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화
내비게이션에 목적지 입력을 마쳤지만 바로 갈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간월암은 김하윤이 미리 언질 주지 않은 곳이었기 때문에 상부에 약식 보고를 넣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미리 사정을 설명했기에 다행이지, 아니었다면 조금 곤혹스러웠을 것이다.
무경이 휴대 전화로 보고서를 적는 동안 김하윤 또한 노트북을 꺼냈다. 그러고는 신나게 타자를 치기 시작하는데, 무경은 자신의 휴대 전화와 하윤의 노트북을 번갈아 보며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꼈다.
“……왜? 노트북 빌려줄까? 네가 쓸래?”
“됐어.”
어차피 등록된 전자 기기가 아니기 때문에 사용할 수 없었다. 무경은 다시 휴대 전화 화면을 두드렸다. 주말이라 확인이 되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것이 무섭게 상사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간단한 안부와 함께 이것저것 확인하기 위해서였는데, 무경이 순순히 대답하자 사방에서 자신을 괴롭힌다며 넋두리를 했다.
자신이 다 화가 난다면서 욕도 섞었는데, 아마도 불쾌할 무경의 감정을 희석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그러나 무경은 정말로 괜찮았다. 오히려 지금은 그냥 전화를 끊어 주는 것이 더 도움이 되었으리라.
전화를 끊은 무경은 하윤을 힐끔 바라보았다. 내내 조용하길래 뭐 하나 싶었더니 아예 노트북을 덮고 있었다. 통화하는데 타자 소리가 거슬릴까 봐 그런 것이리라.
“통화 끝났어?”
“어.”
하윤은 출발하기 전에 시간을 조금만 달라고 했다. 그러고는 다시 노트북을 펴고 뭔가를 입력하기 시작했다. 언뜻 봐서는 알아보기 힘들었다.
“뭐 입력하는 거야?”
“아, 이거?”
“그럼 뭐겠어?”
“좌표를 입력하는 거야. 내가 전에 휘저어 버렸거든.”
“휘저었다고?”
“어어. 이상한 게 자꾸 기어들어 오려고 해서. 그런데 좌표가 바뀐 거 때문에 사람들이 꽤 힘들어하더라. 나는 이제 그 좌표들을 볼 수 있는 사람이나 취급할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네 말대로 과학의 발전이 대단하더라고.”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무경의 말에 김하윤은 눈을 동그랗게 뜨다가, 이내 고개를 숙이며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그러고는 그런 게 있다는 말로 얼버무렸다. 이번엔 왜 그렇게 말을 흐리느냐 묻자, 원래 자기가 잘못한 건 어물쩍 넘어가야 한다는 말만 했다.
“다 끝나면 말해.”
무경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김하윤을 한번 흘겨보다가 좌석을 뒤로 넘겼다. 잘까 싶어서 눈을 감았지만, 김하윤이 내는 소음에 좀처럼 눈을 감고 있기가 힘들었다. 슬쩍 다시 눈을 뜨고는 집중한 김하윤을 훔쳐보았다.
김하윤은 차 안이라 노트북 화면을 편하게 보기 힘들 텐데도 대단히 집중하고 있었다. 집중할 때 나오는 특유의 버릇이 보였다. 그것을 자신이 어떻게 아느냐면…….
그냥 알고 있었다.
이것은 열일곱 이전의 [기억]이 아니라 자신이 가진 ‘기억’ 속에 있었다. 오래된 기억 속을 뒤지지 않아도 이미 알고 있었다. 알 수밖에 없었다. 자신과 함께 있을 땐 김하윤의 신경은 온통 그에게 몰려 있었다.
그러다가 가끔 어떤 일에 집중하면 자신을 신경을 쓰지 않았다. 또 그럴 때면 꼭 수상쩍게 팬트리 룸에 기어들어 가 있었다. 살펴보지 않고선 가만둘 수 없지 않은가. 물론 그렇게 집중해야 하니 방해하지 못하는 곳에 들어갔나 싶기도 했지만.
‘혹시.’
그때도 문에 관한 일을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궁금증이 일자마자 예전이라면 두어 번이라도 참았을 질문이 불쑥 튀어나왔다.
“예전에. 몇 년 전에도 가끔 팬트리 룸에 처박혀서 컴퓨터 했을 때. 그때도 [문]에 관한 거였나?”
“……예전에?”
무경은 구체적인 때를 대지 못했다. 결국 집에서도 [문]에 관해 연구할 때가 있었느냐는 질문으로 바꾸었다. 그의 질문에 타자를 치던 김하윤의 손이 멎었다. 그러나 시선은 아직 컴퓨터 화면에 붙어 있었다.
“연구라고 할 건 없고. 그냥.”
“……?”
“그냥 내가 아는 걸 써 놓거나 근처에서 발견한 [문]의 좌표 같은 건 써 놨었지. 보이진 않았지만, 아예 안 느껴지는 건 아니었고, 또 안경을 이용하면 언뜻 보이기도 했었거든.”
김하윤은 착시 효과가 인 것처럼 정말 언뜻 보였었다며 그때 본 것이 실재하는지는 확실하지 않다는 말을 덧붙였다.
“실재한 게 아니면?”
“그냥 내가 헛것을 보고 뭔가를 봤다고 착각했을 수도 있다는 거지. 뭐가 됐든 너무 보고 싶어서.”
너무 보고 싶어서. 무경은 하윤의 입에서 나온 말에 순간 가슴이 철렁여 눈을 깜빡였다. 자신이 왜 이러는지 자신도 몰랐다.
“그럼 그것들은 다 어쨌어?”
“어쨌긴. 이사할 때 다 버렸지.”
“왜?”
“그게 뭐가 됐든 그땐 다 필요 없었거든.”
김하윤은 앞서 말했던 것을 운운하며 그때의 정보가 정확한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오히려 지금 새로 조사하는 게 훨씬 빠르고 정확할 것이라면서. 그러고는 시선 한 번 돌리지 않고 계속해서 방향키를 눌렀다.
무경은 문득 김하윤을 깨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얄밉기도 했고, 그냥 옷 위로 드러난 살결에 눈이 갔기 때문이기도 했다. 무경은 저도 모르게 슬쩍 몸을 붙였다가 그제야 자신을 바라보는 김하윤을 보고 멈칫했다.
“…….”
없었던 일처럼 다시 몸을 바로 했다.
“다 끝났으면 안전띠 매.”
하윤은 이제 끝났다며 노트북을 정리했다. 무경은 그가 노트북을 정리하고 안전띠를 매는 것을 다 보고 난 뒤에야 출발했다. 그러나 얼마 가지 못해 김하윤은 멀미했다. 무엇이 그를 그렇게 흔들었는지 얼굴이 새하얗게 변해서 갓길에 차를 세워 주니, 하윤은 허겁지겁 수풀 사이로 사라졌다.
든 것도 없는 속을 게우려 몸을 들썩이는 것을 보자 무경은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차에 [문]을 열어서 타는 척 간월암에 먼저 넘어가. 먼저 확인한 다음에 다시 서울로 돌아가서 병원에 가.”
“아니야, 나 괜찮아.”
“고집부리지 마.”
김하윤은 계속해서 고집을 부렸다. 무경은 계속 이렇게 나오면 차를 돌리겠다고 으름장을 놓았으나, 상대는 문지기였다. 차라리 홀로 갔다 오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무경이 다음에 같이 오자고 말했으나 김하윤은 여태 들은 것 중 가장 차가운 목소리로 다음은 없다고 대답했다.
“…….”
열이 오른 머리와 달리 섬뜩해졌다. 무경이 말문이 막혀 입을 다문 채 김하윤을 바라보자 그는 시선을 피해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끝끝내 고집을 꺾지 않았다. 사실 김하윤의 말대로 그가 혼자 가는 게 훨씬 수월하고 편한 방법일 것이다.
“……그래, 차라리 혼자 갔다가 와.”
적어도 자신과 오래 있다는 이유로 멀미도 하지 않을 것이고 밥이라도 챙겨 먹겠지. 무경은 차라리 그렇게라도 하게 하려 했다.
“같이 가자.”
“…….”
“기왕이면 같이 갔으면 해.”
“내가 너 말하는 대로 따라야 해?”
언성을 높이기 무섭게 김하윤의 몸이 차 문짝에 한없이 가까워졌다. 몸을 웅크리는 꼴이 왜 그렇게 보기 싫던지. 무경은 말을 하다 말고 다시 운전대를 잡았다. 속으로는 온갖 욕을 중얼거리면서도 혹여 김하윤의 몸에 닿을까 봐 몸을 조심스레 움직였다.
김하윤이 말하는 대로 따르는 자신의 꼴이 아주 우습기 짝이 없었다.
◇◇◇
“이야, 멋있다. 그렇지?”
“…….”
무경은 차마 김하윤의 말에 대꾸할 수 없어 입을 다물었다. 아직 화가 풀리지 않았기 때문에 풍경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김하윤은 [문]으로 혼자 넘어가면 될 것을 끝까지 고집을 부렸다. 멀미를 삭이려고 오는 내내 문을 열고 있었더니 김하윤이나 저나 머리 꼴이 말이 아니었다.
김하윤은 그래도 좋다고 입꼬리를 삐죽거렸다. 자신만 아니었으면 아마 아주 함박 웃었을 기세였다. 무경은 김하윤을 다시 힐끔거리다가 다시 고개를 돌렸다. 마음 같아선 양 볼을 사정없이 꼬집고 싶었다.
‘맙소사.’
무경은 자신이 떠올린 생각이 끔찍하다며 고개를 젓다가 바다 가운데 있는 작은 섬을 바라보았다. 물때를 잘못 맞춰 길이 바닷물에 잠겨 있었다. 싸우면서까지 왔는데 허탈함이 밀려왔다. 어쩐지 주차장이 불안할 만큼 한산하더라니.
“정말 멋지다.”
“…….”
민망한 상황을 어찌 수습해 보려는 것일까? 하지만 그렇다기엔 김하윤은 정말 멋진 것을 보고 있다는 표정을 지었다. 무경은 심드렁한 눈으로 김하윤이 바라보는 방향으로 몸을 틀었다.
물길이 열려야 갈 수 있다는 섬은 생각보다 육지와 가까웠고 물도 그렇게 깊어 보이지 않았다. 물론 성인 하나는 자칫 잠길 수도 있겠다지만 그곳을 쉬이 건널 수 있는 무경에겐 영 성에 차지 않았다. 무경으로서는 하윤이 무엇에 감탄하는지 알 수 없었다. 육지와 근소하게 떨어져 섬이 된 땅이었을까, 바닷바람을 맞으면서도 내내 자리하고 있는 암자였을까. 그도 아니면 생각보다 짧은 육지와의 거리였을까.
‘하나도 모르겠는데.’
화가 난 상태라서 그럴까. 정말 풍경이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괜히 꺼림칙한 느낌도 들어서 김하윤을 데리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이건 골골거리는 김하윤 때문일지도 몰랐다. 무경이 영 갈피를 잡지 못하고 바다로부터 하윤을 가리듯 서려 하자 하윤이 섬 옆을 가리켰다.
“저기 말이야.”
“……?”
“[문]이 있어. 아주 커다란 문인데, 아주 오래되었나 봐.”
김하윤은 [문]에 관해 설명했다. 가만 듣고 있자니 사찰의 일주문과 모양새가 흡사했다. 이를 말하자 김하윤이 근처 사찰, 간월암을 훔쳐보고 오더니 비슷하다며 손뼉을 쳤다. 그러고는 [문]의 형태가 재밌다면서 물길이 열릴 때까지 기다리자고 했다.
“뭐가 재밌는데?”
“[문]이 자꾸 허물어지고 흐려지거든. 내 예상이 맞는다면 물길이 열리면 저 [문]은 허물어질 거야. 그러고 다시 물이 차오르면 [문]이 쌓아 올려지고 선명해지겠지.”
“일주문의 형태면 문짝이 없을 텐데. 네가 말하는 문은 그럼 안 되는 거 아닌가?”
“다른 세상이랑 맞닿는 곳이면 그런데, 이건 별로 상관없을 것 같아. 문 너머로 보이는 건 바다거든. 그리고 반대편에도 하나가 더 있어. 보여?”
“…….”
저한테 그게 보이겠는가. 무경은 차마 대답하지 못하고 입술만 달싹였다.
“그럼 이렇게 하면 어때?”
김하윤은 불쑥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갑자기 사라졌다. 무경은 급히 바닷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김하윤이 가리켰던 부근에 김하윤으로 보이는 신체 일부가 틈새로 엿보듯 아주 살짝 보였다가 사라졌다.
김하윤을 바락 부르려다가, 무경은 스스로 입을 틀어막았다. 휴대 전화로 급히 김하윤의 위치를 확인하려는 찰나, 다시금 나타난 김하윤이 무경의 휴대 전화를 가렸다. 스치듯 지나간 손의 감촉에 가슴이 덜컥였다.
“너 되게 신기하다. 어떻게 아는 거야?”
“……?”
“[문] 말이야. 어떻게 아는 거야?”
김하윤의 질문에 무경은 도리어 의아해했다. 당연한 것 아닌가.
“네가 연 문은 날 받아들이지 않잖아. 그걸 못 느끼면 그게 이상한 거지.”
세상 모든 것이 다 그 위를 지나간다 해도 무경만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랬기 때문에 본래 기감이 예민하고 자신의 기운을 넓게 펼쳐서 사용하는 무경으로서는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는 것이다. 힘의 흐름이 가로막히니까.
다만 김하윤이 조금 전 열었던 [문]은 다른 느낌이었다. 이것을 뭐라고 해야 할까. 김하윤이 그 [문]을 열 것을 미리 알았던 것이라고 해야 할까?
무경의 대답을 들은 김하윤은 묘한 얼굴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