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화
하윤의 질문과 함께 김희원의 동공 속 낡은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문 안이 보일 만큼 열린 순간, 주변 공기가 달라지고 불이 환한 면접실이 아니라 하윤이 어릴 적 방문했던 김희원의 집 안으로 장소가 바뀌었다. 마치 김옥림과 대화했을 때처럼. 그때와 다른 점은 김옥림이 하윤을 불러들였다면, 지금은 하윤이 김희원의 공간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어두운 방 안엔 김희원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온전한 상태가 아니었다. 팔과 다리 한쪽씩이 없었고 얼굴은 맞았는지 얼룩덜룩한데다 피가 말라붙어 있었다. 남은 팔다리에는 끈이 묶여 있었는데, 끈은 붙박이장 옷걸이와 연결되어 있었다.
끔찍한 광경이었다.
심상 속이 이런 모습이라는 것은 아마도 이 일이 그가 겪은 가장 무서운 일이었기 때문일까.
김희원은 바닥을 기어 하윤에게 다가왔으나 끈에 묶여 닿지 못했다. 그의 움직임에 덜컥거린 옷장 때문이었다. 하윤은 자신이 김희원의 집에 갔을 때 저런 옷장이 있었는가 떠올려 봤으나, 가구 모양은 떠오르지 않았다.
안에 들어갔을 때 긴장하기도 했었고 겁먹기도 했었으니까. 게다가 안은 어느 정도 치워진 뒤였다. 쓰레기 수거가 원활한 동네가 아니었기 때문에 겨우 몇 가지 단서를 주울 수 있었을 정도로.
하윤은 재차 방을 훑어보다가 김희원의 앞에 주저앉았다. 그의 눈을 감히 마주하지 못한 채 김희원은 벌벌 떨었다.
하윤은 그의 머리꼭지를 바라보며 재차 물었다.
“네가 가장 무서운 게 뭐야?”
물음이 끝난 순간, 문 너머에서 절단기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무언갈 썰어 담고 있는지 갈리는 소리 뒤에 비닐에 툭툭 고기 떨어지는 소리가 이어졌다.
피노키오 일당들이 벌였던 일들을 생각하면 그 소리가 무엇을 뜻하는지 대강 예상이 갔다. 그렇다면 이것이야말로 김희원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었을까? 생각을 굳히려는 순간, 저벅저벅 발소리가 들렸다. 발소리의 주인은 다른 방 방문을 콩콩 두드렸다가 열었다가 닫고, 또 다른 방을 두드렸다가 닫기를 반복했다.
그러고는 ‘오늘은 누구로 할까아아.’ 하고 말하며 이상한 노래를 흥얼거렸다.
[어디이 보자아.]
오래전 들었던 기분 나쁜 목소리가 떠올랐다.
‘발소리가 점차 가까워진다.’
하윤은 문을 벌컥 열었을 때 보이지 않는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벽에 몸을 바짝 붙였을 때, 방문 앞에서 똑똑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어 문이 열리고 빛을 등진 사람이 들어왔다.
빛을 등진 모습이 기본값인지 이목구비가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그가 곱슬머리에 안경을 썼고 귀 끝이 뾰족하다는 것이었다. 이는 하윤이 아는 누군가와 닮아 있었다.
‘김득철.’
문득 그의 행방이 궁금해졌다. 김희원이 발견 당시 휠체어에 태우고 달렸던 노인은 정교하게 만들어진 인형이라고 했다.
‘김득철은 살아 있을 가능성이 커. 그래, 이건 알고 있었던 거야. 내가 놓친 건…….’
내가 뭘 놓치고 있었더라. 하윤은 방안을 들어오는 김득철의 모습을 유심히 살폈다. 방 밖의 희미한 불빛에 드러난 그의 목덜미가 보였다. 하윤은 그의 목덜미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김득철이 수배되었을 당시의 설명을 떠올렸다. 당시에 그는 덥수룩한 수염과 곱슬머리가 특징이었다. 수염을 깎으면 흔한 동네 아저씨가 되리라던 말이 생각났다.
‘귀 끝이 뾰족하잖아.’
하윤은 숨을 훅 들이켰다. 십 년 전 그날 하윤은 두 명의 김득철을 만났었다.
하나는 생각보다 젊고 수염이 없었고 다른 하나는 수염이 있는 데다 흰머리가 더러 있었다. 다른 초능력자를 인형으로 만들어서 부리기 전에 자기 자신으로 연습이라도 한 게 아닐까? 그리고 그것이 하나가 아니었다면?
‘구분하기 위해서 특징을 만들었다면?’
혹 그것이 진짜 김득철이 아니라, 가짜 김득철이었다면 어떨까. 김희원을 자기 모습에 가깝게 성형해 줬던 이를 김득철 본인이라고 가정해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래, 암만 미친놈이라도 자기 얼굴을 대대적으로 깎는 수술은 직접 할 수 없을 테니까.’
아닌가? 미친놈은 할 수 있을까? 하윤은 긴가민가하며 김희원을 돌아보았다. 어느샌가 김득철로 추정되는 인영은 사라지고 가구만 끄떡거리고 있었다. 김희원이 움직인 것도 아니었다. 연결된 줄이 팽팽히 당겨지지 않았는데도 가구가 제멋대로 움직였다. 이대로라면 김희원은 가구가 쓰러져 깔릴 것만 같았다.
김희원은 바닥에서 꿈틀거리며 꺽꺽거리며 울기 시작했다. 억울해 미치겠다는 듯이, 그러나 무서워 차마 크게 울지 못한 채로.
하윤은 바닥에 쪼그려 앉아 재차 그를 향해 가장 무서운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이대로 가구에 깔리는 것, 홀로 남겨진 것, 언제 김덕철이 자신을 찾을지 모르는 것. 하윤은 이 셋 중에서 답이 나오리라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이 이 장면을 보지 못했을 테니까.
그러나 김희원은 다른 것을 말했다.
“진짜가 되지 못하는 것. 네가 되지 못하는 것.”
엉엉 울고 있는 것과 달리 지나치게 선명한 소리가 들렸다. 말을 더듬지도 않았다. 다른 사람처럼.
‘아, 알겠다.’
하윤은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이제 질문을 바꿀 때였다.
“너는 언제, 무엇으로 만들어졌어?”
하윤이 질문한 순간, 김희원은 덜덜 몸을 떨다가 모른다고 대답했다. 너무 많아서 감히 헤아리기 힘들다. 그러나 하윤은 재차 무엇으로 만들어졌느냐, 몇 개의 곡옥을 사용했느냐 물었다. 김희원은 자신이 그것을 왜 대답해야 하느냐며 몸부림쳤다. 마치 하윤의 시선이 닿는 게 무섭다는 양 몸을 웅크렸다.
하윤은 그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숫자를 헤아리기 시작했다.
“하나.”
북을 치는 것처럼 가슴에서 쿵 소리가 났다. 동시에 김희원의 오른쪽 다리가 분리되었다.
“둘.”
또다시 북소리가 나며 이번에는 김희원의 왼쪽 팔이 분리되었다.
“셋.”
김희원이 아무리 몸을 웅크리고 감추어도 하윤의 헤아리기 시작하자 계속해서 신체 부위가 떨어져 나왔다. 사지뿐만 아니라 오장육부도 해체되어 사방으로 흩어졌다. 마치 자신은 김희원이 아니라는 듯이 떨어져 나와 꿈틀거렸다.
그리하여 헤아린 수가 열셋.
김희원에게 남은 것은 머리와 척추, 그리고 그 사이에 위태롭게 자리한 심장밖에 없었다. 하윤은 심장에서 초록빛을 내는 무언가를 발견했다. 하윤은 자기 얼굴을 천천히 문질렀다. 김희원의 심장엔 아주 작은 곡옥 하나만이 깃들어 있었다.
김희원의 사지가 여러 조각임을 증명한 것은 아마도 그들이 문지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기분이 들었다. 그들 모두가 자신에게 속해 있는 느낌. 이것을 무어라 해야 할지는 몰랐다. 정작 하윤은 그들의 얼굴조차 보지 못했으니까.
‘아니, 어쩌면.’
김희원이 김하윤을 알았던 방식과 같은 건지도 몰랐다. 하윤은 아무런 제약 없이 이 땅의 모든 문을 돌아다닐 수 있었으니까. 자신이 그들의 존재를 알고, 그들도 자신을 알았을 테니까.
‘잡아간 문지기들의 몸은 조각내서 김희원에게 붙이고 곡옥은 전부 팔찌를 만들었던 걸까?’
몇을 잡아갔는지 모르니 곡옥이 얼마나 나왔는지, 그중 얼마를 팔찌에 넣었는지를 알 수가 없었다.
‘워낙에 드문 능력이라.’
그러나 그때 팔찌에 모은 곡옥을 다 쓴 것 같지 않았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김득철이라면 김희원에게 다 쓰긴 아까웠을 것 같았다. 이 말을 이해하려면 김득철이 인형을 만드는 능력자라는 것을 기억하고 있어야 했다. 인형은 사람을 흉내 낸 것, 김득철은 사람을 흉내 낸 모형을 잘 만드는 사람이었다. 그는 이미 숱한 문지기의 배를 갈랐고 곡옥을 빼냈다.
그는 서이주의 곡옥을 보진 못했겠지만, 서이주의 것이 가장 크리라는 것을 알았을 테고 다른 굵직한 인물들의 곡옥도 보았다. 그런 것들을 봐 놓고 겨우 김희원의 곡옥을 탐낸다? 어림도 없는 소리였다.
그러니까 아마도 김희원은…….
‘연습용 시제품.’
무엇을 위한 연습이었을까. 김득철은 새로운 초능력자를 만들려고 했었다. 하윤은 그가 정말 새로운 초능력자를 만들었을지 궁금했었다. 그리고 그것을 만든다면 어떤 모습일까, 생각하며 창문을 본 적이 있었다.
그가 새로운 초능력자, 문지기를 만들어 낸다면 하윤 자신을 흉내 내지 않았겠느냐고 짐작했다. 그래서 김희원이 자기 얼굴을 갖고 있는 것 아니겠느냐고.
그리고 그 정도는 되어야 ‘새로운’이라는 말에 어울리지 않겠는가.
그래야 자신에게 비벼 볼 테니.
“이건 뭐.”
하윤은 헛웃음을 터트렸다. 어처구니가 없어 머리가 얼얼했다.
‘반대로 생각했어야지, 반대로. 자기가 대단한 사람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새낀데 반대로 생각해야지.’
김득철이 설령 자신의 성능이 좋은 걸 알고 속 알맹이를 그대로 베꼈다 해도 얼굴만은 절대 자신을 닮지 않았을 것이다. 굉장히 편협한 시선일 수도 있으나, 이런 놈들은 그래도 된다.
‘보통 이런 경우엔 자신의 어머니나 자기의 모습을 작품에 투영하는 경우가 많단 말이지.’
더군다나 거의 일평생을 바쳐 온 연구 아니던가. 완성품의 모습을 자기 자신의 잘생긴 버전으로 만들 가능성이 컸다.
그렇다면 김희원의 모습은 무엇일까.
자신에게 과도하게 집착하던 모습은 또 뭐고.
‘또 뭐가 섞인 건지……. 김희원을 조립할 때, 김득철의 일부가 들어갔다면?’
하윤은 김희원의 두려움이 진짜 김희원의 두려움 같지 않다는 것에 집중했다. 김희원의 두려움은 비슷하지만 서로 달랐다. 아마도 그를 이루는 다른 문지기들의 기억이 들어간 것이 아닐까.
‘이 정도로 의식이 섞였다면 김득철의 뜻대로 움직이기 어렵지 않았을까? 그래서 그것을 보완하기 위해 김득철의 의식을 넣었고, 그래서 그의 뜻대로 생각하는 것이라면?’
그렇다면 ‘진짜가 되지 못하는 것. 네가 되지 못하는 것’이 가장 두려운 존재는 김희원이 아니다. 대상 또한 김하윤이 아니었다.
‘김득철.’
진짜 김득철이 되지 못하고 가짜로 그치는 것. 그것이 김희원을 지배하는 김득철의 복사된 정신이 가진 두려움이고, 폭발될 도화선이다.
그렇다면 김희원은 얼굴은 어떻게 된 셈인가. 김희원이 원해서 그랬을 수도 있고 어쩌면 그의 뒤를 캔 하윤을 알고 있는 것이기도 했을 것이다. 조롱, 경고, 혼선, 잠입. 마치 수 년간 생존시켰던 김응의 인형같이.
‘아주 알차게 써먹었네.’
하윤은 방문을 열었다. 이제 나갈 시간이었다. 그가 문턱에 발을 디딘 순간 희원이 그를 불렀다.
[나도 데려가, 나도 제발 데려가!]
자신만 이 끔찍한 곳에 남겨 놓지 말라고, 차라리 그냥 같이 있자고 하는 말이 이어졌다. 하윤은 어처구니가 없어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내가 왜.”
[어……?]
“네가 열고 나와. 문지기가 어디 갇히는 건 좀 꼴사납지 않나? 열면 그만인데.”
네가 문지기라면 그렇게 해야지.
하윤은 더는 시선을 주지 않은 채 문을 빠져나왔다. 그를 감싸고 있던 퀴퀴한 곰팡내가 걷히고 환한 전등 불빛이 쏟아졌다. 하윤은 자신의 앞에서 고개를 푹 숙이다 못해 탁자에 쿵 소리 나게 얼굴을 박은 김희원을 두고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상일과 다른 이들이 그를 붙잡으려 했으나, 하윤이 먼저 그를 붙잡고 물었다. 양팔을 잡힌 채, 벽으로 밀쳐진 이상일은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다른 건 다 필요 없고, 김희원이 발견된 시설을 신고했던 사람. 혹시 그 사람 정보 좀 알 수 있습니까?”
“예?”
“어서요!”
그 새끼가 김득철일 가능성이 컸다. 자신이 앞서 떠올렸던 역할들에 가장 적합했으니까. 아직 얼굴을 보지 못했지만 구불거리던 곱슬머리가 펴져 있고, 뻐드렁니와 턱 집어넣고 회춘 좀 시켰을 때 나올 모습이라면 확신할 수 있었다.
‘여전히 개X 같네.’
“그 새끼가 있는 곳에 [문]이 열릴 겁니다.”
가짜 김득철이 진정한 김득철이 되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것은 진짜 김득철의 목표를 이루는 것이리라. 그리하여 새로운 초능력자를 만들었다면 시험해 볼 것이다. 진짜 김득철이 그러했듯이.
그리고 그 순간에 김득철의 두려움이 터지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