는 친동생 같은 마음을 주는 존재라는 걸. 가족과 연을 끊은 이후엔 친동생보다 더 마음을 줄 것이다.

지훈이 알아챌 가능성도 있었다. 몸이 약해져 있어도 머리는 여전히 똑똑했다. 서에 복직했을 때, 악성 민원과 루머로 사람들이 지훈을 피해도 막내 형사는 먼저 다가갔다. 하지만 지훈이 의식적으로 밀어냈다. 이 역시 자신에게 보란 듯이 하는 행동일 터였다. 대기발령 상태로 돌려져 집에만 칩거해도 소식은 들을 수 있으니까, 불안했다. 

결국 지금까지 왔다. 계획과 준비는 전부 끝났는데 실행하는 걸 이렇게까지 미룬 적은 그 인생에 없었다.

박승혁이 모는 차가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유난히 어두컴컴하고 고요한 주차장 맨 구석으로 간 그는 외따로 지어진 차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의 전용 차고였다. 그뿐만 아니라 다른 입주민들도 대부분 개인 차고가 있었다. 그리고 서로 누가, 어디에, 몇 명이 살고 있는지, 알지 못했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주차한 후 시동을 끄자 공기까지 침묵에 잡아먹혔다. 입 안 혀를 굴리는 소리마저 귓가에 울렸다. 그래도 지훈은 일어나지 않았다. 조수석 차창 쪽으로 고개를 완전히 돌려 동그란 뒤통수만 숨소리에 맞추어 희미하게 움직였다. 박승혁이 잠시 숨을 참자, 낮게 색색거리는 숨소리가 스며들 듯 들어왔다.

금방이라도 깨우려고 손을 뻗었다가 거둬들였다. 거둬들인 손을 들어 차내 불을 켰다. 한 손을 핸들에 걸친 채로 또렷하게 보이는 뒤통수를 쳐다보던 박승혁은 이곳에 오는 내내 잠겨 있던 생각에 다시금 빠졌다.

지훈이 전에 있던 강력팀의 막내. 백가연에게 붙어 친동생처럼 챙겨준 지훈을 배신한 막내 형사. 정확한 이름은 김준영 형사다. 나이는 지훈보다도 세 살이 어리다. 벼룩처럼 은근히 제 눈앞을 뛰어다니며 신경을 거스르는 존재인 그에 대해서는 진작에 조사해본 지 오래였다.

김준영도 지훈과 비슷한 점이 많았다. 터울 있는 동생 두 명을 둔 장남에, 아픈 홀어머니를 두고 집안의 가장 역할을 하고 있었다. 

다른 점이라면 지훈보다 어린 나이에 가세가 기울어 대학 대신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경찰공무원 시험을 준비했고, 몇 번의 실패 끝에 합격했고, 터울 있는 동생 두 명은 전부 여동생이며, 큰오빠처럼 철이 일찍 들어 고등학생인 막내도 아르바이트하며 학업을 병행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홀어머니도 최근엔 증세가 완화되어 소소하게나마 일자리를 구했다는 점에서 지훈과 비슷하지만 다른 점이 많았다. 끈끈한 정과 책임감으로 뭉친 확실한 ‘가족’이었다.

지훈이 준영에게 마음 주는 건 사고만 치는 친동생을 대신하는 것도 있지만, 이면에는 부러움과 동경 섞인 마음도 있었다. 아무리 정이 간다고 해도 이 정도까지 마음 쓰는 것에 설마 이성의 감정이 있나 했는데 조사 끝엔 의구심이 해결되면서 찝찝함만 생겼다.

박승혁에게 막내 형사, 김준영이란 존재는 주인 있는 딱따구리 같은 존재였다. 계속 주변을 맴돌다가 잊을 만하면 날아와 관자놀이를 쪼고 도망가는 딱따구리. 홧김에 죽이려니 주인이 있어 함부로 하지는 못하는 딱따구리. 생각만 해도 짜증이 솟았다.

차라리 있는 집 자식이거나 평범하고 평범한 집안 자식이라면 이러지도 않을 건데, 조사 결과에 머리만 더 아프고 찝찝했다. 이따위 것에 신경 쓰는 자신만 자존심이 구겨졌다.

“하······”

침묵이 내려앉은 차내에서 혼자 이러고 있으니 기분만 더 잡쳤다. 연인에게 난 짜증과 한 번 꼬리를 물었더니 떨어지지 않고 매달리는 생각 탓에 이를 악물었다. 

어째 지훈과 본격적으로 연애라는 걸 해보자고 한 이후부터 계약 관계 때보다 짜증 나는 일만 는 것 같다. 

연애란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것임에도 늘 좋을 순 없고, 연인이기 때문에 더 신경 쓰이는 거라는 걸 박승혁은 몰랐다. 평생 안 하던 걸 하니 알 리가 없다. 그에겐 일을 제외한 사람과의 만남은 단지 육욕을 배설하기 위한 목적이었으니까. 

눈을 감았다. 핸들에 걸치지 않은 손을 들어 관자놀이를 감쌌다. 세 손가락으로 양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한동안 그렇게 있었다.

숨을 몇 번이나 골랐을까, 손목에 무언가 닿는 느낌에 눈을 떴다. 손을 치운 시야에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뭐 하냐?”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부드럽게 연인을 부르는 것도 아니라 툭 치며 어이없는 얼굴로 묻는 말투란. 퉁명스러운, 퉁명스러워서 그가 좋아하는 연인이다. 어이없는 표정에 졸음이 묻어 있어 귀여웠다.

“혼자 영화 찍고 앉아있길래 불렀더니 웃고 지랄이야······ 도착했으면 깨워야지.”

예상외의 반응에 지훈은 멋쩍게 고개를 돌렸다. 겨우 깨서 자신을 봤는데 다시 고개를 돌리는 몸짓에 막힘없이 손을 뻗었다. 얼굴을 감아 제 쪽으로 돌렸다. 지훈의 몸이 박승혁을 향해 기울어졌다.

“-아, 쯧······”

“데리러 가줬는데 얼굴 좀 봐주지?”

넓은 손이 목을 쓸어내렸다. 코앞에 가까워진 얼굴에 지훈이 눈을 피했다.

“데리러 와달라고 한 적 없다고. 너 때문에 버스 타고 다니잖아.”

“그럼 매일 출퇴근 시켜줄게.”

“됐거든······”

쪽, 볼에 입술이 닿았다 떨어졌다. 부끄러워하는 반응에 부러 소리 내며 몇 번 더 입술을 부딪쳤다. 순식간에 귓불이 달아올랐다. 벗어나려 버둥대는 몸짓이 박승혁에겐 앙탈처럼 여겨졌다. 

귓불과 볼이 붉어지는 것을 보며 장난기 많던 입맞춤에 점점 농밀함이 섞였다. 쪽, 쪽, 하며 짧고 가벼운 소리가 점차 잦아들고, 입술이 볼에 머무는 시간은 길어졌다. 

볼에 머물던 입술이 자연스럽게 지훈의 입술로 옮겨갔다. 버둥대던 움직임도 느려졌다.

“음, 으응······”

긴 혀가 지훈의 치아와 혀를 훑고 지나갔다. 숨을 들이마시려다 다시 입술에 먹혔다. 숨이 막혀 고개를 꺾어도 박승혁은 물러나지 않고 입안을 헤집었다. 어깨를 밀어봐도 끄떡없었다. 힘에 밀려난 고개가 점점 뒤로 밀려났다.

밀려난 만큼 따라가던 박승혁이 손을 내려 아래를 더듬거렸다. 곧 딸깍, 하고 안전벨트가 풀렸다. 지훈의 것도 푼 박승혁은 입술을 떼고 팔을 잡아당겼다. 우악스러운 힘에 지훈의 상체가 거의 운전석으로 넘어갔다. 지훈이 숨을 몰아쉬며 불쾌함을 드러냈다.

“아 씹, 뭐해. 하아.”

“올라와.”

잠깐 이해하지 못한 지훈이 입술을 훑었다.

“내가 올라타면 더 힘들걸.”

머뭇거리는 볼을 쓰다듬었다.

“응?”

“······내일 비번 아니야.”

“그러니까 차에서 하고 끝내자고.”

막상 하면 저도 좋아 죽으면서. 차에서 한 적도 계약 관계 때, 리무진에서 했던 게 마지막이었다. 말없이 침 삼키는 얼굴이 분명 동하고 있었다. 리무진에서의 진한 정사가 생각난 것이리라. 박승혁이 젖은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삐졌는데 좀 달래줘.”

“지랄······”

욕을 하면서도 지훈은 못 이기는 척 몸을 일으켰다. 박승혁이 그의 허리를 감고 움직이는 걸 도와줬다.

곧 일어날 정사에 입술을 훑으며 기대감을 드러내던 얼굴이 일부 구겨졌다. 지훈이 그를 마주 보며 올라타지 않고, 등을 보인 채로 올라탄 것이다. 저도 모르게 어린애처럼 투덜거리는 신음을 뱉었다.

“하, 진짜.”

“여기서 대충 한번 하고 끝내자면서. 가만히 있어.”

내가 언제 ‘대충’ ‘한번’이라고 했냐. 끝까지 내가 원하는 대로는 안 하겠다 이거지. 박승혁이 말없이 입술을 깨물었다가 이내 허리를 문질렀다. 어찌 됐든 하는 건데, 괜히 더 요구했다가 안 하고 싶지는 않았다.

지훈은 입술을 앙다물고 버클을 풀었다. 옷을 입은 채로 빨리하고 끝낼 생각이었다. 저도 몸이 동하긴 했어도 내일 비번이 아니라 출근해야 했고, 서로 마주 보고 정사를 진행하면 빨리 끝낼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마주 본 채로 껴안으면 자신이 매달리는 것 같아 기분도 별로였다.

다만 서로 마주 보고 껴안은 게 아니라 등을 돌리고 위에 올라탄 모양이라서, 차내가 넓어도 고개를 숙여야 했다. 뒤통수에 차내 천장이 닿았다.

“안 불편해?”

박승혁이 팔을 뻗어 지훈의 버클을 대신 풀었다. 순식간에 버클을 풀더니 안으로 손을 넣어 느릿하게 성기를 문지르는 손길에 지훈이 대답 대신 나른한 한숨을 토해냈다.

“하, 으······”

넓고 굳은살 박인 손바닥이 성기를 그러모아 쥐며 문질렀다. 눅진한 쾌감이 아랫배를 타고 올라왔다. 눈이 감기고 입술은 벌려졌다.

아, 지금 표정 좋을 건데. 보고 싶은데. 박승혁이 백미러를 쳐다봤으나 정수리만 보였다. 혀를 차고 짜증을 담아 손짓을 거칠게 했다. 빠르게 문지르다 속옷 안으로 들어가 맨 성기를 쥐는 손짓에 허리가 튕겼다.

“으응! 자, 잠깐만.”

“바지 내려.”

박승혁은 조급하게 말하며 성기를 쓸어올렸다. 탁, 탁, 탁, 빠르게 치대는 소리에 지훈은 그의 말대로 바지를 내릴 생각은 하지 못하고 눈을 감은 채로 신음을 뱉었다. 치대는 손목을 힘주어 잡아봐도 손짓은 되려 더 빨라졌다. 신발 안에 갇힌 발가락이 절로 오므라들었다.

“그, 그, 만, 나오, 느······”

벌려진 채로 떨리는 입술 끝에 침이 실선을 그리며 떨어졌다. 약간 짜증이 배인 손짓이 비틀린 쾌감을 줬다. 상대를 생각하지 않는 빠른 속도와 예고 없이 귀두 끝을 손톱을 세워 꾹 누르는 행동이 지훈의 허리를 비틀게 했다. 

이를 악문 박승혁의 관자놀이에 핏줄이 돋았다. 쾌감 때문만은 아니었다.

“-아읏!”

허리를 강하게 튕기며 정액을 쏟아냈다. 박승혁이 숨을 고르며 다시 말했다.

“바지 내려.”

“아 시발, 좀 있어 봐.”

“빨리. 대충하고 끝내자면서.”

자신이 뱉은 말이라 할 말은 없다. 지훈은 짜증이 난 이유를 짐작하면서도 모른 척 발에 힘을 주어 바지춤을 잡고 내렸다. 박승혁도 빨리 벨트와 버클을 풀었다.

훤히 드러난 맨살이 차가워 인상을 찡그리다 몸을 굳혔다. 둔부에 선연한 감촉이 느껴졌다. 단단하게 굳은 성기가 쓸리는 감각이 낯설었다. 굳은 몸짓에 박승혁이 지훈의 손을 잡고 뒤로 당겼다.

“네가 풀어.”

“······”

“이대로 넣으면 안 되는 거 알잖아. 대충 빨리하고 끝내자면서.”

“쯧.”

하여튼, 속 좁은 새끼. 짜증스럽게 혀를 찬 지훈은 손을 풀어낸 다음 입술에 갖다 댔다. 침을 가득 묻힌 손가락이 아래로 향했다. 더듬거리다가 하나를 입구에 대고 밀었다.

“음······”

스스로 거기에 손가락을 넣은 거라 불쾌감만 들었다. 미간을 구긴 채로 앞뒤로 움직였다. 어색한 몸짓이었다. 이 구도도 나쁘기만 한 건 아니다. 박승혁이 생각하며 한마디를 뱉었다. 

“하나 가지고 되겠어?”

“씹, 좀 닥쳐봐······”

“한 세 개 넣고 쑤셔도 힘들잖아.”

“큭.”

비웃는 소리에 박승혁이 지훈의 뒤통수를 쳐다봤다.

“허세 좆되기는.” 

“허세야? 박힐 때마다 힘들다고 울면서.”

“무식하게 박아 대니까 그렇지.”

“······”

정말 오늘 마음에 안 드는 소리만 한다. 박승혁이 말없이 입술을 훑었다.

뒤에서 아무런 반응이 없자 한 방 먹였다는 생각에 지훈이 입꼬리를 올렸다. 한편으론 손가락 한 개를 더 늘려 애널에 넣었다. 인상을 찡그리면서도 눈치 없이 계속 입을 놀렸다.

“좀 크다고 자만하지 말고 관리나 잘해. 한 살 더 먹었잖아.”

“······”

“나이 들었다고 거기도 작아지는 거 아니야? 저번에 할 때 그런 거 같던······”

“그만 쑤시고 넣지.”

허리에 올린 손에 힘을 줬다. 지훈이 말을 멈췄다. 너무 나불거리긴 했다. 손가락 두 개로 이 굵은 걸 쉽게 삼킬 수 있을 리가 없다. 

하지만 스스로 자기 애널을 쑤시는 게 불편하고 힘이 들기도 했고, 뒤에서 들리는 굳은 목소리에 이만해야 할 듯싶었다. 애널에서 빼낸 손을 뒤로 휘저어 굵은 성기를 찾아 잡았다. 

박승혁이 숨을 길게 내쉬었다. 빳빳하게 완전히 발기한 성기를 감싸고 위아래로 몇 번 쓸어올린 다음, 애널 입구에 갖다 댔다. 힘을 주어 꾹 누르자 귀두가 입구를 뚫고 서서히 들어갔다.

“흐, 윽······”

씹은 입술이 가늘게 떨렸다. 거대한 게 좁은 곳을 뚫고 들어오는 감각은 언제나 낯설다. 넣어도 넣어도 끝이 없는 느낌에 지훈은 조금 전 나불거린 게 후회됐다.

“네가 움직여.”

“안 그래도 그러려고 했, 어······”

결국 끝까지 내려가진 못하고 멈추었다. 박승혁이 끝까지 내리려고 허리를 강하게 잡자 지훈이 그 손을 쳤다.

“알아서 해.”

“네네.”

박승혁이 항복하듯 두 손을 떼어 들었다. 지훈이 입술을 다시 씹었다. 다리에 힘을 주어 버티고 위아래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성기를 끝까지 삼키지 못했어도 좁은 내벽은 이미 가득 찬 듯했다. 스스로 힘을 주어 움직이니 성감대를 깊게 찌르고 싶으면서도 겁이 나 닿을 듯 말 듯 움직였다. 애단 느낌과 내벽에 가득 찬 느낌만으로도 야릇한 쾌감이 올라왔다.

“으응, 음, 음.”

움직일 때마다 교접한 부분에서 작게 찰박이는 소리가 났다. 구부린 허리에, 완전히 주저앉지 않으려고 다리에 힘을 주어 버틴 상태에서 둔부만 위아래로 움직이는 스스로가 우스우면서 멈출 수 없었다. 이미 숱하게 맞본 쾌감은 쉽게 이성을 집어삼켰다.

한창 집중한 뒷모습을 보며 박승혁은 소리 없이 숨을 골랐다. 금방이라도 허리를 잡고 아래로 누르며 쳐올리고 싶지만, 혼자 자기 성기를 삼킨 채 열중한 모습을 보는 것도 마냥 나쁘진 않았다.

조용히 손을 내려서 각도 조절 레버를 올렸다. 좌석이 부드럽게 뒤로 넘어갔다. 대각선으로 누운 걸 눈치채지 못한 채 한창 행위를 이어가는 뒷모습을 감상했다. 아직은 버틸 만했다.

허리를 가리는 티셔츠와 재킷이 거슬렸다. 두 개를 한꺼번에 잡고 위로 끌어 올리자 맨살이 드러났다. 지훈이 움찔거리며 뒤를 돌아봤다. 움직임을 멈춘 다리가 힘겨워 보였다.

“왜, 헉.”

“안 보여서. 근데 안 힘들어? 도와줄까.”

“······”

사실 힘들다. 혼자 운동하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도와달라고 하면 무식하게 막 처박을 것 같다. 그렇다고 계속 혼자서 이러다가는 절정에 달하지도 못하고 애단 쾌감만 느낄 것 같다.

역시 아까 괜히 입을 놀렸다. 도와달라는 말 자체가 너무 커서 혼자서는 끝까지 못 삼킬 것 같다고 인정하는 꼴이다.

박승혁과 섹스할 때 할 만하다고 생각했던 때가 있긴 했다. 입을 놀린 건 그때를 생각하며 한 말이었다. 

문제는 그때가 자신이 대기발령 상태로 돌려져 박승혁의 오피스텔에서 칩거하던 때라 몸도, 마음도 약해져 있었을 때라는 거다. 박승혁은 저를 배려하여 이런 면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매우 부드럽게 정사를 이어갔었다. 그때 처음으로 그 굵은 성기가 삼킬 만하다, 고 느꼈었다.

지금은 몸 상태가 나쁘지 않다. 조금 전엔 얄밉게 입을 놀렸다. ‘도와주는’ 수준에서 멈추지 않을 거다.

지훈이 고민에 잠겨 있는 사이, 박승혁은 두 손을 지훈의 앞으로 뻗어 허벅지 위를 잡았다. 허벅지를 휘감듯이 잡고 아래로 누르는 동시에 허리를 위로 쳐올렸다. 반쯤 나와 있던 성기가 한 번에 애널 안으로 들어갔다. 둔부에 음모가 닿을 정도로 끝까지 들어간 성기가 성감대를 뚫을 것처럼 찔렀다.

“-아악!”

전기가 통한 것처럼 몸이 찌릿했다. 손톱을 세워 콘솔박스를 움켜쥐고 바들거렸다.

“아니, 자, 잠깐, 움직이지 마. 진짜, 아.”

“괜찮아. 힘 빼.”

“아니, 안 괜찮다, 고, 응, 으, 으-”

박승혁은 상체를 좌석에 기대고 허리를 쳐올렸다. 도망가지 못하게 휘감은 허벅지가 완전히 맞붙어 그가 쳐올리는 대로 움직였다. 성감대를 찌르며 느껴지는 확실한 쾌감에 지훈이 입을 벌린 채로 헐떡였다. 숨을 토해낸 지 몇 번 만에 입안에 고여 있던 침이 실선을 그리며 아래로 떨어졌다.

“헉, 윽, 으응, 으, 읏.”

허리를 구부려 느껴지는 불편함마저도 쾌감으로 인식됐다. 내벽이 제대로 성기를 조여대 박승혁도 강한 쾌감을 느꼈다.

“흐, 이제, 안 힘들지. 어? 허억.”

“조, 좀 닥쳐, 봐, 아으, 응, 읏, 잇, 익!”

박승혁이 한 손으로 지훈의 성기를 쥐었다. 다른 손이 허벅지를 휘감아 고정하지 않았더라면 허리가 튕겨 올라갔을 거다. 성기를 잡고 일부러 굳은살이 쓸리도록 비비자, 지훈의 눈에 금세 눈물이 고였다.

“하으, 아, 안······”

“뭐라고?”

“아, 안 된······ 아, 아아, 아!”

못 들은 척, 허리를 더 빠르게 쳐올렸다. 성기와 내벽에서 느껴지는 쾌감에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다. 숙인 얼굴에 피가 쏠려 뜨거웠다. 눈물방울과 침이 아래로 계속해서 떨어졌다. 무슨 표정을 짓는지도 모르고 교성을 질러댔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아, 아, 아! 아! 아- 흐읏······”

갑자기 멈춘 움직임에 지훈이 강한 후희를 느끼며 허리를 움찔움찔 떨어댔다. 혼자서 아쉬운 것처럼 허리를 파르르 떠는 스스로가 창부 같아 얼굴을 붉혔다.

“왜, 씹.”

아직 서로 절정에 달하지도 않았는데 급작스레 멈춘 그가 의아했다. 박승혁은 대답하지 않고 성기를 쥐었던 손으로 레버를 잡았다. 레버가 올라가며 등받이가 완전히 아래로 내려가 일직선을 이루었다. 박승혁이 지훈의 배에 두 팔을 감고 뒤로 누웠다.

“-아!”

지훈도 그처럼 뒤로 누운 모양새가 되었다. 구부렸던 목과 어깨가 뒤로 누워지며 순식간에 펴졌다. 눈앞에 새카만 천장이 보였다.

“뭐, 뭐······ 흐윽!”

배를 휘감고 고정한 채로 성기를 쳐올렸다. 끝까지 들어왔던 성기가 내장이 밀리는 것처럼 더 깊게 들어와 성감대를 찔렀다. 고정되어 움직일 수 없는 몸 대신 다리가 절로 튕겨 올라갔다. 

적나라한 자세에, 박승혁이 의도한 바가 뭔지 깨달은 지훈이 불안함에 자기 배를 휘감은 팔을 풀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돌처럼 단단한 두 팔은 끄떡도 하지 않았다.

“팔, 팔 풀어, 씹, 풀라- 악! 아! 아!”

“흑······”

박승혁이 이를 악물고 허리를 움직였다. 전초전 없이 빠르게 위로 쳐올렸다 내렸다는 반복하며 성기가 성감대를 후벼팠다. 

지훈이 고개를 뒤로 꺾고 신음을 내뱉었다. 지르려고 지르는 게 아니라, 벌려진 입에서 저도 모르게 나오는 교성이었다. 눈물이 관자놀이를 타고 아래로 내려갔다. 뭐라 말하는지도 모르고 중얼거렸다.

“아악, 안돼, 안, 아, 아, 아.”

“큭, 읏, 좋아, 죽으면서······”

박승혁이 입술을 씹어 삼켰다. 더 말하다간 입술이 떨리는 걸 들킬 거다. 조금 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게 성기를 조였다 푸는 감각에 황홀할 정도로 쾌감이 느껴졌다. 바로 옆 귓가에서는 고개를 젖힌 지훈이 계속해서 달뜬 신음을 뱉었다.

“아, 아, 아, 아으, 으, 응.”

행위가 한참 지속되자, 지훈도 이성을 내려놓곤 홀린 듯 박승혁에게 맞춰 허리를 움직였다. 박승혁은 잠깐 팔을 풀어 지훈의 티셔츠와 재킷을 위로 올리고 드러난 맨살을 쓰다듬었다. 

마르고 단단한 배 위로 손을 올리자 손끝에 오돌토돌한 감각이 느껴졌다. 이전에 수술하고 생긴 자국이었다. 다시 손바닥을 내려 배를 더듬거렸다. 불룩 튀어나온 부분이 허리를 움직일 때마다 뱃가죽을 뚫을 것처럼 위로 솟구쳤다 내려갔다. 웃음이 터져 나왔다.

“킥, 이러다 뚫리겠네.”

“아으, 응, 앗, 아아, 아.”

“어? 지훈아. 뚫리겠, 다고, 흐.”

“뭐가, 어, 억, 주, 죽을 거 같······”

박승혁이 콘솔박스를 쥐고 버티고 있던 지훈의 손을 잡았다. 지훈더러 자기 배를 쓰다듬게 했다.

“만져봐. 여기만, 튀어나온 거 느껴지지.”

“몰라, 씨, 발, 아, 앙, 아······”

다시 배를 휘감아 안았다. 자기 배를 쓰다듬은 손까지 안고 마지막 스퍼트를 올렸다.

“흐윽······!”

두 사람의 허리가 맞붙은 채로 휘어 올라갔다. 내벽에 정액이 뿌려지는 느낌에 지훈이 입술을 떨었다. 뻣뻣하게 젖힌 목구멍에서 맥없는 숨소리만 나왔다. 죽을 것처럼 힘들지만 그만큼 좋은 쾌감이었다.

“······허억, 허억······”

눈물로 얼룩진 얼굴이 멍하게 천장을 쳐다봤다. 박승혁이 축 처진 몸을 계속해서 쓰다듬었다.

지훈이 사정하는 순간, 성기를 감쌌던 박승혁은 손을 펼쳤다. 손바닥 가득 불투명한 점액체가 담겨 있었다.

“좋았어?”

“하아, 하아.”

“한 번만 더 하자.”

“좆 까. 윽.”

넓은 손이 지훈의 배를 문질렀다. 끈적한 액체가 배에 묻히고 비벼지는 감각이 불쾌했다.

“씨발, 뭐해. 그리고 더 하기 싫어.”

“싫으면 이 자세에서 한 번 더 하고.”

박승혁이 허리를 한 번 들썩이자, 내부에 박혀 있던 성기가 꿈틀 움직였다. 지훈이 몸서리를 치며 고개를 저었다.

“씹, 하기 싫다고 했잖아!”

“이 자세에서 한 번 더 할래, 다른 자세로 한 번 더 할래? 응?”

아니, 두 선택지 다 싫다고! 지훈의 얼굴이 구겨졌다.

봐준 척 내어준 선택지는 이미 정답이 정해져 있었다. 지금 자세에서는 자기 의지로 몸을 가눌 수 없었고, 박승혁이 하자는 대로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그가 끌어안고 있는 이상, 다른 자세로 하는 것밖엔 정답이 없다. 

즉 ‘네 맘대로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이 자세에서 한 번 더 할래, 아니면 네 맘대로 움직일 수는 있는 자세에서 한 번 더 하고 끝낼래?’를 짧게 말한 거다. ‘아예 안 하고 여기서 끝낸다’라는 선택지는 없었다. 

더 하기 싫다고 계속 뻗대면 허리를 쳐올릴 게 뻔했다. 봐줄 때 빨리 후자를 선택하라는 거다.

“······일단 팔 좀 풀어봐.”

“다른 자세로 하자고?”

“하······ 팔 좀 풀어보라고.”

“무슨 자세로 할 건데.”

짜증이 치밀어 소리를 높였다.

“아 씹, 뒤집게 좀 풀라고!”

“마주 보고 하고 싶다고?”

이 씨발놈이······ 세게 악문 턱이 불거졌다. 지훈은 거의 자포자기 상태가 되어 대충 고개를 주억거렸다. 박승혁이 씩 웃으며 내내 배를 감싸고 있던 팔을 풀었다.

몸을 일으키고 바지와 속옷을 완전히 벗어 조수석에 던지는 과정에서 빠져나가는 성기의 느낌이 좋진 않았다. 거대한 뱀이 미끄덩거리며 빠져나가는 듯해 잠시 몸서리친 지훈은 박승혁과 마주 보는 자세로 뒤집었다. 

박승혁의 성기를 잡고 자기 애널 입구에 대었다. 처음보단 수월하게 성기를 삼켰다. 두 번째로 이어진 정사는 첫 번째보단 덜 힘들었으나 민망함은 더했다. 좌석 위에 두 다리를 굽혀 올리고 박승혁을 내려다보는 채로 허리를 움직이려니 민망해서 눈을 어디로 둘지 몰랐다.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그를 모른 척 눈을 감고 아래 감각에 집중했다. 귓가에 철벅대는 소리 사이 불규칙하게 들리는 낮은 숨소리가 묘하게 흥분됐다. 눈을 감고 헐떡이는 얼굴이 피가 쏠려 새빨갰다. 

박승혁은 마른 눈물 자국과 땀범벅이 된 지훈의 얼굴을 감상하며 배를 덮은 재킷과 티셔츠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하, 으음, 음, 읏.”

“힘들어?”

꼭 감겨 있던 눈이 한쪽만 열렸다. 대답하지 않겠다는 양 다시 감긴 눈에 박승혁이 이번엔 허벅지를 쓰다듬었다. 마르고 단단한 근육의 감촉을 느끼며 나른한 한숨을 토해냈다. 조금 전처럼 다리 힘으로 버티고 완전히 내려앉지 않은 거다.

“힘 빼고 앉아.”

“음, 됐어······”

“안 아프게 할게. 계속 그러면 힘들다.”

고양이 쥐 생각하기는. 그리고 너 같으면 믿겠냐. 지훈이 속으로 욕설을 뱉으며 대답 대신 눈썹을 찡그렸다.

그 모습을 보던 박승혁이 여태껏 누워 있던 좌석 등받이에서 상체를 일으켰다. 자기 양어깨를 잡고 버티던 팔을 잡고, 힘을 빼도록 한 그는 지훈의 등을 감싸 안았다. 

지훈이 당황하는 사이 꼭 끌어안은 채로 등받이에 몸을 눕힌 그는 아래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박승혁과 얼싸안은 모습으로 아래에 완전히 눕혀지게 된 지훈은 본의 아니게 다리에 힘이 풀려 완전히 그 위에 올라앉게 되었다. 그만큼 성기가 좀 전처럼 깊숙이 내벽을 밀고 올라왔다.

“으, 윽······”

그래도 박승혁이 부드럽게 움직인 덕분에, 눈물을 쏟거나 우는 소리를 낼 정도로 힘들진 않았다. 자연스러워 저도 그에 맞춰 같이 얼싸안고 엎드린 상태로, 그가 움직이는 대로 맞추어 엉덩이를 흔들 뿐이었다. 부드럽지만 확실한 쾌감이 올라와 머리를 울렸다. 머릿속이 몽롱해지며 다시 눈물이 나왔다.

접합부가 부딪쳤다 떨어지며 척척한 소리를 냈다. 상관하지 않고 더 강하게, 빠르게 허리를 놀렸다. 근육질의 어깨에 얼굴을 파묻고 신음을 삼켰다. 웅얼거리는 신음이 불규칙적으로 빠져나와 차 안을 메웠다.

움직임이 격해지며 전신을 흔들었다. 머릿속이 빙빙 돌았다. 어지럽고 관자놀이가 욱신거렸다. 눈물만 쏟아내다 내벽을 가득 메우는 감각에 허리를 파르르 떨었다. 동시에 저도 쏟아낸 정액이 두 사람 사이에 갇혀 바깥으로 삐져나오지 못하고 갇혔다.

절정에 달하고도 후희에 몇 번 허리를 떨다가 축 늘어졌다. 박승혁도 지훈더러 바로 일어나라고 하지 않고 등을 쓰다듬으며 자신도 후희를 즐겼다. 맞붙은 얼굴에서 속도를 맞춘 숨소리가 나왔다.

한참 숨을 고른 지훈이 고개를 들자 입을 맞췄다. 입술을 벌려 훑는 농밀한 키스 사이로 맡아지는 땀 냄새와 시큼한 정액 냄새가 달큰했다. 정사의 마지막 키스는 의외로 지훈이 더 적극적으로 박승혁의 혀를 물면서 끝났다. 두 번째는 뒤로 뺐어도, 막상 들어간 후엔 저도 즐겼다는 걸 키스하며 알 수 있었다. 

지훈이 길게 숨을 내쉬며 고개를 들었다. 일한 여독과 정사의 여독까지 합해져 얼굴엔 피로가 가득했다. 수척한 얼굴이 은근히 계속 보고 싶게 했다. 박승혁이 손으로 얼굴의 땀을 걷어줬다.

“집에 가서 씻고 자자.”

“배고파 뒤지겠어. 밥부터 먹을래.”

“그래. 맛있는 거 먹고 씻고 자자.”

투정 부리는 아이를 대하는 어투에 지훈이 머쓱한 표정으로 엉덩이를 들었다. 구렁이 같은 성기가 빠져나가며 정액을 끌고 나왔다.

“으음.”

“잠깐 그대로 있어 봐.”

박승혁은 한 손으로 콘솔박스를 열어 휴대용 티슈를 꺼냈다. 지훈이 티슈 몇 장을 빼내자, 건네받은 박승혁은 상체를 세우고 손을 뻗어 바깥에 흘러나온 정액을 닦았다. 정액을 닦은 티슈를 바닥에 던지는 걸 본 지훈이 본래 조수석으로 몸을 옮겨탔다. 박승혁도 각도 조절 레버를 올려 원래대로 등받이를 세웠다.

던져놨던 바지와 속옷을 원래대로 입는 것도 피곤했다. 개인차고 안이라 이렇게 마음껏 섹스도 하고 속옷도 안 입은 채로 앉아서 멍하게 있을 수 있었다. 

버클과 벨트만 채우고 끝난 박승혁과 달리, 더 갖춰 입을 게 많은 지훈은 아랫도리를 입을 생각도 하지 않고 멍을 때리다 문득 숨쉬기가 불편하다는 생각에 차 문을 열었다. 땀이 마를 정도로 추운 공기가 차내에 들어왔다.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감기······”

걸린다, 라고 말하려던 박승혁의 눈에 핸드폰이 들어왔다. 지훈의 핸드폰이었다. 조수석에 던졌던 핸드폰을 챙길 생각도 하지 않고 깔고 앉아있었다. 지훈의 다리 아래 끼어 있는 핸드폰 액정에 불이 깜빡 들어오며 진동했다. 순간 마음에 걸렸던 장면이 떠올랐다.

좀 전, 외근 나갔던 지훈을 차에 태우고 날 선 대화가 오갔던 직후였다. 갑자기 핸드폰이 울려 어색했던 정적이 깨졌었다. 지훈은 무심하게 핸드폰을 확인하더니, 못 볼 거라도 본 양 단말마의 소리를 내뱉었다.

‘······하.’

그러더니 핸드폰을 끄고 조수석 헤드에 머리를 기대어 눈을 감았다. 무슨 일인지 궁금해서 물어보기엔 금방까지 날 선 대화를 해서 물어보기 애매했다. 결국 못 물어보고 끝이 났다. 그다음엔 이곳 차고에 도착해서 머리를 감싸고 있던 그에게 어느새 깬 지훈이 말을 걸며 자연스럽게 정사로 이어졌고.

까먹고 있다가 저걸 보니 불현듯 떠올랐다. 좀 전에 지훈이 봤던 게 뭘까. 지훈에게 무슨 연락이 왔던 걸까. 뭐길래 그런 반응을 보였던 걸까. 개수작이라기엔 굉장히 귀찮다는 듯한 반응이었는데. 차라리 설레는 반응이었다면 질투하는 척 뭐냐고 빼앗아 확인이라도 했을 건데. 그렇다고 이것 역시 정상은 아니지만 말이다.

지금 손에 들고 있는 것도 아니고, 다리 아래 깔고 있는데, 잠깐 보면 안 되나. 호기심이 올라왔다. 거기 불을 붙이기라도 하듯 진동이 연달아 울렸다. 누군가 메시지를 연달아 보내는 거다. 누굴까.

열린 차 문틈 사이로 차가운 공기를 계속해서 마시는 뒤통수를 힐긋거리며 조용히 손을 뻗었다. 손끝에 핸드폰이 닿았다. 잡으려는 순간.

‘탁-’

“뭐해.”

핸드폰을 잡으려던 손이 지훈에 의해 돌아갔다. 손을 친 지훈이 굳은 얼굴로 그를 노려봤다. 자기가 쳐놓고 생각 이상으로 매몰차게 쳐버려 당황해서 굳은 얼굴이었다. 박승혁이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렸다. 맥없이 돌아간 손은 허공에 대고 털었다.

곧 운전석 쪽 문도 열렸다. 서로 반대편을 쳐다보며 차가운 공기를 들이마셨다. 한동안 어색한 공기가 감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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