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7화
하윤이 아는 참사의 대부분은 ‘평소엔 이 정도는 괜찮은데’이란 말로 시작했다. 하나둘 뜯어보면 넘어갈 수도 있는 일인데 그런 일이 마구잡이로 얽혀서, 그야말로 ‘이렇게 될 일이 아닌데’ 하는 식으로 일이 커지는 것이다.
인간의 감이란 것이 참으로 무섭게도 그럴 때면 평소에 흔히 벌어질 수 있는 작은 일 하나에도 가슴이 덜컥였다. 작은 소리가, 작은 행동이 생존 본능을 툭 하고 건드리는 것이다.
하윤은 길 한가운데 멈춰 선 낯이 희게 질린 무경을 보며 그런 기분을 느꼈다. 때마침 울리기 시작한 휴대 전화 기본음이 경고음같이 들렸다. 하윤은 무너지기 시작하는 도미노의 앞을 쳐 내듯 무경을 붙잡았다.
“무경아. 전화.”
“……!”
소스라치게 놀라는 무경을 보며 하윤은 재차 날카롭게 말했다.
“무경아. 전화 받아.”
무경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고개를 저었다. 평소와 다른 표정을 지었다.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고 몸을 달달 떨었다. 스스로도 작금의 상황이 버거운 듯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하윤은 속으로 기함하며 소리 질렀다.
저야말로 울고 싶었다. 어찌할 바를 알 수 없었다. 그래도 자신이 정리해야 했다.
“전화 받으라니까!”
“하윤아, 잠시만……. 잠시만 가만히 있어 봐.”
“이, 씨발!”
하윤은 무경의 눈을 가렸다. 그렁그렁하던 눈에서 기어코 떨어진 액체가 하윤의 손바닥을 적셨다.
“내 말 잘 들어, 무경아. 지금부터 아무 생각하지 마. 궁금해하지도 말고. 그냥, 그냥 멈춰. 그리고 전화 받아. 내가 하라는 대로 해.”
“…….”
무경의 입술이 소리 없이 달싹거렸다. 하윤은 한 손으로는 무경의 눈을 가리고 다른 한 손으로는 그의 품을 뒤졌다. 휴대 전화를 꺼내 전화를 수신한 다음 무경의 귀에 갖다 댔다.
인사말이 흘러나오자 무경 또한 반사적으로 관등성명을 댔다. 내내 숨을 헐떡이고 입술을 깨물긴 했지만, 상대가 알아듣긴 어렵지 않았으리라.
무경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 때 지자체에 보고를 넣는 것은 거주지에서는 부재를 인식시키고 이동하는 지역에는 유사시 비상 인력으로 차출하기 위해서였다. 서울과 다른 지역 번호가 떠 있는 것에서부터 예감했듯 지자체에서 도움을 요청했다.
무경은 대답을 망설이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을 것이다.
‘가야지. 자기가 군인인데.’
하윤은 무경이 대답하는 동안 그가 그랬듯 그의 등을 밀었다. 슬쩍 손을 갖다 댄 것일 뿐이나 무경의 멈췄던 걸음이 움직였다. 온몸의 신경이 곤두섰기 때문일까. 조금 전과는 달리 바닷바람이 따갑게 느껴졌다.
앞에서 억눌린 울음과 신음이 흘러나왔다. 이따금 가쁘게 오르내리는 가슴팍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았다. 울 때가 아닌데 덩달아 눈물이 터졌다. 하윤은 선글라스를 쓰길 잘했다고 생각하며 눈에 힘을 주었다.
차에 들어가지 않으려는 무경을 조수석에 태우고 자신이 운전석에 올라탔다. 하윤이 언뜻 들렸던 장소를 내비게이션에 입력하고 시동을 거는 동안 무경은 연신 얼굴을 쓸어내렸다.
“아무 생각하지 마. 요청부터 처리해.”
“……왜 그래야 하는데. 내가, 내가. 내가 너 말하는 대로 다, 다 해야 해?!”
“어.”
하윤은 단호하게 말했다.
“……왜?”
“그래야 하니까.”
무경은 한참을 침묵하다가 갈라지는 목소리로 물었다.
“대체 뭔데. 나한테 뭘 숨기는 건데.”
“네가 알면 안 되는 거.”
잠시 갑갑하다는 듯 셔츠 깃을 만지던 무경이 하윤에게 운전을 멈추게 했다.
“위험하니까 너는 집에 가.”
“야.”
무경은 지갑을 꺼내 안에 든 현금 뭉치와 카드 두어 장을 뽑아 하윤의 주머니에 욱여넣었다.
“집에 가서 밥도 좀 먹고, 잠도 좀 자고. 병원도 갈 수 있으면 다녀와. 아니, 꼭 가. 나중에 확인할 테니까.”
“…….”
“너는 금방 갈 수 있지?”
“무경아, 나는.”
“링거, 링거 꼭 맞아. 다른 주사도 맞을 수 있으면 맞고. 나는 해결하는 대로 올라갈게. 그때까지는 네 말 들을 테니까 너도 내 말 들어.”
약속해. 무경은 다짜고짜 손을 내밀었다. 하윤은 이를 못 본 척 고개를 돌렸다.
“알겠어. 그렇게 할게.”
하윤은 차 밖에서 운전석으로 갈아탄 무경을 바라보았다. 선글라스로 눈을 가리고 있었으나 턱과 목이 축축했다. 이 또한 보지 못한 척 조심해서 잘 다녀오라는 인사를 남겼다. 무경은 여느 때처럼 대답하지 않았지만, 이전처럼 무시가 아니라 차마 말을 뱉지 못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멀어지는 차를 보다가 하윤은 품을 뒤졌다. 당연하게도 담배가 없었다. 손으로 얼굴을 비비며 크게 숨을 들이켰다. 내내 졸아 있었던지 숨을 크게 들이켜자 가슴이 따끔거렸다.
“…….”
뉴스를 확인하기 위해 휴대 전화를 꺼내자 부재중 전화 몇 건이 남아 있었다. 박건영과 GTS의 이주미, 최현진이 번갈아 가면서 전화를 남겼다. 가장 먼저 박건영에게 전화하자 왜 이렇게 통화가 안 되느냐면서 하윤을 타박했다.
“예?”
[아니, 때가 어떤 땐데 이렇게 연락이 안 됩니까. 사람 애간장 다 타겠네.]
“불 맛 나고 맛있겠네요.”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어딥니까? 백무경 씨는 지금 서울 아니라던데.]
“서해요.”
[서해 어디요. 지금 이쪽으로 바로 오셔야 할 것 같은데 가능합니까?]
하윤은 잠시 휴대 전화를 귀에서 떼고 시간을 확인했다. 병원 문 닫는 시간을 확인한 다음 두 시간 뒤에 도착 가능하다는 말을 남겼다. 이어 이주미에게 연락하자 그녀 또한 박건영과 비슷한 말을 했다.
서울로 와 줄 수 있겠느냐는 말이었다. 다만 이쪽은 용건이 구체적이었는데, 다음 주로 예정되었던 김희원과의 접견을 오늘로 당기자는 말이었다. 하윤은 자신이 지금 병원에서 링거를 맞는 중이라 세 시간 뒤에 가겠다고 말했다.
주말에 일반인을 호출하는 것이라 이주미는 다소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아픈 중이라 심기가 틀어질까 봐 그럴 수도 있었다. 박건영과 달리 약속이 정해진 것만으로도 기뻐했다. 전화를 끊은 하윤은 인적 드물고 방범 카메라가 없는 후미진 곳으로 이동했다.
이동하는 내내 무경이 불려 간 사고에 관해 검색했다. 내용 없는 속보 몇 건이 검색에 걸리고, 이내 일반 시민이 찍은 짤막한 영상이 인터넷 사이트에 올라와 있었다. 영상은 한껏 확대되어 화질이 좋지 않고 화면이 계속 흔들렸는데, 차로 대피하며 찍은 영상인 듯했다. 영상 속에선 늑대의 형상을 한 검은 덩어리가 축사를 향해 거대한 입을 벌렸는데, 입에 닿는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축사는 물론이고 안에 든 가축과 특정 초음파를 발생시켜 괴물의 접근을 막아 준다던 고가의 특수 장치, 집, 혹은 대피하다가 따라잡힌 사람들까지.
검은 덩어리는 그가 삼킨 것들로 덩치를 키웠다. 줌 인이 풀린 뒤에도 영상의 처음처럼 거대해 보였다.
‘오십 분 전.’
하윤은 영상이 올라온 시간을 확인했다. 무경이 크게 동요하기 이전에 올라간 영상이었다.
‘촬영자가 대피하던 중에 찍었으니 대피하는 데 시간도 필요했었고. 그 말은 조금 전에 벌어진 사건이 결정적인 방아쇠 역할을 한 건 아니야. 그냥 무경이 상태가 계속 새고 있었던 것이거나 슬슬 터질 시기였던 거겠지.’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저도 모르게 무경을 옹호했다.
‘어차피 가둬 놓을 수도 없잖아.’
예전에 정신계 괴수를 정신에 가둔 사람을 가수면 상태로 만든 사례를 들은 적이 있었다. 되도록 긴 봉인을 위해서였는데, 사람을 재우자마자 괴수가 튀어나와 주변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그야말로 감옥 문을 열어 준 것이나 다름없었다고.
‘무경이를 인구 밀집 지역에서 멀리 떨어트려 놓는 게 그나마 쓸 방법이겠지.’
문제는 어디에서 수용하느냐였다. 하윤은 무경이 괴수를 봉인하고 있다는 것을 들키지 않길 바랐다. 물론 김옥림 일당이 불어 버렸을 수도 있었지만.
‘미친 새끼들이 수장시킬 수도 있다고.’
일인 잠수함에 태워서 그대로 바다 깊이 보내 버릴 수도 있었다.
으슥한 장소에 도착한 하윤은 주변을 확인한 다음 근처에 있던 문을 열었다. 통로에 들어가자마자 수십 개의 통로를 뚫어 샛길을 만들었다. 잠시 뒤 하윤은 박건영과 약속한 장소 부근에 있는 병원에 도착했다.
접수한 다음 짧은 진료와 처방을 받았다. 의사는 수면 보조제를 처방해 주며 정신과 상담을 추천해 주었다. 잠드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에둘러 말했으나 근본적인 문제가 정신에 있다는 것이었다. 어찌 됐든 무경이 말했던 링거 주사도 처방받았다.
바쁘고 긴박한 와중에 이딴 약속을 지키는 것은 오히려 상황이 긴박하기 때문이었다. 지금이라도 맞아 놔야 앞으로 다가올 시간을 그나마 버텨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간호사가 주사를 놓고 가림막을 치고 멀어지자마자 하윤은 세상이 도는 느낌과 함께 그야말로 까무룩 기절하듯 잠에 빠졌다.
◇◇◇
눈을 감을 때 ‘이대로 잠이 들었다가 깼을 때 세상이 망했으면 어떻게 하나.’ 생각했지만, 깨었을 때도 별반 다른 건 없었다. TV에선 잠들기 전 검색했던 사건이 보도되고 있었는데, 다른 지역에서도 괴수가 출현하여 상황이 좋지 않다는 것이었다.
“아이구, 저기 사람들은 어쩌나.”
진료 대기 중이던 환자가 TV를 보며 안타깝다며 혀를 찼다. 잘 해결해야 할 텐데. 그는 그렇게 말한 뒤 수납처에 말해 채널을 돌렸다. 일일 연속극 재방송으로 화면이 바뀌었으나 사람들은 별 이견이 없었다. 볼 사람은 보고, 안 볼 사람은 안 보고. 더러는 휴대 전화에 코 박고 게임을 하거나 인터넷 서핑을 하고 있었다.
‘그래, 다 남의 일이지.’
주사를 맞기 전 수납을 미리 했기 때문에 조금 어색한 몸짓으로 병원을 나섰다. 건물 내 화장실을 이용해 약속 장소로 나가자 마침 박건영이 오는 중이었다.
“어어, 와 계셨네.”
“…….”
“오래 기다렸어요?”
“아니요. 저도 방금 왔어요.”
“그렇죠? 하핫. 저도 일찍 움직인다고 움직인 거거든요.”
박건영은 재차 하핫 하고 웃다가, 이내 웃는 얼굴 그대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곤 그가 알아낸 정보를 흘려 주었다. 중간중간 요즘 같은 때에 바깥으로 시간 빼서 나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끼워 넣는 바람에 고맙지는 않았다.
‘이런 거라도 해야지.’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박건영에게 박하다 싶었으나, 그럴 만했지 않은가.
“일 주에서 이 주 정도 사이에 문이 열릴 가능성이 크다고 합니다. 파란 지붕에 계신 분들뿐 아니라 각지에 계신 분들도 그때 기운이 가장 거셀 것 같다고 하십니다. 무슨 이치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분들만 아는 전문적인 분야겠죠. 저같이 정신계 나부랭이나 문지기, 그리고 일반인들은 들어도 무슨 말인가 할 겁니다.”
“……지금 혹시 날 돌려 깐 겁니까?”
“예? 아니요. 제가 어떻게 김하윤 씨를 깝니까. 그냥, 그냥 일반적일 때에서, 그리고 제가 직접 경험한 바에 의해 이야기하는 겁니다. 저도 하시는 말씀을 듣다가 설명해 주실 때 정신이 아득해지더라고요. 영성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겠죠. 그쪽 기질이 있었으면 뭔가라도 느꼈을 텐데. 결국 그쪽도 한숨을 내쉬고 설명을 일축하시더군요.”
설명해 준 사람이 누나 박윤진이 아니었을까. 하윤은 눈을 가늘게 뜨고선 박건영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박건영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늘 그렇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