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장(1권) (1/16)

1장

해가 완전히 내려앉은 시각, 한산한 도로에 중형차 한 대가 나타나더니 속도를 줄였다. 갓길에 주차한 그 차에서 남자 네 명이 내렸다. 네 명 중 두 명은 사복을, 두 명은 경찰 정복을 차려입은 모습이었다. 

간간이 지나가는 차들이 하얀 정복을 입은 두 사람을 지나칠 때 속도를 줄이는 게 보였다. 이곳에서 무슨 사건이 발생했나 싶어 호기심을 보이는 게 차창으로도 느껴졌다.

사복 입은 남자 중 한 명은 가장 나이 지긋하고 능숙한 인상에 옷차림도 넥타이를 맨 양복이라 이들 중 가장 직급이 높은 듯했고, 한 명은 훨씬 어려 보임에도 편한 옷차림에 까칠한 인상이라 결코 어리숙해 보이지 않았다. 잘생긴 얼굴에 쭉 뻗은 눈매를 똑바로 치켜떠 이곳저곳을 훑는 태도는 건방져 보이기도 했다.

이들이 경찰임을 알 수 있게 해주는 정복 입은 사내 두 명이 오히려 얌전한 태도로 이들을 보조하는 느낌이었다. 양복 입은 남자와 검은색 재킷을 입은 사내를 보며 그들의 고갯짓에 따라 시선을 움직였다.

가로등 불빛으로 도로를 살펴보던 사내가 핸드폰을 꺼내어 손전등을 켰다. 환한 불빛이 도로를 더 또렷하게 비추었다.

“팀장님, 여기 스키드마크 있습니다.”

“어, 보이네. 김 순경.”

“네.”

팀장이라 불린 양복 입은 남자가 손짓하자 앳된 사내가 잰걸음으로 와 사진을 찍었다. 다른 정복 입은 남자는 외곽에서 간간이 지나가는 차들을 손짓하며 교통을 정리하는 제스처를 취했다. 까만 차창으로도 궁금증이 느껴지는 차들은 손짓에 따라 늦췄던 속도를 붙여 빠르게 지나갔다.

세 명이 손전등이 비추는 방향을 따라갔다. 도로에 여러 개의 타이어 자국이 보였다. 짙은 회색 선이 처음엔 직선이었다가 끝부분은 곡선을 그리며 남겨져 있었다.

“여러 개 있네요.”

“응. 피해자를 사망하게 하려고 일부러 같은 자리만 왔다 갔다 하면서 밟았네.”

“네. 보험사기 맞는 것 같습니다.”

셔터음이 여러 번 이어졌다. 차 몇 대를 더 보내고, 네 명 사이에 이야기가 오간 후에 팀장이 뺑소니에 보험사기를 더해 입건하라고 말하곤 인도로 이동했다. 어차피 가해자를 조사하고 한두 번 더 와야 했다.

조사가 끝나고 짧은 휴식 시간이 이어졌다. 정복을 입은 가장 앳된 사내는 편의점으로 심부름을, 좀 더 나이가 있는 다른 남자는 화장실에 갔다 오겠다며 같이 자리를 비웠다. 남은 두 사람이 가로등이 비치지 않는 인도 한쪽에 서서 담배를 피웠다. 사복을 입은 경찰의 특권 아닌 특권이었다.

팀장이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말했다.

“딱 봐도 애 친 사람이, 애 엄마 내연남일 거야. 반응 봤잖아. 애 죽었다는 데도 우는 것보다 가해자는 안 다쳤냐고 묻는 거.”

“두 사람이 전 직장에서 같이 근무했다고 했죠?”

“그래. 전남편 사이에서 난 딸이겠다, 재혼할 때 걸리는 것도 치우고 보험금도 타고 일석이조 하려고 그런 거야.”

“같이 살아도 딸은 할머니가 다 키웠으니까, 그럴 가능성이 크네요. 타이밍도 한 달 전에 성인 된 기념이랍시고 보험 가입시키고.”

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에······”

건너편 상가를 훑던 얼굴이 말 꺼낸 사내를 향했다.

“할머니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엄마가 직접 키웠다면, 이런 일까지 꾸미진 않았을까요?”

“에이, 그랬겠어? 키워줄 사람 없으면 보육원에 보내버렸겠지. 이 경위, 보기보다 감상적이네. 강력팀에서 근무해놓고서는.”

담배 쥔 손이 자신보다 한참 어린, 검은색 재킷을 걸친 편한 차림의 사내를 가리켰다. 졸지에 감상적인 사람이 된 지훈은 예의상 헛웃음을 쳤다.

“강력팀보다야 여기가 여유롭겠지만, 그래도 바빠. 말만 교통과지, 교통 범죄 조사하는 쪽인데.”

“네. 두 달 해보니 쉬운 거 하나 없네요.”

“그래도 잘해. 역시 강력팀에 있다가 온 사람이야. 경찰대도 나오고.”

팀장이 지훈의 어깨를 툭 쳤다.

“그래도 외근 나가지 않는 날엔 웬만하면 정복 입는 게 좋아. 아직 보는 눈들이 많으니까.”

“네. 사복이 익숙해서, 정복 입는 게 아직 어색합니다.” 

“곧 익숙해질 거야. 저번에 보니까 잘 어울리더만.”

“네.”

올 초, 인사이동이 끝나고 옮긴 근무지로 첫 출근을 하던 날, 하얀색 교통과 정복을 차려입고 사무실에 들어서던 어색한 얼굴을 떠올린 팀장이 저도 모르게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경찰대 출신의 인재에 강력팀 형사로 근무한 경력에다가, 훈훈한 외모의 지훈은 부서에 꼭 필요한 존재였기에 잘 키운 아들 보듯이 바라봤었다.

교통과로 온 것도 이전 부서에서 적응을 못 해서거나, 비공식적 좌천 때문도 아니다. 교통 범죄 수사팀 팀장은 입 밖에 꺼내진 않았으나 내심 지훈이 몇 개월 전 클럽에서 일어난 난동 사건에 휘말려 큰 부상을 입은 게 자신에게 잘된 일이라 생각했다. 물론 여기까지 오게 된 과정이 조용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그 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서에 지훈의 어지러운 집안사나, 그가 한때 유흥업소에 살다시피 했다든지, 상납금을 받았다느니 하는 소문도 들어 우려도 있었다. 

하지만 두 달간 지켜본 바에 따르면 유흥업소는커녕, 꼼꼼하게 일을 처리하고 잦은 야근도 강력팀 근무 때에 비하면 많은 편도 아니라며 귀찮아하지 않았다. 심지어 비번을 반납해야 할 때도 내색이 없어 -착각일 수 있으나 오히려 은근히 좋아하는 듯했다- 이렇게 인사이동 결정을 내리게 된 시끄러운 민원이나 소문에게 고마움까지 느끼고 있었다.

아직 두 달밖에 안 봤어도 수많은 사람을 봐 온 그는 자기 눈이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했고, 그러기를 바랐다. 

시끄러웠던 소문도 인사이동 후 잠잠해지는 즈음이었다. 며칠 전 회식 때는 여자친구도 없고, 당분간 만들 생각도 없다는 말에 혼기가 찬 딸을 떠올리기도 했지만, 스스로 섣부르다고 생각해 입 밖에 내진 않았다. 지훈을 생각보다 감상적이라고 한 말과 달리, 그도 이것저것을 만들어내 생각하며 멀리 내다보는 성격이었다.

아, 걸리는 점이야 있긴 있었다. 우선 얼굴이 잘생겨도 전체적인 인상은 까칠한 점이라든가, 말투도 그처럼 직설적이고 툭툭 내뱉는 거라든가. 퇴근 후나 반납하지 않은 비번 날에 무엇을 하는지 전혀 모르겠다는 거라든가.

전자는 형사였던 적 버릇인 듯해 크게 신경 쓰이진 않았다. 앞으로 교통과에서 계속 있으면 점차 유해질 거다. 후자는 좀 걸렸다. 걸린다기보다는 궁금했다.

부하들에게 듣기로는 쉬는 날 농구나 한판 하자고 몇 번 불렀는데 그때마다 딱 잘라 거절했다는 거다. 운동을 싫어하는 거라기엔 마르고 단단한 몸을 보면 그건 아니고, 술 한잔하자는 말도 몇 번 거절해 대체 쉬는 날 뭐하냐는 말이 이미 돌았었다. 

소문에 의하면, 그리고 본인이 말하기로도 가족과는 아예 연락을 안 한 지 좀 됐다고 했으니까. 지훈은 그냥 집에서 쉬는 걸 좋아한다고 대답했다.

‘사회성이 좀 없지만, 그거 외엔 다 괜찮은 놈’

지훈을 두 달간 보며 내린 한 줄 평이었다. 꼭 쉬는 날 동료들과 같이하지 않는다는 것 외에도 크게 정을 주지 않는 듯한 태도 탓도 있었다. 어딘가 벽을 치는 느낌에, 교통과로 온 게 좌천당했다고 느껴 저러는 거 아니냐고 건방지다는 말도 있었다. 사실 지금도 알게 모르게 오가고 있었다. 

검거 과정에서 망가져도 아깝지 않을 시계를 찬다고 하는 형사과에서 왔는데도 제법 가격대가 높은 시계를 찬 것이나, ‘양카’라고 불리는 차를 몬다든가, 잘생긴 얼굴 하며 아직까진 교통과에서 붕 뜬 게 느껴졌다.

팀장의 흘긋거림을 느낀 지훈이 눈을 마주쳤다. 팀장은 아닌 척 눈을 휘어 사람 좋게 웃었다.

“사복 입었으니까 자네는 여기서 바로 퇴근해.”

“아닙니다. 서에서 챙길 것도 있고, 보고서만 작성하고 퇴근하겠습니다.”

“막내가 사진 다 찍어놨는데 뭐. 내일 해, 내일.”

지훈이 아니라고 대답하려는데 발소리가 들렸다. 발소리를 향해 고개를 돌리니 팀 동료들이 오고 있었다. 유 경장과 김 순경이었다. 유 경장은 지훈보다 나이도, 경력도 많으나 직급은 낮았고, 김 순경은 나이도, 경력도, 직급도 낮았다.

유 경장은 여유 있게, 김 순경은 막내답게 뛰어와서 먼저 도착했다. 숨을 조금 빠르게 쉬며 봉지를 내미는 얼굴이 앳되었다. 팀장이 수고했다고 말해주는 사이, 지훈은 말없이 봉지에 손을 넣어 아이스크림과 담배 하나를 쥐었다.

네 명이서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베어 물었다. 차가운 바람에도 봄바람이 조금씩 섞여 있었다. 자연스럽게 날씨 얘기로 시작된 이야기가 점차 길어졌다.

“요즘엔 길거리에 외제 차가 많아졌어요. 꼭 강남 아니더라도 외제 차 쉽게 볼 수 있다니까요.”

유 경장의 말에 김 순경이 감탄사를 내뱉었다.

“아- 아까 경장님도 보셨죠. 그 아우디.”

“어. 여기가 그렇게 잘 사는 동네는 아닌데, 눈에 띄더라.”

팀장이 “아우디?”라고 물었다.

“네. 김 순경이랑 편의점 들렀다 나오는데, 길가에 아우디가 세워져 있더라고요. 지시등도 특이해서 눈에 확 띄던데요.”

“그럼 검문 한 번 해보지.”

“어유, 그런 차 몰고 다니는 치들은 이거 정식 검문이냐고 엄청 예민하게 나와요. 그냥 길가에 차도 잠깐 못 세우냐고요. 잘못 걸리면 골치 아픕니다.”

“참 나, 아우디 아우디 해도 그 정돈가. 잘 사는 동네 아니라도 아우디 몰 수도 있지, 뭘 그래.”

“아우디 중에서도 S 시리즈더라고요. 그것도 최신 시리즈. 처음 봤어요.”

“그거 많이 비쌉니까?”

김 순경의 질문에 유 경장이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차에 관심이 많아 카탈로그도 모으는 사람답게 바로 대답이 튀어나왔다.

“야, 기본이 2억이야. 옵션 붙으면 더 올라가고. 억대라고, 억대.”

“우와아.”

해맑게 감탄하는 막내를 보며 팀장이 키들댔다. 지훈도 웃음이 나와 입꼬리를 올리려다 굳혔다.

한동안 막내의 첫 차는 어떤 차가 좋은지, 소형차가 좋은지 중형차가 좋은지에 관해 토론이 오갔다. 국산 중형차를 중고로 사는 것으로 결론 내린 팀장이 이야기를 정리했다.

“자, 잡담은 이만하고, 깔끔하게 여기서 퇴근해.”

유 경장이 우는 소리를 냈다.

“에이 참, 팀장님은 가능하시지만, 저희는 서로 돌아가야 하잖습니까.”

“내 차로 태우고 왔잖아. 서 근처에서 내려줄게. 이 경위도 어차피 서에 들러야······”

“아, 저는 여기서 바로 퇴근해야 할 거 같습니다.”

잠깐 침묵이 돌았다.

“그래?”

“네. 보고서는 내일 쓰겠습니다.”

입맛을 한 번 다신 팀장은 “그래, 그럼”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지훈이 바로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자, 김 순경이 비닐봉지를 내밀었다.

“선배님, 여기 버리고······”

“아니야, 됐어. 이만 가보겠습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어어, 그래.”

빈 아이스크림 스틱을 쥔 채로 멀어져가는 지훈을 세 사람이 쳐다봤다. 김 순경은 조금 머쓱한 얼굴로 봉지를 오므렸다.

“우리도 이만 가지.”

“네, 네.”

멀거니 쳐다보던 두 사람이 팀장을 따라 길가로 걸어갔다. 김 순경이 지훈이 사라진 방향으로 시선을 던지고 선배들을 따라갔다.

인도를 죽 걸어가 꺾으니 편의점이 보였다. 유 경장과 김 순경이 들른 편의점일 것이다. 지훈은 편의점을 향해 걸어갔다. 

정말 편의점 근처에 눈에 띄는 차가 세워져 있었다. 유리알 같은 광택의 검은색 세단은 멀리서도 묵직해 보였다. 순차적으로 겹친 네 개의 동그란 은색 마크가 달린 앞 범퍼는 두툼하고 무게감이 느껴졌다. 

잠시 주차한 것을 알려주는 두 개의 방향지시등은 깜빡거리지 않고 한쪽에서 나타나 다른 한쪽으로 소멸하며 사라졌다. 지시등까지 튀는 디자인. 지훈이 잠깐 눈을 찌푸렸다.

편의점이 가까워질수록 세단에도 가까워졌다. 몇 걸음만 더 가면 세단이 닿을 거리가 되자, 지훈은 갑자기 방향을 틀어 편의점 정면 횡단보도를 건너기 시작했다. 빨간색 신호등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좌우를 살피며 빠른 걸음으로 건너갔다. 좌우로 나타났다 사라지는 방향지시등이 사라지더니, 세단도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길을 건넌 지훈은 다른 곳은 살피지도 않고 오로지 정면만을 향해 걸어갔다. 뛰는 건 아니었으나 경보 수준으로 속도가 제법 빨랐다.

그 옆으로 편의점 앞에 세워져 있던 세단이 따라붙었다. 금방이라도 주차할 것처럼 인도에 몸을 바싹 붙인 채로, 지훈이 걷는 속도에 맞춰 느릿하게 움직이며 이동했다. 엔진 소리 없이 미끄러지는 움직임과 작은 소음에 소리는 거슬리지 않았다. 외관상 두 대상이 기묘한 산책을 하는 것처럼 보여 이상해 보일 뿐이었다.

일반적이라면 자기 옆에 바싹 붙어 천천히 이동하는 차를 예의상 힐긋거릴 만도 하나, 지훈은 꼿꼿이 앞만 바라보며 걸었다. 

십여 미터를 걸어가자, 조수석 차창이 내려갔다.

“경위님.”

지훈이 눈동자를 돌려 옆을 확인했다. 뚜렷한 이목구비의 남자가 지훈을 향해 빙글거리고 있었다.

“나 그만 소박 주고 타시죠.”

눈동자를 바로 했다. 속도를 더 빨리해 걸어가는 지훈을 박승혁이 씩 웃으며 쳐다보곤 조수석 차창을 올렸다. 액셀을 밟자 차가 미끄러지며 속도를 냈다.

기묘한 산책은 코너를 돌고서야 끝났다. 지훈이 걸음을 멈추고, 그에 따라 차도 멈췄다. 지훈은 몸을 돌려 조수석 문을 열고 차에 올라탔다. 동승자를 실은 아우디는 기다렸다는 듯이 속도를 붙여 도로를 달렸다.

“손엔 뭐야.”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야경을 보던 지훈이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또렷하게 각이 진 옆모습이 보였다. 손에 아직도 빈 아이스크림 막대가 들려 있었다. 중앙 컵홀더에 쏙 넣었다.

“선물.”

박승혁이 바람 빠진 웃음소리를 냈다. 장난친 건데 조금 짜증이 느껴져 상투적인 질문을 던졌다.

“저녁은.”

“······”

지훈이 옆을 보며 물었다.

“안 먹었어?”

‘탁’

희미한 소리가 났다. 뒤이어 똑딱똑딱, 하는 소리가 차내에 울려 퍼졌다. 묵직한 차내가 워낙 조용했고, 대화가 어색할 즈음 켜진 방향지시등이 마치 ‘대답하기 싫다’라는 제 주인의 의사를 간접적으로 전달하는 듯했다.

하지만 지훈도 까칠하면 까칠했지, 다정한 성격은 아니다. 제 연인을 달래주지 않고 모른 척 차창 밖 야경으로 시선을 옮겼다. 조용했던 차 안이 더 침묵으로 가라앉았다.

‘시발, 차는 존나 좋아서 존나 조용하고 지랄이네.’

지훈이 소리 없이 입술 안쪽을 깨물었다. 침이 소리를 내며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박승혁은 모른 척하는 지훈에게 말없이 시위하듯 과장된 제스처로 운전했다. 방향지시등을 거칠게 끄는 거라든가, 빨간불에 차를 멈출 때 브레이크를 확 밟는 거라든가, 기어를 필요 이상으로 힘을 줘서 내리고 올리는 거라든가. 

억대 차를 거칠게 모는 태도에 지훈은 속으로 ‘돈지랄 좆되기는’라고 생각하며 고집스럽게 차창 밖만 봤다.

짧은 기 싸움은 길게 가지 않았다. 급정거한 앞차에 박승혁도 브레이크를 밟으며 경적을 눌렀다. 짜증스럽게 혀를 차며 몇 초간 길게 누르는 경적에, 지훈이 마침내 운전석으로 얼굴을 돌렸다. 앞차와 시비라도 붙으면 자신만 불리했다. 안 그래도 차도 튀는데.

“뭐가 불만이야. 아까부터.”

“네가 불만이지.”

박승혁은 여전히 정면만 보고 있었다.

“한 시간을 기다렸어.”

생각보다 짜증이 심한 듯했다.

“너 신경 써서 다른 차 끌고 왔는데 개 산책시키는 것도 아니고.”

박승혁도 처음에 지훈이 말없이 차를 무시하고 걸어간 게 짜증보다는 귀여웠다. 분명 차가 튄다고 자기 나름대로 애교를 부리며 돌려서 시위하는 거다. 그런데 타고 난 뒤에도 차창만 보는 거라든지, 손에 든 게 뭐냐고 물었더니 선물이라며 스틱을 툭 던지는 거라든지. 

바쁜데도 지훈을 만나러 외근하는 데까지 가서 거의 한 시간을 기다렸는데 시큰둥한 지훈의 태도나, 최근 감정까지 더해서 짜증이 쌓이는 속도에 가속도가 붙었다.

‘선물도 줘도 안 받으면서 장난은······’

박승혁이 저도 모르게 혀를 찼다. 읊조리듯 찼는데도 조용한 차내에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렸다. 

한 시간을 기다렸다고 해도, 그렇게 모르는 척하고 얼마간 걸어갔다고 해도 분명 장난스럽게 그만 소박 주라고 본인이 말했는데, 이건 지나친 거 아닌가. 아니, 제대로 연애해 보자고 했으면서 왜 이렇게 바라는 건 많은 건지. 자신보다 나이도 많은 놈이. 지훈도 인상을 찌푸렸다.

“그런 차 끌고 오면 튄다고 말했어.”

“그래서 다른 차 끌고 온 거 안 보여?”

“말귀 좀 알아먹어. ‘그런 차’에 이 차도 들어가는 거 정도는 알잖아. 그리고 근무하는데 근처에 자꾸 나타나지 말라고 했지. 차도 튀어서 아까 한마디씩 했다고.”

박승혁이 입을 꾹 다물었다. 하도 튄다고 투덜대서 나름대로 눈을 낮춰 저번과는 다른 차를 끌고 온 건데, 이번에도 까칠하게 구니 기분이 상했다. 고작 이거 하나로 기분이 상할 만큼 그가 속이 좁지는 않다. 몇 개월 동안 쌓인 게 컸다.

코앞에 대고 좋아한다고 말하고, 이젠 연애하는 것처럼 제대로 만나보자고 한 뒤로 지훈은 더 이상 돈을 받지 않겠다고 했다. 애인 사이에 계약해서 떡칠 때마다 목돈을 주는 게 정상적이냐는 말에 모순은 없다. 분명 틀린 말은 아닌데, 박승혁은 왠지 모르게 서운함을 느꼈다. 돈을 주는 사람이 서운함을 느끼는 게 모순이었다.

지금까지 일을 제외한 상대방과의 만남을 단지 육욕을 배설하는 관계로만 여겼던 그는 금전이 오가지 않고 만나는 관계가 어색했다. 

만나서 애정을 표현하고, 키스를 하고 몸을 섞는데 아무것도 주지 않는 관계. 그런데 보기만 해도 좋아서 이것저것 주고 싶고, 반응을 보고픈 사람. 그에게는 ‘감정’까지 오가는데도 아무것도 주지 않는 이 관계가 언제라도 끊어질 것처럼 위태로워 보였다.

‘싫으면 예전처럼 지내. 애인하지 말고.’

불만스러운 얼굴에 대고 똑 부러지게 한 말에 박승혁은 애먼 곳에서 투덜댔다. 사무실에서, 점검차 나간 영업소를 돌며, 식사하며, 담배를 피우며, 차를 마시면서 일 외에 조금이라도 틈이 나면 이 얘기를 꺼냈다. 물론 이 모든 건 다 그의 오른팔이자 비서실장인 김명준 앞에서 했다. 예전에 준 시계를 차지 않는다고 투덜거릴 때와 같았다. 그때보다 더 심했지만.

“형님, 그럼 돈 말고 선물을 드리면 되죠. 연인 사이에 선물은 정상적이지 않습니까.”

죄 없는 명준이 참고 참다가 스스로 살기 위해 짜낸 조언에 박승혁은 언제 그랬냐는 듯 구겼던 미간을 폈다. 김명준은 거의 처음으로 오랫동안 모신 형님에게 속으로 쌍욕을 날렸다.

그런데 해결되지 않았다. 문제는 선물도 받지 않거나, 줘도 쓰질 않는다.

지훈의 입장에서는 줘도 쓸 데가 없고, 주는 것들도 그의 월급이나 직업에 비해 지나치게 튀어 오르는 수준이었다. 가격대를 낮춰 옷을 사주자-그래도 지훈의 월급에 비하면 값비쌌다- 자기 고집으로 원하는 스타일이 아니라며 입지 않았다.

솔직히, 일부러 그러는 것도 있었다. 지훈에게는 갑작스러운 애정 공세가 아직 부끄럽고 어색해서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걸렸다. 

가족과도 연을 끊는 과정에서 그들이 거머리마냥 쉽게 떨어지지 않았고, 악다구니를 질러대는 통에 시끄러웠다. 겨우 떨어져 조용해지자, 이번엔 밀려오는 공허함 때문에도 물욕이 아예 사라지다시피 되어버렸다.

그동안 어깨를 짓누르던 짐이 사라지니 처음엔 편했으나 얼마 안 가 어색해졌다. 오랫동안 어깨에 짊어지고 살았는데 앞으로는 뭘 지고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공허한 감정이 들었다.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짊어져야 할 것만 같았다.

그런 감정에 익숙해지지도 않았는데 교통과로 인사 이동하여 새로운 환경에서 적응까지 해야 한다. 혼자 적응하고 익숙해져야 하는 것들은 많은데, 박승혁 혼자 신이 나서 필요하지도 않은 걸 주니 당황스러운 거다. 속도를 맞추기 어려웠다.

옆에서 필요 이상으로 투덜거리는 연인을 구태여 없는 애교를 떨어가며 풀어주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는 성격도 아니고. 

지금은 자신도 온종일 일한 여독이 쌓여 있었다. 강력팀 형사로 있을 때보다는 업무강도나 위험성이 세진 않지만, 그래도 교통‘범죄’를 다루는 경찰이다. 외근 나가는 정도는 엇비슷했다. 단지 도로 등 차와 관련된 곳에 간다는 것만 달랐다. 

외근 나오기 전엔 뺑소니 사건을 보고서로 정리한다고 컴퓨터 모니터만 몇 시간을 들여다봤다. 눈이 뻐근해 강하게 감았다. 가능하다면 귀도 닫고 싶었다. 옆에선 여전히 소리 없는 시위를 하는 몸짓이 느껴졌다.

‘우우웅-’

감았던 눈을 떴다. 느껴지는 진동이나 액정 불빛이 자기 핸드폰에 메시지가 왔다는 걸 알리고 있었다. 옆은 무시한 채로 전원 버튼을 눌렀다. 카톡이었다.

‘근무 관련인가?’

퇴근한 지 얼마 안 되어 확인도 안 하고 바로 카톡을 눌렀다. 내용을 확인하는 순간 저도 모르게 단말마의 소리를 냈다.

“······하.”

박승혁이 자신을 힐긋거리는 게 느껴졌다.

‘어머니’

- 가족 버리고 잘 사니? 천벌 받을 놈.

핸드폰을 끄며 조수석 헤드에 머리를 기댔다. 최근 잠잠하다 싶더니 또 카톡을 보내왔다. 번호도 차단하고 카톡도 차단했더니 다른 번호로 보내와 그냥 포기했다. 그나마 카톡으로만 떠들라고 번호만 차단했다. 다양한 방법으로 공격하는 것보단 카톡으로만 떠들고 치우는 게 나았다. 카톡은 알람을 끌 수 있으니까.

‘맞다. 알람 꺼야 하는데······’

해야 하는데 그때마다 넘겨서 아직도 못 했다. 지금 할까 하다가 피곤함이 더 컸던 지훈은 눈을 감았다. 여독과 연인의 투덜거림에 어머니까지 몰아치니 아예 잠을 청하는 게 나을 듯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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