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화
“그렇구나.”
“그건 왜?”
“그냥, 늘 신기해서. 예전이면 몰라도 지금은 낯설 텐데 싶어서.”
“……?”
“그리고 내가 열 것 같은 [문]이라서 거부감을 느낀다고 했었는데, 우리 집에도 [문]이 많은 거 알고 있어?”
무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본인이 생각해도 조금 전과는 느낌이 달랐다. 그 차이가 무엇일까. 무경은 자신도 모르게 김하윤의 팔을 붙들었다. 잡힌 김하윤이 도리어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무경은 다시 들어갈 생각 말고 문이 열리는 것이나 보라며 김하윤을 타박했다. 그렇게 보고 싶어 하지 않았느냐는 말에 김하윤은 소리 없이 웃었다. 입꼬리만 잠시 잠깐 올라가던 웃음이 아니었다.
‘이렇게라도 길게 웃는 게 얼마 만인지.’
문득 김하윤의 웃음을 그치게 한 ‘기억’이 떠올랐다. 왜 그랬을까. 왜 그래야만 했을까. 그러지는 말았어야 했는데. 그러면 안 됐는데. 무경은 과거의 자신을 전혀 다른 사람이라도 되는 양 비난했다. 그러나 그러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랬다간 다다르지 말아야 할 무엇에 닿을 것 같았다.
그사이 하윤은 암자로 가는 길목 난간에 달린 작은 색색의 연등을 가리켰다. 자신도 저곳에 가면 저걸 달고야 말겠다며. 올해는 운수가 사나우니 뭐라도 해야겠다는 변명도 덧붙였다. 무경이 무엇이 그렇게 빌고 싶으냐 묻자 하윤은 비밀이라고 이야기했다.
“너도 하나 달래?”
무경은 되었다고 했지만 지금 들려오는 파도 소리가 자신이 저지른 끔찍한 기억을 무뎌지게 해 주길 바랐다. 아무 자격도 없고 몰염치한 소원이라 속으로만 외워야 할, 들키지 말아야 하는 소원이었다.
◇◇◇
물길이 다시 열리는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두세 시간 기다려야 하나 싶었는데, 입장로에 버젓이 길 열리는 시간이 적혀 있었다. 그리하여 한 시간 조금 넘은 차에 물길이 스스 열리는 게 눈에 보였다. 그때쯤부터 관광객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주말이라 가족 단위의 손님이 많았다. 연인도 있었고 친구들끼리 온 사람들도 있었다. 아직 섬에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사진을 찍는 사람이 많았다. 그걸 바라보고 있자 하윤이 차 안에서 선글라스를 찾아 내밀었다.
“……?”
“너 찍히면 안 되잖아.”
“안 될 건 없지.”
예전에 김하윤은 기념일 같은 날만 되면 무경의 의지와 상관없이 사진을 찍었다. 진급 일이나 훈장을 받았을 때. 생일, 새해, 명절 등. 당시에는 무경은 그 일을 몹시 번잡스러운 일로 여겼다.
당연히 협조하지도 않았다. 진급 같은 경우에는 무경이 따로 알려 주지도 않았다. 그저 옷에 붙은 계급장을 보고 알아채는 것이다. 바로 알아차릴 때도 있었고 뒤늦게 알 때도 있었다. 그러든 말든 김하윤은 그에게 축하를 해 줬다.
‘훈장이야 기사를 보고 알아서 비교적 빨리 알기는 했는데.’
협조해 주지 않는 무경과 자신을 억지로 한 컷에 밀어 넣으려 괴상한 사진을 찍고, 그걸 모아 두었다.
‘미련하게.’
그렇게 미련스럽게 찍어 놓은 사진을 얼마 전에 갈기갈기 찢어 놓고 나갔다. 아니, 정확히는 사진에 찍힌 김하윤 자신을 도려낸 것이다. 서로 붙어 있지 않았던 만큼 어찌나 말끔하게, 손가락 하나 남기지 않고 잘라 냈던지.
그게 얼마나 자신을 괴롭게 했던지 김하윤은 몰랐을 것이다. 자신도 몰랐으니까.
“그래도 쓰자. 혹시 모르잖아.”
“그럼 너도 써.”
무경은 글러브 박스에서 선글라스 하나를 더 꺼냈다. 사 놓고 한 번도 쓰지 않았는데, 일단 자신의 취향과는 거리가 멀었다. 선호하는 모양도 아니었다. 왜 샀는지 몰랐으나 김하윤이 쓰는 순간에 이유를 알았다.
자신이 쓰려고 산 것이 아니었다. 김하윤을 주려고 산 것이지. 어쩌면 몸에 밴 습관이 튀어나왔는지도 몰랐다.
사람들이 섬으로 건너가기 시작했다. 그들의 뒤를 따르자 자신들도 관광객이 된 기분이 들었다. 특히 아까 전부터 등을 달겠다던 김하윤이 그랬다. 무경은 세찬 바닷바람에 눈을 찡그리고 있는 김하윤을 힐긋거렸다.
“선글라스 끼길 잘했다. 안 꼈으면 눈 못 떴을 뻔.”
“눈 떴으면 길이나 똑바로 봐.”
김하윤은 멋쩍은지 슬쩍 웃었다. 물론 무경의 앞이라는 것을 깨닫고 급히 손으로 가렸으나, 무경의 기운은 김하윤의 입술 끝을 쫓았다.
“[문]은 어때?”
섬에 발을 디디기 전 꺼림칙했던 장소를 지날 때였다. 무경은 아까 전과 같은 기분이 들지 않음을 수상하게 여겼다. 김하윤은 그에게도 어떤지 묻고는 이제는 사라졌다고 대답했다.
“열어 보려고도 했는데, 생각보다 힘이 좀 많이 들 것 같더라고.”
김하윤은 열지 못하는 것은 아니라는 투로 말했다. 바닷물이 밀려들어야 만들어지는 문을 물이 걷혔을 때 다시 열려면 무슨 일이 생기게 될까. 무경은 잠시 생각하다 말았다. 자신은 문지기가 아니지 않은가.
섬 안으로 들어가자 암자에 관한 설명이 조그맣게 붙어 있었다. 암자의 유례부터 어떤 이름으로 불렸는지, 혹자에게는 어떤 모양으로 보인다든지 등. 김하윤이 말했던 설화 속 키워드와 몇 가지 겹치는 것을 중점으로 봤다.
그사이 김하윤은 등에 관심이 쏠렸다. 무경을 두고 어디론가 가더니 조그만 연등 두 개를 사 왔다.
“너 두 개 적어. 올해 운수 사납다며.”
“야, 그게 나만 그런 줄 아냐.”
“그리고 고만한 거로 되겠냐? 좀 큰 거로 달아.”
“그럼 운치가 없지.”
“운치.”
무경은 코웃음을 터트렸다. 불도 붙이지 못할 조그만 연등으로 무슨 운치를 운운하는지 몰랐다. 하윤은 무경의 비웃음에 아랑곳없이 열심히 소원을 적기 시작했다.
무경이 보는 게 싫었던지 손으로 가리고 썼다. 조금 치사하게 느껴졌다. 어차피 손의 움직임을 다 따서 무슨 글을 쓰는지 아는데도 그랬다.
건강하고 행복하게 오래오래 잘 살기를.
누가 건강하고 행복하길 바라는지는 쓰지 않았다. 한 번의 소원에 일타쌍피, 혹은 일타다피를 원하는 것이리라. 부처가 들어주려고 해도 바다보다 짠 내 난다고 기피할지도 몰랐다. 무경은 비싼 등을 가리키며 자신이 달아 줄까 물었으나 하윤은 나중에 하고 싶으면 하라고 대답했다.
‘나중은 없다고 했으면서.’
유난히 차갑게 들렸던 그 말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무경은 김하윤의 등을 노려보다가 다음을 기약했다. 그래, 나중에. 나중에 김하윤이 건강해지면 같이 다시 와야지. 그때는 좀생이 같은 등 말고 큰 연등을 달 것이다. 비록 부처를 믿지 않겠지만, 부처를 믿는 스님의 기원은 들어주지 않을까 싶어서.
김하윤은 재차 무경에게 등을 쓸 것을 물었다. 그에게도 소원이 있기는 하였으나 밝히기도 이루어져서도 안 되는 소원이었다. 자신은 됐다고 이야기하자 김하윤은 소원을 쓰지 않은 채로 등을 달았다.
“내 것 옆에 있으니까, 혹시라도 마음 바뀌면 써.”
“그러기 전에 날려 가겠다. 비켜 봐.”
김하윤이 어설프게 매단 연등을 무경이 고쳐 달았다. 문득 달다 보니 소원만 쓰고 절에서 등을 달아 주는 게 아닌가 싶었으나, 이미 달았으니 아무렴 했다.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있는 것 아니겠는가.
등을 단 무경은 내내 하윤이 감췄던 소원지를 보고 손가락으로 살짝 퉁겼다. 혹여 종이가 찢어질세라 김하윤이 그를 말렸다. 잠깐의 접촉에 무경의 입꼬리가 저절로 삐죽거렸다.
그러기도 잠시, 무경은 하윤과 함께 절을 살폈다. 조그만 절이라 둘러보는 것은 잠시였으나 머무르고자 하면 발걸음이 오래 잡혔다. 서해라 뻘물이겠거니 생각한 것과 달리 길 반대편에 자리한 바다는 푸르렀다.
“이제 가자.”
김하윤은 무심결에 무경에게 손을 뻗었다가, 손에 닿기 전 스스로 몸을 돌렸다. 허우적거리는 몸짓이 뭣 때문인 줄 알면서도 무경은 짐짓 모른 척했다. 그저 당황할 거 없으니 이제 가자고 김하윤의 등을 손으로 살짝 눌렀다.
막 암자를 벗어나려 할 때, 거센 바람과 함께 난간에 달린 연등이 함께 나부꼈다. 무경은 김하윤의 등을 찾아 고개를 돌렸다. 혹여 그사이 등이 날려갈까 봐 걱정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러다가 문득 김하윤의 소원을 다시금 곱씹었다. 건강하고 행복하게 오래오래 잘 살기를.
자기 가족에게 한 것일까, 본인에게 한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자신이거나.
‘가족이겠지.’
가족. 생각을 되뇌며 다시 한 걸음 내디뎠을 때 언젠가 백진하가 무언가를 몰래 쓰던 모습이 생각났다.
‘그게 뭐였더라.’
혹 김하윤이 들고 있던 사진은 아니었을까. 무경은 사진 뒤에 적힌 백진하의 글씨를 떠올렸다.
‘아버지가 그걸 왜 쓰셨지?’
백진하가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살뜰하긴 했으나 매 사진마다 글귀를 남겨 놓진 않았다. 사진에 자국이 남는 걸 싫어했다. 글귀를 남길 일이 있으면 포스트잇을 사용해 앨범에 붙이고는 했다.
‘한 장이 아니었는데.’
김하윤이 갖고 있던 것만 해도 두 장. 백진하는 그것보다 많은 수의 사진을 쌓아 두고 글을 썼었다. 왜 그랬을까.
‘타임캡슐.’
무경은 자신도 모르게 누군가의 버릇을 흉내 내듯 엄지로 네 번째 손가락을 긁었다.
‘타임캡슐에 넣으려고.’
열일곱의 언젠가, 모친의 제안으로 타임캡슐을 만들었다. 추억을 남기기 위해서라는 명목이었다. 십 년 뒤에 같이 열면 좋고, 아니면 추억할 수 있도록. 직업이 직업이라 미리 준비하는 일이 잦았던 만큼, 그것도 연례행사의 일종이라고 생각했다.
그때 부친은 사진을 준비했다. 모친이 이것도 넣으라며 다른 사진을 더 주기도 했었고. 모친은 뭘 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알려고도 하지 않은 것은 그것이 김하윤을 위한 것이라고 했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문지기로서의 뭔가가 아니었을까.
김하윤이 모친이 반출했다고 추정되는 자료들을 갖고 있는 게 그것과 연관 있는 게 아니었을까.
그때 나는 뭘 했더라. 무경은 기억의 꼬리를 잡기 위해 애썼다. 머릿속이 간질간질했다. 미칠듯한 불안과 동시에 알고 싶다는 욕망이 솟구쳤다.
무경이 걸음을 멈춘 것을 뒤늦게 안 김하윤이 뒤를 돌았다. 다시금 자신에게로 오는 김하윤을 보며 무경은 그도 뭔가를 넣긴 넣었으리라 생각했다.
‘김하윤은 뭘 넣었었지? 그때 나는…….’
“무경아, 안 오고 뭐 해? 왜, 무슨 일 있어?”
김하윤을 보는 순간에, 이명과 함께 자신이 그에게서 뺏어 던졌던 것이 생각났다.
‘반지.’
김하윤이 미련스레 끼고 다니던 큰 치수의 반지.
김하윤의 지독스럽던 미련의 의미를 알았다.
마른침을 꼴깍임과 동시에 무경의 휴대 전화가 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