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화
언제나 생각하지만, 사람을 상대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좋은 일을 해 주려 해도 그랬다. 그것은 사람들이 보편적인 선의 가치를 알고 있음에도 그들의 처한 상황과 편의에 따라 선택을 달리하기 때문이리라.
하윤은 곧 붕괴할 건물에서 사람들을 빼내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호텔의 객실은 물론이고 비상구에 갇혀 있던 사람, 환풍구 사이에 들어가 있던 사람, 그리고 대피소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사람들까지.
전자의 경우 대피가 쉬웠으나 대피소에 있는 사람들은 대피가 어려웠다. 온갖 종류의 괴수가 그들의 정신을 분탕 쳐 놓은 탓도 있었고, 이 건물 내에서 비교적 안전한 곳에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지정 대피소로 대피하지 않을 시 호텔 규정상 보장 범위가 축소된다거나.’
객실에 중요한 물품을 많이 두고 왔다던 중년인은 하윤이 관등 성명을 대고 해당 건에 전적으로 책임질 것을 바랐다. 그러지 않으면 이동하지 않겠다고. 그러고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하윤이 수상쩍으니 말을 듣지 말라며 훼방을 놓았다.
총기 무장을 했으면서도 관등 성명을 대지도 못하는 게 정부 소속이 아닌 것 같다고. 물론 사기업에 소속되었을 수도 있으나 그러면 거기 이름을 대면 될 것 아니냐는 둥. 나가고 있던 사람들의 줄을 끊으면서 돌려세우기 일쑤였다.
이기와 의심은 순식간에 불어났다. 사람들이 해명을 바라며 자신을 돌아보자 하윤은 두통을 느꼈다.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속이 상했다.
더군다나 그는 내내 머리 위가 신경 쓰였다. 그곳에 뭔가가 있으리라는 예감이 들었다. 슬쩍 [문]을 열어 확인했으나, 직접 나가서 밖을 봐야지 마음을 놓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더는 걸음을 지체할 수 없었던 하윤은 그들의 동의를 구하길 포기했다.
그렇게 원한다면 남아 있으란 말이 목 끝까지 올라왔으나 그들이 있는 호텔은 조금 있으면 전부 무너질 건물이었다. 대피소는 괴물의 침입을 저지할 순 있어도 붕괴 시 충격엔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냥 안에서 모두가 곤죽이 될 뿐.
‘아, 물론 나중에 시체 찾을 땐 다 모여 있어서 수습이 편할 순 있는데.’
차마 입 밖으로 뱉을 수 없는 말이었다. 하윤은 한숨과 함께 말을 삼킨 뒤 다시금 씩씩대며 자신에게 다가오는 중년인 발밑에 문을 열었다. 으악 하는 소리와 함께 중년인이 사라지자 중년인의 가족이 그를 불렀다. 하윤은 그들이 뭐라 하기 전에 발밑에 문을 열어 내보냈다.
“얼른 가세요. 시간 없어요.”
하윤은 머뭇거리고 있는 사람들에게 손짓했다. 사람들은 하윤이 그들을 어디로 내보냈을지 궁금해했으나, 이내 다시 줄지어 하윤이 열어 둔 [문]으로 나아갔다. 그사이 건물의 흔들거림 더욱 심해졌다. 지금 있는 대피소만 해도 건물이 사십 도는 더 기울어져 있었다.
중간에 다리가 풀려서 못 걷겠다는 사람을 직접 내보내 준 뒤, 하윤은 그제야 호텔 위로 올라갔다. 중간중간 그에게 달려드는 괴수를 처리하고, 사람이 더 남지 않았나 확인도 하고. 그렇게 옥상 위로 올라가자 세상 고단하게 느껴졌다.
눈만 감으면 곧장 기절하듯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아, 죽겠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아직은 죽을 수가 없었다. 하윤은 휴대 전화를 꺼내 이상일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일대에 통화량이 많아서 그런지, 아니면 다른 문제가 있는지 전화는 연결되지 않았다. 하윤은 헛웃음과 함께 이상일이 있는 곳으로 작은 문을 열었다.
“이상일 씨.”
열린 문 사이로 소란이 쏟아졌다. 이상일의 주변에 사람이 모여 있는 모양이었다. 언뜻 김희원의 이름이 들린 것도 같았다. 그게 아니면 자신의 이름이던가. 그러나 주변 소리를 일일이 캐물을 수 없었다.
“전화가 안 돼서요.”
[예?]
난데없이 들리는 하윤의 목소리 때문일까. 이상일은 하윤의 말에 당혹스러워했다. 그러나 그를 이해시켜 줄 만한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괜히 자기 머리통만 통통 두들기다가, 그냥 본론을 꺼냈다.
“대피는 어떻게 됐습니까?”
[그게…….]
“전에 짚어 줬던 좌표 중에 3-2 좌표와 범위를 확인해요. 3-1도 일부 범위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 부분만큼은 반드시 대피가 완료되어야 합니다.”
[그, 일대에 대피 권고가 내려가기는 했는데.]
이상일은 말끝을 흐렸다. 그가 미처 하지 못한 말이 뭐가 있을까. 대피 권고가 내려졌음에도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는 말?
[……제가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이상일 또한 이 일이 버겁고 막막했기에 한 소리였으리라. 그러나 이해와는 별개로 웃음이 터졌다. 하윤은 벽에 몸을 기대며 낄낄 웃었다.
‘아 환장하겠네.’
“할 수 있는 거라도 해 봐요. 어떻게 하는지는 나도 모르겠어요. 전에도 말했다시피 나도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것, 해야 하는 걸 하는 중이거든요.”
[그럼 지금 그랜드 파라디스에 있는 능력자가 김하윤 씨입니까?]
이상일은 뜬금없는 것을 물었다. 자신이면 어떻게 아니면 어떻단 말인가. 하윤은 코웃음 치며 그의 말을 무시했다. 그러나 재차 어떻게 거기에 있을 수 있느냐고 물었다. 어떻게 있긴.
“내가 문지기니까요.”
하윤은 이상일이게 이어지는 [문]을 닫았다. 마침 옥상 문이 들어가기 쉽게 구부러져 틈이 벌어져 있었다. 그 안을 비집고 나가자 옥상에선 딱 봐도 수상쩍어 보이는 남자가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뻗고 있었다. 그의 양 팔목에는 도무지 잊으려야 잊을 수 없던 낯익은 모양의 팔찌가 빛을 발하며 짤랑거리고 있었다.
곧이어 “문이여!” 하고 외치는데 눈 뜨고 봐 줄 수가 없었다. 봐서도 안 됐고.
그래서 그의 손목을 날렸다. 빗나갈 것을 대비하여 그의 손목 바로 앞에 다다를 [문]을 열었다. 같은 수법으로 단번에 머리를 터트릴 수도 있었으나 확인할 것이 있었다.
손목이 날아간 사내는 비명과 함께 하윤을 욕했다. 대피소에서와 비슷한 패턴으로 자신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조금 전과 달리 조금도 곤혹스럽지 않은 것은, 하윤의 목적이 남자의 계획을 망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설득도 필요 없는 상대였다. 설득할 바에 그의 머리에 바람구멍을 내주는 게 인류에게 좋은 일일 테니까.
남자는 하윤과 대거리를 몇 번 하다가, 수상쩍은 낌새를 내비쳤다. 곧장 총을 쐈지만, 이번엔 [문]을 열지 않은 탓에 빗나가고 말았다. 그사이 남자는 자신의 총을 피하다가 내리막을 굴렀다. 그대로 건물에서 떨어졌으면 좋았겠으나, 남자는 철근을 붙잡아 몸을 지탱했다.
분명 끊어 냈던 손목이 어느새 복구되어있었다. 신체 복구 능력이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앞에서 봤던 초능력자들처럼 두려움에 따라 신체가 변형된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제삼의 변수가 있는 것일까.
생각은 깊어지지 않았다. 어디론가 고개를 돌리는 남자의 시선을 읽었기 때문이었다. 하윤은 남자의 시선이 닿은 곳에 자리한 그의 손목과 팔찌를 발견했다. 그가 향하려는 곳에 먼저 가서 팔찌를 확인했다.
그때처럼 팔찌를 장식한 곡옥의 크기는 제각각이었으나, 재질은 똑같지 않았다.
‘진짜 옥이군.’
중간중간 옥이 아닌 것이 들어가 있는 듯도 했지만 중요한 것은 이것이 모조품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하윤은 불안한 눈으로 하늘을 힐긋 바라보았다. 아직 [문]은 열리지 않았고 주변의 문들도 파손되지 않고 잠잠했으나 아직 불안이 가라앉지 않았다.
‘왜 이렇게 불안할까.’
뭔가를 숨기고 있는 걸까?
하윤은 남자에게 다가가 남자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일단 [문]을 열려고 하길래 누군지 확인도 하기 전에 먼저 막고 본 것인데, 알고 보니 구면이었다.
‘구면인데 구면이라고 할 수 있을지.’
남자는 김득철을 닮았다. 하윤은 문득 이주미가 김득철의 사진을 보정 앱으로 만지던 모습을 떠올렸다. 두상과 턱을 줄이고, 눈과 코를 키우자 윤일호의 모습이 나왔었다. 물론 앱으로 만진 만큼 아예 다른 사람을 그와 닮게 만들 수도 있긴 했지만, 어쨌든 눈앞에 김득철과 하는 짓이 흡사한 윤일호가 있으니 자신의 가설이 맞아떨어진 셈이었다.
하윤은 그와 시선을 맞췄다. 시선을 맞춘 순간 동공 안에 [문]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윤이 열고자 하여 열지 못한 [문]은 없었으므로 그의 의지가 닿는 순간 [문]은 자연스럽게 벌어졌다. 하윤은 별다른 저항 없이, 찰나의 틈에 윤일호의 정신 속으로 파고들었다.
윤일호의 본래 기억은 그리 길지 않았다. 김득철과 똑 닮은 사람이 그를 만들었고, 그에게 제작자의 기억이 이식된 것이었다. 다만 그 기억이 완전하지 않아 어렴풋이 아는 것만 많았다. 가령 누군가와 계약했고 자료를 넘겨준 것은 기억하는데, 넘겨준 것이 무엇인지 계약한 대상이 누구인지 기억하지 못했다.
“빨리. 시간 없어. 네가 무슨 돈으로 실험했겠어. 돈 대 주는 새끼들 있었을 거 아니야. 그 새끼들 이름이라도 불러 보라고.”
그는 하윤의 질문에 고개를 저었다. 기억을 떠올렸으나 그 속에 알맹이가 없기 때문이었다.
‘꼬리를 제대로 잘랐네.’
배후 단체의 이름도, 자신과 접선했던 사람의 이름도 몰랐다. 김득철의 기억은 이식을 거듭하면서 손상되었으며, 또 이것을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휘저었다. 하윤은 단전 깊숙한 곳에서부터 끓어오르는 짜증을 참을 수 없었다.
‘이 새끼, 제대로 하는 게 없어.’
가장 어처구니없는 것은 김득철은 자신이 이용당했다는 것을 몰랐다. 어쩌면 상관없는 것일지도 몰랐다. 누가 자신을 이용하든지 그는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면 그만이었으니까. 그래, 그랬으니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자기 인형 놀이하는 데 썼겠지.
‘그래, 그러니까 그랬겠지.’
하윤은 김득철, 아니 윤일호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이로써 걱정거리 하나는 해치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총알이 윤일호의 머리를 꿰뚫은 직후, 윤일호의 신체에 변형이 일었다.
윤일호의 신체가 부글부글 끓어오르더니, 삽시간에 식물이라도 된 것처럼 하늘로 솟구쳤다.
“아…….”
‘X 됐다.’
생각보다 몸이 먼저 움직였다. 하윤은 윤일호의 신체가 그가 열려던 [문]에 가까워지지 않게 방해했다. 다른 문으로 자르고, 막고. 그러나 그의 신체는 하윤이 가로막은 [문]의 옆으로 가지를 뻗어 다시금 위로 뻗어져 나갔다.
‘이대로는 끝이 없잖아.’
본래 인간이었던 만큼 심장을 뜯을 생각을 했으나 그의 심장으로 향하는 [문]을 열려 하자 [문]이 열렸다가 닫히기를 반복했다. 마치 끝을 잡지 못하는 것 같이 헤매는 기분이었다.
사람의 심장이라면 위치를 바꿀 수 있을까?
‘이미 완전히 괴수가 된 거야.’
사망 직전에 문으로 총알의 위치를 바꾼 것을 보았으니 변형에 영향이 갔으리라. 하윤은 한숨과 함께 다시금 그의 심장이 아닌 핵을 찾았다. 마침 윤일호의 신체가 울렁이는 것을 발견했다. 핵을 이동시키고 있는 것이리라.
‘뿌리 부분의 색이 변했다.’
핵이 멀어지는 부분에서 경화가 이루어졌다. 계속해서 위로 뻗어져 나가는 가지의 무게를 지탱하기 위함일 수도 있었으나, 하윤은 살아 있는 것처럼 뻗어 나가는 가지에 집중했다.
‘가지가 잘 뻗어 나가도록 핵이 가까워지는 것은 아닐까?’
겸사겸사 하윤의 공격도 피하고 말이다.
‘시험해 보자.’
하윤은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후려친 뒤, [문]을 열어 위로 뻗어지고 있는 가지 위로 뛰어내렸다. 가지는 하윤의 체중에 출렁이며 아래로 차졌다가, 다시 하나의 얇은 가지가 위로 솟구쳤다. 하윤은 가지의 기반이 되는 줄기를 도끼로 내리쳤다.
“으아아아아!”
윤일호의 변형된 육신은 물 탄 전분 같았다. 경화된 뿌리를 제외하곤 흐물거리는데, 충격을 받으면 단단해졌다. 주로 하윤이 문으로 가로막거나 잘라 낸 부분이 그랬는데, 그곳을 다른 지지기반으로 삼아 가지를 뻗어 내는 것이다.
그렇다고 문을 치우면 그곳에서 다시 가지가 뻗었다.
욕을 안 하려야 안 할 수가 없었다. 내리친 팔이 얼얼했다. 그러나 충격에 경화된 부분에서 다시금 가지가 뻗어져 나가며 기존의 가지가 주춤하는 것을 확인했다. 그 부근이 울렁이는 것 또한.
이번에는 울렁이는 부분의 위를 막았으나, 아래는 막지 못했다. 핵의 이동이 너무 빠른 탓이었다. 하윤은 거친 숨을 내쉬며 도끼를 고쳐 쥐었다. 충격을 대비해 이를 악물 때, 헬기 소리와 함께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거길 치면 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