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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라스트-138화 (138/162)

138화

“어쨌든 그분들의 의견 일치는 대단한 일입니다. 그런 일이 정말 잘 없거든. 그래서 정치하시는 분들도 난리가 났어요. 사안이 사안이다 보니 극소수만 알고 계시는데도 그렇습니다. 어디서 소문을 들었는지 이 대단한 저한테도 어찌나 연락이 오던지.”

“…….”

“그리고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초인특수관리청이랑 특수재난관리청 발등에 불이 떨어졌죠. 아마 김하윤 씨를 급하게 부를 건데 연락이 닿았습니까?”

“네. 한 시간 뒤에 가기로 했습니다.”

“…….”

“뭐요.”

“어쨌든 거기도 불이 붙긴 했는데, 드러낼 수가 없다고 하더군요. 사회적 파장도 파장이고 국가 안보에도 큰 영향을 끼치는 데다, 경제는 또 어떻게 되겠습니까. 지금 십 년 전 사건 현장 내 얼씬했던 모든 초능력자를 지방으로 이주해 양상을 관찰하고 대응하자고 하는데, 지자체들이 이걸 받아들일 리 없죠.”

게다가 이주 대상이 될 초능력자들도 순순히 받아들일 리 없다.

“사건의 중심인 백 소령 하나 격리하는 것도 아직 정해진 바가 없거든. 어쩌면 이대로 상황을 지켜만 볼 수도 있고요. 그리고 때마침 지방에 지원을 가셨잖습니까? 이대로 눌러앉히자, 그런 소리도 나오고 있고요. 가는 게 어렵지, 이미 갔는데 어쩌겠느냐. 뭐, 이런 생각이신 듯? 물론 서울에 큰일이 생기면 달라지겠지만.”

“……그래서, 마음의 준비를 해라, 뭐 그런 겁니까?”

“뭐, 그런 셈이죠. 그리고 확인 좀 하려고요.”

하윤은 박건영을 향해 몸을 돌렸다. 말하는 내내 히죽거리던 박건영의 얼굴에 웃음이 잦아들었다. 그의 눈이 다시금 뱀의 눈처럼 번들거렸다.

“이번 사건의 중심에도 백무경이 있는지, 그리고 막을 수는 있는 건지. 좀처럼 이야기를 안 해 주시더라고.”

“무경이면 뭐 어쩌게요.”

“특정할 수 있으니까 일이 수월해지겠죠. 그럼 뭐 작은 잠수함에 넣어서 수장시켜 버리든가, 땅 깊이 묻든가. 어찌어찌 시간을 벌어 보지 않겠습니까. 그런 게 윗분들 스타일이니까. 자기한테 책임이 있을 때만 안 터지면 되거든.”

“그런데 그런 걸 왜 저한테 묻습니까?”

“만신분도 그렇고 누나도 그렇고, 당신 말을 들으라는데……. 그럼 뭐 김하윤 씨가 핵심 역할이거나 가장 잘 아는 사람이라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그런 당신이 움직이는데, 당연히 이유가 필요하겠지. 그런데 그 이유가 될 만한 건 뻔하니까.”

박건영은 입을 삐죽 내밀며 어깨를 으쓱였다. 할 수만 있다면 한 대 후려치고 싶었다. 하윤은 천천히 숨을 들이마신 다음 또 천천히 내쉬었다.

“지금 박건영 씨가 하는 짓이 윗분들이랑 다를 게 뭡니까.”

“김하윤 씨?”

“탁상공론하면서 쓸데없는 데 시간 다 버리고, 그런다고 뭐 하나 정하는 건 없고. 맞아요. 무경이 위험한 거. 그런데 혼자 위험한 게 아닙니다. 당시 범위에 있던 초능력자 다 터집니다. 그리고 그게 어떤 영향을 끼칠지 몰라요. 우리가, 그러니까 김옥림 씨와 함께 상정한 최악은 그때 그 미궁의 문이 다시 열리는 거고, 닫을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어요. 해 봐야 아는 거지.”

“잠깐, 그러면.”

“어떠한 형태로 어떻게 터질지 일 주에서 이 주 사이에 나타나겠네요. 그런데 박건영 씨.”

“…….”

“뉴스 좀 보고 사셔야겠습니다.”

“잠시, 그게 무슨 말입니까?”

일 주에서 이 주는 무슨. 벌써 터지기 시작했는데. 하윤은 한숨을 훅 내쉬며 박건영을 지나 택시를 잡았다. 마침 때맞춰 승객이 내린 택시가 눈앞에 있었다. 택시를 출발시키자 곧장 몸을 돌린 박건영이 어디론가 전화하는 게 보였다.

하윤은 목적지를 말한 다음 휴대 전화를 꺼내 동생 기준에게 전화를 걸었다.

기준은 전화를 바로 받지 않았다. 연결음이 거의 끝나갈 때쯤에야 전화를 받았는데, 마지못해 받은 기색이 역력했다.

[어, 형. 무슨 일이야?]

“너 어디야?”

[나? 나 밖이지. 도서관 가는 중.]

“오늘부터 이 주 정도 집 밖으로 나가지 마라. 다른 가족들한테도 마찬가지야. 이유는 말 못 해 주는데 나가지 마.”

[대체 무슨 소리야?]

“그것만 기억해. 나가지 마. 그나마 그 집이 제일 안전할 것 같아서 그래. 방벽 내려오면 커튼 쳐 놓고 절대 바깥 궁금해하지 마. 기억해. 무슨 일이 있더라도 이 주 뒤에 나와야 해.”

기준은 이해 못 하겠다고 말했다. 일행이 있는지 옆에서 왜왜 묻는 소리가 들렸다. 하윤은 기준을 설득할 시간이 없어 곧장 부친에게 전화했다. 기준과 똑같이 집밖으로 나가지 말라고 하자 당황했다.

하윤도 충분히 이해가 갔다. 난데없이 대피소도 아니고 집에 들어가서 나오지 말라니. 어떤 일이 눈앞에 일어난 것도 아니었다. 재난관리청의 안내가 있었던 것도 아니니 직장이나 학교, 또 생활의 불편을 감수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부친은 이내 알겠다고 대답했다. 당장 설명이 어려운 일이 있겠거니 싶은 듯했다.

“다른 사람한테는 따로 말하지 마세요. 퍼진다고 좋을 일도 아니고, 그리고 믿을 사람도 없고. 대신 가족들은 꼭 집에 붙들어 주세요.”

[……그렇게 하마.]

“그럼 끊을게요.”

[하윤아. 너는 그럼 어떻게 하니.]

“저는.”

순간 말문이 턱 막혔다. 버거운 일을 맡은 것처럼 눈앞이 컴컴하게 느껴졌다. 평화로운 창밖을 보며 눈을 깜빡이다가, 이내 한숨을 뱉으며 마저 대답했다.

“저는 괜찮아요.”

◇◇◇

“아, 오셨네요. 주말인데다 몸도 안 좋으셨는데, 죄송합니다. 그런데 그만큼 긴박한 상황이라서.”

하윤을 마중 나온 최현진은 말끝을 흐리며 고개를 꾸뻑였다. 곧바로 현장으로 이동해야 한다면서 약간의 호들갑과 함께 하윤을 차에 태웠다. 마침 이주미로부터 전화가 와서 차를 타는 게 맞느냐 묻자 그렇다는 답이 돌아왔다.

예전에 무경과 함께 왔을 때와 달리 최현진은 하윤이 의식을 잃게 하거나 눈을 가리지 않았다. 어차피 봐도 모른다고 생각했던지 휴대 전화로 지도까지 켜 놓았다. 물론 하윤으로선 고마운 일이었다.

눈에 보이는 문들과 지도를 대조해 볼 수 있었으니까.

차는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가자 이전에도 경험해 본 바와 같이 어지럽게 움직였다. 방향을 가늠하기 어렵도록 구조를 설계했으나, 사실 하윤이 이미 아는 곳이라 별 소용은 없었다.

[문]과 [문]을 엮어 감옥처럼 만들어 놓은 곳에 도착하자, 이상일이 다가왔다.

그는 하윤과 인사를 나눈 다음 김희원에게 숙지시켜 주길 바라는 것들에 관해 늘어놓았다. 다만 그는 과학적인 측면에서 [문]에 대해 질문했다. 하윤은 그들의 질문을 문지기들의 경우로 정제해야만 했다.

중간중간 이게 무슨 쓸모가 있는가 싶었지만, 김희원을 만나야 했으므로 감내했다. 게다가 김희원을 만나는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김희원이 자신을 상당히 만나고 싶어 했기 때문이었다.

김희원은 예전에 봤을 때보다 얼굴이 좋아졌다. 혈색도 좋아 보이고 예전에 봤던 얼굴과는 느낌이 조금 달랐다. 예전에 봤던 얼굴, 즉 자신의 옛날 얼굴을 따라한 모습이 조금 변했다. 지금은 예전의 김희원이 보였다. 물론 사진으로 밖에 보지 못한 얼굴이지만.

“하, 하윤아, 아, 안녕. 오랜만이야. 잘 지냈어?”

김희원은 정신없이 하윤의 모습을 살폈다.

“어어, 그런데 왜 이렇게 얼굴이 안 좋아? 마, 많이 피곤해 보여.”

“일이 좀 있어서. 그러는 넌 얼굴이 좋아 보인다. 잘 지낸 것 같아서 마음이 편하다.”

김희원은 하윤의 칭찬에 연신 자신의 턱을 쓸었다. 아무래도 그 부분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 같았다. 어찌나 세게 문지르던지 살갗이 벌겋게 변했다.

“아, 앉자. 앉아서 펴, 편하게 이야기, 이야기하자.”

김희원은 자신이 얼마만큼 오늘 같은 날을 바랐는지 모른다고 말했다. 자신이 수십 차례 요청을 보냈고 만남이 안 되면 통화라도 하고 싶었노라고 주절주절 늘어놓았다. 그러고는 자신이 보낸 선물도 받았느냐며 물었다.

“선물?”

“그. 그래. 너, 너 생일이었잖아.”

“희원아.”

“응?”

“천천히 말해도 돼. 그렇게 급하게 말할 필요 없어.”

“아, 아아. 이거. 괘, 괜찮아. 손을 조금 무, 무리하게 대서 그, 그래. 벼, 별거 아냐. 그나저나 서, 선물은? 배배, 백무경이 저, 전해 줬어?”

“나는 모르겠는데.”

하윤이 고개를 젓자 희원은 탁자를 두드릴 정도로 흥분했다. 자신이 어렵사리 조각한 마음의 선물을 백무경이 마음대로 처분했다는 것이었다.

“그게 뭐였는데?”

“우, 우리만 아는 거.”

희원은 손끝으로 어떤 모양을 그려 대기 시작했다. 그게 퍽 익숙한 모양이라, 하윤은 저도 모르게 입을 뻐끔거렸다.

‘곡옥.’

희원은 어색한 표정으로 히죽 미소 지었다.

“그런데 내, 내 꺼 어쨌어? 내 파, 팔찌 네가 가, 가져갔었잖아.”

“…….”

“나, 나 그게 필요해. 하, 하윤아. 지, 진짜가 되려면.”

김희원 같다고 하기엔 김득철 같고, 김득철이라기엔 김희원 같다. 하윤은 눈앞의 김희원이 김득철이 피노키오 일당과 함께 만들려던 새로운 초능력자가 아닌가 의심했었다. 그리고 그 의심은 아마도 맞아 떨어지는 모양이었다.

‘그날 이미 다른 곳에 사용되어 문을 닫는 데 사용되지 않은 곡옥.’

만약 하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문이 열리게 된다면 그건 김희원의 몫일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은 무엇을 확인해야 할까. 자신만 한 힘이 없는 김희원이 어떻게 문을 여는가. 어쩌면 괴수가 김희원을 이용하지 않을까. 지나치게 자신의 욕구에 솔직한 태도를 보면 홀랑 홀려서 사고를 칠 것 같았다.

그런 방식이라면 그에게 물을 건 하나였다.

하윤은 희원과 눈을 마주했다. 까만 동공을 지그시 바라보자 어떤 [문]이 보이는 것 같았다. 낡은 문. 그렇다고 문화재에 달려 있을 것 같은 것 말고, 그냥저냥 오래된 집의 방문. 걷어차인 흔적과 곰팡이, 페인트가 군데군데 뭉쳐져 있는 그런 문이었다.

마치 예전의 김희원의 집에서 본 문처럼.

“희원아. 넌 가장 무서운 게 뭐야?”

하윤의 질문과 함께 희원의 동공 속 낡은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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