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원 라스트-125화 (125/162)

125화

무경에게 능력이 돌아온 것을 말한 뒤 서이주에 관한 것을 털어놓은 것은 여러 가지가 겹쳐서였다.

죄책감, 의무감 뭐 그런 것들. 성찰의 다짐 없이 숨 쉬듯 마냥 쌓아 올리기만 해서 바람에 스치기만 해도 무너질까 몸을 벌벌 떨었다. 어찌 보면 도둑이 제 발 저렸던 것이리라. 서이주를 직접 죽이지는 않았지만 죽음을 방조했다는 곪고 곪았던 죄책감이 터져 나왔다.

입이 열린 순간부터 자신의 의지로는 멈출 수 없었다. 스스로 말하는 중에도 뜨끔뜨끔 속이 따갑고 식은땀이 났다.

걱정만큼은 아프지 않았으나, 아픈 것은 변하지 않았다.

다만 드디어 말하고 말았다는 생각에 괴상한 해방감이 들었다.

무경은 하윤을 흔들며 울분을 토했다. 네가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찢어지는 듯한 비명을 지를 땐 하윤은 자신의 혼이 흔들리는 것만 같았다. 정신없이 사과하고 또 사과했다. 머릿속이 눈이 내린 듯이 새하얗기만 했다. 어쩌면 오늘 무경과 마주한 순간부터 머리가 멀쩡했던 적이 없었던 것 같았다.

드문드문 기억도 끊겼다.

가까스로 숨을 내쉬었을 땐 시간이 제법 지난 뒤였고, 자신은 여전히 손을 모으고 있었다. 무경은 어둠 속에서 하윤을 바라보고 있었다. 전자 기기의 불빛이 희미하게 밝힌 얼굴이 텅 비어 보였다. 하윤은 차라리 그가 자신을 더 질타하길 바랐다.

사과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자신에게 있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무경은 모를 것이다. 아마도 십여 년 가까이 사실을 숨긴 채 곁에 머물렀던 자신을 가증스러워할지도 몰랐다. 아니, 그럴 것이다. 그것이 당연했으므로.

“……왜 날 속였어?”

“…….”

“왜 다른 이야기는 다 해 놓고 그건 숨겼냐고.”

“…….”

“말 좀 해 봐. 너 말 못 하는 거 아니잖아. 어디 한번 말해 봐.”

무경은 지친 듯 언성을 높이지 않았다. 다만 차분히 타이르는 말에 가시가 있었다. 하윤은 내내 빌던 손을 움켜쥔 채 숨을 들이켰다. 계속 울었던 탓에 울음을 그친 지금도 숨에 울음이 남아 있었다.

“어떻게 그렇게 속이고도 내 곁에 있으려고 했었어.”

“미안, 미안해 무경아.”

“사과받으려고 하는 게 아니야. 궁금해서 묻는 거야. 이건 얼마든지 말해 줄 수 있었잖아. 솔직히 그럴 기회가 많았잖아.”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여전히 머리가 돌아가지 않았다. 당시에 자신이 왜 숨겼던가. 질문을 곱씹고 또 곱씹자 나름의 이유가 있었던 것을 떠올렸다. 그래, 그런 것이 있었다.

서이주의 죽음을 방조해야 했던 죄책감과 당시 상황에서 곡옥의 존재를 떠들 수 없었다. 자신은 능력을 잃었고, 부모님은 일반인에, 무경은 기억을 잃었고 자신을 부정했다. 나쁜 머리로도 방송에서 떠드는 피노키오 일당이 그들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당시에 서이주의 집을 둘러싸던 무장단체들 때문이었다. TV에 나온 피노키오 일당은 그저 꼬리 자르기에 불과했다. 그래서 하윤은 감히 복수도 생각하지 못했다.

이 모든 것을 종합하자면 하윤은 당시의 무경을 믿을 수 없었다.

물론 지금도 하윤은 무경을 믿지 못했다. 그에 대한 감정과는 별개로 그가 온전히 자신의 편을 들어줄 것 같지 않아서였다. 또 그래서도 안 됐다. 그 말인즉 옛날의 무경이 돌아왔다는 것이고 그렇다는 말은 그가 자신의 정신에 가둬 둔 괴물이 깨어났다는 것이니까.

더없이 멍청한 중에 더없이 차가운 이성적인 사고를 했다. 자신이 무경을 온전히 버려서, 괴물과 분리하기 전까지 무경은 자신을 떠올려선 안 된다. 그래야 그가 살아남을 수 있을 테니까. 무경의 몸에서 괴물을 빼내기만 하면 그 뒤는 잘 모르겠지만 어찌어찌될 것이다.

자신을 태우기만 하면 된다는데, 그것보다 하기 쉬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

“나는 이제 네가 하는 말은 도무지 믿을 수가 없겠다.”

“……미안해.”

“네가 말한 것 중에 거짓말이 아닌 게 있었어?”

하윤은 고개를 숙였다. 그래, 무경의 말이 옳았다. 너무나 많은 거짓말을 한 탓에 사실을 말한 적이 있었는지도 헷갈렸다.

“이제 어떻게 할래?”

“……어떻게 할까? 어떻게 하면 될까?”

“…….”

“시비 걸려는 게 아니라, 정말 알 수 없어서 그래. 내가, 내가 어떻게 하면 네 마음이 좀 편할까? 내가 할 수 있는 거라면 뭐든지 할게.”

“뭐든지 한다고?”

하윤의 말이 우스웠던지 무경은 작게 웃었다. 어느새 성큼 다가온 그는 몸을 낮추고선 하윤과 눈을 마주했다. 익숙하고도 낯선 눈빛으로 하윤을 응시했다.

“내가 뭘 바랄 줄 알고? 내 부모 몸속에서 곡옥이란 걸 꺼내 갔으니까 네 장기라도 꺼내 달라고 하면 어쩌려고? 아니, 장기가 아니라 네 곡옥을 달라고 하면 어쩌려고.”

“……줄게.”

“야.”

“내가 죽으면 네가 빼 가, 무경아.”

“…….”

무경은 하윤을 쏘아보았다. 컴컴한 중에도 그의 날카로운 시선이 지독하게도 선명하게 느껴졌다. 흐느끼듯 숨을 들이마시는 중에 무경의 손이 하윤의 눈가를 스쳤다. 울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했는지 그가 물었다.

“그럼 네가 죽을 때까지 기다리라고?”

하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가 자기 말이 조금 이상하게 들렸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무경은 자신이 곧 죽을 운명이라는 것을 몰랐다. 그러니 기다림의 기간을 한국인의 평균 수명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하윤은 무경의 두 손을 잡아 자기 목에 올렸다. 손을 포개고 조르듯 힘을 주게 하자 무경이 도리어 힘을 주어 손을 구부리지 않았다. 하윤이 온갖 용을 써도 꿈쩍하지 않았다. 그러고는 평소와 다른 퍽 다정한 목소리로 하윤을 불렀다.

“김하윤. 지금 널 죽이고 빼 가라고 이러는 거야?”

“…….”

“네가 지금 이러는 건 나한테 아무런 도움이 안 돼. 내가 널 못 믿겠다고 했으면 다시 믿을 수 있게 신뢰를 회복해야지.”

무경의 말이 이해되지 않았다. 작금의 자신과 무경 사이에 신뢰라는 게 있을 수 있는 말이던가. 있다고 한들 깨어진 신뢰를 다시 붙일 수나 있을까. 그렇게 하지 못한다는 것은 자신이 더 잘 알았다.

“도망치지 마. 성인이면 자기 선택에 책임을 져야지.”

“…….”

“나는 곡옥이란 거 아무 필요 없어. 네 목 하나 꺾고 몸속을 뒤적인다 한들 얻을 게 아무것도 없다고.”

“그럼, 그럼 어떻게 해.”

“차라리…….”

무경은 한 손으로 하윤의 두 손을 포개어 잡고는 남은 한 손으론 하윤의 무릎을 살살 주물렀다. 가늠하듯 양쪽을 번갈아 쥐다가, 좀 더 위로 올라가 허벅지를 움켜쥐었다.

“하나 자를래? 그러면 도망치기 조금 어려워질 것 같아서 도움이 될 것 같은데.”

“……?”

“농담이야. 지금 잘랐다간 너 죽겠다.”

무경은 하윤의 뺨을 톡 건드리고는 한걸음 뒤로 물러났다. 얼떨떨했다. 무경이 자기 다리를 자르자고 한 이야기보다 그가 자신에게 농담했다는 게. 전자는 할 법한 말이었고 후자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어머니처럼 나도 버리고 모른 척할 거지?”

하윤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나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아서 대답할 수 없었다. 언제 맺혔는지 모를 이마의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김하윤. 아니라고 제대로 말해.”

“…….”

“도망치지 말고. 어서.”

무경이 말하는 도망이 회피하지 말라고 하는지, 아니면 실제로 도망가지 말라고 하는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자꾸만 말하고자 하는 의미를 바꾸는 것 같았다. 그러나 어느 쪽이든 대답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다만 입을 떼기 어려워 하윤은 고개만 끄덕였다. 그러나 무경은 다시 대답하길 바랐다. 소리 내서 정확하게 아니라고 말하게 한 다음 또다시 낯선 눈빛으로 하윤을 응시했다. 하윤이 말없이 바라보기만 하자 다시 표정을 굳힌 익숙한 얼굴로 돌아왔다.

“아, 이래도 도저히 못 믿겠다. 좀 더 두고 봐야겠어.”

“……무슨, 말이야?”

“네 말에 성의가 안 보여서 믿을 수가 있어야지. 그러겠다고 대답만 해 놓고 여태 그랬던 것처럼 모른 척하면 어떻게 해. 너 거짓말 잘하잖아.”

“…….”

“막말로 너도 우리 어머니가 죽길 바란 건 아니었을 텐데. 그런 마음인데도 이렇게 오랫동안 거짓말하고 모른 척하고. 네 말마따나 마음 정리한 나한테는 얼마나 쉽겠어? 그렇지?”

“너, 넌 무슨 말을 그렇게 해!”

하윤이 질색하며 소리치든 말든 무경은 주방으로 들어갔다. 온수와 정수를 번갈아 받으며 미지근한 물을 만들더니 알약 두 개와 함께 하윤에게 내밀었다.

“먹어. 열 있더라. 그러게 왜 찬물에 들어갔었어?”

“…….”

예전에 줬던 알약과는 다른 알약이 하윤의 손에 놓였다. 다만 이번에는 하윤도 익히 잘 아는 알약이었다. 삼키지 않고 손바닥에 굴리고만 있자 무경이 하윤을 부르며 채근했다. 하윤이 알약을 삼키고 물을 마시는 동안 무경은 하윤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 순간 하윤은 무경과 아주 좁은 공간에 갇힌 것만 같았다. 몸도 마음도 갑갑한 것이 어째 이상하리만치 익숙하게 느껴졌다.

“다음엔 그러지 마.”

“…….”

“한여름도 아닌데 찬물 덮어쓰지 말고, 당장 힘들다고 거짓말로 피하려고도 하지 말고.”

하윤은 고개를 떨군 채 눈만 깜빡였다. 무경은 같은 자리에 가만히 서서 염동력으로 하윤이 덮을 만한 이불과 베개를 꺼내 왔다. 공중에서 활짝 펼쳐진 이불이 천천히 아래로 떨어져 하윤의 몸을 감쌌다.

이불이 시야를 가리자 하윤은 조심스레 긴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무경은 보이지 않을 뿐 계속 그의 곁에 있었다.

“네가 아직 나한테 말하지 않은 것도 많은 거 아는데, 그건 차차 말하자. 또 당장은 됐다고 다시 입 다물지 말고.”

“……그래.”

겨우 대답한 소리가 형편없었다. 무경이 하는 말에 하윤은 내내 그렇게 대답했다. 질문을 이해하기에 앞서 일단 대답부터 하고 봤다. 자신을 쥐어박고 싶었으나 그럴 수가 없었다. 어느새 이불을 뒤집어쓴 몸뚱어리가 무경에게 붙잡혔기 때문이었다.

무경은 하윤의 다리에 머리를 기댔다. 그가 흘린 숨소리에서 웃음을 들은 것 같았으나 확인할 순 없었다. 화를 내던 중이라 그럴까. 평소와 달리 말이 많아진 무경은 마지막 당부를 남겼다.

그것이 왜 마지막 당부였느냐면…….

“조사에 도움이 된다고 하더라도 박건영이랑 말 많이 섞지 마. 속 시커먼 새끼니까. 그리고 다른 사람도 믿지 마. 많이 이야기해 봐야 좋을 거 하나도 없어. 차라리 내가 도와줄게.”

“……네가?”

“뭘 조사해야 할지 알 것 같으니까.”

그 말을 끝으로 하윤의 세상이 까맣게 물들었기 때문이었다.

◇◇◇

다시 깼을 때 하윤은 병원에 있었다. 몸살이 심하게 난 데다 고열이 계속 이어졌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집에 내내 붙어 있을 수 없었던 무경이 입원을 시킨 것이다. 열이 떨어지고 기력을 차릴 때쯤에 입원해 있던 병원의 의사가 경찰에 신고해야 하는지 물었다.

그런 것은 아니라고 했지만, 이상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조심스럽게 정신과 상담을 받아 보는 게 어떻겠느냐는 권유했다. 하윤이 많이 지쳐 보인다는 이유였다. 애써서 돌려서 하는 말이 가련해 보일 지경이었다. 하윤 또한 자신의 상태가 정상이 아니라는 것은 알았다. 하지만 한가하게 치료나 받으러 다닐 여유가 없었다.

놀랍게도 입원해 있는 동안 취업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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