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화
짧게 자른 머리, 족히 이 미터는 될 법한 덩치를 가진 사내는 군복을 입고 있었다. 이름은 확인할 수 없었지만, 한국 정부 소속임은 확인했다. 하윤은 그가 내린 헬기의 표시도 확인한 다음 고개를 끄덕였다.
“비켜 보십시오. 힘 쓰는 건 제가 전문입니다.”
하윤이 자리를 비키자, 사내는 짧은 무전을 친 뒤 하윤의 자리로 내려왔다. 아마도 목표 위치에 도착 여부와 하윤과 접촉했는지 등을 보고한 것이리라.
‘하기야 눈이 있으니 슬슬 보였겠지.’
사내는 허리에 줄 하나만을 덜렁 매단 채로 헬기에서 뛰어내렸다. 커다란 덩치와 무기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가볍고 날랜 착지에 하윤은 헬기 쪽을 다시금 힐긋거렸다. 아마도 헬기에서 그를 보조하는 능력자가 있는 것이리라.
타인의 존재를 인지하자 윤일호에게 정신이 팔려 미처 보지 못했던 주변이 눈에 들어왔다. 자신에게 다가온 사내 말고도 여러 명의 초능력자가 주변에 포진해 있었다. 조명탄과 촬영용인지 다른 용도인지 모를 드론도 떠 있었다.
군뿐만 아니라 인근 길드에서도 인력을 파견한 건지 마크가 제각각이었다. 이들을 확인한 하윤은 덜컥 가슴이 내려앉았다. 혹시나 무경도 와 있는 것은 아닐까. 다급히 [문]을 열어 주변을 확인했다. 다행스럽게도 무경은 보이지 않았다.
‘그래, 아직 서해 쪽에서 현장 수습 중일 거야. 올려 보내지 않았을 거라고.’
주변을 급히 둘러본 탓에 현기증이 일었다. 멀쩡한 척하고 있으나 목구멍에선 피 맛이 나고 코와 이마는 금방이라고 피를 쏟을 듯 얼얼했다. 하윤은 마른 입술을 핥으며 눈을 깜빡였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버티자. 강박에 가깝게 자신을 타이르며 이름 모를 사내에게 설명했다. 사내의 무전기로 자신의 브리핑이 퍼지길 기대하면서.
“다행히 핵이 있습니다. 충격을 받은 부위는 굳어 단단해지며, 그 부근에서 새로 줄기를 뻗어 나갑니다. 이 역할을 핵이 돕는데, 이 과정에서 핵이 이동합니다. 현재 핵의 위치와 진로를 조정하려 충격을 주던 중이었습니다.”
“공격이 들어오진 않습니까?”
“현재로서는 위로 뻗으려고만 합니다.”
“이유도 압니까?”
“[문]을 열기 위해서요.”
“문?”
“예, [문]. 열리면 괴수가 튀어나올 [문]이요. 조금 개념이 다르긴 한데 그냥 게이트라고 보시면 됩니다.”
“아, 게이트…….”
사내는 하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다가 할 말이 많은 것처럼 다시 고개를 들었다. 아마도 사람이었던 존재가 게이트를 열고자 했다는 것, 그리고 진짜로 게이트를 여는 것도 가능하다는 말에 당황한 모양이었다.
‘게이트가 열리는 걸 저지해야 한다는 건, 반대로 생각하면 윤일호가 게이트를 열 수 있다는 소리니까.’
그러나 정말로 괴물이 된 윤일호가 [문]을 열 수 있을지는 어떨지는 몰랐다. [문]은 자격을 따지는 데다가, 미궁의 문을 여는 것은 특히나 더 많은 힘이 필요로 했다. 많은 문지기의 곡옥과 하윤 본인의 능력도 한계까지 소모되었다. 능력을 과도하게 쓴 탓에 하윤은 십여 년간 [문]도 제대로 보지 못했다.
이 세상의 [문]과 이(異)세계의 [문]의 어쩔 수 없는 틈과 틈이 마주하면 그것은 게이트가 된다. 이 세상과 이세계는 각자의 궤도를 따라 수없이 겹쳤다가 멀어지기를 반복하므로 평생 닿지 않는 곳이 있는가 하면, 주기적으로 닿는 곳도 있었다. 주기적으로 닿는 예로는 붉은긴다리불가사리의 출현을 들 수 있었다.
그렇다면 미궁이라는 것은 어떻게 봐야 하는가. 외국에서 던전이라고 불리는 이 공간은 문지기의 시점에서 [문]이 없거나 혹은 열려 있는 공간이 서로 맞물릴 때 발생했다. 그곳에 서식 중인 사념체나 생물체가 연결된 공간을 인지하며 각자 그 공간 건너의 이세계로 넘어오며 문제가 생겼다.
이세계 생물의 특성이 인간에게 해를 끼치거나, 인간을 먹이로 인식하여 공격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어 인간들이 이를 이용하기도 했다. 쓰레기 매립지로 이용한다거나, 지하자원을 채취하거나.
물론 이 세상의 [문]과 이세계의 [문]이 겹치는 것은 아주 희박한 확률에다, 낡은 [문]이 열리고 닫힘에 따라도 달라질 수 있으므로 우연이라는 말과 어울렸다.
‘그래, 운명이라는 거창한 말과는 어울리지 않지.’
다만 사내에게 게이트라는 말을 쓴 것은 아직 저 [문]은 미궁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번만 잘 넘어간다면 어쩌면 더 오랜 시간을 버텨 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윤이 생각을 정리하는 사이 자리를 잡은 사내는 그의 무기인 커다란 망치를 휘둘렀다. 어른 머리통보다 큰 망치가 윤일호의 흐물거리는 몸에 닿자 굉음과 함께 튕겨 나갔다. 사내는 무기를 갈무리하며 짧은 휘파람을 불었다.
그가 다시금 공격을 준비하는 동안 주변으로 튄 윤일호의 파편은 어느 한곳으로 스멀스멀 움직이기 시작했다. 물방울같이 작은 파편이라 눈으로 확인하기 어려웠으나, [문]을 열고 엿들은 덕분에 알 수 있었다.
‘요새 장치가 참 좋단 말이야.’
군에서인지 아니면 길드인지 늦게 도착한 만큼 첨단 장비를 바리바리 들고 와 인근에 기지를 꾸리고 있었다. 게다가 일이 잘 풀리지 않았던지 흥분한 누군가가 고래고래 소리 질러 준 덕분에 양질의 정보를 주워들을 수 있었다.
‘고등급 에스퍼들이 인근에서 명령 대기 중이군. 왜 대기만 하는지는 이유를 말해 주지 않은 모양이고.’
정보가 극도로 제한된 상태로 유지되고 있을 것이다. 작금의 사태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원인이 무엇이었는지 눈치챘다 해도 본부에서는 공표하려야 할 수가 없을 것이다. 공표하는 순간 사회적 혼란을 초래하여 수습 불가의 사태로 흘러갈 수 있기 때문이었다.
‘빌딩 안에 있던 인원만으로 이 꼴이 났는데 범위가 순식간에 넓어진다면 감당하기 어렵겠지.’
사람들이 안전한 곳으로 피신하고 나니 괴수들은 새로운 먹이를 찾아 건물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하윤이 처리하고 있긴 했으나 수가 너무 많았다. 아차 하는 순간에 빠져나간 괴수와 헌터들이 전투를 벌였다.
기지 안에 있는 사람은 정부의 소극적인 대처가 답답한 모양이었다. 계속 시간 싸움이라며 증원을 요청했다. 차라리 빠르게 진압하는 편이 마이너스 에너지를 저감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는 것이었다.
‘빨리 끝내야 한다.’
맞는 말이었다. 다만 하윤은 그들의 입장과는 조금 달랐다. 그들이 적극적으로 대응해 고등급의 초능력자를 내보내기 전에 결판을 내야 했다.
‘하자. 그래, 하자.’
충격을 받은 윤일호의 신체는 경화되고 핵은 이를 피해 달아났다. 구슬이 돌 듯 몸속을 빠르게 돌고 있으며 충격을 받지 않은 곳으로 순식간에 퍼져 나갔다. 하윤이 위아래로 몸을 짧게 만들면 만들수록 어림없다는 듯이 뻗어 나가는 속도가 빨라졌다.
‘문으로 가른 것보다 직접적인 충격을 주는 것이 경화 시간이 길다. 신체 조직이 튀어나가기도 하고. 물론 금세 합류하려 하지만 이 또한 흐물거리는 상태보다 경화된 상태에선 합류 시간이 느려진다.’
실험은 해 볼 만큼 해 봤다. 더욱이 이 실험 또한 결과가 나쁘지 않았다. 하윤이 바라는 것은 윤일호가 향하는 방향을 트는 데 있었다. 하윤이 위와 아래를 자른 덕분에 윤일호의 신체를 계속해서 옆으로 뻗어 나갔다. 그 바람에 지나치게 면적이 넓어지고 기존에 신체를 지탱하기 위해 박아 넣었던 뿌리 조직이 무너지면서 건물 상층부의 붕괴가 가속했지만.
‘어차피 무너질 건물 아니었냐고.’
다만 아직 죽지 못하는 처지라 무너지는 낭떠러지에서 순식간에 반대편으로 넘어갈 순 있었으나, 자잘한 부상은 피하지 못했다. 하윤은 들리다 못해 덜렁거리는 손톱을 뽑아 던진 뒤 군인에게 공격을 준비시켰다. 자신이 신호할 때 가장 강한 공격이 내질러 달라고. 신호하는 순간에 자신이 바라는 목표가 뭔지 바로 보일 테니 걱정하지 말라는 말도 덧붙였다.
“예?”
“하나.”
윤일호의 몸이 다시 흘러내려 합쳐지기 전에 빠르게 갈라서 범위를 한정하자. 범위만 만들어진다면 곧장 충격을 주어 시간을 벌 것이다. 핵을 부술 시간. 아니, 그 앞이나 중간에 문을 만들 시간만 있으면 된다.
“둘.”
군인은 하윤에게 묻는 대신 등 뒤에 매고 있던 기계를 조작했다. 그러자 망치에 푸르스름한 빛이 돌았다. 하윤은 곁눈질로 그것을 본 다음 [문]을 열어 공중으로 올라갔다. 자신을 장벽같이 두르고 있던 윤일호의 크기를 확인한 뒤 그를 크게 토막 냈다.
좌우를 끊어 낸 충격 때문에 핵이 있는 구역은 위아래로 가지를 뻗어 냈다. 하윤은 벌써 경계가 허물어지려는 몸을 재차 끊어 범위를 한정 짓고는 그곳을 분리하고자 했다. 그의 의지에 따라 수면에 돌멩이를 마구 던진 것처럼 공간이 일렁였다. 의지가 공간을 관통하기 직전, 하윤은 군인의 발밑에 [문]을 열었다.
그가 당혹스러운 눈으로 바깥에 나왔을 때, 하윤은 마지막 수를 외쳤다.
“셋!”
“……큭!”
소리가 닿았을까. 군인은 거의 반사적으로 무기를 휘둘렀다.
쿠우우우웅-!
도무지 망치로 냈다고 생각할 수 없는 굉음과 함께 바람이 일었다. 반동을 견디지 못한 군인이 반대편 건물 옥상까지 떠밀려 갈 때, 비로소 의지가 공간을 꿰뚫어 수십 개의 [문]을 만들었다.
나무같이 뻗어져 있던 윤일호의 몸 중간에 수십 개의 문이 열리고 닫혔다가 좌우로 흩어졌다. [문]이 보이지 않는 사람에게는 윤일호의 몸이 큐브 같이 잘리고 뒤틀린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핵을 도려내는 데 성공하자 하윤은 내내 쥐고 있던 도끼를 있는 힘껏 휘둘렀다. 핵을 뒤덮고 있던 살점이 이전과 확연하게 다를 정도로 튀어 올랐다.
온전히 핵만이 드러난 순간.
하윤은 때를 놓지 않았다. 작고 날카로운 문이 핵의 한가운데에서 열렸다.
틱-.
나무 조각이 동강 나는 소리가 났다.
이제까지의 고생이 무색하게 다소 허무한 소리였다. 하윤은 동강 난 조각을 다시 도끼로 내려찍고 발로 으깼다. 거의 울부짖듯 고함도 질렀다가 실성한 사람같이 웃기도 했다.
다만 그리 길게 웃지는 못했다. 남은 윤일호의 육체가 그대로 허물어져 쏟아지면서 건물도 본격적으로 무너졌기 때문이었다.
‘떨어진다.’
이대로 죽는가 싶었는데 아직 죽을 때가 아니었는지, 몸이 붕 떠오르더니 [문]들이 하윤을 삼키며 속도를 줄였다. 그리고 마침내 하윤이 두 다리로 떨어지는 건물 잔해에 섰을 때, 그의 옷과 머리칼이 한 차례 출렁였다.
‘멈췄나……?’
비교를 위해 옆 건물을 보자 잔해는 느리지만 계속 낙하하고 있었다. 잠시 잊고 있었던 불안이 슬그머니 고개를 내밀었다. 하윤은 숨을 들이켰다. 문득 물에 잠긴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익숙한 기운이 일대를 뒤덮고 있었고 한때는 윤일호였던 액체가 수조에 갇힌 듯 떠 있었다.
“…….”
이런 짓을 할 수 있는 사람은 하윤이 알기로는 단 한 사람밖에 없었다. 다만 이름을 떠올리는 것조차 싫었다. 내내 머금고 있던 숨을 탄식과 함께 토해 낸 순간, 하윤은 파도 소리를 들었다. [문]들이 쓰러지는 소리였다.
“[문]이……?”
온몸의 신경이 곤두섰다. 단번에 이것이 어떤 조짐인지 알아차렸다.
미궁이 열리려 했다. 틈이 벌어지고 만 것이다.
윤일호의 손이 문에 닿았던가? 아니, 그럴 리 없었다. 윤일호는, 김득철은 자신이 죽였다. 그의 핵을 자신이 동강 내지 않았던가.
‘그런데 왜?’
도대체 왜?
자신이 허락하지 않은 것을 이곳으로 들이려는 이가 대체 누구인가. 하윤은 답을 찾아 [문]을 열었다. 여름답지 않은 찬바람이 그를 훑었다. 시신에서 날 법한 냄새와 피비린내가 훅 풍겼다. 하윤은 마침내 마주한 답을 보며 입을 열었다.
“김희원.”
살아 있는 또 하나의 문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