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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라스트-148화 (148/162)

148화

굉음과 동시에 사방에서 비명이 튀었다. 술집 전등이 꺼졌다가 켜지기를 반복하다가, 이내 비상등에 불빛이 들어왔다. 온갖 미디어로 자랑하던 안전장치가 가동되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몇몇이 나서서 사람들을 통솔해 비상구로 내보내기 시작했다.

기준도 주변에 있던 친구들을 챙겨 비상구로 향하려던 때, 건물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다시금 장내는 비명으로 술렁였다.

그러던 중에 누군가가 말했다.

“……여기 무너지는 거 아냐?”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마라.”

곧장 곁에 있던 사람이 타박을 주었으나, 그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았던 말소리가 사람들에게 박히고 말았다. 기준 또한 마른침을 꼴깍 삼키며 비상등에 비친 사람들의 실루엣으로 자신의 차례를 가늠했다.

테이블 위치가 위치였던지라 빨리 움직인다고 움직였음에도 중간 정도의 위치에 있었다. 새치기하는 놈들이 계속 나타나는 바람에 줄이 좀처럼 줄지 않았다. 새치기하지 말고 차례를 지키라고 외쳤으나, 말로 하는 걸 들을 정도였으면 애초에 그런 행동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비상등에 뿌연 연기가 비쳤다. 기준은 초조한 마음에 입술을 적시며 발을 동동 굴렀다. 앞의 상황을 알 수 없었기에 초조함은 계속해서 몸집을 키웠다.

‘소리는 꽤 밑에서 들린 것 같던데 차단벽은 잘 내려갔겠지?’

아래층에서 무슨 일이 생겼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렇게 자랑하던 안전장치라면 지금쯤 조치가 되어 있어야 했다. 기준은 소란스러운 장내 소음을 뚫고 들리는 웅웅거리는 기계 소리에 몇 번이나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때마침 천장에서 물방울 하나가 톡 떨어졌다.

‘연기가 나는 걸 보면 화재겠지.’

화재 시 대피 요령을 떠올리며 축축한 손을 바지에 문질렀다. 그사이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개수가 늘었다. 그러나 스프링클러는 터지지 않았다. 기준은 불안한 눈으로 비상구를 바라보았다.

아직도 줄이 줄지 않았다. 층별 비상 대피소로 이동해야 하는데, 그 속도가 몹시 더뎠다. 마치 앞이 막힌 것처럼. 좀 더 아래서 문제가 생긴 줄 알았는데, 혹시 바로 아래층에서 문제가 생긴 건 아닐까?

“…….”

“앞에 닫혔어요! 이리로 오지 마세요!”

혼란을 막기 위해 대피소마다 층이 분리되어 위층으론 갈 수 없었다. 아래로만 향해야 하는데, 비상 대피소로 이동하는 길 중간에 차단벽이 내려왔다. 다만 이 차단벽이 닫히려다 말고, 다시 열렸다가 닫히기를 반복하고 있다고 했다.

아래층에 문제가 생겨 차단벽이 내려간 것인지, 단순히 고장 때문에 내려온 것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그러자 차단벽이 잠깐 올라간 사이 몇몇 사람들이 넘어가기 시작했다. 그 사람들은 얼마지 않아 밑층에서 아무 소리가 안 난다고 소리쳤다. 서너 번 대신 소리쳐 주는 게 들렸는데 그 뒤로는 다른 말이 없었다. 다들 소리가 안 나는 게 뭐? 하며 수군거렸다.

‘다 대피한 건가? 그래서 그런 건가?’

“기준아, 뒤로 물러나자!”

“어, 어어.”

그때 이번엔 물이 아닌 작은 돌가루가 후두두 떨어졌다.

‘이거 뭔가 이상하다.’

그렇게 느낀 것이 기준뿐만 아니었던지 다른 사람 몇몇이 ‘이거 심상찮은데.’ 하고 중얼거렸다. 그 순간 건물이 다시 흔들리더니, 비상구 쪽에서 높고 낭랑한 목소리가 들렸다.

“이쪽으로 내려오세요! 빨리 내려오셔야 해요! 이 건물 이제 곧 무너져요!”

기준이 있는 층에선 층별 비상 대피소로 이동하기 위해 아래로 내려가기는 해야 했다. 동요한 사람들이 다시 비상구로 향하려던 그때, 기준은 달려가려는 친구의 팔을 붙잡았다.

“뭐 해! 빨리 안 달리고!”

“아니, 이상하잖아!”

“뭐가!”

“저 소리만 왜 저렇게 선명하게 들리냐고!”

마치 귀에 대고 말하는 것처럼 선명했다. 친구는 기준과 비상구를 번갈아 바라보다가 그의 팔을 팽개쳤다. 그러나 막 달려가려는 순간, 앞에 있던 사람들이 소리 질렀다.

“가지 마세요! 가지 마세요!”

“듣지 마세요! 아래로 내려와야 해요! 내려와야 살아요!”

“문 닫아! 문 닫아야 해!”

“문 열어 주세요! 닫지 마세요!”

상반된 소리가 사방에서 튀었다.

“제 말 들으세요! 이거 정상적인 상황 아닙니다!”

“이 상황에서 무슨 소리예요! 지금 비상 상황입니다!”

몇몇이 문을 닫자, 앞뒤에서 난리가 났다. 서로 열라고 문을 두드렸다. 기세가 어찌나 거세던지 죄다 뭔가에 홀린 사람들 같았다. 문을 닫고 그 앞을 가로막았던 가구들이 바닥을 나뒹굴었다. 이제 곧 다시 문이 열리고 무엇이 옳았는지 판가름 날 것이다.

“씨발, 씨발!”

그러나 기준은 앞으로 갈지 말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망설였다. 위에서 떨어지는 가루의 양이 점점 많아지고 있었다. 어떤 곳에는 콘크리트 덩어리가, 또 다른 곳에는 배관이 떨어지기도 했다. 기준은 허겁지겁 탁자 밑에 들어가 웅크리다가, 맞은편 사람이 휴대 전화를 들고 훌쩍거리는 것을 보았다.

기준은 터져 나오려는 울음을 참았다. 그러나 별 소용 없었던지 그 또한 휴대 전화를 잡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부모님께 마지막 연락이라도 보낼 생각에 달달 떨리는 손을 움직였다. 그 순간 또다시 폭발음이 울리고 건물이 흔들렸다.

그때, 들려선 안 될 목소리가 들렸다.

“기준아.”

“……?”

“김기준.”

하윤의 목소리였다. 기준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탁자 밖에 있는 사람을 올려다보았다. 조명이 꺼지고 비상등만 겨우 빛을 발하고 있는 곳이라 하윤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대강 짐작하기로 자신에게 화가 나 있을 것이다.

자신이 그의 말을 하루 만에 어겼기 때문에.

“……형? 진짜 형이야? 형이 어떻게 여기를.”

“집에 가야지.”

잔뜩 화가 났으리라 여겼던 하윤은 도리어 조금 힘이 없는 목소리를 냈다. 피곤해하는 것 같기도 했다.

하윤의 말에 기준은 고개를 저었다. 가고 싶지 않다는 게 아니라 갈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하윤은 아무 문제가 없다는 양 굴었다.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이 흔들리는 건물, 비상구에 몰린 사람들, 아래층에서 들려오는 수상한 목소리 등.

하윤은 머뭇거리는 기준을 일으켜 세웠다. 그러고는 건너편 탁자 밑에 있던 사람도 불러들인 다음, 앞사람 어깨에 손을 얹게 했다. 그러고는 뒤에 사람에게 말을 전해 동참하게 했다. 금세 줄이 만들어졌다.

“뒤돌아보지 말고, 앞으로 계속 걸어가. 가까운 대피소에 들어가서 상황이 끝날 때까지 나오면 안 돼.”

“하지만.”

하윤의 말을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현 상황에서 가능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하윤은 계속해서 밖으로 나갈 수 있다는 전제로 말을 했다.

“이번엔 정말 지켜야 해.”

“…….”

“이다음엔 형이 데리러 못 올 수도 있거든.”

“형……?”

“가.”

“형!”

“…….”

그때, 어둠 속에서 보일 리 없던 하윤의 보였다. 하윤의 양 손목에서 황금빛 빛이 뿜어져 나왔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손목의 빛은 두 개의 황금색 고리가 되어 하윤을 가운데 두고 이리저리 움직이다가 순식간에 넓어져 시야에서 사라졌다. 동시에 하윤의 말대로 앞으로 나아가던 기준은 자신이 어떤 동굴에 들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이거 대체 뭐예요?”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있던 사람이 물었으나 기준은 저도 모른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저 그는 하윤이 말했던 대로 앞으로 나아갔다. 멀리서 무언가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기준은 몇 번이고 목을 꼴깍였다. 그러나 도무지 울음이 삼켜지지 않았다.

“흐……, 흑, 크으읍.”

방울방울 떨어진 눈물이 턱 끝에 맺혀 떨어졌다.

“미, 미안해 형, 형 미안…….”

뒤늦게 솟구친 죄책감에 밀려 허튼 사과가 입 밖으로 떨어졌다. 들어야 할 사람은 듣지 못하고, 해야 할 때를 놓쳐 버린, 그저 공허하기만 한 입발림 같은 사과였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여름밤의 조금 서늘한 바람이 그의 뺨을 스쳤다. 하윤의 말대로 밖으로 나온 것이다. 끽해야 다른 층의 대피소로 피할 줄 알았던 사람들이 아예 밖으로 나오자 술렁이기 시작했다. 어깨를 짚은 손을 떼고 줄을 이탈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기준은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그것이라도 해야 했기 때문에.

◇◇◇

하윤이 아파트 옥상으로 올라왔을 때, 그는 그저 자신의 불안을 누르기 위해 주변을 살펴보려 했었다. 일 주에서 이 주라고 했으니 적어도 일이 벌어지기까지는 일주일, 그도 아니면 삼사일의 시간은 있을 줄 알았다.

물론 예상이 엇나갔을 경우를 대비하여 최소한의 준비를 하고 왔지만, 앞서 말한 적이 있듯 시험을 앞둔 학생의 기분이라 조금이라도 시간이 있으면 뭐라도 더 준비하고 싶었다. 순찰은 그런 의미의 준비 중 하나였다.

‘분명 그랬는데.’

바로 눈앞에서 건물이 터질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리고 그 안에 동생이 있을 줄이야.

지하에게서 걸려 온 전화를 받고, 그녀가 “오빠!”라고 단 한 마디를 뱉었을 때부터 하윤은 머리를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 다급한 목소리가 무엇을 말하는 단번에 알았기 때문이었다.

나쁜 예감은 왜 좀처럼 빗나가는 일이 없는지.

“……어겼구나.”

툭 튀어나온 말이 서늘해서 자기 스스로도 낯설게 느껴졌다. 그러나 하윤은 변명하는 대신, 정확하게 누구인지 물었다. 그녀가 기준이라고 말하자마자 하윤은 전화를 끊고 문을 열었다.

‘김기준이 있는 곳.’

그의 의지가 발하자, 기준이 있는 곳으로 향하는 문 수어 개가 동시에 모습을 드러냈다. 하윤은 그중 하나를 열다가 잠시 동작을 멈췄다. 문에 손을 대는 순간 기준이 아직 멀쩡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문 너머로 보지 않아도 이미 본 것처럼 그의 상태가 짐작이 갔다. 얼굴을 거칠게 비벼 피곤을 떨친 뒤 그는 기준이 있는 곳 대신 폭발이 일었던 곳의 문을 열었다.

매캐한 연기와 쇠 냄새, 천장에서 쏟아지는 스프링클러의 물 냄새가 그를 맞았다. 안으로 들어가자 정체를 알 수 없는 괴수와 두려움에 질린 사람들과 한때는 사람들이었던 것이 한데 뒤엉켜 있었다.

문득 무경이 했던 당부가 떠올랐다. 무슨 일이든 꼭 네가 아니라도 할 사람 있으니까 위험하게 나서지 말라던 말이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지금 이 상황에선 다른 누가 나서지 않든 그걸 해결할 사람이 저밖에 없어 보이는 것을.

하윤은 [문]을 열었다.

가여운 것을 가엾이 여기기 위해서.

수십 개의 문을 여닫고, 다시 비틀었다. 거대한 괴수를 선 자리에서 토막 치고, 살아 있는 사람들을 모았다. 그들을 내보내던 차에, 토막 났을 괴수가 다시 일어나는 것이 보였다. 눈 깜짝할 문 사이에 넣고 비틀어 다시 토막 냈다.

만만치 않겠다고 여겼으나 이상하게도 사람들을 내보내고 나자, 괴수가 형편없이 약해졌다.

‘이런 경우는 뭐였더라.’

이제는 다 까먹은 줄 알았던 괴수에 관한 지식이 떠올랐다. 일반적인 괴수가 아니라, 사람들의 정신 에너지를 먹고 몸집을 키운 경우였다. 상황으로 짐작해 볼 때 좋은 에너지를 먹진 않았을 것이다.

‘두려움.’

그것을 깨닫는 순간, 하윤은 자신이 이곳에서 해야 할 일이 뭔지 깨달았다.

‘사람들을 다 내보내야겠다.’

그러는 김에 동생도 내보내고.

하윤이 다시금 의지를 발하자, 그는 어느새 그를 피해 달아나 힘을 키우려 수작을 부리던 괴수의 뒤에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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