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원 라스트-140화 (140/162)

140화

이상일, 아니 GTS에선 김하윤은 계륵 같은 존재였다. 그 서이주의 제자에, 그 백무경의 동거인에. 고등기관을 중퇴하기 전까지 엘리트 교육을 받았음에도 그런 교육을 받을 정도로 능력이 있었는가 하면 생활기록부에 기록된 능력은 어중간했다.

하여 김하윤은 강자를 우선시하는 동창에게는 능력으로 기억된 바가 없었다. 대신 다들 백무경과 함께 있던 예쁘장하게 잘생긴 애라고만 기억했다. 어떻게 백무경 곁에 머무를 수 있는지, 그를 손가락 하나로 부려 먹는지. 유달리 그를 시기하여 뒤에서 나쁜 소문을 퍼트리는 이들도 있었다고.

또 소문을 낸 이들의 면면을 확인하자 꽤 유명 인사였다.

‘그 최성한이라니.’

최성한은 국내 화염계 능력자 중에서도 손꼽히는 능력자였다. 능력과 비슷하게 다혈질에 자기 잘난 맛에 살기로도 유명했는데, 젊고 잘생긴 능력자라 팬이 있을 정도였다. 지금은 의무 복역 기간을 채우고 나가 사설 길드에 소속되어 높은 연봉을 받는다고 했다.

아직 군에 소속된 백무경과는 꾸준하게 사이가 안 좋기로 유명했는데, 이번 조사로 동거인인 김하윤과 관련 있을 것이라는 소문을 들었다. 바쁜 중이라 소문이 더욱 흥미롭게 들렸던 터라 궁금한 것들이 혀끝에 맴돌았으나 지금 중요한 것은 그런 게 아니었다.

이상일은 김하윤을 힐끔거렸다. 김하윤은 김희원과 면담 중 그들이 요청한 교육 외의 행동을 하다가, 돌연 어떤 한 사람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십 년 전 사건의 주범인 피노키오 중 김득철이라는 자가 있었는데, 그는 새로운 초능력자를 만들기 원해 계획에 참여했었다. 그는 자기 손으로 문지기를 만들고 싶어 했고, 이는 문지기가 인공적으로 만들어지기 어려운 초능력자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리하여 괴수를 불러들이고 말았고, 그때의 사건은 표면적으로는 어느 정도 수습이 되었으나 실상은 그것이 아니었다. 그때 뿌려진 괴물의 힘이 슬슬 고개를 쳐들려고 하고 있고 그 과정에서 미궁의 문이 다시 열리려는 것이라고.

또한 사건을 주도했던 김득철은 살아 있는데, 이는 진짜 김득철이 아니라 김득철이 만든 그의 분신이라는 것이었다. 이미 예전에 분신을 처리해 본 적이 있다고 말한 김하윤은 최근에 적발된 피노키오의 시설을 입에 올렸다.

십여 년을 들키지 않았던 시설이 갑자기 드러나게 된 게 수상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갑작스레 능력이 발현되어 탈출했다는 생존자가 말이나 되느냐면서.

“그게 왜 말이 안 됩니까.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긴 합니다만, 그걸 그놈들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예?”

“초능력자를 만들겠답시고 싹수 있는 놈들을 끌어모았는데, 그런 사태 하나 생각하지 못했으면 십 년을 갔겠습니까? 물론 십 년이나 가다 보니 틈이 생길 수는 있는데 그게 막 각성한 놈이라면야.”

“…….”

“이상일씨는 그 상황에서 어떤 능력을 각성했다면 탈출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까? 은신 같은 거야 그놈들이 더 잘할 것 같은데. 분명 그런 능력이 있어서 여태 안 들켰을 테니까.”

어떤 능력이 있어야 그곳을 탈출할 수 있을까. 김하윤이 말하는 능력은 하나밖에 없었다. 문지기. 각성한 능력자가 문지기가 아니라면 과연 탈출할 수 있었을까.

“하지만 말씀하셨던 대로 한패라면 능력을 써서 탈출할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그냥 미리 입 맞추고 거짓말하면 되니까.”

“저는 그게 최종 테스트였다고 생각해요. 이미 한 번은 성공했거든요.”

김하윤은 고개를 까딱였다. 그러나 그것이 단순한 끄덕임이 아니라, 김희원이 있는 곳을 가리켰다는 것은 나중에 깨달았다.

“예……?”

“마지막 검수 과정 같은 거죠. 문을 열어서 탈출할 수 있으면 그들의 실험은 성공한 거고, 더는 불필요한 시설을 유지할 필요가 없는 거죠.”

“하지만 굳이 없앨 필요까지 있었을까요?”

상일의 질문에 김하윤은 어깨를 으쓱였다. 자신이 그것까지 알겠느냐는 것이었다.

“어쨌든 조사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 업무 범위가 줄고, 필요한 일에 집중할 수 있을 테니까요.”

“하지만.”

이상일은 말을 골랐다. 김하윤의 말이 터무니없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하다못해 김하윤이 서이주의 연구를 도왔다거나, 연구를 이어 오고 있었다거나, 혹은 특별한 유지를 들었다면. 하다못해 과거에 사람을 구한 전적이라도 있다면 말이 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기대를 걸 만한 건수가 없었다.

사실 이 자리에 김하윤을 부르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공공 기관이 일반인을, 그것도 각종 기밀 정보가 넘치는 곳에 불러들이는 것은 굉장한 위험 부담을 안아야 했다. 그래서 스승 서이주에게 배운 가닥이라도 있겠지 싶어 김하윤을 불러 보고자 하였음에도 의견만 나올 뿐 시도된 적이 없었다. 책임질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세월이 가다 보니 김하윤에 관한 건 최근 몇 년 동안에는 아예 잊혔다.

그러다가 금번 상부에서 난리가 난 뒤, 김하윤의 동거인이자 서이주의 아들인 백무경의 도움으로 연구가 이루어졌다. 사실 연구라고 할 만한 것은 없었다. 면피용으로 불러 놓은 게 전부였으니까.

‘감사가 들어오면 뭐라도 했다는 흔적이 중요하거든.’

내부에서는 김하윤의 존재가 필요 없다고 여겨진 지 오래였고, 또 워낙 바쁜 와중이었다. 팀 막내도 가르칠 여력이 없어 거의 방치하듯이 두고 있는 마당이었으니까. 그래서 둘이 붙어 있으면 그나마 다행이라고 여겼다. 외롭진 않을 테니까.

‘서이주의 모든 정수를 물려받은 서이주의 제자. 만약 그가 서이주의 진짜 유산이라면.’

서이주의 자료를 찾고 해석하느라 끙끙대는 것보다 김하윤의 말을 듣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러나 쉽사리 결정 내리지 못하는 것은 그에게 결정권도 없었고, 앞서 말했듯 김하윤의 말이 신빙성이 없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김하윤이 바라는 자료는 이상일이나 이주미가 가진 권한으로는 확인할 수가 없었다. 권한이 있는 사람에게 요청하려면 그를 설득할 만한 자료가 있어야 했는데, 있는 것이라곤 김하윤의 머릿속에 나온 추정뿐이었다. 이상일이 어떤 대답도 행동도 하지 않자 김하윤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다른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악명 높은 정신계 능력자 박건영에게 연락해선 자료를 내놓으라고 윽박질렀다. 자신들에게 늘어놓았던 추정은 조금도 꺼내지 않았다. 그저 밑도 끝도 없이 내놓으라고 하자, 박건영은 맡겨 놨느냐고 소리쳤다. 그러나 반항이 무색하도록 삼십 분 후 이주미의 메일로 간략한 자료를 보냈다.

이상일은 김하윤이 그들과 함께 있을 때 사무실 어디에 앉아 있었는지를 잠시 떠올렸으나, 이번에도 그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김하윤이 범인으로 추정한 자의 이름은 윤일호. 자료를 가만히 들여다보자 상부에서도 그를 의심한 흔적이 보였다. 그러나 생존자에 대한 과한 수사가 모양이 안 좋았던지, 아니면 윗선에서 지시가 내려왔는지 조사는 흐지부지 마무리되었다.

“와. 이걸 그냥 이렇게 끝내 버렸네.”

그사이 이주미는 자료에 첨부된 윤일호의 사진을 힐긋 보다가, 언론에 공개되었던 김득철의 사진을 사진 앱에 넣고 이리저리 만져 보기 시작했다. 두상을 줄이고 턱을 줄이고, 눈도 키우고 코도 높였다.

그리하여 나온 모습이 윤일호의 얼굴과 다소 흡사했다. 소름이 돋는다며 연신 팔을 쓸어내리는 이주미를 보며 이상일 또한 입을 벌렸다. 김하윤의 뜬금없던 말이 이제야 좀 신빙성 있게 들렸기 때문이었다.

김하윤은 자료를 확인한 다음, 막내 최현진의 컴퓨터를 빼앗아 그들이 사용하는 프로그램을 조작하기 시작했다. 신입인 최현진보다 능숙하게 좌표를 입력하여 화면을 구성했다.

그러고는 돌연 허공을 바라보더니 화면에도 없는 좌표를 직접 손으로 쓰기 시작했다.

“저게 뭐 하는 걸까요?”

“……몰라.”

최현진이 넌지시 물었으나 이상일 또한 말해 줄 것이 없었다. 그 또한 김하윤이 뭘 하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무언가를 보는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기억을 상기하는 것인지. 아니면 망상에 빠져 아무것이나 써 재끼는 것일지도.

김하윤이 바쁘게 움직이는 내내 이상일은 기억 속 서이주를 떠올렸다. 얼굴이 닮은 것도, 말투나 행동거지가 닮은 것도 아니었다. 무엇이 그녀와 좀 신비로운 김하윤을 겹쳐 보이게 하는 것일까.

서이주와 닮았다고 한 사람은 자신인데 그 이유 하나조차 꼽을 수 없었다.

‘서이주.’

이상일은 서이주의 이름을 속으로 곱씹었다. 그녀는 뛰어난 사람이었다. 아니, 뛰어나다는 수식어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천재. 그래, 그 말이 맞을 것이다.

그녀는 항상 그들이 보지 못했던 것을 봤다. 단순히 가진 초능력으로 그들을 못 보는 것을 보는 것이 아닌, 식견이 높았다는 소리였다. 그녀는 자신의 죽음을 예감했고 많은 준비를 해 놨다. 그녀가 남긴 것들을 복구해 갈 때마다 이상일은 가끔 소름이 돋곤 했다.

어디까지 준비해 놨을까.

그녀가 유출했다던 자료를 찾으려 기를 쓰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사후 미궁관측연구소의 자료가 없어질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자료 유출한 것도, 흔적을 남긴 것도 미래를 위한 대비였을 것이다.

‘사실 김하윤은 계륵이다 못해 아무 가망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고이고 썩은 것은 어쩌면 자신이었을지도 몰랐다. 어쩌면 이 또한 그녀의 의도였을지도 몰랐는데.

‘아닌가, 이건 너무 갔나.’

“이거 가지세요.”

김하윤은 생각에 잠겨 있던 이상일에게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조금 전 허공을 보며 뭔가를 쓰던 종이였다.

“이게 뭡니까?”

“의심되는 곳이요. 아무래도 거기 동그라미 친 곳이 제일 유력한데, 진짜가 되고 싶어서 진짜가 이루지 못한 일을 완성하려 한다면 장소도 엇비슷한 곳이 되지 않겠어요? 마침 이 부근이 마음에 걸리던 것도 있었고.”

말을 마친 김하윤은 옷매무새와 들고 왔던 짐을 확인했다. 밖을 나가려는 모양새에 이상일은 어딜 가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김하윤은 집에 간다고 말했다.

“예?”

지금 이 상황에서 집에 간다니. 자기 입으로 온갖 심각한 말을 다 뱉은 직후 아니던가. 이상일이 눈을 껌뻑이며 자신의 모든 의문을 일축해 뱉은 말에 김하윤은 미소 지었다. 마치 그건 자기 일이 아니라는 듯이.

“저는 제가 해야 할 일이 따로 있어서요.”

눈치를 보던 막내 최현진이 김하윤을 붙잡으려 했으나 어림없었다. 그는 사람 좋게 웃으며 최현진의 애원의 몸짓을 피해 건물을 나가 버렸다. 남겨진 이상일은 김하윤이 건네준 좌표를 내려다보았다.

전문 분야인 만큼 좌표만 봐도 그곳이 어디를 가리키는지 알았다. 자기가 할 일은 따로 있다던 김하윤의 말처럼 이 이후의 일은 자신들이 해야 했다. 문이 열리려는 곳이 어디인지 데이터를 읽는 게 자신들의 몫이었다.

김하윤이 준 좌표를 믿지 못하겠다면 그것을 검증하는 것도 자기들이었고, 좌표가 맞는다면 왜 맞는지 확인하는 것도 자신들이었다. 또한 검증을 마쳐 그곳이 확실해졌다면 각 기관이 대응할 수 있도록 자료를 보내는 것도.

‘하지만 검증하는 사이에 일이 벌어진다면.’

이상일은 이주미의 휴대 전화를 가리키며 그녀를 응시했다. 시선을 알아차린 이주미는 눈살을 찌푸린 채 고개를 저었다. 지금 생각하는 걸 말하지 말라는 신호였으나 이를 무시하며 입을 열었다.

“그 사진을 자료로 제출하고 협조 요청하면 안 되겠지?”

이주미는 대답 대신 아예 의자를 돌렸다. 이상일은 조금 외로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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