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화
박건영은 오래 지나지 않아 정필용의 자료를 찾았노라고 연락했다. 다만 이전에 말한 대로 자료 반출이 어려워 하윤이 궁금해하는 것만 짤막하게 대답해 줬다.
하윤은 정필용이 십 년 전 사건 당시 서울, 자신이 거주하던 동네와 가까운 곳에서 근무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근무지 기록으로는 겹치지 않았으나, 다만 그의 거주지가 원을 들어주는 괴수의 공격 범위에 들어갔었다고 했다. 다만 아주 아슬아슬하게 걸쳐져 있었고, 거리가 멀었던 만큼 괴수의 정신 공격을 약하게 받았다.
여기서 약하게 받았다는 것은 급사를 면해 겨우 목숨 줄을 잡았다는 소리였다. 사건 이후 병원으로 호송되어 육 개월간의 치료를 받았고, 이후 은퇴하여 수자원공사에 재취직, 고향이 있는 곳에 파견되어 현재까지 근무 중으로 나왔다. 업무는 댐의 안전 관리였다.
박건영은 본인도 아리송해서 퇴직 이후 행보를 찾아본 것이면서 어찌나 생색을 내던지. 정필용에 관한 설명보다 박건영 본인의 자화자찬을 더 길게 듣고 말았다.
‘이 새끼 내가 전에 능력 조금 까 내렸다고 이러는 건가.’
합리적인 의심을 하면서 하윤은 이전에 봤던 글을 다시 검색했다. 글은 이미 삭제되었고 실시간으로 글이 썰리는 것을 봤다는 글만 남아 있었다. 심지어 그 글에도 삭제된 댓글이 몇몇 있었는지 모두 무섭다며 초성으로 호들갑을 떨고 있었다.
처음에는 자신의 검색 실력이 비루하여 글을 찾지 못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박건영을 통해 확인해 보니 정보 제한이 걸린 건이라고 했다.
[아니, 근데 왜 자꾸 나한테 짬을 때리는 겁니까? 예? 제가 김하윤 씨 부하라도 됩니까? 하, 진짜. 자꾸 이렇게 부려 먹으면 곤란합니다.]
박건영은 자기 부하가 아니었지만, 누나인 박윤진이 협조하기로 했다. 그가 알아서 집안 단속을 잘하리라고 믿고 하윤은 별 대꾸 없이 전화를 끊었다.
‘정보 제한이 걸렸다라…….’
그 말인즉 알려져선 안 되는 위험한 내용이라는 것이다. 미풍양속을 지나치게 해치거나 사회의 혼란을 초래할 만한 사건들.
‘괴수의 외형 탓에 사진을 공개하지 않는 건 꽤 있는 일이지만…….’
하윤은 괴수의 머리에 달려 있던 사람의 상반신을 떠올렸다. 화질이 깨진 사진임에도 얼굴이 제법 선명하게 잡혔다. 간단한 사진 보정만 통해도 아는 사람은 다 알아봤을 것이다.
‘사람을 따라 하는 괴수들이 있긴 한데.’
인간의 형태만 따라 하기도 하고, 잡아먹은 인간으로 몸을 만드는 일도 있었다. 정필용 또한 잡아먹힌 걸까? 단순히 실존 인물을 상체에 달고 있어서 그 사람의 인권을 위해 정보 제한을 했다기엔 앞선 사례가 많았다.
‘원을 들어주는 괴수의 공격 범위에 노출되어 치료받은 전적이 있다.’
하윤은 외워 버린 원을 들어주는 괴수의 기록을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괴물이 묻고 인간이 답한다. 입으로 발하지 않음에도 심중 깊이 있던 원이 튀어나와 환상을 이루고, 절명하지 않고 버티면 실제로 결실을 맺는다. 적은 연기에도 심신이 미약한 자들은 상을 보기 전에 절명하고 오직 심신이 강한 자들만이 환상과 실제를 겪는다.
원이 이루어진 뒤에는 괴물에게 잡아먹힌다.
‘공격받고 치료받았다. 괴물이 물었고 답하려 하지 않았음에도 마음이 읽혔다. 심신이 강하여 상을 보고 살아남았고, 환상을…….’
환상. 하윤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기억을 떠올리기 위해 입술이고 손가락이고 마구 깨물다가, 마침내 박건영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래, 공통점이라면 그런 것도 있겠네요. 살아남은 이들 중, 언어를 구사할 수 있고 기억이 비교적 멀쩡한 사람이 몇몇 있기는 했죠. 그들은 각기 세상이 불타는 것, 건물이 물에 잠기는 것, 혹은 땅이 가라앉는 것. 세상이 망하는 환상을 아주 다양하고 생생하게 겪었다고 했죠.]
‘물에 잠기는 것.’
박건영이 말한 것이 정필용의 사례가 아닐 수도 있었다. 그러나 하윤은 그가 익히 느낀 것처럼 한국 사회가 꽤 좁다는 사실을 근거로 떠올렸다. 한국 사회가 좁은 만큼 초능력자들의 사회는 더 좁다. 대부분 서울에 몰려 있기도 했고.
‘물에 잠기는 것. 물에 관한 공포. 하지만 아저씨는 수자원공사에서 댐 안전 관리를 맡았다. 단순히 물을 무서워한다고 하긴 그래. 더 세밀하게 분류해야 해.’
그러나 생각과 달리 이 이상의 추측이 어려웠다. 장필용은 딱히 무서울 게 없는 삶을 살았고 애초에 그렇게 섬세한 인간도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기껏 생각한 것이 ‘물에 잠겼을 때 겪는 무언가’였다.
“……?”
하윤은 미리 캡처해 뒀던 괴수의 사진과 검색한 정필용의 근무지 사진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보통 이렇게 많은 물을 보게 되면 무슨 생각을 할까? 빠지면 무섭겠다? 그게 아니면 저수된 물속에 괴물이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든가.
“……물고기라.”
하윤은 괴수 사진을 띄운 창을 근무지 사진 위에서 흔들었다.
‘깊은 물에 빠져서 어류형 괴수에게 잡아먹힌다. 잡아먹히는 게 무서우니까 잡아먹히고 있는 형태로 나타난 거고.’
하윤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이럴 때면 자신이 문지기가 아니라 해커였음 했다. 이곳저곳 정보를 다 긁어 와 봤다면 이렇게 답답하진 않을 테니까. 하지만 자신의 가설이 어느 정도 일치한다면.
“……환상은 이미 겪었고, 원을 이룬 다음 괴물에게 잡아먹혔다.”
원을 들어주는 괴물은 정신체였기 때문에 그가 직접 물고기가 되어 정필용을 잡아먹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만 저런 형태로 만든 뒤 정필용의 정신을 잡아먹었다는 말이 맞으리라.
‘시기상으로도 얼추 맞아떨어진다.’
무경이 격리 시설에 자진 입소한 날 하윤은 전치우에게 왜 괴물을 깨어나게 했느냐고 질타를 받았다. 그날 정말로 원을 들어주는 괴물이 깨어나 영향력을 끼칠 수 있었다면?
“…….”
접근할 수 있는 정보가 제한적이라 억측이 난무했다. 그러나 군이나 정부 관계자에게 가서 이제 곧 우리나라가 망할 것 같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무속인한테 조언을 들었으니 저한테 한자리 주고 TF팀 좀 꾸려 주십쇼, 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미 정신 병동에 비슷한 소리를 하는 선배들이 많기 때문이었다.
‘사실 진짜 미친 걸 수도? 진짜 사실은 김옥림이 미쳤고 나는 그 장단에 놀아나는 게 아닐까?’
하지만 그렇다기엔 본 것들이 있어 무시할 수가 없었다.
‘환장할 노릇이네.’
하윤의 가설이 맞는다면 정필용의 상체를 달고 있는 괴물은 무경의 미래 모습이나 다름없었다. 또한 무경뿐만 아니라 십 년 전 사건에서 생존한 초능력자들 또한 위험에 처했다.
‘어쩌면 무경이 입소한 시설의 입소 대기자가 30퍼센트 이상 증가한 것도 그 영향일지도 몰라.’
그렇다면 이번 정보 제한은 정부가 초능력자들의 변형을 진즉 눈치챘다는 뜻일지도 몰랐다.
◇◇◇
대민 지원 업무긴 했으나 업무로 복귀한 무경은 얼마 안 있으면 다시 집으로 돌아오리라. 그렇게 생각하자마자 하윤은 불안에 시달렸다. 무엇이 불안한지 알지도 못하면서. 밤잠을 설치고 예민해졌다.
하윤은 원래도 서이주가 남긴 자료를 확인하고 있었으나, 불안을 누르기 위해 더 박차를 가했다. 스스로가 놀랄 정도로 집중했다. 시간의 흐름을 느끼지 못해 새벽 일찍부터 시작하여 정신을 차리면 오후였다가, 다시 고개를 숙였다가 들면 새벽 늦은 시간이었다. 기절하듯 짧게 두세 시간 정도 눈을 붙이고 나면 다시 하루가 시작됐다.
이 땅에 자리한 중요한 문들의 위치와 좌표는 어딘지. 여전히 읽기 어려운 고서를 사전과 함께 살펴보다가, 정 안 되겠다 싶으면 해석본을 외웠다. 놀라운 것은 서이주가 남긴 문지기의 지식을 자신이 이미 알고 있다는 것이었다. 공백이 십여 년이 넘음에도.
하윤이 가진 지식은 그야말로 땅속에 말라비틀어진 채로 잠자고 있다가, 흠뻑 내린 빗줄기로 수십 년의 기다림에 종지부를 찍고 깨어난 생물 같았다. 하나를 떠올리면 다른 지식이 곁가지로 피어오르듯 떠올랐다.
어느 순간부터 상기한 좌표들이 천체같이 자신을 두르고 있는 것 같았다. 이 땅에 자리한 모든 문이 자신의 곁에 있는 것 같았다. 꼭 꿈속의 자신 같았다. 황금색 공간에서 둥근 황금 공 위에 앉아 손짓 하나로 문의 위치를 바꾸던.
‘대입 공부가 이랬으면 한국대를 갔을 텐데!’
꿈속의 자신을 생각하자면 왼손의 통증을 빼놓을 수 없었다. 김득철이 만든 팔찌를 끼고 있던 손. 팔찌는 사라졌으나 자신은 이따금 팔찌의 존재를 상기했다.
‘[문]에 관련되었을 때마다 아프니 생각하지 않을 수 없긴 하지.’
이제는 팔찌에 관한 것도 생각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자기 능력은 문지기이고 문지기의 능력은 문을 여닫는 것이다. 자신이 세상을 위해 어떤 역할을 맡아야 한다면 그것 또한 문지기의 일일 것이다.
‘미궁의 문이 다시 열린다.’
하윤은 일찍이 팔찌의 힘으로 미궁의 문을 닫았다. 물론 팔찌를 완성하고 자신의 힘도 듬뿍 내어 썼지만, 팔찌의 역할이 있음을 무시할 수 없었다.
‘분명 팔찌에 대한 기록도 있을 거야.’
서이주는 생전 팔찌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동능의 초능력자들이 잡혀갔고 마지막으로 자신을 노릴 것도 알았다. 그런 인물이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을 리 없다.
‘분명 원형이 있다. 김득철은 그걸 보고 따라 만든 거야.’
하윤은 김응의 존재를 떠올렸다. 김희원의 부친. 본체를 대신해 사람인 척하고 있던 김득철의 인형.
‘그래, 미궁관측연구소에 자료가 있었던 거야. 거기에 문지기들이 대거 몰려 있었으니까 자료가 없었을 리 없지. 거기서 자료를 빼내고, 그 문지기들을 재료로 써서 만든 거야.’
다시금 미궁의 문을 닫아야 한다면 자신 또한 팔찌의 존재가 필요할지 몰랐다. 그것이 이제는 팔찌에 대해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였다.
‘그렇다면 나는 팔찌를 만들 수 없을까?’
오히려 김득철보다 잘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사실 완성한 것도 나잖아?’
그러나 가장 중요한 점이 발목을 잡았다. 재료가 없었다. 하윤은 어처구니없어 웃다가 몸을 일으켰다. 자신을 비웃느라 집중이 깨졌다.
때를 확인하려 베란다로 고개를 돌리던 순간, 콧등이 알싸해지더니 뭔가가 후두둑 떨어지며 세상이 돌았다.
“어어.”
하윤은 다시 자리에 앉으려 했으나 몸이 견디지 못했다. 중심을 잃은 몸이 바닥에 붙듯 드러눕고 말았다. 입안으로 흘러 들어온 액체가 비릿했다. 콧등이 얼얼하다 싶더니 코피가 쏟아진 것이다.
대강이라도 훔쳐보려 했으나 두어 번 움직이고 나자 더는 움직일 수 없었다. 감각이 둔하게 느껴졌다. 손발이 차고 저렸다. 혹시 이렇게 명줄이 끊어지는가 싶었으나, 잠깐 눈을 감았다 뜨자 아직 이승에 붙어 있었다. 모든 힘을 쥐어짜 내듯 몸을 일으켰다. 자신이 흘린 핏자국으로 바닥이 엉망이었다. 피 묻은 팔을 휘저은 모양이었다.
깊은 짜증을 담아 한숨을 내쉰 다음 윗옷을 벗었다. 욕실과 연결된 [문]을 열어 셔츠를 적신 다음 바닥의 피 얼룩을 닦았다. 탈취제도 뿌리고 혹시 바닥에 튄 게 있을까 봐 소파 밑도 살폈다.
그러다가 소파와 소파 다리가 맞붙는 곳에 낀 사진 조각을 발견했다. 그게 왜 그렇게 눈에 들어왔을까. 평소엔 지척에 놓인 쓰레기를 줍지도 않으면서.
“…….”
사진은 하도 접히다 못해 하얗게 탈각되어 사진 속 인물의 얼굴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아는 사진이었다. 사진의 주인공이 자신이었으니까.
예전에 함께한 사진을 자른 적 있었으나, 그건 어디까지나 하윤이 억지를 부려 찍은 사진이었다. 이렇게 어린 시절의 사진은 이 집에 들고 온 적이 없었다. 심지어 사진 속 나이대의 사진이자 무경의 부친인 백진하의 유품도 보여 주지 않았으니까.
이 사진은 무경이 가진 사진일 것이다.
서이주는 생전 만일을 대비하여 사진 같은 것들을 미리 데이터화하여 여러 곳에 저장해 두었다. 물론 귀찮음을 감수하지 못해 전부 다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사진 꼴이……. 저주라도 했나.’
한동안 멍하니 사진을 보던 하윤은 헛웃음을 터트렸다. 미웠나 보지. 웃음은 장소가 장소인지라 얼마 가지 못하고 꺼지듯 사라졌다.
‘잠깐만. 사진. 사진, 사진.’
이미 얼얼한 머리가 더 얼얼하게 느껴졌다. 하윤은 [문] 틈새에 숨겨 놓았던 백진하의 유품을 꺼냈다. 정신없이 사진을 넘기다가, 사진 뭉치의 서두를 적은 풍경 사진을 꺼내 들었다. 바위 섬 하나 새 한 마리 없이 망망대해만 찍혀 있던 사진.
[곡옥은 해부 즉시 추출하여 물에 담그지 않으면 소실되었다고 해. 물은 봉인의 성질이 있으니 일리가 있지. 어쨌든 신기한 것을 손에 넣은 그들은 계속해서 곡옥을 추출하기 시작했지.]
서이주의 유언이 그날같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꼭 그가 지금 자신의 앞에 있는 것만 같았다.
“물은 봉인의 성질이 있다.”
하윤은 곡옥, 열쇠를 묶어 두던 팔찌의 실마리를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