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원 라스트-151화 (151/162)

151화

이 괴상한 교환은 그들의 뒤를 쫓는 자가 김희원이되 김희원이 아닌 김희원을 찾는 바람에, 김희원이 김희원의 것이 아닌 자리를 바라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운이 아주 좋았다. 자신들의 뒤를 쫓던 이들 중에 가장 이빨이 날카롭다던 사냥개가, 김득철을 죽인 꼬맹이였을 줄이야.

김구호는 선물 차원에서 자신의 재주를 베풀어 김희원의 얼굴을 고쳐 주었다. 김희원이 그전부터 원한 일이었고, 다른 이들에게 혼란을 주기에도 적당했다. 부작용이 조금 있긴 했지만, 얼추 김하윤과 똑같이 만드는 데 성공했다. 한술 더 떠 김희원은 스스로 디테일을 챙기기까지 했다.

기억 속 자신의 우상이었던 김하윤의 얼굴을 완성한 것이다.

그가 계획한 모든 일이 성공했다. 물론 고난과 역경이 있기는 했지만, 그는 영화나 소설 속의 주인공처럼 이겨 냈다.

그러니 마지막 시련 또한 이겨 낼 것이다.

김득철은 무너지기 직전인 그랜드 파라디스의 옥상에 서서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벌렸다. [문]의 부름을 쫓아 이곳에 오자 온몸의 전율이 일었다. 자신의 몸속에서 내내 잠들어 있던 어떤 인자(因子)가 깨어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그것은 단순한 기분만이 아니었던지 마른 스펀지가 물을 먹고 몸을 부풀리듯, 팔호가 예술에 가깝게 조정해 두었던 그의 신체 균형을 무너트렸다. 대신에 이전과 비교할 수 없는 거대한 힘이 느껴졌다.

이제 자신이 힘을 선보이면, 자격을 증명해 내면 자신의 힘에 놀란 하잘것없는 것들이 고개를 조아릴 것이다. 그는 세상의 정점, 진짜가 될 것이다.

자신이야말로 진정한 김득철이며, 세상의 주인공이니까.

“아, [문]이여.”

[문]이란 것은 신비한 힘이라 존재 자체가 드물었다. 그 [문] 중에서도 선택받은 자만이 볼 수 있는 특별한 [문]이 있었다. 특별함은 본능적으로 느껴졌다. ‘아, 이것은 보통 문이 아니구나.’ 하고 말이다.

그런 [문]이 오늘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윤일호에게 보였다. 그가 [문]에게 선택을 받았으므로. 건물 아래 버글거리는 미물들은 결코 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

그저 눈앞에 찌꺼기 같은 괴수 몇을 보고 겁에 질려서는. 윤일호는 큭큭거리며 웃으며 자신이 보고 있는 [문]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가슴이 터질 듯이 두근거렸다. 저 [문]을 열어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어떻게 하면 열 수 있을까.

“[문]이여!”

윤일호는 재차 하늘로 두 팔을 뻗었다. 양 손목에 걸린 팔찌가 그의 힘찬 손짓을 따라 짤랑거렸다. 팔찌는 김득철이 만들었던 것의 모조품이었으나 문지기의 힘을 일시적으로나마 증폭시키는 능력은 같았다. 예전처럼 문지기 수급이 원활하지 않아 진짜 곡옥을 쓸 수 없음이 아쉬웠으나, 이것 또한 진짜를 뛰어넘는 과정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

김득철은 각고의 노력 끝에 만든 팔찌를 서이주에게 맡겨서 [문]을 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김득철과 달리 이 모든 것을 스스로 이뤄 낸 것이다. 자신의 능력으로 만든 팔찌를 이용해 저 특별한 [문]까지 열 수 있다면 문지기의 복제는 물론이고 인형을 만들 수 있는 능력까지 갖춘, 그야말로 이 세상에는 없던 새로운 초능력자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인류 대발견을 목전에 두고 그의 팔찌가 전조음을 울렸다.

짤랑, 짤랑, 짤랑!

“나의 원(願)을 들어주시오!”

짤랑, 짤랑, 짤랑!

“[문]을 열……!”

타앙!

윤일호는 말을 맺지 못했다. 난데없는 총성과 함께 그의 오른쪽 손목이 날아갔기 때문이었다. 윤일호는 순식간에 사라진 자기 손목을 보며 경악했다.

“끄아아……!”

어찌나 아픈지 소리조차 낼 수 없었다. 피가 분수처럼 솟구치자 겁이 덜컥 밀려들었다. 그는 오른팔을 품으로 숨기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러자 멀지 않은 곳에 밝은 색깔의 눈을 가진 젊은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씨발, 머리 위가 간질거리더니. 이딴 걸 하고 있었네.”

아, 씨바알! 한 번의 욕설로는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젊은 남자는 재차 크게 욕을 했다. 윤일호는 뒤늦게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새파랗게 어린 새끼가 자신의 대업을 망치려 한 것과 욕을 한 것, 그리고 손목을 날려 버린 것을 용서할 수 없었다.

품에서 총을 꺼내 그에게 갈겼으나, 조준이 형편없었다. 본래 솜씨도 좋지 않았던 데다가 통증으로 손이 떨리니 조준이 될 리가 있나.

“이 개, 개 같은 새끼가 지금 무슨 짓을 한 거야?! 네가 무슨 짓을 한 건 줄 알아?! 이 개자식아아악!”

젊은 남자는 번드르르한 자기 얼굴을 문지르다가 눈썹 한쪽만 까딱였다. 윤일호의 말이 우습다는 양 비웃는 기색이 역력했다.

“뭐긴 뭐야. 네 개짓거리 망치러 왔지.”

“이, 이, 이 씨발 새끼야!”

“너야말로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인간들이 정말 사람 말을 안 듣더라고. 믿기 어려워서 그런 줄은 알겠지만, 그래도 힘들더라.”

젊은 남자는 말을 마친 뒤 다시금 윤일호에게 총을 겨눴다. 그가 다음은 네 머리를 날리겠다고 말하는 순간, 윤일호는 [문]의 재촉을 들었다. 빨리 자신을 열라고, 빨리 자신을 갈구하라고.

통증도 통증인데다 상황도 좋지 않았다. 윤일호는 입술을 앙다물며 하늘을 바라보았다. 왼손의 팔찌가 짤랑거리며 빛과 소리를 냈다.

“어어?”

젊은 남자가 이것 보라는 양 소리를 낸 후 다시금 총성이 울렸다. 그러나 이미 자신을 쏘리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윤일호는 한발 빠르게 몸을 움직였다. 건물이 붕괴하고 있어 바닥에 몸을 반쯤 굴렀으나, 다행히 젊은 남자가 쏜 총알은 피했다.

다만 너무 구른 탓에 난간을 향해 쭉 미끄러지고 말았다. 또다시 몸의 균형이 무너지는 느낌과 함께 윤일호는 튀어나와 있는 철근을 양손으로 붙잡았다.

‘손?’

이미 없어졌다고 생각했던 손이 재생되어 있었다. 다만 자신의 본래 손과는 조금 다른 모양이었다. 고무나 실리콘으로 갓 성형해 낸 것처럼 인공적인 색채와 형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모양이야 어떻든 다행이었다.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게 나으니.

윤일호는 곧장 자신의 오른 손목을 찾았다. 거기에 팔찌가 있었으니까. 혹 손목에서 떨어졌다고 한들 근처에 있을 것이다. 때마침 손목과 팔찌가 건물 조각 틈새에 끼어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역시, 세상이 자신을 돕고 있었다.

‘총은 놓쳤지만.’

윤일호는 곧장 그곳으로 향했다. 이를 눈치챈 젊은 남자 또한 거의 동시에 움직였다. 떨어지려 기울어지고 있는 건물 위에서 윤일호가 허우적거리며 다리를 뻗는 순간, 젊은 남자는 이미 그곳에 닿았다.

그는 윤일호의 손목을 걷어차 날려 버리고 팔찌만 주워 들었다.

“이딴 거로 뭘 하려고 했어?”

“이 어린 새끼가…….”

윤일호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순식간에 다가온 젊은 남자는 총으로 그의 머리를 내리쳤다. 그 바람에 윤일호는 다시금 기울어진 바닥을 구르다가 형편없이 튀어나와 있던 철근에 꿰뚫리고 말았다.

“아아아아아아아악!”

고함을 치며 몸을 비틀었으나 몸을 관통한 철근은 뽑히지 않았다. 오히려 잘못될 것 같은 두려움이 훅 피어올랐다. 그가 철근 끝을 잡고 천천히 밀어내려 하자, 다시금 다가온 젊은 남자가 철근을 붙잡은 손을 지그시 밟았다.

“크……으, 으윽! 이, 개, 개새끼, 가아악!”

“너 윤일호지.”

“이이……!”

“맞는 것 같은데.”

젊은 남자는 기울어진 바닥이 아무렇지 않다는 양 움직였다. 흡사 다른 곳에 발을 디디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윤일호의 머리채를 잡아 고개를 들게 하고는 그를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그러나 그만 윤일호를 본 것이 아니었다. 윤일호 또한 젊은 남자를 자세히 볼 수 있었다.

처음엔 단순히 밝은 색 눈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남자의 눈은 빛나고 있었다. 가만히 들여다보자 통증을 잠시 잊을 정도로 신비(神祕)했다.

그리고 그 얼굴이 누구와 닮았는지도 알아차렸다.

김하윤.

김희원의 우상.

그의 모습을 본떠 성형할 때, 김희원은 김하윤의 특정 나이대의 모습을 선호했다. 능력을 잃기 전인 열일곱의 모습이었다. 그때의 모습이 워낙 곱상해서 단번에 알아보지는 못했지만, 자세히 보자 그때의 느낌이 남아 있었다.

“기, 김……하윤.”

젊은 남자, 김하윤은 정답이라는 듯이 한쪽 입꼬리를 삐죽 올렸다.

“통성명도 했으니 각자 갈 길 가자고.”

김하윤의 총구가 윤일호의 이마에 닿았다. 동시에 윤일호는 소리 없는 말을 들었다. 그가 그랜드 파라디스의 옥상으로 이끌었던 부름과 같았다.

문지기여, 문을 열어라.

문지기여, 문을 열어라.

아주 작은 틈이라도 좋다. 문을 열어라.

네가 문고리를 잡고 열기만 한다면

그 틈이 얼마만큼 미약할지라도 내가 이겨 내리.

출혈 때문인지 머리가 도는 느낌이었다. 새벽으로 넘어가는 시간임에도 볕으로 소란한 여름의 한낮처럼 느껴졌다.

“아…….”

윤일호는 신음과 같은 탄성을 뱉었다. 분명 아주 작은 소리였을 텐데, 몹시 크게 들렸다. 윤일호는 김하윤의 총구에 이마를 기댄 채 하늘로 손을 뻗었다. 아득히 먼 하늘 속에 있는 문의 문고리를 잡기 위해서.

윤일호의 손이, 윤일호의 원이, 윤일호의 능력이 문고리에 닿기 위해 뻗어져 나갔다. 동시에 김하윤이 방아쇠를 당겼다. 그 찰나의 순간이 영화처럼 아주 느리게 느껴졌다.

문고리가 손끝에 닿는 느낌과 함께 총구의 열기와 탄약 냄새가 났다.

‘아, 내가 이겼다.’

윤일호는 미소 지었으나, 분명 그의 머리를 꿰뚫었어야 할 총알은 다른 곳을 꿰뚫었다.

바로 그의 왼손 손목과 팔찌를 끊어 버린 것이다.

문을 밀거나 당겨야 할 힘이 문에 닿기만 한 채로 끊어지고 말았다.

“신기하지?”

“……이, 이, 이 씨발 새끼.”

김하윤은 이제 욕도 칭찬으로 들린다고 대답하더니 그의 배후를 물었다.

“내가, 이 내가 고작 이딴 거로 네 마음대로 하, 해에. 해 줄 줄 알고.”

“빨리 시간 없어. 네가 무슨 돈으로 실험했겠어. 돈 대 주는 새끼들 있었을 거 아니야. 그 새끼들 이름이라도 불러 보라고.”

윤일호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김하윤의 마음대로 굴어 줄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김하윤의 눈, 신비를 다시금 목격하자 대답해도 될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이미 그의 눈이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건…….”

윤일호는 다시 고개를 저었다. 이번에도 반사적으로 튀어나온 행동은 아니었다. 그야말로 생각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놈들이 누구였더라.’

그가 간직하고 있는 김득철의 기억 속에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저 마음 맞는 사람들 정도로만 남아 있었다. 단체의 이름도, 사람의 이름도. 그들에 관한 모든 것이 생각나지 않았다.

‘얼굴? 얼굴은 어땠더라.’

머리를 넘기고 안경을 쓴 것까지는 생각이 났다. 아니, 그랬던가? 도무지 생각나지 않았다. 그러자 김하윤이 긴 한숨과 함께 꼬리를 제대로 잘랐다는 소리를 했다. 윤일호가 알아듣지 못하고 몽롱하게 바라보자 김하윤이 그에게 욕을 했다.

“등신 새끼. 지가 등신인 줄도 모르고. 아, 머리 아파.”

“……?”

“하기야 이렇게 등신이니까 이용하기도 쉬웠겠지.”

이윽고 김하윤은 한 발을 더 쐈다. 죽음을 직감했기 때문일까. 윤일호는 총알이 머리를 꿰뚫기 전 또다시 찰나가 영원같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 순간에 두려워하고 말았다.

[내가, 김득철이 되지 못하면 어떻게 하지?]

그런 생각이 떠오르자 죽음이 몹시 두렵게 느껴졌다.

팝콘이 터지는 것처럼 머릿속에서 있는 줄도 몰랐던 어떤 것이 팟! 하고 터지는 소리가 들린 뒤, 그의 머릿속은 새빨갛게 물들었다.

김희원이 김희원이 아니었듯이 김득철도 김구호도 아닌, 그렇다고 윤일호도 아닌 괴(怪)생물체의 울음이 길게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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