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화
김옥림은 조금 전의 온화한 표정과는 사뭇 다른 차가운 얼굴로 하윤의 이름을 물었다. 그러고는 이름 한자와 생년월일, 태어난 시와 분을 물었다. 하얀 테이블보 위에 손가락으로 하윤이 일러 준 한자를 흘려 썼다.
그러다가 돌연 난감한 것 같은 표정을 짓다가 입술을 긁기 시작했다. 긴 신음을 뱉어 낸 중년인의 얼굴엔 이젠 웃음을 찾아볼 수 없었다.
차가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하윤은 테이블보만 뚫어져라 바라보는 김옥림을 향해 물었다.
“……그럼 뭘 물어야 합니까? 내가 복채를 낼 수 있는 건 사주팔자 풀이뿐인데.”
하윤이 벽에 붙은 안내표를 턱짓하자 김옥림은 몸을 들썩이며 웃다가 손끝으로 탁자를 두드렸다.
“그럼 운수를 봐야지. 그래, 운수를 보자. 너는 어디서 온 뉘길래 수많은 목숨을 이고 지고 이곳에 왔느냐. 어떤 목숨 줄을 갖고 태어났기에 초개같이 불타오를 운명이냐.”
톡톡 탁자를 건드리던 손가락이 멈춘 순간, 발끝에서부터 부르륵 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박건영이 최면을 걸 때와 비슷했으나 이번엔 꺼림칙한 기분은 들지 않았다. 아주 맑은 물에 몸을 담그는 것 같았다.
하윤은 문을 열고 자리를 피하는 대신 김옥림의 초대를 받아들였다. 발끝에서 차오른 물은 어느새 하윤을 머리꼭지까지 차올라 그를 집어삼켰다. 주변에서 들리던 도시의 소음이 사라지고 숨이 트였을 때, 하윤은 도시 한가운데 자리한 사주 카페가 아닌 다른 곳에 와 있었다.
깊은 숲의 풀 내음과 먹먹함, 바위의 차가움과 고요한 소란이 느껴졌다. 숱한 침략의 역사 속에서 피 묻고 절규 묻은 손발이 닿지 않도록 산 깊은 곳, 바위로 만들어진 은밀한 공간이었다.
하윤은 눈동자만 움직여 주변을 훑어보았다. 슬쩍 문을 만들려 하자 외벽이 일렁였다. 하윤은 자신이 실재하는 공간으로 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박건영의 방식을 떠올렸듯 일종의 정신 착란을 유도한 것이다.
물론 단순히 정신 착란이라고 하기엔 곤란했는데, 그녀가 무속인이라는 점이었다.
제대로 된 신자들이 경외를 통해 신당을 특별하게 만드는데, 보통은 역사 깊은 종교 시설에서 축적되는 반면 자신의 몸에 신을 모셔 스스로를 신당으로 만드는 경우가 있었다. 이런 경우 신주가 몸을 움직이면 신당도 함께 움직이는 셈이다.
즉 하윤은 김옥림이 자신의 몸에 불러낸 존재로 인해 만들어진 신당에 들어온 것이다.
사실 하윤이 문지기가 아니었다면 이렇게까지 선명하게 구분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일반인뿐만 아니라 다수의 초능력자도 그저 주변 공기가 달라졌다, 눈앞의 무속인이 영험하다 정도로 느낄 것이다.
하윤이 공간을 인지한 뒤 김옥림은 더는 그녀가 아니었다. 사람의 살결을 하고 사람의 눈을 하고 있었으나 생물이 아니었다. 이를 무엇이라 할까. 하윤은 안심을 위해 쓰고 있던 안경을 벗었다.
눈을 가리고 있던 것을 한 꺼풀 내려놓자 그녀가 제대로 보였다.
“석불.”
하윤의 말에 김옥림은 웃는 듯 마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어디를 보는지 알 수 없는 초점 없는 눈으로 고개를 움직이다가 입을 열었다.
“세상을 덮칠 업화에 초개같이 타오를 운명이구나. 초년엔 운이 좋아 물이 되어 줄 부모와 스승, 배필을 얻었으나, 청년기에 이 둘이 타 버렸겠고. 살아남은 것도 있을 것이고 재가 되어 버린 것도 있을 것이나 말라붙어 이전의 역할은 하지 못한다.”
“그러면 새 스승과 새 배필을 얻어야 합니까?”
“배움에는 끝이 없어 생에 스승이 어디 하나겠느냐 마는. 네 스승을 찾기보다 네가 먼저 스승이 되겠구나.”
“배필은요?”
“그것이 어찌 네가 떼려 한다고 하여 뗄 수 있겠느냐. 뗄 수도 떼려 하지도 않을 텐데.”
이번엔 김옥림 대신 하윤이 웃는 듯 마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물이 되어 줄 부모도 스승도 배필도 사라졌으면 나 같은 운명은 어떻게 됩니까.”
“가엾은 것들이 네 뼈로는 지지대를 삼고 네 피로는 목을 축일 것이며 네 비명으로 깨어나고 네 살점으로 풍요를 얻겠지.”
“앞으로 무엇이 닥치기에 그렇습니까.”
김옥림은 이 땅에 하늘이 열리고 재앙이 닥칠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 한번 왔던 것인데, 잃어버린 것을 되찾고자 한다고.
“삿된 것이 자기 머리를 찾으러 온다.”
“머리?”
“이 땅에 남겨진 머리가 너를 집어삼키려 아가리를 벌리고 있다.”
“삼키면 삼켜지겠습니까?”
“모르지. 삼킨 놈의 배가 터질지, 네가 녹아 버릴지.”
“…….”
“허나 몸통에 머리가 붙으면 무엇이든 족할 때까지 집어삼키겠구나.”
“당신도?”
“이 땅에 발 디딘 개미 한 마리 모두. 다른 땅은 글쎄. 그놈이 만족할 만큼 배가 부르면 또 모르지. 돌아갈지, 아니면 더 난장을 부릴지. 그놈 변덕에 달린 것이지. 그러나 탐욕이 어찌 절제를 알더냐. 자비를 알더냐. 혹은 슬픔을 알더냐. 오직 자기 배고픈 것만 알 뿐인데.”
초점 없이 허공을 헤매던 김옥림의 눈이 이제는 또렷하게 하윤을 담았다. 하윤은 김옥림과 눈을 마주한 채 입을 열었다.
“그 삿된 것이 대체 뭡니까? 이 땅 어디에 있습니까?”
하윤의 질문과 동시에 김옥림은 입꼬리를 한껏 끌어 올렸다. 대신 눈과 눈썹은 조금도 미동하지 않았다. 그녀의 얼굴이 점점 벌겋다 못해 검붉게 변하고 흰자가 벌겋게 충혈되었다. 숨이 점차 거칠어지더니 김옥림의 눈과 코, 귀와 입에서 검붉은 피가 쏟아졌다.
김옥림은 합장을 한 채 남자 목소리 같기도 하고 노인 같기도 한목소리로 쥐어짜듯 단 한 마디를 뱉었다.
“탐욕.”
말을 뱉은 뒤 김옥림은 누가 잡아당기기라도 하는 것처럼 고개를 뒤로 바짝 꺾었다. 합장을 풀지 않은 채 그녀는 무엇인가를 계속해서 중얼거렸다. 언뜻 듣기에 불경 같았으나 하윤이 불경을 몰라 확신할 수 없었다.
동시에 사방에서 짤랑거리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김옥림의 손에는 방울 비슷한 것도 들려있지 않았다. 어디에서 들리는 소리일까. 하윤이 소리의 근원을 찾아 고개를 돌리던 순간, 공간이 크게 흔들리며 머리 위로 어떤 시선이 느껴졌다. 어쩐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하윤은 곧장 시선이 느껴지는 곳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컴컴하여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으나 감이 눈을 대신해 보고 느꼈다.
‘또 가까워졌다.’
렌즈로 가려진 하윤의 눈이 금빛으로 물들었다. 삿된 것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문을 굳게 닫고 위치를 숨기려 손을 뻗는 순간 김옥림의 공간이 허물어졌다. 도시의 소음과 방울 소리가 귀를 찢을 듯이 가까이서 들려왔다.
하윤은 곧장 고개를 돌려 김옥림을 확인했다. 그녀는 합장한 자세 그대로 굳어 있었다. 공간 안에서처럼 피를 흘리진 않았으나 땀을 흘렸는지 드러난 살갗에 물기가 그득했다.
“어머니!”
하윤이 옥림의 상태를 확인하는 사이 못 보던 여인 둘이 김옥림을 부축했다. 하나는 무복을 입은 채 송골송골 맺힌 땀을 소매로 대강 닦아 냈고, 다른 하나는 그냥저냥 요즘 젊은이들같이 입었다.
하윤은 그중 하나를 향해 입을 열었다.
“전치우.”
◇◇◇
하윤이 들어온 사주 카페인지 점집인지 모호한 이곳은 김옥림의 애동제자와 김옥림의 딸인 전치우가 차린 곳이었다. 둘의 수양을 위해서 차린 곳이라는데, 이해가 가지 않아 그냥 그러려니 했다.
‘어쩌면 김옥림도 나같이 미심쩍어서 확인차 온 게 아니었을까.’
수양이라는 말을 올리기엔 세속적인 공간이었으니까.
어쨌든 김옥림은 오랫동안 수심에 잠겨 있었는데, 이곳이 달이 내려온 듯 환하게 빛나는 것을 보고 오랜만에 세속으로 나왔다고 했다. 전치우는 김옥림의 오랜 수심의 이유는 말해 주지 않았다. 김옥림이 직접 말해야 한다나 뭐라나. 하지만 듣지 않아도 어떤 내용인지는 대강 감이 왔다.
전치우와 이야기하는 사이 시간이 제법 흘렀다. 하윤은 시계를 보고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때마침 김옥림의 애동제자라던 박윤진이 방에서 나왔다. 그녀는 김옥림이 누군가를 대신해 보관하고 있었다며 메모가 든 지퍼백을 하윤에게 건넸다.
그러고는 값을 치르려는 하윤을 말리며 그에게선 대가를 받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 대화를 끝으로 하윤은 그곳을 나왔다.
“…….”
하윤은 정처 없이 걷다가, 벤치가 보이자마자 냅다 주저앉아 메모를 펼쳤다.
[문태강은 인간다운 죽음을 맞았는가?]
“아, 선생님……. 진짜.”
메모를 본 하윤은 탄식하며 미간을 문질렀다. 앓는 소리를 길게 내다가, 이내 짜증을 주체하지 못해 울분을 토했다. 축축해진 눈가를 쓸어내리고 다시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멍한 눈으로 차가 오가는 도로를 바라보았다. 이제는 달려오는 차에 뛰어든다고 해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하윤은 벌겋게 달아오른 눈으로 으슥한 길로 들어갔다. 문을 열고 자취방으로 돌아간 그는 메모를 갈기갈기 찢어 변기에 버렸다. 빈 지퍼백은 쓰레기통에 버린 다음 자신의 공간을 열었다.
자취방 안에 있던 문이 활짝 열린 채로 다가와 하윤을 집어삼켰다. 하윤을 집어삼킨 문을 또 다른 문이 삼키고 또 이를 다른 문이 다가와 삼켰다. 공간과 공간이 이어졌다가 멀어지며 또다시 다른 공간을 열었고 이윽고 하윤은 금색의 문들로 이루어진 구형의 공간에 다다랐다.
“…….”
하윤은 천천히 숨을 들이켰다. 본래 들어온 직후에는 붉은색이었어야 할 문들이 이미 황금빛으로 빛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기 눈동자를 직접 볼 수 있었다면 눈동자의 변화도 알 수 있었겠으나, 안타깝게도 이곳에 거울을 두지 않았다.
물론 있었다고 한들 볼 생각도 들지 않았을 것이다. 하윤은 공간의 중심부를 향해 달려갔다. 꿈에서도 잊을 수 없는 스승, 서이주가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
서이주의 시체가 있어야 할 곳에는 그녀의 옷밖에 없었다. 하윤은 믿기지 않는 광경에 눈을 깜빡였다.
하윤이 능력을 찾은 뒤에도 이곳에 들어오기 꺼렸던 것은 이곳에 서이주의 시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눈 씻고 찾아봐도 서이주의 몸이 없었다. 말라붙은 살점이라도, 하다못해 뼛조각이라도.
벌레가 와서 파먹었냐고 하기엔 옷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하윤은 서이주의 피 묻은 옷을 들고서 사방을 둘러보았다. 그를 환영하듯 문짝을 움직이는 문들이 꼭 서이주를 잡아먹은 것만 같았다.
숨이 거칠어졌다. 하윤은 흐려지려는 시야를 다잡고자 눈을 깜빡였다. 그러나 그가 찾는 것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하윤은 바닥에 주저앉아 옷을 움켜쥐었다.
“이……! 이이!”
짜증과 분노와 슬픔이 뒤엉켰다. 무엇을 먼저 내보내야 하는지 순서도 정하지 못해 말 한마디 뱉지 못했다. 모든 게 다 엉망이었다. 도무지 무엇부터 손을 써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모르겠어요. 선생님……, 저 하나도 모르겠어요. 문제만 내지 말고 제발!”
하윤은 두 손을 맞대고서 빌기 시작했다. 생전 서이주가 봤다면 모르면서 당당하다고 꾸짖을지도 몰랐다.
“답을 알려 주세요. 하나도 모르겠다고요.”
하지만 하윤은 차라리 꾸짖기라도 바랐다. 사라진 서이주가 살아 있어서 자신을 꾸짖어 주길 바랐다. 그러나 공간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저 김하윤 빼고는.
“……등신 새끼.”
하윤은 눈물로 흠뻑 젖은 얼굴을 닦을 생각도 하지 못했다. 서이주의 옷을 안고서 넋이 나간 사람처럼 허공을 응시했다. 그러다가 참을 수 없이 스스로가 혐오스러워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울부짖었다.
얼마 동안 그러고 있었을까. 하윤은 미리 맞춰 둔 알람 소리에 몸을 흠칫 떨었다.
‘이게 무슨 알람이었더라.’
멍한 머리를 두들겨가며 가까스로 가족들과 저녁을 먹기로 했다는 것을 떠올렸다. 이 와중에 저녁이라니. 하윤은 짜증을 토해 내며 웃었다. 작금의 상황이 웃음이 안 나려야 안 날 수가 없었다.
“뭐 이런 새끼가 다 있냐.”
하윤은 서이주의 옷을 곱게 개켜서 품에 안았다. 이대로 두면 서이주의 옷마저 사라질 것만 같았다.
‘일단 나가자. 나가서 생각하자.’
그때 거짓말처럼 서이주의 옷에서 얼마 멀지 않은 곳에 작은 목함이 보였다. 하윤은 긴 울음으로 뜨뜻해진 자신의 이마를 짚었다. 이렇게 가까이 있었는데 본 기억도 두고 갔던 기억도 없었다. 왜 그랬을까?
익숙한 목함이었다. 하윤은 비슷한 형태의 목함을 이미 몇 번이나 본 적 있었다. 하윤의 안경함이 그랬고 타임캡슐 안에 들어 있던 열쇠가 든 목함이, 문태강의 사리가 든 통이 그랬다. 하윤은 서이주가 남긴 질문을 되뇌었다.
“……문태강은 인간다운 죽음을 맞이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