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화
그렇게 얼마나 있었을까. 무경은 그에게 자신을 안으라는 듯이 손을 움직였다. 원하는 대로 등을 안아 줘도 원하는 만큼이 아닌지 앓는 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늘 그렇듯 이게 하윤의 최선이었다. 원하는 만큼이 아니어도 어쩔 수가 없었다.
이를 말하려 하는 순간에 하윤은 무경이 떨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왜 이렇게 떨까. 혹여 우는가 싶어 얼굴을 훑었으나 눈물 하나 느껴지지 않았다.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결국에.’
눈물이 있었다면 깼을 가능성이 컸으나, 아니라면 아직 눈을 뜨지 못한 것이다. 그렇다면 아직 무의식중이라는 건데, 혹여 무서운 꿈이라도 꾼 것일까.
뭐든 이대로 내버려 두면 알아서 가라앉힐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내버려 두지 못했다. 아마도 홀로 남게 될 그에 대한 죄책감 때문이리라. 누군가 자신의 마음을 안다면 네가 그럴 주제냐며 비웃을지도 모르겠다.
하윤은 무경을 고쳐 안고서 다독였다. 무엇을 떠올리는지 알지 못하기에 그저 튀어나오는 대로 지껄였다. 무경에게 하는 말로 포장했으나 사실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이 대부분이었다.
지난 일에 연연하지 마라. 너무 걱정하지 마라. 모든 일은 근심하는 바에 비하면 아주 작은 일이다.
하지만 말하면서도 자신이 해야 할 걱정에서 근심을 뺀 본론들이 너무나 크게 느껴졌다.
다가올 재앙이 그랬고, 남겨질 가족이나 무경에 대한 걱정이 그랬다.
‘세상까지는 몰라도 못 막으면 최소 서울이 날아가는데 걱정을 안 할 수가 있나.’
하지만 솔직히 남은 가족들은 잘 살 것 같았다. 찔러서 안 아픈 손가락은 없어서 슬퍼야 하겠지만, 꼭 필요한 손가락이나 덜 아픈 손가락은 있지 않은가. 하윤은 그게 자신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기도 했고.
‘무경이는 기억만 안 돌아오면 괜찮은데.’
가장 걸리는 것은 무경의 기억이 자신이 죽기 전에 돌아오거나 혹은 죽은 직후에 돌아오는 것이었다. 그것만 아니라면야 어떻게든 살아갈 것이다. 열일곱 무경이가 그러했듯이 스물일곱 무경이도 해낼 수 있다.
‘그래, 공연히 부풀려 걱정할 필요 없다. 재앙만 막는다면.’
하윤은 박건영의 말을 운운하며 자신이 너무 유난을 떨었노라고 토로했다. 이제껏 그럴 필요가 없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잘못한 게 너무 많았다. 자신의 머리와 가슴이 미숙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젠 그렇지 않을 것이다. 내내 제대로 자라지 못한 것 같지만 자신은 이제 더는 열일곱이 아니다. 그것보다 열 살은 더 먹었으니 그만큼 잘 해낼 것이다. 그래야 하기도 하고.
하윤은 차갑게 가라앉은 눈으로 무경을 바라보았다. 괴로운 듯 찡그리고 있는 그의 눈썹과 미간을 손끝으로 살살 문지르며 지금밖에 할 수 없는 고백도 했다. 자신의 말을 알아듣지도 기억도 못 하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할 수 있었다.
자신이 무경을 떠나려 했다는 것을. 기억하지도 못하는, 앞으로도 할지 못 할지 모르는 약속은 지켰다는 변명을 내세워 봐달라고 애원했다. 비록 첫 시도는 실패하고 말았지만, 이다음에는 성공할 것 같아서였다.
하윤은 무경과 자신을 달랬다. 괜찮을 것이다, 모든 것이 생각대로 되지 않겠지만 그래도 생각만큼 최악은 아닐 것이다. 알아듣는지 확인차 무경의 얼굴을 들여다보다가, 이런 짓을 하는 스스로가 우스웠다.
어색한 표정을 짓다가 이제는 무경을 재우듯이 등을 도닥거렸다. 이전에 폭주했을 때와는 달리 빠르게 진정하는 게 느껴졌다. 몸에 힘이 풀리고 숨결이 달라질 때쯤, 하윤은 조심스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선 안방과 다른 위치에 있는 문에 깜짝 놀랐다. 이게 왜 여기 있을까 생각하다가 휴대전화 불빛을 이용해 주변을 살폈다.
‘당연히 안방이라고 생각했는데.’
혹 다른 곳일까?
어두운 중에 봐서 그런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낯설다고 하기엔 어딘지 익숙하고 익숙하다기엔 하윤은 이곳을 몰랐다. 하지만 방문을 열고 나오자 익숙한 거실이 보였다. 하윤은 그제야 자신이 있던 곳이 무경의 서재라는 것을 깨달았다.
‘서재가 저랬던가?’
같은 집에 살았긴 해도 무경의 서재에 들어간 적은 한 번밖에 없었다. 멋모르던 시절 버릇으로 제집처럼 들어갔다가 혼쭐이 났다. 혼쭐이 뭔가 아주 곤죽이 됐었다.
‘그때는 그래도 서재 같은 모양이었는데 지금은…….’
하윤은 무경의 입술이 닿았던 목덜미를 닦아 내듯 문지르며 생각했다. 서재의 구조가 낯이 익은 이유는 그곳이 자신의 예전 방과 비슷했기 때문이었다. 책상과 책장, 그리고 방에 들어가 있는 짐을 고려치 않은 침대의 크기 등.
‘언제부터 저랬던 걸까?’
아주 예전부터였을까, 아니면 최근이었을까. 새로 가구를 들이는 것을 본 적은 없었으나 자신은 온종일 집에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자신이 없는 사이에 충분히 바꿀 수 있었을 것이다. 베란다 창살같이.
‘날이 밝으면 확인해 봐야겠다.’
하윤은 소파에 몸을 누였다. 씻고 싶었지만, 여력이 없어 이 또한 아침으로 미뤘다. 할 일 많은 아침이겠거니 생각하며 눈을 감았을 때.
이상하게 불안함이 밀려들었다. 무경이 있는 방으로 신경이 쏠렸다. 문을 열어 안을 훔쳐볼까 싶다가도 침 한 방울 삼키는 것조차 조심스러웠다.
‘방 안에 뭔가 있다.’
눈을 가늘게 뜬 채 [문]을 열어 방문을 바라보았다. 방 안에는 분명 무경밖에 없었다. 그건 그 방에서 나온 자신이 더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자꾸만 방 안에 무경이 아닌 다른 누가 있는 것 같았다.
막 터 오른 해가 집 안을 밝히고 있음에도 밤보다 더한 어둠 속에 있는 것만 같았다. 하윤은 문득 검붉은 피를 쏟던 김옥림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때 하윤은 김옥림에게 자신을 삼키려 아가리를 벌린 삿된 것이 무엇이냐고, 이 땅 어디에 있느냐고 물었다.
그 말에 김옥림은 하윤을 바라본 채 삿된 것이 무엇인지 대답했다.
당시에는 두 개의 질문 중 한 가지만 쥐어짜서 대답해 준 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김옥림은 두 질문 모두 답했던 모양이었다.
‘내 가까이 있다는 말이었군.’
아무래도 백무경이 미처 본래 세상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남은 괴수의 조각을 자신의 몸에 가둔 모양이었다.
◇◇◇
무경은 본래 자신의 출근 시간이 지나서야 방 밖으로 나왔다. 희다 못해 파랗게 질린 얼굴을 하고 있었는데 하윤이 괜찮은지 물으려 다가가려 하자 벼락같이 소리를 질렀다. 소파를 돌려 가림막을 만들면서 가까이 오지 말라고 하더니 하윤에게 자신의 눈에 보이지 않는 곳으로 가라고 했다.
언뜻 이전처럼 악에 받친 모습이었으나, 그렇다기엔 괴로워 보였다. 하지만 무경의 말을 듣지 않을 순 없는 고로 당장 그의 시야에 들어가지 않을 곳, 팬트리 룸으로 들어갔다.
무경은 그 뒤 정신 침식이 우려되어 며칠간 집에 들어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니 다른 곳에 갈 필요 없이 집에 있으라는 말을 남겼다.
“어디 멀리 가지 말고 여기 있어. 알겠지.”
“…….”
“집에 다 있는데 괜히 사 먹을 필요도 없잖아. 그러니까 알겠지?”
무경은 다소 집요하게 대답을 받아 냈다. 하윤은 계속해서 알겠느냐고 묻는 말에 기시감을 느꼈으나 이어 무장한 요원들의 방문에 되묻지 못했다. 무경은 순순히 그들을 따라나섰고 하윤은 집에 홀로 남겨졌다.
“……세상을 덮칠 업화에 초개처럼 타오를 운명.”
아, 왜 이 말을 들을 때는 생각하지 못했을까.
자신이 무경과 한날한시에 태어났다는 것을.
[초년엔 운이 좋아 물이 되어 줄 부모와 스승, 배필을 얻었으나, 청년기에 이 둘이 타 버렸겠고. 살아남은 것도 있을 것이고 재가 되어 버린 것도 있을 것이나 말라붙어 이전의 역할은 하지 못한다. 가엾은 것들이 네 뼈로는 지지대를 삼고 네 피로는 목을 축일 것이며 네 비명으로 깨어나고 네 살점으로 풍요를 얻겠지.]
“이 땅에 남겨진 머리가 너를 집어삼키려 아가리를 벌리고 있다.”
하윤은 이어 고서 해석본에 있던 원을 들어주는 괴물을 떠올렸다. 괴물이 물으면 인간의 심중 깊은 원(願)이 튀어나와 환상을 이루고, 이때 절명하지 않고 버티면 실제로 결실한다. 원이 실제 이루어지면 답한 인간은 괴물에게 잡아먹힌다.
무경이 당시 원했던 것을 괴물이 이루는 순간, 백무경은 잡아먹히는 것이다. 그리고 무경을 잡아먹은 뒤에 자신 또한 삼키리라.
“집어삼키려 아가리를 벌리고 있다.”
하윤은 헛웃음을 터트렸다. 작금의 상황이 어처구니가 없어서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운도 지지리도 없는 새끼.’
곧장 [문]을 열어 전치우의 사주카페로 갔으나 문이 잠겨 있었다.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뒤늦게 사정이 있어 가게를 정리한다는 메모를 발견하고 다시 문을 열었다.
‘전치우의 집.’
본래 갔었어야 했던 곳으로 향한 뒤 하윤은 거친 숨을 정리하며 초인종을 눌렀다. 새소리 같은 것이 뾰뾰 울렸으나 문이 열리지 않았다. 문을 흔들 듯 두드리고 몇 번이고 초인종을 눌렀을 때에야 희게 질린 얼굴의 전치우와 김옥림의 애동제자가 문을 열고 나왔다.
그들은 이른 아침에도 짙은 화장을 하고 무복을 갖춰 입었으며, 칼도 차고 있었다. 결연한 표정을 짓고 있었으나 그 안에 담긴 두려움까지는 털어 내지 못했다.
둘 중 먼저 무너진 것은 전치우였다. 그녀는 눈을 질끈 감으며 하윤에게 비명같이 소리쳤다.
“대체 뭘 했길래 깨어나게 했습니까! 더 버틸 수 있었는데, 하루라도 더 늦출 수 있었는데!”
그녀들의 등 뒤로 벽을 짚으며 걸어 나오는 김옥림이 보였다. 하윤은 그녀의 눈을 감싼 붕대가 벌건 핏물로 물들어있는 것을 보고 탄식했다.
“아.”
망했다. 이 말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
정신 침식을 주장하며 무경이 스스로를 격리한 곳은 납 벽으로 둘린 지하 공간이었다. 폭주 위험이 있는 고위험 초능력자를 격리하는 공간으로 근처엔 무경 외에도 다른 상태 좋지 않은 초능력자들이 갇혀 있었다.
훌륭한 방음으로도 거르지 못한 소음을 들으며 무경은 생각에 잠겼다. 두고 온 일들, 해야 하는 일들. 그리고 김하윤의 일과 아주 조금이지만 김희원에 관한 생각도 했다. 앞으로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 등 말이다.
무경은 생각에 공백을 두지 않으려 애썼다. 공백이 있을 때면 물속에서 쥔 고운 모래같이, 더는 참지 못하고 뱉어 낸 숨 방울같이 자꾸만 기억이 새어 나왔다. 그래, 그가 지금 떠올리는 것은 기억이었다. 이전이라면 실제 있었던 일인지, 망상인지, 아니면 꿈인지도 구분치 못했을 것을 이제는 ‘기억’이라고 확신했다.
그토록 찾고자 했던 기억임에도 달가워하지 않는 것은 그가 기억이라고 확신하는 것들이 이상했기 때문이었다. 정확히는 기억에 관한 감정이 이상했다. 자신의 기억이라고 확신하면서도 자신의 것 같지 않았다.
자신이지만 다른 자신의 기억 같다고 생각했다. 이 또한 이상한 생각이지만 이것보다 정확하게 정의할 수 없었다. 그런데도 기관에서는 많은 검사를 했음에도 무경의 상태가 이상이 없다고 진단했다. 옆방이나 옆옆방처럼 때려 부수고 태우지 않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상대적으로 덜 미쳤다고 생각하는 건지.’
그런 기준이라면 무경도 할 말은 없었다. 비교적 이성을 갖고 있기는 했으니까.
격리된 지 얼마 있지 않아 지방에서 발생한 재난 상황에 무경의 퇴소가 결정되었다. 이 정도 이상으로는 쉴 수 없다는 듯이 파견이 결정되었다. 무경은 익숙해지기도 전에 벗어야 했던 구속복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몸을 돌렸다.
재난지로 이동하며 현장에 대한 간략한 보고를 들었다. 우선하여서 할 일들을 생각하며 이번에도 생각의 공백을 주려 하지 않았으나, 운전병이 잠시 휴게실을 간 사이 틈을 주고 말았다.
기억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 것 속에서 무경은 어린아이였다. 무경이 가진 사진 속 생일 파티였는데, 그는 김하윤을 향해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손뼉을 치며 한껏 소리를 높여 노래를 불렀다. 반면 김하윤은 선택적으로 노래를 불렀다. 생일 축하한다는 부분에선 같이 소리 내다가 사랑하는 부분에서는 급격히 소리를 줄이다 못해 부르지 않았다. 그래서 자신은 오히려 더 큰 소리로 그 부분을 불렀다.
[사랑하아아는…….]
“김하윤.”
바로 옆에서 부르는 것 같은 생생함에 무경은 자신도 모르게 입을 뻐금대다가 일부를 불렀다. 그러자 기억 속의 자신이 잘했다고 칭찬이라도 하듯이 활짝 웃었다. 맞은편 김하윤이 그를 향해 쑥스러워하다가 배시시 웃었고 둘은 다시 목소리를 맞춰 노래를 불렀다.
[생일 축하합니다.]
기억 속 자신과 하윤은 노래를 다 부른 뒤 초도 끄고 생일 선물도 풀었으나 무경은 저도 모르게 노래를 흥얼거렸다. 하지만 이번엔 축하받아야 할 사람도 하물며 케이크도 없었다.
“사랑하는 김……하윤. 생일 축하합니다.”
그저 저 백무경 하나만 있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