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화
정신없이 입을 맞추다가도 서로를 더듬고 핥았다. 보다 서로의 존재를 정확하게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혹 무경의 마음이 자신과 다를지라도 이번만은 같으리라고, 하윤은 그냥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하윤은 무경이 자신의 목덜미에서 귓바퀴까지 핥아 올리는 바람에 목을 움츠리다가, 손으로 그의 얼굴을 더듬었다. 찡그린 미간을 슬쩍 바라보다가 그를 뒤집어 바닥에 눕히고는 그 위를 타고 올랐다.
처음과 같이 이마를 맞추다가, 먼저 눈을 감고 입을 맞췄다. 무경의 손이 자신의 등을 힘주어 쓸어내리다가 둔부에서 멈췄다. 내내 멈춰 있을 듯 강하게 쥐고 있던 손은 하윤이 고개를 때려 하자 곧장 그의 뒤통수와 목덜미를 내리눌렀다.
분명 무경의 위에 있었는데 어느 순간에 다시 밑으로 내려와 있었다. 옷은 반절이나마 챙겨 입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엔 양말, 그것도 왼쪽에만 덜렁 신고 있었다. 자리에서 밀려나지 않기 위해 발끝에 힘을 주자 오른쪽에 신겨 있었을 양말이 툭 하고 침대 밑으로 떨어졌다.
그 소리를 좇아 고개를 돌린 순간, 무경의 손이 하윤의 턱을 잡고 돌렸다.
“아…….”
숨을 들이켜면서 홀로 툭 떨어진 소리를 끝으로 또다시 입을 맞췄다. 입술을 비비다가 혀를 얽고, 서로의 숨을 빼앗듯 들이켰다.
더, 더 깊이. 더 가까이.
강박적으로 몸을 얽고 입을 맞추다가 무경의 손이 하윤의 아래에 닿았다. 하윤이 숨을 헉 들이켜며 눈을 뜨자, 무경은 마주 눈을 뜨고서 하윤의 입술을 잘근거렸다.
몸이 닿는 내내 선명하게 존재감을 드리우는 무경의 것과 상반된 반응을 보이기 때문이었으리라. 하윤은 무경의 시선을 피하며 저도 모르게 변명했다.
“피곤해서 그래.”
“…….”
“정말이야.”
“안 피곤할 땐 괜찮고?”
자신의 목덜미에 얼굴을 감춰 무경의 표정을 읽을 수 없었다. 다만 목소리에 웃음이 느껴졌다. 하윤은 저도 모르게 숨을 들이켜 가슴을 부풀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아, 그렇구나.”
무경은 나직한 목소리로 대답한 뒤에 하윤의 귓불을 잘근거렸다. 혀로 살살 움직이다가, 이 끝으로 살짝살짝 물었다. 그러다가 욕심껏 귀를 베어 물었다. 무경의 입술과 혀, 이가 선명하게 느껴지고 그의 숨결과 짓씹히고 빨리는 소리가 귓속으로 파고 들었다.
하윤이 몸을 웅크리며 피하려는 사이, 허벅지에 닿은 무경의 손이 느릿하게 움직였다. 손끝에 힘을 주어 허벅지와 허벅지 한쪽을 쓸어내리다가, 하윤의 연약함을 건드렸다.
“그냥, 무경아 그냥. 그냥 하자.”
하윤은 무경의 손을 붙잡으며 애원했다. 절박함이 보였을까. 무경은 하윤의 뺨에 입술을 짓누르며 물었다.
“왜?”
“그냥 하자. 응?”
“…….”
“그냥 빨리 하고 싶어서 그래.”
얼른 결속되고 싶어서. 하윤의 변명에도 무경은 손짓을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부추겼다는 듯이 더 몸을 바짝 붙이고는 꽉 쥐었다가, 살살 쓰다듬었다가, 혹은 어떤 부분의 껍질을 벗길 듯 젖혔다가, 다시 오므리기고 비비기를 반복했다.
“무경아.”
“조금만. 조금만 해 보자. 혹시 모르잖아. 나도 처음이라서 그래.”
어린 시절 그들은 곧잘 하나가 되고 싶어 했기에 몸을 비비는 행위는 익숙했다. 무경이 기억을 잃고 난 뒤에도 의식 없이 몸을 겹쳤기에 익숙함이 이어졌으나, 작금의 손짓은 순 낯선 것투성이었다.
하윤이 낯설어 어찌할 바를 몰라 하자 무경은 친구를 붙여 주었다. 그 위에 하윤의 손을 올려서 낯설음을 덜어 주려 했으나, 본디 낯가림이라는 것이 소개 한 번에 허물어지는 것이 아니었기에 별 소용 없었다.
영 몸을 일으키지 못하고 빌빌거리는 것이 성질을 건드렸던지 무경은 홀로 거친 숨을 내쉬었다. 그러더니 돌연 이불을 덮어쓰고는 다시금 하윤의 위로 엎드렸다. 그러고는 조금 전과 같이 하윤의 몸 여기저기를 손과 입술로 더듬기 시작했다.
“무, 무경아. 잠시만. 잠시만.”
좀 이상한 것 같아. 하윤은 말을 삼키며 눈을 빠르게 깜빡였다. 분명 조금 전에 했던 확인과 같은 과정이었으나, 어딘가 조금 달랐다. 특정한 곳을 집요하게 건드렸기 때문이었다. 조금이라도 고개를 쳐들고 있는 곳이 있으면 그것이 새끼손톱보다 작은 곳이라도 짓뭉개며, 시비를 걸듯 갈라진 틈으로 이를 박아 넣거나 손톱을 걸어 이리 밀었다가 저리 밀기를 반복했다.
맞고 밀리는 통에 퉁퉁 부어오르면, 또 그것이 마음에 안 드는지 한입에 물고 소리 나게 빨아올렸다. 그렇다고 또 오목한 곳이라고 성질머리를 피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더 집요하게 핥아지거나 깨물렸다.
“……!”
발끝이 저절로 오므라들고 숨을 내쉬는 것도 잠시 잊었다. 내내 버거워 숨만 헐떡이던 하윤은 점점 아래로 내려가려는 무경의 어깨를 붙잡았다.
“무경아.”
하윤은 무경을 다급히 불렀다. 하면 안 되는 금기를 범하는 것 같았다. 하윤은 자신도 모르게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무경을 나무랐다. 뭐 하는 짓이냐고, 안 된다고. 그러나 무경은 영 엉뚱한 말을 했다.
“내가 아니라고 생각해. 안 보이는데 내가 누구인지, 뭘 하는지 어떻게 알겠어?”
“…….”
“너만 눈 감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거야.”
그게 되겠냐고 말하기엔 전적이 있었다. 하윤이 말을 잇지 못하고 입만 뻥긋거리는 사이 무경의 머리칼이 하윤의 아랫배를 간질였다. 서둘러 아래를 내려다보았으나 이불에 덮여 무경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저 불룩하게 솟은 이불만 보일 뿐.
동시에 하윤은 자신의 온몸이 누군가에게 삼켜진 것만 같은 기분을 함께 느꼈다.
이대로 정말 그의 배 속에 삼켜지는 것이 아닐까 싶어서 조금 무섭다가도, 고여 있던 물기가 살갗을 타고 아래로 쭉 내려가면 저도 모르게 무릎을 안쪽으로 까딱이곤 했다.
그럴 때마다 허벅지 안쪽으로 무경의 머리가 느껴져서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도저히 참기 어려워졌을 때, 하윤은 다시금 그냥 하자고 무경을 채근했다. 하나가 되어서 나뉘어졌던 서러움을 그치고 싶었다. 그저 서로를 꽉 끌어안고 싶었다.
무경은 결국 하윤의 바람을 이기지 못했다. 여전히 낯을 가리는 곳을 뺨으로 비벼 위로해 주고 이번에는 스스로를 잠시 몰아세우다가, 하윤이 바라마지 않던 바람을 이루어 주었다.
“……!”
몸이 열리는 순간은 몇 번을 겪어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그러나 앞선 경험들이 있어 어찌해야 할 줄은 알았다. 어떻게 숨을 뱉고 몸을 이완시키며, 또 얼마나 견디면 되는지 등. 다만 이번에는 앞선 경험치가 무색하게 당황하고 말았다.
하윤은 그저 눈을 깜빡이며 온몸에 저릿하게 퍼져 나간 감각을 견뎌 내려 했다. 무경이 이대로 가만있어 주기만 한다면 그에게 들키지 않고 금세 몸을 추스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렇게 하기엔 본래 타고난 성질이 안 좋았던지 무경은 내내 뒤집어쓰고 있던 이불을 벗어 던졌다. 머리칼을 쓸어 넘기며 나직이 긴 숨을 내쉬던 그는 예전과 같이 하윤을 몰아세우기 시작했다.
거친 움직임이 분명 예전과 같은데도 낯설게 느껴졌다. 하윤은 머리맡을 더듬다가, 베개를 움켜쥐었다. 무엇으로든 얼굴을 가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베개를 들 새도 없이 팔이 붙들렸다.
무경은 하윤의 두 손을 자신의 얼굴에 붙였다. 하윤이 어둠 속에서도 그를 확인할 수 있도록. 하윤이 더는 이 순간은 부정할 수 없을 때에서야 둘은 다시금 서로를 부둥켜안았다.
팔로든, 다리로든. 혹은 혀와 숨결, 시선 등 얽을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했다.
욕정이었다가, 혹은 세간에서 말하는 숭고한 어떤 것이었다가, 혹은 둘이 섞여 다른 비율이었다가. 또 모든 것을 잊고 온전히 욕정이었다, 밤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까만 새벽을 지나 얕은 바닷물에 잠긴 것 같이 푸르러졌을 때엔 세간에서 말하는 숭고한 어떤 사랑이 되었다.
그때에 둘은 한 덩어리처럼 붙어서 풀어지지 않았다. 육신의 고단함을 잊고 다시금 욕정을 지펴 올릴 수 있음에도 그러지 않고 새벽에 잠겨 있었던 것은 그래야만 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하윤은 문득 이 순간에 내내 잠겨 있을 수 있다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정신계 능력이 자신의 벽을 넘지 못해서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당해도 몇 번은 당했으리라. 그저 지금 이 순간을 재현하기만 하면 됐을 테니까.
“왜 웃어?”
“그냥, 좋아서.”
하윤의 대답에 무경도 작게 웃는 소리를 냈다. 하윤은 자세 때문에 보이지 않는 무경의 입술을 찾아 고개를 돌리다가 그의 머리칼을 만지작거렸다. 그러자 그가 하윤의 귀에 작은 목소리로 속살거렸다.
“또 웃어 봐.”
그 뒤의 대답은 생각나지 않았다. 무경이 다시금 이불을 뒤집어쓰고는 그대로 그를 삼켜 버렸기 때문이었다.
◇◇◇
하윤은 새벽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모든 쓰레기를 한데 그러모았다. 그러곤 사각 티슈 한 장으로 모은 것을 하나로 뭉치며 씻고 나온 무경을 힐금거렸다. 미처 지워 내지 못한 새벽의 흔적이 그의 몸에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기 몸이 더 심한 걸 생각도 하지 못하고 민망함에 떨다가, 아예 상관이 없는 말을 꺼냈다.
“그나저나 너 한숨도 못 자서 어쩌냐.”
“……? 아, 괜찮아. 잠시 눈 붙였다가 이상한 꿈을 꾸는 바람에 깬 거야.”
“……?”
“너야말로 어때? 넌 잤다고 거짓말하고 안 잤잖아.”
무경은 이내 상관없겠다고 말을 이었다. 하윤은 집으로 돌아가서 자면 된다는 것이었다. 차라리 어디 갈 일도 없으니 잘되었다고도 했다.
“무슨 꿈이었는데?”
“지금은 기억 안 나.”
막 깼을 때는 기억이 선명해서 혼란스러워했다가, 지금은 찝찝한 것만 기억난다고 했다. 그나마 기억하는 것은 자신이 하윤을 업고 있다가 파도 소리를 들었다는 것이었다. 뭍에 다다라서 부서지고 깨어진 물살이 내는 소리. 그런 소리를 들은 기분이었노라고.
하윤은 무경의 말에 눈을 깜빡이며 신음했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어쩐지 무슨 소리인지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