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화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내내 머리가 멍했다. 그 때문일까. 집에 돌아가자 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했다.
무경은 자신이 평생 홀로 잠든 적 없는 사람같이 느껴졌다. 그래서 동거인의 부재를 견디기가 어려웠고 그의 옷가지를 이불과 함께 뭉쳐 끌어안았다.
분명 낯설어야 할 일인데 이상하게 낯설지 않았다. 과거에 몇 번은 해 본 적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당연하게도 그게 언제였는지는 생각나지 않았다.
◇◇◇
다음 날, 무경은 김하윤의 ‘방’을 만들고자 했다.
확실히 이것은 어느 쪽의 사고로도 이상한 결정이었다.
이 이상한 생각의 발로는 간단했다. 김하윤이 대형 할인마트에 들어갔기 때문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집이라 자취방에 오래 있지 않으리라는 계산이 단번에 일그러졌다. 조금 귀찮고 고되기는 하지만 돈만 있다면야 부족한 물건을 채우는 것쯤은 아무 일이 아니었다.
이대로라면 김하윤이 영영 집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 같았다.
가장 좋은 것은 거실과 드레스 룸의 공간을 조정하여 새로운 방을 만드는 것이었지만, 공사를 할 시간이 없었다. 무경은 급한 대로 하윤에게 서재를 내주기로 마음먹었다.
일반 서적은 남겨 놓고 불필요한 책들은 정리했다. 자신이 보는 전문 서적은 잠금장치가 있는 책장에 넣고 거실로 뺐다. 폭주했을 때를 대비하여 의도적으로 거실에는 짐을 두지 않으려 해 왔지만, 어쩔 수 없는 일 아니겠는가.
김하윤에게 보여 줄 수 없는 것들은 캐리어에 담거나 차 트렁크에 실었다. 그 외 잡다한 것은 팬트리 룸에 넣기로 했다. 짐이 별로 없다고 생각했는데, 까고 보니 그렇지 않았다. 결국 정리가 필요했다.
‘너무 정리하지는 말아야지.’
팬트리 룸을 꽉 채워 두면 김하윤이 이전같이 아지트로 쓰지 못할 것이다. 물론 그가 김하윤을 찾지 못하는 일은 없을 테지만.
무경은 깊숙이 들어가 있는 상자를 끄집어냈다. 책 종류가 들었는지 제법 묵직했다. 자신이 넣은 기억이 없으니 김하윤의 물건일 것이다. 깊숙이 있어서 정리하지 못했나 보다. 그렇다면 이것은 자신이 정리할 물건이 아니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상자를 밀어 넣으려고 할 때, 무경의 힘에 짓눌린 상자의 옆이 벌어졌다. 이미 찢어진 것을 테이프로 발라 두고 오랫동안 방치한 모양이었다.
“……앨범?”
무경은 틈새로 보인 내용물에 손을 멈췄다.
확실히 눈에 익은 물건이었다. 무경은 상자 속에 담긴 앨범이 무엇인지 알아차렸다. 김하윤이 자신의 사진을 억지로 찍은 것들을 보관하는 앨범이 있었다. 주로 같이 찍자고 하긴 했었는데, 들어준 적은 얼마 없었다.
‘아니, 그런 적은 없었던 것 같은데.’
저 혼자 찍히는 것도 싫은데 하물며 김하윤과 같이 찍을 리가 있겠는가. 전부 김하윤이 어거지로 찍었던 것으로 기억했다. 그런 경우 김하윤은 배경같이 나오거나 화면 귀퉁이에 손자국 같이 나왔다.
‘하여간 쓸데없는 짓만 골라서 해.’
무경은 아예 상자 속에서 내용물만 끄집어냈다. 낡은 상자를 곧장 분해해 버리고 앨범만 안은 채로 거실로 향했다. 환한 불빛 아래서 앨범에 묻은 먼지를 닦아 냈다.
‘졸업식 사진도 있을까.’
서재로 들어가는 복도 끝에 자리한 낮은 장식선반. 무경은 그 위에 항상 있던 졸업식 사진의 존재를 떠올렸다. 자신이 찢고 태우고 다시는 두지 말라고 윽박을 질러도 그 사진은 늘 그 자리에 있었다. 물론 김하윤의 주머니 사정에 따라 액자가 바뀌긴 했지만.
이제는 없어진 사진의 행방을 찾아 무경은 앨범을 열었다.
“…….”
분명 김하윤의 앨범이 맞는데, 앨범엔 김하윤이 없었다. 무경은 자신만이 존재하는 사진들을 보다가, 사진들의 곳곳이 긁히거나 도려내지거나 혹은 뜯겨 나간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것이 누구였을는지는 불 보듯 빤했다.
“…….”
무경은 힘겹게 침을 꼴깍였다. 집 안을 그득 채우고 있는 공기가 문득 무겁게 느껴졌다. 날이 더운 것도 아닌데 식은땀이 났다.
‘……별것도 아니잖아.’
무경은 자신이 왜 이렇게 놀라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무경이 가진 사진들을 생각하면 이 사진들은 양호했다. 이것들은 김하윤만 도려내고 긁어냈을 뿐이니까. 반면 무경이 가진 사진들은 하도 구기고 접은 탓에 거미줄 같은 선이 빼곡하게 남아 있었다.
김하윤의 얼굴이 유독 잘 보인다 싶은 사진은 아예 손끝으로 파헤쳐 놓기도 했다. 그런 것에 비하면 깨끗한 사진이었다.
하지만 사진을 보면 볼수록 목이 조이는 기분이었다. 무경은 넥타이를 풀어 헤치고 셔츠의 단추를 풀었으나 갑갑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무경은 얼굴을 찡그린 채로 앨범을 빠르게 넘겼다. 찾아보고자 했던 졸업식 사진은 앨범 끝으로 갈 때까지 보이지 않았다.
무경은 곧장 두 번째, 세 번째 앨범을 뒤졌다.
사진 속의 자신은 점차 어려지고 있었다. 자신이 모르는 사진도 있었고 이미 가진 사진도 있었다. 아마도 김하윤은 모르겠지만.
“이건 아무것도 아니야.”
자신이 한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무경은 주문같이 되뇌며 홀로 케이크 앞에 남은 자신의 어린 모습을 바라보았다. 옆에 누가 어떤 모습으로 있다는 건 알겠는데, 하필 망가진 사진의 모습으로만 생각이 났다.
다 뜯어 버려 흰 종이가 드러난 채로 접힌 자국이 몸을 가로지르는 김하윤이.
무경은 앨범을 덮었다. 졸업 사진은 이제 이 집에서 사라진 모양이었다.
“……언제 사라지나 했는데 잘됐다.”
조용한 중에 혼잣말했기 때문일까. 무경은 자신의 목소리가 낯설게 느껴졌다. 자신이 말하는 것 같지 않았다. 무경은 억지로 숨을 크게 들이켰다. 아직 지워지지 않은 갑갑함이 그를 불편하게 했다. 누군가 계속, 자신을 미워한 누군가가 그의 목을 잡고 놓지 않는 것 같았다.
“…….”
생각하고 싶지 않은데도 자꾸만 자신이 원하던 변명을 늘어놓던 김하윤이 생각났다. 그가 뭘 했을지는 사실 너무도 간단한데 그걸 믿고 싶지 않았다.
‘왜냐하면.’
왜냐하면, 왜냐하면. 무경은 이유를 바로 대지 못하고 계속해서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왜냐하면, 그 순간에 자신의 생각이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챘기 때문이었다.
‘그만.’
무경은 생각을 그치기로 했다. 지금 할 생각이 아니었다. 그리고 굳이 가부를 가리자면 김하윤은 이미 실패했으니까.
◇◇◇
무경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 김하윤이 부재한 동안 그를 생각하지 않으려 했으나 김하윤이 워낙 자신의 삶에 가까운 탓에 생각을 덜어 낼 수 없었다.
아직 마음은 소란스러웠고 뭣 하나 제대로 정리되는 것도 없었다. 무경은 갑갑한 마음을 갖고서 김하윤을 데리러 갔다.
김하윤은 이틀여가 지나고 사흘이 다 되어 갈 때쯤 무경에게 연락했다. 시간이 애매해서 하루 더 자고 오겠다는 것을 자신도 퇴근하는 중이라 때가 맞다는 핑계로 데리러 간 것이다. 김하윤은 그럴 필요가 없다고 했으나 무경에겐 필요한 일이었다.
김하윤이 집에 돌아오면 그치지 않던 이상한 생각이나 행동들을 그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일까. 김하윤을 보자 소란스럽던 마음이 단번에 가라앉았다.
물론 좋은 의미는 아니었다. 이전보다 훨씬 나아 보이는 얼굴을 보자마자 심장이 짓밟히는 느낌이 들었으니까.
그저 어서 집으로 데려가야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그냥 내일 아침에 버스 타고 가면 되는데.”
“이미 왔는데 뭘.”
“그냥 너 피곤할까 봐 그러지.”
무경은 하윤이 벨트를 잡자마자 문을 잠갔다. 하윤은 그 소리에 무경을 잠시 바라보다가 마저 벨트를 맸다.
퇴근 시간인 만큼 그야말로 미친 듯이 차가 밀렸다. 도대체 움직이는 차가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무경이 앞차 꽁무니만 노려보고 있을 때 하윤은 내내 창을 응시했다. 사람들 지나다니는 게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고개를 돌리지도, 말을 걸지도 않았다.
‘묻고 싶은 게 많았는데.’
안부가 궁금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니까 이건 어찌 보면 청취나 다름없었다. 자신이 눈을 떼었던 동안 박건영과 손을 잡았을 수도 있고 아니면 다른 이들이 접근했을 수도 있으니까. 그런 점은 자신이 확실히 알아 둬야 하지 않겠나 싶었다.
수긍할 이유가 생기자 무경은 비로소 입을 열 수 있었다.
“오늘 뭐 했어?”
요즘 뭘 하길래 연락을 이렇게 안 하느냐고 쏘아붙이려 했는데 영 어색한 말투가 튀어 나갔다. 스스로도 당혹스러워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그러나 김하윤은 대답이 없었다. 때마침 신호가 걸렸다. 무경은 재차 뭐 했느냐고 물으며 하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
창밖을 보는 줄 알았던 김하윤은 고개를 숙인 채 잠들어 있었다. 무경은 하윤이 고개를 꾸뻑이기 전에 그의 이마를 받쳤다. 그런 다음 창가 쪽으로 밀어 비교적 편한 자세를 잡도록 도와주었다.
그래도 썩 편해 보이지 않아 다시 고쳐 주려 했으나 신호가 바뀌고 있었다. 무경은 차를 출발시키며 계속해서 하윤을 힐긋거렸다.
언뜻 만졌던 이마가 조금 따듯했다. 열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신경이 쓰였다. 무경은 에어컨 온도를 조절하고 뒷좌석에 실어 둔 겉옷을 가져와 덮어 주었다.
‘잘 자네.’
차를 타러 내려올 때도 하품을 하더니. 정작 피곤한 건 김하윤 본인이었던 모양이었다. 무경은 입꼬리를 삐죽거리다가 이번엔 라디오를 껐다. 그제야 잠든 숨소리가 쌕쌕 잘 들렸다.
차는 여전히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고, 라디오도 꺼 버려 차 안은 둘의 숨소리만 들렸다. 무경은 이 침묵이 그렇게 싫지 않았다. 김하윤과 관련된 모든 것들이 싫다는 전제가 깔려 있음에도.
무경은 소리 없이 입술만 달싹거리다가 제대로 들리지도 않을 법한 소리로 다시 질문을 이었다.
집에 가서 뭘 했었는지, 가족들이 지난 생일이나마 축하를 해 줬는지, 잠은 잘 잤는지, 여전히 방 없어서 거실에서 잤는지, 동생들이 쓸데없이 건방을 떨지는 않았는지, 그리고 너는 이상한 생각을 하지 않았는지.
무경의 물음에 하윤은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게 더 좋았다. 답이 돌아왔다면 절대 물어보지 않았을 물음이니까.
무경은 계속해서 자신이 아는 것과 모르는 것들을 섞어 물었다. 자취방은 어떻게 했는지, 몸이 안 좋은 중에 기어코 방 청소를 했는지, 그리고 박건영의 제의는 어떻게 하기로 했는지.
“그거 받아들이지 마. 수상해 보여.”
무경은 박건영의 제안을 폄하했다.
“쥐꼬리만 한 예산 타서 쪼개 쓰는 건 어느 부처나 똑같은데 자기들이 뭘 해 줄 수 있는데. 물론 그쪽이야 특활비를 좀 타 쓰는 것 같지만 너한테 구체적인 액수를 제안한 건 아니잖아. 말만 번지르르하게 하고 결국엔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내버려 두겠다는 거랑 똑같잖아. 그게 뭐 대단한 거라고.”
수다쟁이가 된 것처럼 말이 입을 비집고 나왔다.
“건방진 새끼. 그 새끼는 하나부터 열까지 다 마음에 안 들어.”
정말로 하나도 마음에 드는 구석이 없었다. 무경은 최근에 하윤과 눈을 맞추던 박건영의 모습을 떠올리며 핸들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그가 하윤과 눈을 마주칠 때마다 자신의 아주 약한 부위를 날카롭게 긁는 것 같던 느낌 또한 동시에 떠올랐다.
“더는 만나지 마. 알았지?”
무경은 하윤이 잠결에 듣기라도 할까 봐 소리를 죽여 놓고 확인이라도 받으려는 양 고개를 돌렸다. 하윤은 아까보다 더 깊이 잠들어 있었다. 살짝 벌어진 입술을 보다가 무경은 흐트러진 숨을 골랐다.